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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는 시체를 닦는다

2010.08.11 22:5008.11

  나는 시체를 닦는다. 그게 내 일이다. 물론 좋은 직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으웩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의 첫 반응은
[토할 것 같아]
였으며, 정확히 1분 후에 먹은 걸 시원하게 게워냈다. 그 행동이 이미 3차까지 술을 진탕 마셔서 그런 것인지, 시체를 닦는 내 모습을 상상해서인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소개팅에 나갔을 때 직업에 대한 질문에
[위생 및 청결에 관련된 일을 합니다]
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사실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가? 바닥을 청소할 때 먼지를 빨아들이고 대걸레질을 하듯이 나도 그런다. 그 대상이 바닥 대신 죽은 사람이라는 작은 차이점이 있을 뿐. 일을 한지 거의 1년이 되고 보니 이렇게 세련되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변했고 그게 매우 기쁘다.
[그동안 수고했어. 오늘부터는 정식 직원이야, 축하해]
[아...감사합니다]
[사실..난..뭐랄까...]
  이 곳의 주인인 준기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고르느라 천장을 바라봤다.
[금방 관둘 줄 알았다고요?]
[어? 그래, 맞아. 그런데..1년 동안 성실히..매우 열심히 일 해줘서 믿을 수가 있게 됐어]
[이 일에 믿음이 필요했던가요?]
  빈정거리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슬쩍 미안한 기분이 들어 그를 견눈질했다. 웬일인지 그는 살짝 웃는다.
[믿음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오는 놈들이 모두 1주일 안에 가버리는데 뭘 바랄 수 있겠어?]
[그럼 절 보셨을 때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2-3일 정도 있을까? 잘하면..1주일?]
[혹시 내기 했나요?]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당황하면 나오는 행동. 역시 내기를 걸었다.
[약간, 조금]
  내가 팔짱을 끼고 말없이 고개를 까딱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음 말을 이었다.
[최씨하고만]
여기서 최씨는 시체를 옮겨오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오호...그 믿음 잘 기억해두세요]
  나는 그를 향해 썩은 미소를 지어보인 후 준비실로 들어갔다. 내가 일하는 곳은 지하에 있고 꽤 넓다. 80평? 아니 100평정도? 대략 그렇다. 1층에서 32개의 계단을 밟고 내려오면 뿌연 유리문이 있고, 오래되어 크르르르 거리는 혐오스러운 소리를 참고 문을 밀어 열면 일본 가정집 스타일의 복도가 보인다. 한국에서 일본식이라고 하면 좀 웃기지만, 시체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아 글자 하나하나와 사진 전부를 놓치지 않고 보았던 인테리어 잡지에 실린 일본 주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복도가 길고 폭이 좁으며 양 쪽으로 방문과 벽이 존재하는 그런 곳. 그 문을 열면 침실이 나오기도 하고, 화장실이 보이기도 하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문들을 열어보았을 때, 어떤 곳은 간이침대가 놓여있고, 또 중간쯤에서 비좁은 화장실을 확인했으니 이런 구조로 지은게 일본인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내가 만든 거야]
  준기씨의 대답.
[왜 이렇게 답답하게 한거에요? 복도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도 힘들잖아요]
[시체만 잘 들어오면 된 거지, 살아있는 사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시체를 실은 웨건이 이런 복도를 어떻게 들어와요?]
  우리는 손에 노란색 외과 수술용 장갑을 끼우며 대화를 시작했지만, 웃는 얼굴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말하질 못한다.
[시체는 뒷문으로, 사람은 앞문으로]
[좋아요. 그렇다 치고, 방은 또 왜이리 많죠? 안치실이 많다면 이해되지만, 빈방만 가득한 건 뭐라고 설명할건데요?]
[전쟁을 대비해서야]
[전쟁?]
  장갑이 잘 끼워졌는지 양 손을 탁탁 부딪치며 확인을 하는 그의 옆에서 헝겊과 몇 가지의 약품이 든 바구니를 챙기다가 전쟁이라는 뜬금없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졌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 곳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들어오겠어? 또 시체가 될 사람들도..미리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꼴깍 숨넘어가는 사람들을 길바닥에 방치해야해. 사는 게 팍팍했던 사람들을 가는 길마저 남의 발에 체이게 만드는 건 야비한 짓이라고. 네가 벌레들이나 느낄 정도의 숨을 쉬고 있고, 죽음이 확실히 보여서 이리로 보내졌는데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눈물 안 나겠어? 말 못하는 짐승도 밥 먹을 때는 안 건드리는 게 예의잖아, 그것과 같은 맥락이야]
  시작과 끝맺음이 뭔가 안 맞는 듯하지만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한꺼번에 세 구의 시체가 들어와 노닥노닥하다가는 제시간에 퇴근을 못한다. 바닥에 토했던 친구와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제시간에 가야한다.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1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 때문에 이렇게 지었다는 건 비효율적이에요]
[그럼 대형사고라고 해두지]
[삼풍백화점 같은..그런 일말이죠?]
[응. 대구 지하철 사고도 있었지]
[그 때도 이리로 보내졌어요? 꽤 멀잔아요?]
[시체가 너무 많으니까 근처의 업자들은 포화상태라고 거부했거든. 게다가 사후경직이 시작된 후라 허겁지겁 왔더라고. 얼마나 많던지..저 방들이 꽤 유용했어]
[저기서도 썩기는 마찮가지일텐데요]
[얼어버려]
[네?]
[티비에서 참치 창고 본적 있어? 영하 60도인 창고 말이야. 거기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틀에 참치들이 들어 있잖아. 어찌나 꽝꽝 얼었는지 들어올려서 사람 뒤통수를 치면 그대로 살인이 될 거야]
[그럼 저 방들이 영하 60도 쯤 내려가서 시체를 꽁꽁 얼려버린다는 뜻인가요?]
[글쎄..궁금하면 한 번 들어가 봐. 자네가 얼면 영하 60도라는 뜻이겠지]
[좀 진지하게 말할 수 없나요? 이러면 대화가 안 되잖아요]
  그의 느물거리는 말투에 짜증 섞인 목소리가 울컥 나왔다. 차라리 시체들과 대화를 하고 말지..라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이봐, 그렇게 매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면 이런 일 못해. 우린 하루 종일 시체와  씨름하고 시체 옆에서 밥 먹고, 용변을 본다고. 봐, 지금도 그렇잖아? 유~머가 없으면 너무 삭막해서 너도 곧 시체처럼 돼 버리고 말 꺼야]
[그래도 나이에 걸 맞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게 필요해요. 그런 식이니까 사람들이 금방 나가죠]
  그는 피식 웃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작업실 문을 넘어섰다. 황량한 작업실의 한 중간에 놓여있는 스테인리스 책상 위에는 40대 가량의 남자가 태고적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운반해온 사람이 최씨나 김씨라면 얇은 천이라도 덮어주고 가는 센스를 발휘했겠지만, 저렇게 방치한 걸 보니 허겁지겁 가버린 게 틀림없다. 문득 직업의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이젠 이곳 사람이 다 된 거 같아요]
[어떤 면에서?]
[이 사람..보자마자 어떻게 죽었나부터 살피잖아요]
[사실 민망한 모습이지, 너에겐?]
[뭐..그렇죠]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인정했다.
[지금이라도 관두고 좀 더 아리따운 일을 하지 그래?]
[아리따운? 그런 일도 있나요?]
[암, 있지. 많아. 도처에 널렸어]
[제가 찾을 때는 그런 아리따운 일이 안 보이던데요]
  우리는 그 남자의 몸을 손으로 꼼꼼히 훑어 내렸다. 외과용 장갑은 손에 딱 밀착이 되는데다가 얇고 탄력도 좋아 시체의 피부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그가 다리부터 만져 올라오면, 나는 머리카락 속을 뒤진다. 혹시라도 피부에 이물질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유리조각, 흙, 자갈 정도는 양반이고 때로는 누구가의 이빨도 발견한다. 나는 그걸 몰래 간직하고 있다. 왜? 그냥 전리품 같은 것이다.
[당장 이 곳을 나가서 왼쪽으로 300미터만 가도 있어]
  머리 속으로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아바타는 작업실을 나와 좁은 복도를 지났고, 현관문을 유령처럼 통과했다. 그리고 계단. 32개의 계단을 지나 왼쪽으로 직진. 또 직진. 300미터쯤 갔다. 고개를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 간판의 맛데리아.
[햄버거 파는 그..맛데리아를 말하는 건가요?]
[응]
[그런 일은 아리땁다고 할 수 없어요. 착취라고 부르는 거에요. 제가 해본 중에 제일 돈은 적게 주면서 일은 우라지게 많죠. 아리따운 일? 흥. 제가 오늘 그 아리따운 일을 하러 가버리면 남은 2 구는 혼자 하셔야 하니 괴로울 텐데요]
[아니, 그 정도는 할 만해. 제일 시체가 많이 들어왔던 날엔 이 작업실 바닥까지 쫙 깔렸었다고. 시체홍수였지, 아니 헤일이야]
[그땐 누가 도와줬나요?]
[혼자 했어]
  머리카락 속은 아주 깨끗했다. 이어서 시체의 귀 속에 내시경 카메라를 넣었다. 역시 이상한 건 없다. 시체의 코와 입 안을 살피면서 준기씨를 보니 어느새 엉덩이와 항문을 더듬는 중이다. 보통 그런 곳에는 큰 문제가 없는 편인데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확인한다. 지난번인가, 항문 쪽이 확인하기 어렵다며 뒤집어엎은 후 목욕탕 의자 위에 얹어 엉덩이를 들게 하고 봤지, 아마?
[그 많은걸요? 꼴딱 세셨겠네요]
[뭐..11시간 정도 걸렸어]
[아주 많았다면서, 어떻게 그 정도로 끝나요? 우린 보통 한 구에 최소 1시간 반은 잡잖아요]
[요령이지. 이런 소규모와 시체의 홍수를 같은 방식으로 하다가는 미쳐. 대규모는 죽은 원인이 확실한 경우가 태만이니까 요청하지 않으면 굳이 내가 밝힐 필요는 없어. 그럼 국립과학연구소가 할 일이 없잖아]
[좋아요. 그럼 어떻게 재빨리 처리하죠?]
  그가 하반신 점검을 끝내고 얼굴 근처까지 올라왔다. 그 사이에 나는 펜치를 가져와 금니를 잡아 뽑느라 끙끙거리는 중이다.
[이리줘봐]
  나는 두 말 없이 도구를 주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신속 정확한 행동의 조건은 반경 1미터 안에 거치적거리는 게 없어야하기 때문에. 사후경직이 일어나면 금니를 뽑는다는 게 천하장사의 허리띠를 뺏는 것보다도 어렵다. 간신히 입을 벌리게 해도 혀가 목 쪽으로 꼬깃꼬깃 말려들어가 이빨을 덮고 있고, 그 걸 해쳐내도 금니가 잇몸의 바다에 풍덩 잠수를 해 펜치를 고정하기가 엿 같다. 게다가 나는 손의 힘이 약하다. 악력을 키우려고 운동을 하기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게 아니다보니 힘들다. 지금도 내 손은 시뻘게져서 부들부들 거린다. 반면 그는 잠시 안을 들여다보고는 펜치의 각도를 잡는가 싶더니 1분 쯤 후에 금니 2개를 스테인리스 책상 위에 떨어뜨렸다.
[시체의 홍수를 11시간 만에 해결한 비법은요?]
[일단 일렬로 눕혀.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리듬을 타면서 가는 거야. 오른쪽 첫 번째    시체의 머리를 만지고 한걸음 옮겨서 다음을 더듬지. 여기서 중요한건 머리에서 머리로 손을 옮길 때 오른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거야]
[도둑질해요? 손이 따로 놀게]
[음..그것과 비슷해. 일타이피지, 하하하. 그렇게 머리를 끝내면 시체의 몸통 위에 특수 제작한 받침을 두고 엎드려서 후다다다다 가슴부터 다리까지 더듬어. 목욕탕에서 때 밀듯이 둥글게 둥글게 손을 짝펴서. 가슴의 중간에 선이 있다고 가정하고 양쪽을 쫙쫙]
  그는 저울에 금니를 올려 무게를 재고 서류에 기록하였다. 그 사이에 나는 헝겊에 알코올을 잔뜩 뿌려 축축해진 상태를 확인한 후, 시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일종의 세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귀 뒤는 좀 더 세심하게 닦아주고 애프터서비스라는 말을 붙여둔 코 속 청소도 함께 해준다. 웬만한 성인이라면 새끼손가락에 헝겊을 감아 넣어 회오리처럼 손을 돌리면 말끔해진다. 이것도 1년 동안 배운 스킬이라고 할까. 가끔 집에서도 해본다, 거울을 보면서.
[특수 제작한 받침? 그런 거 한 번도 못 봤는데요?]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기억을 뒤집어봐도 그런 받침을 본 적이 없다.
[뒷문 쪽에 있어. 나중에 한 번 가서 봐봐. 바퀴가 달려서 엎드려 일하기가 참 좋아]
[아....길거리에 보면 하반신에 고무 옷을 입으신 분들이 밀고 가는 그런 거?]
[그래, 그거야.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보고는 따라 만든 거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아바타가 그것을 타고 시체의 홍수 속을 서핑 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작업실을 지나 비좁은 복도까지 줄줄이 늘어져있는 시체들. 그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드의 균형을 유지하며 아슬아슬하게 타는 맛이 서핑의 묘미다. 그걸 할 수 있다면 11시간도 가능하지 않을까.
[뒤집자]
  그의 요청에 나는 어깻죽지 밑으로 손을 넣어 단단히 잡았다. 하나, 둘, 셋의 구령에 맞추어 그와 동시에 팬케이크를 뒤집듯이 해치웠다. 왜 시체들은 하나같이 무거운지 구슬땀이 어깨에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장갑을 벗기 싫어 머리를 어깨 쪽으로 숙여 나머지 땀을 옷에 닦아버렸다.
[그러니까 니 옷에서 땀 냄새가 나는 거야. 애인이 좋아하겠어? 신경 좀 써라]
[이젠 상관없어요. 다 끝났으니까]
[그래?]
  그는 아주 잠깐 멈칫하는 듯 했지만 마사지사가 야릇하게 만지듯이 시체의 다리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그가 왜 헤어졌냐고 물어볼까봐 내심 단단히 준비했는데 아무 말이 없으니 맥이 탁 풀리는 느낌.
[내가 가족으로 느껴진데요]
  가족. 그래서 키스도 할 수 없고, 그 이상은 내키지 않는단다. 나는 잠시 헤어질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기 말만 하고 일어서던 그 사람. 나는 커피가 다 식어 날파리가 빠진 것도 모를 만큼 혼자 그 자리를 지켰다. 제길, 확 뒈져라.
[저주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너무 그러지 마라. 인생이란게 다 공수래공수건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나보다. 이곳은 사실 너무도 조용하여 과장을 조금 보태면 서로의 숨결까지 느낄만하니 귀가 막히지 않은 이상엔 다 들린다.
[연애 해보셨어요?]
  고개를 불쑥 들어 나를 보는 그.
[넌 날 수도승으로 보는 모양인데..]
[여기서 벗어나는 일이 없으니까요]
[있지, 물론. 세기의 로맨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도 너처럼 연애해봤어]
  그는 얼굴에 감정을 잘 보이지 않는 편이라 그 말에 담긴 뉘앙스로만 판단해야한다.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채인 건지, 찬 건지.
[중요한건 아름답게 헤어지는 거야]
[어이구, 무슨 드라마 찍어요, 아름답게 헤어지게. 전 아직도 씁쓸하다고요]
[사람일은 모르는 거잖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인사를 나눠야할지도 몰라. 또 이곳에 들어온다면..]
  그의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에 뻥 웃음이 터졌다.
[하여간 중요한건 잘 되길 빌어주라고. 가수 인순이가 그룹은 깨지기 위해 있는 거라고 했잖아, 연애도 그런 거야]
  그가 또 시작과 끝맺음을 이상하게 했다. 나는 더 이상 내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이렇게 발가벗은데다가 금니까지 빼고 항문 속도 검사하니 사후 세계에 뭘 가져가지는 못하겠네요. 나중에 내가 죽었을 때도 누가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비명횡사만 안하면 돼. 일반 업자들이야 이정도로 하겠니?]
  우린 교통사고, 살인 같은 비참하게 죽은 시체들을 주로 뒷정리한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국립과학연구소인가 하는데서 받는 일종의 하청. 그들은 과히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기 때문에 그 모습대로 가족들에게 보여주기가 참 그렇다. 어제 들어온 여자의 경우는 몸통에서 다리가 달랑달랑 거려 붙여주느라 애먹었다. 신발에 깔창 깔듯이 간단한 게 아니니까 손힘이 없는 나로서는 가장 기피하고 싶은 작업이다. 그 때 일마치고 먹었던 농심 너구리가 어찌나 달콤하던지..지금도 입 안에 짭조름한 국물 맛이 돌아다닌다.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깔끔해요?]
  앞, 뒤를 모두 검사하고 알코올로 잘 닦았으나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머리 뒤편에 상처와 팔에 길게 데인 듯한 자국 정도? 그와 함께 다시 앞쪽을 보도록 돌려놓고는 비어있는 시체 칸을 찾느라 벽 쪽으로 다가갔다. 왼쪽 세 번째 줄의 스테인리스 문을 열어보니 귀여운 꼬마 시체가 보여 도로 닫아주었다. 그 밑에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비어있다.
[오늘 들어온 시체들이 모두 한꺼번에 같은 곳에서 죽은 사람들이야. 둘은 연인, 이 남자는 뭔지 모르겠는데 근처에 쓰러져있었데]
[오호...저런..집에서 발견했나요?]
[길거리 가로등 밑. 아침에 운동 나온 행인이 신고했어]
  나는 빈 칸에 머리를 집어넣어 다시 한번 문제가 없는지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다가가 서류를 받아들고 남자의 이름을 기입한 부분을 찢어 문에 붙였다. 누군가가 그를 찾을 때 바로 보여주기 위해.
[뒤에 들어올 두 구는 부둥켜안고 있던 상태라 떼어낼 때 고생했어]
[껴안은 채로..거참..]
[가로등 밑에서 열렬한 연애 중이었나보지,뭐. 아리따운 별빛과 은근한 가로등이라니..상당히 로맨틱하잖아]
[어제..비 왔던 거 같은데..나 같음 젓을까봐 실내로 들어가서 하겠다]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고. 하여간 저주 같은 거 하지마. 이미 지나간 사람, 좋은 말이나 해줘. 잘 먹고 잘 살아라..얼마나 좋아?]
  나는 좋은 말 해줄 생각이 들지 않아 못 들은 척 하며 완료된 시체를 실은 책상을 밀었다. 바퀴가 스르르 움직이며 빈 칸 쪽으로 굴러간다. 쭈그리고 앉아 바퀴 옆에 달린 긴 막대를 위 아래로 눌렀다, 들었다를 반복하며 빈 칸과 시체 사이의 높이를 확인했다. 칸의 입구에 책상의 높이가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시체의 어깨를 힘껏 밀었다. 원반던지기를 할 때처럼 숨을 들이쉬고 목표지점을 향해 던지듯이 쏘면 정확하게 칸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휴...안도의 숨을 내쉰 후, 문을 닫고 책상을 다시 중앙으로 옮겼다. 이제 연인이라고 했던 시체들만 처리하면 나갈 수 있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친구에게 연인들에 대해 이야기 해줘야지, 매우 놀라며 재미있어 할 것이다.  
[자, 옮기자]
  작업실을 나갔던 그가 임시 책상에 두 구를 한꺼번에 실어와 작업 책상 옆에 맞붙였다. 어떻게 생선을 포개듯이 시체를 위아래로 올려 가져올 생각을 할까. 그의 머리 속이 궁금하다. 위에 있는 여자의 긴 머리가 남자의 얼굴과 목, 어깨를 다 가릴 정도로 흐트러져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어떤 남자일까? 준기씨와 함께 여자를 옆 탁자에 내렸다. 그리고 그 반듯하게 누워있는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윽.....순간 숨이 턱 막혔다.
[왜?]
[속이 좀 안 좋아서..화장실 갔다 올게요]
  입을 틀어막고 뛰어나갔다. 몇 개의 문을 지나 화장실에 당도해 변기에 머리를 박고 아침에 먹은 음식을 몽땅 게워냈다. 붉은 색의 게맛살과 푸른 오이들이 아직도 구분이 될 정도로 소화가 안 되어있어, 변기 속을 떠다니는 그것들로 인해 또 한번 토했다. 눈물이 어릴 만큼 지겹게 비운 후에야 입을 행구고 문에 기대어 섰다. 나를 토하게 만들어버린 그 시체는 얼마 전까지 내 연인이었던 남자다. 나를 가족이라고 부르며 떠난..확 뒈져버리라고 저주를 했던 바로 남자. 그는 한번도 맨 몸을 보여준 적 없었는데, 결국 저기에 적나라하고 추하게 누워있었다.
[아직도 멀었어?]
  복도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넘실넘실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화장실을 벗어나 작업실로 돌아갔다.    
[속 괜찮아?]
[그럭저럭..]
  그는 쉬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여자와 저 남자, 그들을 처리해야한다.
[가끔 부부나 연인들이 같이 들어오면 나도 마음이 아파. 이별한지 얼마 안됬으니 넌 더 그렇겠지? 속이 안 좋은게 이해가 돼]
  이해? 비어먹을 무슨 이해? 알고 보니 바람이 나서 나에게 가족 어쩌고저쩌고 지껄이고 가버린 것도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저 여자랑 죽기 직전까지 저런 짓을 했는데..그래도 이해 돼?
  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의 연인을 훑었다. 긴 머리, 야릇한 입술, 사슴 같은 목선, 아름답다. 반면 나는 이 지하에서 땀이 뭍은 옷을 입고 머리는 대충 묶어 올렸다. 다만 내가 이 여자보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현재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두 구...제가 하면 안 될까요?]
  의외의 말인 건 안다. 한번도 혼자 한 적이 없으니까.
[이제 정식 직원이니까..]
[흠...]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나갔다. 작업실 문이 닫히자, 시체 두 구와 나만 남았다. 정식 직원이 된 첫 날, 끝내주는 기념파티다. 제길. 자꾸만 욕이 나오려고 해 입을 꽉 다물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머리 속을 뒤지면서 나는 과거로 돌아갔다. 그와 처음 만났던 때, 더운 여름이라 잡았던 손에서 흐르는 땀으로 민망해지던 순간, 그는 모르는 척 하며 더 꼭 붙들었다. 아프지 말라는 작은 문자 한 개, 그리고 아직도 버리지 못한 하트 목걸이..나는 너무 많은 기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의 가슴을 지나 배꼽으로 내려온 손이 피부 위로 떨어진 눈물 한 방울 때문에 멈쳤다. 난 왜 바보같이 울까? 그리고 이 비극적인 순간에 왜 준기씨는 컵라면을 끓여서 냄새를 맡게 하는 걸까?
  이 일을 해오면서 난 한번도 시체를 남자로, 여자로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렇게 느껴진다. 그는 이미 죽었는데도 내 눈물이 번진 피부가 숨을 쉬는 것 같고, 배꼽 아래가 꿈틀꿈틀 거린다는 느낌이 들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를 욕하면서도 나는 여태껏 그를 그리워하며 붙잡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다면 좀 전의 남자 시체와 같아야 하는데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이런 기분을 겪느니 준기씨 말처럼 아리따운 멋데리아나 갔어야 했는데..과연 이 세상 몇몇의 아가씨가 자기의 애인을 시체로 만나겠는가? 게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이 거 먹을래?]
  작업실의 헐거운 문틈으로 컵라면을 든 손이 불쑥 들어왔다. 나는 대답 없이 컵라면을 받아들었다. 그는 들어오면서 구석에서 뒹굴던 목욕탕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나는 엉덩이를 걸치고 눈을 감은 채 국물을 들이켰다.
[부둥켜안고 있었다고요?]
[어? 응]
[비 오는 날, 가로등 밑에서요?]
[응]
  후루룩, 후루룩, 면발 넘어가는 소리가 작업실 안에서 오케스트라처럼 울린다. 말 한 마디와 라면 한 젓가락.
[노란 거 안 먹을 거면 나 줘]
  컵라면 안에 들어있는 부록. 정사각형 모양의 노랗고 납작한 그 무엇을 겨우 젓가락으로 건져 그의 그릇 속으로 던졌다.
[왜 죽었다고 생각해?]
  불쑥 준기씨가 물었다. 아...그가 왜 죽었을까? 지금까지 나는 그가 나를 배신했고, 나와는 한번도 한 적 없는 가로등 밑 로맨스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러게 왜 죽었지?
  내가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자 그는 내 컵라면을 뺏어 남은 국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어깨를 두드리곤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다시 일어나 일을 마저 하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나의 전 애인은 비록 내가 자신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중요한 부위를 검사할 때만은 눈을 감아주는 예의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왜 죽었는지 물었죠? 비가 왔고, 가로등 밑에 물이 고였을 거예요. 보통 도로가 좀 패이거나 움푹 들어가거나 하잖아요. 그들이 그 근처에 서 있을 때 전기가 우산을 통해 발밑으로 통과한 게 틀림없어요. 번개인지, 가로등의 누전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여간 그렇게 그들이 쓰러진 후에 아까 처리한 그 남자가 발견을 했겠죠. 무슨 일인가..하고 다가갔다가 여전히 전기가 흐른다는 걸 모르고 우산을 건드리다 걸려 넘어졌을 거예요. 머리 뒤에 있는 상처와 팔에 남은 자국이 그 증거에요]
[제법이네..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더니만..]
  2 시간 후, 그를 불러 결론을 말했다. 내 추측이 맞는다는 말은 안 했지만, 웃는 얼굴로 보아 국립과학연구소의 결론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이에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데 꺼내기 어려운 것처럼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말을 건네 왔다.
[이젠 좀 나아졌어? 마음 정리가 된 것 같아?]
  나는 그의 눈을 보기 위해 똑바로 섰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예요?]
[글쎄..너와 좀 더 깊게 연관된 남자? 그 정도...]
[눈치가 백단이야, 정말]
[그럼~이 정도는 돼야 시체들과 놀지]
  우스운 문답 놀이를 마치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철재 칸의 문이 차갑다는 걸 등으로 느꼈다. 시체인 그도 지금 매우 차가울 것이다.
[일이 다 끝났으니까 전 냉동 참치가 되어볼 생각이에요]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듣고 싶지 않아 작업실을 바로 나왔다. 몇 번째 방인지는 모르나 적당히 멈춘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영하 60도는커녕, 조금도 서늘하지 않은 빈 방 바닥에 대자로 누워 눈을 감았다. 별거 아닌 감정이라고 치부했던 슬픔이 마침내 폭포처럼 눈에서 바닥으로 보내졌다. 소리 내어 울자 작은 방 안은 내 목소리로 가득 찼다. 준기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잠시 이 창고를 빌려야겠다. 어차피 당분간 전쟁이 벌어질 일 없으니까..나는 그에 대한 모든 추억을 이 창고에 넣어둘 것이다. 영하 60도에 꽝꽝 얼어버리게..  





[가자]
  어느새 활짝 열린 문 앞에 준기씨가 보인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멋데리아로 옮길까 생각 중이었어요]
[무슨 소릴! 거기선 착취당한다면서? 너는 여기가 맞아]
  오늘따라 그의 눈이 참 따듯하게 느껴진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느라 맞잡은 손도 부드럽다. 그의 손이 이랬었던가? 그의 눈이 저랬나?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냥...요. 직원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에 가뿐하게 일어나 또 시체를 닦고 노란 거시기가 든 컵라면을 먹으러 이 곳에 꼭 와야겠다. 아참, 오늘 맥주 약속이 있지, 과연 이게 씹어 먹을 안주거리가 될 수 있을까..생각해봐야겠다.
  두 사람이 걷기엔 너무 좁은 복도를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일렬로 걸은 후, 낡은 현관문을 지나 32개의 계단을 올라와보니 매미 소리가 귀청 떨어지게 들리는 저녁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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