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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태풍 속에서

2013.11.29 01:2511.29


1.


 기분 나쁜 웃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이불을 뒤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몽롱한 잠기운 속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감염자들이 때를 지어 이리저리 발이 가는 데로 목적지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무의미한 말들을 하고 웃음소리를 내며 걷고 또 걷는다. 그들은 때때로 잠겨 있는 건물의 문을 두들겨 사람들의 잠을 깨우고는 여기 있는 절망과 공포를 보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각인 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밤의 저들에게는 악의를 갖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으니.
 감염자들의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행동을 보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에 체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광기 어린 웃음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그 웃음은 마치 웃음으로 합창을 하듯 호흡을 맞추어 가며 웃음을 토해내고 있다. 저들의 존재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려야 좋을까.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와 같은 무리라고 해야 할까. 그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유의지를 잃어버린 채, 밤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저들은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기생체 X에 감염된 자들이다.

 저들을 감염 시킨 기생체X는 1년 전 여름,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처음 목격 되었다.

 처음 기생체 X가 목격된 곳은 한참 정부에 대한 시위가 강하게 번지고 있던 이집트 카이로였고, 그곳에 기생체 X가 나타난 것은 해가 지고 하늘이 쪽 빛으로 물들어 가던 저녁때였다. 당시 기생체 X가 모습을 들어내기 전, 그곳에는 정부에 대한 군중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기생체 X를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집회를 위해 모인 군중 속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듯이 검은 연기가 허공에서 터져 나왔고, 얼마 안 있어 그것은 사람의 형태로 변해갔다고 했다. 다리와 팔이, 몸통과 머리가 꽃이 피듯 만들어졌고, 마지막으로 붉은 눈동자가 조명이 켜지듯이 번뜩였다고 말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한 목격자들은 뒷걸음질 치며 도망을 쳤지만, 기생체 X의 주변에 있던 한 남자는 순식간에 달려든 기생체 X에게 공격을 받고 말았다. 남자는 피부색이 점점 석탄과 같이 까맣게 변하더니 곧 전신이 칠흑으로 덮였고, 그의 눈이 붉게 번뜩였다. 습격 당한 남자는 기생체 X에 감염된 것이었다. 감염된 남자는 기생체 X와 같이 사람들을 공격했고 집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군중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혼란과 공포로 점철된 사람들의 모습은 그곳에 있던 해외 언론사들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건이 일어나고 1시간도 안되어 언론사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각종 전문가들이 이 사건에 의견을 내놓았다.

 언론을 통해 카이로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태를 접한 사람들은 반신반의 했으나, 영상에 찍힌 감염자들의 극도로 포악한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다. 척 봐도 위험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는 감염자들은 붉은 눈을 빛내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영상이 어쩌면 사람들의 계획된 장난이라 믿었고, 어떤 사람은 종말론적인 생각을 하며 불안해했으며, 어떤 사람은 이 알 수 없는 새로운 현상에 흥미로운 기색을 보였다.

 사건이 일어난 카이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특히나 시기가 안 좋았다. 감염자들의 공격을 시위자들의 폭동으로 오인한 경찰들이 감염자들을 향해 발포한 것이다. 경찰의 공격에 감염자들 중 다수가 사망했다. 또한, 감염자의 공격에 감염된 경찰이 곁에 있던 경찰을 공격 하며 경찰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났고, 경찰의 오발 사격에 같은 경찰들이 죽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사건의 새로운 소식이 전해진 것은 카이로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12시간 후, 다음 날 해가 뜬 아침이었다. 놀랍게도 이성을 잃고 마치 괴물처럼 사람을 공격하던 감염자들이 해가 뜨자 일제히 몸을 가누지 못하며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쓰러진 그들의 검은 피부는 원래의 피부로 돌아왔으며,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몇 몇 감염자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깨어난 감염자들의 눈의 공막은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붉은 눈을 한 채 깨어난 사람들은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주변의 배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으며, 사람들이 왜 죽어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해가 지고 난 후의 기억이 없었다. 또한, 가장 베일에 싸여 있으며 위험 대상인 기생체 X는 해가 뜨고 나니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심각한 사태에 대해 세계보건기구는 진상 조사에 나섰으며, 세계보건기구는 이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조종하는 기생물로써 분류하여 기생체 X라고 명명하였다.

 전례 없는 집단적인 감염과 공황 사태에 세계는 발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고, 학계에서는 기생체 X에 대한 많은 논의가 벌어졌다. 만약 기생체 X가 카이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심각한 사태는 인류 존속에 큰 위험을 끼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했다. 그들은 부디 그것이 기우이길 빌었지만, 그들의 염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기생체 X는 또 다시 그 존재를 드러냈다. 카이로에서 처음 기생체 X가 출현한 이후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태양의 빛이 사라지는 땅마다, 지구의 자전 속도에 맞춰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나라마다 기생체 X가 나타났다. 그것은 어떤 징조도 없이, 마치 원래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 모습을 들어냈고, 한국 또한 예외 없이 그들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기생체 X가 출현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습격 받고 있을 때, 나는 집안에 있었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나는 아버지와 함께 TV 속 출연자들이 기생체 X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기생체X가 출현한 것을 알게 된 것은 보고 있던 토론회가 중지되고 화면이 바뀌어 긴급 속보를 알리는 뉴스가 방송되었을 때였다. 아나운서는 짐짓 침착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심란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잠시 편성되었던 방송을 중지한 것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드리며 긴급 속보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XX시 XX동에서, 일주일전 카이로에서 일어난 괴현상과 마찬 가지로 기생체 X라 명명된 괴생명체가 나타났습니다. 기생체 X는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으며, 습격당한 시민들은 카이로 사태와 마찬가지로 기생체 X에게 감염되어 다른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기생체 X와 감염자에 대비하여 급히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주변에서 기생체 X와 감염자를 목격할 경우 접촉을 피하시고 경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긴장과 불안 속에서 뉴스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해가 뜰 때 까지, 우리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2.


 나와 아버지는 초췌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이번 계엄령은 일시적인 조치이며, 사태가 파악되기 전까지 전염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므로 도시에 있는 시민 여러분들은 도시에서 벗어나지 마시고 상주하고 있는 군의 명령에 따라……."
 TV에 나오고 있는 아나운서는 지난 밤 동안 계속 들어 왔던 계엄령에 관한 정부의 전문을 그대로 읊고 있었다.
 "우리 이제 갇힌 거죠?"
 함께 소파에 앉아 밤새도록 뉴스를 보고 내린 결론을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정부는 기생체 X가 출연한 도시를 폐쇄했다.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모든 도로와 길목에 초소를 설치하고 접근하는 차량과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아버지는 확신하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린 감염자도 아니고……. 정부가 이 사태를 파악하고 나면 우린 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아버지는 내 걱정을 덜어 주려는 듯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아버지의 그 말에 묘한 기대감을 갖고 그렇겠죠 라고 말하며 한 시름 덜어 놓은 것처럼 한 숨을 내뱉었다.
 "밖으로 한번 나가서 어떤지 살펴봐야겠다. 식량도 사러 나갈 겸 말이야."
 피로한 몸을 기지개 키며 아버지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우리들은 외출을 하기 위해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나선 거리는 기묘하게도 고요했다. 아침이면 출근하기 위해 많은 차들이 오갔을 거리였지만, 지금은 텅텅 비어 있었다. 가끔가다 마주치는 군의 트럭에는 민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짐칸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감염자로, 정부는 그들을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저들은 지금 격리 시설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감염자들인가 봐요."
 아버지도 지나가는 군의 트럭을 보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학교로 가는 거겠죠?"
 "방송에서는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렇겠지. 이곳에는 마땅한 수용 시설이 없으니까."

 대형 마트에 가는 길로 접어들자 저 멀리 까마득히 보이는 앞까지 많은 차량들이 줄줄이 모여 있었다. 러시아워를 방불케 하는 차량의 수였고, 이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사거리 마다 경찰들이 수신호를 보내며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도시에 갇힌 사람들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언제 해제될지 모를 계엄령에 대비해 비상식량을 마련하고자 대형마트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되겠다."
 아버지는 차를 돌려 우회전 했다.
 "어디로 가게요?"
 "동네 마트를 돌면서 식량을 모으는 게 빠르겠어."
 도로를 달리면서 마트가 보이면 그곳에서 식량을 구입했다. 이미 건질 수 있는 물건이 없어 뒤돌아 설 수밖에 없던 곳도 있었으며, 셔터를 내린 가게 안에서 아무것도 안 판다고 소리 지르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오후 3시가 될 때 까지 갈 수 있는 곳은 다 돌아다니며 식량을 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트렁크와 뒷좌석에는 식량이 가득 실려있었다. 나는 그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모순적이게도, 이 계엄령이 얼마 안 가 해제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세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식량에 안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파트에 도착한 우리들은 사온 식량을 두 손 가득 들고 집에 들어갔다. 바깥에서는 오후 5시 이후로 통행을 금한다는 군의 방송이 들려오고 있었다. 식량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는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소파에 털썩 앉았다.
 "TV좀 틀어 볼래?"
 아버지는 봉투에 들은 식량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리모컨으로 TV를 틀자 검은색 양복에 금배지를 달고 있는 정치인이 무언가 열심히 토로하고 있었다.
 "물론, 의원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 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입니다. 그 누구도 앞을 예상 할 수 가 없는 상황이죠. 그런 상황에서 도시에 갇혀 있는 비감염자들의 인권을 억압한다는 이유로 이 계엄령을 해제해야 한다는 말씀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감염자도, 감염자도 저 도시에 있는 이상 그 누구도 도시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됩니다. 학계에서조차 아직 기생체 X와 감염자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조사 중인 상황에서 단순히 눈이 붉지 않다는 것 만 믿고 그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우리가 모르고 있던 기생체 X의 보균자라면 사태는 겉 잡을 수 없이 커져갈 겁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저 도시를 폐쇄하고 조사 상황에 따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그것 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계엄령을 해제해야 한다는 것은 남아 있는 80% 면적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행동과 같습니다."
 엄숙하게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힌 의원에게 상대편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비감염자 또한 우리 국민이며 정부는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원님은 그들을 국민이라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상대의 도발적인 언행에 기분이 상해 화를 낼 법도 했지만, 의원은 점잖으면서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눈빛을 보내며 천천히 입을 땠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이죠. 국민이기 때문에 잘 알 것입니다.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어쩌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인류의 탄생 이래 겪게 되는 최대의 위기일지도 모를 상황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앞으로 이 전례에 없던 혼란의 사태를 파악하고, 감염자들을 치료할 치료제가 개발 될 때까지 만 버티면 됩니다. 그 때 까지 정부와 군은 최선을 다해 계엄령이 선포된 도시 안의 국민들을 보호할 것이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도시 안의 국민 여러분들의 희생 없이 대한민국의 안전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가슴에 못이 박히는 심정이지만 이러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눈으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결정 사항밖에 내리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여서 죄송합니다. 도시 안의 국민 여러분. 부디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두 의원의 말의 요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정치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 치 앞도 예상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조심하는 수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는 그의 주장에 조금은 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단조로우며 뚜렷한 말투에 억울하고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렸다. 모든 채널에서 한국에 출연한 기생체 X와 계엄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정리를 마치고 소파에 앉은 아버지가 말했다.
 "방송국들이 이번 일로 떠들썩하구나. 하지만 괜찮을 거다. 태풍처럼 금방 지나갈 거야."
 아버지는 겉으로는 차분한 척하며 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희망적인 말을 하지만, 이 계엄령이, 기생체 X가 아버지의 말대로 지나가는 태풍처럼 금세 잠잠해 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저 먼저 방에 들어가서 쉴게요."
 나는 TV를 보면 볼수록 사람들의 혼란에 동요 될 것 같아 방으로 피했다.
 방에 들어선 나는 그래선 안되었지만, 인터넷에서의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또, 뉴스에서는 나오지 않은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브라우저를 실행한 나는 잠깐 동안 사고를 멈추게 되었다. 평소와 달리 페이지에 접속 할 수 없다는 글귀와 하얀색 창이 나타난 것이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의 메신저를 실행했으나 네트워크에 접속 할 수 없다는 알람과 함께 어플이 종료되었다.
 나는 굳어버린 표정으로 방에서 나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몇 차례 조작하시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의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통제하려는 모양이다. 인터넷에 이곳의 상황이 그대로 노출 되면 정부도 대응하기 벅차겠지. 너무 걱정 말아라. 전화와 문자는 외부와 연결 되는 것 같으니. 아마도 전 국민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겠지."
 정말 그런 의도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설득력 있는 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 연락은 했니? 다들 괜찮을지 걱정되는 구나."
 나는 내 자신이 그동안 친구의 무사를 확인할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눈앞에 다가온 이 참담한 광경에 친구의 안위에 대해서는 눈이 멀고 나만을 생각한 것이다. 분명 갑작스레 덮쳐온 불안과 걱정에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게 된 결과일 것이다.
 나는 방에 들어가 친구인 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발신음이 울리고 전화가 연결 되었다.
 
 "어, 민수구나."
 정훈의 목소리를 듣자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무사한가 보구나, 아버지 어머니는 무사하시니?"
 "어, 우리 가족들은 그 때 집안에 있었거든. 너희 아버지는 무사하시고?"
 "우리도 집안에 있었어."
 "인도어파여서 다행이네."
 친구의 실없는 농담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러게 말이야 라고 말했다. 정훈은 이번 사태가 세계 대전 보다도 더 큰 인류의 위험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너무 심각한 얘기라고 생각했는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정훈은 태연자약하게도, 그래도 우리들은 아무 탈 없을 거라고 말했다. 어떤 근거냐고 물으니 자신의 감이라고 말했다.
 "내 감은 불행할 때 잘 맞거든."
 정훈의 우스갯소리에 정말 우스울지 모르지만 나는 안도하게 되었다. 나에게 그의 농담은, 갑작스레 다가온 태풍과도 같은 이 재앙이 아무 탈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나는 정훈에게 그럼 이번엔 절대 빗나가지 않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5시가 되자 창 밖에서 또 다시 군의 방송이 들려왔다.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집 밖으로 나오지 마시고, 철저히 문단속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일부터 발견 되지 않은 감염자를 격리하기 위해 가택 조사가 시행될 예정이므로 시민 여러분들은 조사에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군은 시민의 안전과 기생체 X의 전염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며 시민 여러분께서는 군의 방침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은 10분 간 계속되었고, 시끄러운 방송 소리가 멈추자 거리에는 정적이 흘렀다.
 "가택 조사라면 집을 조사한다는 거죠?"
 "그래, 혹시라도 가족들이 감염자들을 숨길까 봐 그러는 것 같다."
 군의 방침은 철저했고, 전염을 막기 위한 최선의 조치였다. 따라서 그것을 따르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 한 구석에서 떠오르고 있는 한 가지의 의구심을 나는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아버지가 감염된다면……. 나는 순순히 군의 가택조사에 응할까?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아버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숨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군의 방송에 위축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피곤해서 일지도 모른다. 어제 밤을 새고 지금까지 수면을 취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나와 아버지는 일찍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저녁 6시, 아직은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있을 시간. 침대에 누워 있으니 노곤함이 밀려 왔다. 나는 눈을 감으면서 태연하게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사태가 태풍처럼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경험하는 자연 재해처럼, 곧 지나갈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망하면 이 모든 것이 곧 잠잠해 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그런 소망도 전 인류를 휩쓰는 거대한 태풍 앞에서는 다 자라지 못한 어린 나무와 같았다. 나의 작은 소망은 뿌리 채 뽑혀 나갔고, 인류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킬 태풍에 갇히게 된다.


3.

 
 도시에 계엄령이 내려진 후, 군의 통제 아래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군은 기생체 X에 대항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고, 군의 노력에 기생체 X에 감염되는 사람들 또한 확고하게 줄어들었다. 때때로 군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밤의 거리를 거닐다 기생체 X의 먹잇감이 된 사람들을 제외 하면, 감염자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학교에 격리된 감염자의 처우 또한 건실했으며, 낮 시간이라면 면회 또한 가능하여 격리된 감염자와 떨어진 가족들을 배려하였다. 이러한 군의 회유책 덕분에 도시 내 시민들의 군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군의 처세가 좋더라도 계엄령이 선포되고 도시에 갇힌 사람들은 하루 빨리 계엄령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했다. 특히, 도시에 거주하지 않으나 우연치 않게 도시에 갇히게 된 사람들이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른 도시에 있는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었고, 더군다나 편안히 몸을 둘 거처도 없었다. 그들에게 이 재앙은 뼈저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비감염자에 한 해서 도시를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곳에 거주하는 시민이며,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이유는 특별한 사유가 되지 못 했다. 그 누구도 이 도시에 있는 사람이라면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 군의 방침이었고, 정부의 결정이었다. 그들의 처지는 안타깝지만 이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부는 거처가 없는 자들을 위험천만한 거리로 내몰 수 없었기에 그들을 위해 거처를 마련해 주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비어 있는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등을 수배하여 그들의 거처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군과 정부는 그들의 역할, 시민을 지키고 기생체 X가 퍼지지 않게 억제하는 임무를 충실히 시행해 나갔다. 그러나 인류에 발발한 최악의 재앙은 이러한 노력 만으로는 해결하기 역부족이었다. 지금까지 군과 정부가 해결한 문제는 단지 전염이 퍼지지 않도록 차단한 일에 불과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감염된 사람들을 구원할 치료법이 개발되어야만 모든 도시의 계엄령이 해제되고 시민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으며 인류는 이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세계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인류 공통의 적이 나타난 지금, 세계는 하나가 되어 기생체 X의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세계보건기구를 필두로 세계 각국은 치료법 개발에 나섰다. 그들은 단 하나의 숭고한 목적인 인류의 고통을 치료할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자신들이 발견한 사실과 치료법 개발에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협력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언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 사실들은 도시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지금 당장은 갑작스레 닥쳐온 불행에 참고 견뎌야 하는 것도 많지만, 사람들은 기생체 X는 극복 가능하며, 치료 가능한 하나의 질병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계가 하나 되어 우리들을 구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인류는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고, 이제 얼마 안가 계엄령은 해제되고 기생체 X의 위험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종막을 앞두었다고 생각한 이 비극은 서막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들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 고요함과 평온함은 태풍이 불기 전 느끼게 되는 잠깐 동안의 적막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참담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계엄령이 선포되고 5개월이 지난 후였다. 

 한파가 몰아치던 겨울의 깊은 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내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한번 잠에 들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나는 귀에 들려온 낯선 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몰랐으나,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창밖을 보니 나와 같이 소리를 듣고 깨어난 사람들이 방의 불을 키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밤하늘을 날카롭게 가르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깨닫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총성이었다. 깊은 밤하늘은 총성으로 가득했다. 총성이 들려오는 곳은 분명 학교였다.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점점 더 불안해 지기만 했다. 거실로 나와 보니 아버지도 총성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셨는지,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무슨 일일까요."
 불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나는 물었다.
 "알 수가 없구나……. 좋지 않은 일은 확실하다. 총소리가 들려올 때는 대게 그러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긴장된 모습이 엿보였다.
 총성은 곧 멈췄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의 굉음이 들려왔다. 나와 아버지는 잠에 들 수 없어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불안함을 잊기 위해 TV를 보면서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웃음소리들과 말소리가 들려왔다.
 TV에서 나온 웃음소리는 아니었다. 소리가 들려 온 곳은 밖이었다. 찢어 질듯 한 광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급히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거리에는 감염자들이 있었다. 어두운 밤 아래, 칠흑 같은 얼굴을 한 채 그들은 붉은 눈을 붉히고 가방, 스노보드, 활 따위와 같이 의미도 연관성도 없는 단어들을 띄엄띄엄 지껄이고 있었다. 감염자들은 때때로 찢어질 듯 한 웃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서글프게 울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어떤 이유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행동들뿐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 자리에서 얼굴이 굳어졌을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학교에서 빠져나와 거리에 나타난 것일까. 나는 짙은 두려움을 느끼며 쉴세 없이 웃고, 울고, 무의미한 단어들을 내뱉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일련의 현상에 대해 직감적으로 기생체 X를 떠올렸다. 감염자들이 학교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올 수 있던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었다.
 기생체 X가 학교를 습격한 것이다.
 학교에 총성이 울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기생체 X의 출현에 군인들은 대응 사격을 했고, 기생체 X를 막지 못한 군인들은 학교를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기생체 X에 의해 학교에 갇혀 있을 감염자들은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왜 기생체 X가 학교를 공격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감염된 감염자들이 수용된 곳을 공격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생체 X의 공격으로 거리에 쏟아져 나온 감염자들의 실성한 듯한 웃음에, 소름 끼치는 울음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에, 우리들은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이다.
 그날 밤, 공포가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로 돌아가 알 수 없는 말들과 웃음소리를 못들은 척 하고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때때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나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우리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절망과 공포를 맛보아야만 하는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 빨리 이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아침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그날만큼 기뻤던 적은 없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거리에 있는 감염자들은 침묵하며 하나 둘 쓰러져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는 밤을 새운 것인지, 음영이 짙은 얼굴로 베란다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아침을 알리는 군의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많은 수의 군인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감염자들을 트럭에 태워 이동하고 있었다. 쓰러져 있는 감염자들이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거리에서 모습을 감춘 뒤, 가택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 어떤 안내 방송도 없이 갑작스레 이루어진 가택조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군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그만큼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당분간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집안에 박혀 TV를 보고 있었다. TV를 보다 보니 자연스레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기생체 X와 관련된 소식들을 듣게 되었다.
 여러 소식들 중에서도 치료법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세계보건기구의 발표가 가장 큰 논점이었다. 세계보건기구는 비록 치료법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아직 희망은 있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며 부디 그들의 치료법 개발이 하루 빨리 진척되길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들을 위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동사무소 주민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어제 밤 일어난 사건에 대해 들려주셨다. 어제 밤 감염자가 격리되었던 학교를 기생체 X가 습격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군은 즉각적으로 기생체 X에게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으나 기생체 X는 조금의 타격도 없었다고 했다. 기생체 X에게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 주변에 그런 일이 벌어지니 더욱더 기생체 X에 대한 두려움이 짙어가는 것 같았다.
 "그곳에 있던 군인도 감염되었다고 하는구나."
 "기생체 X에게요?"
 "그래. 그 군인도 지금은 감염자들과 같이 격리되어있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시고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습격당한 곳은 학교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갑자기 집안에 나타난 기생체 X에게 공격당해 감염되었다는 사람들도 나타났어."
 나에게 지금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없었다. 집안에 있다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집에 있는 것도 안전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아버지도 나도 한동안 침묵하며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대해 잠시나마 이야기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서로 얘기하지 않아도, 우리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기생체 X의 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들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밤, 내가 살고 있는 동에서 벌어졌던 기생체 X의 격리시설 습격 사건을 시작으로, 다른 동에 있는 격리시설과 군 기지에 기생체 X가 차례차례 출몰했다. 기생체 X는 마치 우수한 전략가처럼 이 도시에 상주하고 있는 군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의 밤은 감염자들이 내는 기이한 웃음과 말소리로 뒤덮였다. 시민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극에 달했고, 연이은 기생체 X의 공격에 군은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윽고, 한 달 동안의 기생체 X의 공격에 격리시설과 군 기지를 지키던 천여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감염자가 되었다.
 기생체 X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던 군은 이대로는 감염자만 늘어날 뿐이라고 판단하여 끝끝내 도시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이는 기생체 X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보호해야할 시민들을 남겨 둔 채 퇴각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생체 X에 감염된 군인들을 제외한 모든 군인들이 철수하고 나자, 정부는 도시 내의 치안과 전염 확산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정부는 도시에 자치권을 부여하여 도시 내의 행정이 이루어지도록 하였고, 민방위대와 자원봉사대를 세움으로써 도시 내의 치안 유지와 전염을 막도록 방침을 내렸다.
 시민들은 당연하게도 이러한 정부의 결정에 반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은 누군가 지켜주는 이도 없이, 언제 기생체 X에게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이 도시에 버려진 것이다. 비감염자들은 하나가 되어 철책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단순히 목청만 높이는 시위로 도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몇몇 곳에서는 철책을 부수고 도시에서 탈출 하려는 자들도 있었으나 군에 의해 제압 되었다. 시민들의 이러한 시위와 소동이 벌어질 때 마다 도시를 둘러 싼 철책과 방벽은 더욱더 견고해져 갔다.
 폭풍과도 같은 시위와 소동은 결국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었다. 거세게 일어났던 정부에 대한 반발은 냉엄한 현실 앞에 차갑게 식어갔다.
 결국 우리들은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재앙 속에서 갇히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들의 처지가 마치 희생양처럼 느껴졌다. 성난 야수를 우리에 얌전히 가두기 위해 그곳에 먹잇감을 함께 놔두는 것처럼, 도시 밖의 사람들은 기생체 X를 이 도시에 가두기 위해 우리들을 희생양처럼 내버린 것만 같았다. 이러한 우리들의 처참한 처지와 잔인한 현실이 나를 더욱더 괴롭게 했다.


4.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도시 안에 갇힌 내가 느끼고 있는 솔직한 심정이었다. 계엄령으로 도시가 폐쇄된 지도 1년, 여전히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은 채, 감염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실상에 도시 안의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끝없는 슬픔에 잠겨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도시에 군인들이 떠나고 난 뒤, 나는 줄 곧 집안에서만 생활해왔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밖에 있는 것이라고는 사람들의 비탄과 끝나지 않는 참혹한 현실뿐이다. 군이 떠나고 도시의 치안은 엉망이 되어 보급품을 약탈하는 강도와 약한 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음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비참하게도, 이러한 인간의 악행은 날이 갈수록 점차 늘어가고 있으며, 민방위대와 자원봉사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비열하고 추악한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언제나 아침이 되면 식사를 차리고 난 뒤 민방위대 활동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그럼 아빠는 나갔다 오마."
 아버지는 오늘도 밖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행동을 나는 이해 할 수 없다.
 구호 물품으로 시민들에게 보급된 통조림 음식을 먹으며 아버지의 행동을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행동이, 민방위대원으로 도시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이 세상은 이미 종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추락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버지는 이 나락 속에서 한 줄기의 희망을 본 것처럼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밖으로 나가 구호 활동을 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계신 걸까. 무엇이 그를 이 고난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자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면, 나는 더욱더 좌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난 뒤, 평소처럼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아침 시사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기생체 X가 출연한지도 1년이 경과했습니다. 이 생명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엇이 목적인지는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감염된 감염자들을 치료할 치료법 또한 개발되지 못 한 상황입니다. 다행히도 1년 전 기생체 X가 나타난 지역 외에 다른 곳에서 기생체 X가 목격된 적은 없습니다만, 최근 기생체 X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 세계보건기구로부터 발표되었습니다. 기생체 X에 감염된 감염자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것에 따라, 감염 증상이 발발하고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에는 감염자들의 증상에 변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가 밝힌 바에 따르면, 감염자들의 증상에 영향을 주는 태양에 감염자들이 저항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감염자들이 예전과 다르게 일몰 약 30분 전부터 감염 증상이 나타나고, 일출 약 30분 후 까지 그 증상이 유지되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감염자의 상태가 더욱더 악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화면이 바뀌어 사람들의 인터뷰가 화면에 나왔다. 도시 밖의 사람들이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안 좋은 소식들은 계속 들려오는데 언제쯤 기생체X에 대한 불안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
 "그 소식을 저도 들었는데요, 모두들 불안에 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상황이 악화 되어가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애써 기생체X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해요."
 "도시 안에 갇힌 사람들도 불행한 일이지만, 언제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에 더욱더 불안하죠."
 "어떻게든 빨리 치료법이 개발되길 바랄 뿐입니다."
 도시 밖의 사람들 모두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염려를 표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나는 그들의 인터뷰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저들에게 다가올 절망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도 나와 같이 체념한 채 이 절망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곳에 있는 것이 절망뿐인 것처럼. 저들의 앞에 놓인 것 또한, 절망뿐이다.
 "앞서 인터뷰와 같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처럼 기생체X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저희들 앞에 닥쳐온 이 시련이 끝날 것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들 인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 시련 또한 극복해 낼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방송이 종료 되었다. 나는 그의 말이 가식과 허위로 가득찬, 그저 상투적인 방송용 멘트에 지나지 않게 느껴졌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극복해 낼 것이라는 말이 귓가에 메아리 쳤다. 그것에서 나는 어떤 희망조차 느낄 수 없었다. 분명 그 사회자는 긍정적이고 희망찬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내가 떠올리는 것은 이런 비관적인 생각뿐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염세적으로 변해버렸는지 모르겠다. 아아, 모르겠다. 그저 생각을 멈추고 또 다시 잠에 드는 것 밖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무기력하게 잠에 들고 깨어나고를 반복 한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쳐다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시였다. 누군가의 방문인지 모르나, 최근 모르는 사람에게 무심코 문을 열어 주었다가 강도를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긴장한 채 외시경을 통해 밖을 보니 정훈의 얼굴이 보였다. 렌즈를 통해 보게 된 친구의 얼굴은 실로 오랜만이었으나, 반가움 보다는 피곤함이 몰려왔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문을 열고 친구를 맞이했다. 그는 눈에 띄는 주황 조끼를 입고 있었다. 가슴팍에 붉고 조그만 글씨로 자원봉사대라고 쓰여 있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어?"
 정훈은 미소 지으며 내 안부를 물었다. 그 미소가 내게는 부담스러웠다.
 "그냥 그래,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연락도 안 되고 얼굴도 안보이니 찾아온 거지."
 정훈은 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가 내 걱정을 할 줄은 몰랐다. 아니, 나는 그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다. 나는 왜 정훈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걸까. 모든 것이 엉망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많이 핼쑥해졌다. 밥은 먹었냐?"
 "아니, 식욕이 없어서……."
 "이럴 때 일수록 먹어야 되는 거야. 집에 식량은 남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집에서 그러 하듯 능숙하게 식량을 찾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훈은 스마트폰으로 활기찬 재즈 음악을 키고, 통조림을 열어 프라이팬에 볶았다. 자주 듣는 음악인지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활기차게 요리를 한다.
 소파에 앉아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 생각했다. 똑같은 수렁 속에 있는데도 그는 어째서 저렇게 기운이 넘칠 수 있는 걸까.
 "너희 아버지가 많이 걱정 하시더라."
 그는 콧노래를 멈추고 말했다.
 "요즘 들어 얼굴색이 안 좋고 기운도 없는 것 같다면서 무척 걱정하셨어."
 아버지가 근래에 나를 바라볼 때면 근심이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붙잡을 희망이 보이지 않아, 깊은 수면 아래로 떨어져 버린 내 절망을 감출 수는 없었다.
 정훈은 간단한 볶음밥을 만들어 그릇에 담아 식탁에 차렸다. 통조림 옥수수, 완두콩, 양송이와 햄이 들어간 볶음밥이었다.
 "자, 식기 전에 먹자."
 여전히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의 미소에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그렇게 기운이 넘칠 수 있는 거야?"
 나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나로서는 그의 얼굴이, 행동이 의문 투성이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이 세상에 대한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너의 얼굴이 나는 믿겨지지 않아."
 정훈은 잠시 미소를 거두고 천천히 발을 옮겨 베란다 창가에 멈춰 섰다. 여전히 그가 틀어 놓은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걱정 하나 없어 보일지 몰라도, 엄청나게 많이 걱정하고 있어. 불안하기도 하고. 아마도 내가 이렇게 활발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이 태풍이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고 믿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태풍에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해. 거대한 태풍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낸 것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훈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내 모진 행동이 너무나도 미웠다. 나의 이런 꼴사납고 보기 흉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정훈은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잘 알고 있어. 최근 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기도 해. 분명히 몇몇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태풍이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고 믿어. 그 어떤 재해도 언젠가는 모습을 감추는 것처럼 말이야."
 "어떤 근거도 없이 그런 믿음을 가질 수는 없어. 만약 이 태풍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면 어떡해?"
 그는 잠시 동안 내 물음에 침묵하더니 이윽고 선명한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이 태풍이 머지않아 지나갈 거라고 믿어."
 그의 믿음은 무척이나 올곧고 굳건해 보였다. 그 믿음이, 절망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는 근원인 것일까. 그 어떤 근거도, 바탕도 없는 저 믿음이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일까.
 서먹서먹한 침묵의 시간이 오가고, 정훈이 먼저 입을 열어 밥이 식겠다고 말했다.
 나는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고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식지 않은 볶음밥은 온기를 갖고 있었으며,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따스한 무언가가 내 몸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 같았다.
 

 5.


 가을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부는 아침, 태양이 뜨고 감염자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져 가는 시간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간소하게 아침을 먹고 난 뒤,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옷걸이에 걸린 주황색 자원봉사대 조끼를 입었고, 준비를 마친 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감염자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서서히 정신을 되찾은 감염자들이 깨어나면서 슬픈 흐느낌과 탄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기생체 X의 조종에서 벗어나 의식을 되찾은 사람들의 절규였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의 의지를, 자유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하루가 가고 밤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침이 되어 깨어나며 절망한다.
 그러한 심연과도 같은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와 아버지는 동사무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나와 아버지는 자원봉사대와 민방위대에 속하여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점차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민방위대는 조별로 나뉘어 마을 순찰과 함께 거리에 쓰러진 감염자들을 돕기 위해 떠났다.
 나는 다른 자원봉사대원들과 조가 편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기다리자 정훈이 모습을 보였다.
 "먼저 와있었네."
 "오늘은 웬일로 늦었어?"
 나는 그와 아침 인사를 나누며 오늘도 거리로 나선다. 
 거리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눈을 돌렸었던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거리에는 사람들의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서 오는 두려움 또한 이 거리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이었다. 분명, 이 도시를 덮친 태풍은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며, 여실없이 우리들은 태풍 속에 갇혀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잔혹한 고난 속에서도 나의 마음속은 고요했으며, 용기로 넘쳐났다. 나의 친구가,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행동하며 이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변화 시켰다. 그들과 행동하면서 내 마음 속에 드리웠던 검은 구름은 산산이 흩어졌고, 이 태풍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만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팔과 다리를 움직여 거리를 분주히 오가며 예전의 나와 같이 절망에 빠져 무력하게 주저앉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기 위해 오늘도 나는 거리로 향한다.







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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