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화려한 신부

2005.11.10 10:3011.10

화려한 신부


  결혼식이 열리는 저택의 정원은 분주했다. 유서 깊은 명문가답게
족히 백여 명은 수용할 수 있을 듯한 정원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혹여나
있을 실수에 대비하고 있었다. 정원 중심에는 야외 결혼식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하객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얼음으로 조각한 장식들과 결혼식을 끝낸
신랑과 신부가 자를 큰 케이크가, 그리고 하객들의 배를 채워줄
성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정원과 결혼식장 곳곳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두 가문의 결합에
이상기온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나타난 이물질과 같았다.

  고집 센 맥브레이 가문의 가주는 경호원을 배치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 정치와 경제에 영향력을 주는 거대한 기업의
수장답게 그는 담대했고 고집이 있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사실상 구체화되고 있는 소문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외동딸의
안전을 대비하여 경호원 배치를 고려해봄직도 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밖에 없는 딸의 결혼식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찌감치 의식의 저편으로 날려버린 남자였다.
사실 경사스러운 일이 있기 전에 늘 있을 법한 사소한 소문에
휘둘릴 남자였다면 근 삼십년간 자신의 가업을 이렇게까지 세워
올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멕브레이를 보좌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안전에 대비하도록 권유했고 복지부동인
그를 ‘외동딸의 한 번뿐인 결혼식을 위하여’라는 말로 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소문은 이렇다. 신진세력인 멕브레이 가家와 마찬가지로
신진세력인 코웨일 가家의 외동딸과 외동아들의 결혼은 곧
거대한 두 개의 회사가 하나의 세력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이들 두 가문의 발언은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고, 가뜩이나 밑에서 치고 올라와 이제는
기존의 세력에 제법 위협이 되는 힘을 갖춘 지금, 기득권
세력은 목젖에 칼날을 대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문을 경계하는 세력들은 ‘모종의 조취’를
취하게 될 것이다.

  ‘모종의 조취’에 대한 예측도 다양하다. ‘모종의 조취’ 자체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고, 경계세력 중 일부가 멕브레이―코웨일
연합에 합류할 움직임이 보인다는 낙관적인 소식도 있었으며
반反 멕브레이―코웨일 연합이 결성되어 정치, 경제적인 보복이
올 것이라는 다소 구체적이고 경계할만한 소문도 있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사태의 현황을 충분히 분석해
다가올 상황을 정확히 예측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범적이기 때문에 따분한’ 소문 보다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하는 소문이 있었다. 바로 로라 멕브레이와
지벨 코웨일의 결혼식에 어떤 소동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었다.

  ‘소동’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결혼식에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멕브레이는 군수산업도 겸한다―이 보낸 것으로
위장한 폭탄이 배달될 것이다, 신부와 신랑을 신혼여행지로
보내주는 비행기가 폭파될 것이다, 하객으로 참석한 여러
저명인사들이 공격당할 것이다 등등의 난폭한 추측들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했다. 왜냐하면 이런 소문이 단순한
뜬소문으로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은 그 누구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멕브레이와 코웨일은 적이 많았고,
그들의 연합을 달가워하기 보다는 꺼림칙해하는 세력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소동’은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를 노리는―갖은
형태로!―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러나 정작 소문의
주인공은 그런 소문에 대해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로라 멕브레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늘어놓은 말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쓸데없는 짓’에 사람들이 얼마만큼 민감해있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로라는―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비할
만큼 이야기가 흥미 있다는 것을―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와 신랑을 죽이는 것은 너무 과격해 제쳐두고서라도
결혼식 때 일종의 사건을 일으키면 기업 이미지의 추락을
도모해보는 것도 가능할거야.”

  그녀는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내가 상대방이라면 로라 멕브레이와 지벨 코웨일을
죽이는 것을 고려해 볼 거야. 멕브레이와 코웨일을 쓰러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테니까.”

  그녀는 후계자가 처참하게 사망한 두 가문과 기업이 어떻게
사라질지 예측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의 죽음과 자신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가문의 몰락을 치밀하게 구상하는 그녀를
내가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말한 것처럼 자신의
결혼을 찬성하지 않는 탓일까, 아니면 여유로운 자가 할 수 있는
배고픔에 대한 상상일까. 아무튼 그녀는 ‘어떠한 형태로든 주식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려 타자본의 점유율을 최대한으로 높인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확실히 흥미 있는 소문이야.”

  나는 그녀에게 이번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버지가 택할만한 선택이야. 삼십년의 세월을 이겨냈다고는
하지만 기득세력들에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위험한 칼춤을 추는 것과 같으니까. 혼자 추는 칼춤보다는 둘이
추는 칼춤이 더 낫겠지. 그 점에 있어서 단순한 약속―깨어지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바로 그 약속!―을 맺기 보다는 안전한 결혼을
선택하는 게 최선책이고. 그렇지만 둘이서 칼춤을 추다가
서로를 베지 않도록 조심해야할걸.”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피씩 웃었다.

  “지벨 코웨일은 얼간이야. 향간에 떠도는 소문도 결코 좋은 것이
없고 여자만 밝히는 멍청한 남자라고하지. 내가 코웨일의
아버지라면 차라리 우수한 후계자를 따로 선택했을 거야.
그런 면에서 볼 때 코웨일의 앞날은 별로 밝지 못해. 경영자가
사심에 흔들려 잘못된 선택을 하다니 기업가로서 빵점이지.”

  자신도 기업을 물려받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녀는 매번 같은
태도를 취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문과 기업을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에 늘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것을 뒷받침해줄만한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이미
뛰어난 후계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라 멕브레이가 자신의 친구들을 맞이하러 자리를 비운사이
이제 막 도착한 드이모프 바실리치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부모 잘 만난 공주님은 잘 있나?” 그는 그런 식으로 그녀를
비꼬곤 했다. 나는 그녀가 친구들과 함께 있다고 대답한 뒤
비디오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신부 측 대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빌어먹을
것이라면 잘 있어.”

  나를 비롯한 로라의 친구들이 로라에게 축하 메시지를, 그리고
남편이 될 지벨에게 당부하는 말들을 담은 비디오를 전달해주는
역할은 우습게도 드이모프가 하게 되었다. 이십대 중반에 힘 있는
논조와 이론으로 제법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는 대학시절
우리나라의 끔찍한 등록금을 모두 장학금으로 해결한 능력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로라 멕브레이를 천적으로 생각했다. 물론
로라는 그의 그런 태도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뼛속부터 가난의
한이 스며들어있는 드이모프는 로라를 태생적으로 미워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폭언을 내뱉거나 따돌린 적은
없었지만 그녀를 어딘지 모르게 그녀를 꺼려하는 태도는
유명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우리들은 반쯤은 장난으로 그에게
비디오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우리의 제안을 수락했다. 자신의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결혼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나와 그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다. 잡담이라고 해봤자 향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한
것이나 엄중하게 보호되고 있는 결혼식장의 분위기에 대한
것들이었다. 사실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는 곳은
경호원들이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고 사람이 없는 곳은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나다녔다. 따라서 하객들은―의도하지 않아도―
경호원들의 긴장된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와
그는 결혼식장에 있는 하객들이 이번에 일어날 수도 있는 소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드이모프가 한곳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왔군.”

  나는 그가 주목한 곳을 바라보았다. 정원의 입구에서는 덩치가
제법 있지만 큰 키 때문에 안정되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하객들의 반응도 그곳에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문의 지벨 코웨일이군.”
  
  지벨 코웨일에 대한 소문은 그다지 좋은 소문이 없다. 그가 키가
크고 덩치가 제법 우람하며 잘생기고 돈이 많아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를 좋게 평가해줄만한 것이
없었다. 그가 여러 명의 애인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교양이 모자라는 인간이라는
것이 주된 평이었다. 거기다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지벨이 일으키고 다니는 많은 실수들은 항상 그의 아버지가
돈으로 해결해 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지나칠 정도로―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유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무능한 인간이 튀어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어. 역시 ‘전통적인 부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확실히 코웨일은 벼락부자에 속하는 편이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지벨 코웨일의 행동을 관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하객들에게 다소 딱딱한―아니,
경계하는 듯한―태도로 답례를 한 뒤 자신의 신부의 행방에 대해
묻고 그녀를 찾아 자리를 금세 옮겼다. 그에 대한 관찰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께름칙한 소문이 돌고 있다 고해서 저렇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니 역시 큰 인물은 아니야.”

  조금 전의 로라와 확실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행동을 드이모프에게 이야기했다. “확실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허영심이 많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니까. 그녀다운 말이군.”

  “곧 결혼식을 시작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 정원에 설치된 스피커를 쳐다보았다. 아직
결혼식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다. 결혼식후의 피로연도, 그리고
공항까지 가는 일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드이모프는 결혼식이
끝나고 로라에게 “부친께서 사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해야
할 듯한 표정으로 “축하해.”라며 비디오를 건네주었다. 까닭을
아는 나를 비롯한 신부 측 친구들은 배를 잡고 뒹굴었다. 로라는
그의 표정을 개의치 않으며―그녀 앞에서 항상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 그런 굳은 얼굴을 평상시 표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화사한 미소로 답례 했다.

  “결혼식이 일찍 시작된 건 그 머리 빈 얼간이가 재촉했기
때문이야.”라는 드이모프의 말을 들어서인지 자동차에 타는
그 순간까지 지벨의 긴장한 표정을 ‘신혼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한
얼굴’로 해석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시종일관 당당한 로라의
태도와 비교되어 드이모프의 말대로 테러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지벨이 소문난 난봉꾼이라는 사실이
‘신혼여행의 설렘 어쩌구’하는 해석을 더욱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미소를 짓고 있는 신부와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랑의 모습은 “신랑과 신부가 바뀐 것이 아니냐.”라는 재미있는
반응을 낳게 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자동차의 모든 방위를 경호차량이 완전히
호위해서 떠나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한 뒤 우리들은 결혼식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저택에
들어서면서부터 긴장된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었지만
신혼부부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몸을
조금이나마 긴장시켰던 것 같았다.

  친구들끼리 갖은 술자리에서 드이모프는 다소 취해있었다.
친구들은 의례 그렇듯 그를 상대하는 역할을 나에게
떠넘겨버렸다. 같은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그는 어려운 말들을 쏟아내었다.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최근 경제의 움직임이 어떤 인사에 이론에 의하면 이렇다”,
“국내의 자본시장의 흐름이 세계시장에 주는 영향은 내가
보기에는 저렇다”, “국제정세와 국제유가의 관계 및 경제의
움직임은 이럴 것이다”, “멕브레이와 코웨일의 결합은 경계파를
겨냥한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파의 움직임은
저럴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맹세코 그가 술에 취해 쏟아낸
말들은 잊혀진 고대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은 지껄이는
그를 동정했다.

  드이모프는 로라를 좋아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겠지만 어쨌든
과거에 존재했던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로라의 신분을
제외하고서라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적당한 허영심과 호기심,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쌓아놓아 그쪽 계층이 아니고서는
접근하기 힘든 뛰어난 교양 등등을 그는 동경했다. 처음에는 그런
동경에 가까운 감정이 좋아한다는 것으로 변하게 된 것은 그녀가
그가 지레짐작한 것과 달리 똑똑하고 머리가 좋은 여자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그녀는 감출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었고,
현실적인 드이모프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깊게 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 잘 만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들이
싫다.”라는 자신의 신조대로 행동하는 척하면서. 그것은 그가
이십년 동안 해왔던 행동이기 때문에 그녀 앞에서 어색하거나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들이 찾아낼 수 없다곤 해도
자신에게 한 없이 억지스러운 행동은 그를 아프게 만들었고 나는
그를 위로해 주는 역할을 했다(그리고 그 즈음에 그의 취사를
받아주는 건 나라는 역할이 그룹에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애틋하고 사연이 깊은 드이모프의 감정은 차차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로라의 행동변화 때문이었는데,
이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4학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그녀는
차츰 수업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몇 수업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더니 4학기 중간부터는 학교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학교에서 몇 번 볼 수 있을 때는 과제를 내는
날이거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학교 바깥의 고급 바(Bar)나 클럽,
술집에서였다. 드이모프는 그녀의 변화에 놀라워하며
시험을 끝내고 무언가에 도망치듯이 빠져나가는 그녀를 붙잡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피씩 웃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하찮은 것에는 관심이 없어졌어. 어차피 나에게는
있으나마나한 것들 아니야?”

  드이모프는 분노했다. 그 자신이 경멸하던 속물적이고 멍청한
인간처럼 변한 그녀와 그런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해.

  당분간 그의 술주정을 들어주어야한다는 예측에 내가 좌절하고
있을 때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평소보다 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폭풍전의 고요라고 생각해 더욱
긴장했지만 내가 예상한 폭풍은 불어오지 않았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공부를 했고, 그것은 며칠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드이모프는 수석으로 졸업했고 로라는 간신히 낙제를 면한 체
졸업했다. 그 뒤로 그 둘은 단 한 번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없었지만 오늘 그녀를 보니 예전에 묻어놓았던 감정이 폭발한 듯
그는 오랜만에 취사를 늘어놓았다.

  “빌어먹을……. 이런 형태의 결혼은, 히꾹!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속시켜, 히꾹! 맑스가 뭐라고 했는지, 히꾹! 그네들은
알려나? 히꾹! 제기라알! 하나도 축하하지 않, 히꾹!”

  그가 딸꾹질을 하며 평범한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잠에 빠져든다는 뜻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탁자에 머리를 박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내가 예상했던 편지는 다음날 도착했다. 이틀이 지났는데
아직도 신문과 방송에서 그 사건에 대해 잔뜩 떠들고 있었다.
더욱이 그 사건으로 인해 멕브레이와 코웨일의 주식은 땅을 치고
있었다. 나 역시 사건의 진상이 궁금했기에 그녀가 보낸 편지를
급히 읽어보았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면 신문방송에서 아마 나의 이혼에 대해
잔뜩 떠들고 있을 거야. 하긴 무리도 아니지. 별의별 소문이 다
돌만큼 주목 받는 결혼이었는데 단 하루 만에 이혼하다니. 아마
너도 궁금하겠지?

사실 실상은 이래.

아마 드이모프를 제외하고는 내가 왜 4학기 때부터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무도 알고 있지 못할 거야.

나는 사실 싸우고 있었어. 우리 아버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완고한 사람이야. 그것을 장점으로 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어.

나는 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 아버지로선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꿈이지.

여름방학 때 아버지의 소개로 처음으로 지벨 코웨일을 만났어.
머릿속에는 여자들의 다리 사이에만 관심 있는 멍청이를 보자
나는 단번에 아버지의 속셈을 알 수 있었지. 그때 나는 내
나름대로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어.

나는 내가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던 소량의 자본을 움직이기
시작했어. 아, 이 부분에서 어쩐지 코웃음을 칠 것 같은데 문자
그대로 소량이야. 아버지는 나에게 절대로 사치할 수 없는 범위
내에서 용돈을 주었으니까. 오히려 그것을 자본이라고 표현하는
나 자신이 웃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보고 들은
것은 많았고 학교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막상 그것을
이용하려고 보니까 막막하더군.

나는 이론에만 치우친 학교 공부에는 관심을 끊고 보다
실용적인 것을 찾기 시작했어. 나 혼자서 외롭게 헤쳐 나가야 했지.

그때부터 아마 내가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을 거야. 그리고
얼마안가 드이모프가 정말 괴로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했을 때고.

사실 그의 풍부한 표정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거든
(이 부분에서 글씨가 심하게 떨려있었다. 아무래도 드이모프가
방해한 흔적 같았다)

드이모프는, 그이는 정말 천재적인 감각이 있었어. 지금은
그저 젊은 나이에 제법하고 있는 뛰어난 학자라는 것이
중평이지만 그는 뛰어난 경제인이기도해.

그의 도움으로 내 자산(무려 자산이야!)은 차근차근 커져가기
시작했어.

옆에 그이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거야.

우리들은 몇 년에 걸쳐서 아버지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를 했어.

아마 아버지는 소규모의 자본가“들”이 당신의 주식의 극히
일부분을 사들이고 있는 것을 별로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그 멍청한 코웨일이 괴상한 취미를 갖고 있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고.

친구들의 메시지가 담긴 비디오는 사실 드이모프가
“그 빌어먹을 것”으로 바꿔치기 해놨어.

남자 한 명과 여자 수 명이 뒤엉켜 있는 난잡한 비디오 몇 편은
이혼을 요구하고 막대한 위자료를 뜯어내기에 충분지. 더욱이
그 겁쟁이는 메스컴에 알려질까 봐 이혼에 즉각 동의했고.
글쎄, 그런 지저분한 녀석과 결혼식장에서 키스를 했다니까!

지금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멕브레이와 코웨일의 주식은
바닥을 치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주식을 사들이는 건 나와
그이고.

우리는 지금 국내에 들어와 주식을 살 준비를 하고 있어.

비록 세련된 신혼여행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실속 있는
신혼여행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 즐거운 시간 보내!

로라 바실리치」


  나는 리모콘을 들어 경제뉴스를 틀었다. 로라 멕브레이와
지벨 코웨일의 이혼에 대한 소식이 경제뉴스마저 점령하고
있었다. 더욱이 지벨 코웨일이 막대한 위자료를 로라 멕브레이에게
지급했다는 사실과 그 이유에 대한 추측들이 떠돌고 있었다.
주식시장에서는 지벨 코웨일이 코웨일의 실질적인 후계자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라며 후계자가 없는 코웨일 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멕브레이 사의 위치도 흔들리면서 주식이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실상 지벨은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며칠이 지나자 두 기업의 주식이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기업의 실질적인 주주가 누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보도가 되지 않은 것을 보니 소규모 자본가“들”의 움직임이
아직 포착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이름이 다른 그들은 어떤
특정한 사람 두 명에게 주식을 모두 저렴한 가격으로 양도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소규모 자본가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추신
아, 그리고 결혼식에 대한 소문 말인데, 그거 실은 그이가 퍼트린
소문이야!

머릿속에는 경제 감각밖에 없는 그 사람이 그런 것에 소질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아마 편지를 받고 며칠 동안은 믿음직한 헛소문이
주식시장을 매각할 거야.」


- 끝


처음 올려보는 단편입니다.
6쪽 밖에 안되는 짧은 단편입니다.
모자라는 실력에 이렇게 글을 올리려니 두려움부터 앞서는 군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평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댓글 2
  • No Profile
    moodern 05.11.16 00:33 댓글 수정 삭제
    호..멋지군요.
  • No Profile
    배명훈 05.12.04 16:41 댓글 수정 삭제
    맞아요. 단편은 누가 뭐래도 반전을 꾸미고 있어야 읽는 재미도 나고 쓰는 재미도 나죠. 근데 그 반전을 살짝 눈치채고 말았어요. 어쩌죠?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공고] 2020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19.12.31 0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0
1857 단편 돼지 좀비 바이러스2 dcdc 2010.02.14 0
단편 화려한 신부2 시레인 2005.11.10 0
1855 단편 유물(Artifacts)1 앤디리 2011.10.11 0
1854 단편 겨울짐승 두 마리를 꿈꾸네1 명비 2004.05.11 0
1853 단편 우주종말동아리3 노유 2007.07.27 0
1852 단편 아스텔라 길 빛옥 2013.03.15 0
1851 단편 [뱀파이어] 화이트실루엣1 salamanders 2006.03.30 0
1850 단편 하나가 둘이다12 dcdc 2009.07.28 0
1849 단편 심야자판기 moodern 2004.08.27 0
1848 단편 [번역]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 마이크 레스닉1 이형진 2011.02.16 0
1847 단편 검은 양초1 satia 2006.06.08 0
1846 단편 우리들의 서울로 놀러 오세요1 명비 2004.08.19 0
1845 단편 피를 먹는 기계 사이클론 2012.12.30 0
1844 단편 [꽁트?]어느 연구실의 풍경 - 카이미라2 미소짓는독사 2006.10.18 0
1843 단편 바다로 가는 모든 길2 아르하 2003.08.12 0
1842 단편 [심사제외]가스통 할배2 니그라토 2014.01.24 0
1841 단편 무드셀라 증후군4 제퍼리 킴 2012.02.21 0
1840 단편 잘 가시오, 외계인이여.3 쿠키 2006.10.25 0
1839 단편 [탄생] 6시간 21분 32초 헤르만 2012.03.04 0
1838 단편 암브와트: 영혼의 상자5 도토루 2011.03.23 0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0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