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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 여름의 흉가

2009.04.15 12:4004.15

그 여름의 흉가



햇살이 블라인드 틈새로 스며든다. 일직선의 가느다란 광선 사이에서 먼지들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옅은 숨소리처럼 희미하게 울리는 음악 사이로 시곗바늘의 움직임이 들린다. 똑딱. 똑딱. 규칙적인 그 소리를 따라 조금씩 고개를 끄덕여본다. 그러면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 그 틈새 너머의 풍경을, 찬란한 햇빛과 열기가 가득한 그 풍경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블라인드를 좀 걷을까요?”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의사가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린다. 드르륵, 햇살이 쏟아진다. 갑자기 들이닥친 햇살 뭉치에 얼굴을 찡그리며 한 손을 들어 가린다. 의사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더니 자리에 앉는다.
“자, 기분이 좀 어때요?”
“괜찮아요.”
“아직도 막 자살하고 싶고 그래요?”
“아니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목을 쓰다듬는다. 나일론 줄이 남긴 빨간 상처가 쓰리다. 병원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 의사는 “자살을 하려면 좋은 줄로 해야죠. 그래야 상처가 안 남지.”라고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좋은 사람이다, 이 의사는.
“우울한 건 어때요?”
“전 우울한 게 아니에요. 그냥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저런! 새파란 청춘인데 노인네처럼 삶이 재미없으면 어쩌나?”
“정말이에요.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너무 심심했어요. 밥을 먹고, 숨을 쉬고, 공부를 하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일들이 재미도 없고 심심해요. 그래서…….”
“그래서 자살을?”
“……네.”
“구태의연하게 들리겠지만 자살이 능사는 아니죠. 가족들과 상의는 해 봤어요?”
“가족은…… 없어요. 아빠는 새장가를 가셔서 미국에 계시고, 형제도 없고.”
“어머니는?”
“자살하셨어요. 제가 어릴 때. 전 엄마 얼굴도 기억 못해요. 흑백사진으로만 봤거든요. 아빠 말로는 엄마도 사는 게 심심해서 자살했대요.”
“음……. 환자분의 마음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어머니의 자살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군요. 자살충동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거니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아셨죠?”
의사가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본다.
“김빠진 사이다처럼 밍밍한 인생.”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다.
“네? 뭐라고 하셨죠?”
“아니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러면서 거대하고 깊은, 원자폭탄 같은 하품을 한다. 눈물 한 방울이 맺힌다.
“선생님.”
“네. 말씀하시죠.”
“저한테는 아무래도 엄마의 영혼이 들러붙어서 자살하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요. 이런 건 어떻게 치료하죠?”
의사의 눈이 커진다. 점점 더, 커진다. 점점 더….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일어나 봐.”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강렬한 여름 햇살이 눈을 파고들었다. 인호가 나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수업도 안 들어오고 옥상에 누워서 뭐하고 있어?”
녀석이 옆에 퍼질러 앉으며 물었다.
“꿈꾸고 있었어.”
“싱거운 놈.”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늘어져라 기지개를 켰다.
“수업은 어땠어? 이제 방학이지?”
내가 물었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시험도 끝났겠다, 이제는 아르바이트나 해야지. 넌 방학 때 뭐 할 거야?”
“몰라. 아직 계획 없어. 나도 돈을 벌긴 해야 되는데….”
“너 병원에도 꼬박꼬박 가야 하니까 돈 장난 아니게 들겠다.”
“병원엔 이제 안 가.”
“뭐? 왜? 의사가 오지 말래?”
“아니. 가 봐야 만날 똑같은 소리만 하니까. 우울증이 어떻고, 심리가 어떻고…. 사는 게 심심하다는 내 말을 아무도 이해를 못해!”
“야! 그래도 병원은 가야지. 나 또 지난번처럼 송장 치긴 싫다!”
내가 목을 맸을 때, 나를 발견한 것이 녀석이었다. 유일하다시피 한 친구답게 자고 있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십분 거리의 내 자취방까지 달려와서 나를 구했단다.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꿈속에서 어떤 여자가 네 목에다가 줄을 매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맨 줄을 풀고 있는 건지 아무튼 그렇더라고. 내가 그 꿈을 안 꿨으면 어쩔 뻔 했냐?”
죽었겠지,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뒀다. 대신에 나도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지나간 얘긴 그만두고, 뭐 좋은 일자리 없냐? 병원비 아니고라도 방세며 식비까지 나도 버겁다, 버거워.”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일해 볼래? 사실 나 이벤트 회사에 아르바이트 자리 얻었거든. 거기서 한 명 더 필요하다던데.”
“이벤트 회사? 그거 인형 옷 입고 앞에서 막 춤추고 그래야 되는 거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니고, 무슨 가이드를 한다던데, 확실한 건 내일 가 봐야 알 수 있어. 어때? 같이 가 볼래?”
그러면서 녀석은 큰 글씨로 아르바이트 구함이라고 적힌 전단지를 꺼냈다. ‘가족 같은 분위기, 즐거운 경험, 일당제.’ 심심하건 말건 인생은 두 눈 시뻘겋게 뜬 현실이었으므로 나는, 말없이 그 전단지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그 이벤트 회사를 찾아갔다.


‘앗싸 이벤트’라는 다분히 뽕짝 분위기가 나는 이름의 그 회사는 특이하게도 여름 한철 동안 ‘흉가 체험 이벤트’를 하고 있었고, 내가 맡은 일도 바로 이름 거창한 ‘호러 가이드’였다. 나는 사람들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게 싫었지만 딱히 대안이 없었다. 호러 가이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곰탈을 쓰고 풍선을 나눠주는 행사 이벤트로 끌려 갈 판이었기 때문이다.
“차로 사람들 실어 나르기만 하면 돼. 귀신 이야기 해 주면서 적당히 분위기 맞춰주고. 사진도 좀 찍어주고. 잊지 마! 사진 찍을 땐 약간 흔들려서 찍는 거. 그래야 나중에 보고 귀신이다 뭐다 호들갑들을 떨거든.”
앗싸 이벤트라고 적힌 티를 입고 호러 가이드라는 명찰까지 단 내게 박 대리가 해 준 말이다. 나는 ‘경기도 파주 흉가, 10년 사이 세 명이 죽어나감, KBS에 크게 보도됨, 지난 달 체험자들도 귀신을 목격’이라고 타이핑된 종이를 보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귀신이 나오나요?”
박 대리 왈,
“설마?”

그렇게 나는 일을 시작했다. 유명 음식점 소개 문구 같은 전단을 들고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앗싸 이벤트인 옷을 입고, 경기도로, 강원도로, 혹은 서울 시내로 귀신이 나온다는 집을 찾아 사람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러고는 낡고 허름한, 당장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집에 도착해서 심 굵은 양초를 피워놓고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은 일인데, 부산 구포 아시죠? 구포. 예전에 열차가 탈선해서 몇 십 명이나 죽었던 그곳이요. 거기서 가까운 곳에 흉가가 하나 있어요. 구포 열차 사건 이후에 집값이 내려가고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자연스레 비게 된 집이라는데, 귀신들 천지라더군요. 그때도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어요. 서울에서 참가자들을 모시고 부산까지 갔죠. 그때는 이박 삼일이었어요. 아무튼, 구포 흉가를 찾아서 가는데 이상하게도 길을 못 찾겠는 거예요. 그 전에 낮에 와서 답사했을 땐 분명히 찾기 쉬웠거든요. 컴컴한 밤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까 길옆으로 철길이 나왔어요. 전 혼자서 속으로 생각했죠. 지난번엔 철길 같은 건 없었는데……. 그래도 계속 운전을 했는데 앞에 어떤 아주머니가 아기를 업고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차를 옆으로 세우고 창문을 내려서 길을 물어 보려고 했죠. 그런데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아세요?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한데, 창문을 내리고 딱 보니까 다리 없는 엄마가 목 없는 애기를 업고 있는 거였어요!”
물론, 이야기는 거짓말이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벌써 “이건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 부분에서부터 숨을 멈췄고, “목 없는 애기” 부분에선 거의 대부분 비명을 지르거나 눈을 질끈 감기 일쑤였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 참가자들은 폐가의 뜯긴 벽지와 얼룩진 문만 봐도 놀랐고, 바람 소리와 떨어지는 물방울에도 괴성을 질렀다. 그러고는 기념사진을 찍고, 귀신이 찍히진 않았는지 확인한 후, 가끔은 나무 그림자나 먼지 같은 걸 보고 귀신이다 아니다 설왕설래를 반복하기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몇 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어느 날, 곰탈을 쓴 친구 녀석이 물었다.
“어때? 흉가 같은 곳에 다니니까 인생이 좀 재미있냐?”
그날은 마침 흉가 체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따라 행사 이벤트에 가게 됐고, 쨍쨍 내리쬐는 여름햇살을 힘겨워하는 녀석을 위해 곰탈 안으로 연신 얼음을 밀어 넣던 중이었다.
“재미? 아니 여전히 심심해.”
“그럼. 이 곰탈 한 번 써 보는 건 어떠냐? 진짜 재미있는데! 이거 쓰고 한 십분 만 있으면 곰탈을 쓰지 않은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지 대번에 알 수 있다니까!”
“됐어. 그나저나 말이야, 흉가 체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이해할 수가 없더라. 비싼 돈 들여서 일부러 비명 지르고 울고, 눈물까지 왜 흘리는지 몰라?”
“야. 그건 네가 인생을 재미없게 살아서 그런 거야. 그 사람들은 열정이 있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걸 위해 돈을 모으고 밤을 세는 열정. 지금 너한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열정이야.”
“열정이라…. 우리 엄마도 그럼 열정이 없어서 자살했을까?”
나는 얼음 하나를 입에 털어놓고 오드득 씹으며 말했다.
“뭐?”
“아니다. 얘들 줄 많이 섰다. 빨리 풍선이나 나눠 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습관처럼 목 주위를 쓰다듬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미묘하게 쓰라렸다. 슬금슬금 자살 충동이 밀려올라왔다. 빠르게 지나치는 자동차들을 보며 순간, 뛰어들고 싶다는, 그러면 모든 것이 편안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발을 내딛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고 이끄는 것처럼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쏟아졌다. 차들이 코앞에서 무섭게 지나갔다. 한 발만 더 내딛으면, 한 발만 더…….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풍선을 나눠주는 친구 녀석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여름의 끝자락 무렵, 하늘의 농도가 조금 더 짙어지고 국도변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던 그때, 강원도의 한 흉가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휴가철이 지나 도로는 한산했고, 승합차 옆구리에 매달린 ‘앗싸 이벤트 흉가 체험!’ 현수막은 뱃전을 때리는 파도처럼 철썩철썩 차를 두드렸다. 해가 가물가물해지는 초저녁 하늘이 보이자 참가자들은 들뜬 듯 말이 많아졌다. 그때쯤 나는 일에 꽤 익숙해져 실제로는 심드렁했음에도 불구하고 쿵작쿵작 장단을 잘 맞춰주는 ‘호러 가이드’로 거듭나 있었다. 참가자들은 인터넷 동호회에서 모인 사람들이라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렀다. 리더로 보이는 ‘비명’이라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강원도 흉가는 폐광이 되면서 자살한 사람들 때문에 생긴 거라면서요?”
처음부터 목소리를 깔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법. 나는 운전을 하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5년 전인가 폐광이 됐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나가지 않았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던 가 봐요. 폐광 처리를 해야 하는 작업반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도 막고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 작업반, 그러니까 폐광 처리하는 얘들이 마을로 들어갔는데, 마을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는 거예요. 며칠 전만 해도 돌멩이가 날아오고 난리였는데. 이상하게 여긴 작업반이 이 집 저 집 수색을 시작했는데 역시 아무도 없었나 봐요. 그냥 소리 소문 없이 마을을 비웠구나 생각한 작업반이 그 마을에서 제일 큰 집에 짐을 풀고 그날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귀신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사고로 죽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나 봐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려고 허둥지둥 짐을 싸는데 다락으로 만들어진 그 집 천장이 무너지면서 뭔가가 떨어지더래요. 그게 뭔 줄 아세요?”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사람들이 잔뜩 긴장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일, 이, 삼, 사초 쯤 지나서 아까보다는 좀 더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치면 된다.
“끝까지 남아 있었던 마을 사람들 시체였대요. 다락에 올라가서 단체로 쥐약을 먹고 자살을 했는데 쥐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썩지도 않고 생생한 시체가 몇 구나 떨어졌었나 봐요. 그 후로 유명한 흉가가 됐죠.”

예상보다 십분 늦게 폐광 마을에 도착했고, 질긴 여름 태양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강원도 산간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불안해했고, 차가 마을 입구로 들어서서 흉흉한 풍경을 지나쳐 갈 때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우는 참가자도 생겼다.
우리가 체험할 흉가는 마을 중앙에 있었다. 쪼개놓은 듯 갈라진 나무 대문, 갈가리 찢긴 흙벽과 무너져 내린 지붕, 그리고 마당의 오래된 우물까지. 강원도 흉가는 그때껏 본 흉가 중 가장 흉흉한 모습이었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이 어둠속에 몸을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참가자들의 공포는 더했다. 별로 무서울 것 없다며 호언장담하던 ‘비명’마저 차에서 내려서는 ‘헉!’하고 숨을 멈췄고, ‘좀비소녀’라고 불리던 여자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사람들을 추슬러 흉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벽 여기저기엔 붉은 칠이 가득했고, 천장 위로는 어두컴컴한 다락이 보였다. 흉가 체험으로는 그야말로 최고의 장소였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초를 켜고 귀신 이야기 몇 개를 들려줬다. 분위기는 금방 최고조가 됐다.
몇 사람이 조를 짜고 계획을 세우는 걸 보면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여름 밤하늘에는 별빛이 찬란했다. 나는 사람들을 실어 온 승합차에 기대서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흉가 이곳저곳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고,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눈부시게 빛나는 별빛 때문인지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맴돌던 심심함과 허무, 그리고 삶에 대한 회의가 슬그머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기본적으로 귀신이란 걸 믿지 않았다. 오늘의 운세도, 사주궁합도, 토정비결도, 운명이나 기적도, 천국이나 지옥도, 네스호의 괴물도, 히말라야의 설인도, 외계인도, 늑대인간이나 흡혈귀도, 초능력이나 최면술도, 좀비도, 빨간 마스크도, 홍콩 할매 귀신도, 투탕카멘의 저주도, 자연발화도, 폴터가이스트나 엑소시즘도, 점이나 무당도, 신이나 악마도, 종말론도, 타임머신도, 음모이론도, 바다괴물도, 도시전설이나 학교전설도, 구렁이를 죽인 수위 아저씨도, 거꾸로 보면 귀신이라는 유관순 그림도, 냉동인간이나 생명연장도, 흉가도,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도, 사랑도, 이별도, 행복도, 권선징악도, 기나 도도, 밑지고 판다는 말도, 방금 출발했다는 중국집도, 진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말도, 절대 그런 일이 없다는 연예인도, 잘 하겠다는 정치인도, 재미도, 즐거움도, 노을도, 바다도, 바람도, 아름다움도 믿지 않았다.
내가 젖도 때기 전, 손목을 긋고 자살했다는 엄마도 믿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엄마의 사랑도 믿지 않았다. 어떤 것도 내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나는 한 마리 미꾸라지처럼 그 모든 것들, 설인이나 늑대인간, 사주궁합이나 귀신, 그리고 엄마와 아빠, 사랑과 행복 같은 것들을 빠져나와 진흙탕을 향해 가열하게 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그래서 심심했는지, 심심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야 전자일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때, 흉가 이곳저곳에서 울리는 비명을 들으며 평소처럼 스타렉스에 비스듬히 기대서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을 때는,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삭제된 열정이 어디로 갔는지, 왜 이토록 심심한지. 적어도 그 여자가 흉가에서 걸어 나오기 전까진.

처음에는 무서운 걸 못 견뎌서 먼저 나온 거라 생각했다.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뛰쳐나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향해 걸어온 여자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했다.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옆으로 다가와 승합차에 기대더니 그 전까지 내가 바라보던 쪽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러곤 물었다.
“뭘 보고 있었어요?”
여자의 억양은 특이했다. 강약과 고저가 없는, 밋밋한 억양이었다.
“그냥, 밤하늘이요.”
“아. 그렇구나!”
여자는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아무런 감흥이 없는 ‘아’와 ‘그렇구나!’였고, 대신에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만은 고갯짓에 따라 찰랑찰랑 흔들렸다.
“엄청 무서웠던가 봐요?”
나는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물었다. 역시 돌아온 대답은, “무섭긴요.”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녀가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아 심드렁한 얼굴로 창밖만 쳐다봤던 게 떠올랐다. 그 얼굴이 왠지 낯익어서 룸미러로 간간히 훔쳐 볼 때마다 그녀는 계속 같은 자세였던 것도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이런 거 재미없나 봐요?
“가이드씨는 재미있어요?”
그녀는 명찰을 보며 물었다. 질문은 내가 먼저 했다는 생각보다는 호러씨라고 부르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고 상냥한 ‘가이드씨’ 본연의 자세로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저야 참가자분들과 이렇게 흉가 체험을 하는 게 재미있고 즐겁죠.”
“거짓말!”
억양에 변화가 없는 여자에게서,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거짓말”이라는 말을 듣는 건, 아무렇게나 뱉어 놓은 껌을 밟는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조금 화가 났다는 것이다.
“아니, 왜 말씀을 그렇게….”
“심심하잖아요? 죽을 만큼.”
나는 입을 딱 벌리고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는 여전히 어둠 속의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조금 싸늘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심심해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얼굴에 드러나나?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제가 심심해 보여요?”
“네. 아주 많이.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 같아 보여요.”
“어떤 모습이 심심해 보이는 건대요?”
“진심이 없잖아요. 아까 차에서 이야기를 할 때도, 흉가 안에서 이야기 할 때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한 후, 그녀라면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전 심심해요. 산다는 게 못 견디게 심심해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친구 녀석은 제가 열정이 없어서 그렇다는데, 그게 맞는 건지……. 아무튼 저는 좋아하는 것도, 딱히 믿는 것도 없어요. 사주궁합이나 오늘의 운세도, 운명이나 기적도, 사랑이나 애정도,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 같은 것도 다 안 믿어요. 특히 엄마는요. 참! 그리고 또 귀신도 안 믿어요. 그러니까 이런 흉가 체험 같은 게 재미있을 리 없죠.”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드니 그녀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에 나는 의아할 뿐이었다. 그녀가 쏘아 붙였다.
“사람이 왜 그래요?”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역시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심심하게 사는 건 무책임한 일 아니에요? 기도를 하던지 공양을 드리던지, 아니면 피를 꿀꺽꿀꺽 마시던지 아무튼 종교를 하나쯤 가져보시고요, 아침에 일어나 운동도 좀 해 보세요. 숨이 넘어갈 정도로 달려보기도 하고, 쓰러질 때까지 팔굽혀펴기도하고, 눈이 벌게질 때까지 영화도 보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도 하고, 탈진할 때까지 자위도 해 보세요. 진짜 삶을 살라고요.”
그녀의 일장연설은 억양도 없고, 강약도 없으며, 고조조차도 없기에 오히려 더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어느 날 지하철 안내방송에서 “탈. 진. 할. 때. 까. 지. 자. 위. 도. 해. 보. 세. 요.”라고, “이번 역은 약수, 약수역입니다.”라는 말 다음에 덧붙인다고 상상해 보라. 장담하건데, 웃음이 터지기보다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도 만만치 않게 심심해 보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삼켰고 다만 그녀를 따라 어둠 속의 한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잠시 후, 비명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사람들을 맞았다. 그때 내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꼭 후회할 때가 올 거예요. 그러니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세요. 참! 그리고 가이드씨가 안 믿는다는 것들, 모두 다 진짜로 있는 것들이에요. 아셨죠?”

흉가에서 나온 사람들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비명’이 말했다.
“제가 지금껏 본 흉가 중 오늘이 최고였습니다! 저희 회원들도 무섭다고 난리였어요.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귀신이라도 찍혔으면 어쩌죠? 하하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빨리 떠나고 싶었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녀를 붙들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난 사람들을 세워 놓고 서둘러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내내 심드렁하던 그녀도 그때만큼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까지 그렸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을 태우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 나는 터미널에 닿으면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볼 나름의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차가 다시 어두운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그녀는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룸미러로 확인했다. 역시 없었다. 황급히 차를 세웠다.
“왜 그러세요?”
사람들이 놀라서 물었다.
“한 분을 안태우고 온 것 같아요!”
“누구요?”
조수석에 타고 있던 ‘비명’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짧은 머리에 청바지 입고 분홍색 티 입은 분이요.”
“빠진 사람은 없는데……. 저희들 여섯 명 다 맞아요!”
“네? 분명히 일곱 분이셨어요! 올 때도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아 계셨던 여자 분인데…….”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희들 중에 여자는 ‘좀비소녀’님 하고, ‘호러퀸’님 말고는 없어요. 게다가 올 때부터 뒷자리 창가 쪽은 비어 있었어요.”
난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녀의 그 어색했던 말투가 드라이아이스처럼 달라붙어 내 머릿속을 지져댔다. 나는 어떻게 서울까지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운전을 하다가 몇 번이나 헛것이 보여 차를 멈추곤 했고, 결국에는 ‘비명’이 대신 운전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그해 여름이 지나갔다. 나는 여름의 끝물에 계속 앓았다. 눈만 감으면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고, 눈을 뜨면 헛것이 보여서 신물이 올라왔다. 고로, 심심할 새도 없었고, 하품을 할 틈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다지 무서웠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생경하고 낯선 느낌, 차가운 음료수를 한 번에 들이켜고 난 뒤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은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가을이 돼서야 차츰 충격에서 벗어났다. 멍하니 옥상에 앉아 있으면 속 깊은 가을 햇살이 한기 가득한 몸을 데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나는 복학을 했고, 이래저래 공부를 했다. 취직도 했다.

흔하디흔한 이야기처럼 그 사건 이후 내가 더 이상 심심하지 않는 전심전력의 삶, 열정 가득한 삶을 살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당연히, 피를 마시는 종교는 믿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순간에는 흉가에서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던 그 사람들처럼 목이 터져라, 몸이 부셔져라 노력을 했다.
그런 일들 중에 하나, 지금의 아내에게 청혼하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달음에 달려가 결혼 승낙을 얻고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새벽, 나는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사진기를 꺼냈다. 강원도 흉가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는 다시 쳐다보지 않았던 물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전원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배터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여러 장의 사진들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강원도 흉가를 배경으로 한 그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그녀는 사진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른손 손목에 붉게 그인 칼자국과 그때보다 자라서 어깨까지 온 머리칼을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동안, 나는 왜 그녀가 그토록 낯익었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 그 사진을 확인할 용기가 없었기에 내내 미뤄두고 있었을 뿐, 강원도 흉가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는데, 다시 보니 역시 확실했다.
나는 사진기를 든 채로 책상 서랍을 뒤졌다. 얼마쯤 뒤졌을까, 서랍에서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끝이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고 여기저기가 하얗게 바랜 오래된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 사진에 찍힌 젊은 여인의 모습만은 선명했다. 여름 햇살아래에서 브이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인은 사진기 속의 그녀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사진기와 흑백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흑백사진을 살며시 뒤집었다. 거기에 적힌 글귀가 선명하게 반짝였다.

- 아들에게 남기는 단 한 장의 사진. 강원도에서 엄마가. -

툭. 사진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슴 한쪽이 따뜻해진다는 걸 느낀 순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진기의 배터리 표시가 깜박이며 스르르 사진기가 꺼지고 말았다. 순간, 나는 똑똑히 들었다. 억양도 없고, 고저도 없지만 한 없이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를.
“행복해져라. 아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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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돌이 09.04.16 18:15 댓글 수정 삭제
    한단소에서 읽었던 작품 중 제일 좋았던 글이에요. 여기서 또 보니까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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