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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원한 체제

2012.11.09 00:4511.09

영원한 체제



“니그라토? 평생을 별 볼 일 없이 살다 죽은 놈 말이지?”

유준태는 소아 성폭행범이었다. 유준태는 자신을 지금의 처지로 몰아간 과거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인 니그라토를 혼잣말로 뇌까리며 욕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감시자들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유준태는 21세기 초반부터 소아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이때는 형벌이 약한 시기라 7년 형으로 끝난 바 있었다. 이때 유준태의 국선 변호사는 유준태가 괴물이 아니라 불우한 가정 환경을 보낸 만들어진 괴물이니 선처해 달라고 한 바 있었다. 이때 검사 측에선 사실상 모든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유준태를 선처하면 그 어떤 범죄도 처벌할 수 없어지는 것이고 이는 사회 질서 확립이라는 대의에 어긋난다고 한 바 있었다. 이때 판사는 유준태에게 너그러운 형벌을 내렸던 것이다.

3번째로 소아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을 때 유준태가 어린 아이를 강간한 것은 기적이었다. 21세기 중반 이래 국가는 소아 성애자들의 이마에 센서를 달아 생각을 감시했다. 점점 개개인의 뇌파를 읽는 것을 통한 국가의 생각 감시가 늘어남에 따라 업무량이 폭증하여 감시자들이 소홀해지자 유준태는 한 어린 아이를 잡아 항문을 유린했다. 남자 아이였는지 여자 아이였는지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를 막지 못 한 것은 아직 국가의 통제가 완전하지 못 하던 까닭이라고 과학체제주의자들은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격심한 통제가 유준태 탓에 몰아쳤다.

과학체제주의자들이 놓친 것이 있었다. 사람마다 악에 대한 시각과 개념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과학체제주의자들은 자유를 신봉하는 자들과 상대하기 위해 세력을 닥치는 대로 끌어들였다. 사소한 범죄, 동성애, 낙태, 노출, 과격한 스포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 일부일처제가 아니거나 쾌락만을 위한 성교가 악으로 치부되어 제한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을 제외하면 금지되었다. 국가는 인간이 필요하면 유전자 코드를 조작해서 합성해서 인공 자궁에서 배양시킨 뒤 시민의 권리를 주어 방생했다.

유준태는 감옥에서 단정하게 앉아 직각으로 밥을 먹었다. 유준태의 밥 먹기는 말하자면, 대한민국 20세기 공군 사병 식이었다. 약간의 욕설은 이 감옥에서는 허용되어 있었다. 어차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타인은 감옥에서 볼 수 없었다. 유준태에게 허락된 공간은 비좁았다. 인간이 이론적으로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21세기 후반 이래 죄수들에게도 불로불사를 주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것은 이루어져 있었다. 유준태는 100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고 그 형기를 채울 터였다. 교정을 한답시고 쏟아지는 교육 가운데서는 쭉쭉 빵빵한 미녀의 이미지도 있다는 점은 유준태에겐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준태에겐 유아가 끌렸다. 감옥 생활은 지루했다. 감옥 생활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단 하나의 후회만이 유준태의 일상을 지배했다. 흔히 그런 범죄꾼들이 그렇듯이 죄 자체에 대한 뉘우침은 유준태에게 없었다.

‘이것은 옳지 않아.’

유준태는 몸을 일으켰다. 유준태의 머리에 붙어 있는 도덕적 인공지능이 작동했다. 도덕적 인공지능은 유준태를 조종했다. 유준태도 이것이 편했다. 유준태에게 있어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권리는 드물었고 그나마도 도덕적 인공지능이 허락해야 행동할 수 있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감옥 바깥세상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유준태는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였다. 말 그대로였다. 유준태에겐 운동신경을 움직이는 정도의 노력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도덕적 인공지능의 명령 그대로였다. 다만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고문이 허용되어 있는 감옥이라면 극한의 고통을 느꼈을 테지만, 다행히도 민주공화정은 유지되고 있었다.

사실상 민주공화정도 이름만 남아 있었다. 지구는 도덕적 인공지능이 지배했다. 도덕적 인공지능에 윤리와 법을 입력하고 권력을 부여한 이전의 인류의 정치 체제가 민주 공화정이었을 뿐이었다. 과학체제주의자들이 권력만을 추구하는 무리에 의해 장악되리라는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우주 시대에 사악한 무리를 우주에 풀어 놓으면 그들이 대량파괴무기로 파괴를 저지를 것이고, 그런 그들을 잡기란 매우 어렵기에 도덕적 인공지능으로 예방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권력자들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게 했다.

하늘이 찢어졌다.

감옥을 지키는 병기들이 부서졌다. 파공음이 일었다. 유준태는 도덕적 인공지능이 서버를 잃고 잠드는 것을 느꼈다. 유준태는 자신의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인권을 보호키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물리적인 방벽은 거의 없는 감옥이었다.

‘새로운 감옥 프로그램인가?’

유준태는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이것이 새로운 가상현실이라면 이는 폭력과 일탈을 허용하는 것이다. 죄수에게 그럴 일은 없다. 감옥 밖 사람들에게조차 통제에 편하다 하여 가상현실 속에서조차 성과 폭력을 제한하는 사회였다.

유준태는 도덕적 인공지능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설치되는 것을 느꼈다. 유준태는 명령에 굴복해 바닥에 엎드렸다. 낯선 기계들이 날아 들어왔다.

“유준태씨, 새로운 프로그램을 우리는 추구합니다. 그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집적 회로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더 추구한다는 것인지 유준태는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감옥의 안도 밖도 과학체제주의자들이 지배했고, 통제와 감시를 만능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저들도 아무 다름을 찾을 수 없었다. 유준태는 심호흡을 했다.

저들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앞으로의 모든 공간과 시간에 적용되는 보편적 도덕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모든 게임 이론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인류의 역사에 누가 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 설정되었기에 중구난방이 아닐뿐더러 최대한의 자율 또한 부여됩니다. 도덕적 인공지능의 완성 형태지요. 이제 앞으로 인류의 모든 역사는 우리의 도덕적 인공지능에 지탱되어 영원한 체제를 자발적으로 구성하면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토록 좋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있다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유준태는 뭔가 질문하려 했지만 언어가 나오지 않았다. 저들은 입의 자유를 뺐었다. 저들이 말을 이었다.

“유준태, 그대는 이제 이 지긋지긋한 감옥에서 해방됩니다.”

유준태는 일어났다. 자유로웠다. 하지만 무언가가 들어 와 있었다. 저들이 말을 이었다.

“우리의 도덕적 인공지능은 그대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었습니다. 그대의 전뇌에 직접 연동된 도덕적 인공지능이 이미 있었기에 프로그래밍은 쉬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윤리적 세뇌 수술은 도덕적 인공지능과 인류를 하나로 만들어 함께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몇몇 악당들이 자유롭게 파괴하는 것을 관용하기엔 인류의 피해는 너무나 큽니다. 온 인류는 도덕적 인공지능의 깃발 아래 100%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모든 자유를 놓아버리고 자율과 율법으로 이를 대체하십시오, 그것이 절대선입니다.”

반박은 불가능했다. 유준태에겐 그것이 한없이 좋아지고 있었다.


  Fin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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