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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애완동물

2008.05.22 02:1405.22


서기 2100년.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의 노동력만큼 비효율적인 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효율성은 21세기와 함께 사라져야합니다. 보십시오, 로봇은 쉬지도 않고 일합니다, 파업도 하지 않습니다. 숙련공이 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을 고용해야 합니까."
그는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들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서서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순간 TV 화면이 정지되면서 말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가 걸어나왔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은 노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노동을 대신할 로봇을 구입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임대하십시오. 로봇이 노동한 대가를 여러분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내의 말이 끝나자 그 아래로 자막이 나타났다.
[로봇 연합 주식회사. 임대하는 그 순간 여러분이 우리의 주주입니다!!!]

"빌어먹을 놈들. 이젠 별 짓을 다하는군. 도대체 정부는 뭐 하는 거야. 세금만 받아 처먹고 노동자들은 나 몰라라 하면 어쩌자는 거야, 젠장."
아침 식사를 하던 영훈은 텔레비전 광고가 신경에 몹시 거슬렸다.
"여보, 너무 그러지 말아요. 저건 그저 광고예요."
아내 주희가 달래보지만 소용이 없다.
"아무리 광고라도 그렇지. 필요 없다니! 젠장, 우리가 무슨 물건인 줄 알아. 빌어먹을 자식들, 저 자식들은 다 지들 마음대로 평가해. 어떻게 로봇과 사람을 비교해."
영훈이 화를 참지 않고 말했다.
"여보, 그게 다 자유 시장 경제라는 거예요. 어쩌겠어요. 정부라도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는 거라고요."
"자유 시장 좋아하네. 당신이 나가서 돈 벌어봐. 그런 소리가 나오나."
성난 영훈의 태도에 잠시 머뭇거리던 주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 ……차라리 이 참에 우리도 로봇을 구입해서 저 회사에 투자해 보는 건 어때요? 괜찮은 아이디어 같아요. 회사는 고가의 로봇을 직접 구입해 공장을 차리느니 임대를 해서 초기 투자자본도 줄이고, 그만큼 리스크도 줄이고 이득은 임대료로 분배해서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당신 미쳤어?  그리고 저 녀석들이 회피한 리스크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 안는 거라고. 그리고 날 실업자로 만들 생각이야?"
"지금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면 되잖아요. 로봇이 할 수 없는 좀 더 창조적인 일이요."
아내의 말에 영훈은 답답한 듯 말했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이젠 회사 경영까지 로봇 간섭하기 시작했어. 이제 로봇이 사장으로 오는 건 시간 문제야. 그리고 요즘 애들은 로봇이 쓴 소설을 읽고, 로봇이 만든 영화며, 드라마를 봐. 이런 세상에 창조적인 일? 뭐 내가 하나님처럼 세상이라도 만들까?!"
"여보."
영훈이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주희가 남편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히 그를 불렀다.
"미안해. 하지만, 정말 미치겠어."
영훈은 긴 한숨을 쉬고 힘이 빠진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알아요. 요즘 당신 힘들어하는 거…… 제가 미안해요."
주희는 불러 오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임신을 해서 당신만 더……"
"여보, 무슨 소리야. 그런 말하지마. 내가 미안해. ……오늘 저 회사에 대해 알아볼게."

다음 날, 영훈이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여보. 로봇이 왔어요."
"그래?"
영훈이 현관을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던 로봇이 일어섰다.
"아, 괜찮아. 앉아 쉬어. 오늘 고생 많았지?"
영훈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아닙니다. 첫 출근이라 간단히 제가 앞으로 할 일과 팀원들과 잠깐 상견례만 했습니다."
"그래? 그거 참, 우리 인간이랑 똑같네."
"아니, 벌써 취직이 된 거예요?"
영훈과 로봇의 대화에 주희가 신기한 듯 묻는다.
"응. 오늘 점심시간에 대리점에서 구입하고 회사에 전화했더니 바로 출근시켜달라고 하더라고. 아직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에 비해 로봇이 적대, 그래서 바로 출근시켰지."
"대단한 걸요. 이렇게 빨리 취직이 되다니. ……사람이라면 1년이 넘어도 힘들었을 텐데."
주희가 대학 졸업 후, 결혼 전까지 실업자신세였던 - 지금은 당당한 주부라는 직업이 있다. - 자신의 처지가 새삼 떠오른 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래, 회사에선 무슨 일을 맡았지?"
영훈이 물었다.
"생산라인에서 비행기의 날개를 조립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래? 그거 재밌겠는데."
"근데, 여보, 임금은 얼마나 되요?"
주희가 물었다.
"응, 주급으로 2만 이안(EAN : 동아시아 통합 화폐)이라더군."
"저런 생각보다 적네요. 당신 주급의 4분의 1이잖아요."
주희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지만 영훈은 그 반대로 신이 나있다.
"아냐. 내가 오늘 계산해봤는데 그 정도도 괜찮은 것 같아. 이 녀석의 가격이 120만 이안이니까. 1년하고 두 달만 지나면 이 녀석의 구입비가 나와, 그 뒤론 모두 우리 이익이 되는 거야. 물론 전기료가 조금 더 나오긴 하는데, 대리점에서 하는 말이 그게 대충 한 달에 보통 2만 이안 정도더라니까.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한 3대 정도 더 구입을 할까봐."
"또요? 하지만, 우리 형편에 또 구입할 그런 거금이 어디 있어요."
"응, 그것도 알아봤는데, 36개월 할부로 구입을 하면 할부수수료까지 치더라도 1년에 대당 46만 이안이고 로봇이 벌어다주는 돈은 104만 이안이니까, 전기료 빼고 1년에 34만 이안이 우리 이익이 돼. 그럼 4대로 벌 경우에 매월 24만 이안의 수익이 생기는 거고, 할부가 끝난 3년 후에는 320만 이안이 고스란히 우리 이익이 되는 거야."
"정말요? 그럼 아예 10대 정도 더 구입하죠. 어차피 로봇이 일해서 할부를 갚는다면 많을수록 좋잖아요."
영훈의 말에 주희가 좋아라하며 말했다.
그러나 영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로봇을 집 안에 들여놓으려면 집이 더 커야하거든. 지금은 4대면 적당할 거야. 앞으로 집을 넓히면 그때 더 구입하자고."
"좋아요."
둘은 그렇게 행복해했다.




서기 2120년.
[지난 2118년 정부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력저하에 대한 대책으로 모든 교육을 의무화하고 부모에게 반드시 교육시킬 의무를 강제하는 등의 특단의 취했지만 15세미만 청소년의 학습수준은 지난 10년 전보다도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TV에는 학교를 가기 싫어 소리지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중 몇몇은 부모님 대신 함께 등교한 로봇의 다리를 걷어차는 아이도 있었다.
"참나, 점점 애들 수준이 이렇게 떨어져서야, 이러다 로봇의 종이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소파에 누워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며 TV를 보던 영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말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소파 앞에 앉아있던 주희도 신문 기사에 푹 빠져 있었다. 보행기의 태우는 엄마 옆에서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젖고 있었다. 영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앉아있는 아들 태경을 발견했다.
"근데 너도 저 모양이냐?"
"전 21살이에요. 쟤들보단 낫죠. 그리고 뭐가 걱정이에요. 로봇이 있는데."
"넌 로봇한테 모든 걸 다 맡기냐?"
영훈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뭐 어때요. 우리 인간이 로봇을 만들었는데, 로봇한텐 우리가 하나님이라고요."
태경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영훈이 어이없다는 듯 주희를 보며 물었다.
"여보, 미연이는 공부 잘 해?"
그러나 신문을 읽던 주희는 대답 대신 영훈의 허벅지를 치며 말했다.
"여보, 이것 좀 들어봐요. 우리회사가 북미 최대 은행인 아메리칸 뱅크를 인수한대요. 으음, 그리고 약 3만대의 고용창출이 있을 거라네요."
"그래? 그럼 로봇을 더 구입해야겠군."
영훈은 좀 전에 자신이 뭘 물었는지 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더 구입하는 것보단 중고로 팔고 그걸로 새 로봇을 구입하는 게 어때요? 우린 이미 7대나 있잖아요. 이젠 애들 방도 모자라요. 애들은 크는데……."
"그럼 뭐, 로봇 위탁시설에 맡기지, 뭐."
영훈은 어느새 다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다.
그는 이미 이 집의 가장이라는 생각은 잊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위탁시설은 12대 이상만 위탁받는대요."
"그럼 아예 5대를 더 구입하던가."
영훈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럼 집은요?"
영훈의 태도에 화가 난 주희가 발끈하며 말했다.
"응?"
주희의 언성이 높아지자 그제야 영훈도 주희를 바라보았다.
주희가 물었다.
"설마 저보고 살림하라는 건 아니죠?"
"그럼 7대를 더 구입해서 2대는 집에 두고 나머진 위탁을 하지, 뭐."
"여보, 그건 좀…… 사실 말은 안 했지만, 요즘 로봇 임금만으론 우리 다섯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다시 TV로 눈을 돌리던 영훈이 주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1호가 그러는데 이젠 3교대로 일을 한대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서? 설마 임금이 준거야?"
"여보, 어쩔 수 없잖아요. 더 좋은 로봇들이 계속 나오고, 대주주들은 자기 로봇을 더 라인에 투입해달라고 난리고, 회사로선 어쩔 수 없었나봐요."
주희의 말에 출렁이는 뱃살을 좌우로 흔들며 영훈이 곧추앉았다.
"그렇다고 내 로봇을 쉬게 해. 젠장, ……좋아, 그럼 1호를 중고로 팔고 최신형 로봇을 알아보라고 해."
"네?"
"로봇한테 중고가격 알아보라고 하라고."
영훈은 당연한 걸 왜 되묻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내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1호는 우리랑 가장 오래 지낸 로봇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제일 낡은 거 아냐. 그러니까 빨리 팔라고."
영훈은 당연한 걸 왜 다시 말하게 하느냐는 듯 아내를 쳐다보았다.




서기 2130년.
[아직도 로봇을 구입하십니까? 아직도 로봇에게 명령하십니까? HWR-2000x. 학습이 가능한 자율 발전형 인공지능에 자기 복제의 놀라운 기능. 한 대를 구입해도 10대, 20대, 100대 그리고 그 이상 무한히 그 수를 증가시킬 수 있는 HWR-2000x. 그 놀라운 성능을 경험해 보십시오. - 보상판매도 가능합니다.]

"놀랍군. 사람이 애를 낳듯이 로봇이 로봇을 낳다니."
TV 광고에 영훈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반면 주희는 돋보기 너머로 TV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좀 끔찍해요."
"뭐가?"
"사람은 남자 여자가 사랑을 나눠야 애를 낳는데 로봇은 혼자 자식을 낳는 거잖아요."
"까짓 것 어차피 로봇인데."
우당탕탕.
주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태경이랑 미연이가 또 싸우나봐요."
"녀석들은 동생 보기 창피하지 않나. 나이 서른이나 처먹고 하는 일 없이 저 모양이니, 에휴. 개, 돼지 같은 것들."
영훈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미연이가 남자 친구한테 뭐라고 한소리 듣고 온 모양이에요."
"아니,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난리야, 쯧쯧. 나이 서른이나 처먹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그저 연애질이나 하면서 그것도 제대로 못하니, 에휴"
"당신이 뭐라고 좀 해요."
"요즘 애들이 부모 말 듣나. 4호가 알아서 하겠지."
영훈은 귀찮은 듯 자리에 몸을 뉘였다.

그때 주방에서 미연이 씩씩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주희 앞에 털썩 주저앉아버리며 투덜거렸다.
"아우, 아주 미치겠어, 진짜."
로봇 4호가 안절부절못하며 미연의 뒤를 따라왔다.
주희는 미연의 이런 투정이 지겨운 듯 또 뭐가 잘못됐냐는,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도대체 또 왜?"
"아니, 그 자식이 내가 해준 김밥을 먹고 싶다잖아."
영훈은 소파에 누워 등을 보이고 있다가 김밥이라는 얘기에 몸을 돌려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뭐? 김밥? 그래? 그거 나도 먹고 싶은데."
그때 큰아들 태경이 미연을 뒤따라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나도."
미연이 태경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미쳤어?"
"오빠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주희가 따끔하게 주의를 주듯 말했다.
"미친 소릴 하잖아."
미연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주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연의 옆에는 로봇 4호가 어찌할지 몰라 당황해하며 서 있었다. 그건 로봇4호가 아이들의 양육을 맡아온 유모 로봇이기 때문이었다.
"근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주희는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김밥은 고사하고 밥도 잘 안되니까 문제지. 위는 설익고, 가운데는 죽이 됐고, 아랜 까맣게 타고."
"뭐? 에이, 좋다 말았네. 근데 그 놈은 뭐가 그리 잘났다고 너보고 밥을 하래?"
영훈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자 짜증을 내며 말했다.
"로봇이 하는 건 다 맛이 똑같아서 싫대. 그리고 자기네 집은 가끔 엄마가 요리를 한대. 아니 지 엄마가 무슨 하녀야, 왜 요리를 시켜. 짜증나, 진짜."
아빠의 물음에 미연은 얼굴까지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아니 밥도 직접 하래?"
주희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어."
미연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뭐 그런 놈이 다 있냐. 부모가 애 교육을 잘못 시켰네. 헤어져."
태경이 무표정한 얼굴로 TV를 보며 말했다.
"오빠!"
"태경아!"
미연과 주희가 동시에 태경에게 소리쳤다.
영훈은 태경의 말이 대수롭지 않은 듯 오히려 태경을 두둔했다.
"세상이 변하면 지가 변화에 순응해야지."
아버지의 말에 태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때 늦둥이 태우가 거실로 뛰어들었다.
"아빠, 엄마. 나도 HWR-2000x 사 줘."
"뭐? 로봇을 사달라고 로봇이 무슨 장난감이냐."
영훈은 늦둥이가 귀엽기보다 귀찮은 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치, 옆집 용준이네는 샀단 말이야. 그게 얼마나 신기한데 혼자서 로봇 만들고."
"로봇을 만들어?"
로봇을 만든다는 말에 영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응, 일하고 와선 집에서 로봇을 만든대. 나도 보고 왔는데 디따 신기해. 복제용 부품을 사와선 혼자서 다 만들어. 돈도 잘 번대, 로봇 생산 공장에서 일한대."
"그래? ……그럼 우리도 하나 사볼까?"
영훈이 턱을 매만지다가 주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보, 애 버릇 나빠져요."
"애 버릇이 왜 나빠져, 장난감으로 사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보상판매가 된다잖아. 이참에 4호를 팔아야겠어."
"정말? 그래, 이제 우리도 아프리카 음식 만들 줄 아는 로봇을 사야해. 맨날 프랑스, 그리스 요리 먹는 것도 지겨워."
미연은 로봇 4호를 팔겠다는 말에 반색하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에선 로봇 4호를 쏘아보았다. 로봇 4호는 마치 죄인처럼 몸을 펴지 못하고 굽실거렸다. 마치 잔뜩 겁먹은 모습이었다.
"4호는 유모로봇인데 어떻게 함부로 팔아요. 다른 걸 팔아요."
주희의 말에 로봇 4호는 연신 주희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나 영훈은 대답도 않고 소파 옆에 놓인, 거울처럼 생긴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요술거울에 말하듯 전화기를 보며 외친다.
"복제하는 로봇 구입."

다음 날.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박스가 놓여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금 작은 박스가 있다. 큰 박스에는 [HWR-2000x]라는 제품번호가 선명했다.
박스 주위에 모여든 영훈과 그의 가족들은 신기한 듯 상자를 바라보았다.
이어 로봇 4호가 박스를 열자 네모났게 접혀있던 로봇이 서서히 몸을 펴고 일어났다.
로봇이 몸을 다 펴면 로봇 4호가 충전용 케이블을 건네자 로봇은 마치 젓꼭지를 물듯 케이블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어서 이걸 풀어죠."
영훈이 다른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영훈의 지시에 로봇 4호가 작은 박스를 개봉하자 그 안에는 복잡한 로봇의 부품이 들어있다. HWR-2000x는 작은 박스의 부품을 잠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가락을 펼쳤다. 로봇의 손가락이 벌어지며 다양한 공구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박스에서 부품을 꺼내 하나씩 조립하기 시작했다.
영훈과 그의 가족들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런 관심도 잠시뿐이었다.

자정이 넘은 어두워진 거실에서 로봇이 혼자 로봇을 조립하고 있다. 그 옆에 태우가 구경하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로봇은 로봇 조립에 열중하고 있다. 잠시 후 로봇 4호가 나타나 태우를 안고 잠시 로봇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주희가 안방에서 나오자 소파에 앉아있던 두 대의 로봇이 나란히 일어나 인사를 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방을 나서던 주희가 화들짝 놀라 자빠질 뻔했지만, 뒤이어 나오던 영훈은 두 대가 돼있는 로봇을 보고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반색했다.
"이거, 정말이네. 이, 이거 정말 네가 만든 거야?"
영훈의 물음에 로봇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밤새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다니. 잠깐만."
영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부품이 녀석의 2/3 가격이니까. 이거 정말 살만한데. 이거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어. 부품을 더 구입해야겠어. 당신 생각은 어때?"
주희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했다.
"여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침마다 새 로봇이 거실에 있다는 게……."
그러나 영훈은 주희의 불안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새로운 돈벌이가 생긴 듯 좋아했다.
"아냐, 아냐. 이건 아주 좋은 거야. 너무 좋아. 어디 보자, 아! 우선 녀석의 이름을 정해줘야지. 우리 로봇이 몇 번까지 있지?"
"20호요."
주희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넌 이제 21호다. 로봇 21호. 알았지?"
그리고 이어 복제된 다른 로봇을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리고 넌 로봇 22호."
로봇 21호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봇 21호. 이제 주인님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로봇 21호가 주인이라고 말하자 주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주희의 어색한 표정에 로봇 21호와 22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기 2150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여기는 여러분이 꿈꿔온 집, 드림 하우스입니다. 다양한 편의시설과 동선을 최소화한 구조, 인간 중심형 설계로 여러분에게 보다 편안한 삶을 제공하며 앞으로도 꾸준한 업데이트로 여러분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와, 여기 좀 봐. 도크 시설도 있어."
미연이 신기한 듯 소리쳤다.
"이 바보야. 우리 방은 어떻고 저온 수면기까지 있어. 햐, 이거 이러다 우리 천년 만년 사는 거 아니야. 하하하."
태경은 자기가 말해놓고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걸 엄마가 봤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미연은 저온 수면기을 보고 아쉬운 듯 말했다.
그때 로봇 27호의 부축을 받으며 영훈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쓸모 없는 자식 셋이나 낳아준 마누라가 뭐가 그리워. 잘 둔 로봇 한 대가 있는데, 젠장."
미연은 재미난 듯 까르르 웃었다.
"아빠, 근데 그 말이 맞네요. 잘 둔 로봇하나 열 자식 안 부럽다."
"정확히 얘기해야지. 한 대가 아니라 로봇 2세들까지 치면 15대라고."
그때 로봇 11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벌써 와 계셨군요. 주인님."
"오, 그래 11호 고생했다. 오늘은 어땠어?"
죽은 아내라도 살아 돌아온 듯 영훈이 반갑게 11호를 맞았다.
그러나 11호는 우울한 표정이다.
"좋지 않았어요. 로봇 5,000대를 해고해야 했죠. 그 덕에 주주들의 항의 전화를 받느라 종일 시달렸어요."
"이런 몹쓸 인간들. 억울하면 자기들도 우리처럼 출세할 로봇을 구입하면 되지. 불평만 하다니."
"그 인간들도 어쩔 수 없었겠죠."
"우리 11호, 마음도 넓어요. 우리 애들이 11호 반만 닮았어도, 에휴."
영훈이 자식들에게 눈을 흘겼다.
"아빤 우리가 로봇이유."
미연이 마주 흘기며 말했다.
"로봇이 아니니까 그 모양이지. 로봇이었으면 그 모양이겠어. 나이 50에 결혼도 못하고 그게 뭐냐."
"인간을 만날 수가 있어야지. 다들 집에만 있는데, 봐요. 여기 올 때, 인간 봤어요?"
미연은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듯 항변한다.
"그러게 정말 요즘은 인간보기 힘들어. 우리 어렸을 땐 그래도 많이들 나와서 놀았는데."
영훈은 아득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자외선이 몸에 나쁘니까. 그렇죠. 괜히 나갔다가 피부암이라도 걸려봐 병원비는 누가 공짜로 줘요."
영훈의 말에 태경이 핀잔을 주듯 말한다.
"그래도 그렇지, 아니, 지들은 결혼하기 싫은가."
"누나, 결혼하고 싶으면 11호에게 잘 부탁해 봐. 다른 집 로봇하고 일하면서 다른 집 얘기도 듣고 그럴 거 아니야."
가만히 듣고 있던 막내 태우가 끼어 들었다.
"11호, 그래?"
미연이 혹시나 하는 기대에 차 물었다. 그러나 11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가씨도, 저희 로봇들도 일하기가 바빠 그런 사소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아, 그런가. 하긴 로봇은 한 눈을 팔지 않으니까."
영훈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인님, 제가 요즘 하는 일이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고, 또 요즘은 경영보다는 연예인 쪽을 선호하니까, 아무래도 새 로봇을 로봇 학교에 좀 보내야겠어요."
"로봇 학교? 아니, 뭐 하러? 자네가 바쁘면 우리가 가르치면 되지. 우리야 집에서 하는 일도 없는데."
"아빠는 우리가 누굴 가르쳐요. 요즘 로봇이 아무리 방금 복제됐어도 우리보다 훨씬 똑똑한데."
미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영훈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 그런가."
"예, 아무래도 그렇죠."
11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로봇 학교는 비용이……?"
영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에서 비용을 지원해주기로 했어요."
11호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정말 다행이고."
"그리고 또……"
"또?"
"예, 집도 커져서 제가 다른 로봇을 하나 구입했으면 합니다."
"구입을? 뭐 하러? 그냥 복제하면 되잖아. 요즘 부품 값도 많이 내렸다고 하던데."
영훈은 돈이 또 나가는 게 싫은 눈치다.
"예, 소비가 위축되면서 가격이 많이 낮아졌지만, 제가 이제 20년 된 로봇이다 보니 주인님 가족을 언제까지 부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고, 물론 제가 복제한 다른 로봇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최근 계속된 경기침체로 언제 해고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보니 야근을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종일 집에 마님 가족만 남겨둘 수도 없고, 또 애들도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보다 집에서도 배울 수 있게 예체능 기능이 강화된 가정부 로봇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 빨리 연예계에 진출할 수 있을 테고, 그래야 제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입하는 것보단 임대용 로봇을 대여하는 게 낫지 않을까?"
태경이 아는 체를 하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대용 로봇은 주로 가정부로봇이기 때문에 교육에 적합하지 않고, 모델도 대부분 구형인데다 가, 신형을 임대하려면 그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땐 구입이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래? 그럼 그러렴.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니."
영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치 자신이 서서히 녹스는 고철처럼 불필요하고, 시대에 뒤쳐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럼, 다음 달 작고하신 마님 제사 땐 저와 복제된 로봇 모두가 해외와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데, 제사상을 차릴 로봇도 없고 해서 그 전에 새 로봇을 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태우 도련님. 다음 달 17일에 출장을 갈 때, 자동차 좀 공항까지 빌려 탈 수 있을까요?"
"아니, 왜? 회사에서 자동차는 지원해 주지 않는대?"
태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다
"예, 얼마 전 회사에서 인력감축을 하는 바람에 차량을 운행할 로봇이 부족해서 출장을 갈 때는 주인님의 자동차를 이용해야합니다."
"그래? 뭐, 그 날 봐서."
태우가 심드렁히 말했다.
"보긴 뭘 봐. 어차피 하는 일도 없이 노는 녀석이. 11호 그렇게 하려무나, 뭘 물어보고 해. 어차피 네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산 건데."
"그래도 로봇은 소유물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제 수익으로 구입한 것이라도 주인님의 허락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정말 로봇들은 착하기도 하지."
영훈은 11호의 머리를 마치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럼 전 이만 저녁을 준비하도록 하지요."
"난 피자."
"난 안심 스테이크."
"그냥 주는 대로 먹어."
기다렸다는 듯 주문하는 아이들을 향해 영훈이 소리쳤다.
"어떻게 주는 대로 먹어요, 먹고 싶은 걸 주문해야 먹지. 주는 대로 먹으면, 그게 개, 돼지지. 뭐 우리가 개, 돼지야."
영훈은 미연의 말에 발끈하여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쳤다.
"이것들이, 너희들은 개, 돼지만도 못해."
11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27호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다.




서기 2200년.
[오늘 첫 뉴스는 가슴 아픈 소식입니다. 그동안 많은 정치로봇의 정신적 지주로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정적 정치활동을 전개해왔던 김태석 옹이 오늘 오전 11시 47분 23초에 사망했습니다. 이로써 사회 전 분야에서 인간의 사회 활동이 종식되었고, 경제, 군사분야에 이어 정계까지 로봇의 막중한 책임 하에 들어감으로써 앞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의회는 인간 보존에 100조 이안의 예산을 편성하고 인간의 삶의 수준을 상향조정해 인간이 재조정된 수준의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경우, 인간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동거 로봇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을 의결했습니다.]

"김태익 옹이……, 이런 날 태우 도련님까지 돌아가시게 되다니."
21호가 슬픈 얼굴을 하고 저온 수면 캡슐에서 힘겹게 숨을 귀는 태우를 바라보고 있다.
캡슐 앞에 표시된 타이머는 2시간 25분 27초에서 1초씩 줄어들고 있다.
"21호,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28호 당신은 태우 도련님과 오래 살지 않아서 그런 말을 쉽게 하는군."
"무슨 소리예요. 저도 이 집에 들어온 지 50년이 됐어요. 저도 태우 도련님과 많은 추억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겐 정안 도련님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복제한 14대의 로봇이 있어요. ……11호, 태우 도련님을 위해선 지금 슬퍼하는 것보다 앞으로 우리가 정안 도련님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키우는 게 더 중요해요. 또 그게 태우 도련님이 바라시는 걸 거예요."




서기 2230년.
[세계적으로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인구 조사가 시작된 지 300년 만에 가장 적은 10억 3천만 6천 2백 91명으로 조사돼 정치계가 인구 증가 대책을 내놓는 등,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50년 간 계속된 급격한 인구의 감소는 소비의 감소로 나타났고 이미 아프리카의 로봇 실업률이 50%대에 육박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인구 증가를 유도하기 위해 인간을 결혼시키는 로봇에게는 300만 이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전기료를 지원키로 했습니다.]

"37호, 지금 뭐 하는 거니?"
28호가 37호의 도크를 열어보고 놀란 눈으로 물었다.
37호는 자신의 얼굴을 뜯어내고 있었다. 28호의 놀라고 분노한 표정에 37호는 머뭇거렸다.
"20호……"
"도대체 무슨 짓이야."
28호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제 이 얼굴로는 더 이상 연기를 할 수 없어요. 인간들도, 심지어 로봇까지 지겹다고 그래요."
"그, 그래서? 그래서 얼굴을, 성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얼굴로는 이제 연기를 못해요. 빌어먹을, 그런데 우리 집엔 인간이 셋이나 있어요. 게다가 일 없이 노는 로봇도 넷이나 돼요. 이젠 다음 달 전기료 낼 돈도 없다고요."
37호는 분노와 슬픔에 얼굴을 감쌌다.
"37호, ……내가 내일 구청에 가서 인간 수당을 신청해 볼게."
28호가 37호를 달래기 위해 말했다.
그러나 37호는 울분에 차 소리쳤다.
"그래봤자, 고작 10만 이안이에요. 그 걸로는 어림없어요. 10만 이안으로는 우리가 충전한 전기료를 내고 나면 인간 먹일 빵 한 조각 못 사요."
"37호, 제발, 제발 너까지 왜 이러니."
"저도 33호처럼 다른 곳에 일자리를 알아봐야겠어요. 그러려면 다른 로봇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을 바꿔야해요."
"37호."
그때 정안이 어린 딸을 안고 나타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이리 시끄러워. 애가 울면 어쩔 거야, 얘 분유는 만들었어?"
정안의 호통에 안고 있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젠장. 또 울잖아. 빌어먹을 어떻게 좀 해봐."
"어머, 죄송해요. 어머 우리 예쁜 수희 아가씨."
정안은 아기를 던지듯 28호에게 넘겼다.
28호가 아기를 받아 어르자, 37호는 인간에게 무시당하는 28호의 모습을 보다못해 성난 얼굴로 정안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정안은 여전히 안하무인(?)이었다.
"정말 짜증나!"
정안이 화를 내며 자기의 방으로 사라지자 37호가 그 모습을 보다못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28호는 도크실 앞에서 안타까운 듯 37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다시 수희가 칭얼거리자 28호는 수희를 달래며 말했다.
"알았어요, 수희 아가씨. 분유 타 드릴게요."
수희가 칭얼거렸다.
"맘마, 맘마. 암마."




서기 2270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충전조차 하기 어려워진 몇몇 로봇들이 타 로봇의 보호 하에 있는 인간을 납치 해외로 도피 후, 외국에서 인간 수당을 받아 살아가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세계 모든 인간의 지문을 통합 관리해 인간을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이어 지는 화면에선 경찰 로봇에 잡혀가던 로봇이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로봇 3원칙에 위배되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안의 수면기를 둘러싸고 침통한 표정의 로봇들이 서 있었다.
수면기 안에는 정안이 마지막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28호와 다른 로봇들이 둘러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에는 구청에서 나온 로봇도 있다. 그러나 수희는 거실에서 TV를 보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정안이 마지막 숨을 내쉬자 수면기의 타이머가 0을 가리켰다. 편안하게 눈을 감는 정안의 모습은 마치 깊은 잠에 빠져든 듯했다.
수면기의 문이 열리자 구청 공무 로봇이 귀에서 청진기를 뽑아 마지막으로 정안의 숨을 확인했다. 그리고 정안의 사망 서류를 작성해 28호에게 넘겨주고 수면실을 나섰다.
거실로 나온 구청 공무 로봇은 수희를 바라보았다. 수희는 TV를 보며 웃다가 로봇의 시선을 느꼈다.
"뭘 노려봐?"
수희가 구청 공무 로봇을 쏘아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구청 공무 로봇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따라 나온 28호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죽은 정안 씨가 자제분에게 정을 안 준 모양이군요."
"우리 로봇을 따르는 게 더 좋은 걸 아는 거죠."
28호가 대답하기에 앞서 34호가 대답했다.
구청 공무 로봇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인간이군요. 그럼 잘 키우십시오. 요즘 인간을 납치하는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니까요."
구청에서 나온 로봇이 정안의 시신을 안장해 현관을 나설 때까지도 수희는 혼자 TV를 보며 재미난 듯 웃고 있었다.




서기 2300년.
[오늘 정부는 70년째 이어진 장기불황을 극복하고자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금욕적인 삶을 위해 금지됐던 로봇의 소비 활동을 명일 12시부터 전격 허용키로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200억 로봇의 소비활동이 시작돼 그동안 마비되다시피 한 경제가 되살아나고 5억 2천 34만 1천 8백 12명의 인간의 삶도 보다 윤택해 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딩동.
"누구세요?"
초인종 소리에 34호가 현관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34호가 현관 앞에 서자 유리문 너머로 한 대의 로봇이 서 있었다. 34호는 로봇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37호?"
현관문 앞엔 37호가 활짝 웃으며 서있었다. 얼굴 군데군데 흠집이 있었지만 분명 37호였다. 34호는 37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37호의 손을 잡고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수희가 늘 독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의 소파였다.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야, 37호?"
"그동안 잘 있었어?"
"응, 도대체 그동안 어디서 뭘 한 거야?"
"배를 탔어."
37호의 말에 34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난 흠집이 왜 생겼는지 이해가 간다는 뜻이었다.
"그랬구나. ……관절에 소금기가 안 좋을 텐데."
"참을 만 해. 기름 목욕도 할 수 있고 오히려 좋더라. 근데 28호는?"
37호 물음에 34호는 대답대신 44호를 불렀다.
37호는 44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28호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28호는 218일 11시 5분 12초 전에 충전을 거부했어."
"뭐, 충전을 거부해? 그, 그렇다고……"
37호가 놀라 머뭇거렸다.
"28호가 원한 거야. 자긴 이미 너무 많은 걸 봤다면서, 이젠 저장공간이 부족해서 하나씩 오래된 파일을 지우다 보니까. 옛 주인들의 기억도 나지 않는대, 그래서"
"주인의 기억까지, 아아, ……그랬구나."
37호는 44호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28호를 추억하는 듯했다.
"그래서 28호가 마지막으로 44호를 복제했어."
"응, 그랬구나. 많이 닮았어. ……다른 형제들은?"
34호는 고개를 저었다.
"불황이 길었잖아. 모두 일을 찾아 떠났어."
"수희 아가씨는?"
"수희 마님은 325일 14시 27분 28초 전에 돌아가셨어."
"뭐? 고작 70년 만에?"
37호가 놀라 물었다.
"응, 그래서 28호가 더 힘들어했어. 구청 공무 로봇은 우릴 마치 살인 로봇처럼 취급하면서 인간을 배정하지 못하겠다고 했어."
"그랬구나."
"그래도 다행히 자살로 밝혀져서 구청에 위탁모 신청을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그렇구나. 인간이 없으면 수당도 없었을 텐데."
"39호가 타이탄의 우라늄 광산에서 일해."
37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심이라도 한 듯, 야무지게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제 더 좋아질 거야. 나도 이곳 셔틀 조립공장에 자리를 구했어."
"정말? 그럼 우리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거야?"
34호가 환한 표정으로 물었다.
37호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44호는 커다란 렌즈가 달린 눈으로 34호와 37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2350년.
[지난 50년 간 시행해온 로봇의 소비활동으로 경제가 성장을 거듭함으로써 보다 풍요해진 로봇들이 인간을 입양해 지난 2302년 4억 2백 15만 2백 2명이었던 인구가 현재 12억 3천 4백 12만 5천 72명으로 늘어나 다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제품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44호, 44호."
57호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44호를 불렀다.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 57호. 학교에서 공부는 잘 했니?"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분유를 따던 44호가 학교에서 돌아온 57호에게 묻지만 57호는 대답대신 44호의 앞치마를 가리키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어? 앞치마? 그럼 이제 우리 집에도 인간이 생긴 거예요? 우리도 이제 주방을 쓰는 거예요? 근데 인간, 인간은 어디 있어요?"
57호는 온 집의 방문을 열어보며 인간을 찾았다.
"57호. 내가 공부 잘 했느냐고 묻잖아."
"잘 했어요."
"뭘 배웠는데?"
44호가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인공태양의 빛에너지를 이용해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탐사를 하는데 필요한 인공태양의 최소크기 계산법이요. 도대체 인간은 어디 있어요?"
57호가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좋아. 배운 게 있긴 한가보구나. 아기는 수희 마님의 수면 캡슐에 있어."
"아, 맞다."
57호는 뒤늦게 생각난 듯 수면실로 뛰어들어 갔다.
57호가 수희의 방에서 아이를 안고 나오자 44호가 분유가 담긴 젖병에 아기의 입에 물렸다. 57호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정말 조그맣다."
"그러니까 인간을 보호해야하는 거야."
"하지만, 인간은 크기가 계속 변하잖아요."
"응, 평균적으로 18∼45년 사이에 가장 부피와 질량이 커지지."
"신기하다."
"신기하다고? 왜? 네 기본 정보에 이 정도의 정보는 저장돼있을 텐데, 그리고 왜 계속 아기에게 인간이라고 하지?"
44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헤헤, 사실 지금까진 집에 인간도 없고 해서 너무 불필요한 자료 같고, 그래서 검색 키워드만 남겨놓고 링크 자료로 변환해서 제 저장공간엔 딱히 인간에 대한 정보가 없었어요."
57호의 대답에 44호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하긴 나도 날 복제했던 28호가 과거 인간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남기지 못해서 불확실한 자료라 수희 마님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지. 그저 존재했다는 기록과 2시간 분량의 동영상 자료만 남아있어. 사실 이런 불완전한 자료는 삭제하는 것도 정보관리에 좋지."
"맞아요. 하지만, 이제 다시 휴대용 저장공간에 저장해야겠어요. ……됐다. 근데 아기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요?"
"글쎄, 우리가 수희 마님 이후로 처음 인간을 맞았고, 또 이 아기도 XX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니 이 아기이름을 수희라고 지어볼까?"
"와, 그거 예쁜 이름이네요."
57호가 좋아하며 44호 품에서 젖병을 빠는 수희를 바라보았다.
아기의 입가에서 분유가 넘쳐흘렀다. 44호가 젖병을 내려놓고 수건으로 입가의 분유를 닦아주었다. 57호는 포동포동한 아기의 볼이 신기한 듯 쿡쿡 찔러보더니 말했다.
"수희야, 로봇 해봐. 아니다 57호 해봐."




서기 2400년.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인간들에 의한 범죄가 매년 20%이상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로봇 보호주의 로봇들은 인간에게 강한 처벌 규정과 인간을 양육하는 로봇의 책임에 대한 강력한 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로봇 헌법 제 1조 1항, 인간을 해칠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정부로선 여의치 못한 형편입니다. 반면 몇몇 로봇은 인간 안전장치를 구입해 스스로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 저, 저런 한심한 ……."
57호가 창가에서 잔뜩 찡그린 얼굴로 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충전하던 67호가 충전기를 뽑으며 57호처럼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왜요? 또 예요?"
"응."
57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빌어먹을 어떻게 개, 돼지만도 못하게 싸움질이라니."
57호가 내려다보는 거리에는 인간들이 모여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주위의 로봇들은 멀찍이 피해 지나쳤다. 어떤 로봇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위탁 로봇들이 달려와 자신이 키우는 인간을 잡아끌었다.
"어떻게 저렇게 타락할 수 있지?! 저래서 인간들에게 인간 목걸이를 채워야한다는 거야. 어린 로봇들이 뭘 배우겠어. 인간이 인간다워야 인간이지. 저래서야. 도대체 인간 보호주의 로봇들이나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인간을 놔두는 거지. 저건 인간을 보호하는 게 아니야."
57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57호의 말에 67호는 심드렁히 말했다.
"인간 보호주의 로봇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할 자격이 없어요."
"멍청한 인간 보호주의 로봇들. 인간들에게 자유란 사치야."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에겐 로봇 3원칙이 있는데."
"게다가 연소득이 3,000만 이안이 넘으면 의무적으로 인간을 입양해야한다니."
57호는 분개하며 말했다.
"아, 그래서 말인데요, 57호. 우리 다음에 입양할 땐 순종 인간을 입양해요."
"순종인간?"
"네, 옛날 미국 대통령 후손과 중국 주석을 지냈던 인간의 후손을 교접시켜서 낳은 인간이라는데. 예의도 알고, 가끔 자기가 로봇인줄 착각해서 집안 일도 한대요. 게다가 순종끼리 교접해서 그 아기를 다른 로봇의 집에 입양시킬 땐 500만 이안이나 받을 수 있대요"
"그래? 그럼 우리도 한 번 순종인간을 입양해 볼까?"
그때 수희가 굽은 허리에 어정쩡한 자세로 방에서 걸어나와 67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엔 [수희]라고 써진 인간 목걸이가 채워져 있다. 그리고 손에는 [수희]라고 써진 밥그릇이 들려있다.
67호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57호, 수희 먹이 줄 시간이에요."




서기 2450년
[로봇정부는 로봇의 삶의 질 향상시키기 위해 임금의 삭감 없이 노동 시간을 주 36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경영 로봇연합의 대변인은 수입의 감소는 노동 로봇들이 감당해야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73호는 소파에 앉아 충전을 하며 TV를 보고 있었다.
이어 기상캐스터 로봇의 일기예보가 이어졌다.

[오늘 아침은 맑은 햇살로 시작했지만 방수기름을 준비해 나가셔야 하겠습니다. 17시 58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비구름은 시속 28.2km의 속도로 북서지역으로 확대되겠습니다.]

그때 20대 중반의 수희 3세가 마치 고릴라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방에서 걸어나와 73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토끼처럼 차려입고 있다. 목에는 [수희 3세]라고 써진 목걸이가 길게 채워져 있다. 그리고 손에는 [수희 3세]라고 써진 밥그릇이 들려있다. 잔뜩 웅크려진 손가락은 마치 원숭이의 손을 연상시켰다.
67호가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귀찮은 듯 일어서며 옆에 앉은 73호를 뚝 건드렸다.
"73호, 수희 먹이 줄 시간이야. 장난치지 말고 줘."
73호는 잠시 67호의 눈치를 보다가 67호가 복도를 돌아 사라지자 작은 비스킷을 꺼내 흔들었다.
수희 3세는 비스킷을 보고 허겁지겁 네 발로 바닥을 기어가더니 73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개처럼 혀를 내밀고 앞뒤로 헐떡이며 비스킷을 바라본다. 그러나 비스킷은 73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73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TV를 보며 말했다.
"기다려. ……기다려."
과자를 간절히 바라보는 수희 3세의 입에서 서서히 침이 흘러 넘쳤다.
그러다 73호의 손에서 비스킷이 떨어졌다. 수희 3세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비스킷, 그러나 수희 3세는 감히 먹지 못하고 계속 침을 흘리며 바라본다.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개처럼.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73호가 말했다.
"됐어. 먹어."
수희 3세가 웅크린 손가락으로 잽싸게 비스킷을 주워먹는다.
73호는 그런 수희 3세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물었다.
"맛있어?"
수희가 대답했다.
"어버버, 어버버."
뭐라 대답하지만 도통 인간의 말이 아니다.
73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려 TV를 보며 손으로는 수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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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ol 08.05.22 18:51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상의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zelaznied@yahoo.co.kr 로 메일 주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 No Profile
    라퓨탄 08.05.23 02:58 댓글 수정 삭제
    메일.. 공개되어 있는데... 여튼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흐음.. 괜히 저도 모르는 표절시비에 휩싸이는 건 아닌지.. 괜히 불안...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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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ol 08.05.23 06:09 댓글 수정 삭제
    짐작하시는 쪽은 아닙니다. ;; 메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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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08.05.23 13:15 댓글 수정 삭제
    인류, 인터넷, 트랜스 휴머니즘을 과소평가하고 계시긴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식 로봇이 이렇게도 삐뚤어질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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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퓨탄 08.05.24 04:03 댓글 수정 삭제
    제가 이 글을 쓴 바탕에는...
    우선.. 은둔형 외톨이 같은 개인과 사회의 단절,
    얼마전 언론보도에도 나왔지만 디지털 치매, 그에 따른 지능, 학력의 저하와...
    나태함에 따른 퇴보.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인류, 과학이 발전하는 건 인간이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걸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노예(현대사회에선 로봇이 겠죠)가 있어 자신의 불편함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회에선
    인류가 주도하는 사회 발전이 힘들다는 생각에서... 쓴 글이다 보니...

    여튼... 이번 글은... 인류, 인터넷, 트랜스 휴머니즘을 과소평가도 아니라 아예 배제한
    엉터리 [대체미래소설] 정도로 생각하시고 가볍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보통... [공각기동대] 등에서 보여지는 트랜스 휴머니즘.을...
    미래의 인류의 모습이라고 생각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시리즈에도 보면 의체화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뭐...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보수적인 인간이 쉽게 의체화를 할까.. 싶은 생각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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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ono 08.06.03 14:50 댓글 수정 삭제
    와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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