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빨간색 스포츠카를 따라 몇 개의 도로와 고속 도로를 지나 계양구 작전2동에 위치한 고급아파트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D 5번째 칸에 주차된 빨간색 스포츠카의 주인은 이십 대 중반의 아가씨로 실제로도 아가씨였다.


빈농 출신인 그녀의 조부는 이름난 부동산 업자로 부동산 개발 붐이 한창 이던 70년대 중엽부터 90년대 중반 사망 할 때까지 큰 돈을 벌었고 그 돈은 모두 그녀의 아버지와 형제들에 상속 되었다. 유산들은 IMF때 쏟아져 내린 부동산 매물에 투자 되었고 부동산 매물 들은 IMF 이후에 엄청난 차익을 내며 팔려 갔다. 그 엄청난 차익은 다시 홍콩, 상하이, 도쿄로 흘러 들어가 고수익을 올려 주었고 고수익은 한국의 계좌를 튼실하게 해주었다. 2008년 이후부터 별게 있을 것 같았지만 경제 위기도 잘 피해가서 지금도 집안의 부동산 회사들은 잘나가고 있다. 이 상태로 달려 간다면 아시아의 트럼프 집안으로 성장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전형적인 집안 관련 사족이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국에서 유학을 하던 딸이 갑자기 귀국해서는 집안의 부정을 사회에 까발리는 르포르타주를 발표 하겠다고 선포하고는 듣도보지도 못한 동네로 잠적 해버렸다. 그녀의 집안은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고 다가오는 선거를 준비하던 그녀의 셋째 작은 아버지는 뒷목을 붙잡고 쓰러져 시름시름 얇고 있다가 아들 중 한 명이 친구 동생들 중에 한 명이 사립 탐정 이라는 이름으로 설치고 있다 는걸 기억해 내고는 의뢰를 부탁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고 미행하기 시작한지 사 일이 지난 지금까지 조사 한 걸로 봐서는 그녀가 르포르타주를 쓰고 있고 각종 출판사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 까지는 맞는데 문제는 그녀나 출판사나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은 부동산재벌 가의 이야기가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관심 없는 것 같지만 집안을 쑤셔놓은 그녀가 출판에 관심 없다는 것은 이상했다. 그녀는 그냥 점심 먹기 전까지 유명 출판사 데스크들을 돌며 별다른 진전 없는 작품을 별다른 말없이 놓고 가기 일상이었다. 당연히 글들은 쓰레기통으로 들어 갔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얻은 그녀의 작품을 틈날 때 마다 읽고 있는데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다.


집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이제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오지 않다가 8시쯤 기어 나와서는 차를 타고 자정까지 서울을 질주하다가 돌아서와서 잠을 잔다. 그리고 아침 늦게 일어나서 차를 타고 출판사를 돌아다닌다. 그녀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슈크림 빵으로 배나 채우고 보고서나 쓸 생각이었지만 의뢰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그냥 생각으로 끝났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서 몇 개의 도로와 고속도로를 지나 건물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올라가 사놓은 슈크림 방을 먹었다. 의뢰 비는 내일 통장으로 넣어 준다고 하니 돈 만져 보기는 글렀다.  소파에 한동안 누워 있다가 라디오를 틀었다. 가벼운 라디오 식 예능을 하고 있었다. 가벼운 노래 가벼운 코미디 가벼운 사건 온통 가벼운 것들 투성이라 뭐라 하기도 뭐 했다. 8시까지 사무실에 있었지만 별 다른 일이 들어 오지 않아 사무실을 나왔다.


아침 늦게 일어나 대강 씻고 집을 나왔다. 아침은 은행이 입점해 있는 백화점 식당 가에서 대강 해결 했다. 식당 가를 지나 은행으로 가는 길에 음반 가게를 둘러 봤지만 관심 가는 것들이 없어서 그냥 나왔다. 세네 명쯤 서있는 ATM 줄을 따라 섰다. 다행히도 젊은 사람들 위주의 줄이라 금방 차례가 돌아 왔다. ATM에 통장을 넣고 모니터 한쪽에 써있는 통장정리 칸을 눌렀다. 기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는 통장을 뱉어냈다. 여기저기서 빼 간 거 치고는 꽤 남아 있어서 근처여행사 사무실에서 야외에 배치한 여행 안내 책자를 가지고 사무실로 돌아 왔다.


소파에 앉아서 안내 책자를 읽었지만 대부분 단체 여행 상품들이라 가격대는 저렴 했지만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책자를 상위로 치워 놓고 책상 쪽으로 움직여 컴퓨터를 켰다. 여행지를 검색하다 때려 치고 아무거나 예매 했다. 돈도 넉넉하니 여행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동하면 그만 이였다. 비행까지 열 시간 정도 남아 짐이나 쌀까 하다가 현지에서 구입해 쓰기로 했다. 남은 시간 동안 뉴스나 웹 서핑을 했지만 구미에 당기는 것은 없었다. 정치인들은 파벌과 당선을 위해 투쟁했고 대통령은 지지율과 권력을 위해 투쟁했고 당은 의석 수를 위해 투쟁 했다. 살인마들은 살인을 했고 사기꾼들은 사기를 쳤다. 병신들은 병신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기에 여념이 없었고 자신 들이 특별 한 인간이 되는 양 정치적 문제에 대해 치열 하게 싸워댔지만 현실에 있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세 시를 조금 넘겼을 때 허기가 져서 도시락을 배달 시켰다. 배달료가 음식 값의 절반을 가볍게 넘겼지만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넘어갔다. 이 도시락 집의 도시락은 언제 먹어도 일정한 수준의 맛을 확실하게 보장한다.


다 먹은 도시락을 책상 아래 쓰레기 통에 버리고 소파에 누워 두 시간 뒤에 울릴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을 잤다. 꿈은 별거 없었다. 유명한 아이 돌 그룹의 멤버와 데이트를 하는 꿈이 였는데 누군지는 기억 나지 않았다. 알람은 잠이 깨고 난 뒤 에나 울렸다.


사무실을 나와 큰 길에서 택시 한대를 잡아 탔다.

김포 공항으로 가주세요친근감 있는 투로 이야기 했지만 택시 기사는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지 운전에만 집중 했다. 한마디를 더 해볼 까 했지만 그만 뒀고 택시에서 떠들어 대는 건 라디오 밖에 없었다. 이럴 거면 자동차를 끌고 올걸 그랬다.  한 시간쯤 걸려 공항에 도착해 값을 치르고 택시를 나왔다. 


공항 편의점에서 영화 잡지 하나를 구입했다. 항공사카운터에서 여권을 확인하고 영수증을 출력 받았다. 맡길 짐이 없어서 바로 보안 검색 대를 거쳐 출국 심사 대를 지나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카페에서 커피와 베이글 하나를 사먹었다. 그리고 영화 잡지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비행기에 탑승 했다.

이 주 동안 타이베이, 홍콩, 도쿄를 지났다. 여행지를 평하자면 타이 베이는 80년대 같았고 홍콩은90년대 같았고 도쿄는 서울 같았다. 대 부분의 시간을 먹고 사고 섹스 하는 데 보내서 제대로 된 기념품 하나를 구입하지 못했다. 공항에서 남은 돈을 환전하고 택시를 잡아 사무실로 직행 했다.


이 주 동안 방치된 사무실은 그런 대로 깨끗해 보였지만 손 바닥으로 쓸면 먼지가 배겨 나왔다.  공항부터 끌고 온 캐리어를 한쪽 구석에 가져다 놓고 청소를 시작 했다. 상과 소파와 책상을 대강 물로 씻어 내고 그 주변 바닥을 물 걸래 질로 끝냈다. 청소가 생각 보다 일찍 끝나서 시간 맞춰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메뉴는 치킨 도시락으로 출국할 때 먹었던 도시락 집에 주문을 시켰다. 음식이 도착할 동안 짐 정리를 했다. 캐리어 대부분이 옷가지들이라 사무실에 둘 건 두기봉의 영화 블루레이 밖에 없었다. 블루레이를 사무실 한 쪽에 배치한 캐비닛 아래 집어 넣었다. 그리고 두 번째 칸에서 <동사서독>을 꺼내서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올렸다. 오프닝 이 끝날 무렵 도시락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배달료가 음식 값의 절반에 달했지만 맛 때문에 그냥 넘어 갔다. 영화가 중반 언저리에 도착 했을 때 도시락을 다 먹고 쓰레기 통에 집어 넣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전화 한 통 울리지 않아서 일찍 사무실을 나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으로 올라 왔다. 집도 사무실처럼 청소가 필요 했다. 집 청소도 사무실과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 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잠이 들기 직전에 트렁크에 들어 있는 캐리어 생각이 났지만 그냥 잠들었다.

귀국 하고 일주일 가량을 흘려 보냈다. 그 동안 들어오는 일거리들은 대부분 불륜 조사 류나 애완 동물 찾기 류라 모두 거절 했다. 남는 시간을 두기 봉의 영화와 흘러간 일본 영화를 보며 보내다 주말 근처쯤에서 책이 읽고 싶어 져서 집 근처 서점에서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을 골라 3권 정도를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가는 뉴스로 도쿄 주택 시장이 다시 반등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한달 전쯤 미행했던 그 아가씨는 아직도 가족들을 협박해 가며 재미를 보고 있는지 궁금 해 졌다. 그날 저녁은 소설을 읽으며 보냈다.


주말의 마지막 밤에는 잘 나가는 큰형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 날의 주제는 재정에 대한 문제였다. 잘 나가는 큰 형은 잘 나가는 회계사답게 못나가는 동생의 사업의 회계와 재정 쪽에 지원을 해주 고 있었다. 들었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사무실 재정은 파탄 일보직전인데 무슨 놈의 여행이고 가리냐는 거였다. 맞는 이야기여서 조용히 술만 마셨다. 잘나 가는 큰 형은 술을 마시다 말고 급한 일이 있다며 나가서는 돌아 오지 않았다. 계산을 하고 술집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네온사인부터 걸어 다니는 사람들까지 반짝였지만 거리를 벗어 난지 일 미터 도 되지 않아서 어두 워 졌다. 몇 개의 노선을 지나 도착한 사무실에서 밤을 보냈다.


꿈자리가 뒤 숭숭 했다.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어떤 여자가 나왔던 건 기억 한다. 소파에 한 참 동안 누워 있었다. 잠이 깬지는 꽤 됐지만 일어 나기가 싫었다. 그냥 뒹굴 거리고 싶었다. 사무실 전화가 오래간만에 울렸다. 전화 받기가 싫어 누워 있었다. 전화는 끝 어질 생각 없이 계속 울렸다. 전화벨이 듣기가 싫어서 사무실 전화를 받았다.


김형욱 탐정 사무실 맞습니까?” 조심스러운 중년 남성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위기감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맞습니다. 무슨 일이 십니까?”  비지 니스용 목소리가 자동적으로 나왔다. 탐정다운 목소리를 연습하고 있지만 잘 바뀌지 않는다.

사람을…… 좀 찾고 싶어서요남자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 했다.

도망간 부인은 안 찾습니다. 조만 간에 서류……”

부인 이 아니라 딸 입니다. 남자는 한결 더 조심스러워 졌다.

단순 가출도 안받습니다. 손님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상대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가출이 아닙니다. 설명 하자면……. 직접 가서 말하겠습니다.”  남자가 내지르는 한 숨 소리가 구미가 당겼다.

주소 아시나요다시 비즈니스용 말투가 나왔다남자가 모른 다고 하기에 주소를 불러주고 전화를 끝었다.

 남자에게 주소는 알려 주었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하지 않아서 올지 안올지 알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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