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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눈(目)속의 정원

2012.02.29 20:4702.29

눈(目)속의 정원

  한 쌍의 눈동자가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그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코가 닿을 듯 가까이 있던 그녀는 얼굴을 들고 입매를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미소 짓는다. 미소 너머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비명과 고함소리와 닥치는 대로 부수는 소리.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사람의 세상이 붕괴하는 소리. 폭도로 변한 시민들은 힘들여 이곳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녀가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을때 나는 낡은 한옥 집을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던 그 집은 논밭 한가운데 있었다. 지붕을 전부 슬레이트로 한 다른 집들과 달리 일부나마 제대로 된 기와가 얹힌 ㄴ자 형태 한옥이었다. 처음에는 ㄷ자 형태로 지어져 마당에 비치는 해를 기와 그림자와 대문이 가두어 ㅁ자 모양을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거기 살았고, 아버지가 거기서 태어났고 나도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평생을 사셨다. 더 이상 들어와 살 사람도 없고 오래되어 유지할 수 없게 된 집의 ㄷ의 한 쪽 변을 허물어 ㄴ이 되었다. ㄴ의 한 변에서 지붕이 샜는데 기와가 너무 비싸 슬레이트로 지붕을 바꿨다. 어릴 때 마당에서 놀면 기와와 슬레이트 지붕이 맞닿아 있는 것이 공룡들이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기와는 어린이 책에 나오는 브론키오사우르스와 비슷했다. 공룡의 피부를 진짜처럼 그려놓은 책에서 브론키오사우르스는 기와처럼 겹겹이 이루어진 비늘로 온 몸을 덮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은 가장 강한 티 렉스의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슬레이트 지붕은 겹겹이 쌓는 대신 물결처럼 들쭉날쭉한 한 장의 큰 판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공룡은 사라지고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공룡이 다 어디 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모두 죽었다고 했다. 어린이 책에서 공룡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기온 하강으로 죽었다고 했다. 나는 남극에는 펭귄이 있고 북극에는 북극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룡이 추위로 죽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은 공룡이 지구상에 살았던 생물 중 가장 덩치가 크고 강했다고 했다. 나는 공룡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에 그렇게 죽을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더니 우주로부터 온 소행성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공룡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공룡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 후 나는 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공룡이 외계에서 와 잠시 지구를 정복했다가 지구에 더 이상 재미난 것이 없으니까 다시 외계로 돌아갔다고 결론 내렸다. 지구에 떨어진 소행성은 그들의 우주선이었던 것이다. 나는 노아의 방주와 이티를 보며 내가 내린 결론이 맞는다고 확신했다.

  십대 중반 소녀의 얼굴을 한 그녀가 계속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 무엇을 기억하세요?

  마천루. 도시의 모습은 굉장했다. 구시가지에도 높은 건물이 있었지만 그곳의 구불구불한 길은 높이에 대한 효과를 반감시켰다. 계획도시로 지어진 신시가지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길이 났다. 바둑판 구역을 꽉 채운 고층건물은 목이 꺾어져라 고개를 젖혀야만 끝이 보일락 말락 했다. 흐린 날은 건물의 꼭대기가 안개나 낮은 구름에 잠겼다. 그 때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구름을 뚫고 천상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국이 지상에 내려온다면 저 건물들 위에 걸릴 것이다.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밟고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지상에 남을 것이다. 나는 그곳으로 한 발짝도 올라가지 못했다. 지금은 그곳이 어떻게 되어있을까 생각한다. 이곳 밖의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빌딩 숲에는 혼돈만이 있을 것이다. 이곳의 창문은 방음이 잘 되는 편인데도 바깥의 소란이 전해진다. 사람들은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모두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다.

  미소 지은 얼굴이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멀어진다. 소녀 같은 손이 내 머리와 목덜미와 손목을 짚는다. 나는 가슴이 마구 뛴다. 삐삐삐삐. 내 몸에 연결된 기계가 마구 울린다. 내 몸 상태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계다. 소녀의 얼굴을 한 그녀는 내 이마에 손을 댄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호를 그리는 저 입술은 마르지 않고 주름지지도 않고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부드럽게 빛이 나는 듯 한 흉 하나 없는 피부 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나쁜 것을 본 적이 없는 듯 샛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도 결코 때가 타는 법이 없다. 그 눈은 눈물을 흘릴 일도 피로에 충혈 되는 일도 없다. 영원한 젊음, 결코 변하지 않을 의지, 꺼지지 않는 생명, 그 모든 것을 갖춘 간호사. 그녀. 지미.

  생명유지요양병동의 간호사 일부가 안드로이드로 대체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 섬세한 리액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에 투입되었다. 긴급 상황은 좀처럼 없고 여러 가지 장치로 생명을 유지하는 나 같은 종류의 환자들, 전신마비나 식물인간 환자를 주로 돌보았다. 안드로이드의 겉모습은 그럴싸했지만 숙련된 인간간호사 수준의 일을 처리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장기입원환자들에게 예쁜 십대소녀모습을 한 안드로이드 간호사가 필요한지는 의문이지만 병원은 톡톡히 홍보효과를 보았다. 지미는 나와 같은 시기에 생명유지병동으로 배치되었다. 그전까지 지미는 응급실에서 실수를 연발했고 나는 막 장기요양병동으로 이송되려던 참이었다. 최신 자가학습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지미가 처리하기에는 응급실 상황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갔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과부하로 평범한 일까지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비싼 돈을 들여 투입된 지미는 애물단지가 될 처지가 되었다. 누군가가 신설되는 생명유지병동으로 지미를 재배치하고 장기 요양환자 중에서 자원자를 받아 지미의 간호를 받게 하자는 안을 냈다. 그 안을 낸 의사는 그 해 말 병원장의 사위가 되었다고 들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나도 아버지도 그 한옥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나왔다. 고2 때 집 주변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공고가 났다. 폐가나 다름없는 집을 떠나지 못한 고려장당한 것 같은 그곳 노인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식들 방문이 잦아졌다. 이전에는 자식이 오면 죄인처럼 굽어있던 노인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반대로 고개를 숙여 점점 허리를 굽혔다. 가끔 큰 싸움이 났다. 일가친척이 다 모여 고함질을 하다가 녹슨 낫이나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무거운 솥뚜껑이 논두렁 한가운데 처박히는 일도 있었다. 아버지에겐 나 말고 찾아갈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 나와 혼자살기 시작하고는 집에 거의 가지 않았지만 나도 소식을 듣고 오래간만에 집에 찾아갔다. 아버지는 흰 밥을 많이 펐고 나는 사간 고기로 국을 끓였다. 반찬은 건넛집 할머니에게서 얻어온 김치가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산더미 같은 밥을 퍼먹으며 티비를 봤다. 국을 두 그릇씩 먹었다.

  발표된 신도시 부지는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인 딱 저 앞동산까지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고3이 되어 더 이상 시골집에 가지 않았다. 집이 있는 곳의 땅값은 오르지 않았고 사람이 돌보지 않는 집은 점점 내려앉았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지반이 흔들렸는지 집 주변이 점점 꺼지더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집은 반 정도 물에 잠겨 꼭 작은 호수에 빠진 것 같았다. 입시를 보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날, 150년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왔다. 물이 꽁꽁 얼어 집을 꽉 붙들고 있었다. 지붕이 내려앉고 문짝은 오래전에 날아가고 벽은 희뿌연 흙먼지로 빛이 바랬다. 얼음에 붙들린 집은 볕도 닿지 않는 듯 음침했다. 사고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를 일곱 개 정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창때라서 버틸 수 있으려니 했다.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 오토바이로 커브를 너무 빨리 돌았던 것 같다. 응급조치를 한 후 즉시 수술에 들어가야 했지만 나는 예상금액을 보고 쉽게 싸인을 할 수 없었다. 그 때까지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었다. 고민하는 몇 시간 사이 전신이 마비됐다. 의사는 죽은 신경이라 살릴 수가 없다고 했지만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내가 수술할 돈이 없는 것을 알기에 한 거짓말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장기요양을 하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적극적인 개선 행위에 해당하는 수술은 의료보험의 혜택이 적어 본인이 엄청난 부담을 하게 되지만 소극적 조치에 해당하는 전신마비환자 간호는 국가에서 부담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국가의 보호 아래 장기요양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어차피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라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였지만 지미가 담당할 생명유지병동으로 옮길 경우 더 좋은 시설에서 관리를 받게 된다고 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치료를 할 수 없는 환자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안드로이드가 간호한다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의외로 생명유지병동으로 옮기겠다는 환자는 많지 않았다. 그곳은 100퍼센트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되었다. 환자도 보호자도 응급실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안드로이드 간호사를 못 미더워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생명유지 병동 티비는 더 많은 채널이 나온다는 말에 나는 옮기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전신마비 환자에게 싸인을 받을 수 는 없고 그들의 질문에 나는 예라는 뜻으로 눈만 몇 번 깜빡여주면 되는 일이었다.

- 기억하세요?

지미는 종종 이걸 기억하냐, 저건 기억나냐 라면서 내가 밖에 있을 때의 일을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안드로이드가 그런 걸 궁금해 하는구나 라면서 신기했지만 곧 지미가 궁금증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별다른 자극이 없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환자에게 뇌의 퇴화나 정신이상이 올까봐 이런 저런 것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바깥의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티비를 봐도 기억은 나를 빨아들인다. 집중하지 않으면 티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따라갈 수 없었다.

  바깥의 소리가 점점 커진다. 사이렌과 경찰차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이런 순간에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화가 난 사람들에게 차를 빼앗긴 것인지 모르겠다. 경찰차와 병원 구급차의 사이렌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아니면 소방차일 수도 있다. 그 셋 다 일수도 있겠다. 지금 어디의 불을 끄고 폭도들을 잡고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은 몇 분후면 지구상에서 전부 사라지게 된다. 티비에서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아나운서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나는 그 때 내 기억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곧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아나운서는 뉴스를 전하면서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는지 곧 얼굴을 박고 울부짖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그랬으면 훨씬 더 재미있는 뉴스가 되었을 텐데. 방송국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프로그램을 찍지 않고 재방송만 했다.

  지미는 수다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지미가 내 부탁을 듣고 병실 문을 열어 놓은 채 다른 방 환자를 돌볼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상당히 말이 많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옆방에는 노인이 있는데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고 단지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항상 떨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생명유지병동에 들어올 정도는 아니다. 지미는 노인이 부동산 재벌이라 돈이 많아 무엇이든 첨단기술로 이루어진 최신치료를 받고 싶어 해서 이곳에 왔다고 한다. 최신치료보다는 지미에게 반해 뒷돈을 주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미는 그런 것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지미는 간호사로서는 서툴고 위기대응 능력이 부족하다. 안드로이드의 신체는 자라지 않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태어나 필요한 지식이 주입된 채 필요한 곳에 배치된다. 그렇지만 산전수전 겪은 숙련된 인간 베테랑의 위기대응능력을 따르지는 못한다. 지미는 처음 병원에 배치되었을 때 갓 나온 상태였고, 포괄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학습능력이 있으니 다른 햇병아리 간호사들과 같이 몇 년이 지나면 능숙해질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아무 노력 없이 의료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투입된 안드로이드가 간단한 응급조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미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관계에 있었다. 지미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비꼼이나 비유, 언어 속에 숨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미의 장점은 지치지 않는 육체와 정신이었다. 그리고 환자의 뇌파를 읽어 그들의 욕구를 알 수 있다는 특수기능이 있었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은 어렵지만 기본욕구, 즉 배고프다 볼일을 보고 싶다 가렵다 같은 것에서부터 아프다 슬프다 화가 난다 같은 감정 그리고 궁금하다 다른 채널이 보고 싶다 같은 단순한 것들을 해독할 수 있었다. 겨우 눈동자 굴리는 것이 다인 나 같은 전신마비 환자에게는 몹시 반가운 능력이었다. 지미는 새로운 언어를 익히듯 나의 머릿속을 점점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가끔 지미의 성과를 보러오는 의사와 과학자들은 지미와 내가 보여주는 의사소통에 매우 흡족해했다.

지미는 내 생각을 읽으려고 할 때 양손으로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감싼다. 그때 지미의 눈은 내 눈을 들여다보는데 내 동공의 반응을 체크하는 것이겠지만 마치 눈빛으로 내 깊숙한 곳을 읽으려는 것 같아 나는 가슴이 설레면서도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 아이구 사람 살려, 나 죽네, 여기 노인네 죽네!
  한동안 잠잠하던 옆 방 노인네가 또 시작이다. 늘 겪는 근육경련이건만 저 노인네는 엄살이 심하다. 내가 보기엔 지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짓인데 지미는 엄살의 거짓말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 지미는 옆방으로 가버린다. 지미가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노인은 사람 살리라며 소리 소리를 지른다. 지미가 가면 웅얼웅얼 옹알이 하는 어린애처럼 칭얼거린다. 노인네는 지미에게 투정만 부릴까? 지미는 무척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유리알 같은 눈동자는 사람의 눈보다도 깊다. 사람과 흡사한 느낌을 갖게 하기 위해 아주 옅은 주근깨를 만들어둔 피부는 정말 매끄럽다. 병동에 있는 사람처럼 창백하지 않고 항상 태양을 보고 사는 것처럼 건강한 혈색을 띄고 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슴과 엉덩이는 탱탱하다. 검은 머리는 윤이 나는데 그걸 뒤로 모아 묶고 머리에는 간호사 모자를 썼다. 다리는 날씬하고 길고 팔은 가냘픈데 안드로이드라 힘이 세다. 지미가 사람으로서 바깥세상에 있다면 엄청난 데이트 신청에 시달렸을 것이다. 지미가 나를 조금이라도 오래 돌보는 것 같으면 옆 방 영감은 사람 살리라며 발악을 한다. 그는 지미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은 것 같다. 그 영감은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지미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간호사 복 안에 있을 지미의 이상적인 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옆 방 노인에 대해 미칠 듯이 화가 난다.

  화가 나서 흥분하자 나에게 연결된 기계가 경고음을 울린다. 옆방의 대화소리가 끊기고 곧이어 지미의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지미가 침대 곁으로 오기 전까진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지미는 내 눈을 들여다보고 내 목을 내 손을 그리고 가슴 여기저기를 짚고 기계를 체크한다. 나는 진정이 되면서 동시에 가슴이 뛴다. 전신마비환자에게 욕창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자주 몸을 이리저리 돌려 눕혀야 한다.  내 몸은 병원에 들어 온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색깔과 근육이 모두 빠져버렸다. 수액으로만 영양섭취를 하니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햇빛을 보지 못하니 혈색이 사라졌다. 그래도 다 큰 성인남자를 이리저리 눕히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인데 아니었지만 지미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미에게는 지겨운 일도 아니었고 지치는 일도 아니었다. 지미는 언제나 미소로 나를 돌보았다. 한 치의 변화도 없는 그 미소를 볼 때면 가끔은 무엇인가 내 속에서 울컥하면서 지미를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꿈을 꾸었다. 햇빛 아래서 나는 시래기라고 하는 배춧잎을 뒤집었다. 신문지 위에 가장자리가 말라 오그라들기 시작하는 크고 질겨 보이는 배춧잎들이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누군가 내 뒤에서 따뜻한 목소리로 잘하고 있네, 하지만 좀 더 조심스럽게 뒤집어봐 라고 말했다. 나는 어린아이였다. 작은 손으로 조심조심 배추를 다 뒤집은 후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한 사람을 보려고 할 때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그것이 언젠가의 기억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뒤에서 말한 사람이 누굴까, 그 배추를 뒤집은 때는 언제일까, 그 장소는 어디였을까 라는 것을 하루 종일 생각했지만 내 기억은 딱 꿈꾼 거기까지였다. 햇빛과 잎 한장 한장을 뒤집을 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질감이 감격스러워, 그런 중대한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해서 이 순간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던 것만이 기억이 났다. 그러나 꿈으로 꾼 과거의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훔쳐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시래깃국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내가 있는 생명유지병동의 이 방에는 냄새가 없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있던 일반병동의 다인실은 시끄러웠고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배식시간이 되면 밥 냄새가 났다. 배식시간이 아닐 때에는 병원 특유의 냄새가 났다. 장기요양병동을 거쳐 생명유지병동으로 오면서 나는 병원에서만 나는 약 냄새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이제 내 코는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하는 것 같다. 지미에게선 옅은 향수나 비누 냄새가 나야할 것 같은데 전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지미가 가까이와도 아무런 향이 없다. 눈을 감고 있다가 떠보면 지미가 바로 내 코앞까지 와서 체크하는 때가 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지미의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향도 없고 체온도 없고 숨소리도 없는 지미. 지미의 몸을 만져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도자기 같을까? 지미가 내 이마를 짚을 때 손끝이 차갑지는 않다. 환자의 체온에 맞추어 지미의 손도 온도 조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손은 환자체크가 끝나면 차가워질까, 아니면 항상 그 온도로 맞추어져 있을까? 따뜻한 곳은 손뿐일까? 얼굴이나 몸에는 아무런 온기도 없을까?

  밖에서 사람들이 마구 고함을 친다. 아까는 간간히 들리던 사이렌과 비상경계음이 이제는 쉴 새 없이 울린다. 폭동이 일어난 것 같다. 엄청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모양이다. 상황을 모르고 듣는다면 축제소리 같이 들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자 소리를 지르는 것이겠지만 그 소리가 모두 모여 파도치는 것 같은 규칙성을 만들어낸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환호하듯이 커졌다 작아졌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리듬이 생긴다. 어쩌면 정말로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에 발악을 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내가 바깥세상에 있을 때 매일매일 조금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 늘 찌푸리고 다니자 어떤 사람이 그랬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즐기기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즐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평소에 이 병동을 거의 돌아보지 않던 의사가 단체로 우르르 몰려와서는 내게 미안하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자신들은 이제 가족에게로 돌아가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고. 내게 미안하다고 하는 그들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내 침대를 둘러싼 커튼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무엇이 미안한 것일까? 끝까지 의사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해서? 평소에도 이 병동은 지미와 다른 몇 몇 간호사에게 맡겨두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동안 돌봐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것일까? 내 몸을 고쳐주지 못해서 미안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죽게 된다는 것이 미안한 것일까? 몇 분후면 나를 비롯해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텐데 그건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가 없다. 나는 꼴좋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조금은 고소하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안면근육에 힘이 있었다면 나는 크게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흡기로 간신히 살아가는 내 근육은 웃음을 지을 힘이 없어 경련을 일으키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움직일 수 있었다면 나도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온 세상이 몇 분후에 멸망하건 몇 만 년 후에 멸망하건 상관이 없다. 이런 식으로 누워 인생을 마감할 것이 뻔한 나에겐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 소식이 뉴스로 반복해서 흘러나올 때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옆 방 노인은 무엇이 그렇게 억울한지 울부짖었다.

- 이런 썩을 놈의 자식들아! 여기 오면 살 줄 알았는데. 사람 고쳐놓지도 못하고. 내가 이 지랄을 보려고 그 돈 써서 여기 들어온 줄 알아?

  지미가 알려줬는데 그 때 옆 방 노인은 마지막 선고를 들었다고 했다. 그의 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티비에선 인류의 종말이 다가옴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옆 방 노인은 죽음을 두 번 맞이하는 꼴이었다. 그 때 떨리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던 아나운서는 지금은 아주 차분해 보인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해진 시간에 뉴스를 계속 전할 것이며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끝을 마주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조용히 맞이하건 시끄럽게 맞이하건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끝은 오게 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막을 수 없다. 티비는 지겨울 정도로 현장뉴스만 틀어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냐고 묻는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왜 인류에게 이런 일이? 왜 세상이 꼭 멸망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아니지. 이 사람들아. 인간의 종말이지 세상의 종말은 아니란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도 그 외의 것은 건재하단다. 인간만이 이곳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 누워있는 나도, 밖에서 울부짖는 당신도, 의연한 척 하는 아나운서도, 가족의 곁으로 돌아간 의사들도 다 똑같은 시간이 남은 것이다. 공평해. 아주 공평하다. 당신들과 나에게 남은 시간이 같다는 것에 나는 웃음이 난다. 저절로 웃음이 난다.

- 즐거운 일이 있나요?

  지미가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미의 눈은 너무 깊어 때로는 그 눈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이곳에 누워있지 않고 그 눈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심술궂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눈을 돌렸다. 지미의 눈은 오점이 없다. 저 눈은 의심으로 흐려지지도 않고 분노로 일그러지지도 않고 슬픔으로 깜빡이지도 않는다. 항상 순수하고 항상 평온하다. 나는 그 눈이 싫다.

- 아이구. 아이구. 이런 일이. 아이구 이런 일이.

  옆 방 노인네의 한탄이 그칠 줄을 모른다. 그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나보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나는 병원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눈부시게 햇빛이 비추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창가로 갔다. 내 발로 걷고 있는데도 나는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창으로 가서 나는 처음으로 병원의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새하얀 공작새가 있고 나무가 있고 분수가 있었다. 공작새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햇빛을 보고서야 내가 꿈을 꾸고 있음을 알았다. 그 빛은 사람 사는 세상에는 한 번도 비추어 본 적이 없는 이상적인 대낮의 빛이었다. 그곳에는 그림자가 없고 빛은 방향성 없이 사방에서 비추었다. 이런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다라고 이상한 예감을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내가 그것을 볼 수 있을지, 혹은 누구 하나라도 그것을 목격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미래에 이상적인 햇빛이 정원을 비출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깨어나 생각했다. 이것이 예감이라면 나는 꿈을 꾼 것이 아니고 잠시 미래를 여행한 것이라고. 햇빛이 일어난 시점보다 더 먼 미래에 가 있는 내가 햇빛이 비추었던 날을 회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먼 미래에 있는 나는 미래를 예감하는 과거의 나를 꿈꾸었다. 아니면, 지금의 내가 지금보다 조금 먼 미래를 회상하는 더 먼 미래의 나를 꿈꾸었다.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매일이 똑같은 이 병동에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이상하다. 할 것이 기억하는 일 밖에 없고 일상에서 그 기억들을 분리할 지표가 없기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지미는 잊을 수 없다. 지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보고 겪는 모든 것이 저장된다. 안드로이드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아주 어린아이 시절의 기억이 없는 것은 기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으로 자아가 형성되지 않으면 나와 타자의 구분이 없어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미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미의 정보는 기억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객관적인 정보를 지미만의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내가 이렇게 죽다니. 이 사기꾼들아. 나 살려내! 나 살려내란 말이다!

  바깥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작아진 것 같다. 아니면 옆 방 노인네가 너무 시끄러워서 밖의 소리가 묻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밖의 사람들은 화내는 것  조차도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낡은 아버지의 한옥은 결국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나는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땅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 땅은 국가소유였고 개발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한옥이 있었다는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곳에서 3대가 살았다는 흔적도 없었다. 무서울 정도로 높이 치솟는 건물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 야 이것들아! 의사 간호사 다 나와! 사람 살려내란 말이다!

  옆 방 노인이 드디어 미쳤나보다. 내 병실 문을 미친 사람처럼 두들겨댄다. 그럴 힘이 있다면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지 왜 내 방문을 두드리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이 병원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다. 연고가 있는 환자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고 아닌 환자들도 어딘가로 옮겨졌다. 저 노인네는 그 동안에는 꽤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더니 지금은 아무도 없나보다. 땅만 있고 성질이 더러운 노인네가 땅에 대한 가치가 사라지니 이제 성질만 더러운 노인네가 되었다. 나도 이해한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지미가 문을 잠가 두었나보다. 아니, 내가 문을 잠가 달라고 요청을 했던가. 노인네가 계속 문을 두드려댄다.

- 나 죽는다. 나 죽는다! 거기 사람 있는 거 다 알아. 이거 열어 이것들아!

  그동안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내 눈만 들여다보던 지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문으로 간다. 지미는 명령어에 그대로 반응한다. 이 멍청한 것, 열면 안 돼!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말릴 방법이 없다. 지미가 문을 열어주자 노인은 우당탕 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멍청한 지미, 고철덩어리 지미, 학습능력 없는 지미. 내 침대는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헉헉대는 숨소리를 들어보면 노인은 커튼 바로 밖에 있는데 고개를 돌릴 수 없으니 답답하다.

- 이거 뭐야?

  노인이 무엇을 보고 질문 하는지 알 수 없다.

- 생명유지환자입니다.

  아마도 나를 가리켰던 모양이다. 노인네가  기침을 하더니 웃어 제낀다. 내가 그렇게 웃겨 보이나? 노인네가 커튼을 열고 내 앞으로 들어온다. 얼굴을 들이미는데, 어라 할아버지 오래전에 돌아가지 않으셨어요? 노인네는 우리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낡은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 몸이 좋지 않아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어 음식을 먹을 때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흘리는 것이 많았다. 집 안마당을 걸으면 숨이 차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앙상한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잠자는 듯 돌아가셨다. 아침에 방문을 여니 마당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 때문에 꼭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을 영상전송 한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노인네가 내 귀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 젊은 놈 꼬라지 볼만하네. 이런 거 주렁주렁 달고 사는 게 사는 거냐? 근성으로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뭣 하러 누워있어? 난 사지도 멀쩡하고 아직 이렇게 정정한데 왜 죽어야 돼? 왜 너 같이 꿈쩍도 못하는 죽은 거나 다름없는 놈이랑 한 날 한 시에 죽어야 되냐고?

  그렇게 따지면 이렇게 젊은 사람이 할아버지처럼 다 늙어가는 사람이랑 한 날 한 시에 죽는 건 말이 됩니까? 나도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었지만 이 노인네는 우리 할아버지랑은 달리 무척 힘이 센 것 같다. 호흡기와 기계선을 전부 잡아채더니 내 위에 타고 올라 목을 조른다. 대체 노인네가 왜 이렇게 힘이 세?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죽게 되나. 지미 대체 뭘 하는거야? 지미 이 사람 좀 말려봐, 나 좀 살려줘! 지미. 지미.

  숨이 헉 하고 터지면서 나는 바닥에 떨어진다. 지미는 노인을 끌어낸 것이다. 노인은 끌려 나가면서도 내 목을 조르던 손을 놓치 않아 나는 그 기세에 끌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미는 간단히 노인의 손을 펴 몸통을 잡아끈다. 노인이 발버둥을 치는데 지미는 꿈쩍도 않고 노인을 끌고 나간다. 안드로이드의 괴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바깥에서 나는 소동의 소리가 커진다. 창문. 저기 창문이 보인다. 창문을 보면서 나는 꿈을 기억해낸다. 창문가에 앉아 햇빛 비치는 정원을 바라보는 미래의 나를. 그것이 지금 곧 일어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라는 것도. 내가 기어갈 수만 있다면, 내가 팔 한 짝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이제 곧 다가올 끝에 맞추어 내가 꿈꾼 미래를 실현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움직일 수 없다. 꼼짝도 할 수 없다. 내 마음속의 나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기고 있고 나의 머리는 움직이는 팔다리를 기억하는데 내 몸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내 정신은 저곳을 향해 기어가는데 나는 꼼짝을 하지 못한다. 호흡기와 침을 빨아들여주는 기계가 전부 떨어져 숨이 점점 가빠온다. 삼키지 못하는 침이 줄줄 새 바닥을 적신다. 숨 쉬는게 힘들어 눈이 아프다. 눈앞이 부옇다. 나는 꿈을 꾸었는데.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미래에 대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그냥 꿈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대학은 첫 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했다. 아무리 벌어도 학자금과 생활비 모두를 다 감당할 수는 없었다. 학점관리라는 것은 생각 할 수도 없었다. 첫 학기를 간신히 넘기고 나서 나는 이런 상태로 4년이 계속될 테고 4년 후에는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 내내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 친구들도 하나같이 칙칙한 얼굴로 술을 마셨다. 일어나면 밤새 마신 술과 전날의 음식물을 배설하고 씻고 밥을 먹고 나갔다. 신문을 돌리고 전단지를 뿌리고 짐을 옮기고 벽돌을 나르고 햄버거 패티를 뒤집고 밥상을 나르고 호객행위를 하고 나면 다시 밤이 되었다. 그날 해가 떴는지 안 떴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창문이 없는 방에서 밥솥에 밥을 해 먹었다. 계란을 비벼 같이 먹기도 했다. 계란밥과 함께 소주를 깠다. 술은 일하는 집에서 한 두병 얻어 올 수도 있었다. 밥상 나르는 집에서 남은 반찬을 싸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조금은 돈이 생기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모이지 않았다. 나에게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시간보다 돈이 더 부족했다. 돈이 없으면 시간도 부족했다. 나는 시간을 살 형편이 안됐다. 차에 치였을 때 사람들의 웅성 웅성거리는 소리사이로 이상하게 다 무너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이 생각났다. 그리고 병원비가 걱정됐다. 구급차에 실려 누군가 나에게 호흡기를 씌우고 가슴을 눌러대는데 나는 이 돈 못내는 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옆 방 노인네는 왜 우리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창문이 아까보다 더 빛난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순간이 온다. 나는 그 때 창문을 통해 정원을 봐야하는데. 저 창문, 저곳에 도달해야 한다. 지미, 나를 도와줘. 대체 어디 있는거야? 지미.

  돌아볼 수 없는데도 알 수 있다. 지미가 와 있다는 것을. 왜 나를 돕지 않고 가만히 그곳에 서 있을까? 지미가 내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끼워 넣고 나를 들어올린다. 지미는 나를 침대로 옮길 것이다. 이 순간에 침대에 누워있을 수는 없다. 지미, 내 말을 들어봐. 내 생각을 들어봐. 창문으로. 창으로. 나를 저 밖이 보이는 곳으로 데려다줘! 나는 창문으로 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내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미는 나를 들어 올려 질질 끌고 간다. 내 고개는 지탱이 안 돼 앞으로 푹 꺾였다. 내 눈에는 줄줄 흐르는 눈물 콧물 침과 바닥밖에 보이지 않는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이 시야의 반을 가린다. 바닥이 환해진다. 빛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제 곧, 이제 곧 마지막이 올 텐데! 이런 것이 내 마지막이라니. 이런 모습으로 사라지는 것이 내 마지막이라니!

이마가 쿵하고 무엇인가에 부딪힌다. 차가운 유리가 닿는다. 지미가 내 고개를 들어 유리창 밖을 보게 한다. 창 밖에는 공작새도 나무도 없다. 정원도 집도 거리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다. 내가 미래라고 생각했던 정원에 비추는 햇살도 없다. 새하얀 공간. 새하얀 시간. 마지막이라는 순간만 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빛이 강해지고 내가 눈을 감기 전 빛 속에서 지미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소리가 사라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지미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지미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창문 밖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창문을 내다보자 지미의 눈동자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죽었다. 아버지도 오래전에 죽었다. 한옥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 자리에 무서운 기세로 세워진 초고층 건물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지미는 남았다. 지미와 같은 것들은 사라질 수가 없었다. 지미는 잊을 수 도 없었다. 지미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주관성이 없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객관적이지도 않았다. 언제나 태어난 그대로 완벽한 모습을 기억할 것 같던 지미도 낡기 시작했다. 지미는 사람들보다도 건물보다도 오래 남았다. 지미는 아주 천천히 낡았다. 그리고 지미의 기억에는 혼선이 생겼다. 어떤 것은 좀 잊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미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았다. 지미는 나를 기억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지미에게 보여주었던 것도 기억했다. 오래된 지미 속에서 그 기억은 뒤죽박죽 섞였다. 나는 지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지미의 눈을 들여다보며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다. 결코 늙지 않고 결코 기억이 사라지는 법이 없는 영원한 인공생명체가 꾸는 기억. 나는 그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있고, 그 기억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종말을 맞는다. 나는 지미 속에 살아있고 그 안에서 끝난다. 지미가 서 있는 곳에는 이제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 세월이 모든 것을 풍화시켰고 생명체는 사라졌다. 지미는 먼지가 모든 것을 삼킬 때까지 나를 기억하고,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사람을 기억하고 건물을 기억하고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공룡들을 기억하면서 그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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