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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가족야구

2013.02.17 00:3502.17

가족야구


아버지와 어머니는 운동을 참 좋아하셨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아버지의 조기교육에 힘입어 야구라는 스포츠의 룰을 하나하나씩 익혀 나갔다. 그게 어떤 식의 조기교육인고 하니 아버지는 어찌나 야구를 좋아하셨는지 어머니와 매일 야구를 하셨다. 원래 싫어하는 것도 매일 보다보면 정 붙여 좋아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지라, 나도 처음에는 시큰둥하거나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던 기억이 어느 순간엔가 야구의 룰을 정확히 그것이 무엇이라 하는지 정식 명칭에 대해서는 몰라도 어떤 상황일 때 판정이 어떻게 난다 하는 정도를 알게되었다. 그것은 곧 아버지와 같이 야구를 보게 되는 기억으로 바뀌었다. 길쭉이 늘려 말했으나 실상 야매당구의 기술을 터득하여 봤자 우라나 하꾸, 다들 알고 있는 맛쎄이 같은 단어를 정식 대회에서는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나도 우리 집 특유의 용어로 습득한 야구 지식이 야구 좀 하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뜬 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 했다. 이런 제각돌리기같은 녀석들. 그들이 못 알아듣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야구가 너무나 프로-스포츠틱한 미국식 야구였기 때문이고, 나는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짜장면 시켜놓고 후르릅 대며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토종 야구인 것에 그 이유가 있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야구는 좋아했지만 야구공을 살 돈이 없었기에, 아버지는 야구공 대신 집안의 여러 둥근 꼴 가진 도구들을 어머니에게 던지며 제구력을 잡는 연습을 하곤 했다. 아버지가 연습을 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TV에 나오는 그 어떤 프로 포수들보다 능수능란하게 얼굴로 몸으로 아버지의 제구 안 된 공을 성공적으로 블로킹하셨다. 이 대담한 실내 연습은 어떠한 보호 장비도 없이 진행되었는데, 프로 포수들이 몇 십 키로나 되는 포수장비를 끙끙 대며 둘러차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만 공을 던지라는 비겁한 사인까지 내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에 비해, 어머니는 항상 투수인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하셔서 엉터리 같이 빗나가는 공마저 날아가서 잡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선보였다. 하일성씨는 어머니의 능력에 정말 좋은 포수라며 감탄했겠지만, 정작 어머니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별 것이 없었다. 이게 얼마짜린데!


도대체 그게 얼마짜리기에 어머니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공을 막아내셔야 하는지 나는 매우 궁금했지만, 그 얼마짜리 양은냄비며 국자를 받아내다가 어머니의 얼굴에 훈장처럼 시퍼런 멍 자국이 가득해지는 통에 구급 통을 가져오느라 나는 그 궁금증을 채 풀어보지도 못했다. 다만 내가 그 때마다 떠올리는 것은, 어머니가 여자가 아니었으면 분명 고액의 계약금을 받는 포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비틀거리시거나, 고함을 지르시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호전적인 분이었지만 그 성격을 억누르는 시간이 일주일에 딱 세 시간 있었다. 금요일마다 한국방송에서 해주는 프로야구에서,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라는 멘트가 나오면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마법에라도 걸리신 듯 TV 앞에 앉아 미동조차 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 옆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버지와 같은 곳을 쳐다보곤 했다. TV에서는 푸른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와, 하얀 옷과 빨간 옷, 혹은 파랗고 노란 옷을 입은 선수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거나 딱딱한 공을 던져댔다. 아버지가 응원하는 팀은 아버지와는 정 반대의 팀이었다. 서울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버지는 파란 옷을 입은 서울의 팀을 좋아하셨다.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검고 빨간 호랑이 팀을 응원하였기에, 나는 속으로 친구들을 따라 가만히 호랑이 팀을 응원하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 결과에 따라 집안의 분위기도 갈렸다. 서울팀이 이기는 날이면 집안은 그 어느 가정보다 화기애애했고, 지는 날이면 여지없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내야구가 막을 올렸다. 그래서 나는 호랑이의 팬이면서 그 누구보다 서울팀이 이기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팬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당사자인 어머니도 마찬가지인지, 저녁을 차리시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와중에도 흘끔흘끔 TV를 쳐다보며 경기 결과를 확인하곤 하셨다. 아버지의 입에서 제기- 라던가 신경질적으로 TV를 음소거로 돌려놓는 날에는 음소거 된 TV만큼이나 집안도 조용해졌다. 그러면 집안에는 간간히 아버지의 욕설과 함께, TV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이 선수들이 야구를 했다. 공을 쳐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고, 사람이 그렇게 많은 데도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은 야구만 했다. 환호하는 관중석을 잡아줄 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은 조금 우스꽝스럽기까지 해서, 분위기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내가 킥하고 웃으면 가끔씩 아버지는 조기 교육 차원에서 나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스윙연습도 실시하곤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음소거가 된 이후로는 무표정하게 TV만을 쳐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서울팀은 너무나 자주 졌고 TV는 너무 자주 음소거가 되었으며 아버지의 욕설은 끊이지를 않았다. 그 이후 너무 많이 졌던 서울팀은 다음해에 이름과 옷을 바꾸고 전혀 새로운 팀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마도 저 선수들도 아버지의 화를 견디지 못하고 음소거 된 TV에 다시 소리를 되찾아줄 요량으로 그랬던 모양이더라고, 나는 생각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도 있었다. 과연 우리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종 야구가 과연 야구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품었던 철없는 시기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과연 야구가 가내수공업으로도 가능한 경기인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얼굴이 빨간 아버지는 그 당시에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더군다나 나와 아버지는 응원하는 팀이 달랐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어쩐지 탐탁지 않은 얼굴로 가끔 째려보시기까지 하는 통에 도저히 물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우리 집안의 선호하는 팀이 달랐던 것은 아버지가 서울 사람이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야반도주하여 광주로 와서 나를 덜컥 낳아버렸기 때문이지 내가 아버지의 의지를 배신했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이러한 태생적인 이유를 충분히 감안한 아버지는 나에게 팀을 바꾸라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늘 그랬던 것처럼 투구 연습을 시도하거나 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가끔 호랑이 팀에게 서울팀이 지는 날이면, 나를 씩씩 대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곤 했다. 아무튼 그날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토종 야구가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날 TV속에서는 우리 아버지는 쨉도 안 되는 사람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아마도 그들은 미국 어딘가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는 메이저리거들임에 분명했다. 그렇게 TV 속 야구에 갑자기 등장한 그들은 불붙은 쓰레기통을 던져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불붙은 물건을 던지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들은 그야말로 마구를 뿌리는 사람들이었다.


불이 붙은 쓰레기통을 던지고, 온갖 닭 뼈니 소주병이 그라운드 위를 날아다녔다. 흥분한 메이저리거 중 하나는 의자를 들고 신나게 경기장의 이곳저곳을 내리치고 있었다. 와우, 그곳에 야구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진짜 미국 야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우자 그들이 한국 야구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 경찰들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경찰들도 한 야구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지라, 그들은 최루탄을 터뜨려 메이저리거들을 손쉽게 제압해버렸다. 어느새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경기장에는 목소리의 높낮이가 없는 한 아줌마의 경고 방송만이 TV를 타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경기장 내에서는 질서를 지켜 퇴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야구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역시 아마추어의 야구는 어설픈 면이 있다고,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다음날 스포츠 신문에는 ‘관중 난동, 이대로 좋은가?’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올라왔는데 어째서 야구를 난동이라고 표현했는지 기자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기자는 이대로 좋다는 말을 하기 위해 그런 신문 제목을 뽑았을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메이저리거가 한국에 난입했던 그날 밤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왠지 모르게 가슴 부분이 콕콕 찌르듯 아파오던 날이었는데, 아버지는 나를 앞에다 앉혀 놓고 진로 소주를 종이컵에 따라 벌컥 벌컥 들이키면서 예전 이야기까지 해주셨다.


“애비가 말이다. 예전에는 봉황대기의 투수였단다.”


처음 듣는 아버지의 과거였지만 예상대로 아버지는 수준급의 투수였다. 아버지는 봉황대기의 4강 투수였고, 4강이라는 것은 전국에서 제일 잘하는 팀 중 4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까지 덧붙여 주셨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주변 사람들이 쓰는 운동권이라는 말을 돌려 말한 듯싶었는데, 그 진위야 어찌됐든 아버지가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어서 차라리 TV가 음소거 된 순간이 좀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눈빛은 너무나 아련했다. 18.44m 밖에 있는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 느낌, 경기장에서 누구보다 높은 마운드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을 때의 희열, 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그날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 했다.


“주자가 에… 1,2루에 있는 상황이고 나는 한 타자만 잡으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순간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생소한 전문 용어까지 써 가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아버지는 TV속에서 음소거로 야구를 하는 사람들과 별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아버지는 당시 아버지가 처했던 난감했던 상황 속으로 다시 들어가 있었다. 이미 지역 예선과 전국 대회를 거쳐 아버지의 어깨는 삐걱대고 있었고, 그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회에 들어서자 누군가 바늘로 계속 어깨를 찌르고 있는 듯 한 고통이 아버지를 엄습했다고 했다. 눈앞에는 고교 최고의 9번 타자가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고, 벤치를 향해 교체를 요구했지만 감독은 근엄하게 고개를 저었단다. 그 벤치에는 교체할 선수가 있었긴 하지만 그 선수는 감독 친구의 아들로 순전히 명문이었던 아버지의 학교에 빽으로 들어온 선수였기에 자격미달이었노라고 아버지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서 내가 던질 수밖에 없었던 거야! 마지막으로 공을 던졌을 때 어깨에서 ‘빵!’하는 소리가 들렸지.”


그 소리를 끝으로 아버지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공을 던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팀은 역전패. 4강까지 올랐기에 대학진학도 가능했지만 선수 생명이 끊긴 자신은 어떤 학교도 부르지 않았고, 그 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너, 요기 베라라고 알고 있니?”


갑작스럽게 나온 외국인의 이름에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는 내가 모를 것을 미리 아셨는지 내 당황한 기색을 보고는 씨익 웃으면서 자신의 질문에 자신이 대답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거든. 그 사람이 그랬단다.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나는 그의 말이 정말 좋아서 매일 외우고 다녔었어.”


야구 명언까지 섞어가며 아버지의 예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감명 깊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실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의 어깨가 상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정말로 야구 연습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가셨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시덥지 않은 생각이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알고 계셨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나와 아버지의 사이에 사과 몇 조각 담긴 접시를 놓아두실 뿐이었다.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로 어머니 쪽을 흘끔 보던 아버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는 듯 하다가 포크로 사과 한 조각을 찍어 나에게 건네주셨다.


“슬기야. 이 애비랑 야구장에 갈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나는 적잖이 당황해서, 아버지가 건네주는 사과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멍하니 아버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아버지의 얼굴도, 여전히 억세 보이는 아버지의 팔뚝도, 나에게 내밀어진 사과 한 조각마저도 다 당황스러웠다.


“서울에 가는 거야. 요새 버스를 타면 몇 시간이면 간다더라. 너랑 같이 가서 야구도 보고 서울 구경도 하고. 너 서울에 가본 적 없지?”


나는 그냥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서울이라는 곳은 TV에서밖에 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는 것이 조금 무서웠다. 그보다 야구에서 졌을 때 아버지의 화를 감당할 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나는 살짝 굳은 얼굴로, 하지만 아버지의 호의를 결코 거절하지 않겠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부엌의 어머니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내 기색을 눈치 채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래, 엄마하고도 같이 가는 거다!”


껄껄 웃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별다른 내색을 비치지 않으셨다. 그날 밤엔 다른 날보다 더 시끄럽게 언성을 높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내가 자고 있는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오히려 눈을 더 꼭 감기만 했다.


처음으로 서울에 가던 그 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마침 서울 팀과 호랑이 팀의 경기라고 했다. 우등 고속버스를 끊으신 아버지는 ‘우등’을 강조하시면서 삶은 계란 몇 개를 사와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어머니는 어젯밤에 운동을 많이 하셨는지 얼굴에 유난히 반창고를 많이 붙이고 내 옆 자리에 앉으셨다. 그렇지만 어머니도 평소와는 다르게 곱게 차려 입으신 것이 서울에 가는 길이 나처럼 기대가 많이 되는 모양이셨다. 아버지는 우리 둘의 뒷자리에서 좌석을 한껏 뒤로 제치시고는 이내 곯아 떨어지셨다. 큰 소리로 코를 고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시던 어머니가 나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정말 오랜만에 꼭 달라붙은 어머니에게는 특유의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났다. 그 냄새 어드메에 내가 더 어린 아기였을 때 지금보다 더 아름답던 어머니가 숨어있는 듯 해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머니는 잠깐 놀라셨다가 이내 긴장을 풀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슬기야. 엄마는 슬기를 사랑한단다.”


엄마의 나긋한 목소리에 나는 저절로 잠이 오듯 나른해짐을 느꼈다.


“엄마는 이번에 엄마의 아빠랑 엄마를 보고 올 거야. 슬기도 아빠랑 재미있게 야구 구경하고 있어야 한다. 알았지?”


그때의 어머니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을 하는 시간 중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머니는 그저 눈을 감고 잠이 드신 후였다. 어머니가 나에게 한 번만 더 그런 목소리로 이야기를 걸어주기를 바랬지만, 그 평화로운 바람도 이내 버스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버스의 엔진 소리와 함께 4시간이 되는 길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중간에 15분인가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오줌이 많이 마려웠지만 행여 부모님이 깨실까 내색도 하지 못하고 겨우 흔들리지 않게 된 버스 안에서 삶은 계란을 버스 팔걸이 부분에 톡톡 두들겨 손으로 깨 먹었다. 계란껍질이 잘게 바스라져 버스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잘 모아서 검은 비닐 봉투에 넣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계란 껍질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사방으로 흩어져서 더 이상 주울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도리가 없었다.


서울은 과연 대도시였다. 터미널에 내린 어머니는 나와 아버지에게 별 다른 작별의 인사도 없이 어머니의 작은 손가방만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셨다. 검은색에 몸매가 드러나는 예쁜 원피스를 입은 어머니의 뒷모습은 마치 내 어머니가 아닌 듯, 나는 갑작스레 어머니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멀어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다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담배꽁초를 던지시고는 그 억센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터미널 밖으로 나섰다. 이제 어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역시 어머니가 어디 갔느냐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그만두기로 했다. 아버지는 능숙하게 표를 사서 지하철로 나를 데리고 내려가시는데 모든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모든 행동이 서울만큼 낯설었다. 이곳에 도착한 뒤로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원래 서울 사람이라던 아버지는 너무나 순식간에 서울 사람이 되어 역무원에게 웃으며 길을 물어보기도 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밀쳐지지 않도록 내 손을 꼭 잡아주시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와 간 곳은 종합 운동장이었다. 종합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는데 매일 운동을 하는 곳이라면 필요 없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단체로 운동을 하는 곳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나의 짧은 생각도 야구장 안에 들어서자 모두 묻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성을 질러대고, 푸른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TV보다 더 멋있었다. 나는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 것을 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광경은 이상하기까지 했다. 곧 내 나이만한 아이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와 우물거리며 애국가를 불렀고 사람들은 아이의 모습에 왁 웃어댔다. 아이가 뛰듯 걸어 도망간 자리에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메아리쳐 울리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마치 소년 같은 얼굴이 되어 경기장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앞에서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이 열심히 몸을 흔들며 서울 팀이 이기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야구를 보는 건지 응원단장을 보러 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은 너무 크게 - 너무 크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내가 TV로 보던 사람들은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었는데 실상은 생각과는 분명 달랐다.. 도대체 이게 뭐지. 내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순간 아버지의 억센 팔이 나를 응원단장과 치어리더의 사이로 순간이동 시켰다.


“춤춰라! 춤춰라!”


내가 응원 단상 위로 올라가자 만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춤을 추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히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아버지도 사람들과 함께 연신 박수를 쳐대며 나에게 춤을 추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이런 기대가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낯설었기 때문인지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응원단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울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까 그 아이의 애국가에서 웃었듯 나를 보고도 모두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쳐댔고 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으로 내가 단상 위로 올라갔을 때처럼 억지로 나를 끌어 내리신 뒤 등짝을 세게 내리치셨다. 커다란 손이 어찌나 매서운지 아픔에 내가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리자 아버지는 그 시끄러운 곳에서 내 귀에 대고 으름장을 놓았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놈, 더 울면 여기 놔두고 가 버릴테다.”


아버지가 정말로 그럴 것 같아서, 나는 이내 울음을 멈추어야 했다. 내가 울음을 멈추자 전광탑에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경기는 일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울팀은 그 경기에서 점수를 많이 냈다. 경기 초반에는 2점을 내서 앞서 나가다가 7번째 공격 때 무려 7점을 내어 승부가 완전히 서울팀으로 넘어갔다. 아버지는 서울팀이 점수를 낼 때마다 신나게 소주를 들이키셨고 반대쪽의 사람들은 아버지와는 반대의 이유로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 와서야 진정한 토종 야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대쪽의 관중들이 하나 둘 들이닥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그라운드에는 선수들은 온데간데없고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야구를 해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외야의 광고 부착물을 뜯어내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또 어떤 아저씨는 베이스를 뽑아 저 멀리 집어 던졌다. 급기야는 몇 몇이 아예 그라운드에 자리를 잡고 주거니 받거니 술판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이 친숙한 모습에 금세 경기에 흥미를 되찾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정이 달랐다.


“저 개새끼들.”


아버지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나에게 야구공 대신 집안의 온갖 물건을 던지기 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대로 반대편 관중이 그랬던 것처럼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원래 선수들이 앉아야 할 벤치의 의자를 집어 들어 반대편 관중들 중 하나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쳐 버렸다. 나는 당당하기까지 한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대편의 천 명의 야구선수 중 구백 구십 구 명이 아버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대로 의자를 내팽개치고 다시 1루 쪽으로 내 빼기 도망치기 시작했고 우리 편이 당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경기장으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가내 수공업의 야구를 뛰어넘은 산업혁명 시대의 대규모 야구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퍼뜩 해냈다. 그렇게 시작된 야구는 가족야구와 달리 한 쪽의 일방적인 백기 투항으로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과 사람들이 뒤엉켰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넓은 도시에서 모두가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나는 그저 아버지만 찾고 있었다. 내가 응원단상에 올라가서 춤을 추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버지가 나에게 다시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수백만 가지 생각해보며 나는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경찰이었다. TV에서 보던 것과 꼭 같이, 또 다시 안내방송이 경기장 안을 가득 울렸다.


“관중여러분은 관람 질서를 지켜 경기장에서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경기장 내의 폭도들과의 마찰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나는 폭도도 아니고 관중도 아니고, 아버지를 따라 온 아이에 불과했기에 어디로 퇴장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어수선한 경기장을 한바탕 경찰들이 휩쓸고 난 뒤, 아버지가 알려준 명언대로 놀랍게도 9회가 끝날 때까지 야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참을 혼자 기다리던 내 앞에 아버지가 나타난 것은 그날 지하철도 모두 끊긴 후였다.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묵묵히 내 손을 잡고, 아버지는 찢어진 셔츠와 흙투성이가 된 운동화 차림으로 나를 근처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여관에 짐을 풀 때까지 아버지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얀 연기만 연신 내뿜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피곤한 얼굴로 여관의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슬기야. 이 애비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평소 아버지가 무섭긴 했지만 천 명에게 맞서는 일은 아이들에게 자랑할 만큼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고서는 깊게 한숨을 내 쉬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여관 방문을 열고 들어선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방에 한 발이나 들여놓았을까 하는 때에 나는 이미 재빨리 엄마에게 안겼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들어와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엉성하게 안아 준 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내일 경찰서에 나오래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소요 주동자가 무슨 소리에요. 당신 슬기 데리고 야구장에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하더니 고작 한 일이 이거에요?”


평소였으면 무언가 날아가도 날아갔을 텐데. 웬일인지 어머니는 당당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불안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친정에는 잘 갔다 왔어?”


아버지의 말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비릿한 피 내음이 작은 여관방을 메웠다. 어머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머니 아버지가 슬기 데리고 이제 집으로 들어오래요.”


“잘됐네…….”


잘됐다는 아버지는 말과는 달리 힘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버지의 앞에 무슨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도장 찍어요. 이제 우리는 끝났으니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분 사이가 심상치 않은 것은 작은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괜히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고, 어머니는 시선을 아버지에게 고정한 채로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아버지는 그제야 몸을 느릿느릿 일으켜서,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역시 아무 말도 없이 서류에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도장을 꾹 찍었다. 원하는 대로 되었음에도 어머니는 정말로 화난 얼굴이 되어서, 아버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집에 가서 짐 정리나 하고 가… 마지막으로 밥 한 끼만 해주고.”


아버지의 힘없는 부탁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새벽차로, 다시 나와 어머니,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이번에는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심각한 목소리로 ‘최악의 관중 난동’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가 등장해서 사죄를 하는 모습과, 난동 당시의 현장 모습도 함께 자료로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혹시 내가 TV에 잡혔는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느린 화면으로 나오고 있는 방송의 저 뒤로, 배트 대신 철제 의자를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날의 기억이 과연 실제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이후 몇 달간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끝났다던 두 분은 몇 달이 지났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 아버지는 몇 번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다가 돈을 내고 유치장 신세는 면하신 모양이었고, 어머니는 여전히 부엌에서 요리를 만드시거나 집안일을 하셨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아버지가 토종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구를 하지 않는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여서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 가족은 일요일에 놀이동산에 놀러가기도 했고 가끔은 외식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때 아버지가 영원히 야구계에서 은퇴해 지금처럼 지내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그 때와 꼭 맞추어 서울팀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항상 짧게만 잘랐던 내 머리카락도 어깨춤까지 닿을 정도로 자랐다. 그리고 우승한 그 날 아버지는 서울에 갔다 온 이후 처음으로 얼큰하게 술이 취해서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슬기야, 오늘 서울팀이 우승을 했단다!”


나는 깜짝 놀라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매우 흥이 나 있었는지, 나에게 붕어빵 한 봉지를 쥐어주시고는 안방으로 향하셨다. 나는 아직 뜨거운 붕어빵을 반으로 갈라, 안의 따스한 단팥을 후후 불어 한 입 물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맴도는데 안방으로 간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먹고 있던 붕어빵을 집어 던지고는 안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오랜만에 야구를 보았다. 봉황대기 4강 투수였던 아버지는 아마 응원팀이 우승한 그 날 4강 투수의 면모를 어머니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마추어인 고등학교 팀 출신이라 그런지 아버지는 투수라기보다는 타자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걸레니 쓰레받기니 하는 온갖 청소도구로 어머니를 연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야구도 좋지만 어머니는 그 정도 고급 야구는 따라가지 못 한다구요! 단팥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날이 처음으로 두 분의 야구에 끼어든 날이었고, 아버지는 몇 달간의 인자함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자폐 천치자식! 너 까짓 녀석 병신으로 태어나서 니 에미라는 것만 고생하며 나한테 두들겨 맞고 사는 거야! 그것이 운명이지! 말도 못하고, 사내자식도 아니고! 이 밥버러지야!”


아버지는 나에게 그대로 부지깽이를 휘둘렀고, 나는 너무 큰 고통에 별다른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언제나 콜드게임으로 종료되곤 했던 우리 집의 야구가 뒤집힌 순간은 바로 그 때 그 날 그 시각 그 분 그 초였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와도 그렇게 극적으로 끝내기 홈런을 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흥분한 아버지가 정신없이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옷을 찢고 피칭 연습을 시작하려던 그 때, 어머니는 기대하지 않았던 팀의 9번 타자가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리듯 아름다운 스윙으로 아버지의 후두부를 부지깽이로 정확하게 가격했다. 공의 실밥이 터질 정도로 강하게 때린 어머니의 스윙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털썩 주저앉아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내가 TV에서 많이 봐 왔던 광경이었다.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 홈런을 맞은 투수는 언제나 그런 눈으로 공이 넘어간 쪽의 스탠드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어머니의 손이 감격에 못 견뎌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을 나는 정확히 목격하였다. 그리고 내 다리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생소한 감각에 나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내 입이 열리는 순간 어머니가 홈런타자가 배트를 던지듯 손에 들었던 부지깽이를 떨어뜨리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또한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 또한 멍한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삼 만 명의 관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막대풍선이 탕탕거리며 번개를 내뿜고, 내 안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어머니에게 헹가레라도 쳐 드려야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야구는 그런 식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전설적인 미국의 야구 선수라는 요기 베라가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중얼거렸다. 몰랐는데, 그도 삼만 관중 안에 섞여 내 안에서 막대풍선을 쳐대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야구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제.


그는 정확한 한국말과 사투리로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목소리인지, 요기 베라의 목소리인지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스탠드에 불이 꺼지고, 어느새 관중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불 꺼진 마운드에는 어머니만이 서 있었다. 눈물인지 땀인지 어머니의 짜거운 물이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마지막 경기에서 누가 이긴 것인지.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요기 베라인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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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이네요. 거울 웹진 리뉴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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