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켄타우로스

2013.04.07 14:2304.07

  경기가 시작되기 전, 아레나는 고요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승용은 몇 분 후에 켄타우로스의 힘찬 말발굽으로 뜨겁게 달구어질 빈 트랙을 멍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켄타우로스 경마게임에서 돈을 딴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맹렬히 질주하는 켄타우로스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끔 해주는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돈을 잃고 따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현실. 지금 그가 처한 현실.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현실.


  승용의 회사는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위기는 항상 있어왔었지만 최근 1년 사이에 닥친 위기는 꽤나 심각한 것이었다. 그것은 회사경영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업전반의 변화였다. 승용의 회사는 안드로이드 자동화 공장에 들어가는 회로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직원은 10명도 되지 않았지만 나름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건실한 업체였다. 2035년에 창업해 몇 년간은 호황을 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40년에 이르러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그들이 생산해내던 부품들은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었고, 훨씬 싸고 좋은 부품들이 시장을 잠식해나갔다. 그렇지만 승용은 기존에 생산해내던 부품들의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아무리 시장구조자체가 변하더라도 모든 것이 일시에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것이 승용의 판단착오였다. 세상은 승용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해버렸고 시대의 변화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여러 기업들은 도태되는 양상을 맞이했다. 2030년대의 안드로이드 고도성장을 직접 일궈낸 산업의 혁신적인 주역이 이제는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놓여버렸다.

  승용도 처음에는 기울어져 가는 회사를 살리려 사방팔방을 뛰어다녔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해버린 수많은 기업들과 경쟁하기에는 시기가 많이 늦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설상가상으로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 챈 여러 직원들은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버렸다. 지금껏 같이 회사를 지탱해오며 이 터전을 일구어오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월급이 몇 달째 밀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그들을 잡을 수 있는 명분 같은 건 없었다. 승용은 그 동안 회사를 위해서 일 해줘서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회사가 안정화가 되면 밀린 급여는 지급할 것이며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다. 직원들은 애써 웃으며 알겠다라고 말했으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돈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다시 돌아온다는 확답을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밀린 급여를 포기한다는 체념을 담보로 난파된 배에서 구조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탈출구를 택해 떠나갔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상황은 더욱더 악화되었고 빚은 점점 불어났다. 은행대출은 물론이고 급기야는 여러 사채까지 쓰며 자금을 조달하려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들 역시 현재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라며 말끝을 얼버무리고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오는 게 고작이었다. 몇 명은 아예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은행대출이자와 사채이자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승용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것이 그가 손을 쓸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보면 볼수록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승용은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땅속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던 그에게 유일하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것이 바로 저 달리는 켄타우로스였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저 반인반마의 존재만이 그의 불안을 달래주었고, 그가 처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잊게 해주었다.

 오늘도 역시 돈을 따지 못했다. 없는 돈 30만원만 날려먹었다. 그러나 그 돈을 걸고 있던 그 순간은 현실을 잊게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것만으로 말이다.


  “사장님 누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을 때 용택이 말했다. 용택은 회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직원이었다. 모두가 회사를 떠나갈 때도 용택은 남았다. 자신은 이제 퇴직할 시기라서 아무 대도 갈 곳이 없다고 말했지만 승용은 알고 있었다. 그가 꽤 뛰어난 기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승용 자신에 대한 의리 때문이라는 것을.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것이 무엇이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용택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결 같이 하나의 길로만 가는 사람. 그 길의 끝이 비록 낭떠러지일지라도 말이다.

  “알겠습니다.”

  승용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용택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표정만으로도 승용은 감이 왔다. 그가 들이닥친 것이다. 숨통을 조여 오는 불안감의 실체. 사무실 유리창에 그가 앉아있는 모습이 설핏 보였다. 승용은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머릿속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김사장님. 왜 이렇게 늦게 출근하십니까? 이러니 회사가 잘 굴러 가겠습니까?”

  우식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승용의 자리에 앉아 다리를 책상에 걸치고 있었다. 승용은 우식의 구두에서 떨어진 작은 흙먼지들이 자신의 책상에 뒹굴고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저런 개새끼.

  “무슨 일입니까?”

  승용의 대꾸에 우식은 어이없다는 듯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의 웃음이 얼마나 컸던지 유리창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무슨 일? 무슨 일은 무슨 일이겠습니까? 내가 하는 게 뭡니까? 돈 받는 거 아닙니까? 어제까지 입금하기로 한 금액이 들어오지 않아 이곳에 왔습니다. 뭐가 잘못된 겁니까?”

  다소 과장된 말투의 우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있을 때보다 뭔가 사람을 압도하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내가 못 올 데라도 온 겁니까? 예?”

  “아닙니다.”

  승용이 대답하지 않았다면 우식은 더욱더 흥분을 하며 언성을 올린 기세였지만 꼬리를 내리는 승용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대포처럼 쏘아대던 웃음이 아닌 사람 마음속을 꿰뚫고 있는 듯 보이는 미소. 승용은 그런 우식의 웃음이 두려웠다.

  “그러면 사람을 그렇게 대하지 마세요. 내가 마치 불청객인 것처럼 대하지 말란 말입니다. 난 그런 게 싫습니다. 돈을 빌려간 건 당신인데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합니까? 안 그래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승용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식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지금 그의 화를 돋구어봐야 좋을 건 없었다. 승용은 선반 위에 놓인 커피를 꺼내 우식을 돌아보았다.

  “커……커피 드시겠습니까?”

  “좋지요.”

  우식은 그제 서야 마음이 모두 풀어진 듯 다시 승용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까처럼 다리를 올리지는 않았다. 다만 승용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듯 주시하고 있었다. 승용은 그의 그런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그를 처음 만났던 6개월 전, 아레나에서 그는 똑같은 눈빛으로 승용을 지켜보았다. 켄타우로스 게임에 돈을 잃고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그의 시야 너머로 그가 지금과 똑같은 눈빛으로 승용을 지켜보고 있었다.

  “돈이 필요하시죠?

  우식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 말했고, 승용은 그의 얼굴을 빤히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상황은 이지경이 되고 말았다. 승용은 뜨거운 물에 탄 커피를 우식에게 가져 다 주었다.

  “아이고, 이거 고맙습니다.”

  우식은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승용은 자신을 부하직원마냥 올려다보는 우식의 거만한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렇다면 저 미소와 함께 얼굴근육이 흘러내릴까? 다시는 웃지 못하게 되겠지.

  “사장님 예전에 육상 하셨나요?”

  “예?”

  갑작스러운 우식의 질문에 승용은 놀라서 헛기침을 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십니까?”

  “아……아닙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저기 사진이 있길래 물어봤습니다.”

  우식은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승용 역시 그 사진을 쳐다보았다. 사진 속의 그는 메달을 흔들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꽤 잘 하셨는가 보네요. 저기 들고 있는 게 메달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3등을 했었죠.”

  “이야, 대단하시네.”

  우식은 다소 의외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승용은 그의 웃음을 무시하고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 사진은 사고가 나기 전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 이후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한쪽다리는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걸을 수는 있겠지만 다시는 육상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고쳐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식은 육상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경마에 관심이 많으신 거네요.”

  “예?”

  “켄타우로스 경마게임 말입니다. 요즘도 심심찮게 거기로 들락날락 거린 다는 것 같던데?

  “이제는 남의 뒷조사까지 하고 다닙니까?”

  “예?”

  “내가 당신들한테 돈을 빌리긴 했지만 내 사생활까지 그렇게 당신들한테 감시당해야 하는 거냐고요?”

  승용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다. 이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든 말든,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감시 받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분노가 일었다.

  “글쎄요. 우리는 그저 우리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 당신이 우리 돈을 못 갚았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남이라고 하기도 어렵죠.”

  “이유야 어찌되었던 당신들한테 그럴 권리는 없어! 알아? 이건 엄연히 사생활침해란 말이야! 알아듣겠소!”

  그 순간 우식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와장창 거리며 컵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얼마간의 침묵을 깨고 우식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빌린 돈 5000만원. 거기에 이자가 붙어 지금은 거의 1억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지금 뭘 착각하고 있나 본데. 이게 지금 당신이 처한 현실이란 말입니다. 아직도 분위기파악이 안됩니까?”

  1억. 그 단어 하나에, 승용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승용이 우식에게 커피를 갖다 바쳐야 했던 현실, 자기의 자리에 버젓이 앉아 있는 우식을 그저 힐끔거리며 눈치를 봐야 했던 현실, 모든 것에 있어서 철저히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확고부동한 진실.

  “미……미안합니다. 제……제가 좀 흥분했나 봅니다.”

“그겁니다.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취해야 할 태도란 거죠. 아시겠습니까?”

승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내어 대답하지 않은 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곧 죽어도 지키고 싶었던 일말의 자존심. 그 순간 승용은 스스로가 미치도록 혐오스러웠다.

“승용씨, 저는 승용씨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왔습니다. 물론 이게 나의 일이니 당연히 채무자들을 많이 만나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굳이 승용씨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건 승용씨는 제가 아는 두 가지 케이스 중에 하나라는 겁니다.”

“두……두 가지 케이스?”

“그렇습니다.”

우식은 선반에 있는 커피를 꺼내 뜨거운 물을 부었다.

“첫 번째 케이스는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한다 해도 결국에는 돈을 갚는 부류죠. 상황이 어찌되었던 갚긴 갚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런 사람들은 현재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원인을 어느 정도 알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문제는 두 번째 케이스입니다. 바로 승용씨와 같은 부류입니다. 자기 자신도 어디서부터 문제가 잘못된 건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며 무작정 지금 현재 현실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우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방금 전보다 맛이 괜찮은지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표현합니다.”

승용은 가슴이 멎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남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은 건 처음이었다. 뭔가가 울컥거렸다. 그래도 한때는 누구보다 떳떳하고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이런 쓰레기 같은 사채업자에게 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케이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회생이 안 됩니다. 그래서 문제점을 다른 곳에 찾으려고 하죠. 술을 마신다거나 혹은 도박을 한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극단적인 케이스는 스스로.”

우식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무……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승용의 소스라치게 놀란 듯이 말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기……기회?”

“그래요. 기회”

우식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금연이라는 표어가 엄연히 눈앞에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붙였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얼마간의 시간은 벌어주는 거죠.”

“그……그게 대체 뭡니까?”

“신체를 파는 겁니다.”

뿌연 연기 사이로 묘하게 반짝이는 우식의 눈빛이 승용을 쏘아보았다.

“장……장기거래를 말하는 겁니까?”

“장기거래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것도 다 파는 겁니다. 사람의 팔이나 다리라든지. 이 모든 게 상품처럼 하나하나 다 판매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무실 안은 침묵이 감돌았다. 담배연기가 자욱하게 실내를 뒤덮었지만 모든 공기는 촘촘히 날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우식의 눈빛만은 이미 사정거리 안에 먹이를 둔 맹수처럼 승용의 팔을 노려보았다. 그런 기운을 느꼈는지 승용은 자신의 팔이 묘하게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지고 편리해져도 아직 예전의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봅니다. 그게 성능 좋은 기계 팔이 나오고 나노장기 같은 것들이 나와도 진짜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의 팔다리 같은 것들이 거래되는 이유겠죠. 다 돈 많은 자들의 흥밋거리 아니겠습니까?”

우식은 연기를 내뱉었다. 승용은 연기가 만들어지는 묘한 궤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어……어떻게 팔다리가 팔리죠? 사람마다 크……크기가 다 다르고 모양도 다른데. 그걸 어떻게 사용한단 말입니까?”

“글쎄요. 듣기로는 바디스캐닝인지 뭔지 하는 기계로 다듬는다고 하더군요. 쉽게 말해서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조각재료를 파는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맞는 재료를 사다가 몸에 맞게 조각을 하는 것이겠지요.”

승용의 말에 우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중요한 건 승용씨가 어느 정도 값어치가 있는 조각재료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누구에게는 필요하지 않는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절실히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내 팔도 중요합니다.”

“지금 승용씨가 처해진 상황. 전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때에 따라서는 팔다리는 부수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승용의 다리는 애초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사지가 뜯겨나갈 것을 예감하는 두려움인가? 아니면 이 불안하고 초조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한줄기 희망에 대한 설렘인가? 두 가지 감정은 뒤섞인 채 승용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젓고 있었다.

“승용씨도 잘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면 최소한 현재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해줄 판단의 대리자 정도는 인지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판단. 지금 자신의 팔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승용은 자신의 문제점이 시야에 펼쳐졌다. 아내와 두 아이. 이미 기울고 있는 회사. 돌릴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팔 하나로 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느……늦출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죠?”

승용은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한 달 정도……당신에게 말미를 줄 겁니다.”

우식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승용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이 팔이 불안을 한 달 동안 잠식시켜준다고?

“현재 성인 남성 팔 하나에 3000만원 정도 합니다. 물론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떼어낸 신선한 팔일 경우죠. 그리고 운동을 한 사람의 신체라면 더욱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겁니다. 승용씨처럼 육상을 한 사람이라면 30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가 추가로 주어진다는 것이죠.”

승용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우식은 승용을 쳐다보지 않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3500만원이라면 지금 승용씨 당신에게 분명히 적은 돈은 아닐 겁니다. 그 돈으로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던지 혹은 회사에 쓰던지 그것은 승용씨 마음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빌린 게 아니라 공돈이 생긴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승용은 우식의 두 눈을 응시하며 그 속에서 뭔가를 읽고자 했다. 그의 속셈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온 역전의 용사답게 표정에는 한 치의 미동조차 없었다.

“물론 공돈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하……하겠습니다.”

우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승용이 대답했다. 우식의 눈빛에 묘한 빛이 일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싸인 하시면 됩니다.”

우식은 미리 준비를 해두었던 것처럼 신속하게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 상황을 미리 예상했던 걸까? 승용은 우식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그저 웃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거래를 할 때 짓던 그 무표정한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처음과 같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승용은 프로페셔널한 우식의 표정관리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사인을 하고 난 뒤에 사무실을 나왔을 때 밖에 있던 용택이 위태로운 얼굴로 승용을 쳐다보았다.

“사……사장님.”

“괜찮아요. 하시던 일들 계속 하세요.”

용택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승용을 쳐다보았다. 이미 그 역시 뭔가를 예감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승용을 붙잡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승용 자신의 판단이었다. 현실의 문제를 인지하고 상황을 조금이라도 돌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승용은 3500만원을 받게 되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도 용택에게 밀린 급여의 일부를 반드시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일이 합법 일리는 없었다. 승용은 우식이 말하는 뉘앙스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불법이라도 승용에겐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돈이었다. 만에 하나 있을 상황에 대비한 듯 우식은 승용의 눈에 가리개를 씌었다. 이후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이동해 승용이 다시 가리개를 풀었을 때는 자신이 낯선 변두리지역에 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눈앞에는 수십 년 전에 지었을 법한 3층짜리 빌딩이 서 있었다.

“수술이 끝나면 다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우식은 웃으며 빌딩을 향해 손짓을 하며 앞장서 걸어갔다.

우식이 들어가자 어두운 복도너머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팔 다리는 가늘었지만 두 눈자위는 묘하게 번뜩였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보는 듯 승용을 쳐다보았다. 우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사선생님입니다.”

의사라는 말에 승용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이런 자가 의사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군. 그러나 방안으로 들어가자 승용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수십 가지의 팔다리들과 그 앞에 붙여져 있는 라벨들. 그 옆으로 널브러져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기계 팔의 기이한 모습들이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승용은 그곳을 박차고 나가고만 싶었다. 그리고 당장 경찰서로 달려가 이곳에 이런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진다고 신고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도망갈 곳이라고는 없었다. 도망간다 해도 어쩌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승용은 이미 이곳에 발 한쪽을 깊숙이 잠겨 있음을 자각했다. 누구의 의지도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혀……현금은 바로 지급이 되는 겁니까?”

승용의 말에 우식은 다시 확신에 가득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현금지급입니다.”

지금 이 순간 현금지급이란 말은 그 어떤 마취제보다 강렬한 것이었다. 안도감에 웃음마저 터질 뻔했다. 승용은 어깨아래에 존재하는 자신의 팔을 쳐다보았다. 애초부터 인간은 죽으면 끝이다. 그때 되면 이 신체가 뭐가 중요한가? 다 썩어 없어질 것을. 그렇기 때문에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때 받아야 한다. 어떤 것이든지 가치를 지니고 있을 때 그 가치를 잘 활용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빛을 잃고 후회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제가 오른손잡이니까, 왼손으로 해주십시오.”

승용은 이상한 여유마저 부리며 우식에게 말했다. 우식은 웃으며 알겠다라고 했다. 수술이 시작되고 승용은 잠이 들었다. 그의 꿈속에 나타난 건 켄타우로스였다. 경기장을 맹렬히 뛰고 있는 그 웅장한 자태. 승용은 그런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꿈에서조차 그 얼마나 바라고 있던 해방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팔 아래 느낌이 없었다. 적어도 인간적인 감각이란 것은 없었다. 그러나 뭔가가 움직이기는 했다. 그것은 자신의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이행하는 단순한 기계덩어리에 불과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여지는 그것을 승용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게 앞으로 내 손을 대신할 그것인가? 이것과 함께 나는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먼 훗날 자신이 죽어 관에 들어갈 때 이것이 함께 들어가게 될까? 화장을 하게 되면 이것만 남을까?

승용이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자신의 기계 팔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거미같이 생긴 의사가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팔을 들여다보았다.

“물건을 집을 때 그립 감 때문에 지금 적당하게 레벨조정을 해야 합니다. 이런 건 수술이 끝나고 바로 조정을 해야 편하지요. 보시는 이 부분이 레벨조정을 하는 부분인데 수동으로 본인이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쓰시다가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이 레벨을……”

승용은 거미의사가 기계 팔을 만지작거리며 신나게 떠들고 있는 동안 그의 뒤에 진열되어 있는 시험관들을 쳐다보았다. 그 중 하나의 시험관 안에 오늘날짜가 적힌 라벨지의 팔 하나가 보호액체 속에서 규칙적인 궤적을 그리며 떠다니고 있었다.

승용은 그 팔이 자신의 팔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묘한 느낌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영혼이 빠져 나와 이미 생물적으로 죽어버린 자신의 몸뚱이를 응시하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사무실 한쪽 귀퉁이에서 우식은 홀로그램 TV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승용이 들어가자 그는 반갑게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어이구, 이거 팔이 아주 멋지십니다.”

우식은 승용의 팔을 쳐다보며 웃었다. 순간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가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자 모든 것이 사그라졌다.

“이……이게……”

“승용씨가 받게 되는 돈은 1500만원입니다.”

승용은 고개를 들어 우식을 쳐다보았다. 그는 또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그게 무슨? 아까 전에는 분명히 3500만원이라고”

“그건 젊은 성인 남자 팔 기준으로 이야기를 한 겁니다. 20대의 팽팽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팔과 다리. 그게 가장 상품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승용씨는 지금 40대 후반이니까 1000만원 정도가 적당한 값어치인데, 승용씨가 예전에 운동을 하셔서 그런지 근육조직은 아직도 괜찮아서 500만원 정도가 더 지급이 된 겁니다.”

승용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팔의 가치가 1500만원이라는 것보다 3500만원에서 2000만원이나 값어치를 떨어뜨려버린 우식의 혀 놀림에 치가 떨렸다.

“그 1500만원에서 일단 저희가 원금 일부분과 이자를 1000만원 정도를 뺐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00만원은 기계 팔의 비용과 이곳 의사선생님의 수술비까지 포함해서 책정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봉투에는 300만원이 있는 것이죠.”

“말도 안 돼.”

승용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말이 안 되다니요. 지금 시세보다 조금 더 괜찮은 금액으로 책정해드렸습니다. 원래는 1400만원이라고 책정 된걸 그래도 신경을 써서 100만원을 더 얹었단 말입니다. 그걸 아셔야지.”

우식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피웠다. 또다시 담배연기가 온 방안을 가득 메웠다. 승용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이 정신이 몽롱해졌다.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팔은 이미 떨어져나갔고 모든 것은 엎질러졌다.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가시는 길은 다른 사람이 데려다 드릴 겁니다. 저는 다른 스케줄도 좀 있고 해서요. 그리고 한 달 뒤에는 나머지 잔금도 다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러지 못하면.”

우식은 승용의 남아있는 팔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다시 자리에 가서 홀로그램TV을 시청했다. 잠시 후 TV에서 코미디언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자 우식은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담배연기가 잦아들자 그의 웃음이 공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이게 당신이 말한 문제의 해결점이라는 건가?”

승용은 웃고 있는 우식의 뒤통수를 금방이라도 후려칠 기세로 말했다. 그러나 우식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그의 시선은 TV화면에만 집중해 있었다.

“이게 문제의 해결점이냐고?”

승용은 치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보다 컸는지 우식은 고개를 돌려 승용을 쳐다보았다.

“적어도 문제의 해결점이 뭔지는 가르쳐드렸잖아요.”

우식은 입가에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뭐?”

“바로 돈, 모든 문제의 해결점 말입니다.”

우식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TV프로그램에 집중했다. 또다시 이어지는 코미디언의 말에 우식은 방금 전보다 더 큰 웃음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승용은 우식이 보고 있는 프로그램을 쳐다보았다. 문득 우식처럼 큰소리로 웃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즐겁게 웃어 본적이 과연 언제였던가? 저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웃어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승용은 지금 자신에겐 웃음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승용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방안에서는 조금 전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승용은 귀를 막고 싶었다. 그렇지만 손바닥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웃음소리가 더욱더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갑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창백한 표정의 남자가 다가와 승용에게 말했다. 그는 올 때 우식이 그랬던 것처럼 승용에게 검은 가리개를 씌었다.

승용이 검은 가리개를 풀었을 때는 햇살이 머리위로 강렬히 내리쬐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태양을 쳐다보았다. 눈부셨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주 눈부셨다.

“수고하십시오.”

승용을 데려다 준 남자는 기계적인 인사를 하고 차를 몰고 가버렸다. 승용은 한참을 넋이 빠진 사람처럼 서 있다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걸을 때도 많은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으려 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면 가슴이 뒤집혀 버릴 것 같은 분노가 일어날 것 같았다. 팔을 잃었다는 분노. 망할 놈의 기계 팔을 달았다는 분노. 하지만 가장 큰 분노는 그 모든 것을 저지른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애초부터 우식의 말을 듣고 덜컥 계약해버린 자신의 성급함이 문제였다. 불안은 성급함을 키운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기어코 3500만원의 액수에 혹한 스스로가 우스웠다. 3500만원을 받았다면 지금 웃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그 액수를 받았다면 지금 즐거워 할 수 있을까? 승용은 스스로의 물음에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지나가던 행인이 힐끔 그의 팔을 쳐다보았다.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그의 기이한 실루엣 때문일 것이다. 승용은 문득 그 행인의 머리를 박살내고픈 충동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가던 승용은 어느새 자신이 아레나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내면의 무의식적인 본능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에 새삼 놀라며 저항할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려가듯 장내로 들어섰다. 아레나 내에서는 대낮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경마를 즐기고 있었다. 승용은 자리에 앉아 넋이 나간 사람처럼 경기를 지켜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경기를 지켜보던 승용은 다음경기에 출전하는 켄타우로스의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전광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10번. 블랙썬더. 43A3B21-NO.43

그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승용이 넋을 잃고 쳐다본 건 10번 말의 유치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을 고정시킨 것은 뒤에 따라붙은 10번 켄타우로스의 생산일련번호였다. 그 중에서도 43이라는 마지막 숫자는 그의 머릿속으로 또렷이 각인되었다.

43번은 승용 자신이 예전에 선수였을 시절의 등 번호였다. 자신이 처음 43번이라는 번호를 받고 뛰던 첫 경기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날도 이렇게 햇살이 눈부신 하늘이었다. 청명한 푸른 하늘 그 끝까지라도 달려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날 승용은 태어나 처음으로 1등이란 것을 해보았다. 달린다는 것은 세상 앞에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증명하는 새로운 세계였다.

승용은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은 운명의 날일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괴로웠던 기억들을 훌훌 던져버리고 다시 세상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을 위대한 시작의 날. 잃어버리고 추락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새롭게 생겨나는 날.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절대적인 신념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승용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마권을 판매하는 매표소로 뛰어갔다. 그러면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세상에 나를 다시 증명하자. 난 아직 죽지 않았다. 나는 나의 문제점을 다시 인지했다.

팔과 교환한 300만원을 10번 말에 고스란히 쏟아 부었다. 매표원은 비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승용을 쳐다보았다. 그래 웃어라. 모두가 비웃어라. 이제 몇 분이 지나고 나면 모든 사람이 날보고 놀라게 될 테니.

마권을 받아 들고 다시 자리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켄타우로스들이 출발선을 박차고 나간 뒤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사람마냥 자신의 돈이 걸린 켄타우로스의 번호와 이름을 외쳐댔다. 그런 북새통속에서 승용의 시선은 고요히 10번 켄타우로스의 동선을 쫓고 있었다. 블랙썬더는 처음에 페이스조절을 하려는지 선두권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모습에 승용은 또다시 머리카락이 서는 것 같았다. 모든 게 그날과 똑같았다. 자신도 그날 1등을 하기 전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페이스조절을 하지 않았던가? 전율이 일었다. 모든 것이 작전대로다. 지금 달리는 켄타우로스는 그때의 승용과 같은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짧은 순간 승용의 머릿속엔 1등을 하게 되면 그 돈을 어떻게 쓸까라는 환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일단은 용택에게 밀린 월급부터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망할 놈의 그 우식인지 하는 놈에게 빚을 청산해야 할 것이고, 은행대출금을 갚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잃어버린 자신의 팔을 되찾고,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 두 명에게……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무렵 이미 경기는 끝나버렸다. 블랙썬더는 끝내 페이스조절을 실패한 듯이 5등으로 들어왔다. 돈을 딴 사람들은 미친 듯이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고,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돈을 걸었던 켄타우로스에게 저주를 퍼부어대며 욕을 해대고 있었다. 승용은 그저 멍하니 블랙썬더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왜 1등을 못한 거지? 모든 상황이 너에게 1등을 하게 만들어주었잖아? 넌 그저 1등만 하면 되었다고. 왜 못한 거지?

알 수 없는 혼란으로 인해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 따사로이 비춰주던 햇살은 어느새 강렬하고 잔혹한 태양빛으로 변해 승용의 머리 위를 집요하게 쪼아대고 있었다.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승용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는 사람이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그날 그가 느낀 가장 솔직한 감정이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팔 하나를 날려먹고도 또다시 이곳에서 그 돈마저 날려먹은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으로 인해 눈물이 흘렀다. 한번 터진 눈물은 쉽사리 멈추질 않았다. 승용은 자신을 이렇게 나락을 빠뜨려버린 현실을 저주했고 43이라는 숫자와 켄타우로스를 저주했다. 모든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 뒤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그의 가슴속을 스며들었다. 승용은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그곳에 앉아있었다. 어찌되었건 이미 모든 것이 벌어진 일이었다. 돌이킬 수 없었고 엎질러진 물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승용의 팔을 쳐다보았다. 두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뒤에 아내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승용은 혼이 빠져 나간 사람처럼 서 있기만 했다. 웃으며 괜찮다라고, 사고를 당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아침에 나간 그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밤에 기계 팔로 바뀌어 돌아온 이 모습을 사고로 설명한다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울음이 잦아들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뒤척이며 울기만 했고 승용은 그저 그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샐 수밖에 없었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동이 틀 때 승용이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도 주워 담고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까지라도 가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 싶었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묘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여보 너무 힘들면…….”

다음날 아침 눈이 퉁퉁 부은 아내의 말에 밤새 고민했던 그 결심들이 또다시 흔들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승용은 애써 마음을 되잡았다. 지금 이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승용은 일그러지는 얼굴근육을 애써 웃음으로 바꾼 후 아내를 쳐다보았다.

“걱정 마, 당신은 신경 쓸 거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승용은 자신의 말에 아내가 조금이라도 안심을 하길 바랬다. 현재 스스로가 짊어지고 있는 이 불안감을 아내에게까지 느끼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 어깨의 짐들은 승용 자신이 짊어진 것만으로도 족했다. 집을 나설 때 바라본 아내의 시선은 뭔가를 예감하는 듯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두 아이는 기계로 변한 승용의 팔이 낯선지 멀리서 물끄러미 쳐다 볼뿐이었다. 그런 모든 모습들이 승용이 지금 어떤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인지시켜주는 것 같았다.

“팔 하나를 더 팔겠습니다.”

승용의 전화에 우식은 미처 그가 예상을 못했던 일인 마냥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외군요.”

생각을 끝낸 듯, 우식이 짧게 대답했다.

“어제와 같은 가격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승용의 말에 우식은 또다시 침묵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인가에 대한 앞뒤 수를 하나하나 계산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우식의 입장에서는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장사였다. 승용은 어제 우식이 돈 봉투를 건네줄 때 우식의 표정과 말투에서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문제의 해결점을 정확히 인식하신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정확히 인식했습니다.”

승용의 대답에 우식은 끌끌 거리며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사무실을 나설 때 용택은 승용의 팔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사장님 팔이……”

“용택씨.”

“예?”

“밀린 월급이 얼마나 되죠?”

“그게……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용택은 생각이 잘 안 나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생각이 잘……그런데 갑자기 그걸 왜?”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아무튼 계속 수고 좀 해주세요.”

승용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용택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용택은 자신의 어깨에 닿은 승용의 기계 팔을 낯선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승용은 나가기 전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작업장을 돌아보았다. 한때는 엄청난 속도로 제품을 만들어내던 찬란한 시절도 있었다. 쉴 새 없이 만들어내도 공급량이 수요량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람이 떠나고 기계는 언제 깨어날지 기약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영원한 고독 속에 잠들어버렸다. 다시 깨우고 싶었다. 자신의 시대를. 모든 것을 거슬러 가고 싶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세상 앞에 증명하고 싶었다.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곳의 모든 풍경이 익숙해졌다. 팔이 붕붕 떠다니는 시험관을 지켜보는 것도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았다. 점차 쇠붙이로 몸이 잠식되다 보니 감정까지 메말라가는 것 같았다. 거미의사도 처음에는 좀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신이 맡은 업무에 집중했다. 승용은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고 또다시 켄타우로스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저주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아련하게 본능처럼 남아있는 것은 이 신화 속 존재였다. 그만이 지금 승용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승용은 깨어난 후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점차 선명해지는 시야에 거미의사가 라벨지에 오늘 날짜를 적는 걸 바라보았다. 그 라벨지는 팔 하나가 떠다니는 시험관 앞에 붙여졌다. 승용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만이 감돌았다.

“오른손은 상태가 좀 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200만원 더 넣었습니다.”

우식은 흰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어제보다 꽤나 두툼했다. 승용이 봉투 안을 살펴볼 때도 우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승용을 관찰하는 듯 보였다.

“꽤나 의외였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하루 만에 다시 신체를 팔거나 하지 않는데 말이죠.”

우식은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1700만원이군요.”

승용은 우식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돈의 액수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뒤돌아서 문고리를 잡았다.

“곧 다시 만날 것 같군요. 이번에는 다리겠죠?”

우식은 입에 담배를 물고 웃으며 말했다. 승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식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승용은 우식이 알고 있던 그 모든 케이스 중에서 단계절차를 좀 빨리 밟아가는 케이스일 것이다. 돈이 좀 급한 케이스.

“그래도 아직까지 나에게 한 달간의 말미는 유효한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승용의 말에 우식은 두 팔을 으쓱거렸다. 그로서는 필요한 것은 모두 취했다. 더 이상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홀로그램 TV를 켰다. 나가라는 것 같았다. 승용이 방문을 닫고 나갔을 때 그때와 마찬가지로 안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이 1700만원으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가였다. 승용은 이 돈이 자신이 알던 과거의 모습들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조각 이길 원했다. 직원들이 열심히 물건을 만들고, 자신은 모든 것을 관리하며 바이어들을 만나 영업하며, 퇴근해서는 아내가 기다리고 두 아이가 잠들어있는 일상의 풍경들. 승용은 지나간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다른 삶의 선택은 없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래서 남은 이 기회를 어떻게든 다시 살려야 한다. 이제는 스스로가 답을 찾아내야 할 시기였다.

용택은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이미 돈줄이 말라있을 승용의 사정을 뻔히 아는데 밀린 임금의 일부랍시고 내미는 승용의 흰 봉투를 보고 말문이 막힌 듯 서 있었다.

“퇴직금입니다.”

“예?”

용택은 놀란 눈빛으로 승용을 쳐다보았다.

“퇴직금입니다. 이것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사장님. 전.”

“그리고 내일부터는 안 나오셔도 됩니다. 만약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되면 그때 와주십시오.”

용택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그는 이틀 만에 변해버린 승용의 두 팔을 보고 모든 상황을 눈치 챈 듯 보였다. 승용은 받지 않으려 손사래를 치는 그에게 끝까지 돈을 쥐어주었다. 결국 용택은 흰 봉투를 받은 채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버렸다. 그런 그를 내버려두고 승용은 다시 사무실에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어제 우식의 구두에서 떨어진 흙먼지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기계를 바꿔야 할까? 아니면 모든 빚의 일부분이라도 갚아야 할까? 은행에서 또 다른 대출을 해야 할까? 분명히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분명히 방법을 있을 것이다.

곧 다시 만날 것이라는 우식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1700만원으로 회사를 소생시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은행에 추가대출을 하러 간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개인회생대출을 알아보려고 했다가 도리어 은행에서 빌린 예전 대출에 대한 상환독촉을 받을 뿐이었다. 집요하게 따져 드는 대출상담원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이자를 제때 납부하겠다는 확인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말미간의 돈 냄새를 맡았는지 다른 금융대출업체에서도 빚 독촉을 해왔다. 우식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생긴 사채 빚이었다. 결국 1700만원은 먼지처럼 그렇게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허망했다. 자신의 소중한 두 팔을 희생해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은행 측에서는 우식과 마찬가지로 얼마간의 말미를 주었다. 그사이 대출금의 일부를 갚지 못한다면 현재 우식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차압이 단계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모든 압박에 집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승용에게 주어진 그 말미란 것은 한 달이 전부였다. 승용은 상황이 급박해짐에 따라 드는 생각은 자신의 몸뿐이었다. 살아 숨 쉬는 피가 흐르는 자신의 몸. 이제 이것만이 남아있었다.

다리를 한쪽만 팔게 되면 균형감각에 이상이 와서 걷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우식의 이야기를 듣고 두 다리를 모두 팔고 온 날. 책상 앞에는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예전에 용택에게 주었던 흰 봉투였다. 안에 돈은 그대로 있었고 편지가 한 장 있었다. 어서 빨리 모든 것을 정리하고 팔을 되찾아오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편지를 보던 승용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절뚝거리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흐느끼며 울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버린 걸까? 꼬여버린 실타래는 이미 너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이미 자신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케이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인식조차 할 수가 없었다. 승용은 자신의 머리아래를 쳐다보았다.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엄연히 따지면 그는 인간이라고도 말하기 힘들었다. 인간의 머리를 지닌 기계.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팔아버렸다. 겉이 바뀌니 장기에 대한 미련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몸의 일부가 하나하나 사라져갈 때마다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도 하나 둘씩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두 아이와 함께 떠나버렸고 집은 경매에 넘어가버렸다. 승용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머리아래에 존재하는 고철들이 전부였다.

승용이 다시 우식을 찾았을 때 그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승용씨 참 대단하십니다. 또 뭘 팔려고 오셨습니까? 이제 남아있는 것도 없을 텐데.”

“내 머리.”

“예?”

우식은 물끄러미 승용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가장 비싸다고 들었는데요.”

승용의 말에 우식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이야기는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참 대단하시네요. 이제 아주 전문가가 다 되셨군요?”

“가장 비싸다는 게 사실입니까?”

승용의 말이 사뭇 진지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우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가장 비쌉니다. 가장 비쌀 수밖에 없지요. 그건 팔다리와는 다르니까 말이죠. 사람의 머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만들 수가 없으니까요. 요즘에 뭐 AI이니 이런 게 있긴 하지만 오리지널 인간의 머리에 비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머리가 통째로 거래되는 겁니까? 뇌……뇌 같은 것도 다 같이 말입니다.”

“글쎄. 뇌는 어디로 유통되는지 잘 모릅니다. 듣기로는 연구소 같은 곳에 팔린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자세하게는 잘 몰라요. 뇌를 제외한 부분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나 노인들이 주로 사간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인간의 몸 중에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 된다는 건 확실하다는 것이죠.”

우식은 가장 비싸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머리를 건다는 게 어떤 것 인줄 알고는 있으시겠죠? 그 말은 승용씨 목숨을 건다는 겁니다. 그것도 알고 오셨습니까?”

승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음, 그렇군요. 뭐 좋아요. 본인 결정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가 없지만 대체 왜 팔려고 하는 것이죠?”

“내게 남은 모든 빚을 모두 청산해주길 원합니다.”

“모든 빚이라……”

“당신에게 빚진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내 가족들에게 독촉하지 마시오.”

우식은 승용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빚이 한 두 개가 아닐 텐데……은행대출도 꽤 많이……”

“그런 건 당신이 관여할게 아닙니다.”

승용의 말에 우식은 히죽 웃었다.

“하긴 뭐……그런 걸 내가 알 필요는 없죠.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그전에……”

승용은 다시 우식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나에게 먼저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라니?”

“난 이미 당신에게 원금을 5000만원 정도는 갚았습니다.”

승용의 말에 우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이제 한 5000만원 정도 남았지요. 그걸로 머리를 팔아 갚으면……”

“아니, 머리는 5000만원이 아니라 최하가 8000만원 정도 하는 걸로 들었는데.”

승용의 말에 우식은 다소 당황한 듯 쳐다보다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전까지 그가 짓고 있던 웃음과는 확연히 틀렸다. 승용은 그게 우식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주한적 없는 진짜 얼굴.

“꽤나 많이도 알아오셨네요.”

우식은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당신 말대로 전문가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현 시세가 8000만원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남는 금액으로 뭘 하려고 합니까? 가족들한테 줄 겁니까? 남은 은행대출이라도 갚게요?”

승용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떨려오는 그의 가슴은 이미 기계의 그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콩닥거리며 뛰었다. 그 순간 지난날의 수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내와 두 아이, 직원들, 회사, 그리고 켄타우로스.

그 순간 승용은 자신의 가슴속에 느껴지는 단 하나의 직감에 모든 것을 내던지기로 했다.

“정확히 이야기해보세요. 뭘 원하는 것이요?”

우식은 다시 재촉하는 듯이 물었다.

“한방을 원합니다.”

얼마간의 침묵 끝에 승용이 대답했다.

“한방이라……”

“내 삶을 되돌려줄 단 한방.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해줄 한방 말이요.”

그 순간 우식은 미친 듯이 웃었다. 처음 그가 신체를 팔라고 했을 때 짓던 그 웃음이었다. 한참을 웃던 우식은 힘겹게 숨을 골라가며 승용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다.

“결국 날 찾아온 건 그런 이유군요. 결국에는 그런 이유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신은 무척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죠? 내 빚을 청산해 가족들에게 독촉하지 말라고 하지만 결국 당신이 바라는 건 5000만원을 제외한 3000만원으로 또다시 뭔가를 하려고 나와 거래를 하러 온 거란 말입니다. 그냥 차라리 당신 가족에게 당신 머리를 판 돈 모두를 주라고 할 의향은 없는 겁니까? 아니면 남은 3000만원이라도 말입니다. 그게 가장의 도리 아니겠소?”

“웃기는 소리군요. 내가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리고 하소연해봤자 당신이 그렇게 할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두 눈 뜨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걸 해 보시겠다?”

승용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뭔가를 느낄 수 있는 감정조차 메말라 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듣고 싶은 건 오로지 팔 수 있다라는 우식의 대답뿐이었다.

우식은 잠시 동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결정한 듯 승용을 쳐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합시다. 이래나 저래나 승용씨 당신은 최고의 판매자 입니다. 나는 최고의 구매자고. 그럼 된 거지 다른 게 뭐가 필요 있겠습니까?”

몇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은 아레나에 서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한 듯 우식과 함께 두 명이 더 따라붙었다. 그 중 한 명은 수술이 끝난 후 매번 승용을 태워준 표정 없는 사내였다. 승용은 항상 그가 기계가 아닐까 했다. 자신처럼 온몸을 팔아버리고 감정마저 사치로 여기는 자. 하지만 그런 일련의 추측들을 반박이나 하듯 오늘 그는 미세한 감정의 표현을 조금 드러내며 승용을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참 대단합니다. 이걸 뭔 재미로 하죠? 나 같으면 차라리 길바닥에 돈을 뿌려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돈을 그냥 허비하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야단인 건지.”

승용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경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일단 당신에게 3000만원은 주어졌으니, 마지막 배팅은 좀 더 신중히 하세요.”

우식의 말에 뒤에 있던 한 명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마지막 배팅이 될지, 대박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겁니다.”

승용은 자신이 들고 있는 마권을 들어 보였다. 우식은 그 마권을 쳐다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승용을 쳐다보았다.

“설마 당신 3000만원을 한꺼번에?”

“그렇습니다. 당신은 시간낭비를 할 필요 없으니 좋은 거 아닙니까?”

우식은 기가 차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졌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예외적으로 세 번째 케이스가 될 거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아주 신념 있게 건너가는 사람 말입니다. 당신에게는 더 이상 해줄 말은 없군요. 행운을 빌어드리는 수밖에.”

승용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켄타우로스가 나오는 모습을 지켜 볼뿐이었다,

잠시 후 10마리의 켄타우로스가 출발선에 등장했다. 오늘 블랙썬더는 6번 말이었다. 그 눈빛은 마치 날이 서있는 것처럼 자신이 달려야 할 트랙을 집어삼킬 듯 노려보고 있었다.

“블랙썬더라는 게 이름입니까? 참 재미난 이름이군요.”

우식은 히죽거리며 물었다. 승용은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모든 켄타우로스가 일렬로 정렬이 되어 있는 그 순간 승용도 마치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릴 때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경기가 시작되자 여느 때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 이상했던지 우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승용은 동요하지 않았다. 매번 보아오던 경기였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생일대의 순간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이 담긴 경기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더욱더 거세질수록 승용은 주위의 소음이 점차 아늑히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과 켄타우로스만 달리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가 꿈속에서 보았던 켄타우로스. 현실의 불안을 덜어내 주었던 고대의 신화. 그 모든 순간이 꿈결처럼 아늑해져 가고 있었다. 켄타우로스들이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미친 듯 내달릴 때 승용은 눈을 감았다. 마침내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들리고 그 뒤를 이어 우식의 말이 승용의 귓가에 맴돌았다.

“아쉽게 되었군요. 당신이 선택한 저 6번 말은 3등을 했습니다.”

승용은 눈을 떠 경기장을 지켜보았다. 블랙썬더는 거의 탈진한 듯이 구부러져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블랙썬더의 한계였는지 모른다. 승용 자신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승용은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후회도 남아있지 않았다. 켄타우로스도 승용도 끝까지 뛰었다. 모든 것은 연소가 되었고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승용씨, 어쩌면 댁은 운이 지나치게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운이 없다고 해도 사람의 열정은 쉽게 사그라지는 게 아니죠. 댁의 그 열정, 헛되다 생각 치 마시고 소중히 간직하세요.”

“무슨 소리요?”

“다음에 눈 뜰 때는 어쩌면 나한테 감사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우식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승용이 기억하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식의 말이 끝나고 난 뒤에, 뒤에 있던 두 남자가 승용에게 접근해왔다는 것이 그가 생각나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건 심연의 어두움 속에서였다. 언제부터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무의식의 어둠 속에 있었다. 마침내 그가 의식이라는 것을 차렸을 때 그의 눈은 다른 세계를 처음 접한 듯 눈부심에 아려왔다. 그렇지만 곧 뇌가 세상의 이미지를 정확히 받아들였다.

거대한 함성소리. 그가 서있는 곳은 출발점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꿈을 꾸는 건가 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승용이 알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출발을 알리는 총성소리가 울렸다. 승용은 자신도 모르게 뛰어 달려 나갔다.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때 승용은 달리는 것이 자신뿐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켄타우로스들이 승용의 옆에서 미친 듯 질주하고 있었고 그 숫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짧은 순간, 승용은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지금 달리고 있는 곳이 아레나경마장이라는 것을, 자신이 켄타우로스가 되어 달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다른 켄타우로스의 머리에 존재하는 뇌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모든 것을 잃고 이곳으로 팔려온 존재였는지는 모른다. 뇌 하나만이 존재하며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 도달해,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하는 사람들. 세상의 실패에 눈물을 흘리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두 번째 케이스의 사람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지난날 자신들이 인간이었을 때 저지른 과오를 눈물로써 참회하고 후회하며 자신의 뇌가 멈추는 그날까지 이 경기장 안에서 괴물로 뛰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승용은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경기장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을 조여 오는 현실에 대한 불안도, 빚도, 가족도, 그 어떤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오로지 달리는 것만 가능한 세상이었다. 알 수 없는 흥분이 온몸을 뒤덮고 세포하나하나가 설렘으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승용은 지금 자신의 자아가 새롭게 탄생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비로써 세상 앞에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 이제 서야 찾아옴을 승용은 느낄 수 있었다. 공기가 얼굴을 가르고, 심장박동이 거대하게 울리는 걸 뇌가 인지한다. 더 빨리 달리기를 원한다. 그 어떤 존재보다 더 빨리 결승점에 닿기를 원한다. 43이라는 일련번호가 승용의 등 뒤에 각인되어 그와 함께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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