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그녀를 찾아서

2005.01.23 08:1101.23




“나는 꿈을 꾸었네, 오거스터.”

“Dr.맨첼.”

오늘따라 깊게 패인 그의 얼굴의 주름살이 우울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았네. 그녀는 거울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어. 그런데 오, 세상에! 나는 세상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어. 거울 안의 그녀 말일세, 현실의 그녀 말고. 이상하지, 분명히 둘의 아름다움은 너무나 차이가 났는데도, 나는 그 거울 앞의 여인이 거울 속의 여인과 동일인물이라는 확신을 지울 수가 없었네. 소녀는 알몸이었고, 하지만 그 벌거벗었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네. 소녀의 탄탄한 가슴, 늘씬하고 작은 몸이 역동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네. 그런 그녀는 연신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지, 맙소사, 이게 정말 나일까, 나란 말야? 하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네. 그것이 바로 그녀의 모습이며, 그녀 안에 숨겨진 진실일 거라고. 나의 사명은 그런 그녀를 찾아 그녀 안에 숨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것이었네….”

“그래서 결론이 뭐지요?”

그는 이미 내가 답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했던 듯 하다. 그의 늙고 슬픈, 그러나 확고한 신념이 담긴 눈동자가 내게로 와 닿았다.

“지금 닥터, 당신은 지금 이름도 모르는 그 여인을 찾아서 세상을 뒤지시기라고 하겠단 말입니까?”

“못할 건 없지 않나.”

“그건 무모한 짓이에요!”

“나는 할 수 있어. 아니, 하리라고 믿네.”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빠르게 짐을 싸서 방을 나갔다. 그가 시대에 안 맞는 중절모를 푸욱 눌러 쓰고, 내게 간단한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고 사라진 한참 뒤까지, 난 싸늘한 정적만 남아있는 방 한 가운데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4월 3일.

닥터가 떠난지 일주일 째 이다. 그는 홀연히 사라지던 그 때처럼, 그렇게 많은 말들을 내게 전해오지는 않았다. 다만 흑인 하녀 마사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것이 닥터에게서 온 전화 같았다고 한다. 그는 한없이 격양된 어조로-영어가 "조금" 부족한 하녀의 말에 따르자면, 마치 으르렁거리는 야생 들개처럼-소리쳤다고 한다.

그녀가 어느 쪽의 사람인지 알았어, 오거스터!

더없이 기쁜 소식이지! 친애하는 오거스터! 나는 지금 당장 아시아로 갈 거라네….


4월 7일 날씨는 맑음.

닥터의 사무실에 오래 전부터 다니던 환자가 왔다. 그의 이름은 잭슨 파이프로, 본인은 자신이 살인마 잭의 후손이며 퇴화한 "물고기 왕"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열등함과 미개함을 깨달아야 하며, 그러한 신념으로 모두를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에 그는 살인마 라기 보다는 차라리 거의 광적인 동물보호론자 같았다. 우리가 물고기보다 나은 게 뭐지? 그저 꿈틀거리는 팔과 다리가 있어 서로를 잡아 뜯고 끌어 내릴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우리 물고기들은 아주 솔직하지. 배고프면 잡아먹고, 살기 위해 부수지. 그래, 서로를 먹기 시작해서 머리 끝부터 꼬리 지느러미까지 모조리 먹어 치우는 거야.

모두 먹어 치운 뒤에는 어떻게 하지요?

방식같은 것은 없어. 그저 뻥 하고 배가 터져버리면 그만이지.  

하지만 그는 지금 닥터가 처방했던 "진실의 약"이 떨어져서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말할 때마다 코를 훌쩍거리고 손을 덜덜 떨었다. 그가 훌쩍거리는 소리에 나는 그가 말을 하는지, 코로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솔직해져야지, 우리는. 서로 마음속에 미움과 살의를 간직한 채 가식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존경하는 잭, 그처럼 차라리 그 증오로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 버릴 수 있기를!

내가 그 용하다는 "진실의 약"을 가장한 설탕 가루를 처방하고 나서야, 그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 제발 닥터 어서 사무실로 돌아오세요. 당신의 환자들은 골치가 아프단 말입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Dr.맨첼은 아직 연락이 없다.


4월 31일.

간만에 쓰는 일기이다. 그 동안 자신을 닭이라고 착각하는 노부인과, 미모의 여가수가 다녀갔다. 나는 처음에는 그 미녀 여가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바로 문제점을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형식적인 질문을 몇 가지 던질 때마다 눈을 깜빡거리고, 내게 미소를 보내고, 심지어 내 하얀 양말을 그녀의 매력적인 발가락으로 끌어내리기까지 했다. 오, 맙소사. 그녀는 지독한 색정광이었다.


5월 2일.

드디어 닥터가 서신을 보내 왔다. 그의 당혹스럽고도 친절한 처사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는.

오거스터, 나는 거대한 대륙 중국을 가로지르는 기차 안에서, 또다시 그녀의 꿈을 꾸었다네. 나는 이미 인도를 다녀왔고, 베트남을 다녀왔고, 하다못해 몽골까지 다녀왔네. 그 곳에서 정체불명의 무리들을 만나기까지 했어. 하지만 꿈속의 그녀는 마치 초원 위로 달아나는 말 같아서, 나는 그녀를 놓칠까 봐 꿈에서조차 깨지 못하였네. 내가 잠결에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네 언어로 소리지르자, 마침 나와 같은 열차 칸에서 여행을 계속하던, 자신을 한족이라 소개한 한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네.

그건 한국어잖아요! 꼬레안 언어…코리안.

나는 궁금해서 그에게 이것 저것 물었지만, 그는 더 대답해주지 않았네. 자신이 아는 것이 더 없다는 것이었어. 사실 그는 단지, 자면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 대는 이 늙은 서양 남자가 어서 입을 닥쳐 주기를 바랬을 뿐이야. 그는 그 말을 끝내고 나서, 나를 질책하듯 흘겨보더니 다시 모포를 덮고 잠을 청했네. 나는 한참이나 이 고마운 구세주를 잡고 신나게 흔들었어! 그는 아연실색을 했지만.

하지만 상관없었어. 지금 나는 무엇보다도 유력한 단서를 얻지 않았나?


5월 6일 날씨 흐림.

출국 심사를 받는데 갑자기 경관들이 내 앞을 막아 섰어. 내 비자에 이상이 생겼다는 거야. 그것 때문에 한참 고생했네. 뒤늦게 알고 보니 공항 직원이 뭔가 착오했을 거라는 말 뿐이었어. 주머니에 몇 푼의 돈을 찔러 주자, 그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나를 풀어 주더군. 북한은 뒤로 접어 두고, 남한부터 돌아보기로 했네. 일단 이쪽이 더 필이 가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하지만 막상 이렇게 이 나라에 도착하고 나니 막막하군.

그는 얼마 동안 그 곳에 머무를 계획인 듯 했다. 그녀를 찾을 때까지. 혹은 또 다른 행선지가 생길 때까지.

그래서 나는 그가 결제해야 할 모든 서류를 그 쪽으로 부쳤다.

오늘도 색정증 그 환자가 다시 찾아왔다. 나는 그녀가 바라는 뜨거운 침대를 제공하는 대신, 그녀에게 수면제를 처방했다. 이제 그녀는 잠이나 푹 자게 될 거다.


5월 8일.

자신이 개구리라고 굳게 믿는 소년이 찾아왔다.

이젠 완전히 동물의 왕국이로군!

닥터에게선 별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무척 우려했는데, 개구리 소년은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다. 녀석의 통통하고 메마른 뺨엔-세상에 통통하고도 메마른 것이 있을 수 있다니!-주근깨가 가득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초록색 눈에 빨간 머리는 의외로 매력적이었다. 나는 녀석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년의 알 수 없는, 기이한 말과 행동들을 제외하면. 물론 이 말은 나까지 양서류가 되겠단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아마도 이 녀석은 천재일 수도 있었다. 아직 나와 그렇게 많은 말들을 나눈 건 아니지만.


5월 12일.

마사가 소년의 행동에 온통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부엌에 있는 우유를 몽땅 꺼내 욕조나 바닥에 엎질러 놓는다는 것이었다. 하긴, 내가 하녀였어도 그걸 치우려면 짜증이 났겠지.

부엌에 내가 도착했을 때는 아주 가관이었다.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토마토 소스며 크림이며 몽땅 바닥 위에 엎질러져 있고, 소년은 그 위에 누워 팔다리를 허우적대고 있었다. 마사는 그 뚱뚱한 몸에서 소프라노 뺨치는 한없는 고음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대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그녀의 찢어질 듯한 소리에도 컵이 깨어지지 않는지 의구심이 생겼다.

내가 그를 질책했을 때, 그는 겁을 먹거나 변명하는 대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 거죠?  

그 말은 마치, 진실은 다른 데 있으며, 소년이 내 눈 안의 추잡한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그에게 화를 낼 이유는 전혀 없는 듯이 보였다. 당분간 마사의 잔소리가 심해질 듯 했다.

닥터에게서는 이제 정기적으로 편지를 받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별 소득은 없어 보였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그가 아침으로 머핀을 먹었다, 커피를 마셨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뒤로 그 꿈을 다시 꾸지 못해 약간 괴로운 모양이었다. 꿈의 그녀는 도대체 언제쯤 나타날까.


5월 16일 비 개인 후 맑음.

개구리 소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온 뒤에 개여서일까. 나는 화단의 진흙 구덩이 한 가운데서, 알몸으로 웅크리고 있던 소년을 끌어냈다. 빗방울 아래 선명하게 드러난 그의 척추는 내게 화석이 된 공룡의 등뼈를 연상시켰다. 그는 희한하게도 그다지 반항하지는 않았는데, 햇볕이 쬐기 시작하자 자신의 피부가 말라서 오그라든다며 비명을 질러 댔다. 내가 손을 들어 진흙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끈적거리는 그의 등을 쓰다듬고, 토닥거리며 달래주기 시작하자 그는 그 때서야 울음을 멈췄다. 그에게 더 이상 듀미록스를 처방하지는 않아야 할 듯 하다.

그의 앙상한 몸을 안았을 때, 난 마치 미끈미끈한 양서류를 손으로 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스치듯이 손을 빠져나가 버리는 그것.


5월 17일, 닭과 인간에 대한 행동 양상.

누군가가 말했다. 닭의 아이큐는 한 자리수, 그것도 매우 작은 수이며, 그들은 마치 파블로프의 실험에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순차적인 것이다. 닭에게 모이를 주고, 그를 풀어 주면 그는 곧 신체적이며, 생리적 본능에 따라 그 좁쌀들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한다. 돌진하던 닭의 후두부에 충격을 주면, 일차적으로 닭은 고통을 감각하고 돌진을 멈춘다. 그러나 3초 뒤, 곧 그는 고통의 근원을 잊고 또다시 먹이를 향해 달린다. 또 친다.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뫼비우스의 띠다.

사람은 어떠한가. 일단 노부인의 경우를 보자……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환경 공해라던가, 일종의 심각한 쇼크 상태는 때때로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변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실질적 치료 양식은 아직 보고된 바 없다.


5월 28일.

가짜 살인마 잭의 후손이 찾아왔다. 그는 "진실의 약"이 효과가 좋더라 면서 즐거워했다. 설탕에도 감기약 효과가 있던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덕택에 나는 그가 가고 난 자리에 널브러진 코 푼 휴지를 치울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저번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그의 콧물은 최악이었다. 나는 그가 미개한 인류를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한참이나 역설했다. 그는 이해는 잘 안되지만 어쨌든 알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부터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게 된 개구리 소년이 그런 우리의 대화를 우습다는 듯이 문틈으로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Dr.맨첼의 편지를 뜯었다.

오거스터, 기약없이 그녀의 자취를 묻고 다니다가, 꽤 매력적인 화류계 여인을 만났다네. 그녀는 빨간색 치파오를 입고 있었어. 나는 그녀와 밤을 보냈는데, 등에서 팔로 이어지는 거대한 용 문신을 보았다네. 촛불 아래서 일렁거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묘한 분위기를 풍겨 냈네. 이건 비밀이지만 아무래도 그녀가 마피아와 뭔가 얽혀 있지 않나 싶어.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꿈속의 소녀는 아무래도 나타나질 않네. 나는 여태껏 허상을 쫓아온 것일까? 아니야, 아닐 거야. 자네도 아닐 거라고 말해주게.


6월 4일 아스팔트 뜨겁게 타오를 여름의 시작.

대략 140kg정도 나가는, 노부인의 거대한 딸이 항의전화를 하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덕지덕지 발라진 빨간 립스틱이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을 했다. 푸줏간에 매달린 거대한 고기 덩이처럼. 그녀는 어머니를 왜 병원에 넣지 않았느냐며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한쪽 귀로 흘려 듣는 대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거대한 엉덩이에 짓눌리면 질식사 하겠네 그래.

점차 뜨거워지는 날씨 덕택에 내 머리도 이상해지는지 모른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가, 개구리 소년과 한참 동안이나 나란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했다.

그는 전처럼 우유나 콜라를 엎지르는 따위의 장난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전보다 한층 슬퍼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비를 기다려요.


6월 12일.

Dr.맨첼이 말하기를, 아직까지도 그녀를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오늘은 그 여인과 시외를 구경했네. 그녀는 빨간색 메르세데스를 몰고 있었어. 오거스터, 그녀는 물론 내가 찾는 꿈속의 그녀는 아니지. 하지만 어쩌면 그녀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늙은이가 주책이라고 묻지 말게나. 아무튼 조금 더 한국에 있을 이유는 생긴 것 같네.

추신. 아, 그리고 환자들은 자네가 잘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게.

분수대에서,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소년을 건져 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한 치의 후회나 아쉬움도 없었다. 그는 마침 자기의 꼬리가 없어지고 팔 다리가 완전해지려던 순간이라고 했다. 나는 소년의 뺨을 세차게 때리고, 그에게 소리쳤다.

정신 차려. 넌 개구리 따위가 아냐.

그는 한동안 멍해 있다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6월 13일.

개구리 소년의 어머니를 만났다. 내가 언제부터 소년이 그런 반응을 보였느냐고 묻자,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나는 개구리를 낳은 적이 없다라고 말한 뒤부터'라고 했다.

그녀는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말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책임감 따위는 느끼고 있지 않은 듯 했다. 하긴, 그런 걸 기대했다면 아마 닥터는 애초부터 이 환자를 받지 않았을 거다.

왠지 답이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쩐지 그를 다시 못 보게 될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닥터의 충격적인 편지가 도착했다.

그녀가 죽었다네, 오거스터! 이름도 모르는 그녀가!

그녀는 자기 조직의 보스가 보낸 암살자의 총에 맞아 죽었다네. 나는 그녀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로 범벅이 된 손을 하고서, 그녀가 알려 준 비밀 문으로 정신없이 도망쳤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잃었다는 상실의 슬픔과 죽음의 혼란보다, 궁금증의 실마리를 얻었다는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다네!

그녀는 자기 딸을 찾아 한국으로 온 거였어. 그리고 그녀가 말한 그녀의 딸은, 놀랍게도 내 꿈속의 그녀와 닮아 있었다네!


7월 6일 온통 안개.

닭이 된 노부인, 혹은 노부인이 된 닭이 죽어서, 그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녀는 죽는 그 날까지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왕겨에 생쌀을 삼켜 왔다고 한다. 결국은 그 소화되지 못한 쌀이 목에 막혀서 죽었지만. 그녀의 자식들은 그녀를 잃어서 슬픈 표정이었다. 물론 그녀의 거대한 딸까지도. 어떻게 그렇게 깡마르고 작은 노파에게서 그런 딸이 나올 수 있었는지 하는 것 자체부터가 아이러니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은 장례 행렬을 겨우 따라가면서 헉헉거렸다. 그녀의 살찐 가슴과 배가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나는 거대한 검은 돼지 한 마리가 마실을 나가는 듯한 착각을 했다. 조금은 엽기적이지만, 이 불쌍한 노파는 죽기 전에 변기에서 물을 마시려 했던 듯 하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혀를 쭉 내민 채, 변기에 얼굴을 푹 담근 채 죽어있는 그녀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녀를 묻혔고, 죽은 뒤에도 다시 살아나는 기적 따위는 보여 주지 않았다. 가엾은 노부인은 지금쯤 천국에서 알을 품고 있겠지.

닥터가 전했다.

그녀를 찾았어, 그녀를 봤다네! 그건 분명히 그녀였어. 잠시 스쳐 지나가기만 했지만, 아주 잠시 본 거지만, 그래! 그녀였어! 그녀가 틀림없다네.

나는 그녀를 찾을 걸세. 전철의 붐비던 인파 속에서 내가 본 그 실루엣은, 그래, 분명히 그녀였어.


7월 12일.

처음으로 닥터에게 답장을 썼다.

존경하는 Dr.맨첼. 오늘 색정증 그녀가 다녀갔어요.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죠. 매니저와 함께, 그녀는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사무실로 들어왔어요. 매니저가 그녀만 두고 사라지자, 그녀는 울기 시작했죠. 사실은 아기를 가졌었대요. 지금 그 아기는 천국에 있겠지만.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정치인 P가 아기의 아버지였나 봐요.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녀는, 아기를 가진 걸 알자 명문인 그에게 버림받았고, 그의 사랑을 잃은 충격에, 끝없이 사랑을 원해왔던 거죠. 그녀는 육체로 자신의 빈 가슴을 채워 오길 원했어요. 아기를 유산하자, 진정한 사랑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나 봐요. 그녀는 여느 때처럼 내게 잠자리를 요구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그녀의 예쁜 뺨을, 화장기 없던 그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봤어요.

나는 사무실에서 그녀에게 키스했고, 그녀의 짭짤한 눈물이 우리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죠.

개구리 소년이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내게 물었죠, 내 살을 핥아도, 오거스터는 짭짤한 맛을 느낄까?


7월 14일 소나기, 비는 더럽게 억수같이 옴.

신문에서 열 세살 먹은 어린 소녀가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참 무서운 세상이군.


7월 15일.

또다시 전철에서 그녀를 보았어.

닥터가 내게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간만에 전화상에서 듣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 낯설다 못해 이질적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아아, 그래요?

그녀는 이 근처에 사는 것 같아. 곧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이만 끊게.

전화를 끊으려던 차에, 잭슨 파이프가 사무실 문을 부수다시피 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속였어, 라고 외치며 내게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그의 주머니에서는 어디선가 잘라낸 어린이의 손가락이 들어있었다.

도무지 이 골치 아픈 환자들 때문에 문이 성할 날이 없다. 차라리 문을 벽에서 떼어 내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 같군 그래.  

나는 마지못해 경찰을 불렀고, 경찰을 그를 연행해갔다. 판결은 사흘 뒤에나 있을 것 같다.


7월 28일.  

잭슨이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로 인해 판결이 자연스레 늦춰지게 되었다. 그러나 늙은 우체부가 소녀의 반쯤 썩고, 퉁퉁 불은 시체를 도처에서 발견함으로써 그의 죄가 명백해졌다. 그녀의 몸 곳곳에서 그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그 "물고기 왕"의 힘으로 여자아이 물 위에 띄우려 했던 모양이다. 늪에 던져진 가엾은 여자 아이는 찍 소리 못하고 빠져 죽은 듯 하다. 아니, 이미 물에 던져지기 이전에 죽어있었는지도. 그 증거로 소녀의 시체에는 한쪽 손가락이 잘리고 없었다.

나는 증거물로 그에게서 압수한 소녀의 손가락을 제출했다. 법원은 이 소름 끼치는 사건의 죄값으로 잭슨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덕분에 정신과 주치의였던 나도 조사를 좀 받아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가 중증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잭슨의 늙은 홀어머니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얼마 뒤에 그는 전기 의자에 앉아 저 세상으로 헤엄쳐 갈 것이다.

살인마 잭은 편안히 자기 침대에서 저 세상을 만났겠지만.

닥터,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8월 8일.

미모의 그녀가 그리워졌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는 아직도 내 곁에 있다.


8월 13일 비오다 안 옴, 꿀꿀함.

그래, 그녀는 그 곳에 있었네. 항상 그래 왔듯이, 그 곳에.

내가 뒤돌았을 때 내 눈동자가 닿을 수 없는 그림자 속에 있었고, 내 눈이 지평선을 향해 있을 때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 있었네.

환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진실이 되어 나타날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모종의 두려움을 느낀다네.

때때로 생각하는 거지만, 닥터는 정말로 감상적인 사람이다.

나라면 꿈속의 여인을 찾아 무작정 자신의 일을 내팽개치고-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에게 자신의 환자들을 떠맡긴 사실을 질책하는 것은 아니다-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절대로.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나친 낭만주의자라는 것은 아니다.


8월 14일.

왠지 우울해졌다. 나는 창가에 말없이 앉은 채, 차갑게 식은 커피한잔을 마시며 개구리소년을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의 허연 등가죽과, 그 위를 흐르던 빗물과, 그로 인해 마치 양서류의 그것처럼 미끈미끈해 보이던 그의 피부를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개구리였는지도 모른다. 공주가 키스를 해주면 진정한 인간으로 변하는 개구리라든가, 전설에 나오는 어떤 위대한 신이 변신한 것과는 상관 없는.  


8월 16일, 비.

아이의 어머니가 개구리 소년을 업고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그가 개구리가 아니라는 것을 열 번 말해주라는 처방을 내렸다. 소년은 비가 왔지만 전처럼 날뛰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마치 애완용으로 전락해 버린 야생 개구리처럼.

그는 내가 그녀에게 받았던 키스를 돌려주었다.

나는 그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Dr.맨첼의 마지막 편지는 간략했다.

드디어 그녀를 찾았네! 오거스터…그녀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네.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 닥터는 떠났을 그 때처럼 홀연히 돌아왔다. 그는 혼자 돌아왔고, 그녀는 없었다-나는 닥터의 트렁크 가방에 들어있을 아름다운 그녀를 상상해 보았지만, 역시 그것은 무리한 생각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닥터?”

그는 의외로 여유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궁금증에 달아있는 나를 잠재우면서,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일단 그리 앉게. 내 차차 다 얘기해주지.”

그는 서랍을 열어, 오랫동안 부재중이었던 파이프를 입에 물고는, 몸을 던지듯 소파 위로 주저앉았다.

“그래서 그녀는….”








mari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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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7 단편 하나의 공간 아이 2003.07.14 0
2776 단편 별자리와 꿈의 기원 너구리맛우동 2013.01.15 0
2775 단편 25시 azrael 2004.01.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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