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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세티 루릭 (Seti. Rulik)




" 좋아, 그러면 이제 네 몸은 내 것이다. "

... 또 그 꿈이다, 그날의 꿈, 이제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을, 왜 이
리 힘들어하는 걸까 나는.
스스로 택한 길이다, 스스로 원한 일이고, 그것을 이제 와서 후회라도 한다
는 걸까. 세큐리티 데 솔브(security de  sollv :솔브의 보안자)를 그 수단으
로 선택한 건 가장 빠른 길이었지 않은가, 그 대가가 이런 것이라 해도.
솔브의 중역 중 하나인 그, 이드.유리테스(Id.Urites) 의 눈에 든 것은 행운
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나 쉽게 이 학교에 들어올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설사 받을 수 잇다해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 그
래 잘된 일이다.
그와의 계약은 졸업 후,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그의  은혜에 감사하며 내
몸을 단련하는 일이다,  그에게 돌려주어야 하니까,  부족함 없는  세큐리터
(securiter)가 되어서 말이다. 나를 위해서도 또 '그분' 을 위해서도.

사립 솔브(Sollv)하이스쿨.
거대한 바다 위에 자리한 인공섬, 군데군데  지열을 끌어올려 발전하기 위
한 새하얀 기둥이 늘어서 있고. 그 기둥들 사이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깨끗
한 흰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섬 자체가  바로 다국적 기업 솔브 산하
의 직속 학교, 아니, 학교라기보다는 뭔가 다른 이름이 더 어울릴 듯한 전원
기숙사제의 하이스쿨 이다. 외부와의 접촉은 일년에 한번, 그것도  희망자만
이 가능하다, 원한다면, 입학해서 졸업하는 4년 동안 전혀 외부의 영향을 받
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니 만큼, 그 교육은 엄격하고 특별한 사람만을 위해 주어진다.
솔브 하이스쿨의 학생은 모두 세 가지 타입.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은 솔브의 미래의 중역들, 일명 프린스(prince)라
고 불리는 그들이 엄선한  솔브의 계승자들이다. 당연히 이  아이들은 가장
우수한 지도자의 혈통을 타고난 아이들로 철저하게 솔브의, 그리고 모든 것
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정상에 서기 위한, 제왕을 위한 교육
을.
그리고 그 다음이 현  솔브 중역들의 아이들 중,  프린스의 자질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 우수하든 그렇지 않던 간에 그들은 아버지의 뜻으로 교육받고
조금은 부족하지만 프린스들을 보좌하기  위한 프레미어(premier)로 자라난
다.
그리고 마지막, 어시스턴스(assistance)라는 정식  명칭에도 불구하고 속칭
오펀(orphan)이라고 불리는, 빼어난 지도자의 자질도, 부모의 후광도 가지지
못한 솔브 산하에서 자라난 아이들. 바로 나 같은 존재다. 프린스와  프레미
어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어시스턴스들은 역시 세 단계로 나
뉘어진다.
그중 첫 번째가 아머(amer)-몸으로 프린스와 프레미어를 지키는 보디가드
들. 두 번째가 텔러(teller)-뛰어난 기억력이나 응용력으로  살아있는 컴퓨터
가 되는 비서들. 그리고 세 번째, 모든 어시스턴스들이 가장 바라는  최상의
결과 바로 세큐리터-그야말로 프린스와  프레미어, 그리고 솔브  그 자체를
지키는 신체와 정신, 사상까지 완벽한 보안자들.
매년 500명의 어시스턴스-세큐리터 후보들이  입학하지만 그중 진정한 세
큐리트 데 솔브가 될 수 잇는 졸업생은 단지 5명뿐, 나머지는 아머나  텔러,
또는 낙오자로, 단순한 솔브의 인력원이 되 버릴  뿐이다. 나는 바로, 그 세
큐리터가 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내 모든 과거의 기록들을 지우는, 사
회적인 죽음들을 각오하고서.
하루 두 번의 사상교육, 솔브를 위해 무엇이든 하게 만드는, 잠재의식 속에
솔브에 대한 충성심을 불어넣는 교육을 받고, 규칙적인 시간에 운동을 하여
몸을 단련한다, 일반적인 상식도 게을리 해서는 안되고 화기를 비롯한 각종
대인, 대 테러무기를 다루는 법도 익힌다. 아머와 텔러의 능력을 동시에  소
유해야 하므로 그 교육과정은 유난히 힘들다,  아마 프린스나 프레미어들의
교육보다도 세배는 힘들 정도로.
외모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솔브의  이름을 단 세큐리터로서의 아름다
움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전투 시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카락의 길이는 목 이하
로 내려 올 수 없다. 하지만 그 머리카락도 언제나 깔끔하게 빗고 단장하여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세큐리터가 되
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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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XX406. 세티. 루릭(Seti. Rulik) 3번 체력 단련실로. "

나를 부르는 호출소리, 나는 땀에 젖은 앞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조금 전까
지 그의 꿈을 꾸던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같은 방을 쓰는 다른 3명의 룸메
이트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돌아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잠옷을 훈련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지금
이 학교의 어시스턴트중 XX넘버는 나 하나뿐이다. 이것은 즉, 여자는 나 하
나뿐이란 이야기가 된다. 아무리 세큐리터가 되고 싶은 열망에 타올라 있는
이들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십대 후반의 소년들, 여자의  나체에 눈이 안
돌아가는 것이 비정상일 테고, 이제 그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
만 어쨌거나 XX염색체가 가지는 신체적 열세는  상대적, 절대적 평가가 다
필요한 세큐리터시험에서 불리한 것은 분명하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의 수련, 남들의 몇 배가되는 자기  자신의 단련, 나를 위해 그리
고 그분을 위해.
기숙사에서 나와 체력단련실이 잇는 건물로 이동하면서 나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 지독히 파란 대양의 하늘, 해가 뜬지 겨우 한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남양의 태양 빛은 이미 찌를 듯이 따갑다. A블록, 어시스턴트들의 기숙사가
있는 A블록은 어디로 이동하던 간에 이 태양빛 아래를 걸어야 한다, S블록
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시스턴트들은 어디로  이동하던 간에 프린스
나 프레미어들보다 많이 걷고 많이 움직인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 프린스나 프레미어들의 위에 설 수 없으며 그들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솔브의 규칙 때문이다. 언제나 그들은 정점에 선다, 솔브에
서도, 세계에서도.

" 세티. "

체력단련실의 문을 밀려고 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나의 행동을 조금
멈추게 만들었다.

" 니뤼 하야린? "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얼굴.

" 역시 너도 아침 자유시간에 추가체력훈련 신청했구나. "

붙임성 좋은 그는 언제나 내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내 의사는 언제나 그 앞에서는 무시된다. 이것은 좋게  작용
할 때도 나쁘게 작용할 때도 있다. 나쁘게 적용된  것은, 3년전, 내가 이 학
교에 막 입학할 당시의  강간미수사건이었고, 좋게 적용된 것은  그 이후의
관계에서였다.
갓 입학했을 당시에 나는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2차 성징이
조금 늦게 나타난 나는 14살의 그때에는 조금 조그마한 남자아이와 다를 것
이 없었다. 단지 그들과 다른 것은 내 인식번호 앞에 붙어있는 유전자 타입.
.......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즐겁지 못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입
학식이 끝난 직후. 학교 외각의 그 수많은 흰  기둥들 사이에서 내 앞에 선
니뤼. 하야린 말고도 조금 늦게 솔브 하이스쿨에 들어온 십 칠팔 세의 소년
서넛에게 강제로 옷이 벗겨졌고 내 반항은 그들을 더욱 흥분시킬 뿐이었다.

[ 그 아이 몸은 내 것이라네 제군들,  남의 소유물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
이 세큐리티 데 솔브의 기본조건이라 보는데? ]

..... 제길, 역시 어젯밤  꿈은 좋지 않았다. 연상작용이  이런 식으로 이어질
줄이야.
어쨌든 그때 나타난 유리테스 때문에 소년들은 물러났고 유리테스가  나의
후원자라는 것이 공개되어버렸다. 물론 나와 같은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
다. 중역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세큐리터를 미리 점찍어두기도 하니까. 물론
점찍어 놓은 어시스턴트가  세큐리터가 못된다면 비웃음거리밖에  안되니까
대부분은 당사자들끼리 외에는 모르지만 말이다.
여자 어시스턴트를 점찍어 놨다는 것을, 그는 왜 공개한 것일까,
자신의 이름에 허점을 남길지도 모르는 일을.

" A-XX406 세티. 루릭, A-XY192 니뤼.하야린 AM 9시30분까지 제3 체력
단련실을 사용 허가한다, "

" 허가 감사합니다 교관님. "

아침식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이른 시간, 우리 말고는 아무도 있을 리 없는
체력단련실은 유난히 넓어 보였다. 런닝 머신에  올라서서 타이머를 맞춰놓
고 달리기 시작하자 머릿속의 잡념들이 걸음마다 떨어져 나가듯이 사라져갔
다.
아무생각도 없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그저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달리듯이, 세큐리터가 되기 위해.

" 세티, 이번 중간평가에서 또 톱이더구나, 한번쯤은 양보해주는  것 어때?
"

..  그의 붙임성은 묘하게 작용하곤 한다.
어느 사이 옆 런닝머신에서 같이 달리고 잇는 니뤼가 그답게 말을  붙여온
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최대한 간단하게 대답한다.

" 별로 "

" ..;;; 너 답다 "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왜 그는 싫증내지 않는 것일까, 왜  수다스럽
게 나에게 접근하고 나의 표정을 살피는 걸까.

[ 너를 나에게 팔겠다는 건가? ]

... 유난히 그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꿈이란 건 이렇게 오랫
동안 기억나는 거였던가?  그의 냉소적이고도 감정이 자제된 듯한 낮은 바
리톤의 미성과, 적당량의 표정만을 지닌 대리석 같은 얼굴, 그리고 그  위를
덮은 흠 잡을 데 없는 검은머리까지 완벽한 솔브의 중역인 그의 모습. 어째
서 어째서 그런 그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을까.

[ 의외로군, 너의 몸이 그런 일의 대가가 될 만큼 비싸다고 생각하고 잇는
건가 꼬마? ]

[ ... 당신을 위하여 세큐리터가 되겠어요 그러면 되겠나요? 그러면 솔브에
들어올 수 있는 건가요? ]

... 당당하게도 대답했군. 그래 솔브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그의  세큐리터
가 되겠다.
왜냐. 왜 오늘따라 그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냐,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심장이 터질듯이  고동치고 온 몸의 혈관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왜 그의 얼굴이 이렇게 강하게 나에게 다가오는 거냐. 왜 잊혀지지 않는 거
냐.

" ....헉...... "

타이머가 끝나며 런닝머신이 멈추었다, 그 변화를  미처 인식하지 못한 내
다리는 같은 속도로 달리려다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구르고 말았다.

" 세티! "

" ..제길. "

완전히 페이스를 잃은 달리기로 녹초가 되어버린 나는, 욱신거리는 무릎을
무시하고 넘어진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머릿속이  뭐라 말 할 수
없어 복잡했다.

" 괜찮아 세티?! "

하야린이 놀란 듯 그의 런닝머신을 끄고  내게로 달려왔다, 새하얀 천장만
보이던 내 시야에 나를 내려다보는 하야린의 놀란 얼굴이 잡혔다.

" ..괜찮으니까 소리지르지 마, "

하야린의 외침에 머리 한 구석이 울렸다. 머리도 부딪힌 건가, 넘어질 때의
자세 따위 알게 뭐냐, 낙법이고  뭐고 완전히 방심한 상태에서  굴러버린걸,
차라리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크게 부딪혀 버렸으면 더 좋았을걸.
그래서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이드에 대한 영상과 내 앞에서  알짱대
는 하야린의 얼굴이 사라져 버렸으면 진심으로 좋았을걸.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머리  한 구석이 흔들린다. 이것은 통증  때
문? 아니면.. 아직도 떠오르는 이드 유리테스의 환상 때문.. 바닥에 앉은  채
로 머리를 짚었다. 그의 눈빛, 왜 오늘따라...
내 생각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강한 힘이 내 어깨를 눌러 다시 바닥
에 쓰러뜨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습기 있는 무언
가가 내 입술을 덮어왔다.
키스. 그것도 하야린의 키스. ..첫 키스.

" ...... 비켜 "

입술이 잠시 떨어지자 그가 더 덮쳐오기 전에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를
제지했다. 내 가슴위로 뻗어오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열에 들뜬 듯한  눈동
자에 이상이 되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 나는 네 것이 아냐, "

빌어먹을 환상. 이드의 환상. 하야린의 안색이 당황함으로 덮인다. 그도 알
고 있기 때문에,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알고 있기 때
문에.

" 아. 미..미안. "

어깨를 짚어 누른 손에 힘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내 몸에서 떨어진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다시 머리를 짚었다. 두통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두통의 원인보다 더  강한 정신적 충격 탓이겠지.  욱신거리는 등과
허리의 통증을 이기고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침식사 개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 아 저.. 세티 "

하야린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의 당황함과  부끄러움이 가득한 얼굴은 붉
게 상기되어 있다. 붉은빛, 감정의 빛, 나에게는 없는 ... 색.

" 고의..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가..감정에만 휘말려서 한 행동은 아냐, "

" 그래서? "

..나도 안다. 내 목소리에 감정 따위 실려있지 않다는 걸, 그러니까 그런  대
답이, 닫는 쪽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것도. 그러나, 나는 다시는 감정을 담아
서 말하지 못한다. 그날 이후부터는,

" .. 네가 좋다. "

새로운 두통. 뭐지 오늘은.  나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기로 이드와  하야린이
짠 날인가. 왼쪽 머리가 아파 옴에 따라 내 이마가 조금씩 찌푸려졌다.

" 안 들은 걸로 하겠어 그럼 이만. "

식욕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지만 끼니를 거름으로 몸을 허약하게 만들  생각
따윈 없었다. 그대로 식당이 잇는 기숙사 건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찌르는 듯한 햇빛이 다시 나를 덮친다. 귓가에서 햇빛이 부서져나가는 듯한
찡하는 이명. 그리고 내 뒤에서 들려오는 하야린의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실린 목소리.
모든 것을 무시하고싶다, 모든 것을.
쏟아지는 햇빛아래 발을 멈추고  그를 향해 돌아섰다. 어지럽다.  머릿속이
다시 정으로 쪼아대는 듯이 아파 왔다.
멈춘다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나의 입에서는 감정 없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가 뭐라고 말하
고 잇는지는 무시한.

" 무슨 말을 해도 만족할만한 대답은 못 들을 테니 포기해. 내가 생각하고
잇는 건 이 500명의 어시스턴트들 중에서 5위안에 들어 세큐리터가 되는 거
뿐이니까. "

..... 하야린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더 듣지 않고 그대로  식
당으로 향하려고,... 했을 뿐이고 그 다음 알 수 없는 현기증을 느끼며  의식
을 잃었으니까.
정신이 든 것은 의무실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의무
실의 교사는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말했다.

" A-XX406? "

" 그렇습니다...만 "

" 별거 아니고 가벼운 빈혈이다. 아침에 운동을 한 모양이군,  열심인 것을
그다지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멘스 중에는 조금 자제하는 게 좋아. "

그랬었지, 어제부터 피를 보는 중이긴 했다.  그렇다면 이드의 환상도, 두통
도 설마 그것 때문일까. 의무교사는 내 것인  듯한 차트를 뒤적이며 뭔가를
기입해 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 한 달에 하루는 수업과 훈련을 빠지도록. 의무교사의 명령이다. "

" ..... 그것은 XX넘버에 대한 차별이십니까? "

훈련과 수업을 빠지면 그만큼 뒤떨어진다. 여자란  것 때문에 그래야 하는
건가. 의무교사는 그런 내 말을 듣고 미소를 짓더니 여전히 그 가벼운 어투
로 수다라도 떨듯이 말했다.

" 그 하루 분의 훈련과 수업은 취침시간에 대체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그것은 너의 권리이니까, 컨디션이 좋은 날로 바꾸어 해도 상관없겠지. 그리
고- "

그 수다 같은 충고와 명령에 내가 무어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차트를  접어
버린 의무교사는 다시 한번 내 쪽을 바라보고 옅게 웃었다.

" 이것은 XX넘버와 XY넘버의 교육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둘은 엄연히 틀리
니까 말야. "

"... 알겠습니다 "

묘한 방식의 설득.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쓰러진  시점으로부
터 2시간, 오늘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이 의무교사에 의해 금지 당했다. 불
편하군 여자란 것은.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도, 이 주기적인 출혈도. ..그리고
내가 책임질 수 없음에도 나에게 매달리는 감정들도.

" 누가 절 옮겨놓았습니까? "

" A-XY192 니뤼 하야린이다. 널 옮겨놓고는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

의무교사는 투명한 액체가 든 컵을 건네주면서 대답했다.

" 그것 마시고 오늘은 푹 자도록. 내일 밤에  오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

".. 감사합니다. "

컵 안의 쌉싸름하면서도 점도 있는 액체를 들이키고 더 이상의 체력소비를
줄이기 위해 침대에 드러누웠다. 천장에 달린, 은빛으로 코팅된 조명등의 사
이드에 일렁이며 비쳐 보이는 것은 짧게 잘려 하얀 베갯잇 위에 흩어진 블
루블랙의 머리칼과 남양의 태양 빛에 그을린 갈색의 피부, 그리고 희미하게
비치는 오션 그린의 눈동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인이고, 그런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A-XX406 넘버의 세티 루릭.
나는 누구지? 세티 루릭? 아니 세티 루릭이라고 불려지는 오펀. 그래...  오
펀, 수석 어시스턴트, A-XX406,  그 모두가 세티  루릭이라고 불려지는 저
오션 그린의 무감정한 눈동자를 한 소녀.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솔브의 중역,
상급이사 이드 유리테스의 것.
그렇다면 저것은 뭐지? 세티에게 없는 눈을 한  저것, 짧게 다듬은 갈색의
머리칼에 부드러운 암갈색 눈을 한, 검은자위가 흰자위보다 더 많은, 강아지
같은 눈을 한 남자. XY넘버. 차석 어시스턴트, 오펀, 그리고 니뤼  하야린이
라고 불리는 A-XY192.
... 그리고...그리고...그리고....
졸업까지 남은 시간은 3개월, 세티 루릭은 어느 사이 18살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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