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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무슨 소리

2020.06.14 17:5406.14

 남자는 여름이 싫었다. 뜨거운 공기, 살색으로 북적이는 거리는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혀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요즘 같은 한여름이 되면 그의 일상은 밤낮이 바뀌곤 했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 여덟 시 쯤에 일어나 밥도 먹고 외출도 하고 글도 쓰는 식이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나오는 정도였지만.

 그는 프로작가다. 프로? 장편소설 두 권을 출판한 적이 있고, 그는 늘 스스로를 전업작가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또 호러 장르 쪽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편이긴 했지만……. 그러나 인세는 이미 끊임없이 0에 수렴하고 있는 추세였다. 하긴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아무튼 최근에 그가 잡고 있는 단편도 호러 장르였다. 다른 건 몰라도 공포소설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음 달에 출간될 ‘소리’를 소재로 한 엔솔러지에 수록될 예정이었는데, 모레 저녁까지는 1차 원고를 완성해서 보내야 했다. 그의 작업은 이미 결말까지 끝나 있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장면에 비어있는 부분이 잘 해결되지를 않았다. 며칠 째 쓰지 못하고 있는 장면으로, 아주 섬뜩한 소리를 표현할 방법이 필요했다. 주인공이 서서히 청각을 되찾으며 들려오는 환청은 그의 오랜 공포를 대변해야 했으며, 때문에 짧으면서도 동시에 강렬해야했다. 개연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독특하면서도 독자들이 공포를 공감할 수 있어야했다.

 “하아, 미치겠네.”

 그러나 거기에 맞는 걸 찾아내기는 쉽지가 않았다. 남자는 선풍기 옆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문서의 빈 부분은 도무지 채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소리에 대한 표현은 언제나 그에게 힘든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엔 묘사라는(글에서 가장 강력한 그리고 보편적인) 무기로 이겨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그의 글쟁이로서의 직감이 '아니' 라고 확언했다. 분명히 직접적인 의성어를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보일 듯, 잡힐 듯 단어는 수면위로 떠오르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시험 삼아 여러 단어를 넣어보았지만 모두 우습게 느껴질 뿐이었다.

 남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나 좀 사오기로 했다. 이대로 있어봤자 완성하기는 글렀고, 밤거리를 좀 걸어서 긴장이 풀리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몰랐다.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도착한 그는 버드와이저 네 캔을 봉지에 넣고서 길을 되돌아 왔다. 그는 언제나 버드와이저였다. 스티븐 킹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오는 큰 캔은 어째서인지 500ml가 아니라 치사하게 473ml 들이였기 때문에, 요즘 그는 밀러 같은 다른 미국 맥주로, 심지어는 코끼리 맥주로 전향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파란 코끼리 맥주의 파란 코끼리 오줌 같은 맛이 입맛에 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남자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편의점이 있는 도로변을 지나면 집으로 향하는 길은 좁은 골목이었다. 주홍색 가로등이 늘어선 길에 인적은 없었고 연립주택이 늘어선 길가는 드문드문 어둠이 깔려 있었다.

 남자는 걸어가면서 스산함을 느꼈다. 특별히 무슨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지금 길의 분위기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렇군. 지금 여기에 어울릴만한 소리가 뭐가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쉬벌 거. 차라리 귀신이라도 나타나 도와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절반 정도를 걸어 왔을까. 어둠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생각에서 깨어나 귀를 기울였다. 까드득 까드득. 뭔가 단단한 것을 갉아대는 소리 같았다. 남자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소리가 들려오는 주택의 구석자리였다. 그곳에는 아이 하나가 불빛을 등지고 앉아 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뭔가 커다란 형체가 쓰러져 있었다. 남자는 아무래도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조금 겁을 먹긴 했지만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아이는 고개를 획 젖혔다.

 핏발이 가득 선 눈동자. 그의 창백하고 긴 손가락은 잘린 머리를 들고 있었다. 피에 젖은 입가는 머리통에 박고서, 소년은 남자를 보면서도 턱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까드득 까드득, 그 소리는 어린 이빨이 두개골을 갉아대는 소리였다.

 남자는 아이와 마주본 채로 한참을 얼어붙어 있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은 미칠 듯이 뛰고 있었지만 그는 공포소설가였다. 여기서 비명을 지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눈에 훤했다! 남자는 어떻게든 해쳐나갈 방법을 생각해내려 애썼고, 마침내 어떤 결심을 한 채로 입을 열었다.

 “이… 이건 아닌데.”

 남자는 애써 만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생소하고 꽤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은 공감할 수 없을 거야. 소설에서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거든. 미안하지만 넌 사용할 수 없겠다.”

 간신히 목소리를 떨지 않고 말을 끝마친 그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좀비는 여전히 머리를 갉아대면서 멀어지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까드득 까드득.

 

 한참을 걸어 이쯤이면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그는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주홍불빛 아래 비춰진 그의 안색은 하늘에 뜬 초승달만큼이나 창백해 보였다.

 '도대체 그건 뭐냐고!'

 기겁할 것 같았다. 그는 공포소설가였고 호러물을 사랑했지만, 직접 겪는 일은 사양이었다. 자신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대부분 끔찍하게 죽어버리지 않던가! 그는 달려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이상한 것과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전봇대에서 나는 소리는 그의 바람을 좌절시켰다. 키흐흑 시흑. 또 다시 괴상한 소리였다. 그러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곳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가려 했지만 전봇대 뒤에 있던 여인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히이익!"

 정장차림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는, 기괴한 각도로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말을 잃었다. 억지로 파낸 것 같은 눈구멍에서는 검은 피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고 입가는 귀까지 찢어져있었다. 그 속에는 사람의 것이 아닌, 날카로운 이빨들로 가득했는데 들려오던 이상한 소리는 이빨 사이로 호흡이 새면서 나는 것이었다. 키흐흑 시흑.

 여인이 그에게 다가오려 하자 남자는 다급하게 외쳤다.

 “…너, 너무 고전적이야!”

 “…….”

 여인은 호흡을 줄이고서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용케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시각적 이미지는 독창적이지만 소리만을 들은 독자는 식상한 이미지를 떠올릴 거야! 미안하지만 그건 사용할 수 없어.”

 끼가가각, 여인은 다른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남자는 몸을 움찔 했지만 얼른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좇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악, 하악.”

 마침내 전력질주로 아파트에 다다른 남자는 헐떡이면서 승강기 버튼을 연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남자는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어둠 속은 아까 본 것들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1초가 10분 같은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승강기가 도착했다. 남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었지만 안에는 이미 누군가가 있었다.

 그건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였다. 초록색 비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디서 맞은 건지 물을 잔뜩 뒤집어썼다. 남자는 도망치려 했지만, 그러면 그가 쫓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7층 버튼을 눌렀고 문이 닫혔다.

 승강기가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사내는 조금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양손에는 굳은 피가 엉켜있는 식칼이 들려있었다. 사내는 그것들을 갈아대며 서악, 사억 소리를 냈는데 칼날에 붙어있던 피가 후드득거리며 떨어졌다. 남자는 불안한 눈초리로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덜컥하고 7층에서 멈춰버렸다. 사내는 칼을 들고서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왔다. 서악, 사억.

 남자는 손을 들고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만! 최악이야! 상투적이잖아!”

 손바닥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지금 밖에는 비도 안 온다고. 지킬 건 지켜야 할 것 아니야!”

 사내는 그의 말을 듣고 천천히 비옷을 벗었다. 드러난 그의 얼굴엔 피부랄 것이 없었다. 시뻘건 혈관이 그대로 드러난 눈가에 눈동자가 하나 박혀 있었고, 입이 있어야할 부분에는 찢어진 상처만 있었다. 남자는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가 겨우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 모습은……꽤 괜찮긴 하군. 하지만 소리가 약해. 안 되겠어.”

 다행히 승강기는 다시 작동했고 7층에 도착하자마자 남자는 재빨리 도망쳤다. 거구의 사내는 복도를 뛰어가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승강기와 함께 내려갔다.

 

 남자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컵을 꺼내 물을 붓는데 아래층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놀라서 컵을 쏟아버렸지만 다시 세울 생각도 못하고 탁자에다 물을 부어댔다.

 ‘이런- 미친! 내 고민이 그들을 불러낸 거야? 그럴 리가…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남자는 일어나 방문에 귀를 대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더 이상은 아무 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물통을 내버려둔 채 비틀거리면서 걸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은 화면을 바라볼 마음도 들지 않았다. 공포소설도 때려치우고 싶었다. 소설가가 위험한 직업이라고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호러를 포기할 수는 없어…….’

  그런데 누군가 그의 팔을 두드렸다. 남자는 펄쩍 튀어 올라서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 있는 것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예쁘장한 여자 아이였다. 창백한 피부에 눈동자는 너무도 검었다. 흰자위가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남자는 숨도 쉬지 못했다.

 이윽고 소녀가 입을 열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입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그냥 죽어요.

 

 “…….”

 이어지는 오랜 침묵 끝에 남자는 자신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절정의 빈 부분. 남자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백스페이스바를 눌러 빈 문단을 삭제했다.

 “뭐야, 그냥 무서운 건 무서운 거잖아……. ”

 갑작스레 불이 꺼졌고, 검은 형체가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 다음 순간 방에서 난 소리는 글쎄……. 남자의 말처럼 글로 표현하기엔 매우 어려웠다.

 

 꽈드득꽈직끄으아아꽈직꽈지짖꽈직꾸직꽈긱꾸짖뚜루륵꽈직꾸드득투르륵,

 

 꺼억

 

 •


그리고 결국 귀신이 된 그는 팔짱을 낀 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쉬벌 거, 이래서 귀신을 함부로 불러내선 안 된다니까…….”

 물론 나중에 완전히 그들 중 하나가 된 남자는, 정식으로 청혼을 받아 그 흰자위가 없는 소녀귀신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여러분도 아무리 호러가 좋다고 해도 함부로 귀신을 불러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호러를 사랑할수록 말이다. 잘못하다간 이 삶에서 벗어나 강제로 캐스팅 당하는 수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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