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베타테스터

2005.12.13 00:2212.13

베타테스터

  1.
  이 세계는 공허하면서도 완벽하면서도 절망스럽다. 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우스를 놓지 않는다. 너는 지금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온라인 게임1)을 하고 있다. 네트에 연결되어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가상의 공간을 공유한다. 그것은 실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세계이다.
  수 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시각,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컴퓨터에 연결된 마우스를 수십 번씩 반복적으로 클릭한다.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의 분신을 강하게 만드는 법칙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온라인상의 강함을 얻고 부를 축적한다. 단 한 번에 모든 세계가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에게는 실제 이 세계보다 그 세계가 더욱 귀중하고 절실하다. 그 세계가 더 완벽하다고 느낀다. 선을 행하면 선을 얻고, 악을 행하면 악을 얻는다.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는 일도 없다.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수 천 번 다양한 삶을 고를 수도 있다.
  너는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이틀 후면 성을 둘러싼 대규모의 전투가 예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너는 명예를 얻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는 수련을 멈추지 않는다. 천 번, 만 번 휘두르는 칼질마다 몹2)들이 죽어나간다. 능력치는 끝없이 상승한다. 모두 똑같은 위치에서 시작하고, 정해진 한계도 동일하다. 옷 한번 직접 사 입어 보지 못한 너는 이 세계가 마음에 든다. 시간만 투자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갑옷을 구입할 수 있다.
  이 가상의 세계는 네가 거쳐간 열일곱 번째 세계이다. 너는 실제 온라인 게임이 출시되기 전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베타테스터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유료화를 하기 전 베타테스트를 하는 게임만을 골라서 하고 있다. 방금 완성된 하나의 세계를 점검한다. 세계를 만든 창조주들도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하나의 완벽한 세계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너의 허락이 필요하다. 이 세계는 인터페이스가 마음에 안 들지만, 타격감은 좋군. 단, 컴퓨터 사양이 높은 점이 흠이야. 소리가 실제 타격보다 미세하게 느려. 저번에 했던 ‘바로크’보다 색감도 좋지 않군. 전체적으로 화면이 지나치게 어두워. 좀더 톤을 밝게 바꿔야 해. 스킬 숫자도 적어. 요즘 추세와는 맞지 않아. 전직 시스템은 아직 도입되지 않아 평가할 수는 없지만,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 뿐이라면 실망이군. 그보다 두 배는 돼야 해. 너의 평가는 언제나 예리하고 정확하다.
  너는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한다. 문자는 전혀 오지 않는다. 전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한 번 떠난 그녀가 전화를 걸리 만무하다. 안부 문자 정도는 오지 않을까. 너는 잠시 그녀를 떠올린다. 고운 피부와 긴 머리카락을 가진 전형적인 미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직업도 없는 너를 버린다. 그녀에게 너는 기피 대상이다.
  너는 로그아웃을 한다. 반지하인 월세방은 언제나 너 혼자뿐이다. 밥도 스스로 해먹어야 한다. 이번에는 귀찮은 나머지 중국집 전화번호를 찾는다. 짜장면의 맛은 항상 일정하다. 어디에서 시켜도 그리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너는 온라인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 하루만 육천 오백 마리의 몹을 죽였고, 백 오십 개의 아이템을 획득했다. 그 중 레어 아이템은 다섯 개나 얻었기 때문에 너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막 아이템들을 팔고 있을 때 핸드폰에서 문자가 온다. 핸드폰 액정에 낯선 번호가 보인다.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2.
  너는 체크무늬 남방에 갈색 면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간다. 문자는 내용을 간단했다. 이틀 뒤 전투 때문에 중요한 할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도 온라인상에서 몇 번 대화를 나누었던 아이디의 주인이였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나간다.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매섭게 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람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바람을 느낄 수 없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남자다. 안경을 쓴 것을 빼고는 특별난 점이 눈에 띄지 않아 다시 봐도 기억하기 힘들 것 같았다. 어두운 카페 안에서 남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익숙하여서 낯선 얼굴이다. 마치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듯한 이질감. 어디선가 뿌연 연기가 사방을 메운다. 사실 저는 이 세계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너는 잠시 혼동을 한다. 저 말은 누가 들어도 곡해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이 세계, 지구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라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네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 ‘가상의 세계’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리고 짧게 되묻는다. 네, 그랬군요. 그런데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남자는 너를 보고 진지한 눈초리를 짓는다. 양 미간이 찌푸려져 있고 목소리는 중후하다. 당신도 알고 있듯이 이 세계는 베타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투는 중요합니다. 두 세력의 교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지요. 분명 그것이 힘의 법칙이고 순리일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끊임없이 전쟁을 겪으면서 세력을 바꾸면서 이어져 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두 세력의 판도가 뒤바뀔 가능성이 적습니다. 이미 성을 차지한 유져들의 실력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선생님이 가장 고수의 반열에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래서 고심 끝에 선생님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올바른 베타테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세력의 판도가 바뀌는 경우도 점검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그 전투가 있는 날, 뒤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도륙해 주시면, 균형이 깨질 것입니다.
  너는 잠시 고민하지만 쉽게 수락한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일을 성공하면 더 큰 명예를 얻을 것이다. 게다가 게임 회사 운영자들이 직접 제안을 한 만큼, 보상도 확실히 있을 것이다. 평생 무료 이용권 같은 것을 줄지도 모른다. 너는 아까 했던 상상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진짜 이 세계의 운영자가 나타나 제안을 한다면 어떨까? 바로 수락한다. 그 조건으로 이 세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한다. 외부에서 이 세계에 접속하고 있으며 바깥에 창조주와 운영자가 있다면, 그 진짜 세계를 가고 싶다.
  너는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간다.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반지하지만, 오늘따라 거대한 성문 같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싸워야할 무대. 너는 또다시 컴퓨터를 켠다. 마우스를 움직인다. 셀 수도 없는 클릭. 밤이 지새도록 가상의 세계를 누빈다. 이 세계의 모든 몹들을 멸종시키려는 듯이. 그러나 몹은 무한히 부활한다. 그에 따라 너의 클릭 또한 계속된다.

  3.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너는 일어난다. 새벽까지 한 컴퓨터는 잠시 꺼져 있다. 잠결에 받은 전화 내용을 떠올린다. 이전에 했던 온라인 게임의 아이디를 사겠다는 전화였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옷을 챙겨 입고 나간다. 약속 장소는 흔한 카페였고 사겠다고 나온 상대는 여자였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한 가닥으로 묶고 있다. 큰 링 귀고리를 하고 쌍커플이 짙어 제법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악세서리나 짙은 화장을 볼 때, 가만히 앉아 진득하게 온라인 게임을 즐길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삼십 만원이라고 올리셨던데, 솔직히 저도 다 알아보고 나왔어요. 굉장히 비싸게 올리신 거던데요. 제가 산다고는 했지만, 이십 만원으로 하죠. 여자는 당돌하게 대뜸 가격부터 깎는다. 너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게 가치가 깎일  만큼 쉽게 키운 캐릭터가 아닙니다. 획득 확률이 몇 퍼센트 안 되는 귀중한 보검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갑옷 역시 장갑과 함께 세트로 맞춘 겁니다. 스킬도 모두 최적의 트리를 따라 키운 거고요. 그만한 캐릭터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전 절대 그 가격을 허투로 올린 것이 아닙니다. 그 세계의 최강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가격을 올린 겁니다. 여자는 갑자기 담배를 꺼내 문다. 너는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다. 여자는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은 채,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좋아요. 솔직히 저 댁이 하는 소리 무슨 소린지 잘 몰라요. 남자 친구가 하도 그 게임만 하기에 열 받아서 완전 눌러주려고 사는 거니까. 그래도 돈은 아무튼 이십 오만 원 밖에 없거든요? 어차피 당신 고작 베타테스터일 뿐 아니에요? 이제 유료화 되어서 하지도 않을 거잖아요. 그냥 산다는 사람 있을 때 파세요.
  너는 기분이 불쾌해진다. 베타테스터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999명을 뽑는 모집에 17만명이 몰려 18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데, 이 경쟁을 뚫고 나서야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베타테스터는 노고에 불구하고도 금전적 보상도 없습니다. 오로지 게임에 대한 열정만으로 하는 것입니다. 베타테스터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수행하는 전형적인 프로슈머3)로 한국이 중국 등 경쟁 국가의 온라인 게임보다 우수하고 섬세한 게임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는 존재란 말입니다.
  여자는 담배를 비벼끈다. 연기가 실처럼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다 사라진다. 너는 물끄러미 담배를 끈 여자의 손을 바라본다. 너처럼 손바닥에 마우스를 오래 잡아 생긴 군살 같은 건 찾을 수 없는 매끄러운 손이다. 그녀의 손도 저토록 가느다랗고 희었다.
  게임만 하면서 사는 분이라기에 폐인인줄 알았는데 어려운 말도 쓰시네요. 알았어요. 제가 말 실수했어요. 취소할게요. 됐죠? 아무튼 돈은 이게 다거든요. 파실 거예요? 안 파실 거예요?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파는 게 아닙니다. 양도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입양한다고 여기고 잘 보살펴 주기 바랍니다. 한 때 제 모든 시간을 공유한 분신이었습니다. 여자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다. 돈을 던지듯이 테이블에 내려놓곤 쏜살같이 사라진다. 혼자 남겨진 너는 천천히 돈을 집어든다. 이것으로 당분간 생활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는 다시 집에 가서 습관처럼 컴퓨터를 켠다. 한시라도 눈앞에 컴퓨터가 켜지 있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금세 외워둔 아이디로 로그인을 한다. 아이템을 정비하고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 나선다. 이전보다 더 강한 몹들이 수도없이 널려 있는 숲 속으로 간다. 짙은 숲 속에는 걸음을 느리게 만드는 늪지대도 존재한다. 움직임을 멈춘 채 검을 휘두른다. 몹들이 피를 뿜으며 사라진다. 비명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배경음악은 전투 지대라 긴박감이 넘쳐흐른다. 너는 쾌감을 느끼면서 마우스를 클릭한다. 반복된다.

  4.
  너는 검을 휘두르고 있다. 갑옷을 입었지만 조금도 무겁지 않다. 눈앞에는 커다란 몹이 포효하고 있다. 곰의 형상을 한 괴물이다. 너보다 몇 배나 더 큰 몸집을 가졌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넌 이 세계의 최강자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검을 들어 똑같은 자세로 다섯 번 녀석을 내리친다. 녀석은 울부짖으며 쓰러진다. 이제 천천히 사라질 것이다. 이 세계는 죽음이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녀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몸을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털이 빠지면서 몸집이 작아진다. 손과 발 그리고 얼굴까지 전부 작아지면서 어느새 사람의 몸뚱아리로 변한다. 그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너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늪지대에 빠져들고 있다. 넌 그 모습을 천천히 지켜본다. 꿈틀거리는 손가락까지 완전히 잠기고 나서야 꿈이 끝난다. 넌 숨을 몰아쉰다. 온몸을 적신 신은 땀을 닦는다. 소롬 돋은 몸을 감싸 안고 모니터를 쳐다본다. 모니터는 점멸되어 있었다.
  창밖을 보니 새벽이 밝았다. 너는 긴장한다. 대망의 전투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성을 사수하려는 사람들과 성을 뺏으려는 사람들. 현실과 동일하다. 뺏고 뺏기는 것이 전부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오직 강한 자가 이긴다는 진리도 같다. 넌 이내 쓸모 없는 꿈 따위는 잊어버린다. 꿈은 이 세계에도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너는 오랜만에 샤워를 한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점점 따뜻해진다. 물에서 피로 바뀌는 것 같다. 이건 어쩌면 그동안 죽인 몹들의 피일지도 모른다. 한 시간이 넘도록 정성스럽게 닦는다. 성스러운 예식을 앞두고 목욕 재계를 하는 것처럼 경건하다. 피곤이 씻은 듯이 녹아 내리고 온몸이 상쾌하다.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놓는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그동안 정성스럽게 키운 캐릭터가 나타난다. 캐릭터명은 타이타닉스. 6천만년 전 공룡이 멸망한 후 포유류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코뿔소만 한 두더지, 2층 집만 한 코뿔소 등 당시 포유류의 크기는 엄청났다. 타이타닉스는 새였다. 크기가 3미터도 넘어서 당시 지구상의 모든 동물의 머리를 부술 수 있는 강한 부리를 갖고 있었다. 날짐승이지만 실질적으로 5천만년 동안 지구의 하늘과 땅을 지배한 무시무시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천만년 전 정도에 멸종했는데, 1960년대 화석이 미국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이 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너는 인터넷 어디선가 이 새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 마음에 들었다. 세계 최강이었던 하늘의 제왕. 마음에 안 들으면 날아가서 부리로 콕 찍으면 끝.
  워낙 많은 유져들이 동시에 접속해서 렉이 발생했다. 몇 천 명이 동시에 한 서버에 접속하자,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면서 발생한 끊김 현상. 너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당황하지 않고 성문 쪽으로 다가가 대기한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다. 이번 전투 별거 아니라던데? 사람들이 채팅창에 잡담을 나누고 있다. 무슨 소리야? 엄청난 대군이 몰려온다던데.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몰려 있어서 누구누구가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봤자, 다 조무래기들뿐이래. 레벨이 얼마 안 된다던걸. 우리는 워낙 레벨 높은 고수들이 많잖냐. 저 앞에 있는 타이타닉스부터 시작해서. 너는 가볍게 웃는 이모티콘을 띄워준다. 앞으로 저들을 죽여야 할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잠시 후 성문 앞으로 엄청난 수의 캐릭터들이 몰려온다.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성문을 지키기가 벅차 보인다. 그러나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의 마법이 펼쳐지자 성문으로 달려오던 캐릭터들은 쉽게 죽어나간다. 형형색색의 빛이 모니터를 가득 채운다. 마법사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온갖 마법을 쏟아내고 있다. 효과음이 뒤섞여 소음이 되기 때문에 스피커는 미리 꺼둔 상태다. 너는 사실 마우스 클릭을 하지 않고 상황을 찬찬히 살피고만 있다. 슬슬 판도를 바꿀 때가 다가온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너의 검이 정확히 성을 지키는 고수들을 쓰러트린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나중에야 너의 배신을 깨닫고 일제히 몰려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팽팽한 균형이 깨진다. 성문은 쉽게 무너졌다. 쿠우우웅!
  동시에 핸드폰이 진동했다. 문자가 왔다. 너는 생각한다. 운영자가 보내온 감사 문자일까? 아니면 그녀일까? 그녀와 헤어진 지 두 달이 넘고 있었다. 그 사이 그녀는 한 번도 문자를 보내오고 있지 않았다.
  성문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 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전투가 진행된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성을 지키는 대부분의 고수들이 너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남은 사람들도 의욕을 잃고 로그아웃을 하기 시작한다. 악순환 끝에 성은 탈환된다.
  그제야 너는 문자를 확인한다. 그녀에게 온 문자다. 꼭 한 번 안부 전해달라고 했지? 나 이번에 결혼해. 너는 절망하지 않는다. 예상했던 과정이자 결과이다. 그녀는 좀더 나은 삶을 원하고 있었다. 단칸방에 라면만 먹어도 행복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타인일 수밖에 없다. 사랑이란 감정의 호르몬은 몇 달 가지도 않는다. 그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누구나 손익 계산을 시작한다. 어쩌면 그녀 또한 너처럼 베타테스터일지도 모른다. 연애라는 베타테스트를 하고 나서 미련 없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나선 것이다.
  너는 핸드폰에서 그녀의 번호를 삭제한다. 베타테스트를 끝내고 아이디를 삭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기분이 든다. 결국 너에게도 그녀는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동안 해온 수많은 게임 속 장면에 섞여 들어갈 뿐이다. 너는 그녀와 나눴던 메일을 전부 삭제한다. 그녀의 사진 역시 하드에서 지운다. 핸드폰에 저장한 문자들까지 모조리 제거한다. 이제 그녀와 관련된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너의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5.
  피곤한 나머지 정신없이 잠들었다가 깨어난 너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손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또다시 가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결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짙푸른 대자연이 모니터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사는 세계.
  너는 이제 엄청난 환대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새로운 세력이 성을 지배할 수 있게 한 영웅. 그러나 사람들은 전부 너를 피한다. 마치 벌레라도 보듯이. 너는 당황하지 않는다. 어차피 맨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니터 상에서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성에 가서도 사람들이 적대적인 기세를 보이자, 슬슬 분노가 일기 시작한다. 성을 차지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기껏 도왔건만, 그들은 배신자라며 상종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역시 현실 세계처럼 영웅을 만드는 것을 기피하는 다수의 경향이 나타난다. 튀는 사람은 눌러 죽이려고 든다.
  너는 억울하다. 그들은 진실을 모르고 있다. 이 세계를 운영하고 있는 자들을 도와서 세계의 판도를 바꾼 너의 노력을 알지 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계의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너는 문자를 보냈던 운영자의 아이디를 찾았다. 마침 접속 중이라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 배신자와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당신이 부탁해서 그랬던 일이 아니냐고 되묻자, 그 자는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냐고 욕을 해대기 시작한다. 욕설은 채팅창에서 전부 필터링 처리된다. 이런 나쁜 아이. 누구한테 뒤집어씌우고 난리니?
  너는 혼란스럽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까지 하다. 모니터가 노랗게 변하는 것 같다. 화면이 흔들려 보인다. 깨달았다. 성을 차지하려는 누군가에게 속아서 너는 이용당했다. 세계의 진실을 모르는 것은 너였다. 세계는 속고 속이려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거짓 속에서 잉태된 세계 역시 똑같은 세계라는 것을, 아니 그 속에 사람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로 가리고 있어도 본질은 추악한 사고를 가진 타락한 자들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김질하게 된 것이다.
  누가 속인 것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 수많은 아이디 중에 어떤 아이디가 너의 앞에 나타났던 자인지 무슨 수로 파악한단 말인가. 너는 포기하고 분노한다. 마우스를 움직여 검을 쥔다. 그리고 휘두른다. 마치 몹을 죽이는 것처럼 가차 없이 벤다. 모니터 상은 또다시 피로 뒤덮인다. 눈앞에 보이는 족족 죽여 나간다. 수많은 시체들이 성벽을 가득 메웠다. 아이디는 이미 붉은 글씨로 변하여 현상수배자가 되었지만 넌 멈추지 않는다.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듯한 기세이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앞뒤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감싼다. 마치 세계가 전부 너를 적으로 규정한 것 같다. 너는 호기롭게 웃은 이모티콘을 띄운 다음에 다시 검을 쥔다. 대학살극을 펼치기 시작한다. 몹이 아닌 사람을 죽이지만,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화면 상의 캐릭터일 뿐이다. 이제는 이 세계에서 활동하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너에겐 상관없는 문제다.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도 되고, 또 다른 베타테스트 게임을 찾아도 된다. 후자가 너에겐 마음에 든다. 이미 이 게임도 질릴 때도 되었고 새로운 게임들도 슬슬 베타테스터를 모집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스피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쉴 새 없이 토해냈다. 무차별적으로 벌이는 학살에 게임 속은 난리법석이었다. 그러나 저번처럼 로그아웃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상대가 고작 한 명이기 때문에 여럿이 모여들면 죽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이템으로 한 시간 정도는 버티겠지만, 그 이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공격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마지막에 죽이는 사람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계산에 넣은 것이다. 너는 이미 걸어 다니는 복권이 되었다. 마지막에 죽이는 사람이 엄청난 경험치를 얻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떨어진 너의 아이템을 줍는 사람은 구경만 하다가도 큰 횡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도 너의 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점 모여들었다. 너의 체력은 차츰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너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몇 달 동안 같이 게임을 하면서 친해진 사람들이 두 자리 수가 넘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들도 함께 너를 공격한다.
  너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에서 어두운 골목길에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여자를 무시하고 지나친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다시 떠올린 기억에서 낯선 여자는 그녀로 변한다. 그녀가 험상궂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울고 있지만 넌 무시하고 걸어가고 있다. 결혼 축하해. 입은 결혼 축하곡을 흥얼거리고 있다.
  너는 마침내 로그아웃도 미쳐 하지 못한 채 죽는다. 사람들은 아무도 너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시체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칼질을 하는 사람들과 떨어진 아이템을 찾느라 시체들 틈 사이를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클릭을 하는 사람들로 화면은 어지럽다. 아름다운 세계, 역겨운 세계. 너는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는지 안다.
  너는 이제 그 온라인 게임의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여자 캐릭터의 일러스트를 찾는다.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설정한다. 긴 백금발의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의 여자는 기묘한 미소를 지은 채 너를 보고 있다. 조금 전까지 이 미녀가 너를 공격하고 있었다. 또한 너는 이런 미녀 수십 명을 살해했다.
  너는 여자의 일러스트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여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빗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연한 분홍빛의 입술이 도톰하게 빛나고 있다.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키스, 차갑고 딱딱한 키스. 너의 혀는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여자 캐릭터의 기묘한 미소는 변하지 않는다. 씁쓸한 듯한 느낌이 배어있는 야릇한 미소. 그 미소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버린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널 버린 거야. 너는 컴퓨터를 꺼버린다.

  6.
  벼룩시장을 보고 있는 너는 컴퓨터 게임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런 곳에 컴퓨터 게임 회사의 구인광고가 실리지 않는 것을 안다. 그래도 너는 우선 왠지 이런 과정부터 거쳐서 레벨을 높여야만 다른 단계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반지하기 아닌 다른 월세방을 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너는 이제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싶다. 더 이상 남이 만든 세계를 뒤치다꺼리 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너는 세계를 직접 창조하려 한다. 이른바 천지 창조.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공간을 만들고 은하계를 만들고 변두리에 태양계를 만들고 지구라는 작은 행성을 만든다. 이제 공간이 생겼으니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태초에 생명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공룡이 나타난다.
  너는 생각한다. 더 이상 인간들이 나오는 중세 배경은 식상하지 않은가? 인간이 없는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 오래 전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은 어떨까? 그들은 인간들이 살아온 시간 보다 훨씬 많은 시간 동안 지구를 지배했다. 우리가 모르는 긴 시간 동안 역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전쟁을 벌이거나 회의를 진행하면서 지구라는 세계를 운영해 나갔을 것이다. 인간들은 그들이 무지하며 몸집만 큰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을까? 그들의 뇌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꼭 지능이 높은 것이 단순한 과학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적으로 생과 사를 초월한 경지에 올랐을 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이라면 세계를 이해하고 해탈의 경지까지 오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런 그들이 왜 멸망했을까? 2억 2000만 년 전에 등장한 공룡은 약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갑자기 멸종되었다. 동시는 아니지만 거의 갑자기 멸종했기 때문에 그 원인은 지금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그건 그들이 그때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 순리였기 때문에 다 같이 동의하고 순응한 것은 아닐까? 트리케라톱스가 말한다. 이제 우리들이 이 지구를 떠나야 할 때가 왔네. 티라노사우르스가 말한다. 다음에는 포유류가 이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순리지. 시조새가 말한다. 그들은 진화를 거듭해서 우리 정도의 지능을 가질 수 있을 거야. 세그노사우르스가 말한다. 아니, 뛰어난 계산 능력을 토대로 신에 필적하게 되겠지. 나중에는 시공간의 비밀을 풀고 신과 타협하게 될지도 몰라. 오르니토미무스가 말한다. 그러기 전에 그들이 파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보다 어리석어서 이 지구와 함께 사라질 수도 있어. 난 그게 걱정 돼. 바퀴벌레가 끼어 든다. 내가 지켜볼게. 그들이 어떤 강력한 무기를 만들더라도 날 죽일 수는 없어. 파키케팔로사우르스가 말한다. 넌 단지 지켜볼 뿐이잖아. 우리 그 분에게 물어보자. 이제 바야흐로 지구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분이 나타난다. 운영자 가이아. 지구를 뒤덮고 있는 식물들이 ― 가이아가 ― 말한다. 내가 지구와 함께 태어나 이제껏 지구의 의지를 대변해 너희와 공생해왔다. 앞으로 나타날 생명체들도 내가 알게 모르게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조종할 것이니라. 그러니 너희들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이 세계를 떠나라. 이 세계의 베타테스터였던, 공룡들은 그렇게 지구를 떠난다.

  7.
  너는 또 다른 온라인 게임을 베타테스트 하고 있다. 네가 방문한 열여덟 번째 세계이다. 이 세계는 가장 정교하고 완벽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다. 나날이 발전한 그래픽 중 최상의 기술이 사용되었고,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배경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시나리오 역시 다섯 명의 작가들이 함께 작업하여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다.
  너는 오 분 전에 완성된 세계를 밟고 있다. 실제 네 몸이 축축한 진흙을 밟으면서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이 묵직하게 느껴지고 입고 있는 갑옷의 절그덕거리는 소리가 귀를 괴롭힌다. 바람결에 섞여있는 꽃내음에서는 민트향이 난다. 막 너를 지나친 흑발의 여자는 너에게 윙크를 하고 지나간다. 너는 금방이라도 발길을 돌려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진다. 왠지 그 여자는 얼마전 결혼한 그녀를 닮았다. 그녀는 벤처 사업가와 결혼했다. 넌 그 결혼식에서 원형 테이블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면서 스크린을 통해 결혼식을 지켜봤다. 지나치게 많은 하객 때문에 결혼식장은 이미 자리가 다 차 있었다. 너는 스크린을 주시하면서 금방이라도 게임 화면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랑과 신부가 갑옷을 입고 주례를 맡은 몹을 물리치는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의 기립 박수가 이어지고, 모두 떨어진 금화와 아이템을 나누며 기뻐한다.
  너는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세계를 전부 정복해 보이고 말겠어. 그리고 이 세계 밖으로 나가고 말 거야. 이 세계는 완벽하다. 이 세계의 끝은 어디일까? 이 세계의 시작이 있다면 그 끝은 어디로 이어질까? 넌 며칠 동안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한다. 나중에는 어떤 세계가 진짜 세계인지까지 혼란스럽다. 지금 몹을 죽이고 수많은 명성을 쌓은 네가 진짜인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네가 진짜인가. 어쩌면 검을 든 네가 진짜이고, 그 속에서 가상의 세계로 접속한 것이 지구라는 온라인 게임일지도 모른다. 너는 지금 열 아홉 번째 지구라는 온라인 게임을 베타테스트 하는 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너는 백 가지 이상의 문제점을 지적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너는 이제 이 세계에서도 강자가 되었다. 누구도 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또한 좋은 친구를 만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단기간에 친구가 된다. 목숨을 함께 하며 몹들과 며칠 동안 사투를 벌이면 금세 친해질 수밖에 없다. 믿을 수 없는 친구라면 목숨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이상한 것을 눈치챈다. 며칠 전부터 친구가 접속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계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항상 함께 해왔다. 너는 걱정하지 않는다. 어디 여행을 갔거나, 컴퓨터가 망가졌을 것이다. 물론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접속할 것 같은 친구이기에 확실히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그 친구는 운영자라서 아이디를 새롭게 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를 운영하는 데 있어 유져와 개인적인 친분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결국 이 세계에 질린 것일 수도 있다. 그건 네가 지구라는 세계에 질린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넌 다른 세계를 베타테스트하고 있다. 하여간 너는 생각을 끊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데 열중한다. 어차피 베타테스트 하면서 만난 인연은 베타테스트가 끝나는 순간 잊히기 마련이다.
  며칠 뒤 너는 웹상에서 신문 기사를 검색하다가 익숙한 아이디를 발견한다. 같이 세계를 누비다가 홀연히 사라진 그 친구의 아이디다. 신문 기사에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게임을 하다가 돌연사 한 것으로 나와 있다. 너는 오랜만에 마음에 맞는 친구가 게임을 다 하지도 못하고 죽은 것을 애도한다. 역시 현실 세계에서는 어이없이 죄 없는 사람이 죽는구나. 너는 완벽한 세계처럼 부활 마법을 사용하거나, 힐링 포션을 사용해서 되살리지 못하는 것을 조금 아쉬워한다. 그리고 다시 온라인 세계에 접속한다. 그 친구 몫까지 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세계를 돌아다닌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슬슬 이 세계도 끝을 보이고 있다고 느낀다. 언젠가 온라인 게임 개발 회사에 취직하여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고 싶다. 그리고 직접 만든 세계를 처음으로 돌아다니기를 꿈꾼다. 지금보다 더 짙푸른 초록빛 지구 위에서 공룡들이 달리거나 싸우거나 먹히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추악한 면은 찾아 볼 수 없다. 그 거대한 몸집만큼 올바르고 곧은 정신. 그 온라인 게임의 이름은 ‘공룡시대’이다. 너는 ‘공룡시대’의 첫 번째 베타테스터가 될 날을 손꼽아 고대한다. 이제 인간은 질렸다. 공룡의 시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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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은 수천명의 플레이어가 인터넷을 통해 모두 같은 가상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의 일종이다. 혼자, 혹은 두 세명이서 즐기던 고전 롤플레잉 게임과 달리,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RPG에 머드 게임의 특성을 결합해서 생겨났다. 이 장르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있는 RPG게임의 특성을 유지하여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대화도 나누고 아이템도 거래 할 수 있어 단순히 시나리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여러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MMORPG이다. 대개 중세를 배경으로 하여 기사, 마법사 등의 캐릭터들을 선택해 능력치를 키워서 최강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몹(Mobile Character). 온라인 게임에서 흔히 쓰는 몹이란 말은 자신이 플레이 하는 캐릭터가 아니면서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기타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캐릭터를 말한다. 즉 움직이는 캐릭터를 뜻한다. 몹의 유래는 현재 거의 모든 롤플레잉 게임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 보드게임 <던전앤드래곤(D&D)>에서 유래됐다. 온라인 게임이 보편화되면서 대중화된 용어다.
3)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프로슈머는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이고, 소비자이면서 생산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로 이 단어의 등장은 디지털 혁명이 수동적 소비자를 능동적 소비자로 변화시키고, 능동적 소비자를 다시 디지털 프로슈머로 진화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래 프로슈머란 용어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사용한 단어로 소비는 물론 제품개발과 유통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를 뜻한다.
날개
댓글 2
  • No Profile
    배명훈 05.12.13 10:32 댓글 수정 삭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여러 모로 기억에 남을 글이네요.
  • No Profile
    제이 05.12.14 01:46 댓글 수정 삭제
    날개 님의 글은 느리지만 확연하게 나아지는 것이 보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글을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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