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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Angel of the night <5>

2006.03.24 01:0403.24

"젠장."

저녁으로 먹은 햄버거를 전부 다 토하며 여진은 몸을 웅크렸다. 어제 그 정신병자가 건드렸던 아랫배가 계속 욱신거리고 아팠다. 때가 아닌데 월경까지 하는 게 아무래도 뭔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병원에 갔다가 수술이라도 받으라고 하면 그 돈을 도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래도 빨리 가야 더 나빠지지 않을 텐데."

몸을 웅크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여진은 변기의 물을 내리고서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았다. 다리 사이로 계속 피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진다. 이건 정상적인 월경이 분명 아니었다.

정말이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 정신병자를 처음 만난 날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여자의 교성 따위엔 신경 끊고 집으로 가는 거다. 그랬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파, 아파, 아파.

속이 다시 뒤틀리자 그녀는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다급하게 변기 뚜껑을 열고 다시 구역질을 했다. 이미 먹은 건 남김없이 토해서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시큼한 위액만 식도를 태운다. 숨을 헐떡이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릴 때부터 심하게 아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그녀는 건강한 아이였다. 대학에 들어와 남들은 다 죽을 것 같다는 의대 생활을 하면서도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다. 물론 밤샘을 하고 나면 피곤하긴 했지만 그것도 남들보다는 훨씬 덜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아픈 게 더더욱 걱정스러웠다. 어지간히 큰 병이 아니면 이렇게 심하지 않을 것이다. 24년이나 병 한 번 앓지 않았다고. 뭔가가 잘못된 거야.

간신히 화장실에서 나온 다음 입을 헹구고 세수를 하고서 그녀는 거울을 보았다. 지난 6개월 간 안 그래도 마른 얼굴이 이젠 아예 해쓱해 보인다. 걸어다니는 좀비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분명히 이건 그 정신병자 탓이야. 병이 옮았거나 뭐 그런 거야."

여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있다. 여진은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화장실에서 나와 매니저에게 병가를 내고서 맥도날드를 나왔다.

걸어가는 내내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는 게 역력하게 느껴졌다. 패드마저도 다 젖은 느낌이다. 자궁 내의 혈관이 전부 터지기라도 한 걸까? 속도 여전히 메스껍다. 눈앞은 빙빙 돌고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가게까지 도착한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를 힐끔거리긴 했으나 누구 하나 도와주진 않는다. 간신히 헌책방 앞에 도착해서 가게가 열려 있는 것을 보자 여진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기저기 가득 쌓여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틀비틀 책장 사이를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자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봐요!"

소리를 질렀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건 기어 들어갈 듯 낮고 힘없는 목소리였다. 남자가 고개를 들더니 그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좀 해 보......"

눈앞이 빙그르르 돈다. 사방에 쌓여있는 책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 여진은 몇 번인가 눈을 깜박거렸다. 책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온다. 천장이 어쩐지 빙 도는 것 같다. 발 밑이 허전하다. 다음 순간 단단한 무언가가 그녀를 홱 잡아당겼다.

"어떻게 된 거야? 피냄새가 나는데."

간신히 숨을 내쉬며 여진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부옇던 눈앞이 천천히 맑아지고 방금 전까지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남자가 그녀를 안고 있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여진은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때렸다. 그가 움찔하며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당신 그 정신병자랑 아는 사이지? 그 정신병자 탓이라고! 그 작자가 이상한 병을 옮긴 게 분명해. 몸이 이상하단 말이야!"

"아아......"

남자가 그녀를 위아래로 차분히 살펴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찼다. 짜증이 난 듯 그의 입가에 주름이 팬다.

"그 망할 개새끼가 또 쓸데없는 짓을 했네."

"나, 나 죽는 거야?"

여진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말하자 지난 5, 6년 간 알아왔던 헌책방의 젊은 남자 주인은 처음 보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죽게 둘 수는 없지. 넌 내 거니까."

그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가게문으로 가서 팻말을 CLOSE로 바꾼 다음 문을 잠그고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렸다. 천장에서 파르르 빛을 내고 있는 형광등만 바라보며 여진은 멍하니 누워 있었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남자가 되돌아왔다.

"가만히 있어."

그의 손이 바지 단추에 닿자 여진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가 몸을 비틀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뭐, 뭐 하는 거야?"

"뭘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옷을 벗기는 거지."

"무슨 짓이야!"

"죽고 싶지 않거든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계속해서 피를 흘리다가 죽어버릴 테니."

맙소사, 죽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한테 알몸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 젠장, 젠장. 몸 정도야 보여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머리 속으로 그녀는 발악하는 소녀적인 감성을 꾹 억눌렀다.

남자는 재빠르게 그녀의 바지를 벗겨낸 다음 팬티까지 내렸다. 여진은 다리를 모은 채 인상을 찡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 저기, 이런 거 하는 사이에 이름이라도 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남자는 한쪽 눈썹만 치켜올리고서는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민영후."

"아, 난 조여진."

남자의 입술이 다시 미소로 휘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손이 그녀의 양 발목을 잡고는 다리를 홱 벌렸다. 헉 하고 숨을 들이키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리 사이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손이 닿는 순간 그녀는 나직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가 사라진다. 여진은 언뜻 눈을 뜨고는 그가 피에 젖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고 혐오감 섞인 신음을 흘렸다.

"도대체 뭐 하는......"

"그 개새끼가 네 몸에 자기 피를 섞었어. 네가 어디 있든 쉽게 찾아내려는 수작이야. 그냥 두면 네 피가 전부 그 새끼 피랑 뒤섞여서 결국엔 그 새끼의 애완견이 되지. 피를 빼내야 돼."

"피를 어떻게 빼내는데?"

영후는 다시금 삐딱하게 웃었다. 여진은 유일하게 떠오른 생각에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아, 맙소사. 난 아직 완벽하게 말끔한 버진이라고."

"누가 처녀성을 어떻게 한댔나?"

그의 손이 그녀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허벅지를 누르고 양쪽으로 벌렸다. 그녀가 숨을 들이키는 순간 영후가 고개를 숙여 다리 사이에 입술을 갖다댔다. 부드러운 혀가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입구를 핥고 천천히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며 양손으로 그의 어깨 부근을 움켜잡았다. 온몸이 짜릿하고 눈앞이 무지개색으로 변했다.

뱃속에서 무언가가 요동치고 있었다. 속이 다시금 메스꺼워졌다가 갑자기 안에서 뭔가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랫배를 쿡쿡 찔러대던 감각 역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온몸을 휘젓던 고통이 서서히 다른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콕콕 찌르는 듯한 감각에서 몸 안의 세포들을 하나씩 자극하다가 서서히 피부를 달아오르게 만들고 머리 속을 휘젓는......

어라, 응? 이, 이건 곤란해. 맙소사, 안 돼.

"자, 잠깐, 잠깐만! 그만 해!"

그녀가 바둥거리며 그의 어깨를 밀었다. 하지만 먹이를 붙잡고 놓지 않는 육식동물처럼 그는 피가 흘러내리는 부분을 샅샅이 핥고 있었다. 짜릿거리는 감각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끼며 여진이 숨을 헐떡였다.

"그만 하라니까!"

그녀가 그의 어깨를 내리치려 할 때 갑자기 그가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구역질을 했다. 여진은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보았다. 영후가 그녀의 다리 옆쪽으로 양손을 짚고서 몸 안의 무언가를 완전히 토해내려는 것처럼 격렬하게 구역질을 했다. 그의 입에서 거무죽죽한 피가 흘러나온다. 움찔움찔 그녀는 다리를 모으고서 그에게서 물러났다.

"젠장, 너 도대체......"

그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릎을 모으고 양손으로 웃옷을 끌어내려 가능한 한 몸을 가리며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너 뭔가 이상해. 피에서 그 개새끼 맛이 별로 많이 느껴지지 않아. 하루가 지났으면 절반쯤은 피가 감염되었어야 하는데. 게다가 네 피, 독해. 지독하게 독해."

입가에 번진 피를 다시 닦아내고서 그가 일어섰다. 여진은 앉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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