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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의 식인 룸메이트

2006.10.28 23:0110.28

얼마 전 나에게는 뜻밖의 룸메이트가 한 명 생겼다. 우리는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같이 살기로 계약을 맺었다. 계약은 구두로 이루어 졌고 내용 또한 간단했다. 계약서나 서명 따위가 필요 없었던 것은 룸메이트의 위협적인 실체와 나의 생존본능만으로도 계약이 유지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녀석과 맞닥뜨린 순간부터 나에게 선택권이라는 것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계약의 내용은 이러했다. 하나, 나는 그에게 거주할 공간과 먹을거리를 제공할 것(그는 육식성이었다.) 둘, 위의 사항을 지키는 한 그가 나의 목숨을 보전해준다. 보다시피 이것은 불평등 조약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룸메이트라 부르는 것은, 우리가 정말 룸메이트처럼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오피스텔의 침입자를 발견한 건 5일전 10시경이었다. 그날 낮에 나는 회사에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서울의 한 잡지사였는데, 나는 주로 낱말 맞추기나 우스갯소리 따위들로 잡지의 뒷부분을 메우는 일을 했다. 그리고 추가로 이번에 여름 호 특집으로 마련된 ‘소름’ 란에서 무시무시한 공포체험 수기를 기사로 싣는 일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내가 지어낸 것들이었는데, 구독자들이 보내오는 제보나 취재에서 듣게 되는 것들은 모꼬지 때 모닥불 앞에서나 들으면 좋을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장이 내 글에 퇴짜 놓으면서 ‘좀 더 자극적이고 강도 높은 이야기를!’을 요구하는 바람에 ‘긴 머리의 귀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에서 시작한 글이  ‘그가 내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로까지 바뀌어 버렸다. 그날은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 반 쯤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편집장 앞에 선 것이었다.

“자네 소설가야?”

편집장은 맨 앞장을 읽다 말고 말했다. 그는 목살에 파묻혀서 잘 보이지도 않는 턱을 당기면서 안경너머로 나를 올려봤다. 그것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런 제스처를 보였다.  

“나름대로 무섭게 쓰느라고….”

“자네 소설가냐고.”

“아뇨, 그렇지만 편집장님이…”

“내가 이딴 판타지나 쓰라고 특집을 자네한테 맡긴 줄 아나?”

그는 나를 깔고 뭉개버리는 것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주말에 영화를 보거나, 바다낚시를 해본 적이 결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다시 쓸까요?”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 제발 내가 책상을 뒤엎고 네 면상을 후려갈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줘.’

그때가 편집장실 문을 열댓 번째는 노크했을 때였으니 그러고도 남을 만 했다.  

“됐네, 마지막 것만 테마를 다르게 해서 그냥 실어버려.”

그가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를 괴롭히는 일에 그만 싫증을 느낀 모양이었다.

“왜 안 나가고 멀뚱히 서있어.”

“저, 제가 맡기로 한 C양 단독 인터뷰 건 말입니다. 그게 김 기자에게 넘어갔다는 게 무슨 얘깁니까? 뭔가 착오가 생긴 거 아닙니까?”

  “자네 말대로 그건 물 건너갔어. 자네가 괴상한 소설 쓰고 있을 동안 이미 김 기자가 직접 찾아가서 장소까지 섭외해놨네. 그쪽 측에서 시일을 갑자기 앞당기는 바람에 그렇게 됐네, 그런데 당사자가 자꾸 그 친구하고만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나.”    

“아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한마디도 안하고 멋대로 넘겨버리다니요! 어차피 여름 호 특집하고 별개의 문제였잖습니까!”

“뭐야? 그래서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건가? 네 주제나 알고 떠들어, 퍼즐이나 만들던 놈이 이번에 생각해서 특집까지 내줬더니, 감개무량한 줄 모르고 나서는 꼴이구먼.”  

그 뒤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해서 편집장실을 빠져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10시 가까이가 되서야 술에 흠뻑 취한 상태로 집에 갔다. 그리고 지금의 룸메이트를 만났다.  

  

<어서 오게.>

문을 열자마자 들린 소리였다. 지나치게 낮고 음산한 목소리였는데, 나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 열쇠로 열고 들어온 곳은 내 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술기운에 몽롱한 상태로 어두컴컴한 집안을 살펴보았다. 그때 거실 쪽에 무언가 검은 형체가 어른거렸다. 언뜻 봤을 때 그것은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그것이 천천히 다가왔고, 나는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그날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두 발로 서있었고 커다란 두 눈도 껌뻑거렸으며 좀 전에 들은 소리의 근원지가 분명한 입도 달려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절대 인간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인간이라면 악어 같은 이빨이 촘촘히 나있지도 않을 것이며 눈에는 흰자위 외에 눈동자라는 것이 있어야했다. 그의 눈알은 온통 허옇게만 되어 있어서 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감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시뻘겋게 피를 처바른 입이란! 나는 몸속의 알코올 기운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놈은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우비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는데 모자도 달려 있었다. 그 모습은 말에게 신발을 신겨 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엄청난 크기의 발이 육중한 몸을 떠받치고 있었고, 팔은 유난히 길어서 거의 무릎 가까이까지 늘어뜨려져 있었다. 괴물의 얼굴은 화가 밥 로스 아저씨처럼 털투성이였는데, 멍든 것 같이 푸르스름한 빛의 얼굴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갈색 털로 덮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내가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놈이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말이 통한다면 아직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것 아닌가. 녀석이 나를 발기발기 찢어버리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워,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말했다.

<따뜻한 곳… 그리고 먹이.>

놈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놈의 징그러운 외관상으로 봤을 때에는 영화에 나오는 에이리언처럼 쐐애액 하고 질러대는 소리가 더 어울릴 법했다. 그런데 그 짐승의 입 같은 곳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굵직하고 위엄 있는 톤으로 말이다.  

“그럼… 내, 내가 뭘 하면 되지?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게 좀 있을 거야. 우선 그거라도…”

나는 과연 그가 검은콩우유나 토스트 빵을 좋아할지 궁금해졌다.  

<내가 널 먹는 동안 얌전히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마도 놈이 선호하는 음식은 내 몸뚱이인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그의 시선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내 넓적다리를 뜯을 생각에 군침을 삼키고 있는 걸까. 갑자기 집에서 기르고 있던 구관조 ‘메리’에게 생각이 미쳤다. 녀석은 누군가 나타나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곤 했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던 것이다. 놈의 입에 묻은 피가 메리의 것이 아니길 바랐다. 특별히 아껴서가 아니라 괴물에게 바칠 제물로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새장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놈이 말했다.

<나는 새 같은 건 먹지 않는다. 그러나 죽일 수는 있지….>

그는 어느새 새장 틈으로 기다란 손톱을 넣고 쿡쿡 찔러댔다. 메리는 그 안에서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갑자기 밀려드는 두려움과 슬픔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지금 나의 처지도 새장속의 메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벌써 죽기는 싫었다. 아니, 죽더라도 저 괴물 뱃속에서 소화되고 싶지는 않았다.

<오기 전에 한 놈을 먹었다. 그래서 지금은 너를 해칠 생각이 없다. 나는 삼일에 한 놈만 먹으면 충분하거든.>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놈에게 먹혀줘서 나를 살게 해준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하지만 역시 죽여 버릴 수는 있지. 내가 너를 죽이는 건 눈을 깜빡거리는 것만큼 쉬운 일이거든.>

“저, 저기, 제발 부탁이야. 죽기에 나는 아직 너무 어려. 게다가 어머니도 보살펴 드려야 해. 나마저 떠나면 홀로 남으실 거야. 너도 낳아준 어머니가 있을 거 아냐. 그래, 너한테 먹히기 전에 단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를 뵙게 해줘.”  

나의 빌어먹을 유머감각이 왜 이럴 때 자꾸 튀어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효심이란 게 있을 리 없는 놈에게 통하기나 할 말인가. 게다가 놈에게 부모란 게 있기나 할까. 만약 있다면 식습관을 영 엉망으로 들여놓은 게 틀림없다.    

<내가 데려다 주지!>

말을 마친 놈이 갑자기 달려들더니 그 무지막지한 손으로 내 목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는 나를 벽에다 강하게 밀어 붙이고는 그 끔찍한 얼굴을 들이댔다. 나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는 수십 개의 날카롭고 촘촘한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는 허연 눈으로 나를 집어삼킬 듯이 노려봤다.(그의 눈엔 눈동자가 없었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놈의 입김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네가 설쳐대는 걸 보니까 갑자기 식욕이 돋는다.>

“아…제발 머, 먹이는 어떻게든 준비할 테니까 이, 이러지 말아줘.”

내가 무슨 수로? 목숨이 간당간당 하는데 무슨 말을 못하랴. 나는 괴물이 원한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주고 싶었다. 불행스럽게도 놈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아보였다. 그는 나를 한 팔로 들어 올린 채로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이 식인괴물이 머리부터 한 번에 해치워 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발가락부터 잘근잘근 먹혀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괴물은 내 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먹이를 준비한다고?>

괴물이 말했다.

“워, 원하는 건 뭐든지 할게.”

<우선 여길 좀 따뜻하게 해봐.>

지금은 8월 달이었다. 나는 그가 뭔가 잘못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긴…무척 더운데…덥다는 건 지나치게 따뜻하고 땀이 난다는 뜻이야. 춥다는 건….”  

<그런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러니까 여길 더 덥게 만들라는 거야.>  

놈이 으르렁 거렸다.  

  녀석은 어지간한 날씨에도 추위를 잘 타는 모양이었다. 아직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벽장에서 전기난로를 꺼내서 틀어 놓았다. 얼마가지 않아 내 몸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의 온도만 유지되고, 나를 배고프게만 만들지 않는다면 널 죽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동거계약은 맺어졌다. 녀석은 벽장속이 마음에 들었는지 언제나 그 안에서만 웅크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놈은 심한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회복을 하기 위한 거처로 내 집을 선택한 것 같았다. 나는 점차 마음이 놓이면서 그가 별로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게다가 녀석은 특종이었다. 맙소사! 이런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영화에서만 보던 뱀파이어 같은 것일까.

녀석은 적어도 삼 일 동안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동안 난 녀석을 없앨 방법을 궁리할 것이었다. 물론 도망갈 기회도 얼마든지 많았다. 그러나 나는 녀석이 경찰의 총알세례를 받기 전에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로 하였다. 누구보다도 먼저, 생생하게!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내 카메라는 벽장 속에 있었지만 녀석이 진을 치고 있는 한 도저히 꺼내올 수 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삼일 째가 되었다. 나는 녀석을 붙잡아 둘 먹이를 준비해야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전화가 경찰에 연결되었다.  

“제 집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지금 경찰을 동원할 수 있는 한 많이 보내주세요. 총도 꼭 가져와야 합니다. 놈은 괴물이에요. 곧 나를 잡아먹고 말겁니다.”

난 마지막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잠시 후 내 집에 온 것은 순경 한 명뿐이었다. 더더욱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건 그가 예의바르게도 초인종을 눌렀을 때였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괜찮습니까?”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친절한 내 괴물룸메이트이가 몸소 문을 열어 주었다.

잠시 후 나는 경찰 한 명을 먹어치우는 식인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경찰에서 연락이 두절된 경찰을 찾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겠지. 그러면 괴물은 어김없이 그들을 죽여 버릴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이 괴물이 초현실적인 존재라고 여겨졌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아마 악마일는지도 모른다. 나는 녀석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그러나 녀석이 배고플 때가 되면 여지없이 누군가를 초대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가지 않아 녀석은 내 의도를 알았는지 나를 자유롭게 해줬다. 놈은 얼마든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에 내가 허튼짓을 하지 않을 거라 자신하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다만 녀석의 식사 날이 다가오면 누구를 희생물로 데려가야 할지가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다. 기왕 죽어줘야 할 사람이라면 내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을 고르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리고 그 답은 회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이, 자네 꽤 오랫동안 잠수 탔다면서? 편집장이 자넬 자른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어.”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김 기자가 말을 건넸다.

“넌 신경 꺼줘,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

“신경 끄라고! 물론 그래야지. 어차피 잠시 후부터 우리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닐 거니까 말이야. 혹시 그거 아나? 너 때문에 특집이고 뭐고 다 망쳐버렸어.”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편집장실로 향했다. 편집장 따위가 날 자를 자격은 없었다. 그도 내 말을 듣는다면, 아마 믿어준다면, 내가 건져올 특종에 관심을 보일 것이었다.

“오, 자네 그동안 뭐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나?”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가 밟아 뭉갤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사람이 사라져 버렸을 테니까.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죄송해? 암 죄송해야지. 네가 지금 죄송하지 않으면 뭘 하겠나?”

난 마음속으로 내일 룸메이트의 식사 감으로 편집장과 김기자 중에 고르느라 무척 고민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편집장이 흥분해서 소리치는 동안 나는 전혀 다른 생각에 전념할 수 있었다.

“어이, 책상치울 준비는 되었나?”

김 기자가 편집장실을 나오는 나를 보고 말했다. 그로써 내 룸메이트의 식사메뉴에 대한 고민은 없어졌다. 김 기자라면 나 역시 씹어 먹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김 기자! 자네 내일 저녁에 내 집에 좀 오면 안 되겠나?”

내가 말했다.

“자네 집엘?”

김 기자는 뜻밖의 초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은 그동안 우리는 서로 앙숙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집에 특종거리를 하나 모셔두고 있는데 말이야. 자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 그러네.”

“특종? 도대체 집에 뭐가 있다는 건가.”

“글쎄. 나도 그걸 모르겠어. 자네가 직접 봐야만 하네.”

사실이었다. 내 집엔 특종감이 있고 나는 그에게 보여주려는 것뿐이었다. 혹시나 괴물이 그를 잡아먹더라도 나에겐 책임이 없다. 난 그저 보여주겠다고 했지,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 따윈 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걸 나한테 보여주겠다는 거지? 뭔가 이상하군 그래.”

“기사를 쓰기 전에 자네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러네. 난 아직 부족한 게 많지 않나.”

“음, 생각해 보겠네.”

김 기자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그는 올 것이었다. 특종이라면 밥상에 달려드는 파리처럼  마다하지 않는 게 바로 그였다. 그동안 김 기자가 내게서 가로챈 소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날 밤에 집에 들어간 나는 무심코 냉장고문을 열었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냉장고에는 피범벅이 된 살점들이 칸마다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놀란 것은 냉동 칸에서 나를 노려  보는 듯 하는 머리통을 봤을 때였다.

“제발 이런 것들은 냉장고에 넣지 말았으면 해.”

내가 벽장 쪽을 향해 외쳤다.

<그냥 놔두면 썩는다.>

벽장 속의 그가 답했다.

“음식을 자주 남기는 것 같군.”

나는 내가 시체를 음식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끄럽다. 난 날짜지난 것들은 안 먹어.>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사실 놈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것조차도 전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인터넷에서 온갖 괴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사이트를 찾았다. 그러다가 1829년 미국 조지아 주에 있는 늪지대에 나타났다는 괴력의 유인원에 대한 것을 발견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그곳 마을사람들에게 엄청난 크기의 발자국에 대한 얘기를 들은 7명의 사냥꾼들이 이를 사냥해보기로 하고 며칠간 늪지대를 탐험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 끝에 곰과 인간의 발을 합쳐놓은 것 같은 대형발자국을 발견하고 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야영 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발로 걷는 초대형 짐승이 자신들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냥꾼들은 총을 들어 놈에게 발사했지만 놈은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진해왔다. 총을 계속 맞으면서도 놈은 일행을 잡아 찢어죽이기 시작했다. 결국 거의 모두가 죽임을 당하고 2명이 남을 때가 되어서야 괴물이 쓰러졌고, 남은 사냥꾼들은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나는 이 자료에서 묘사된 유인원의 모습이 벽장 속에 있는 놈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자료에는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없었지만 놈은 변종일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설화 같은 이야기에 코웃음 치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런데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놈이 왔단 말인가. 비행기타고? 혹시 놈이 춥다고 했던 것도 그곳의 습한 기후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질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어쨌든 놈도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어리석게도 놈을 죽이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놈의 무시무시한 눈을 본다면 누구라도 악마의 화신으로 여길 것이었다. 나는 괜한 희망에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놈은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 것이다.


다음 날 저녁에 김 기자가 나의 오피스텔의 초인종을 울렸다. 나는 김 기자를 안으로 들였고 괴물은 여전히 벽장 속에 있었다.

“고맙네. 와주었구먼,”

“자, 보여줄 것은 어디에 있나?”

김 기자는 금방이라도 손에 든 카메라 셔터를 누를 듯한 기세로 집안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그는 비열했다.

“급하기도 하군! 자네가 직접 보게나. 저기 벽장 속에 있네.”

나는 벽장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기 전에 안에 있는 게 뭔지 말해줄 수 없나?”

김 기자는 특종에는 불물가리지 않고 달려들기도 했지만 의심 또한 많은 사람이었다.  

“물론 말해주지. 저 안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들어있네. 사진 찍을 준비나 하게.”

내가 능청을 떨며 말했다.

“날 가지고 놀 생각이라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김 기자가 나를 무섭게 노려봤다.        

“음, 물론이지. 그런데 조심하라구. 자넬 잡아먹을지도 모르거든.”

이번 역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사실이니까. 그러나 김 기자는 몹시 화가 난 듯했다. 그는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이 헛걸음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김 기자는 냉소를 흘리며 벽장문을 열어 젖혔다.

그때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악마적인 희열을 느꼈다. 나는 괴물이 손을 쓰기도 전에 김 기자가 놀라서 죽어 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다.

“내가 뭐랬나. 특종이랬잖아.”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김 기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있었다. 무거운 정적이 얼마간 흐른 뒤에 그의 손이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터졌다. 그와 동시에 괴물은 그를 잡아챘고 무시무시한 힘으로 목을 비틀어 버렸다.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지 않았나.”

나는 아직도 숨이 붙은 채 눈을 껌뻑거리는 김 기자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잠시 후 그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그리고 괴물은 놈을 벽장 속으로 끌고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내가 웃고 있음을 발견했다. 내 앞에 펼쳐진 끔찍한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잔인하게 웃음을 흘리고 있지 않은가. 내 자신이 점점 악마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분노와 함께 죄책감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나는 얼마 전 죽어버린 경찰에게서 슬쩍 빼돌려둔 권총을 꺼냈다. 벽장속의 놈은 정신없이 식사에 열중할 것이었다. 나는 놈의 머리가 있을 만한 곳을 향해 천천히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장전이 되어있질 않았던 것이다. 그때 벽장문이 거칠게 열렸다. 나는 얼른 총을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이걸 치워라.>

녀석은 내 발치에 김 기자의 머리카락 뭉치를 던졌다. 녀석이 유일하게 먹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남은 머리카락을 불에 태운 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나는 또다시 무기력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멀리 도망가 버릴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 목숨은 하나니까… 조금만 참자. 조금만…….    

김 기자의 일이 있은 후, 나의 직장생활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집장이 실종되어버린 김 기자의 일거리를 나에게 넘겼고 덕분에 나는 몹시 바빠졌다. 이상한 점은 편집장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핀잔을 주는 일도 거의 없어졌으며 가끔 나와 마주칠 때면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띠우기까지 했다. 나쁘지 않은 변화였지만 어쩐지 나는 곤란했다. 이제야 나의 룸메이트의 식사메뉴로 떠오른 편집장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를 없애버릴 구실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니까.




나는 편집장의 본심을 드러나게 할 요량으로 몇 가지 대책을 세웠다.


“편집장님, 여름 호 납량특집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편집장의 호출로 그에게 갔을 때 문을 열자마자 내가 한 말이었다.

“못하겠다니. 그건 무슨 소린가?”

편집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의 둥글고 퍼진 얼굴이 오늘따라 귀여워 보였다.  

“못해먹겠다고요. 가뜩이나 일거리도 많은데 그딴 귀신나부랭이 얘기 같은 건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시죠.”

“자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아무리 그래도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떡하나.”

아직까지 그는 나를 타이르려는 말투였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선 안됐다.

“제가 쓴 판타지 같은 글은 화장실 휴지로 쓰는 게 낫겠다면서요. 휴지 더 필요하십니까?”

“내가 그런 소릴 다했나? 그랬다면 미안하네. 그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봐.”

편집장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니었다. 편집장이 나에게 사과를 할 리가 없다. 그가 불치병이라도 걸리지 않는 이상…  

뭔가 숨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미안이요? 편집장님 지금 제정신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 좀 그만 하시죠 정말 신물이 납니다. 대체 저에게 왜 그러는 겁니까?”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쳐댔다. 잔소리꾼 편집장도 미웠지만 지금의 뻔뻔한 그는 더욱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지금 말 다했어? 보자보자 하니까 말이 지나치군. 자네 일 관두고 싶어서 지금 객기부리건가?”

드디어 본심이 나오는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그와 실랑이를 벌인 뒤 만족스럽게 편집장실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주머니 속의 벨이 울린 것이었다.

“여보세요.”

“나다.”

어머니였다. 오랜만에 듣는 푸근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콧잔등이 찡긋했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내가 말했다.

“나 서울 올라왔다. 근데 집을 잘 못 찾겠더라. 그 오피스텔인가 뭔가가 어디께 있는 거니?”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가 내 집에 오고 있었다. 괴물이 살고 있는 내 집……

“어머니, 그러시지 말고 어차피 제가 집에 없으니까 제가 모시러 갈게요. 밖에서 저녁식사나 하시죠.”

“야야, 됐다. 서울은 비싸기만 하지. 내가 반찬이랑 싸들고 왔으니 집에서 차려먹자.”

어머니는 여전히 고집을 피우셨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굴렀다.

“어머니, 지금 가봤자 열쇠도 없으시잖아요. 어디세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너 기억 안나니? 전에 네가 집에 왔을 때 열쇠 하나 줬었잖아. 앞으로 아무 때나 오라고… 그 열쇠가지고 있으니 걱정 말고 회사일 해라. 내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

“어머니, 그건 안돼요!”

나는 속이 탄 나머지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얘야, 너 이상하구나. 왜 소리를 지르니.”

어머니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어머니가 괜히 고생하시니까.”

“아들 보러 왔는데 뭐가 고생이니. 됐다 끊어라, 내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

전화가 끊어졌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잡지사를 뛰쳐나왔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가야한다. 어머니가 도착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

“택시!”

오늘따라 지나가는 택시가 뜸했다. 나는 택시를 잡는 일을 포기하고 집까지 뛰어가기로 했다. 부지런히 뛰면 15분. 잘하면 먼저 도착할 수도 있다. 내가 먼저 집에 가서…그 후엔? 나도 몰랐다. 전력 질주하는 나에게도 여지없이 더운 공기가 부딪혀 밀려왔다. 비가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땀이 흘러내렸고, 온몸이 흠뻑 젖어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 문 앞까지 왔을 때에는 이미 20분이 지난 뒤였다. 나는 어머니가 심한 길치였다는 기억하나에 온 희망을 걸어야 했다.  문손잡이를 잡는 내 손이 심하게 떨렸다.

‘철컥’ 문은 잠겨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이제 저 괴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또 다른 문제로 떠올랐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찍 왔군. 먹이는?>

기척을 듣고 벽장문을 연 괴물이 말했다.

“아직, 곧 올 테니 기다려.”

나는 문 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좋은 소식 하나 알려주지.>

그가 말했다.

“좋은 소식?” 내가 물었다.

<나는 내일 이집을 떠난다.>

어제였다면 이 말에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말에 도무지 만세를 외칠 기분이 아니었다.  내가 오로지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어머니가 이 집에 들이닥칠 때의 일이었다.

“이거 서운하군. 이미 일주일치 식단이 짜여 있었는데 말이야.”

내가 간신히 생각해낸 말이었다. 놈은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곧 나는 그것이 놈이 웃는 모양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은 몹시 배가 고프다.>

놈이 말했다.

“설마 이제 와서 날 없애려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른다. 난 본능이 요구하는 식욕에 따를 뿐, 너를 죽이고 말고의 문제는 일초도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놈을 해치우기로 결심했다. 권총이 들어있는 부엌서랍에 가야했다.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곧 먹이가 올 거라고. 내가 불렀으니까…금방 올 거야. 그러니…”  

나는 말하면서 천천히 부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물론 곧 올 먹이는 어머니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기고 녀석을 처치할 생각이었다.  

<지금 뭘 하려는 거지?>

그가 물었다.

“목이 말라서. 내 집인데 물먹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나?”

이번에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수상한 몸짓을 보여선 안됐다. 녀석이 두뇌회전은 느릴지 몰라도 감각하나는 예민했으니까.

나는 정수기 물을 컵에 받으면서 슬그머니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넣고 더듬자, 금속의 차가운 느낌이 손끝에 전해져왔다. 권총은 얼마 전에 장전까지 해뒀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멜로디라고 생각했다. 나는 빠르게 권총을 꺼냈다.   그 순간 괴물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바지 뒤에 총을 찔러 넣었다.

“내가 열게.”

나는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지만 다리가 몹시 후들거렸다. 문을 열자마자 어머니를 데리고 도망가자. 나는 녀석이 쫓아오면 총을 쏘기로 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잽싸게 문을 열었다.

“집에 있었군 그래.”

편집장이었다. 나는 뜻밖의 인물에 잠시 동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여긴 웬일로…”

“자네하고 여러 가지로 얘기를 나누려고 왔네. 그동안 미안한 점도 많았고 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편집장이 이렇게 인간적이었다니. 나는 적잖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편집장을 안으로 들일 것이냐. 이런 그라도 데리고 도망칠 것이냐. 그러나 곧 어머니가 올 것이었다. 편집장을 괴물에게 바치면 나와 어머니를 해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편집장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들어가서 얘기하지. 먼저 들어가겠네.”

이제 비명소리가 들리고 축 늘어진 편집장이 괴물에 손에 들려 있을 차례였다. 그러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놈이 그새 벽장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편집장이 직접 벽장문을 열게 하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에겐 좋은 기회였다.

“우선 벽장에서 와인 한 병 좀 꺼내주시겠어요?”

나는 괴물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다.

“와인이라! 그거 좋지.”

편집장이 벽장으로 걸어갔다. 나는 바지 뒤춤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향해 겨누었다. 그걸 본 편집장이 놀라 소리쳤다.

“자네 지금 뭐하는 짓인가! 나, 나를.”

“빨리 옆으로 비키세요!”

내가 외쳤다. 그리고 벽장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그와 동시에 벽장문이 활짝 열리고 괴물이 솟구쳐 뛰어나왔다. 녀석은 총을 맞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돌진해왔다. 나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겨댔고 총알은 모두 떨어져 버렸다. 괴물은 총을 맞을 때마다 한 번씩 주춤할 뿐이었다. 괴물이 그르렁거리며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때였다.

“이놈을 죽여 버려!”

편집장이 괴물의 다리에 매달려서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그는 총알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나는 힘없이 총을 떨어뜨렸다. 그런 나를 편집장이 공포서린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괴물은 편집장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그를 우그러뜨려 버렸다. 편집장의 모습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었다. 괴물은 그 상태로 벽장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저 벽에 기댄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은……살았다….





                                           ***




어머니가 놀람과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 방에 들어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놀라지 마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서 이 집을 나가서 도망치시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은 뜻밖이었다.

“너,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이런 세상에.”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기절하실 것 같았다. 난 너무 걱정스러웠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들어오시지 마세요. 벽장 속에 괴물이 있어요.”

내가 말했다.  

“맙소사. 네가 사람을…사람을 죽이고 게다가….”

어머니가 경기를 일으키더니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니, 아니에요. 이건 괴물이 그랬어요. 아주 나쁜 악마가.”

그러나 어머니는 충격에 휩싸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내 집에 경찰 여럿이 들이 닥쳤고, 나는 그들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로 끌려갔다.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 벽장을 조심하라고, 괴물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내 집을 벗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왜 죽였습니까?”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경찰인 듯했다.

나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수갑을 채운 채 앉아있었다. 그들은 여럿이었고, 그중 몇 명은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내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에게 물은 것은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였다.  

“혹시 집에 있는 시체를 말하는 거라면 나한테 묻지 마시오. 괴물은 벽장 속에 있으니까.”

내가 말했다.

“벽장 속엔 아무 것도 없었소. 시치미 떼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시오. 당신은 경찰2명을 포함해 모두 4명을 죽였고, 시체를 토막 내서 인육을 먹었단 말입니다.”

나는 웃음이 났다. 뱃속에서부터 웃음기가 올라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웃어 젖혔다.

“단단히 미쳤군.”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 늪지대의 유인원이 나에게 뒤집어 씌어버리고 떠났군. 하하하.”

나는 과연 그들이 믿기나 해줄까 의심스러웠다.

“당신은 예전에 몇 번씩이나 살인혐의로 조사를 받았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적이 있더군요.”

내 앞의 남자가 말했다.

“글쎄요, 죄가 없으니 증거도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오?”

“당신은 지금의 살인 이외에도 그동안 지속적으로 살인을 해왔소. 아직 수사 중이지만 곧 드러나게 될 거요.”  

“정말 억울합니다. 솔직히 말해 난 협박해 의해 그놈이 하는 짓을 도울 수밖에 없었소.”

“당신이 말하는 괴물은 존재하질 않소. 모든 게 당신 혼자 저지른 일이오. 당신이 인육을 먹는 걸 당신의 어머니가 목격했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것인가.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인육…

“어머니는 어디 있어. 어머니가 위험해! 이 새끼들아. 너희들은 속은 거야. 괴물을 잡아!”

나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수갑을 찬 손으로 앞에 앉아있던 남자를 내리찍었다. 남자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나는 놈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그때 뒤에 있던 사내들이 나를 붙잡았고 나는 뒤통수에 묵직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  




“이게 정신분열이란 말입니까?”


귀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딘가에 누워있었고, 머리에는 압박붕대를 감았는지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이 일정한 간격으로 찾아왔다.




“놈이 살인광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 와서 저러는 건 미친 척 개수작 부리려는 게 아닙니까?”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말했다.

“아무래도, 다중인격 장애인 것 같소. 검사만으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말을 녹음한 것이나 각종 살인수법,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틀어 살펴보면 그러한 증세가 의심돼요.”

점잖고 나이가 있어 보이는 목소리의 남자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런 증상이 왜 일어나는 겁니까?”

“아마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어린시절충격과 더불어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닐까 싶소. 이 자의 행적을 조사해 본 바로는 그가 학창시절에 심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와 분노가 소심한 그의 모습과 야만적이고 잔인한 괴물의 모습, 둘로 분열되게 만든 것 같소.”

“동기치고는 너무 사소한 것 아닙니까.”

“아마도 그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서가 아닐까 싶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살인욕구를 벽장속의 괴물을 통해 표출하고, 책임을 놈에게 떠맡겨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의 잡지에서 지어낸 온갖 괴물이야기들만 봐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겁니다.

“그런데 이자가 말하는 벽장 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습니까?”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물었다.

“시체의 일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소. 참, 벽장안쪽에 원래부터 부착되어 있던 커다란 거울이 있었는데….”

점잖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살인범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괴물처럼 여겼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 같소.”

“그런데 이런 심증이 재판에서 통할까요? 제 생각엔 이자가 저지른 엄청난 짓은 도저히 용서가 될 것 같지가 않군요.”

“그 점은 나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정신분열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살해당한 동료기자 김 씨가 죽기 직전에 찍은 필름이 있습니다. 그걸 보신다면 이 자가 어떤 상태였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자의 눈동자는 허옇게 뒤집어진 상태였고 얼굴표정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기이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니까요.”

“이 자는 알려진 것 말고 도대체 몇 명을 죽였을까요?”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물었다.


“살인은 대부분 삼 일 간격으로 일어났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이 자에게 처음 다중인격 장애가 생긴 때부터 계속적으로 살인이 자행되어 왔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대화를 모두 귀 기울여 들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듣고 보니 나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잘 설명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내가 봤던 괴물은 나였을까. 내가 그들을 죽였나? 그리고 그들을 먹었다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를 내려다보고 이야기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흐리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런 나를 발견하고 사람들을 부르고 지껄여대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유리너머로 보이는 벽장속의 룸메이트의 모습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 괴물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눈동자 없는 허연 눈, 거대한 몸집을 가진 털북숭이의 유인원, 바로 그 식인괴물…….

나는 웃으며 돌아누웠다.

녀석이 다시 식사 할 시간인가.

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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