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몇 년이나 연락 한 번 없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편지를 올려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집 나간 아들을 이제는 지우신 지 오래일 텐데 이런 식으로 다시 마음 쓰시게 함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빕니다. 하시는 일은 잘되시는지요. 몸은 좀 어떠신지요. 혹 편찮으신 곳은 없으신지요.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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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적을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뵈었더라면 어머니께서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한걸음에 어머니께 달려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함은 그것이 어머니께 폐가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며, 또한 제가 지금부터 적을 이야기를 어머니께서 절대로 잊으셔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말은 영속적이지 못합니다. 제가 그곳에서 어머니 품에 안겨 지난 일을 말씀드린다 해도 언젠가 모든 것은 잊히고 말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언제까지고 보존될 글이라는 형태로 적어 당신께 올리는 것입니다. 설령 저 자신조차 제가 겪은 사건들을 잊는다 하더라도, 어머니께서는 언제고 편지를 읽으시며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으시겠지요.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저는 사건의 발단이 언제인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 원인을 생각할 때 제 머리의 이성적인 부분은 몇 달 전 제가 담당의로 있었던 한 소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제 마음의 다른 한구석에서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난 또 다른 소녀의 모습이 거머리처럼 단단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또 모든 일은 거미줄처럼 얽힌 인과의 그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어서, 어쩌면 이 일도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된 것이며 제가 터무니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 생각이 옳다면, 실의 가닥을 잡기 위해서는 2002년 여름, 온 세상이 열기로 가득했던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해 여름은 정말로 뜨거웠습니다. 모든 것은 역동적으로 움직였고 세상은 너무나도 밝았습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생이던 친구들의 얼굴은 힘껏 뛰노느라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서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피어오르는 환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사인 축구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것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함성을 지르던 붉은 물결, 그것이야말로 그 여름의 열기가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표지일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가 넘쳤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늦은 시간에도 거리마다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도 몇 번인가 인천 광장에 나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했었지요. 대표팀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4강 진출이라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전무한 기록을 세워버렸습니다. 그때까지 본선에서 단 한 차례의 승리조차 해내지 못했던 나라가 4강에 오른 일을 두고 국외에서도 크게 회자하던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2002년의 열기는 어렸던 제 안에도 존재했습니다. 그전까지 이성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제가 그해 봄부터 한 여자아이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나 미숙했던 그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저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아이도 제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관계 진전에는 무리가 없어서 여름 무렵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연인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창 공부해야 했을 나이여서 어머니께나 다른 어른들께는 비밀로 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관계를 모르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약간의 질시 어린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외에 다른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성적은 어머니께서도 기억하시는 대로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연애를 숨기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굳이 다른 친구들을 만들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수업마저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내킬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학교를 빠지곤 했습니다. 저도 그녀도 성적 면에서는 우등생이라고 불릴 만한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한다는 정도의 핑계로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요. 집으로 연락이 가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모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그녀가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면, 그 즉시 적당한 핑계를 대고 학교를 빠져나오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었지요. 카페에 가서 오래도록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학교 뒷산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손을 잡고 등산로를 오르고, 약수터에서 물장난을 치며, 서로 힘껏 껴안은 채 상대의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마주 보고 숨이 막힐 때까지 웃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자각은 우리를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그날도 그런 평범한 날 중 하나였습니다. 불볕더위도 막바지에 다다른 늦여름이었지요. 그 무렵에는 아폴로 눈병이라는 병이 유행했었는데,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1969년 가을에 처음 발병하여 당시 사람들이 달에서 가져온 병이 아닌가 의심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압니다. 전염성이 제법 강해서 눈병에 걸린 아이들은 등교를 제한했었는데, 우리에겐 오랜만에 찾아온 적절한 핑곗거리였습니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우리는 눈병에 걸렸다며 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녀가 먼저 나왔고, 제가 나중이었습니다. 약속 장소인 집 앞 공원에 도착하니 그녀는 평상복 차림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우리가 정한 밀회 장소는 버스로 반 시간 정도 떨어진 인천 상륙작전 기념관이었는데, 어머니도 기억하시겠지만 그곳은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기회가 될 때마다 작은 꼬마였던 저를 데려가곤 하셨던 곳이지요. 지금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묻은 그리운 곳이지만, 향수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던 저에게는 그저 자주 가던 곳이라는 인상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그 아이와 가고 싶었던 곳은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송도 유원지였지만 그녀는 그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시끄러워서 싫어, 하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도 장소보다는 그 아이와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불만 없이 순순히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기념관에는 한국 전쟁 당시 쓰였던 탱크나 전투기 등이 전시 중이었습니다. 저도 그녀도 군사 무기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었으므로 우리는 야외 전시장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이 강해 견딜 수 없이 덥지는 않았습니다. 돌아갈 때에는 걸어서 가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일찍 기념관을 나왔습니다. 어느 정도 걷자 그녀의 학교 뒷산 격인 청량산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조금 고민하다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넘지 않으려면 길을 따라 북쪽으로 빙 둘러서 가야 했기 때문에 다리만 조금 아플 뿐 걸리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산을 올랐습니다. 평일 오전이라 원래 사람이 없을 시간이긴 했지만 어쩐지 그날은 특히 조용했습니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오전 내내 기념관을 걸어 다니다 산을 탔기 때문에 우리는 꽤 지쳐 있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청량산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은 그 중 가장 남쪽의 제2 봉과 가운데의 정상이었고 그 북쪽으로 봉우리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세 봉우리 중 가장 낮은데다가 다른 두 곳보다 가는 길이 멀어서 오르는 이가 적은 봉우리였습니다만, 그녀가 사람 없는 곳을 좋아하고 또 다른 곳과는 달리 바닥이 바위로 된 그곳이 등산보다는 오래 앉아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더 나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그곳에 갔습니다. 지쳐 있던 우리는 그날도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녀가 피곤해했으므로 제가 그녀를 업었습니다. 그날따라 제 뺨에 닿는 그녀의 머릿결이 유난히 부드러웠습니다.

탁 트인 시야로 도시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그녀의 머릿결을 흩날리게 하였습니다. 바위 끝에 걸터앉아 아래로 다리를 내밀자 하늘에 뜨기라도 한 것 같은 아찔한 느낌에 기분이 상기되었습니다. 그녀는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고 저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코끝을 스치는 그녀의 체취가 저를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품 안에 느껴지는 그녀의 온기조차 어쩐지 야릇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자꾸만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부끄러움에 차마 펜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제가 꾸며낸 거짓말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심장 밑바닥에 눌어붙어 떼어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날의 제가 할 수 없던 고백을 하려 합니다. 어머니, 그날 저는 그녀를 강간하려 했습니다. 그녀의 몸을 누르고 그녀의 손을 구속하며 놀란 그녀의 옷을 벗기려 했습니다. 그녀가 저항해서 조금 애를 먹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저를 힘으로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조금만 더 버텼으면 저는 그녀를 범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아무도 없다고 믿었던 수풀 사이로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심장이 멎을 만큼 놀라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소리의 정체가 허무하게도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를 오르며 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잠깐의 시간밖엔 걸리지 않았지만, 일은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 벌어졌습니다. 그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를 힘껏 밀쳐낸 것입니다. 제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그녀는 바로 일어서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장소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위 바닥이 쉬기 좋아 그녀가 좋아하던 그곳은 또한 절벽이기도 했습니다. 몸을 추스르자마자 제가 본 건, 아래를 향해 빠르게 멀어지는 겁에 질린 눈동자 한 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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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랬는지도 모르게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들이 왜 이렇게 늦었느냐는 식으로 뭔가 말했지만 제 귀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며 몇 시간이나 멍하니 누워 있었습니다. 식사할 생각은커녕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원망하듯 저를 바라보던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 외에는……. 그리고 바위 위에 실금처럼 번져나가던 피, 창백한 뺨을 타고 흐르던 뇌수, 뼛조각, 눈동자, 피, 피, 피……. 제 상념은 머릿속에 각인된 선명하고 붉은 이미지들 사이에서 한참을 헤맸습니다. 몇 시간이고 그렇게 헤매다가,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황량하고 어두운 밤의 들판에 서 있었습니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엔 별조차 보이지 않았고, 들판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말라 비틀어진 풀만이 허리 높이까지 뻗어 올랐습니다. 들판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문득, 영원히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며 불안해졌습니다. 저는 무작정 앞으로 달렸습니다. 이 어둠 속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들판의 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몰아쳤습니다. 멀리, 식어버린 초승달만이 눈앞에서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마치 진짜로 달리기라도 한 듯 호흡이 가빴고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몇 번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은 며칠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녀의 실종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알려졌습니다. 며칠 동안 그녀를 찾아다닌 끝에 사람들은 바위 아래에서 차가운 시신이 된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경찰은 그 상황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거짓 핑계를 대고 학교를 빠진 평범한 여중생이 산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가 봐도 어색했습니다. 경찰은 사건 해결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들이 주변을 들쑤시며 증거를 찾는 모습을 보며 저는 두려움의 늪에 빠져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바위틈 사이로 흥건히 고인 피와 그녀의 깨진 머리가 떠올랐고, 눈을 뜨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까 두려워 이성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사실 수사는 제 근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우리의 관계를 알지도 못했고, 친구들은 공포에 젖은 제 모습을 그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착각해 저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인자였습니다. 실족사일 뿐이라며, 직접 그녀를 밀거나 한 것도 아니니 그녀의 죽음은 그녀 자신의 책임이 아니냐며 끝없이 합리화를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녀의 죽음이 저의 죄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까지도 제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며 사그라졌지만, 그 자리를 죄의식과 공포가 대신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아무 일 없는 척 가장하던 자제력이나 정신력도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제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웃음이 없어지고 말수도 줄어들어 어머니께서 무척 걱정하시던 모습을 아직 기억합니다. 불조차 켜지 않은 집에 혼자 멍하니 누워 있는 저를 어머니께서 발견하신 적도 있었지요. 어머니께선 저를 끌어안고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느냐며 무척이나 눈물 흘리셨습니다. 그때 할 수 없었던 대답을 이제서야 드립니다. 그때 저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죄책감이었노라고.

제 상태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만 봐도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고, 좋았던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습니다. 저를 위해 어머니께서도 여러 가지로 노력하셨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심지어는 일상적으로 말하는 것마저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녀와의 기억이 그대로 남은 곳에 사는 것 자체가 제겐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녀와 오르던 산, 그녀가 저를 기다리던 교문, 그녀와 함께 앉던 벤치…….그곳엔 그녀의 흔적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제가 보는 곳마다 그녀가 존재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죽은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어떻게 하면 네 마음이 편해지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한 마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멀리 가고 싶어요, 라고. 아시다시피 우리 가족이 영국행을 결심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것은 저에겐 구원이었습니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그동안 저를 얽매이던 구속 같은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상태는 빠른 속도로 호전되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후부터 제가 집을 나가게 될 때까지의 기억은 어머니의 것과 제 것에 큰 차이가 없을 줄로 압니다. 한 달이 채 안 되어 저는 모든 기억을 떨쳐내고 전과 같은 밝음을 되찾았고, 어딘지 모를 곳을 헤매는 꿈도 더는 꾸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영국행은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며 기뻐하셨지요. 저는 영국 사회에도 빠르게 적응해 나갔습니다. 말도 금세 배웠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성적도 다시 좋아져서 조기 졸업까지 해가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명문 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지요. 비록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돈보다는 사람을 돕는 의학을 공부하고 싶은 제 뜻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가라는 아버지의 바람과 맞지 않아 집을 뛰쳐나왔지만, 저는 그 역시 제가 완전히 치유되었기에 가능했던 고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는, 그리고 아버지께도 아직 죄송한 마음을 버릴 수 없지만, 저 자신은 그것이 제게 이로운 경험이었다고 여깁니다.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면 저는 제가 나아졌음을 확신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 사건이 어머니와 함께이던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중에 한 장면으로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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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적은 이야기가 제가 당신과 함께 있을 적에 겪었지만 숨기고 말씀드리지 않았던 일들에 관해서였다면, 이제부터 적어 올릴 이야기는 어머니 곁이었다면 반드시 말씀드렸을, 두렵고도 기묘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많은 비약과 추측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이해하시기 쉽도록 제가 경험한 것들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쓰도록 노력하겠지만, 그럼에도 편지의 서두에 적었듯 저 자신부터가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에, 어머니께도 혼란만 전해 드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글을 쓰는 손을 붙잡습니다. 그러니 혹여라도 어머니께서 편지를 읽고도 일의 전말을 이해할 수 없으시다면, 미숙한 제 글재주를 탓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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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저는 뇌의학과 신경 정신 분야에 뜻을 두고 영국보다 그 분야가 발달한 미국으로 사는 곳을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인턴 생활을 하던 저는 소개를 통해 한 대학 부설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레지던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근무처인데, 전문의로서의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아직은 배우는 처지인 레지던트는 어떤 환경에서 누구에게 배우느냐에 따라 의사로서의 실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제가 근무하던 병원은 뇌의학에 관한 한 세계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곳은 뇌의학 전문의가 되기 위한 최상의 환경에 가까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곳에서의 생활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보다는 하루하루 검진을 돌고 수술을 보조하며 서적을 통해서만 알던 다양한 환자들을 경험해 실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쉴 틈 없이 일했고, 잠자리에 들어도 3-4시간 간격으로 반복되는 긴급 호출에 금방 깨어야만 했습니다. 또 각자 담당하는 환자가 달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수술 등으로 지나치게 바쁠 때에는 다른 사람이 담당하는 환자를 돌보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명의 환자를 여러 의사가 진료하는 일은 효율 면에서도 떨어졌고 또 무엇보다 환자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었으므로 권장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만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던 환자 중에는 드물게도 소녀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제 동료가 담당하던 환자였는데 그녀의 담당의가 큰 문제를 일으켜 퇴출당하는 바람에 제 담당으로 들어온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비슷한 증세의, 일종의 기억 장애를 앓고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소녀의 나이는 지나치게 어린 편이었습니다. 검진 카드에 적힌 그녀의 나이는 15세였습니다.

소녀의 전 담당의는 그녀의 병을 알츠하이머병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알츠하이머가 아니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억 장애가 사소한 건망증 같은 단기 기억의 손실에서 시작해 점차 장기 기억 장애로 이어지는 반면 그 아이의 증세는 마치 몇 조각이 사라진 퍼즐처럼 불규칙한 기억의 누락이었습니다. 이는 뇌손상에 의한 기억 장애보다는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의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이 겪은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다중 인격의 징후를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진찰 기록에서 그녀가 여섯 달 전까지만 해도 나이에 어울리는 평범한 삶을 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증상이라고는 단지 군데군데 빠진 기억이 있다는 것뿐, 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누락은 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도 포착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런 사례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일지도 모르는 병을 가진 그 특별한 소녀는, 일상생활에서만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평범한 외모에 성격이나 언행도 평범한 10대 소녀의 그것이었습니다. 소녀답게 주위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능력도 갖췄지만, 어린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의 말투에는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부드러움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겉으로만 봐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소녀였습니다. 기억 장애를 제외하면 그녀에게 다른 이상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입원 기록에서 그 아이가 원래는 일반적인 약물치료만 받다가 차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입원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장기간의 관찰 끝에 기억 손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기록도 있었지만, 처음 그녀를 진찰한 저로서는 며칠 새 그녀의 기억에 빠진 부분이 늘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혹 불편한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필요한 것을 물었을 때는 병원 공기가 조금 건조하다며 가습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알아보겠다고 말한 뒤 저는 병실을 나왔습니다. 문득, 기시감이 아니라 정말로 어디선가 그녀를 만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몇 번의 방문 후에야 그녀의 증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심한 건망증과 유사한 상태로, 정신 능력의 상실이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식의 퇴행 현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억 상실 자체는 보기 드물게 심각해서, 어떤 날인가는 매일같이 보던 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증세가 악화한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학생 시절에도 배운 기억이 없어서 다른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는데, 병원의 누구도 그런 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다른 이들은 전 담당의가 적은 기록을 읽고 소녀가 단순히 알츠하이머를 앓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직 실력이 미숙한 제가 다루기엔 벅찬 증상이었습니다. 상부에 보고하면 분명히 더 실력 있는 의사가 그녀를 담당하게 될 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직 저만이 그 아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젊은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오만한 환상이지만, 제 느낌은 그런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차라리 예지에 가까운 무언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녀의 병에 관한 사실을 숨기기고 홀로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되도록 자주 그녀의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그것을 의사적 사명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제가 눈여겨본 부분은 그런 미덕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저는 그녀의 모습에서 묘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앞서 기시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강한 감정이었습니다. 낯익음이라고 할까요.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그때 제가 소녀를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나 그녀를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다고 느낀 것은 모두 그 낯익음의 원인을 알아내고 싶어 지어낸 핑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정도로 저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시감에 집중했습니다.

한 번은 다른 환자를 수술하는 도중에 그에 대한 잡념 때문에 큰일을 낼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뇌수술 도중에 잡생각을 한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는 되도록 그녀를 멀리하고, 그녀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기로 다짐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괴상한 핑계를 대고 그녀를 다른 의사의 담당으로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우고 싶다고 지워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 분위기, 그 기시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한창 작업에 몰두하는데 귓가에 이명 같은 것이 들리며 시야가 흔들렸습니다. 즉시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느라 몸이 피곤해진 거라는 가설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해 보았습니다. 좀 더 쉽고 편한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몇 년간 해 와서 익숙하던 일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처럼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서류 작업은 물론이고 그동안 지내온 제 방, 제 책상, 제 의자마저 남의 물건을 보는 듯 낯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다시 그 소녀의 모습이 제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그녀는 낯익은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지는 세계에서, 그녀는 제게 유일한 낯익음이었습니다. 그토록 잊으려고 애써왔던 그 소녀의 생김새, 말투, 걸음걸이 등이 또렷하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의식의 깊은 곳, 뇌의 잘 사용하지 않던 어떤 부분으로부터, 그 낯익음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가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 느낌은 전적으로 그 가설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증명할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봐야만 했습니다. 수술 사건 이후로 저는 단 한 번도 그녀의 병실에 간 적이 없었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만큼은 자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아주 잠깐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저는 겉옷을 집어들고 그 소녀의 병실로 향했습니다.

병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면서 저는 머릿속으로 제가 아는 그 소녀에 대한 모든 것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생김새, 목소리, 말투, 성격……. 하나 둘씩 그녀의 특징을 떠올릴수록 제 가설은 더욱 힘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머릿속이 점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병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빨리 그 소녀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은 점점 불어났습니다. 망설임 때문에 더디던 발걸음은 뛰는 것처럼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병실 앞에 도착했을 때 저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가빠진 호흡을 가눌 겨를도 없이 급하게 병실 문을 열어젖힌 저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얼어붙었습니다.

자정을 한참 넘긴 늦은 시간임에도 그녀는 잠들지 않고 베개에 등을 기대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월광이 그녀의 옆얼굴에 묘한 음영을 드리웠고, 병원복을 통해 비치는 그녀의 실루엣이 어딘지 에로틱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충격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흥분이 고조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습니다. 뛰다시피 걸어온 후유증에 격한 긴장이 겹쳐 호흡이 감당할 수 없으리만치 격해졌습니다. 제가 들어오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짧지만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지난 후 우리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문을 연 순간부터 알았지만 흥분과 혼란 때문에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사실 하나가 논리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가능할 리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녀가 제 눈을 바라보자 제가 가진 이성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입에서, 그녀에게 한 번도 알려주지 않은 제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저는 완벽히 확신했습니다. 제 가설이 옳았습니다. 기억의 누락에 고통받던 소녀, 제가 떨칠 수 없는 낯익음을 느꼈던 그 소녀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제가 사랑했던 2002년의 바로 그 소녀였습니다.

한국을 떠난 뒤로 잊고 있던 기억이 폭풍처럼 휘몰아쳤습니다. 그해 여름에 제가 느꼈던 모든 공포, 절망, 두려움, 슬픔이 미친 바람이 되어 제 정신을 유린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감정의 격류 속에서,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하는 거대한 욕망이 눈뜨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옛날, 제가 사랑하던 한 소녀를 죽게 만든 바로 그 추잡한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눈앞의 소녀를 원하는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아아, 어머니! 당신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성을 부수고 다른 감정들조차 날려버리는, 수컷들만이 이해할 그 저열한 성욕을! 저는 그 뜨겁던 여름날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짐승이 되어 소녀의 몸에 올라탔습니다. 그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은 소녀의 저항에도 애를 먹었던 그때와는 달리 제가 성인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번에는 저를 굳어버리게 할 청설모 따위는 없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죽어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몸에는 상처는커녕 멍 자국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찌 된 일인지 죽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마치 어느 악마가 지하에서 지켜보다가 제 손이 소녀의 살갗에 닿는 순간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 가기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몸을 닦아내고 옷매무새를 정돈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침대에 눕힌 뒤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녀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육안으로 볼 때 타살이라고 생각할 여지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사는 형식적으로만 이뤄졌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소녀에게서 저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소녀의 죽음은 병원에서 흔히 일어나는 그런 죽음으로 치부되어 곧 잊혔습니다.

정말 기묘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저는 제가 담당하던 뇌졸중 환자 한 명에게서 기억 상실의 징후를 발견했습니다. 병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 없던 사람이 진료를 마칠 즈음이 되니 자신이 병원에 오게 된 과정을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적 기억 상실은 뇌졸중으로 해마부로 연결된 혈관이 막혀 뇌경색을 일으키면 가끔 발생하기도 하는 증상이라 처음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손실된 기억은 점차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그의 기억 상실은 보통의 것에 비해 매우 불규칙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먹은 음식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가 하면, 그 다음 날에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번 손실된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를 깨닫고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뇌졸중 환자였던 그의 증세는, 며칠 전 죽은 소녀의 증세와 닮아 있었습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그는 최근의 기억보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주로 잃는 것으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저는 그 환자를 연구했습니다. 순진하게 치료에만 몰두했던 소녀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에는 원인 자체를 알아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해져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로 그를 입원시켰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정상적이고 원칙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양 행동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차를 무시했고, 많은 규칙을 어겼습니다. 그에 대한 연구를 다른 의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그를 평범한 뇌졸중 환자라고 여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저를 이끌었고 또 괴롭혔던 의사로서의 도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가 자신의 침대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억을 잃었던 소녀와 마찬가지로 그의 몸에는 어떠한 이상도 없었습니다. 부검 팀도 그의 사망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이미 치료 중이던 뇌졸중을 제외하면 어떤 상흔도, 질병도, 손상도 없었습니다. 별다른 화학 물질이나 세균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그냥 죽은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도 아무런 추궁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정말로 제 탓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그가 겪은 기억의 상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긴 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저뿐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병원과 동료 의사들을 계속 속이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사건이 이런 식으로나마 빨리 매듭지어진 게 오히려 다행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환자들과 증상이 정확히 일치하는 세 번째 환자가 나왔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복잡했습니다.

세 번째 환자는 당혹스럽게도 정형외과 병동에서 나왔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 중이던 환자 중 한 명이 기억 상실 증세를 보여 외과팀이 우리에게 문의한 것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검진한 의사들은 처음 보는 사례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결국 제 복잡한 심경은 다른 이들의 당황에 묻혀 크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증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과연 제가 혼자 작업할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알아낸 것은 기억 상실을 일으키는 원인이 병원균도 신경 질환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제가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던-첨단 장비들을 이용해 그의 뇌 상태를 정밀 검진한 결과 환자의 뇌세포가 일종의 '재생'을 하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기록된 기억이 빠져나가고 그 부분이 신생아의 것처럼 백지상태로 회귀한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인근 다른 병원과 세계 유명 병원들에 자문을 구해봤지만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 증세는 그곳에서 최초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기억 손실이 14~15세에 해당하는 유소년기의 기억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죽은 소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기묘했던 밤 소녀가 어떤 어조로 제 이름을 불렀는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한순간 그 작은 소녀에게서 느껴진 또 다른 소녀……. 저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왜 죽은 소녀와 그 남자가 기억을 잃는 시기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였는지를. 사실 그들의 증상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14세 전후의 기억을 주로 잃었던 것입니다. 처음의 소녀는 단지 그녀 자신의 나이가 14세였기 때문에 최근의 기억이 가장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등줄기가 서늘했습니다. 그 아이, 오래전 죽어 버린 2002년의 그녀 또한 14세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증세에 대해 많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치매의 한 형태이다, 암세포가 특이하게 발현한 것뿐이다, 해리성 정체 장애의 초기 증상이 분명하다……. 그 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은 교통사고의 충격이 뇌의 비밀스러운 부분에 자극을 주었고, 그로 말미암아 뇌가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어떤 메커니즘이 발현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설이었습니다. 뇌가 손상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기억 세포마저도 원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는 한 인간의 뇌에 그러한 메커니즘은 없었지만, 뇌에 대해 인간에게 밝혀진 정보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기에 사실 그렇게까지 허무맹랑하기만 한 가설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충격 없이 같은 증세를 보인 다른 환자들을 경험한 저는 그 의견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의 재활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간다는 소식이 들리고 "사고 후 충격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기억 상실도 몸의 회복과 함께 나아지리라 믿을 때에도 저만은 그렇게 여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먼저 죽은 두 명처럼 아무 외상 없이 죽은 채 발견되었을 때도 단지 희미한 씁쓸함을 느꼈을 뿐입니다.

다만, 네 번째 환자에 대해서는 저로서도 약간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발병한 두 환자와는 달리, 세 번째 환자가 사망한 직후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발견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죽은 후엔 점점 더 많은 환자가 생겨나더니 여덟 번째에 이르러서는 일곱 번째 환자가 사망하기도 전에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나타났습니다. 기억 상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염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점점 빠르게. 이런 매개 없는 전염은 현대 의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병원균 이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관찰 결과였습니다. 다시 한 번 논쟁이 불타올랐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병원균이 존재하는 것뿐이다, 기존에 알려진 병원균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매개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단지 확률이 매우 낮은 우연이 일어났을 뿐 전염이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희생자는 점점 늘어나 사망자가 서른 명이 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일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즉시 주 정부에 올릴 보고서가 작성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었습니다.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은 물론 병원에 머물던 다른 환자들과 면회를 왔던 가족들까지도 격리 수용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환자들과는 다른 병동에 수용되었는데, 정부에서 파견된 국가 소속의 과학자들에게서 사망자들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원인을 밝혀낼 것이며, 치료법도 곧 나올 거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이 병-병원균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적합한 명칭은 아니지만-이 병원 밖으로 빠져나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엄중한 보안과 철저한 격리 작업을 직접 지켜본 우리로서는 적잖이 안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입니다.

저에게는 인턴 시절부터 알던 동료가 한 명 있었습니다. 얼마 전 하필이면 우리 병원으로 부임이 예정되었는데, 우연히도 출근하려던 첫날이 격리 조치가 시작되던 날이어서 격리를 면한 친구입니다. 우리 병원에는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고 인턴 이후로는 저와도 만난 적이 없어서 감염 환자와는 접촉했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감염이 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부에서도 그런 사실을 알아서 단지 병원 출입을 막았을 뿐 그를 격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병원의 인사과 행정실 문앞에서 그곳에 있을 리 없는 친구가 서성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병원 출입은 완벽히 통제 중일 터였습니다. 만약 격리가 해제되었다면 제가 모를 리 없었습니다. 망설이던 저는 일단 그와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격리 대상인 제가 그와 이야기를 나눠서는 안 되었지만, 애초에 그가 이 병원 내부에서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건드리자 그는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제가 놀랄 정도로 굉장히 반갑게 인사하더니, 새로 부임한 곳에 아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는 식의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출입이 통제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격리 조치에 대해 듣지 않았느냐며 그를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제 질문을 깨끗이 무시한 채 인사 행정실을 찾아야 한다며 몸을 돌려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자네 도대체 뭘 하는 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예감에 겁을 먹은 제가 그의 등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얼어붙게 하는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아직도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느꼈던 오싹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제 얼굴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 병원에서 일하시나요? 반갑습니다. 인사 행정과를 찾는 중인데요…'


                                                 *   *   *   *   *


어느덧 이야기가 현재를 따라잡았습니다. 한 소녀에게서 시작된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억 상실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버렸고, 이 글을 쓰는 바로 이 순간에도 병원 내부는 물론 병원 바깥까지 환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치료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만은 내일도 살아남기만 기도하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절망적일 정도로 빠른 확산 속도가 우리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습니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아마 머지않아 지구 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멸종하고 말 것입니다.

얼마 전, 어린 시절의 저를 괴롭혔던 꿈을 다시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용이 조금 달랐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메마른 황무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우중충한 하늘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보였고 땅에는 풀 한 포기조차 없었습니다. 멀리, 시야가 닿는 가장 먼 곳에서 땅이 끝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저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닥이 없는 거대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오직 심연, 그리고 끝없는 추락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추락의 끝에서 한 소녀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절벽을 향해 계속 달리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매일 밤 황무지를 달리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가장 두려운 건 매일 밤 꿈에서 깨어나는 위치가 점점 절벽에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잠에서 깨기 전에 절벽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악몽을 꾼 그날, 저는 어린 시절 그 소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때의 저 역시 14세였습니다. 아마 이제 저도 죽게 되겠지요. 제가 죽인 두 소녀처럼, 그리고 그 이후에 죽은 무수한 사람들처럼. 어머니, 저는 두렵습니다. 수십 년간 저로서 살아왔던 제가 앞으로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그리고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잊히리라는 것이 뼈가 저리도록 무섭습니다. 아아! 어머니, 어머니!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품에 안겨 숨이 막히게 울고 싶습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은 압니다. 제가 가면, 저는 어머니조차도 지킬 수 없을 테니까요.

어머니께 폐가 되지 않도록 저는 머나먼 이곳에서 조용히 죽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저는 끝까지 당신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서, 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크나큰 짐을 떠넘기기 위해, 당신께서 슬퍼하실 줄 알면서도 이렇게 저의 죽음을 편지로 남깁니다. 못난 아들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부탁드리건대, 설령 저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종말을 맞이해도,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 해도, 어머니만은 언제까지고 이 편지를 읽으며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끝까지 기억해 주십시오. 그것이 이 불효자가 어머니께 떠넘기는, 세상을 멸망시킨 아들을 위한 대속(代贖)의 짐입니다.

이제 펜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더 쓰고 싶은 말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제 상태는 정말로 악화되었습니다. 더 많은 기억을 잃기 전에, 제가 이 편지를 썼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전에 편지를 마무리해야만 합니다. 다시 한 번, 몇 번이고,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글을 줄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몇 년이나 연락 한 번 없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편지를 올려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집 나간 아들을 이제는 지우신 지 오래일 텐데 이런 식으로 다시 마음 쓰시게 만든 것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빕니다. 하시는 일은 잘되시는지요. 몸은 좀 어떠신지요. 혹 편찮으신 곳은 없으신지요.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갑작스레 편지 드려 폐를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마음에서 저를 지우셨을 텐데 괜한 걱정을 하시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으신지요. 당신의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적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건강을 기원하며 씁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

티아리
댓글 9
  • No Profile
    나기 10.12.12 23:23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티아리 10.12.13 03:19 댓글 수정 삭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분량 제한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2만 2천자에서 약간 모자라는데 괜찮을 지 모르겠네요.) 잘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 No Profile
    엄길윤 10.12.13 08:58 댓글 수정 삭제
    오오~!! 굳! 잘 읽었습니다. 세세한 심리와 상황 묘사가 눈에 띄네요~ 결말도 인상적이구요~
  • No Profile
    D 10.12.13 11:32 댓글 수정 삭제
    담담하고 비극적인 문체가 꼭 다사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떠오르게 하네요. 좋은 글 봤습니다.
  • No Profile
    S 11.01.09 19:40 댓글 수정 삭제
    굉장히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 No Profile
    A 11.01.09 21:34 댓글 수정 삭제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스즈키 코지의 링1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 No Profile
    제목이 너무 촌스러워서 읽었는데, 읽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빠져들었어요.
    거울편집진이 어떤 글을 선택할지는 몰라도 저는 이글이 맘에 들어요.
    [뇌수와 피피피 뼛조각.]
    ->이게 보일만큼 낮은 절벽이었나요? 왠지 절벽이 높다면 잘 안 보일것 같은데, 보였다고 하니까, 조금 집중이 깨졌어요.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가 제가 당신과 함께 있을 적에 겪었지만 숨기고 말씀드리지 않았던 일들에 관해서였다면, 이제부터 적어올릴 이야기는 어머니 곁이었자면 반드시 말씀드렸을, 두렵고도 기묘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중간을 뚝 자르고 주의를 환기시키네요.기성작가가 쓰는 장치같은데, 작가의 오만함이 느껴져서 맘에 들어요. 이 정도로 잘쓰면 좀 오만해야 된다고 봐요^^.
    [수컷들만이 이해할 그 저열한 성욕을, 올라탔습니다.]
    ->자기비하? 죄책감을 의식하고 일부러 거친말투를 쓰는 캐릭터는 참 재미없어요.차분한 말투였으면 더 제 취향이었을듯.
  • No Profile
    티아리 11.01.16 10:43 댓글 수정 삭제
    호평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책을 많이 추천받아 기쁘군요. 인간 실격은 여기저기서 추천받는 책이라 읽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네요. 이번 기회에 한번 도전해보아야겠습니다. 링은 장르 문학 애호가라면 한 번쯤 읽어봤을 명작이지요. 영화보다도 더 무섭고 흡입력 있었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들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이 촌스러웠나요. 하하. 나름 힘을 주려는 의도였는데 능력이 부족해 결과가 의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12월에 올린 글이다 보니 이번 92호가 아닌 91호의 심사 대상이어서 거울의 비평은 이미 받아보았습니다. 과분하게도 가작에 선정되었네요. 마음에 드셨다니 기쁩니다. 좋은 평가와 글에 대한 비평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1년도 벌써 16일이나 지났네요. 행복한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 No Profile
    나기 11.02.19 11:39 댓글 수정 삭제
    다음에도 티아리님이 쓰신 글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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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5 단편 2845 곰돌이5 빛옥 2011.06.15 0
2884 단편 <b>이번엔 <font color="green">외계인</font>이다. - 2차 소재별 앤솔러지 작품 공모</b> mirror 2007.01.18 0
2883 단편 괴물. 사납고, 강하고, 끙끙거리는3 호워프 2013.02.01 0
2882 장편 The Power에 대하여2 최현진 2003.08.15 0
단편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9 티아리 2010.12.12 0
2880 중편 헝겊인형-4(완결) 김영욱 2005.11.17 0
2879 장편 Angel of the night <01>2 김지원 2006.03.04 0
2878 단편 악어 생포하기4 황당무계 2005.12.12 0
2877 중편 [죽음 저편에는] 1. 非 (01)3 비형 스라블 2003.10.28 0
2876 중편 水領神─-…「제 1-1장」1 정수지 2003.10.24 0
2875 장편 상상이론 - 에필로그1 테트라찌니 2013.02.19 0
2874 단편 내가 본건 고양이었을까, 고양이의 꿈이었을까?6 rubyan 2006.02.24 0
2873 중편 헝겊인형-2 김영욱 2005.11.15 0
2872 단편 지구적 양식업자10 니그라토 2009.07.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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