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오늘은 마이클 잭슨이 떠나는 날이다. 촉순은 반차를 쓰고 일찍 집에 돌아왔다. 일분일초라도 더 마이클 잭슨과 함께 있고 싶어서이다. 촉순도 다른 스릴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집 마이클 잭슨이 가장 잘생겨 보인다. 하지만 더 멋져보여야 해. 촉순은 그간 익힌 메이크업 기술을 총동원 해 마이클 잭슨의 얼굴을 화장했다. 어느 순간부터 촉순의 화장품 값보다 마이클 잭슨의 화장품값이 더 나가기 시작했다. 촉순의 정장보다도 비싼 마이클 잭슨의 무대의상도 구매했다. 한개도 아쉽지 않다. 마이클 잭슨이니까. 한개도 아쉽지 않아.

 좁은 반지하 원룸에 두 사람이 살았으니 얼마나 꽉 찬 삶이었나. 행복한 나날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떠나고 남은 방을 뭐로 채우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쩌나. 어쩌나. 마이클 잭슨 없으면 이제 어쩌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스릴러 뮤직비디오 무대의상을 권했다. 전은동이랑은 달리 촉순은 마이클 잭슨에게 빨간색 리본 머리띠를 씌우는 괴악한 코디는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예전 무대 의상에 충실. 마이클 잭슨 미소 지으며 촉순에게 속삭였다. 땡큐. 아이 러브 유. 몇백번째 듣는 호의. 몇백한번째 들어야 했는데. 촉순은 아쉬운 마음뿐이다. 유 아 웰컴이야. 마순아.

 가방에는 이제껏 모은 무대의상과 라면상자를 집어넣었다. 이사할 때 마이클 잭슨을 담았던 가방이다. 촉순이 모은 의상이야 몇 벌 되지 않지만 가능한 라면을 많이 챙겨주고 싶어 고른 가장 큰 가방. 낑낑대며 계단을 올랐다. 괜찮아. 그래도 마이클 잭슨보다는 가볍잖아. 겨우 문 앞에 짐을 다 옮겨 놓았다. 괜히 챙긴 거 아냐? 아냐. 마이클 잭슨이 라면을 그리워하면 어떡해. 머나먼 길 떠나다 라면이 먹고 싶어지면 어떡해. 괜한 거 아냐. 촉순은 마이클 잭슨을 바라보았다. 마이클 잭슨은 웃는다. 촉순도 웃고 만다.


 이사 올 때 일이다. 알지? 이상한 데 가는 거 아냐. 잠깐만 숨어있으면 돼. 가방 안에서는 노래 부르지 말고. 새 집으로 가는 거니까 겁먹지 마. 그때 촉순은 마이클 잭슨을 다독여야했다. 마이클 잭슨은 말을 하지 않는다. 칠성 사이다마냥 청량한 눈으로 촉순을 바라 볼 뿐이다. 얘가 지금 알아듣기는 했으려나. 가능한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마이클 잭슨이 겁에 질려서 떠날지도 모르니까. 마이클 잭슨들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니까. 촉순은 또다시 마이클 잭슨을 잃고 싶지 않았다.

 촉순은 커다란 가방에 마이클 잭슨을 넣었다. 가방이 묵직하다. 20대 여성 평균보다 살짝 높은 체중/근밀도를 가진 촉순이 업고 다닐만한 무게는 아니었다. 어렵게 어렵게 바퀴가 달린 가방을 구해야만 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촉순의 폐 500cc 가득히 채워졌다. 이웃의 눈을 피하기 위해 새벽을 택했다. 겨우 구한 집은 마이클 잭슨을 기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람이 든 가방을 밀어가며 끌어가며 언덕을 오르는 촉순은 땀투성이. 10분이면 오를 언덕을 1시간 가까이 걸려 올랐다. 2012년 대한민국에서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단한 일이다.

 조심스레 가방을 반지하로 내린 다음에 지퍼를 끌러 내렸다. 땡큐. 아이 러브 유. 가슴을 누르면 소리 나는 인형처럼 마이클 잭슨이 읊조렸다. 맞아. 이 맛에 마이클 잭슨이랑 사는 거지. 촉순은 아직까지도 그때 들이킨 차가운 맥주 마지막 한방울을 잊지 못한다. 흐르는 땀까지도 맥주 냉기에 식어 상쾌했다. 그대로 매트리스 위에 엎어졌다. 휙휙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마이클 잭슨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이클, 노래 불러줄래? 유 아 낫 얼론. 속삭이듯이.

  유 아 낫 얼론, 유 아 낫 얼론. 진짜 마이클 잭슨이 바로 앞에 있다. MR 뺀 생목 라이브지만 그렇기에 더 달콤해. 감미료로 치자면 아스파탐. 설탕보다 200배는 달콤한. 사카린은 아냐. 그렇게 싼 맛이랑 비교할 수 없거든. 자일리톨도 아니지. 건강에 좋아요 당뇨병 환자에 좋아요 치아에 좋아요 휘바휘바 이런 느낌에 비해 훨씬 세련됐지.

 떠나야 하셨나요. 이 차가운 세상에 절 홀로 남겨 놓고. 마이클 잭슨의 팬들은 정말 이 차가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줄 알았다.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의 사망소식이 전 세계에 퍼졌으니까. 마음속으로만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었다. 마이클 잭슨이 돌아왔다. 그들을 마이클 잭슨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마이클 잭슨의 팬들은 말 그대로 유 아 낫 얼론이 되었다. 문제라면 마이클 잭슨도 얼론이 아니었다는 점 정도일까. 내 마음 속에는 항상 당신이 머물지요. 그러니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아니다. 마이클 잭슨은 항상 촉순의 방에 머문다. 그래서 촉순은 혼자가 아니다. 이사 오고 첫날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외롭지 않게.



 날이 날인지라 길거리 곳곳에 마이클 잭슨이 보인다. 물론 길마잭이 압도적이다. 그래도 멋있지. 멋있지 멋있어. 하지만 촉순은 촉순이 기르는 마이클 잭슨이 가장 멋있다고 굳게 믿는다. 남들 보기엔 길마잭이나 집마잭이나 다 똑같은 마이클 잭슨이지만. 스릴러들은 다들 그렇다. 촉순은 경외감을 느꼈다. 신기하지. 2012년 여름 대한민국 서울 산동네에 대여섯명의 마이클 잭슨이 자신과 함께 걷는 모습은 2010년에는 상상도 못한 서울의 일상이니까. 아니. 일상까지는 아니고. 촉순이 양떼 모는 개마냥 마이클 잭슨들을 몰고 다니진 않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이렇게 길마잭들이 많이 보이는 거지.

 튀긴 튄다. 지나가는 사람마도 마이클 잭슨과 촉순을 쳐다봤다. 마이클 잭슨에게 선글라스도 씌웠건만. 뭐예요. 마이클 잭슨 처음 봐요? 통계 보니 수만명의 마이클 잭슨이 서울을 배회하고 있다더만.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떠나는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을 이웃을 바라보는 눈으로 보지 못한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이웃으로 보지는 않는. 길 위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마이클 잭슨을 보면 멀리 빙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촉순도 그랬다. 촉순은 스릴러 경력이 짧다.

 마이클 잭슨은 단체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좋아. 완전 좋아. 마이클 잭슨이 거리 여기저기 나타나면서 생긴 가장 큰 즐거움은 이거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거리에서 흘러넘친다. 단순히 이어폰을 꼽은 거랑은 급이 다르다. 산책하면서 콧노래 부르기. 마이클 잭슨 코가 많이 상하긴 했지만 여튼. 그저 같이 흥얼거리며 길을 걷는 건 그 어떤 콘서트의 라이브보다도 흥겹다. 좋아. 좋아 죽는다.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인류가 이제까지 믿어 온 과학적 물리학적 진리와는 동 떨어진 현상이니까.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고. 그것도 똑같은 인물이 단체로. 곳곳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그 죽은 이의 인생과 별 상관도 없는 멀고 먼 한국 땅에서. 매일 같이 춤추고 노래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촉순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마이클 잭슨 사냥꾼이라도 나타나면 어쩌지. 마이클 잭슨 사냥이야 한물 간 유행이지만 그래도 걱정은 걱정이다. 촉순네 마이클 잭슨은 촉순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하게 촉순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물론 마이클 잭슨 사냥이야 무의미한 일이다. 지금이야 다들 포기했지만 예전엔 장난 아니었다. 미국에서 마이클 잭슨을 포획한 후 인체실험을 비롯한 다양한 테스트를 시도하려 했다. 그런들 뭐하나. 마이클 잭슨은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만한 것들이 접근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동화 속 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사라지듯. 마이클 잭슨은 진짜 문워커였다. 지구 상의 일반적인 물리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문워커. 그래서 어떤 마이클 잭슨도 피를 흘리지 않았다. 어른들한테는.


 촉순이 마이클 잭슨을 기르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야! 너네 지금 뭐해! 일년 전 출근길 이야기다. 촉순은 아이들이 마이클 잭슨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이클 잭슨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보다 악성 루머에 친숙한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마이클 잭슨에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이 아이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사례는 발견되지도 않았는데. 도리어 서울을 배회하는 마이클 잭슨은 좋은 놀림감에 불과하다.

 촉순은 아이들이 손에 든 막대기를 빼앗았다. 너네 지나가는 사람 때리라고 학교에서 가르치든? 어디서 감히 멀쩡한 사람을 패고 지랄이야 지랄이! 아이들은 촉순이 만만한 모양이다. 도리어 대든다. 저게 뭐가 멀쩡해요. 코는 떨어졌지 피부도 울긋불긋하지. 엄마가 마이클 잭슨 변태랬어요. 니네가 봤냐, 봤어! 보지도 않고 듣기만 하고 그걸로 사람을 때리냐! 때려도 가만히 있잖아요.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러죠. 마이클 잭슨은 난처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어른들의 폭력에는 바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마이클 잭슨이지만 아이들의 장난은 묵묵히 당하기만 했다.

 마이클 잭슨은 돌아왔지만 코 안에 들어간 보형물과 화장품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도 하지 못한다. 단지 노래만 부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땡큐와 아이 러브 유 두 문장도. 젝슨 파이브에서 나와 갓 솔로로 벤을 불렀을 때나 조명에 맞아 코 수술을 받기 전의 마이클 잭슨이라면 아이들의 대우도 이렇지 않을 텐데. 촉순은 울고만 싶었다. 아이들은 흥이 떨어졌다는 듯 떠났다.

 땡큐. 아이 러브 유. 마이클 잭슨은 웃으며 촉순을 위로했다. 고맙긴 뭐가 고마워 이 바보야. 빗 잇. 빗 잇. 치란 말이야. 치라고. 애들이 까불고 그러면 일단 비트하고 봐. 오케이? 두 유 노우 왓 암 셍? 마이클 잭슨은 그냥 웃기만 했다. 그러다 이제야 알았다는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데이 톨드 힘 돈트 유 에버 컴 어라운드 히어. 돈트 워너 시 유어 페이스, 유 베터 디스어피어. 더 파이어스 인 데어 아이즈 앤드 데어 워드 아 리얼리 클리어. 소 빗 잇, 저스트 빗 잇. 어휴. 바보. 리듬을 비트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 꼬마들을 비트하라고.

 촉순은, 그래. 촉순은 몇번 헛기침을 했다. 나랑 갈래? 집이 좁긴 한데. 엄마랑 아빠도 있긴 한데. 너 정도는 데리고 살 수 있어 내가. 같이 가자. 땡큐. 아이 러브 유. 골든리트리버같은 눈으로 마이클 잭슨은 촉순을 바라볼 뿐이다. 바보야. 같이 가. 손잡고. 바보. 앞으로 같이 사는 거야. 그리고 다음에 그 꼬마들 만나면 대가리 뚜껑을 따버릴 테야.


 엄마가 또 마이클 잭슨 주워오지 말랬지. 얘가 시집도 못 가게. 집안 한번 대차게 말아먹을래? 촉순의 어머니는 촉순이 데려온 마이클 잭슨에 질색팔색을 했다. 몰라 몰라. 마이클 잭슨 좋아한다고 뭐라 할 사람이랑은 만나고 싶지도 않네요. 그리고 전에 데려온 마이클 잭슨은 전은동 고년이 며칠 맡아달라고 부탁한 거 들어준 거잖아? 얘가 이거나 그거나. 어서 빨리 쟤 노래 그만 부르게 못해? 엄마. 여기가 가장 멋진 부분이란 말이야. 시끄럽고 너 니 아빠 들어오기 전에 빨리 마이클 잭슨 주운 곳에다 돌려놓고 와. 됐어요. 차라리 내가 집을 나갈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촉순은 그렇게 집을 나왔다.

 마이클 잭슨을 기르는 것은 개를 기르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 집이 넓어야 한다. 둘. 가족과 주변 이웃의 이해를 받아야 한다. 셋. 장기간 외출했을 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촉순은 모든 점에서 자격미달이었다. 집을 나와서 두번째 문제라도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마이클 잭슨과 동반입주가 가능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촉순은 결국 몰래 기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삿날부터 마이클 잭슨을 큰 가방에 집어넣고 몰래 숨겨 와야 했던 것이다.

 언덕에 파묻힌 반지하. 회사랑 가까우니 잘된 거지 뭐. 알량한 월급엔 고시원도 벅차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좁으면 마이클 잭슨이 답답해 하니까. 반지하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을 몰래 길러야 되기는 했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 복학을 위한 등록금은 고스란히 집세로 날아갔다. 촉순은 그 덕에 만년 대학생에 한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그래도. 그래도. 마이클 잭슨이니까.


 이제 마이클 잭슨이 돌아간다. 촉순은 자기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고민했다. 자취하면서 집세 무는 걸 생각하면 한 학기는 더 휴학을 해야 할 터. 에이. 아냐. 그래도 집에 돌아가진 않을 거야. 독립심이 생겼다거나 자취의 단 맛을 알아버렸다거나 그런 거 아니다. 마이클 잭슨과 함께 있었던 공간.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울려 퍼졌던 공간. 마이클 잭슨이 떠나가는 지금 그 공간을 벗어나서 산다는 것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촉순은. 이제는 빗 잇의 빗 잇이 누굴 치라는 뜻이 아니라 도망을 치라는 이야기임을 안다. 진성 스릴러 다 됐다.



 슬슬 종로다. 석양도 지고 하늘색이 동에서 서로 그라데이션이 만들어진다. 촉순같은 스릴러들이 제법 눈에 띈다. 더욱이 촉순처럼 마이클 잭슨과 자기 혼자만 온 것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과 함께 온 경우가 많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 마이클 잭슨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따른다. 사람들 시선이 좋지만은 않아서. 표도 새로 끊어야 하고. 어떤 스릴러 홈페이지에서는 버스를 대절해서 한 동네 스릴러들이 뭉쳐서 오기도 했다던데. 자가용이 있더라도 종로 3가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쉽지만은 않다.

 촉순은 일부러 걸어왔다. 옷가방이 무겁긴 했지만. 오늘은 마이클 잭슨이 떠나는 날이니까. 한걸음이라도 더 마이클 잭슨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마이클 잭슨과 걷는 것은 즐겁다. 스텝 바이 스텝. 박자에 맞추어 이리저리 발재간을 놀리며 장난을 치는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은 그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촉순의 눈꼬리에서 볼로 이어지는 눈물선을 따라 쓰다듬었다. 땡큐. 아이 러브 유. 그래. 걸어오길 잘했지.

 여기저기서 마이클 잭슨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삼삼오오 모인 스릴러들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한 모양. 유년 시절부터 평생을 가수로 지낸 마이클 잭슨이니 노래도 많다.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부른 별별 노래들이 종로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즐거이 웃고 떠들고. 춤이 있고. 노래가 있고. 얼마나 매니악한 인간들이 모였는지 촉순은 듣도 보도 못한 노래도 허다하게 들렸다. 그렇다. 오늘은 수만명의 마이클 잭슨과 수십만명의 마이클 잭슨을 사랑하는 이들이 광화문으로 모이는 날이다.

 방송국에서 나온 듯 전문적인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하긴. 세기의 이벤트잖아. 촉순은 자기가 역사책에 '마이클 잭슨을 배웅한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촉순처럼 혼자 온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스릴러끼리 패를 짜서 오거나 가족끼리 오거나. 더러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스릴러든 아니든 오늘 우리 기쁜 날이다.

 촉순은 자기가 제대로 된 스릴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음악을 잘 듣는 편도 아니었다. 엉겁결에 기르기 되기 전까지 마이클 잭슨에 딱히 관심도 없었다. 스릴러가 되면서야 매일 같이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들었을 뿐 자신은 스릴러 미달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클 잭슨의 모든 앨범을 소유한 것도 아니요 가십에 정통하지도 못했다. 왕부장의 지적대로 촉순은 마이클 잭슨과 동시대를 살아간 적이 없다.


 촉순이 마이클 잭슨에게 가장 많이 불러달라고 부탁한 노래는 리사 잇츠 유어 버스데이다. 촉순이 어린 시절 처음으로 들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것도 정규 앨범이 아닌 심슨 가족들에 잠깐 나오고 말았던 노래. 리사. 오늘은 너의 생일이지. 하느님이 너에게 축복을 내린 날. 너는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 내 자랑거리.

 TV 만화 시리즈 심슨 가족에서 호머 심슨은 아들 바트의 장난으로 정신병원에 갇히고 자기가 마이클 잭슨이라고 주장하는 덩치 큰 백인을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퇴원한 호머는 자칭 마이클 잭슨을 자기 집에 데려오고. 바트는 깜빡하고 여동생 리사에게 줄 생일 선물을 준비 못하고 만다. 자칭 마이클 잭슨은 바트와 함께 리사에게 바칠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가 바로 리사 잇츠 유어 버스데이. 촉순은 심슨 가족 덕에 마이클 잭슨을 만난 셈이다.

 나이를 먹고 마이클 잭슨을 기르고...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리사 잇츠 유어 버스데이는 마이클 잭슨이 만들기는 했지만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로 심슨 가족들에 출현할 수 없었던 탓이다. 대역이 부른 노래였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인터넷으로 심슨 가족을 찾아봤다. 그러네. 달라. 음색이 약해.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촉순 옆에는 진짜 마이클 잭슨이 있었으니까. 언제라도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리사 잇츠 유어 버스데이는 아직도 촉순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다. 마순아. 노래. 촉순 잇츠 유어 버스데이. 불러줘. 마이클 잭슨을 기르게 된 그날부터 촉순은 매일 매일이 생일이다.



 전화다. 어디니? 카페야? 빨리 왔네. 응. 나도 건물 앞이야. 마순이? 물론 같이 있지. 걸어왔어 같이. 응. 나 올라가니까 끊을게. 은동이다. 촉순에게 마이클 잭슨을 알려준 사람. 골수 마이클 잭슨 팬. 하지만 빌리 진이다. 마순아. 은동이 이미 도착했대. 빨리 올라가자. 은동이 오랜만에 보겠네? 은동은 촉순의 마이클 잭슨에게도 잘 대해주었다. 자기가 기르던 마이클 잭슨의 의상이나 악세사리를 물려주기도 했고. 예전에 함께 있었던 마이클 잭슨이 그리워질 때면 꼭 촉순을 찾아오기도 했다.

 여기야 여기. 얘. 밖에 마이클 잭슨이나 스릴러들 진짜 많더라. 너 광장까지 가면 아주 까무러치겠다. 촉순의 호들갑에 은동은 웃으며 답했다. 가게 안에는 마이클 잭슨과 같이 안은 사람들도 있었다. 마순이 오늘 아주 쌔끈하네. 멋지다. 그렇지 뭐. 오늘 마지막이니까. 은동은 미소 지으며 마이클 잭슨을 바라보았지만 그 미소에는 쓸쓸함도 담겨 있다.

 촉순아. 은동의 목소리가 떨린다. 응? 오늘 말야. 촉순은 은동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응. 마돌이도 와 있겠지? 은동이 버린 마이클 잭슨, 마돌이. 자취방에서 쫓겨나게 생겨 촉순에게 며칠 마돌이를 돌봐달라 부탁을 하고 다른 집을 알아봤지만 결국 은동은 마돌이를 새로운 집으로 데려갈 수 없었다. 응. 분명 와 있을 거야. 지금까지 잘 지냈을 거야. 빨간색 리본 머리띠 쓰고 왔을 거야. 은동은 빌리 진이다. 마이클 잭슨의 러버가 아니다.

 스릴러들은 빌리 진을 싫어한다. 책임감이 없다는 거다. 물론 마이클 잭슨을 기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빌리 진을 싫어하는 스릴러 중에서도 빌리 진은 나온다. 그래서 촉순은 은동을 이해한다. 오히려 촉순이 스릴러가 아니었을 때. 마이클 잭슨에 관심도 없었을 때 촉순은 절친한 친구인 은동이 스릴러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은동이 자신에게 마돌이를 맡기면서 촉순은 사람이 이렇게 눈물이 많은 동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은동을 따라 스릴러가 되었다. 은동아. 가자. 어두워지기 전에 혹시 마돌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무조건 찾을 수 있을 거야. 오늘은 마이클 잭슨이 떠나는 날이잖아.



 광장 쪽으로 들어가려 하니 방패를 들고 플라스틱 봉을 차고 있는 전경들. 그리고 닭장차. 사람과 철의 벽이 서있었다. 단단한 보호구가 개미껍질마냥 가로등 빛을 반사한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 수백이 빽빽하게 줄을 선 모습에 촉순은 주눅이 들었다. 마이클 잭슨의 손을 꽉 붙잡았다. 저기요. 지나가고 싶은데요. 막지는 않았다. 전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축제인걸. 은동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전경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갔다.

 마이클 잭슨은 확실히 기존의 논리와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존재다. 그런 존재가 전부 오늘 한 자리에 모이니 사고가 일어날 걱정이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저기 늘어선 사람들은 단순히 통제를 위해 서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이들은 왜 지금을 즐기지 못할까. 노래가 두려울까 춤이 두려울까. 위축이 되면 될 수록 마이클 잭슨을 꽉 붙잡았다.


 한때 마이클 잭슨 좋아해 본 적 없는 사람도 있나? 촉순씨 유세가 너무 심하네. 나도 왕년엔 마이클 잭슨 광팬이었어 광팬. 그런데도 난 아이들 그러는 거 다 이해가 되는데? 말은 바로 하랬다고, 지금 서울 떠돌아다니는 마이클 잭슨이 어디 진짜 마이클 잭슨인가? 거리 곳곳에서 나타나서 고성방가나 하는 괴물들이지. 촉순씨 다른 게 아니라 그게 좀비야, 좀비. 난 자기 집에다 마이클 잭슨 데려다 놓고 노래시키는 종자들, 스릴러들? 이해가 안가. 걔네 다 싸이코들이야 싸이코.

 물론 옛날처럼 마이클 잭슨이 혁명적 영웅이었을 땐 좀 달랐지. 방에 마이클 잭슨 포스터 없으면 간첩이었다니까. 그런데 지금 젊은애들이 마이클 잭슨 노래 듣기나 해? 걔들 잭슨 파이브가 뭔지 알긴 아나? 그런데 유행 다 지나가고 이제 유치해진 노래 듣겠다고 좀비들을 방 안에 들여놓는 거 그게 이상한 거지. 촉순씨도 엄밀히 보면 그 세대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열을 내시나.

 거기다 그 사람 말년이 오죽 추했나. 아이들 성추행하고 소송 걸리고 빚더미 몰려서 집안에 만든 놀이동산 차압당하고 그랬다며? 내 알기로 마이클 잭슨쯤 되는 스타라면 빚을 질래야 질 수 없을 만큼 돈을 벌 텐데 얼마나 사치가 심하고 사람이 허영덩어리면 그랬겠어. 성형부작용으로 얼굴도 완전히 망가지고 말이야. 그게 또 자기 흑인인 거 컴플렉스 때문에 억지로 백인처럼 꾸미고 다니려고 그래서 그런 거 아냐. 촉순씨가 그 사람 팬이건 아니건 이런 건 중립적인 입장에서 봐야지. 잘못한 건 잘못한 거잖아.

 어느 날이던가. 촉순이 점심시간 잠깐 잡담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마이클 잭슨 사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왕부장은 한심하다는 듯 대꾸했다. 왕부장은 자판기 커피를 내려놓으며 마이클 잭슨의 변태스러운 면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쏟아내었다. 부모와의 불화나 형제자매와의 관계 또 맥컬리 컬킨을 비롯한 아역 배우들과의 추문 등 가십으로 이루어진 백과사전에 보이스레코더 기능을 추가한 것처럼 보였다. 부모를 죽인 원수한테도 못할 말들이 왕부장의 입에서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물론 촉순은 참을 수 없었다.

 성추행 소송 걸린 거 무혐의로 결론 났거든요? 그리고 마이클 잭슨이 파산은 무슨 파산이야 마이클 잭슨이 코 풀었던 휴지가 왕부장님 월급보다 비싸게 팔리는데, 왕부장님 결산 때도 그렇고 산수는 할 줄 아세요? 그리고 애가 무대에서 떨어져서 코 성형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가지고 뭐라고 그러시는데 왕부장님이 그렇게 환장하는 여자 아이돌 가수들이야말로 개조인간이죠 개조인간. 그리고 백인 되는 수술 받은 거 아니거든요? 그런 수술 있지도 않거든요? 애가 성형 좀 하면 하는 거지 그게 무슨 잘못이에요? 파산을 당하든 성형을 하든 지가 지 돈으로 한 걸 왜 왕부장님이 뭐라고 그러세요? 왕부장님이 걔 엄마야? 세상에 파산하는 사람 성형하는 사람 모두 붙잡고 그렇게 욕할 거야? 왜 애꿎은 마이클 잭슨만 갖고 뭐라 그래? 촉순은 화를 참지 못한 나머지 점심시간이 끝난 후 퇴근시간까지 입을 열지 못한 다음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마치면서 물기를 말리는 도중에 혼잣말로 화풀이를 해댔다. 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지.


 마이클 잭슨은 괴물이 되었다. 죽었다 살아나서가 아니다. 무수한 모습으로 복제가 되어서도 아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이 죽기 전부터 마이클 잭슨을 괴물로 대했다. 냉소, 조소, 가소의 대상. 위 아 더 월드는 놀림거리가 되었다. 러브 앤 피스는 유행이 지났다. 마이클 잭슨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이다. 촉순은 이 변화에 자기 자신도 일조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


 왕부장의 비꼼을 들었던 그날 촉순은 마이클 잭슨의 손을 잡고 고백을 했다. 마순아. 나 말이야. 예전엔 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아담스 패밀리 알아? 영화말이야.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오거든. 웬즈데이라는 여자애가 나와. 되게 예쁜 애야. 이름도 멋있어. 웬즈데이. 당장이라도 자살할 것처럼 우울한 이름이잖아. 마녀의 후예고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는 게 꿈인 소녀지. 웬즈데이의 철학은 도덕에 대한 반항과 조롱, 멸시야. 끔찍하게 사랑스러운 안티 히로인. 소수자의 대변인. 얘가 내 어릴 적 롤모델이었어.

 이런 웬즈데이가 사회생활을 잘할 리 없잖아? 그래서 선생들이 얘를 혼내. 근데. 혼내는 방법이 되게 웃겨. 방안에 가둬놓고 묶어 놔. 그 다음에 TV에서 아기사슴 밤비가 나오게 한 다음 힐 더 월드를 틀어줘. 그래. 마순이 니 노래. 너의 노래가 방안을 가득 메우자 웬즈데이는 비명을 질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본 꼬마 여자아이가 항상 그러듯이.

 나도 그랬지. 웬즈데이가 내 롤모델이라고 그랬잖아. 세상을 치유하자. 더 나은 곳을 만들자.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맞아. 유치하다고 생각했어. 나도 있었거든. ID에 다크나 타천사를 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시절이. 세계평화니 뭐니 다 몽상이고 헛소리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있지. 하지만 있지. 니가 너무 그리워졌어. 모든 사람들이 이 노래를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온 거야. 그리고 그 세상은 너무나 재미가 없더라고. 다들 너를 비웃지만 너를 비웃는 사람들 중 너보다 나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마순아. 21세기의 웬즈데이는 너를 사랑해.

 불러줘. 힐 더 월드. 촉순은 마이클 잭슨과 같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크게 노래 할 수 있게. 작은 공간을 만들자. 더 나은 공간을 만들자. 마이클 잭슨을 기르는 것은 개를 기르는 것과 비슷하다. 언제나 위로 받는다.



 언더 더 문라잇 유 시 어 사이트 댓 올모스트 스탑 유어 하트. 달빛 아래서 당신은 심장이 멎을 듯한 광경을 보네. 광장에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비록 달 아래는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마이클 잭슨. 촉순은 8차선 도로 한가운데를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과의 이별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 방송국에서 왔는지 커다란 카메라를 든 중계진도 보였고 음악을 틀기 위해선지 커다란 앰프를 얹은 트럭도 보였다. 그리고 하늘에는 거대한 아담스키형 우주원반이 중력을 무시한 채 못 박힌 마냥 고정되어 있다.

 우주원반은 작은 동네만한 크기지만 하늘 높이 떠있어 그늘이 고작 광장을 덮을 정도뿐이다. 더욱이 우주원반의 밑바닥에는 거대한 조명이 설치가 되어 있어서 그 아래의 시야가 그닥 어둡지 않다. 맨 처음 원반이 나타났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래를 돌아다닌다.

 어떤 사람은 마이클 잭슨의 무대의상을 입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십여명의 마이클 잭슨과 행진한다. 어떤 사람들은 단체로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맞추어 군무를 추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둘러앉아 수다를 떤다. 술자리도 흔치 않게 보인다. 8차선을 꽉 메운 인파들은 다들 자기 좋을 대로 놀고 있다.

 그저 마이클 잭슨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다. 촉순처럼 집마잭을 기르는 스릴러들도 있고 길마잭과 친하게 지내는 애호가들도 있고. 아니 아예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온 사람도 있다. 친구 따라 온 사람. 애인 따라 온 사람. 가족끼리 온 사람.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에 반해 모인 사람.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모인 사람. 별별 사람들이 모여 그저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듣거나 춤을 구경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 아이도 있고 외국인도 있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이도 부지기수다.

 다들 마이클 잭슨과 이별하기 전 남은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온라인 스릴러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의 무리나 마이클 잭슨을 스승으로 모셔놓고 연습하는 비보이들의 무리가 가장 시끌벅적하다. 촉순이 인터넷에서 한번 들렀던 동호회나 동영상으로 보았던 비보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촉순과 은동도 결국 맥주 한잔. 딱 좋은 날씨. 거대한 우주선 아래 조명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인 사람끼리 정답게. 마이클 잭슨과 함께. 술없이 어찌 넘어갈 수 있을까. 그저 걷기만 해도 술이 당긴다. 마돌이를 찾아야 된다는 조급함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기분이 고양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이클 잭슨과 지샜던 밤. 좋아하는 가사. 목소리. 손동작. 일화. 책. 영화. 과거. 잭슨 파이브. 춤. 공연. 뮤직 비디오. 스릴러. 사랑. 세계평화. 광장. 우주인. 오늘은 스릴러의 밤이다.


 시간이 되었다. 자정. 가운데 조명을 제외한 모든 조명이 꺼졌다. 스모크가 광장을 메운다. 피아노 음이 흘러나온다. 마이클 잭슨들이 중앙으로 모인다. 가운데 조명마저 꺼지고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넓이의 조명이 쏘아진다. 마이클 잭슨이 빛의 기둥 안에 들어가자 라이브 공연장의 와이어 연출처럼 우주선으로 끌어올려진다. 얼론 쉬 라이스 웨이팅 서라운디드 바이 글룸. 인플래티드 바이 쉐도우스 페인팅 더 룸. 더 라이트 프롬 더 윈도우 컷츠 스로우 디 에어 앤드 핀스 더 차일드 라잉 데어 스케어드 오브 더 문. 수만의 미성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마이클 잭슨과의 이별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하늘로 오르는 마이클 잭슨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떼창. 마이클 잭슨의 지구상 마지막 콘서트. 노래가 끝나고 노래가 이어진다. 이 노래에서 저 노래로. 저 노래에서 그 노래로.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마이클 잭슨이 떠날 때까지 계속될 콘서트. 가사를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가사를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노래 부른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고 누구는 춤춘다.

 몇천번째 마이클 잭슨이었을까. 그 마이클 잭슨은 빨간색 리본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분명 마돌이다. 마돌아. 마돌아. 은동은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의 떼창에 은동의 목소리는 완전히 묻혔다. 하지만 은동은 보았다. 마돌이가 손을 흔드는 것을. 자기 자신을 향해 언제나처럼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을. 수십만명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마돌이가 찾아냈다는 것은 백이면 백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은동에게 중요하지 않다. 은동에게 마이클 잭슨은 처음부터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으니까.

 마순이가 떠날 차례가 됐다. 촉순은 마순이에게 이제껏 모은 공연 의상과 화장품, 라면박스가 담긴 가방을 건넸다. 마순이는 가방을 한번 들어보다가 그 무게에 깜짝 놀란 듯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여느 때와 같이 미소 지었다. 촉순. 잇츠 유어 버스데이. 갓 블레스 유 디스 데이. 유 게이브 미 더 기프트 오브 어 리틀 시스터 앤드 아임 프라우드 오브 유 투데이. 촉순이 가장 좋아하던 노래. 마순이는 촉순을 껴안아 주었다. 웃으며 마이클 잭슨들 사이로 사라졌다.

 유 아 낫 얼론. 유 아 낫 얼론. 모든 춤이 끝나고. 모든 노래가 끝나고. 모든 마이클 잭슨이 떠나고. 새벽이 왔다. 우주선은 우주 저 멀리로 날아갔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떠나야 하셨나요. 이 차가운 세상에 절 홀로 남겨 놓고. 아니다. 아니다. 촉순은 옆을 둘러보았다. 스릴러들. 사람들. 나는 얼론이 아니다. 너도 얼론이 아니다. 마이클 잭슨. 고마워요. 사랑해요.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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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 10.06.29 13:14 댓글 수정 삭제
    가슴이 몰캉해지는 글이네요 ;_;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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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10.06.29 23:56 댓글 수정 삭제
    저도 처음엔 빗 잇이 때리라는 뜻인줄 알았어요.
    마이클 잭슨, 누구나 아는 이름이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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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10.06.30 20:03 댓글 수정 삭제
    사이님//감사합니다. 원래 이런 글 잘 쓰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는데 다루는 소재가 소재다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
    레이님//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빌리진의 가사내용을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묘사를 할 걸...많은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을 오해하고 있거나 피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건 확실히 안타깝습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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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인간 10.07.09 01:16 댓글 수정 삭제
    개인적으로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식의 글입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는데요, 마치 로맨스 버전의 '20세기 소년' 같아요.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일어날 것 같으면서도 약간 갸우뚱 해지고 막 그런 거 있잖아요)
    정말 잘 봤습니다.
    요새 책은 많이 읽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인터넷에서 저의 치수를 재고 쓴 듯한 글을 보니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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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10.07.09 19:06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새인간님. 저 자신은 만화로치면 독설없는 [제멋대로 카이조]나 광기 없는 [사우스파크] 정도로 자평하고 있답니다. ...앙꼬없는 찐빵이네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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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투 10.07.13 18:04 댓글 수정 삭제
    사무실에서 읽고있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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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10.07.13 23:50 댓글 수정 삭제
    그런 덧글 달아주시면 제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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