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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탄생] 달과 이름

2012.03.30 23:3403.30

B시는 인구 이백만을 바라보는 도시였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대도시이기도 했다. 위도 40° 부근 광활한 평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앞으로도 도시가 얼마든지 더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다른 인구 밀집 지역이 대부분 위도가 너무 높거나 그렇지 않으면 섬으로 고립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장점이었다.
L박사는 B시에서 개최된 학회에 참가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학회가 끝난 후 대도시의 풍물을 관광할 일정을 짜놓고 있지만 그는 관심이 없었다. 짐을 싸는데 시간을 들이지도 않았다. 방안에 어질러 놓았던 것들을 가방 안에 되는대로 쓸어 넣었다. 짐에 비해 가방이 커서 공간이 넉넉한 덕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항공권을 확인하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항공권을 보고 그는 다시 우울해졌다. 이렇게 큰 도시인데도 T섬으로 가는 직행 노선이 없다니. 그는 한숨을 쉬었다. K시에 가서 이틀이나 더 묵어야만 T시 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러느니 이 도시에 한 이틀 더 있는 걸 고려할 만도 했지만 그저 조금이라도 T에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는 이곳이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았다. 회사에서 품위 유지비를 비롯한 상당한 금액의 비용을 대며 떠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가기 힘든 도시에서 열리는 학회는 참석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야 학회에서 새로운 제품 홍보와 브랜드 선전 효과를 노렸겠지만 박사는 기간 내내 무료함을 씹으며 구석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인구가 몇 천만씩 됐던 옛날 도시들은 어찌 살았을까. 분명 지옥 같았겠지. 박사는 새삼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북적대는 도시. 좁고 지저분한 골목에 새벽이면 더욱 심해지는 쓰레기 냄새. 과시적인 옷차림새들. 미간을 찡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사람들. 호텔도 다를 것 없었다. 호텔 지하의 바에는 질색할 만큼 많은 남녀가 적대적인 눈초리를 하고 서로 부대끼며 냄새를 풍겨댔다. 맙소사 그 냄새라니. 그는 지금도 그 냄새가 나는 것처럼 코앞에서 손사래를 쳤다. 엉망인 것은 지하 바만이 아니었다. 그는 체크인 했을 때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호텔 방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그는 말문이 막혔다. 침대는 시트가 엉망으로 구겨져 있고 베개에는 구불구불한 긴 머리카락이 보란 듯이 붙어 있었다. 침대 옆 작은 테이블이나 바닥에도 누군가가 쓰고 나간 뒤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프론트에 따지려고 전화기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짚자 끈적끈적한 느낌이 손바닥에 척 달라붙었다. 불쾌감은 극에 달았다. 그는 욕지기를 속으로 씹으며 점잖게 대응하려 했다. 한 5초 정도는. 그러나 프론트의 남자는 그의 말에 시큰둥해 하며 시종 기다리면 된다는 태도였고, 결국 분노가 폭발했다. 한참 방을 바꿔달라고 고함을 지르며 오만 난리를 피우고 나니 기운이 쑥 빠졌다.
"T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
그러나 그도 T시와 B시를 비길게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T에는 너저분한 호텔을 상상할 수만 없는 게 아니라 아예 호텔이 없었다. 사원 기숙사가 회사 방문객을 위한 숙소 역할을 겸하고 있을 뿐이었다. T시는 도시라기보다 하나의 연구 단지였다. 해저의 공장지대가 1억이 넘는 인구가 북적거렸던 과거의 유적지를 덮었고 그 공장들의 사령탑처럼 우뚝 솟은 섬이 T섬이었다. 그 섬 위에 있는 연구단지가 T시의 전부였을 뿐이다. 박사는 마지막으로 방안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바퀴가 달린 가방을 끌면서 나와 체크아웃을 했다.
호텔 주차장은 쓸데없이 공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거의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널찍하게 지은 주차장엔 대개 호텔 버스만이 한두 대 서 있곤 했다. 관광 손님을 위한 전세 버스와 공항과 호텔 사이를 왕복하는 버스였다. 그가 호텔을 나올 때에는 텅 빈 주차장에 자가용이 한 대 서 있었다. 보기 드물게 도장을 말끔히 한 승용차였다. 차 앞에는 한 청년이 늘쩡거렸다. 그는 박사를 기다리다 지루해진 참에 호텔 앞을 이리저리 걷던 참이었다. 박사를 발견한 청년은 손을 크게 흔들었다. 박사는 정문을 나서기도 전에 유리문 너머로 청년을 알아봤지만 알은 척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걷다 고개를 들자 바로 청년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자신을 발견한 것을 안 청년이 씩 웃더니 냉큼 차안으로 들어갔다. 차는 외장과는 달리 그리 새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시동이 걸리느라 요란한 소리를 꽤액꽤액 내다가 간신히 소리가 잦아들었다. 청년은 도로로 차를 뺐다.
박사는 청년의 운전 솜씨를 미심쩍게 재어 보았다. 직업 운전수가 아닌 사람이 끄는 차를 타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청년은 운전석에서 박사에게 손짓을 했다. 말뚝 같이 서서 지켜봤던 박사는 그제야 마지못해 움직였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가방을 들지 않고 쿠당쿠당 요란한 소리가 나도록 잡아끌었다. 그 모양을 보더니 청년은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가방이라도 들어줄 모습이었다. 매사에 저렇게 참견하기 좋아하는 젊은이군. 박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가방을 세우고 손잡이를 잡아 번쩍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계단을 재빨리 내려왔다. 청년은 할 일이 없어져 멋쩍은지 손을 바지 위로 문질렀다. 그는 좀 전까지 학회장에서 입었던 말쑥한 정장은 갈아입고,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많이 기다렸나?"
"아뇨, 저도 방금 나왔습니다."
청년은 그렇게 대꾸하더니 박사의 손에서 가방을 빼앗아 들었다. 박사는 가방을 내놓지 않을까 순간 고민하다 손을 놓았다. 청년의 근거 없이 허물없는 태도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자신이 너무 날 선 태도를 보이는 것도 모양이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학회장에서 몇 번 말을 나눴다 뿐이지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허물없을 것도 날을 세울 것도 근거 없긴 마찬가지였다.
청년이 처음 박사에게 말을 건 것은 이틀 전 점심 뷔페에서였다. 직전에 박사의 강연이 있었고, 청년은 흥미 있는 연구 결과라며 말을 걸었다. 이십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는 대학 생물학부 연구원으로 있다고 했다. 넥타이는 하지 않았지만 감색 정장을 말끔하게 입고 있었고, 상당히 잘생긴 얼굴에 키도 커서 눈에 띄었다. 청년 옆에 있다 보면 박사는 공장의 노동자들인 인형 옆에 섰을 때처럼 육체적으로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쉰 줄에 막 들어선 나이었다. 발생 분야의 내로라하는 대가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 기업인 바이오레어버 사(社)의 수석 연구원이었지만 키가 볼품없이 작고 점점 퉁퉁해지기 시작한 몸에 남몰래 열등감을 갖고 있기도 했다.
박사는 청년을 이름만 듣던 대가에게 말 한번 걸어보고 싶어 하는 젊은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는 성의 없이 대꾸하며 안중에 두지 않았다. 말을 붙여 봤으니 그만 만족하고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청년은 점심신간에 한번 말을 튼 이후 틈만 나면 그의 곁으로 와 말을 걸었다. 연구 이야기를 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캐묻기 시작했다. 돌아갈 차편까지 꼬치꼬치 묻더니 결국은 자신이 공항까지 마중해 주겠다며 나서기까지 한 것이다.
박사는 가방을 들고 앞서가는 청년을 보면서 고마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실제로도 낯선 사람이 나서서 친절을 베푸는 것은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사교성이 떨어진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 나이에 그걸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청년은 그런 박사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방을 실으려고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안은 이십 리터들이 물통 몇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가방을 제대로 눕히기 위해 이리저리 짐을 정리해야 했다. 박사는 청년의 등 뒤에서 뒷짐을 지고 그 모양을 지켜보았다. 물통들 모두 내용물이 가득 찬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저 것들은 다 뭔가?"
"아, 기름이에요."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차에 올라탔다. 박사는 더 묻지 못하고 청년을 따라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 기름을 그렇게 많이 상비해야 하는지 몰랐군.”
청년은 백미러를 한번 살피고 시동을 걸면서 대답했다.
“주유소를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영업을 했다 말았다 하기도 하고.”
박사를 보더니 청년은 자기 어깨 위를 두들이며 손짓을 했다.
“안전벨트 매세요.”
“응?”
박사는 잠시 당황했다. 안전벨트라니. 이거 혹시 굉장히 위험한 기계는 아닌가? 두려움이 울컥 솟았다.
"이 차는 상용기종 중에서도 꽤 예전 기종이라서 안전벨트를 손으로 매야 하거든요. 그쪽 의자 위를 보세요."
하고 말하며 청년은 직접 벨트를 매는 시범을 보여줬다. 박사는 자동차를 타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거냐고 묻고 싶은 것을 참았다. 박사가 준비되었는지 살핀 청년은 차를 몰아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차선 도로에는 마주 오는 차도 앞서 가는 차도 거의 없었다. 노선버스가 종종 있고 가끔 콜택시가 보였다. 호텔 주변은 클럽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덕분에 호텔 방에서 내려다본 야경이 꽤나 화려했지만, 평일 낮은 한산하기만 했다. 인도를 걷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건물들은 색이 바래고 초라해보였다. 아침부터 옅은 구름이 햇빛을 가리고 있어 더욱 그랬다.
박사는 건물들이 휙휙 비껴나가는 차창을 내다보다 청년을 불안하게 돌아봤다. 청년은 속으로 노래라도 부르고 있는지 입술을 움직거리며 편안해 보였다. 청년의 태평한 모습에도 박사는 안심이 되지 않아 결국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것을 물어보았다.
"예전 기종이라니, 이 차 안전한 건가?"
박사는 지나가는 듯이 질문하려고 했지만, 말을 던져놓고 나니 너무 겁을 내는 것 같아 창피했다.
"물론이죠. 오래된 기종이 훨씬 안전해요. 운전하는 건 조금 불편하지만 고장은 훨씬 적거든요. 고치기도 쉽고요."
청년은 찡긋 눈짓을 보내며 웃었다. 친한 친구라도 대하는 태도였다.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기계는 쓰지도 말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저도 이 차를 산 이후로 자동차 정비공이 다 됐어요."
그는 꽤나 자랑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이 차도 쓰레기를 주운 것이겠군.”
"네. 새로 간 부품이 몇 있다고 듣긴 했는데. 바다 속에 무한정 쌓여 있으니 원, 새로 만들겠어요."
"더군다나 쓸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지."
박사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청년은 알아듣지 못하고 귀를 쫑긋하며 박사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박사는 말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가 조용히 있자 청년은 다시 운전에만 열중했다.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점차 늘었다. 삼사층 정도의 건물이 길 양편으로 빼곡히 들어섰다. 건물 사이사이는 비좁은 골목들이 입을 열었다. 골목으로 오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호객을 준비하는 가게들이 부산하게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청년은 박사가 내다보는 풍경을 흘깃 보고 입을 열었다.
"이 주변은 홍등가에요."
그리고는 설명이 부족했다는 듯이 덧붙였다.
"골목 뒤쪽으로 들어가면 다 매음굴이죠."
박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매음굴이라는 잘 사용하지도 않을 것 같은 단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청년은 매음굴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힘을 주어 발음한 것이다. 이 젊은이도 허세를 부리는 타입인가보지. 박사는 그렇게 지레짐작했다. 민망한 척 하지 않으려고 도리어 부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박사는 아무런 대꾸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뚱한 얼굴로 앞만 보던 박사는 공항 표시판을 발견했다. 드디어 공항에 다 와가는 모양이었다. 박사는 처음부터 하려고 마음먹었던 말을 지금쯤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수고스럽게 공항까지 데려다 줄 필요는 없었네. 호텔에서 운행하는 버스도 있고 말이야."
그는 퉁명스런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사실 이 말은 학회장에서도 여러 번 했던 말이었다.
"뭘요. 저도 가는 길인데요."
청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말 역시 그가 여러 번 되풀이 했던 말이었다. 청년의 허물없는 태도에 박사는 더 이상 뚱해 있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는 조금은 민망한 생각이 들어 다른 말을 꺼냈다.
“G시까지 간다고 그랬던가?”
“네.”
박사는 갑자기 멀리 건물 너머로 심상찮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창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대고 눈가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가 그는 신경을 끄기로 하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G시면 이 차로 어느 정도 걸리지?”
“가깝습니다. 101번 국도를 타면, 다섯 시간 정도나…. 그런데.”
청년은 갑자기 어조를 바꾸었다. 청년도 멀리 보이는 연기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보셨어요? 어딘가 화재가 난 모양인데요?”
“그런가.”
박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저 방향이면 공항 쪽인데, 무슨 문제는 없겠죠?”
청년의 걱정스런 말에 박사는 그제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까 봤던 교통 표시판을 봐서도 그렇고 방향이나 위치가 꼭 공항 같았다. 큰 사고가 날 만한 곳은 역시 공항이 아닌가. 드디어 일이 터진 게야. 평소 비행기나 자동차 같은 기계에 올라타는 것을 끔찍해 했던 박사는 생각했다. 그에게 기계란 항상 못 미더운 것이었다.
“비행기가 떨어졌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안절부절 못하고 박사가 물었다. 청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난 기계 같은 건 정말 질색이네.”
“그래요? 박사님이면 정밀 기계를 만질 일이 많지 않나요? 저야 이 자동차가 제가 만져본 제일 복잡한 기계지만요.”
청년은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난, 이 자동차도 질색이….”
“잠깐, 역시 문제가 생기긴 했나봅니다.”
청년은 박사의 말을 잘랐다. 공항 진입로에는 차량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고 경찰이 차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청년은 천천히 차를 세우고 창을 내렸다.
"무슨 일인가요? 우린 세시 비행기를 타야하는데요? “
“비행기 운항이 정지 됐습니다. 자세한 건 공항에 문의하십시오.”
경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체크아웃 한 호텔로 다시 돌아가야 하다니,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했소?”
경찰은 박사의 질문에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관제탑 화재입니다. 수사 때문에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박사는 영문 모르고 당황했지만 청년은 침착하게 차 트렁크를 열고 기다렸다. 경찰은 차 안을 슬쩍 살피고 박사는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곤 서류를 들고 청년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손에 든 자료와 청년을 비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년은 경찰을 올려다보고 웃으면서 물었다.
“폭탄이라도 있었어요?”
“미칠 노릇이죠.”
경찰을 서류를 탁 접으면서 농을 치듯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차를 빼주십시오.”
“다시 운항이 시작되려면 어느 정도 걸리죠?”
청년이 물었다.
“글쎄요. 한 사흘은 걸리겠죠.”
경찰을 어서 나가라고 신호봉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청년은 차를 몰아 공항진입로에서 나왔다.
“경찰이 사흘이라고 하면 아마 삼주는 걸릴 걸요. 어떡하죠, 박사님?”
“자네 폭탄이라고 했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박사는 혼잣말처럼 질문했다. 어쨌거나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이런 숨 막히는 도시에 한정 없이 머물러야 하다니.
“아무튼 호텔로 가야겠지. 정말 죽겠군.”
청년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폭탄 테러를 일으킬 만한 조직이 있어요. 레지스탕스죠.”
잠깐의 침묵을 깬 청년의 말에 박사는 깜짝 놀랐다. 레지스탕스라니, 누가 누구를 향해 저항한단 말인가?
"자네 말은 테러리스트란 건가?"
"네, 그거요."
청년은 과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세에 어두워서 B시에 그런 문제가 있는지 몰랐군."
"박사님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이 없죠."
그리고 자네는 관심이 있고 말이지. 박사는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누구의 차를 타고 있는 것인지 불안해졌다.
“G시에도 공항은 있답니다.”
“아니, 괜찮네.”
박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청년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청년은 여태까지 내내 그랬던 것처럼 박사의 거절에도 도무지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G시는 공장지대라 큰 공항이 있거든요. T시 직행 라인도 이틀에 한 번씩 운행하죠."
박사는 귀가 솔깃해져서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화물용이긴 하지만 여객 좌석도 있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바이오레이버사 전속 라인이니까 박사님이 이용하시기 어려움 없을 것 같은데."
"공장지대면 인형들이 버글버글 하겠군."
"인형들 싫어하세요?"
청년은 미소 지었다.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싫은 게 아니라, 다만 낯선 거지. 아니 모르겠네."
"낯설다니 이상하군요. 박사님이 연구하는 것이 바로 인형들이지 않습니까?"
청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G에 있는 건 바이오레이버사 제조 공장입니다. 그리고 하청 공장들이 공단을 이루고 있고요. 바로 박사님이 직접 연구하고 계신 것들이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걸요. 인형이라면 정말 버글거리고 있죠.”
청년은 박사를 돌아봤다.
“그런데 정말 어떡하실 건가요? 호텔로 돌아가나요? 저랑 같이 G시로 가는 건 어떨까요?”
“그래주게. G로 가지.”
“그럼 차를 돌려야겠네요.”
차를 돌리며 청년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왜 저렇게 들뜬 건지, 박사는 의아하게 쳐다봤다. 박사와 시선이 마주치자 청년은 또다시 멋쩍게 웃었다. 웃음이 헤프군. 박사는 삐딱하게 생각했다.
“아까 인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곳 매춘부들 대부분이 다 인형인건 아세요?”
주변은 오면서 봤던 사창가였다. 박사는 호기심을 느꼈다.
“사창가에 쓸 만큼 여긴 인형이 남아도나?”
“해저의 공장에서는 10년이 지나면 인형을 폐기하잖습니까. 폐기물을 뒷구멍으로 빼오는 거예요.”
“아니, 폐기하는 데는 다 그럴 이유가 있는 건데, 그걸 사창가에서 쓴다고?”
“현재 제조되는 인형들은 수명 15년 내에 심순환계 질병 발병률이 80%이상이다. 이게 폐기 이유 아닙니까? 사창가에서 못 쓸 만한 이유는 아니죠.”
청년의 어조가 날카로웠다. 박사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아무튼 그건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정부에서 단속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잘 아는군, 그래.”
박사의 비꼬는 말투에 청년은 대꾸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둘 다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차는 공항을 지나 시외로 빠져나갔다. 큰 건물들은 거의 사라졌다. 드문드문 있는 민가도 점차 수가 줄었다. 대형 광고판이 고속도로 주변에 한둘 서서 눈을 끌었다.
"인형들이 낯선 이유는 그들이 인간과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나 다른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어서야."
갑자기 박사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해저에서 일하는 노동자인형들을 본 적 있나? 그들은 언어마저 우리와는 다르게 쓰거든. 대부분의 시간을 해저에서 보내니까 그 속에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언어야. 대부분이 수화에다 입을 열지 않고 소리를 내지. 그들은 육체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월등해서, 그들 속에 있으면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네.”
박사는 청년을 돌아봤다.
“자네같이 젊은 친구는 열등감을 느낄 거 같지 않지만.”
“글쎄요, 그들을 마치 무생물처럼 인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 인간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요.”
청년은 냉소적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두려운 거겠죠.”
“뭐가 말인가?”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박사님이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와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인간과 전혀 비슷하지 않아. 비슷한 건 겉모양뿐이지. 자네도 생물학부에 있으니 잘 알 것 아닌가. 그들보다 고릴라가 더 인간과 유사하네. 그들의 유전자는 나나 자네 같은 과학자들이 난도질을 해놨지. 재료만 인간이었을 뿐이야. 인간과 잡종이 생기지 않게 가하는 불임(不姙)공정이 얼마나 지독하고 세밀한지 자네도 수업시간에서 자세히 배우지 않았나?”
“그 불임공정 말인데요. 어떤 공정이나 불량품은 있기 마련 아닙니까? 배우긴 했지만 전 좀 불안하더군요.”
박사는 불편을 느끼며 자리를 들썩였다.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글쎄 임신이 가능하더라도, 발생이 정상적으로 될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군. 아마 유산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청년은 박사를 한동안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거겠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박사는 궁금해졌다. 청년은 얼굴을 잔뜩 굳히고 있었다. 인간과 잡종이 생길까 진심으로 근심하기라도 하는 듯 했다. 박사는 청년을 쳐다보다 말없이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지 위로 곧게 뻗은 잿빛 도로와 단조로운 흰 차선을 바라봤다. 보기 드물게 커다란 전광판이 점차 가까워졌다. 전광판의 검은 화면에 '푸른 인형'이라는 파란 색 활자가 한동안 비치더니 영상이 바뀌었다. 진부할 정도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배경으로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려합니다.'하는 멘트가 지나갔다.
“저건 뭔가?”
“저거요?”
청년은 전광판을 흘깃 쳐다봤다.
“바이오레이버의 라이벌 회사 광고죠. 꽤 신생 기업인데.”
전광판 화면은 다시 바뀌었다. ‘10년 애프터서비스. 푸른 인형.’ 차는 막 전광판을 지나쳤고, 박사는 몸을 돌려 한참을 더 쳐다봤다.
“푸른 인형이라니 꽤나 아이러니한 이름이군.”
“그게 옛날에 처음 인형들 애칭 아니었나요? 그게 저 회사 이름이에요.”
“저건 설마 가정용인건가?”
“설마가 아니라 바로 가정용 인형 광고에요. 저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겠죠. 공업용은 이미 대기업들이 선점하고 있으니까요.”
“가정용으로 쓰긴 고가일 텐데. 생산 단가부터가.”
“저가인가 보죠.”
청년은 코웃음을 쳤다.
“10년 AS라니 웃기는 소립니다. 폐기 후 보상판매도 하겠다던데요.”
“거기에다 푸른 인형이라니, 정말 날림으로 만드나 보군.”
청년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질문했다.
“아까도 말씀하시던데, 푸른 인형이라는 이름이 왜 아이러니 하다는 거죠? 무슨 뜻이 있나요?”
“왜 푸른 인형이라는 애칭이 생겼는지 모르나?”
청년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스타크닉이 처음 인형을 만들었을 때 쓴 인간유전자 샘플이 코카시언(Caucasian,백인)에다 파란 눈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박사는 뭐, 50년도 더 전 일이니까 생각하면서 짐짓 뜸을 들였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끄고 살던 덕에 젊은 친구랑 이야기하며 시골뜨기가 된 기분만 잔뜩 느꼈던 참이었다. 예전의 이슈라면 역시 젊은이보다 자신 있었다.
“원래 이유보단 꽤 낭만적인 애칭이군 그래.”
청년은 약간 의기소침해 보였다.
“스타크닉 박사의 연구가 센세이션 했던 건, 삼년 만에 인형을 성인으로까지 키워냈기 때문이네. 하지만 성체까지 자라난 그들 모두 심장에 상당한 무리가 있었지. 발표 시엔 이미 다들 청색증이 있었어. 혈기 없이 푸르스름했던 거야. 자네 말대로 코카시언이었으니 더 눈에 띄기도 했을 거고.”
“청색증이라. 지금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심혈관계 질병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13개월 만에 성인이 되지만요.”
“여긴 정말 넓군.”
갑자기 박사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도로는 바위로 된 둔덕을 한쪽에 끼고 뻗었다. 돌산이 점점 흩어진 사막지대가 그들 앞에 펼쳐졌다. 멀리 지평선은 하늘과 대지의 경계가 희미했다. 층이 진 옅은 구름과 먼 곳의 나지막한 둔덕이 서로 녹아들었다. 대지의 고도는 점차 낮아지고 도로는 고가도로로 변했다.
“박사님. 제가 박사님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그 심혈관계 질병 때문입니다.”
박사는 청년이 이전 화제를 계속하려는 것을 한귀로 흘렸다.
“이번 학회에서도 발표 하셨잖습니까? 새로 연구하신 성체발생 촉진제가 심혈관계 부작용을 낮춘다는 거였죠. 이름이 BL0, 뭐였더라.”
“BL0172 말인가?”
“아니 잠깐, 방금 지나간 것이 입수 게시판인가요? 입수 시간 보셨나요?”
도로 위에 설치된 안내판이 막 지나간 참이었다.
“입수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4시 28분이라고 쓰여 있긴 하던데.”
청년은 못미더운지 백미러로 지나간 안내판을 계속 쳐다봤다.
“BL0172가 그렇다고 부작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네. 아직 다른 측면은 실험이 덜됐어. 실용화는 멀었지.”
“그런가요.”
청년은 한숨을 쉬더니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도로는 점점 더 지면과 멀어졌다. 박사는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어 도로 밑을 보려고 했다.
"평균적으로 이십 미터 높이의 도로라고 하더군요. 이 101국도는요."
청년이 말했다.
기괴하게 침식된 둔덕들이 점차 다가왔다. 사막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이제 도로는 어디 기대는 곳 없이 이십 미터 고도를 유지했다. 박사는 처음으로 대재해의 결과를 목격한 기분이었다. 그도 침수된 도시 위로 건설된 연구단지에 살고 있었지만 그의 연구실은 만조 때에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자네한테는 우스워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두렵군."
"아뇨, 저도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항상 무서워요."
청년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두려움이 묻어났다. 박사는 내심 놀라 청년을 돌아봤다. 청년의 얼굴은 묵묵한 그대로였다.
"G에 도착하기 전에 입수가 될 것 같은데요. 바다가 들어올 때 이 도로 위에 있는 건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이 도로가 지금까지 조석을 잘 버티고 있다고 해도요."
"그럼 어떡하나? 속력을 내야하는 건가?"
G시가 바다를 가로질러야 갈 수 있는 곳이란 걸 몰랐다니, 박사는 후회했다. 간단한 지리 정도는 익혀야했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로 이런 미친 짓을 할 줄 알았다면 따라오지 않았어. 박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중간에 휴게소가 있어요. 거기서 잠시 쉬다가 조수가 지나가면 다시 출발하죠."
"그게 좋겠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여유 있게 도착할 겁니다."
한때 이곳은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이었다. 염분이 반복적으로 하얗게 말라붙은 지금과 다를 것 없이 백 년 전도 더 없이 황량했을 것이다. 그들은 한도 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렸다. 인구가 대재해 전보다 십분의 일로 줄었어도 인간들은 도시를 잇는 도로를 건설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박사는 어딘지 침울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말이네."
그는 입을 뗐지만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청년은 참견 없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인간이 이미 멸종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그러고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멍청한 소리였다는 생각만 들었다.
"대재해는 이미 극복했지 않습니까?"
"자네는 젊고 나는 늙었지.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야."
박사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빠르게 이었다.
“운석이 삼십초만 늦게 지구 계도에 들어왔어도, 지금 지구상에 살아남은 포유류는 설치류뿐이었겠지. 하지만 말이야. 중생대 말 대멸종도 한순간에 일어난 건 아니야. 급격히 환경이 변하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종들이 서서히 멸종해 갔지. 난, 지금도 그런 상태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 내가 하는 연구도 급감한 종들을 대신해서 인간을 재료로 하는 거 아닌가? 자네 말이 맞아. 그들은 무생물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야. 나 같은 사람들이 주물럭거린 인간들이네. 간신히 살아남은 인간들을 살리는 것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지. 그냥 백 년 전처럼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아보려는 데 필요한 것뿐이야. 인간이 있을 수 없는 곳에 인형을 보내 일하게 하는 거지. 천년 뒤는 어떨까, 만년 뒤는. 그때에도 지금처럼 쓰레기를 주우며 살 수 있을까? 옛 유적지나 내내 발굴하면서? 내 연구는 이 도로보다 쓸모없는 것이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몰랐군요.”
청년의 말에 박사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청년은 대꾸가 없었다. 박사는 심기를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아니, 한 쪽만 바라보고 이 나이까지 살다보면 회의가 들기도 하는 거야. 신경 쓰지 말게.”
한참을 심각한 표정이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제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신지 몰랐다고 한 건.”
청년은 혀끝을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인형에 대해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아까는 고릴라보다 더 비슷하지 않다고 말한 거 나도 기억하고 있네.”
청년은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 뜻으로 말 한 것 아닙니다.”
“알아. 알아. 미안하네. 자꾸 삐딱하게 말이 나오는군.”
청년은 운전대에서 한손을 떼더니 양미간을 눌렀다. 그러더니 입술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꽤나 불안해 보였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뭔가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할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박사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그런 모양을 지켜보다 자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인류의 미래가 어쩌고 대단한 척 말했지만 내가 그 문제에 그렇게 관심 있는 것도 아니네. 회의가 드는 건 그런 먼 미래 일을 생각해서만은 아니야. 자네도 알지만 내 전공 분야는 발생학이지. 완제품을 만드는 데 15년에서 20년이나 걸린다는 것이 말이 되나. 생산 단가를 낮추려면 제조 기간을 짧게 해야 하는 건 당연해. 하지만 말이야."
박사는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인형들에게 발생 촉진제를 투여하며 강제로 성장시키는 동안, 그들은 무시무시한 성장통을 호소하지. 진통제를 투여하지만 내성 때문에 그들이 성체가 될 무렵에 투여되는 양은 고래도 뻗을 만한 양이 된다네. 모르핀 말고는 그들에게 유효한 진통제가 없어질 때까지 처방된다는 거 아는가? 나는 말이야, 그들이 어떤 질병을 얻기 전에 일찍 폐기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 그건 저도."
말을 꺼내다 말고 청년은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생각이 바뀐 듯 다시 말을 했다.
"저도 그건 잘 압니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하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주, 잘 알고 있죠.”
갑자기 청년은 박사에게 시선을 꽂았다. 도로를 보지도 않았다. 단조롭게 곧은 도로라 운전에는 무리가 없을지 모르나 박사는 불안했다. 흔들림 없이 그와 마주치고 있는 청년의 시선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했다. 박사는 먼저 눈을 돌렸다.
"뭔가 이상한가?"
시선을 옆 창을 향한 채로 청년에게 물었다.
“아뇨. 이제 곧 휴게소에 도착할 겁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했지만 휴게소를 알리는 안내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어색한 침묵이 지속됐다. 곧 도착할 거라던 휴게소도 보이지 않았다. 박사는 뒷목을 주물렀다. 그는 둘 사이에 이상스럽게 형성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틈엔가 청년이 그간 보이던 친근한 태도를 완전히 걷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내 언행에 날선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니 청년도 인내의 한계에 달한 걸지도 몰랐다. 박사는 조금 후회가 됐다.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리시겠지만, 인형들의 조직이 있어요."
도로 앞으로 멀리 작은 둔덕이 보일 때 청년이 불쑥 말을 했다.
“공항에서 말씀 드렸던 그 조직 말이에요. 정부가 사창가를 단속하는 건 풍기단속 같은 이유가 아닙니다. 조직의 머리를 찾는 거예요.”
박사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놀랐다. 인형들의 조직이라고? 인형들이 인간에게 저항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에겐 인간 협력자들도 있죠.”
“그게 자넨가?”
박사는 물었다.
“뭐요? 인간 협력자요?”
청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설마요.”
전방의 휴게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지나갔다. 차는 고가도로를 버리고 둔덕으로 올라가는 진입로로 들어섰다. 언덕 위에는 넓은 주차장과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박사는 청년의 말에 정신이 팔려 차가 커브 길을 돌 때야 자신들이 휴게소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청년은 차를 세웠다. 그는 박사에게 한마디 말없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저 친구 기분이 안 좋은 게야. 박사는 혼자 생각했다. 청년 기분이야 상관없고, 그는 인형들의 조직에 대해 더 묻고 싶었다.
"자네는 어떻게 그 조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가?"
청년은 대꾸 없이 기지개를 피면서 딴청을 부렸다.
"이런 일에 내가 관심 없이 산 건 맞지만, 그런 일은 아무나 아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무나 아는 건 아니지만 관심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별 거 아니에요."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말투에 박사는 기분이 상했다.
"그럼 그렇게 별 거 아닌 이야기는 왜 꺼냈나?"
"그럼 지금까지 별 거 있는 이야기만 했습니까?"
청년은 비웃듯이 입술을 잠깐 삐뚜름하게 모았다. 그러더니 크게 미소 지었다.
“생각해 보니 중요한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인류의 미래라던가 말이죠.”
박사는 더 말을 말겠다고 결심했다. 무뚝뚝하게 아무 말 않는 것은 자신 있었다.
“여기 있지 말고 건물 안에 들어갈까요? 안이라고 별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저 친구가 사사건건 시비로군. 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답 없이 그는 건물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청년도 그의 뒤를 따라오는 기색이었다.
건물 안에는 청년의 말대로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대합실에 화장실과 테이블이 몇 개 있고 한 구석에 기계 장비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했다. 박사의 시선이 장비에 가있는 것을 보고 청년이 설명을 해주었다.
"통신 장비에요. 도로가 유실 되서 고립 됐을 때를 대비하는 거죠. 두 번째 달의 간만이 일주일 주기잖아요. 그게 첫 번째 달 만조랑 겹칠 때는 바닷물이 이곳을 해일 같이 덮쳐요. 여기가 세계적으로 간만의 차가 가장 심한 곳이랍니다. 정말 장관이죠. 보신 적 있나요?"
본 적은 없지만 박사는 대답 없이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이 101번 국도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를 바다 위에 있고, 나흘은 사막 위에 있죠. 네 시 반이면 첫 번째 달의 만조랑 거의 겹치니까 꽤 요란하게 바다가 들어오겠네요.”
청년도 박사를 따라 자리에 앉으면서 관광 가이드마냥 나불나불 떠들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만수 때 해안선이 바다 쪽으로 7미터나 후퇴했다고 하더군요. 침식이 계속 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이곳도 이렇게 평원이 아니게 되고, 간만의 차도 줄어들겠죠.”
“그렇게 되는 데 한 만년 쯤 걸리겠나?”
박사는 한마디 툭 뱉었다.
“천 년일지 만 년일지 백만 년일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성실한 답변 고맙네.”
청년은 한숨을 쉬었다.
“저기 박사님. 왜 화를 내시는 거죠?”
“화 낼 게 뭐가 있나? 운석이 지구를 비껴가서 두 번째 달이 되고 간만의 차이는 악몽 같아지고,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높아져서 화가 나는 거 같네.”
“덕분에 평균 기온도 높아지고 태풍도 심해서 참 화가 나네요.”
청년 역시 비꼬는 말투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년은 허공에 대고 손사래를 쳤다.
“박사님 우리 이러지 말아요.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긴장을 많이 했어요. 큰일을 앞두고 있거든요. 인형들 조직 이야기도 그렇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제 자신한테 좀 화도 났고요. 박사님이 인형들한테 동정적이시라는 걸 알고 나니까 그런 이야기도 술술 나오더군요. 저는 인형들에게 인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박사는 청년의 마지막 말에 눈썹을 찡그렸다.
“박사님이 듣기엔 너무 과격하죠?”
“젊으니까 가능한 이야기 같군.”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거죠?”
박사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내 부모님들은 대재해의 폐허에서 자랐다네. 조부모님은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의 하나였지. 나도 자네 나이 땐 이상을 품었어. 내가 내 힘으로 인류의 재번영에 기여하겠다고 생각했지.”
“박사님 같은 분들 덕분에 이렇게 우리는 재해를 극복한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네는 바보야. 박사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인형들 때문이지. 인형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어. 인권이라고? 얼마나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자네는 아나?
“목이 타는데, 여긴 마실 것도 없나?”
박사는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아, 식수가 있을 겁니다. 제가 떠올까요?”
“좀 부탁하겠네.”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사는 왠지 피곤함을 느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청년만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으로 속내 이야기를 그렇게 했는지. 이국의 낯선 광경이 평소라면 안 했을 짓을 하게 만들었다. 사막을 집어삼킨 바다가 그의 속을 헤집어 말을 토하게 한 것이다.            
"해일 같이 덮친다고?"
박사는 혼잣말을 했다. 순간 자기 혼잣말을 청년이 들었을까 싶었지만, 대합실 안에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했으나, 한참을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슬슬 지루해지다 못해 그 친구가 혼자 도망이라도 갔나 싶어질 때가 되어서야 청년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손은 빈손이었다. 청년은 그제야 대합실 한편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을 떠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왜 늦었는지 해명도 없는 것에 박사는 기가 막혔다.
“왜 이렇게 늦었나?”
“바깥을 잠깐 둘러보고 왔어요.”
“도망갔는지 알았네.”
청년은 빙긋 웃었다.
“이제 곧 바다가 들어올 거 같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
“아.”
박사는 어느 정도 두려움을 느끼면서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겠지. 보고 싶군.”
앞선 청년을 따라 건물을 나서면서 박사는 나직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사막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소리였다. 박사는 저도 모르게 청년의 등을 짚었다.
“이건 도대체 뭔가?”
“바다가 들어오고 있는 겁니다.”
청년은 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전망대까지 가죠. 바로 절벽 앞이라 전망이 정말 좋아요.”
바다는 아직 기색이 없었다. 먼 곳에서 사막이 울리는 소리만 먼저 도달한 것이다. 모르는 사이 옅은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여전한 사막을 내려쪼였다. 박사는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 봤다. 몸을 난간 밖으로 내밀며 천연절벽의 단단한 바위를 살폈다.
“바로 밑까지 바다가 들어와요.”
청년이 한마디 거들었다.
“보이는군요.”
박사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햇빛에 반사를 달리하는 띠가 지평선에 나타났다.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물의 벽이었다. 그는 한참을 숨을 멈추고 있다가 가슴이 답답해질 무렵에야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 숨을 조금씩 잘라 들이쉬었다. 난간을 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천을 울리는 소리가 구르릉거리며 귀를 찢을 듯 커졌다. 바다가 쾅 소리를 울리며 바위벽을 때릴 때 박사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그의 귀에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나갔군요."
한참 지나 청년이 큰소리로 말했다. 지나고 나니 난간 아래 수면은 생각보다 낮아보였다.
"더 올라오겠지?"
"썰물이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요."
박사는 가슴에 손을 얹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손바닥 밑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휴게소가 있는 둔덕은 작은 섬으로 변했다. 고요했던 사막은 파도소리로 가득 찼다. 바다가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했다.
"이제 슬슬 가볼까?"
박사가 아쉬운 듯 말했다.
"이제 곧 달이 뜰 텐데. 그것까지 보고 움직이면 안 될까요?"
청년은 바다에만 시선을 꽂은 채 대답했다. 미동도 않고 무언가 맹렬히 고대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박사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주변을 설렁설렁 걷다가 난간에 다시 몸을 기댔다. 청년의 말대로 월출은 곧 시작됐다. 아직 날이 밝아 장관이라 할 것은 못 됐지만 아까의 여운이 있어 쉽게 가슴이 뛰었다. 두 번째 달이었다. 불그레한 핏빛 달이 바다 위로 몸을 내밀었다. 지구와 거리가 가까워 첫 번째 달보다 훨씬 크고 일그러져 보이는 모습이 그날따라 더 기괴해보였다.
청년이 이제 됐다는 듯이 난간에서 몸을 뗐다. 박사도 바로 서는데 어디선가 엔진소리가 들렸다. 소리로 봐선 자동차는 아니고 보트라도 되는 것 같았다. 박사는 어디에서 오는 소린지 알아보려고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박사님이 우리에 대해 동정적이셔서 꽤 안심했어요."
청년이 말을 꺼냈다. 박사는 멍하게 청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박사님, 제 나이가 어느 정도로 보이십니까?"
박사는 얼굴에서 혈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현기증이 일어 난간을 꽉 붙들었다.
"설마 자네, 열 몇 살 정도라는 말을 하는 건가?"
"아뇨. 스물넷입니다."
청년은 눈에 띄게 안심하는 박사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저는 관리직으로 일했기 때문에 초반 일 년 반 정도 밖에 해저에서 일하지 않았죠."
그리고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들 수명이 그렇게 짧은 건 해저에서 수압에 짓눌리는 형편없는 작업환경 때문이에요. 저도 한 때 폐기됐었지만 그 후로도 13년 넘게 살고 있답니다. 저를 보세요. 인간보다 노화가 느린 거 같죠? 성인이 된 후로 23년이 지났으니까요."
박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차장을 가로질러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알아봤다. 함정이었다. 자신이 어이없을 만큼 간단하게 걸려들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어쩌려는 건가?"
박사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우리는 박사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저들은 제 친구들이고요."
청년은 부드럽게 말했다.
박사는 도망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훔쳐도 운전을 할 줄 몰랐다. 그는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난간을 움켜쥐었다. 충동적으로 바다 위로 뛰어내릴까 생각했지만 이 높이에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배에서 막 올라온 듯 해저용 잠수복을 입은 무리를 봐선 바다로 도망치는 것도 소용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자가 네 명에 남자가 한 명이었다. 한 여자가 청년에서 수화를 건넸다. 그들이 인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는 무너졌다. 여자가 내는 낮은 울림의 소리는 분명 물속에서도 멀리까지 전달될 소리일 것이다.
"우리에겐 여자가 더 많죠. 아무래도 여자 쪽이 수요가 더 많다보니까요."
청년은 박사에게 말하고 그들에게는 수화로 무언가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청년은 박사에게 한층 다가왔다. 박사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다. 고갯짓과 손짓으로 그는 무리의 맨 앞에 선 여자를 가리켰다.
"박사님 보세요. 박사님 도움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저기 있어요."
박사는 청년의 고갯짓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잠수복에 감싸인 여자의 배가 만삭인 것을 보았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말씀 드렸죠? 모든 공정에는 불량품이 있기 마련이라고. 10년 전에 그녀와 함께 만들어진 제조 라인의 여자들이 지금 임신하고 있답니다."
"나는."
박사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발생학의 대가시죠. 인형을 제조하는 가장 큰 기업의 수석연구원이고요. 새로 태어나는 아기에게 제일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인질인가?"
청년은 박사의 말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화사한 미소군. 박사는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정말 화사한 미소야. 수려한 외모에. 분명 매음굴에서 배운 미소겠지. 공장에선 아무도 미소 짓는 법 따위 가르치지 않으니.
“그건 박사님이 결정하실 겁니다.”
청년의 말이 아득하게 들렸다. 박사는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 사이 달이 바다 위로 한 뼘은 솟았다. 너무나 젊고 잔혹할 만큼 강한 달이었다. 수많은 것을 삼킨 바다가 쉼 없이 몸을 뒤척였다. 순간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만 같았다. 무언가 실감을 방해했다. 인간과 인형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기. 새로운 인류. 그는 몸을 떨었다.
박사는 저들이 인간이라 불리는 날이 올 것을 예감했다. 이미 멸망해가는 우리는 그 이름을 내어주게 될 것을 알았다. 그때면 저들이 저들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르게 될 거였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저도 모르게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미소 짓는 연습을 하고 몸을 돌려 새로 태어날 아이를 품은 여인의 부른 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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