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나는 어떻게 아내에게 청혼했나 : 외계인 섹스 이야기

원제: How I Proposed to My Wife: An Alien Sex Story
원저: John Scalzi

John Scalzi는 블로그에 연재하다 Hugo 상 후보까지 올라간 「Old Man's War」라는 작품을 썼지요. 「노인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고, 그 후속작까지 3부작이 번역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킨들에서 다운받아 본 그의 단편들 중에는 생생하고 톡톡 튀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두엇 있어서 그 중 특히 유머러스한 이 작품을 부족한 번역으로나마 소개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직장인이라 짬짬이 옮겨 보려고 합니다. 대충 5회 정도의 연재가 될 것 같습니다.


- 1 -

사람들은 다들 내가 클레어에게 어떤 방식으로 프러포즈를 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글쎄... 꽤나 복잡한 이야기다. 우선 배경부터 설명해야만 하는데, 뉴월드맨(New World Man)잡지의 편집장 벤 로젠월드의 사무실에서 열린 월간 기획기사 미팅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좋아. 다들 여길 봐." 미팅이 그럭저럭 끝나갈 무렵 로젠월드는 모두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럼 이제 외계인 이야기를 하나 골라봐야지."

순간 사무실 내에 모여 있던 편집부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평 어린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아마도 늘상 있는 일인 듯했다. 난 사무실 제일 구석에 콕 박혀서 미팅이 진행되는 내용을 기록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분수를 알고 최대한 저자세로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던 상황이었다. 그 날은 내가 취직한 후 두 번째 주였으며 난 말하자면 기자 서열에서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래, 그래, 그래." 로젠월드는 가소롭다는 듯 직원들의 불만을 대충 달랬다. "이 불쌍하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편집부 직원들아... 매달 외계인에 대해 무언가라도 이야기를 지어 내야만 하니 얼마나 끔찍하겠어? 이건 정말이지 거의 진짜 직업을 가지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일 거야. 안 그래? 그 왜 뭔가 무거운 걸 들어 옮겨야 하거나, 아니면 사람들한테 지금 주문한 거에 감자튀김도 같이 주문할 건지 묻는 그런 일 말이야."

"맙소사, 벤, 잠깐만요." 음악부 편집자인 닉 베니스가 나섰다. "그럼 벤은 진절머리가 나지 않는단 말이에요? 빌어먹을 달이면 달마다 외계인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라니."

"물론 진절머리 나지." 로젠월드는 태연히 응수했다. "뒤랑이든 클리든 세푸안이든 그딴 종족들 내가 알게 뭐야? 하지만 말이지, 생각해보라고. 바로 이게--"

"--우리 본질이야." 약속이라도 한 듯 편집부 직원들은 입을 맞춰 읊었다. 물론 열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웅얼거림에 가까웠지만.

"맞아, 우리 본질이지." 로젠월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플레이보이에는 젖탱이가, 뉴요커에는 얄미운 만평이, 뉴월드맨 지(誌)에는 외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빌어먹을 월간 기획기사가 있는 거야. 이게 없으면 우리 잡지도 없는 거고 닉 자네도 내가 자넬 고용하기 전에 자네가 하던 일을 다시 해야만 하게 되는 거야." 거기서 편집장은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 듯 말을 멈췄다. "닉, 자네가 하던 일이 뭐였지?"

"소설을 쓰고 있었지요." 닉이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자네 진짜 직업 말이야." 로젠월드가 말했다.

닉은 의자 위에서 무척이나 불편한 듯 꿈지럭 대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목덜미 어림에 대고 뭔가를 웅얼거렸다.

"미안한데 잘 들리지가 않는구먼." 로젠월드가 말했다.

"개 산책을 시켰다구요." 닉이 조금 더 크게 말했다.

"아, 그래. 맞아." 로젠월드가 말했다. "바사르 대학 창작문예 학위를 가지고 그걸 하고 있었지. 상류층 애완견들 엉덩이 따라다니며 싸질러 놓은 똥 퍼 담는 거."

"새러 로렌스 대학이었습니다만."

"자네가 자네 부모님 집 팔아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학위를 따온 게 어느 쬐끄맣고 겁나 비싼 대학이었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로젠월드는 가차없었다. "요는 월간 외계인 기사 없이는 자넨 여전히 개 산보나 시켜야 되고, 그런 주제에도 산책 도중에 들르는 카페 바리스타들한테 자신이 예민한 지성인인척 보이려고 워드프로세서를 들고 다녀야 할 거라는 점이지. 그러니까 제발 이 기획기사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라는 말이야. 부탁이네만."

"닉 쥐어박는 게 재미없다는 건 아닌데요..." 부편집장 데비 오스틴이 슬쩍 끼어들었다. "미팅 마무리를 하려면 이야기와 담당자를 정해야만 하니까요."

"스포츠 기사 한 번 더 어떨까요?" 제리 심즈였다. "와이프가 파커슨 학교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요. 아시죠? 외계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요. 그 여자 말로는 거기 세푸안 아이들은 서로에게 단검을 던지는 스포츠를 한다더군요."

"서커스에서처럼?" 데비가 물었다.

"서커스에 그런 게 있나요?" 제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튼 샌디 말로는 이 꼬맹이들이 글쎄 서로의 대갈통에다 칼을 박아 넣는다는 거예요. 체육관 벽에 칼들이 쭉 걸려 있다더라니까요?"

"스포츠 기사는 두 달 전에 벌써 했잖아." 로젠월드가 말했다. "게다가 완전 꽝이었지."

"그렇게 나쁘진 않았는데요." 제리가 말했다. 그 기사를 쓴 건 제리 본인이었다.

"확실히 꽝이었어." 로젠월드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거야 어쨌거나 우린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어. 우리가 외계인 섹스 이야기 내놓은 지 얼마나 됐지?"

모두들 테드 윈스턴을 쳐다 봤다. 그는 로젠월드의 조수이자 뉴월드맨의 비공식적인 기록담당자였다. "글쎄요. 어떤 이야기 말이죠?" 그는 말했다. "동종 외계인 간 섹스를 말하는 건가요, 이종 외계인 간 섹스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외계인과 인간 사이의 섹스인가요?"

"외계인 - 인간 섹스 말이야." 로젠월드였다. "그것 괜찮게 들리는 군."

"13개월 전입니다." 윈스턴이 말했다. "음... 그렇다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사실 진짜 외계인 - 인간 섹스는 아니었고 인간과 외계인 코스프레를 한 인간 사이의 섹스라고 할 수 있지만요."

"그래, 기억나는 군." 로젠월드가 말했다. "역겨웠지. 으윽, 대체 누가 썼었지?"

"접니다."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브렌다 존스였다.

"어땠나?" 로젠월드가 물었다.

"이제 평생 동안 불결한 기분일 것 같아요." 브렌다가 답했다.

"흠......" 로젠월드가 말했다. "이번에는 좀 덜 기괴한 걸로 하는 편이 낫겠어. 외계인 구애(求愛)는 뭘 한 적이 있던가?"

"구애요?" 윈스턴이 말했다. "무슨 관례적인 의식 같은 거 말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데이트 말씀이신가요?"

"뭐든." 로젠월드가 말했다. "아니, 사실은 그냥 데이트 쪽이 낫겠군."

"흠, 그 쪽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걸로 기억되는데요?" 윈스턴의 대답이었다.

"괜찮을 것 같네요." 데비가 끼어들었다. "대학교 다닐 때 룸메이트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외계인학과에서 한 자리 하고 있어요. 아마 그 쪽 이야기들이라면 쫙 꿰고 있을 거예요."

로젠월드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학자들이라면 됐어. 우리 독자들은 섹시한 모델이나 최신 전자기기라면 환장을 하지만 무슨 박사라는 작자가 뭐라고 떠들어 대건 관심 밖이란 말이야. 자네도 잘 알잖아. 내게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어. 자네들 중 하나가 외계인과 데이트를 해."

"헐? 뭐라고요?" 닉이 말했다. "외계인과 데이트요?"

"그래. 문제 있나?" 로젠월드가 말했다.

"그거 불법 아닙니까?" 닉이 물었다.

"테드?" 로젠월드가 물었다.

"알라바마만 빼고 모든 주에서 합법입니다." 테드 윈스턴이 답했다. "알라바마에서는 15개월 형이지요."

"데이트에 말인가?" 로젠월드가 말했다.

"음, 아니오.” 윈스턴이 대답했다. "성관계를 한다면 말이지요. 주법 상 외계인들을 지성체로 인정해주질 않거든요. 즉 수간이랑 동일한 취급을 받는 겁니다."

"알라바마라니." 로젠월드는 콧방귀를 뀌었다. "똥간 같은 곳이군. 자, 아무튼 난 여기 누구더러 외계인이랑 떡을 치라는 말이 아니야. 그냥 데이트만 하라는 거라고. 이를테면 저녁식사랑 영화나... 콘서트 같은 거 말이야. 아니면 그치들 버젼의 저녁식사와 콘서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런 거 말일세."

"근데 그런 데이트를 어떻게 성사를 시키시려구요?" 데비가 물었다. "외계인 애인을 구한다고 개인적으로 광고를 낼 사람은 이 중에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 이야기 몇 년을 가도 잘 안 잊혀지고 따라다니거든요."

"외계 종족 대사관들에도 친구들이 있어." 로젠월드가 대답했다. "적어도 그 중 두엇쯤에서는 데이트를 할 직원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외계인 인턴이라거나... 뭐가 됐든 말이지. 그래서... 해볼 사람?" 물론 손을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브렌다, 어때?" 로젠월드가 물었다.

"전 싫어요." 브렌다가 말했다. "외계인 섹스 건으로 벌써 제 몫은 했잖아요."

"이건 외계인 *구애* 건이야." 로젠월드가 말했다.

"그거나 그거나." 브랜다는 단호했다. "절대 안 해요. 차라리 절 자르시던가요”

"닉?" 로젠월드는 타겟을 돌렸다.

"그게, 집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닉도 발을 뺐다.

"결혼을 했었어?" 로젠월드가 물었다.

"바리스타하고요." 닉이 대답했다.

"거 참 이야기가 민망하게 됐구먼." 로젠월드가 말했다.

"신참한테 시키죠?" 제리가 끼어들며 내 쪽을 가리켜 보였다. "저 친구는 아직 외계인 이야기 맡은 적이 없으니까요."

자, 바로 여기서 내가 등장하는 것이다.

로젠월드는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찰리... 맞아. 두 번째 주라면 이런 일도 이제 할 만하지. 아직 미혼이고."

"어... 네."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애인은 분명히 있는데요." 바로 클레어 말이다.

"심각한가?" 로젠월드가 물었다.

"같이 살고 있습니다만." 내가 말했다.

"나도 내 첫 번째 마누라랑 6년을 살았지. 근데 그 여자 말로는 난 우리 사이에 대해 그 6년 동안 단 한 순간도 심각했던 적이 없었다더구먼." 로젠월드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저희는 충분히 심각한 것 같은데요." 난 침착하게 말했다. 사실은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프러포즈 방법을 찾느라 애쓰던 중이었다. "제가 외계인과 데이트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흠......" 로젠월드는 잠깐 날 쳐다보더니 물었다. "이탈리아 요리 좋아하나?"

"네?" 난 어리둥절 했다. "네. 그럼요. 그런데 왜요?"

"내가 오늘 저녁에 리틀 지노즈에 예약을 해주지." 로젠월드가 말했다. "애인을 데려가서 근사하게 저녁이나 먹으라구. 비용은 회사에서 대지. 그러니 절대 외계인하고 바람 피우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잘 설득하란 말이야. 어떤가?"

리틀 지노즈는 그냥 그런 이탈리아 식당이 아니었다. 트렌디한 레스토랑들이 넘치는 이 도시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레스토랑이었다. 만약 나 혼자 전화를 걸어서 예약을 하려고 했다면 아마도 메이터디(역: Maitre d' - 지배인, 주임 웨이터)는 친절하게 껄껄거리며 이내 전화를 끊어버렸을 것이다. 솔직히 거기 갈 때 어울리는 옷이 있는지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근사하군요." 내 대답이었다.

"좋아." 로젠월드가 말했다. "저녁 일곱 시 반이야. 내 직접 지노에게 전화를 해 놓도록 하지."

"잠깐만요." 닉이 끼어들었다. "저도 외계인 기사 썼는데요. 근데 왜 저는 리틀 지노즈에 예약 안해 주시는 겁니까?"

"허 참... 이봐, 닉." 로젠월드는 말했다. "자네를 개똥 퍼 담는 일에서 벌써 구해줬잖나? 그만하면 충분한 보상 아니었나 하는데, 아닌가? 자, 이제 모두들 내 방에서 썩 나가보라구. 나 전화 걸어야 돼."
댓글 2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916 단편 1 빡살 2003.06.29 0
2915 단편 손수건1 이중 2005.10.31 0
2914 단편 번역의 오류3 유리나무 2008.03.15 0
2913 단편 [뱀파이어] 그림자들7 겨울비 2006.02.19 0
2912 단편 그림자 용11 amrita 2006.02.12 0
2911 단편 무엇을 먹을 것인가.2 명비 2003.07.22 0
단편 (번역) 나는 어떻게 아내에게 청혼했나 : 외계인 섹스 이야기 (1)2 직딩 2012.11.27 0
2909 단편 나 늑대인간 맞아요5 아진 2003.08.12 0
2908 장편 The Power - 서장 최현진 2003.08.15 0
2907 단편 세상의 중심4 cancoffee1 2003.07.06 0
2906 단편 남자만 군복무 5년 VS 남자 3년 , 여자 2년 군복무3 볼트 2010.08.12 0
2905 단편 신림역 살인마 니그라토 2011.07.03 0
2904 단편 (번역) 나는 어떻게 아내에게 청혼했나 : 외계인 섹스 이야기 (5) ... 완결2 직딩 2012.12.03 0
2903 장편 SOLLV 에피소드 일곱 넷 이야기.2 김현정 2005.07.24 0
2902 장편 The Power - 1장 잘못된 시작(1) 최현진 2003.08.15 0
2901 단편 [심사제외]일진의 승리2 니그라토 2013.09.04 0
2900 장편 Angel of the night <6>2 김지원 2006.03.24 0
2899 단편 검은 깃털, 하얀 날개1 pilza2 2005.07.12 0
2898 장편 SOLLV 에피소드 하나 하나 이야기. 김현정 2004.11.02 0
2897 단편 타로 카드 이벤트를 엽니다.21 mirror 2003.12.26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