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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환타지아(Fantasia)

2003.11.10 17:2911.10


Pooh의 Fantasia란 음악을 들었다.  내 주위론 바람이 불고
나는 한적한 시골 어느 곳에 와 있었다. 내 주위론 바람에 떠도는
Fantasia의 노랫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맴돌았다. 끝없이, 끝없이,
계속하여, 멀어질 듯, 가까워 질 듯, 멀어질 듯, 가까워 질 듯.
어느 시골 노파로 보이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 그 할머니는 대답했다. '여기는 지옥의 입구란다.'

지옥의 입구라... 난 잠시 Fantasia와 지옥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지옥의 입구에선 왜 '환타지아'가 흘러나오는
걸까? 할머니는 또 대답했다. '그 노래는 장송곡이란다. 그래서 그
노래가 여기선 끝없이 흘러나온단다.'

장송곡이라...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왜 여기 있는 거
냐고. 내가 죽기라도 한거냐고. 할머니는 이번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문득 나는 알았다. 내가
자살했다는 것을.

나는 어제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Gloomy Sunday를 들으며 목을
매었었다. 그리고 목을 매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날 어딘가로 데려갈
거라면, 지옥으로 부탁한다고. 그래서 나는 지옥의 입구에 있는 것
이구나. 그런 것이구나. 나는 이제 할머니에게 아무 것도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 앞에 있는 어느 시골집의 대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지옥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나는 천천히 그 대문을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열어제치기 시작
했다. 그 빨간색 대문은 몹시도 무겁고 또 무거웠다. 그리고 문을 다
열었을 때 나는 보라빛, 빨강빛, 하얀 빛으로 꿈틀거리는 빛무리와
마주쳤다. 그 빛무리는 오오라처럼 넓게 퍼지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
했다 물러서곤 했다. 그 중 보라빛 빛무리가 내게 다가와 나를 휘감
았다. 그 중 빨강빛 빛무리가 내게 다가와 나를 휘감았다. 그 중 하
얀 빛 빛무리가 내게 다가와 나를 휘감았다. 그 느낌은 아주 편안하
고도 따뜻했다. 왠지 조금씩 졸려왔다. 내가 눈을 감았을 때, 나는
내가 어느 곳으론가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이 아마
지옥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뻘건 용암과 머리에 뿔난 아저
씨들이 삼지창을 들고 기다리는 곳. 아마 그런 곳이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그런 곳에 있
지 않았다. 내 주위엔 분홍빛 열매가 가득 열린 분홍잎을 지닌 나무
들이 가득했고, 나는 떨어지는 분홍잎들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
하늘에선 솜털로 만들어진 것 같은 잠자리가 내려와 내 코위에 앉
았다. 새파란 나비와 노을빛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하늘은
갑자기 바뀌어 백색, 노란색, 빨간색 눈을 뿌려대었다. 내 옷은 어느
새 모두 사라져 버렸고 나는 벌거숭이로 거기 그렇게 누워있었다.

그렇게 한참 지난 뒤 나는 혼자 말했다. '여기가 대체 어디지?'
분홍나무가, 솜털잠자리가, 노을고양이가, 파랑나비가 대답했다.
'여기는 환타지아지.' 나는 말했다. '환타지아가 뭐지?' 그들은
말했다. '환타지아는... 환타지아지. 어떻다고도 말할 수 없는 곳,
무엇이라고도 말해질 수 없는 곳,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는 곳,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곳, 그곳이 환타지아지.'
나는 말했다. '나는 지옥을 원했는데 왜 여기 있지?' 그들은 말했다.
'그것은 환타지아가 곧 지옥이기 때문이지.' 나는 생각했다.
'환타지아가 곧 지옥이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그렇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네가 더 잘 알텐데?' 나는 말했다. '그래... 무슨 말
인지 알 것 같군. 환타지아가 곧 지옥이라. 유쾌한 이야기야!'

그리고 나는 거기서  그들과 뒹굴며 놀았다. 하늘에선 빨간 눈도
보라 눈도 파란 눈도 검정 눈도 노랑 꽃잎도 초콜렛 솜사탕도
마구마구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세상이 끝나는지도 모르고
웃으며 놀았다. 아무 것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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