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중편 헝겊인형-1

2005.11.15 07:4711.15



  헝겊인형



눈을 뜨니 진득한 느낌과 함께 불쾌한 열기가 내 방 안에 가득하다. 그리고 곧 열기가 내 몸에서 나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땀을 흘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난 무언가에 놀란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마치 펀치 기계가 돈을 넣은 사람의 펀치를 맞기 위해 올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돈을 주고 침대에서 빨리 일어나라고 할리는 없다. 그저 느낌이 그럴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이렇게 잠이 순간적으로 깨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몸은 언제나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그리고 거친 숨결에 섞여 내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얼마 없다.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저 파편이나 찌꺼기로 불릴 만한 부분들이 그 순간을 스케치하고 있을 뿐이다.

‘어제 혜진이 생일이었대.’

그 날 기억나는 유일한 그녀의 말이다. 물론 혜진이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나와 그녀가 알던 여자아이의 이름일 것이다. 모두 이런 식이다. 묘하게 쓸데없는 부분만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다. 내가 기억을 억지로 지운 것일까? 아니면 날조한 것일까? 모르겠다. 머리가 아파온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어머니가 TV를 보고 있다.

“일어났니?”

어머니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에게 말한다. 재밌는 장면이라도 나오는지 연신 깔깔대며 웃는다. 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묻는다.

“아버지는 나가셨어요?”

“그럼. 벌써 나가셨지. 너 근데 또 입대고 마시냐? 컵에 따라 마시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말 좀 들어라.”

“알았어요.”

“오늘 나가니?”

“오후에 수업 있어요.”

“오늘도 술 먹냐?”

“모르겠어요. 봐서요.”

“1년 늦게 들어갔으니까 남들처럼 놀지만 말고 공부도 좀 해.”

“네.”

난 화장실로 간다. 밤새 흘린 땀 때문에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기에 샤워를 하기로 한다. 옷을 벗고 샤워기를 튼다. 샤워기에 차가운 물이 나오다가 이내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물이 나오는 샤워기를 벽에 걸어 놓고 게으른 동작으로 그 아래에서 물을 맞는다.
뜨거운 물이 내 몸을 따라 흐른다. 몸이 나른해지며 잊고 있던, 지나쳐 왔던 기억들이 차가운 물에 채 녹지 않은 소금 알갱이처럼 떠오른다. 어제 먹었던 점심 메뉴. 친구들과 나눈 시 덥지 않은 농담. 어제 배운 수업 내용. 그런 소금 알갱이들이 샤워기 물에 녹아 나온다. 난 잠시 그런 기억에 정신을 맡긴다.
그러는 사이 내 고개는 저절로 숙여진다. 고개를 숙이니 머리로 떨어지는 샤워기의 물은 내 머리카락을 타고 얼굴을 흘러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물은 하염없이 내 얼굴을 흐르고 가끔 눈으로 들어가 눈을 따끔따끔하게 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관념이 느슨해지고 마침내 샤워기 물에 애써 누르고 있던 그 기억이 터져 나온다. 힘든 기억이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렇게 힘들었는데,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때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고3 학기 초였다. 수업이 끝나고 게으른 햇살만이 교무실에 부옇게 떠오른 먼지를 비추고 있는 시간이었다. 교무실 안은 아이들이 청소한답시고 일으키는 먼지와 선생들의 담배 냄새가 뒤섞여 머릿속까지 답답해 질 것 같은 악취를 내 뿜고 있었다.
거기다가 주번 아이들은 대충 물을 묻힌 물걸레를 짜지도 않은 채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가져와서는 ‘철썩!’하고 요란하게 바닥에 한번 때리고는 닦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묘하게 답답한 냄새에 수돗물의 염소 냄새가 얽힌 물기어린 악취가 추가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라는 곳은 수십 년 동안 그런 냄새가 쌓여온 곳이다.
그 끔찍한 냄새 구덩이 속에서 담임선생은 점잖게 금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아드님 성적으로 서울에 갈 대학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방 4년제도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인지.......”

담임은 당황한 어머니에게 약간 짜증나는 투로 말했다.

“한 마디로 이번 년도에 제대로 된 대학가기는 다 틀렸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럴 리가요. 우리 인현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

담임은 책꽂이에서 내 성적이 적힌 모의고사 성적표와 반 석차 표를 꺼냈다. 그리고 조근 조근 얘기하기 시작했다.

“잘 보세요. 인현이 성적을요. 보이시죠? 1학년 1학기까지는 좀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보세요. 반 석차가 거의 뒤에서 두, 세 번째에요. 더군다나 여기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시면 전국 50%안에도 못 들어요. 이걸로 어떻게 대학을 갑니까? 이해하시겠어요?”

우리 담임은 좋게 말해서 참 솔직한 성격이었다. 바로 앞에 학생을 두고서 게다가 그 부모에게까지 그런 얘기를 직설적으로 했으니까 말이다. 어머니가 담임선생의 그런 태도에 당황하셨는지 아니면 담임이 말한 내용에 충격을 받으셨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우셨다는 건 확실하다.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는 조용히 우셨다. 나를 책망하지도 못하신 채 그렇게 어머니는 내 뒤를 조용히 따라오시며 우셨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아버지는 거의 드시지 않던 매를 드셨다. 예전에 너무나도 많이 할아버지에게 맞았기에 나에게만은 절대 들지 않겠다던 매를 드셨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으셨다. 어머니는 방에 들어가셨고 거실에 남은 건 나와 아버지와 구겨진 모의고사 성적표뿐이었다. 아버지는 몇 분 동안 말이 없으시다 갑자기 손에 잡힌 아무거로나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효자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숴 지자 집에 있던 야구배트로 날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울부짖었다.

“이 개자식아!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렇게 날 실망시킬 수 있냐고! 응! 말해 봐, 이 새끼야!!”

매는 아팠다. 말할 수 없이 아팠다. 아버지는 흡사 지난 번 봄 대청소 때 카펫의 먼지를 터는 것처럼 나를 때렸다. 아버지가 나를 카펫과 혼동했던 건가? 큭큭큭. 왠지 모르게 웃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맞으면서 생각하는 게 카펫이라니. 하지만 그 웃음도 곧 무지막지한 고통에 묻혀 버렸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네 놈 하나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 키웠는데. 잘 하고 있다며!! 잘 돼가고 있다며!! 그런데 이게 뭐야. 지금 이게 잘 되어 가고 있는 거냐!!!!”

“여보!! 그만 해요. 애, 잡겠어요. 여보, 여보. 제발. 제발 그만해요.”

“저런 썩어빠진 새끼는 맞아야 돼. 내가 잘못 키웠어! 잘못 키웠다고!!”

확신컨대 도중에 어머니가 말리지 않았다면 난 병원에 실려 갔을 것이다. 아버지가 간신히 매질을 멈춘 후 나는 몸도 움직이지 못한 채 신음만 흘렸으니까 말이다. 배신감. 언제나 못 배운 것이 한이라며 나에게 모든 것을 쏟았던 아버지의 배신감은 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그 당시 난 아버지가 나를 왜 때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봄 햇살을 부옇게 흐리는 먼지를 토해내던 카펫과 나를 비교하며 웃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현실 감각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녀와의 이별은 그렇게 나에게는 슬픔 이상의 것이었다.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가려져 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짓눌렀다. 입시, 가족, 친구들 모두 다 그녀에게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졌을 때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독히도 날 유린했다. 내 정신의 처녀성을 유린하는데 상실은 그 폭력성을 마음껏 발휘했던 것이다.
그 끔찍했던 일 년의 방황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끔찍한 깨달음은 외로움이었다. 단 한 명 남은 친구였던 현태마저 잘 만날 수 없었다. 나는 문과였고 현태는 이과였기에 반도 달랐을 뿐더러 그 친구는 너무 바빴다.
그렇게 외로움과 싸우고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수업을 들으며 일 년을 버텼다. 그랬다. 그 시기에 나는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게 버텼다. 미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수능을 본 다음 날, 나는 아버지가 일치감치 끊어준 재수학원 수강증을 들고 기숙사 학원에 들어가 버렸다.



“인현아! 아직도 화장실에 있니?”

어머니의 목소리에 난 정신을 차린다. 난 크게 소리친다. 어머니는 귀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네!”

“목욕하니? 엄마 빨래해야 되는데 오래 걸려?”

“샤워해요! 금방 나가요!”

그렇게 외치고 난 고개를 들어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지른다. 그 동안에도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내 머리를 지배한다. 난 왜 그녀와 헤어졌던 것일까. 그렇게 힘들고 괴로울 것을 예상했을 텐데 왜 그랬던 것일까. 샤워기를 끈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거짓말처럼 그 질문은 사라진다. 난 대충 머리를 감고 온 몸에 비누칠을 한 다음에 다시 샤워기로 몸을 씻었다. 허나 아까 같은 질문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가지고 왔던 새 옷을 입으며 난 화장실을 나온다. 생각보다 샤워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여전히 시간은 충분하다. 어머니는 내가 나오자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몇몇 세탁물을 손빨래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난 빨래하는 어머니 대신에 TV에 앉아 웃기 시작한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오락프로를 보기 시작한다.
의도된 것도 있고 의도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여하튼 TV는 즐겁다. 순수하게 누군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그런 사람은, 그런 일은 없기에 TV에 빠져드는 걸까.
TV는 아마 아무런 생각 없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TV에서 하는 토론이나 다큐멘터리를 싫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TV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봐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인현아! 전화 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간다.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액정에 현태라는 이름이 뜬다.

“여보세요. 현태냐?”

“어, 그래. 뭐 하냐?”

“TV 보고 있었어. 웬일이냐, 전화를 다 하고.”

“웬일은 임마. 얼굴 본지 석 달이 다 돼간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 술이나 한 잔 하자.”

“그래? 그러지 뭐. 어디서 볼까?”

“저번에 본 데서 7시 반에 보자.”

“알았다. 있다가 보자.”

“그래.”

전화를 끊고 나서 옷을 입는다. 그냥 일찌감치 학교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집에 있어봐야 할게 TV 보기 밖에 없으니 사람이라도 봐야겠다. 난 대충 옷을 입고 방에서 나오며 어머니에게 말한다.

“다녀올게요.”

“그래. 지금 가니? 잘 다녀와.”

집 밖으로 나서니 평범한 봄날이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서늘한, 그런 봄 날씨 말이다. 상쾌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다. 난 미소를 띠운 채 천천히 걷는다.  




수업은 별 탈 없이 끝난다. 아이들은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따위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몇몇은 벌써 문 밖으로 급하게 나가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건다. 미진이다.

“인현아, 오늘 저녁에 술 마실래? 다 같이 가기로 했는데.”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미진이는 술을 참 좋아한다. 그저께 그렇게 마셨는데 오늘 또 마시는가 보다.

“아, 미안. 선약이 있어서 지금 가기는 좀 그렇고. 어디서 마시는데? 혹시 늦게라도 갈 수 있으면 갈게. 요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흠, 그럼 헤이 알지? 거기서 마실 거야. 일찍 끝나면 거기로 와.”

“알았어. 있다가 볼 수 있으면 보자.”

“그래.”

미진이는 곧 아이들과 왁자하게 떠들며 나간다. 그런 미진이를 보며 난 현태를 떠올린다. 왜냐하면 미진이는 현태의 여자친구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꽤나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모두가 닭살이라며 팔뚝을 긁기에 정신없었으니까.


대학에 와서 나는 그녀를 보고 놀랐다. 그녀와 현태가 헤어진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보고도 모른 척 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아는 체 안 해?”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나 보네? 나랑 현태 일. 하긴 네가 모르면 그것도 웃기지. 괜찮아. 걔하고 나하고 끝났어도 너랑 나 사이는 똑같잖아.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다 같이 재수한 처지잖아? 동생들 밖에 없으니까 수준 안 맞는데 잘 해보자고. 알았지?”

그러면서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 환한 웃음에 난 겨우 어설픈 미소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나를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리고 그런 일에 마음을 열 줄 몰랐던 나도 그녀의 여상스런 행동에 점점 그녀를 스스럼없이 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딱 한번 내게 현태의 안부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아마도 그녀와 같이 세 번째로 밥을 먹은 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는 현태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대화 할 때 언제나 신중하게 현태가 나올만한 화제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단순히 내 지레짐작일수도 있지만 가끔 긴장한 채 말을 돌리는 그녀를 보면 꼭 지레짐작만은 아닐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그런 그녀를 받아들이고 처음 현태를 만난다. 현태에게 말을 할지 안 할지 고민된다. 뭐라고 할까?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술집에 들어서니 현태가 먼저 와 있다. 내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던 듯 금방 나를 알아채고 손짓을 한다. 나도 웃음을 띠며 반갑게 그 녀석에게 간다. 현태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주먹으로 내 배부터 친다.

“야, 인마. 형님이 꼭 먼저 연락을 해야 나오냐!”

“당연히 네가 먼저 해야지. 내가 먼저 하냐?”

“말이나 못하면....... 앉자.”

현태는 앉으며 탁자에 붙은 벨을 누른다. 탁자를 보니 기본 안주로 나오는 과자는 벌써 다 먹은 모양이다. 곧 아르바이트생이 온다.

“주문할게요. 메뉴판 좀 주실래요? 그리고 이것도 좀 더 주세요.”

현태가 작은 나무 접시를 내밀며 말한다.

“네. 갖다 드릴게요. 여기 메뉴판하고 기본 안주 좀 갖다 주세요!”

아르바이트생은 자기가 가져오지 않고 누군가에게 대고 소리를 지른다. 곧 아르바이트생이 가고 현태가 먼저 말을 건다.

“요즘 어떠냐? 대학 다니니까 좋아 죽지?”

“그래, 좋아 죽는다. 넌 어떠냐? 2학년 마치고 군대 간다며?”

“뭐, 그냥 그렇지. 솔로라 대학 생활하기가 적적해. 그냥 1학기 마치고 갈까도 생각 중이다.”

아까와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메뉴판과 과자를 들고 온다. 메뉴판을 받아든 현태가 묻는다.

“뭐 시킬까?”

“그냥 네 맘대로 시켜.”

“흠....... 그럼 모듬 소세지랑, 모듬 튀김 하나씩 시킬까?”

“그러든가.”

“술은? 맥주 먹을래?”

“어.”

현태가 다시 벨을 누르자 이번에는 아르바이트생이 금방 온다.  

“주문하시겠어요?”

“네, 모듬 소세지랑, 모듬 튀김이랑 맥주 3000cc 하나요.”

아르바이트생은 계산서에 주문을 받아 적으며 현태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모듬 소세지랑, 모듬 튀김이랑 맥주 3000이요. 알겠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이 가자 다시 현태가 말을 건다.

“너희 학교에 괜찮은 애 없냐? 소개 좀 시켜다오. 형님 군대 가기 전에 연애나 한 번 찐하게 하고 가자.”

“괜찮은 애는 무슨. 너희 학교나 우리 학교나 비슷하지 뭐.”

“뭐야, 너희 학교에 미인 많다고 소문났는데 어디서 발뺌이야. 게다가 너 인문대니까 여자도 많을 거 아니야? 우리 과는 완전히 남자만 득시글거려. 후배들을 봐도 완전 남자 밖에 없어. 아직 여드름 듬성듬성 난 놈들이 밥 사달라고 들러붙을 때는 소름이 다 돋는다니까. 게다가 여자애들은....... 후. 말을 말아야지.”

“너 취향 바뀔 수도 있겠다. 남자로, 크크큭.”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덜 말아라. 남고 나오고 공대 다니다 군대가야 하다니. 아이고, 내 신세야.”

난 푸념 섞인 말을 하며 한숨을 쉬는 현태를 보며 말없이 미소 짓는다. 그리고 묘하게도 현태의 말과 함께 미진이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술 먹기 전에 미진이를 만나서 그런 것이리라.

“야, 좀 소개 좀 시켜줘. 나 정도면 어디 가서 안 빠지잖아.”

집요하다. 반은 장난이겠지만 안 해준다고 그러면 더 귀찮게 굴 것이다.

“알았어. 한 번 알아보기는 할게.”

“야, 역시. 이 형님이 지금까지 너를 키워주면서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어. 고맙다.”

“말조심해라. 확 깨는 수가 있어.”

“하하, 알았어, 알았어. 그럼 너 확실히 약속 한 거다.”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진지한 고려 따위로는 안 돼. 안 해주기만 해봐라.”

“안 해주면 뭐. 어떻게 할 건데?”

“취향을 바꿔 버리겠어. 아, 물론 처음 목표는 너다.”

“.......변태 같은 놈.”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야. 어떻게 좀 해봐.”

마침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맥주가 온다. 자연스럽게 현태의 입은 닫힌다. 현태는 그걸 받아서 나에게 잔을 주더니 먼저 따라준다. 나도 그의 잔을 채워준다. 현태가 잔을 들고는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건배.”

‘짠’ 하는 잔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운 소음들 사이로 스며들듯이 울린다. 나와 현태는 잔에 가득 든 맥주를 꿀꺽꿀꺽 마신다. 맥주 특유의 텁텁하면서 단맛과 쓴맛이 나는 주향과 함께 톡 쏘는 맛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현태보다 내가 먼저 잔을 내려놓는다. 아직 현태 잔에는 삼분의 일 정도 술이 남아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맥주잔을 잡은 현태의 손가락 중 새끼손가락은 어김없이 꼿꼿이 세워져 있다. 참 특이한 버릇이다.

“후아, 시원하다.”

현태가 온갖 인상을 다 쓰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든다. 조금만 더 흔들면 맥주 광고주가 와서 캐스팅 해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웃으며 현태에게 묻는다.

“야, 너 그 버릇 아직 안 고쳤냐?”

“무슨 버릇?”

난 새끼손가락을 세워서 보여준다. 현태가 배시시 웃는다.

“버릇이 뭐 그렇게 쉽게 없어지냐. 당연히 고치려고 해 봤지. 어렸을 때는 되게 싫어했어. 친구들이 얼마나 놀렸는데. 기집애 같다고. 그래도 버릇이라는 게 무서워.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 고쳐지는 걸 보니까.”

“그러게.”

“아. 야, 나 싸이 만들었어.”

“싸이? 그게 뭐냐?”

“야, 이거 완전히 원시인이네. 미니 홈피 있잖아.”

“아, 그 도토린지 알밤인지로 만드는 거?”

“킥킥킥, 야 알밤이 뭐야. 나 원, 무슨 아저씨랑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넌 안 하냐?”

“관심없어. 돈 들잖아.”

“야, 그거 돈 안들이고도 할 수 있어.”

거의 두 시간을 그렇게 떠들었다. 너저분한 농담들, 여자 얘기, 곧 가게 될 군대 얘기 따위들이었다. 우린 그런 얘기들을 정말 중요하다는 듯한 태도로 열중했다. 그러다 두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서로 말이 없어졌다.
기묘하다면 기묘할 수도 있는 침묵이지만 그런 느낌은 없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연하다. 어쨌든 현태와 내가 요 근래에 함께한 시간은 거의 없다. 간간히 술이나 한 잔 했을 뿐.
현태가 문득 생각난 듯 묻는다.

“미진이는.......”

겨우 그 말을 하고는 현태는 거칠게 기침을 한다. 저러다 폐에 있는 허파꽈리들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기침이다. 한참이 지나서 겨우 기침을 멈추고 물까지 마시고서야 현태는 제대로 말을 한다. 아무래도 현태가 침묵한 이유는 나와는 다른 이유인 것 같다.

“미진이는 잘 지내?”

“어.”

“그래?”

현태는 웃는다. 아마 그것 말고는 달리 지을 표정이 없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어색하기 짝이 없으니까.

“어떻게 알았냐?”

“뭘?”

“미진이가 우리 학교 다니는 거.”

“그냥....... 들었어.”

“술 참 좋아 하더라.”

“하하, 맞아 걔 참 술 좋아해. 고딩 때도 곧 잘 캔 맥주 사서 나랑 마셨으니까. 체질 인 것 같아. 나보다 술을 잘 마셨어.”

현태의 눈빛이 일순 깊어진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곧 평상시의 장난기 어린 현태의 눈이 돌아오고 현태는 짐짓 쾌활하게 말한다.

“갈까?”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산대로 가니까 현태가 말한다.

“오늘은 내가 살게.”

“야, 됐어. 나도 돈 있어.”

“야, 야, 내가 불렀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살게. 다음에는 네가 부르고 네가 사.”

난 현태 성격을 알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얻어먹는 건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알았다. 다음에는 내가 살게.”

밖으로 나오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뒤 따라온 현태가 묻는다.

“집에 갈 거냐?”

“아니, 약속이 있어.”

“뭐야, 여자 만나러 가는 건 아닐 테고. 또 재수 학원에 만난 그 형 만나는 거야?”

“아니야. 먼저 간다.”

“그래, 다음에 보자.”

현태와 나는 헤어진다.




술집 계단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아까 헤어진 현태를 생각한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현태의 옛 여자친구가 어딘가에 앉아있다. 요즘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는 현태의 여자친구였다.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바로 그의 옛 여자친구를 만나 즐거운 듯이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낯선 감정이 느껴진다. 그건.......

“어라, 인현이네? 인현아, 뭐 해! 안 들어오고.”

미진이가 가게 문을 반 쯤 열고는 소리친다. 이미 술을 꽤나 마신 듯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 뭐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들어 와. 늦게 왔으니까 더 많~이 마셔야지! 난 잠깐만 있다가 들어갈 거야.”

“응.”

그녀의 말에 난 웃는다. 그리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녀는 현태의 여자친구가 아니라 한미진이다. 이상한 감정 같은 건 느낄 필요가 없다. 단지 그녀와 나는 과에 같은 학교를 다니니까 같이 놀 뿐이다. 그것뿐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술집에 들어가니 아이들은 무슨 게임을 하는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다. 다들 꽤 취한 것 같다. 분명히 치웠을 텐데도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이 얼핏 봐도 7,8병이 있다.

“와! 인현 오빠 왔다!”

“형, 왔어요?”

“그래, 근데 너희들 참 신나게도 논다. 젊음이 좋기는 좋구나.”

그러자 걸걸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소리친다.

“야, 인마! 내 앞에서 나이 얘기 하냐!”

장천선배다. 복학한 지 1년이 안 된, 본인 말로 하면 ‘따끈따끈’한 복학생이다.

“아, 죄송합니다. 계신 줄 몰랐어요.”

“넌 여기 내 옆으로 와라. 오늘 인현이 술 많이 먹어야겠는데.”

아이들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선배 옆으로 가는 내가 많이 웃긴가 보다. 웃느라 정신이 없다.

“선배, 오늘 인현이 형 오늘 여기 묻어버리고 가요!”

민재가 벌게진 얼굴로 소리친다. 민재 말을 듣자 장천 선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너도 내 옆으로 와.”

다시 아이들은 자지러진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 속에 있는 나도. 과거에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순간이다. 장천 선배가 술을 따라준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친구가 불러내서요. 선배야 말로 웬일이세요? ‘내가 이 나이에 너희하고 놀아야 겠냐?’라고 하시면서 맨날 안 오셨잖아요.”

“하하, 뭐. 오랜 만에 젊은 애들 보면서 기 좀 받으려고. 그래, 그 친구는 남자야, 여자야?”

“뭐, 당연히 남자죠.”

“으이구. 이런 능력 없는 놈. 넌 허구언날 남자만 만나고 다니냐.”

“하하, 그러게요. 선배가 예쁜 여자 한 명만 소개 시켜주세요.”

“내 코가 석잔데 누구를 소개시켜 주니. 너나 나 좀 소개 시켜줘.”

난 멋쩍게 웃는다. 그러자 선배는 그런 나를 내버려 두고는 민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난 가만히 아이들을 바라본다. 어느새 돌아온 미진이와 함께 아이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커다란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고 그 맥주에 소수 잔을 띄운 다음 한 사람 씩 돌아가면서 소주잔에 소주를 넣는 ‘타이타닉’이라는 게임이다. 소주잔이 맥주로 들어가게 소주를 부은 사람이 걸리는 거다.

“와!! 누나 걸렸다!”

“마셔! 마셔!”

미진이가 걸렸다. 아이들은 ‘마셔!’를 연신 외쳐대며 신났다. 이미 몇 잔 마신 듯 미진이의 얼굴은 벌개 져 있다. 미진이는 한 번 크게 한 숨을 쉬더니 곧바로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는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우와!”

“멋지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은 미진이도 아니고 열광하는 아이들도 아니고 미진이의 손에 고정된다. 미진이의 새끼손가락이 세워져 있다.

“좋아. 다음에 걸린 사람 죽었어. 줘! 내가 섞을 거야!”

“와, 누나 열 받았다. 우리 다른 게임 할까?”

“박재용, 죽어!!”

“알았어, 알았어. 섞어.”

술자리는 그렇게 두 시간이 더 지나서야 끝났다. 다행히 2차까지는 안 갔지만 다들 많이 취했다. 특히 미진이는 몸은 가누고 있지만 눈은 완전히 풀려 있었다. 아까 게임을 할 때 많이 걸린 듯싶다. 나는 장천 선배가 말과는 다르게 술을 거의 주지 않아서 취하지는 않았다. 뭐, 평소보다 많이 마시기는 했지만.

“선배는 뭐 타고 가세요?”

“어, 나는 여기서 버스 타고 가면 돼. 나 먼저 갈게. 조심해서 들어가라.”

“네, 들어가세요.”

“선배, 안녕히 가세요.”

모두들 선배한테 인사하느라 정신없다. 선배가 간 후 아이들은 방향이 같은 아이들끼리 짝을 지어서 간다. 미진이와 나는 같은 방향이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가고 나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기 시작한다. 여기서 전철역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얼마 쯤 걸었을까. 미진이가 먼저 입을 연다.

“이젠 많이 더워졌지.”

“그러게.”

실제로는 그렇게 덥지 않다. 하지만 술에 취해 귀찮은 난 그저 그렇다고만 대답한다. 난 술을 먹으면 세상일들이 귀찮아 진다.

“정말 덥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가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날 보며 말한다.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한다. 물론 그녀의 눈빛 때문은 아니다. 잠시 생각하다 난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한다.

“아니, 별로.”

“그런데 왜 덥다고 한 거야?”

“.......그냥 네 의견이랑 충돌하기 싫었어. 단지 그것뿐이야.”

“넌 말이지, 자신의 의견을 좀 내세울 줄 알아야 돼. 맨날 ‘맞아’ 만 연발하며 살 거야? 그렇게 남 비위만 맞추고 살 거냐고.”

“그게 편해.”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따금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한숨을 내쉴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가 말을 건다.

“왜 그게 편해?”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잖아. 그저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나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그 말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거야. 그럼 상대는 만족하겠지.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그래.”

“그럼 관계 같은 게 생기지 않잖아. 응? 안 그래? 친구라든가, 연인이라든가, 선후배라든가 말이야. 그런 거.”

“관계를 맺는 것과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단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야.”

“그래? 난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그럼 그 아이하고도 그랬던 거야? 그 여자아이 말이야. 네 옛날 여자친구. 그 아이하고도 이렇게 얘기했어? 그래서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난 멈춘다. 그리고 미진이도 멈춘다. 난 미진이의 얼굴을 쳐다본다. 발그레한 뺨과 풀려버린 눈이 보인다. 그녀의 얼굴은 무언가 중대한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텅 비어버린 것 같다.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시 걷는다. 미진이도 역시 다시 걷는다. 바람이 분다. 그 바람결에 맞춰 미진이가 말한다. 뜬금없는 말이다.

“난 이상한 아이인가 봐.

“뭐가?”

“그냥. 뭐라고 할까....... 다른 사람이 평범하게 가지고 있는 걸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니, 평범하다는 아닌가? 여하튼 그래. 없어.”

난 그녀의 말에 조금 생각하다고 반문한다.

“정신적으로?”

그녀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아. 정신적으로.”

“난 잘 못 느끼겠는데.”

그녀가 날 빤히 바라보며 굳은 얼굴로 묻는다.

“너 지금 내가 술주정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전혀.”

“난 전혀 취하지 않았어. 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말이지. 그냥 널 보면 현태 생각이 나. 그런데 그것뿐이야. 그 아이로 인해서 무언가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아. 이상하지? 그지? 그런데 말이야, 다들 그렇잖아. 헤어진 애인이 생각나면 말이야, 무언가 감정이 느껴져야 되잖아. 너도 그렇지? 아까 내가 물은 거에 대답을 못 했잖아?”

“.......”

“하핫, 이런 내가 실수했나? 미안. 여하튼. 나 이상한 건가? 나 나쁜 앤가?”

“그렇지 않아.”

지하철역이 보인다. 곧 나와 미진이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또각또각’하는 미진이의 규칙적인 구두 굽 소리가 텅 빈 계단을 울린다. 그 소리가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들린다.

“아니라고? 그럼 네가 이상한 거야?”

“나도 이상하지 않아.”

“그럼 뭐야. 나도 안 이상하고 너도 안 이상한 거야? 헤헤. 그런 게 어딨어.”

“세상에 한 쪽이 그르고 다른 한 쪽이 반드시 옳은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아. 너와 나는 다를 뿐이지.”

“후후, 그런 거야? 그런 건가. 여하튼 고마워. 위로해줘서.”

그 말 이후에 미진이는 입을 다문다. 그녀를 위로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난 굳이 아니라고 말 하지는 않는다. 술 때문일 것이다. 술 때문에 귀찮은 것이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선 채로 눈을 감고 서 있다. 잠시 후 지하철이 오고 나는 미진이를 깨워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든 미진이의 머리 무게를 느끼며 계속 생각한다. 현태와 미진이의 새끼손가락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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