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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씨의 유쾌한 특허



변리사 사무소에 들어선 그는 쥐색 양복의 앞섶을 손으로 문지르고 가슴을 펴 숨을 크게 들여 쉬었다.

나무가지에서 매미 소리가 들리는 늦은 여름 날, 공기를 목구멍 끝까지 들이마신 그는 이제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천천히 하지만 가볍게 숨을 내뱉는 코는 벌렁거리며 양쪽으로 찢어진 입이 광대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제 이 것만 팔 수 있으면 모든 게 잘 될거야.'


마치 날아갈 것 처럼 두 팔을 뻗어 눈을 감는다.

그는 오늘 21살이 되었다.

생일에 변리사 사무소를 찾아 온 것은 그가 긴 시간동안 아무도 떠올리지 못한 발명품이 특허를 신청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하루에 세끼를 먹으면 운이 좋은 요즘 같이 풍요로운 세상에선 보기 힘든 생활을 하며 지내왔다.

학교에서는 결식아동이었고,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제외하고는 간장과 흰밥을 먹었는데 가끔 배추김치가 밥상에 올라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만찬을 즐겼다.

그는 어릴 적부터 책읽는 것을 좋아해 가리지 않고 뭐든지 읽었다.

딱히 친구도 없어서 눈을 뜨는 시간부터 눈을 감는 시간까지 짬이나면 책이 보여주는 온갖 이야기들을 보고 별천지를 상상했다.

하지만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공부를 마치고 바로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

그곳은 그가 상상하던 별천지였다.

팔 수 없게 된 우유와 빵, 샌드위치, 김밥과 도시락. 

그것들을 넘겨 준 사장님은 그에게 천사이자 은인이었다.

왜 충분히 먹어도 되는 것을 유통기한이라는 것 때문에 버리는지는 의아했지만, 돈도 받고 먹을 것도 얻게 되어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소년가장이었던 그는 행복했다.

단지 열심히 일을 해도 식단이 별로 바뀌지 않는 것은 조금 불만이었다.

이런 불만도 그에게는 배부른 생각같아서 혼자 기분나쁘게 피식 웃어서 사장님이 이상하게 보인다고 핀잔을 듣곤했다.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다.

책을 읽다가 배가 고픈 그는 부엌을 뒤적였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가게에 가서 폐기된 걸 가져올까?'


츄리닝을 찾아 주섬주섬 입고서 문을 연 그는 늦은 저녁 하늘이 뚫린 듯이 장대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집에서 편의점까지는 버스로 세 정거장. 

1km가 넘는 거리다.


'후, 이런 비라면 우산도 소용 없겠지.'


놀라움과 귀찮음이 섞여서 외출을 포기하고 말았다.

집에 홀로 있는 그에게 책 무더기만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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