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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울음소리를 잘 들어보라. ‘야옹’하고 우는가? 천만의 말씀이다.결론적으로 말해 고양이 울음소리는‘야옹’이 아니며, ’야옹‘은 인간의 언어 형태 중 하나로, 고양이 울음소리라고 인간이 정한 의성어일 뿐이다.
“야옹~ 야옹~”
아파트 단지 내, 비탈진 찻길 가에, 두꺼운 종이인 듯한 상자 안에, 눈 따가운 저녁 햇살 속에, 새까만, 윤이 반지르르한 털빛에 초록색 눈동자의 꽤 인상적인 고양이가 정확히 고양이 울음소리라고 인간이 정한 의성어를 말했다.
“야옹, 야옹, 야옹,”
까만 털, 동그란 초록 색 눈, 까만 코, 쬐끄만 하얀 송곳니, 어디로 보아도 새끼 고양이로 보이는 생물체 세 마리가 ‘야옹’이라는 의성어로 합창을 했다.
“그야~ 고양이가 야옹거린다고 나무랄 수는 없지.”
유달리 길게 느껴지는 무덥고 피곤한 하루였고, 청력에 좀 이상이 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나는 이 기묘한 고양이 가족을 무시하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마. 도와줘요!”
고양이 가족이 든 종이상자 앞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발길을 돌리는 참이었다.
“민사법...인간과 고양이의 전략적 관계법 2조 1항-인간은 곤경에 처한 고양이 가족에게 주거지를 제공할 명분과 권리를 가진다.”
나는 머뭇머뭇 고양이 가족을 돌아보았다. 한 마리 더 있었다. 고양이 가족이 든 상자 뒤, 푸라타너스 나무 둥치에 앞발로 매달리 듯 붙어 서있는 고양이의 눈이 새파란 빛을 내고 있다.
“지금 네가 ‘말’을 했냐? 아니, 아니- 난 그런 게 궁금하지 않아. 난 아무 말도 못 들었어.”
“당신은 내가 말하는 소릴 들었어.”
푸라타너스 나무 둥치에서 펄쩍 뛰어 나온 푸른 눈의 고양이가 내 운동화 끈을 뒷발로 밟고 앞발 발톱으로 바지자락을 걸어 잡고 늘어졌다.
“당신은 고양이가 야옹하고 울던 시대의 인간이고 우리는 고양이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된 시대의 울림계곡 마을 고양이들이야. 울림 계곡의 개선된 고양이들은 무시당할 수가 없어. 인간에게 인격이 있듯이 우린 묘격이 있고 묘권이 법에 명문으로 보장된 그런 고양이들이야. 단언컨대 우릴 무시하고 가면 벼락 맞을 거야.”
기름이 끓는 소리 비슷했다. 뭔가 찌직거리더니 돌연 고막이 터져나갈 듯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내 발 앞으로 겨우 2미터 쯤 떨어진 자리로 마른하늘로부터 찬연한 백광이 내리꽂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일세? 말 그대로- 어허 이런- 이런-”
비탈진 찻길 위쪽으로 2~3백 미터 올라간 아파트 건물 입구의 경비실에서 고개를 내밀고 어이없어하는 경비 아저씨의 감탄을 돌아볼 여유가 그 때 내게는 없었다.
“어허이~ 괜찮은가? 이게 무슨 일인가 진짜 말 그대로 날벼락일세?”
벼락이 떨어진 자리로부터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희귀한 구경을 한 경비 아저씨는 나보다는 여유가 있었고 감탄을 연발하며 좁은 경비실 안을 몇 바퀴 돌더니 경비실에서 한 발짝 나올 용기를 내었고 슬금슬금 내가 입을 벌리고 얼 빠져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근데...이게 뭔가 웬 고양이...어구 새끼까지...응?”
경비 아저씨의 시선이 종이 상자 속의 고양이 일가족을 훑고, 내 바지자락을 이젠 아주 물고 늘어져 있는 고양이에게서 멈추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새끼들까지 있는 고양이를 여기 버리려고!”
“어- 예, 아니, 그게 아니라...”
고양이 주인이 어떻게 할 예정이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왜 얘기가 그리 튀는가 말이다.
“자네- 이 아파트 사나? 지나가는 걸 한 두 번 본 것도 같은데.”
“아뇨- 아닙니다. 저 위 쪽... 아파트 길을 질러가는 게 빨라서 이리 다닙니다.”
“그래, 그렇겠지. 아파트에선 고양이 못 키우네. 버릴 때 버리더라도 기왕이면 주워 갈 사람이 다닐 만 한 데다 버려야지.- 아니, 좌우간 여기 버리면 안 되네! 자, 자. 이놈들 몽땅 도로 들고 가게-”
내가 고양이 주인이리라는 경비 아저씨의 확신은 깨뜨릴 가망이 없어 보였다. 나는 경비 아저씨가 주워 주는 고양이 새끼와 어미가 담긴 종이 상자와 파란 눈의 고양이까지 어물어물 받아들었다.
'그냥 좀 희한한 우연이었겠지... 마른벼락이 마침... 그래봐야 고양이들인데, 뭐 별 일 있으려고....'
고양이들이 든 상자를 들고 파란 눈의 고양이를 팔에 매달고, 아파트 비탈길을 벗어나 계속 산동네로 오르는 비탈길을 오르며 난 생각했다.
"우연이었을 거예요. 제 말은, 벼락 맞을 거란 말은 그냥 해본 소리였단 거예요."
내 생각을 눈치 챈 듯 파란 눈의 고양이가 말했다. 말을 하는 고양이를 팔에 매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각되자 왠지 제 발이 저려 나는 주위를 살폈다. 금빛 저녁 햇살이 비껴 내리는 후덥지근한 여름 산동네, 그래도 제법 깨끗한 연립이나 세를 놔먹는 주택들이 늘어선 비탈길엔 오늘따라 오가는 사람도 없이 달랑 나 혼자 뿐이었다.
"녹색당이 이젠 분양 사업까지 끼어들어 시공 이동을 방해하는 바람에 이 꼴이 됐지만, 그래도 설마 애꿎은 사람에게 벼락까지 끌어대지는..."
기름이 끓는 듯한 소리에 고양이가 말을 멈췄다. 내 팔에 매달린 고양이와 종이 상자를 푸른 빛이 물들인다. 2m 쯤 위쪽 비탈길에 푸른 빛의 커다란 구체가 회전하고 있다. 지름 2~3m는 될 듯한 구체의 회전이 느려지다가 곧 멈춘다. 구체가 투명해지고 그 안에 든 두 인물이 드러난다. 한 여자와 남자가 서 있다. 거리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니다. 짧은 머리칼의 거구인 남자는 몸에 딱 붙는 레오타드 같은 의상에 허리께에 반투명한 청색 천을 길게 늘어뜨리고 신발도 없다. 여자역시 레오타드 같은 의상에 한 쪽 어깨부터 허리 아래까지 우유 빛으로 반짝반짝하는 천을 늘어뜨리고 머리는 끌어 모아 정수리 께에서 상투처럼 틀어 올리고 있다. 둘 다 레오타드의상으로 발바닥까지 감싸고 신발은 신지 않고 있다.
"감사합니다."
상투처럼 틀어 올린 머리에 보랏빛 입술을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고양이를 주워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저희가 고양이들의 주인입니다. 그러니..."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내가 안고 있는 상자에 손을 뻗었다. 고양이가 비명처럼 소리 지른다.
"주인 좋아하네! 당신들 녹색당의 과격분자들이지!"
여자는 고양이의 외침에 개의치 않고 상자를 양손으로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긴다. 고양이가 다급하게 소리 지른다.
"안 되요! 상자를 놓치지 마세요! 과격분자들 손에 넘어가느니 죽는 게 낫다고요!"
여자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며 상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쩐지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나는 상자를 여자의 손에서 잡아채 빼냈다. 그 여세에 상자 안의 고양이들이 한 쪽으로 쏠려 벽에 가볍게 부딪혔지만 새끼들도 어미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고양이가 싫어하지 않습니까. 주인 아니신 것 같은데요?"
"주인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이 고양이들의 인공성대와 그 외 부자연스런 인공장치들을 떼어내 자연스런 동물의 상태로 되돌리려 한다는 게 중요하죠. 고양이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게 뭐 나쁘겠어요?"
"울림 계곡의 고양이들은 삶의 질을 개선해준 인공 장치에 익숙해! 이제와서 떼어낸다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짓이야!"
"고양이들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내가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말했다.
"한기창씨~"
거구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 남자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것일까?
"고양이들의 의견은 감안할 것이 아니오."
"어떻게 내 이름을 알죠? 난 당신을 처음 보는데!"
"재미있는 현상이죠. 우린 당신을 조금 전에 만났소. 아니 지금 시점보다 미래의 목소리를 들었지. 시공에 약간 오류가 생겨서 우린 좀 전에 지금 시점보다 미래에 있는 당신의 시공과 잠시 엇갈렸었소. 양측의 접점은 소리뿐이었지만."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뭐 대단한 건 아니오. 중요한 건 당신은 본인과 관계없는 말썽에 쓸데없이 끼어들었고 괜한 피해를 보기 전에 손을 떼야한다는 거죠."
고양이가 힘껏 내 팔에 매달리는 게 느껴졌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의 눈길이 내게 쏠려 있었다. 초록색의 맑고 예쁜 눈.
"우린 허가 받은 이동에 사고가 났을 뿐이지만-"
고양이가 내 팔에 힘껏 매달린 채 내 대신 대꾸했다.
"당신들은 불법적인 시공 이동을 하고 있어. 본부에서 경찰에 이미 신고했을 거야. 당신들은 변명의 여지없이 구속감..."
"동물에게 말하는 기능 같은 건 정말 전혀 쓸모가 없는 거라니까!"
여자가 고양이의 말을 가로채 소리 질렀다.
"자, 한기창씨- 당신은 고양이의 말을 듣겠어요. 인간의 말을 듣겠어요!"
"인간이니 고양이니의 구분을 떠나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천천히 말했다.
"당신들의 말은 사리에도 맞지 않고 거의 협박으로 들려. 나는 고양이를 몇 마리 주웠을 뿐이고 가능하다면 제 주인을 찾아주고 싶어요. 당신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당신들에게 고양이들을 넘겨줄 이유가 지금으로선 없어요."
"역시 바보스런 판단을 하는군. 인간은 말하는 동물 따위가 얼마나 번거롭고 쓸모 없는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해!"
여자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뒤에 서있던 남자에게까지 물러나자 다시 한 번 푸른 구체가 그들을 감쌌다. 푸른 구체가 회전하다가 가속하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지더니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다시 불길한 기름 끓는 소리가 났다. 내가 안고 있는 종이 상자-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그 물체를 종이라 부를 수 있다면- 위로, 하늘로부터 쭉 뻗어온 백광이 내리 꽂혔다. 그 백광은 백열된 상자 위에서 투명한 뚜껑에라도 부딪힌 듯 갈갈이 찢겨 상자 벽면으로 빨려 들어가고 귀를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하늘을 달려간다. 상자는 더욱 새하얀 빛을 뿜어댄다.
"어-"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은 나완 달리 사태를 재빨리 파악한 듯 파란 눈의 고양이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상자를 피해 내 어깨로 기어올랐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상자가 바로 내 팔에 안겨 있는 물건이라는 자각을 내가 했을 때는 볶아치는 천둥과 백광이 서너 번 더 쏟아지고 새하얀 빛을 뿜어대던 상자가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을 때였다.
"안 되요! 상자를 당신 몸에서 떼어 놓으면 벼락의 보호막도 없어진다고요! 그럼 바로 벼락 맞는다고요!"
숨이 턱 막히는 열기를 내뿜는 상자를 내려놓으려 몸을 굽히는 내게 파란 눈의 고양이가 소리 질렀다. 어깨 위 얇은 여름 옷 속으로 고양이의 발톱이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어딘가 지붕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요! 그럼 위치 추적도 어려워지고 벼락도 방해물이 너무 많아서 보낼 수 없으니까!" 

반쯤 얼이 빠진 상태에서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령자가 새파란 눈빛의 고양이라고 해도 말이다. 내가 대한민국의 사지 멀쩡한 청년으로 아르바이트로 하는 편의점 근무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이며 무언가 정규직을 얻을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더위를 먹은 탓인지도 모른다. 내가 얌전히 고양이의 말을 따라 번쩍번쩍하는 상자를 안고 산동네 꼭대기에 있는 내 집-정확히 말해 내가 월세로 세 든 방이 있는 집으로 올라 간 것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다 하필 내가 3 년 전에 졸업한 대학의 2학년 생이어서 새까만 후배가 되는 예쁘장한 집 주인 딸과 좁은 마당에서 딱 마주친 것은.
"어- 아, 안녕하세요..."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머리를 굴리며 내가 우물거렸다.
"네, 덥네요. 근데..."
집 주인 딸의 시선이 내가 안고 있는 상자로 떨어졌다. 백광은 끊겨 상자 속의 어미와 새끼 고양이들이 들여다보였지만 상자는 여전히 열기와 빛을 내뿜고 있다. 나는 난감함에 말문이 막혔다.
"귀엽네요. 눈동자가 초록색이네? 어깨 위의 얘도 귀여워요. 뭐야~ 아주 늘어져 있네."
"도, 돌려줄 거예요! 내일 주인에게... "
나는 얼른 상자를 내려놓고 가리듯 막아섰다.
"임시로, 잠시만 맡은 거예요! 물론 기를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에요."
집 주인 딸이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찌푸린 얼굴도 예쁘다...
"아버지는 뭐라고 않으시겠지만...엄마는...지금 외가댁에 가셔서 내일 돌아오실 거예요. 그 때까지 저 고양이들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집 주인 아줌마는 고양이 알레르기다. 처음 세 들어올 때부터 '고양이 기를 생각은 하지 말라' 였다.
"내일, 내일 돌려주러 데리고 나갈 거예요. 아주머니께 폐가 되는 일은 없을 거에요!"
"더워서...아이스크림이라도 사올까 하고 나오던 참이었어요. 거기...좀 비켜줄래요?"
나는 내가 대문을 딱 가로막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뒷발로 상자를 밀며 허둥지둥 자리를 비켰고 집주인 딸은 생긋 웃어 보이며 대문으로 나갔다.
그러지 않아도 무더운 날씨에 열기를 뿜어대는 상자를 안고 내 방이 있는 이 층으로 올라가며 나는 셔츠가 땀에 젖어 축축하게 들러붙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새 불평이 큰 소리로 튀어나온다.
"더위 먹겠네. 정말! 샤워부터 해야겠다."
"샤워 하면 되지. 누가 말리나? 왜 소리는 지르고...어어?"
계단을 다 올라서면 바로 마주 보이는 방에는 노동판의 아저씨가 세 들어 있다. 더위에 방문을 열어놓고 문턱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올라오는 나와 내가 들고 있는 상자를 훑어보며 일어선다.
"그 것들은 뭐야. 고양이네? 진짜..."
나는 안고 있는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상자 안의 고양이들은 어미도 새끼들도 얌전히 바닥에 붙어 엎드려 있다. 열기는 아직 남아 있지만 내뿜던 빛은 사라져 어디로 보아도 평범한 종이 상자로 보인다. 어깨 위에 늘어져 매달려 있던 고양이가 일어나 앞발을 움직여 다시 자리를 잡으며 상자를 살핀다.
"진짜지 그럼... 아, 더위 먹겠어요 진짜! 샤워부터 하고 봐요."
나는 내 방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재게 놀리며 아저씨를 지나쳤다.
"아까 누가 자네 찾아왔었어. 희한한 사람들이었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아저씨를 돌아보았다.
"찾아와요? 누가요?"
"남자랑 여자였는데, 원 남녀가 둘 다 도깨비 같더라니까. 난데없이 나타났다가 또 번개처럼 가버렸어. 아 계단 내려가는 게 꼭 번개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더라니까."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내 방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등 뒤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
"자네 어깨에..."
"고양이 있는 줄 알아요."
"고양이 발밑에 뭐가 묻어 있는데? 피 같다..."
피였다. 방에 들어와서 거울을 보니 어깨 위 고양이 발톱 밑에 지름 10Cm는 될 듯한 원형으로 얼룩이 져 있었다. 나는 방 한가운데 상자를 내려놓고 어깨 위의 고양이를 떼어냈다.
"잠깐! 목욕할 거면 같이 해요!"
내 손에 잡힌 채 허공에서 버둥거리며 고양이가 소리 질렀다.
"너 너무 뻔뻔스럽지 않냐?"
"미안하니까 그러는 거예요. 난 위생적인 고양이지만 지금 내 발톱에 대해 자신할 수 없어요. 병균이 있을 수도 있고 파상풍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요."
"파상풍?"
"그 상처 빨리 소독하고 치료해야 해요. 이 시대 식으로 하면 병원에 가야겠지만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있어요. 알기 쉽게 말해 내가 상처를 핥으면 침에서 소독제와 항생제, 파상풍 항 독소제까지 차례로 나와 상처를 소독하고 피부로 약이 스며들어 치료하게 되요."
나는 몹시 피곤했고 확실히 약간 더위 먹은 듯 머리가 아팠다. 어서 씻고 선풍기 틀어놓고 눕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래서 다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부엌 수돗가로 고양이를 데리고 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고양이에게 끼얹어주었다. 나도 찬 물을 몇 번이고 뒤집어쓰고 특히 어깨를 주의해서 비누질하고 다시 찬물로 씻어 내렸다. 수도꼭지에 머리를 대고 1분쯤 찬물을 썼다. 그러고 나니 두통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나를 당신 어깨에 올려 주세요."
내가 머리에 물을 쓰는 동안 바로 그 밑에 앉아 쏟아지는 물을 즐기던 고양이가 말했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지 않나?"
"울림계곡 고양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나타난 효과 중 하나가 목욕을 매우 즐기게 됐다는 사실이에요."
다시 머리가 아파질 것 같아서 나는 말없이 고양이를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어깨에는 가늘지만 날카로운 고양이 발톱자국이 몇 가닥 얽혀 있다. 발톱 자국에서 다시 피가 배어나와 어깨에 맺힌 물방울들 사이로 번지고 있다.
"당신 팔 위 쪽으로...내가 어깨 상처를 핥을 수 있게."
이왕 이리 된 거 그냥 가보자라는 심정이다. 나는 어깨 아래 팔에고양이가 붙을 수 있게 조금 내려주었다. 고양이는 발톱을 집어넣고, 팔에 말 그대로 네 발로 붙어 어깨 위로 붉은 혓바닥을 내밀었다. 깔깔한 혓바닥이 피부에 닿아 훑고 지나는 감촉이 껄끄럽게 느껴진다. 진한 박하 향이 피어오른다. 어깨 위 깔깔한 혓바닥 밑으로 시원한 감촉과 함께 뭔지 모를 액체가 피부 위로 한 꺼풀 덮인다. 내감각이 이상해진 게 아니다. 투명한 액체가 피부 위에 덮여 뽀얗게 굳어지는데 그 액체 밑의 피부로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기분 좋은 감각이 내려앉고 있다.
선풍기를 켜기 전에 나는 런닝과 반바지만 걸쳐 입고 부드러운 수건으로 고양이털을 말려주었다. 창밖으로 어스름이 깔리고 있다. 나는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접이식 삼 단 매트를 깔고 쓰러지듯 누워 보송보송하게 마른 털에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파란 눈의 고양이를 바라본다. 몹시 피곤함에도 아무래도 신경이 곤두선다.
"상자 쪽으로도 선풍기 돌려줘야겠지?"
선풍기의 다이얼을 '회전' 쪽으로 돌리며 내가 중얼거렸다.
"저 상자 안은 쾌적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도록 돼 있어요. 선풍기 정도와 비교할 수 없죠."
농담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 나는 몸을 일으켜 상자로 다가가 상자 안에 손을 넣어보았다. 상자 바깥으로 나와 있는 팔로 느껴지는 온도와 상자 안에 있는 손이 느끼는 온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손 쪽의 온도가 낮아 시원하게 느껴진다. 상자 안의 새끼 고양이들이 동그란 눈으로 내 손의 움직임을 좇고 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을 달래듯이 등을 살살 핥아준다. 그 고양이들은 '야옹'이라는 의성어를 소리 내어 말한-인간의 목소리 같지는 않았고 좀 새된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 놈들은 분명 인간의 언어 중 의성어를 말했다- 이후론 계속 침묵하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어지럽고 귀찮은 일에 말려들었다는 실감이 든다.
"이동 상자엔 기본적으로 환경조절 장치가 붙어 있어요."
삼단 매트에 드러누워 선풍기의 다이얼을 정지로 돌려놓는 내 손 위로 뛰어오르며 고양이가 말했다.
"새끼 딸린 어미라서 좀더 신경 쓴 게 없지 않지만 이동의 충격을 견디기 위해 필수인 것들이 대부분이죠... 어디 좀 봐요."
고양이는 내 손 위에서 팔로 기어올라 런닝 어깨끈 위로 드러난 상처를 살핀다. 문득 엉뚱한 것이 궁금해졌다.
"어깨 상처...피도 핥았지 아까... 먹었냐?"
고양이의 눈이 새파란 빛을 뿜었다.
"농담 마세요! 난 저 상자 안의 고양이들과 다르다고요! 이 시대 인간들에 대한 기본적인 방역조치 몇 가지 받은 것뿐이라고요. 면역도 내성도 전혀 없는, 낯익히기조차 하지 않은, 이렇게 멀리 떨어진 시대 인간의 피를 먹을 만큼 무모하지 않아요."
"멀리 떨어진 시대?"
"그래요. 상자 안의 고양이들은 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과 임상처치를 모두 받고 왔지만 난 아녜요. 난 중개자에 안내자일 뿐이라고요. 이동이 제대로 됐으면 곧 돌아갔을 거예요."
"상자 안의 고양이들은 어째서 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야- 어...그건 이야기가 길어져요. 좌우간 우리는 지금 목표로 한 장소에 도착하지 못했고 그건 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요. 우리가 원래 목표지점에 가야만 위험이 없어지고 또 당신도 이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죠."
"나는 지금 이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 상하겠지만 그래요. 우선 벼락 말이에요. 우리가 원래 목표지점으로 가지 못한 것도 벼락 때문이에요. 이동 도중에 벼락이 끼어들어 그 충격으로 이동 좌표가 날아가고 말았어요. 본부에선 목표 시점에 있는 뇌운(澐雲)에서 끌어오는 거라고 했어요."
"뇌운에서 벼락을 끌어와?"
"맞아요. 그 건 이 시대에...에 그러니까, 현재와 가까운 시간에 있는 뇌운에서 끌어오는 거예요. 이미 당신에게 표적을 맞춰놓은 것 같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 그것도 연속적인 날벼락을 맞게 할 수 있다는 거냐?"
"당신 주소를 추적해 그런 짓까지 할 거라곤 우리도 생각 못했어요. 비록 가까운 뇌운에서 벼락을 끌어내는 방법 밖에는 별다른 공격 방법이 없고, 건물 안에 있으면 비교적 안전하다고 해도요. 언제까지나 건물 안에 있을 수도 없고..."
"네 말을 듣자니...너희...시대에는 시간을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서 멀리 떨어진 이시간대로 왔다는 거고, 우연히 아마도 운 없게 내가 너희들과 맞닥뜨렸다는 거냐?"
"완전히 우연만은 아니에요. 당신은 반려자로 일단 이름은 올라 있어요. 주변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한 개선된 반려동물은 커녕 그냥 고양이를 기를 여유도 없는 상황이라는 부연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요."
"반려자? 그 건 또 무슨 소리야?"
고양이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파랗고 예쁜 눈을 가진 고양이가 인간처럼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며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쉰다...
"이거 보세요. 우리 이럴 시간이 없어요. 우선 소비되지 못한 이동의 힘이 잔류되는 장소와 시간의 접점을 찾는 일이 급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위험해진다고요. 부디 협조해주세요. 자칫하면..."
"우리라고? 그래... 우리가 지금 어떤 일을 맞고 있는지 모른 채 협조할 마음이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올시다!야."
"설명할게요. 시간이 닿는 한 자세히 설명할게요. 하지만 우선 시공의 접점을 찾아야 해요. 만일의 경우 그냥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시공을 놓치면 당신은 정말로 위험해지는 거예요. 아무 대책 없이 상자와 고양이들과 함께 벼락 공격에 노출되게 된다고요."
고양이들이 든 상자와 계속 함께 벼락을 맞고 있어야 한다는 상황은 확실히 끔찍한 것이어서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내 표정이 누그러지는 것을 봤는지 고양이는 쪼르르 상자로 달려가 상자 벽으로 쑥...들어가고 말았다.
"당신 한국 사람이죠? 이 거라면..."
눈을 화등잔으로 뜬 내가 엉거주춤 앉아 바라보는 앞에서 고양이는 상자 속, 어미 고양이 꼬리 부근에 뒷발로 서서 앞발로 벽을 더듬었다. 바람 소리 비슷하다. 약하게 핏-하는 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화면이 내 눈앞으로 좌악 펼쳐진다.
"이 건 당신 컴퓨터 키보드와 똑같아요, 당신 컴퓨터는 쓰죠?"
고양이는 방구석의 컴퓨터와 프린터를 흘낏 한 번 쳐다보곤 다시 벽면을 더듬다가 앞발로 한 지점을 쓸어내렸다. 공중에 뜬 화면 앞으로 화면과 똑같이 반투명한 키보드의 자판이 나타났다.
"이걸 어쩌라는 거냐?"
"이 건 여러모로 컴퓨터 단말기와 비슷해요. 하지만 이 기능을 쓸 수 있는 건 앞으로 두 시간 정도가 한계일 거예요. 그러니 서두르자고요. 우선 지금 우리 상황을 그 대로 입력...시공이동 본부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시공이동에 사고가 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 상황을 그대로 키보드로 쳐...글로 쓰고-물론 한글이에요. 현재 우리 위치를 쓰고 엔터 치면 본부로 자동 입력 되요."
허공에 떠있는 반투명한 자판은 한글 자모와 영자 알파벹이 함께 표시되어 있고 숫자와 특수 문자 키, 핫키 등 정말 컴퓨터 키보드와 똑같았다.
"네가 잘 알 테니 네가 쓰면 되잖아."
"내 앞 발을 보세요."
고양이가 상자 벽을 수월하게 뚫고 나와- 벽에는 아무 이상 없이 말짱했다- 삼단 매트 쪽으로 달려온다.
"그런 키보드를 다룰 수 있게 생겼나."
고양이가 내 무릎에 매달려 뒷발로 서서 앞발 하나를 내밀어보였다. 그 조그만 앞발로 키보드를 다루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마나 일행은-마나는 엄마 고양이 이름이에요- 마나 일행은 8월 9일 19시 35분 12초에 삼마아파트 3동 뒤편 찻길 가로 튕겨 나왔음. 예정지점으로 갈 방법을 찾고 있다."
투명한 키보드는 터치보드 비슷했다. 자판의 글자에 손끝이 닿자 소리 없이 화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별 어려움 없이 고양이가 불러주는 내용을 화면의 글로 옮길 수 있었다.
"현재 이동 장치와 끊긴 상태이므로 시공 이동의 접점을 찾아 이 곳 지명과 시간으로 알려주길 바란다. 마나 일행의 현재 위치는..."
내 무릎에 매달린 고양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이 집 주소요. 주소를 말해주세요."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00번지에 00호."
"마나 일행의 현재 위치는 2009 년 8월 9일 20시 5분.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00번지에 00호. 2층 계단에서 바라보아 오른쪽 방. 방주인은 한기창."
내 집 주소와 이름이 거론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화면의 글자로 옮겼다.
"됐어요. 우선은... 본부에 연락했으니 응답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요."
"잠깐, 아까 만난 남녀나 벼락에 대한 얘기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 맞아요! 잊을 뻔 했네! 음..."
고양이가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녹색당 과격분자로 보이는 인물 둘이 8월 9일 19시 40분경의 시점에 왔음. 한기창을 협박하다가 곧 이동했음. 어디로 갔는지는 모름. 그들이 떠난 뒤에 곧 벼락이 쏟아졌음 상자엔 보호막과 추적 혼란 장치가 있어 추적이 불가능하니 표적은 한기창이라 생각 됨."
나는 고양이의 말을 화면 위의 글로 옮겼다. 글쓰기를 끝내고 엔터를 치자 약한 휘파람 소리 같은 게 났다.고양이가 내 무릎에서 떨어져 상자로 달려갔다. 다시 벽으로 쑥 들어가더니 아까 만졌던 벽을 더듬어 쓸어내린다. 약한 바람 소리와 함께 화면과 키보드가 내 눈 앞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설명하겠다고 했지."
"아, 물론이죠. 우선..."
고양이가 이 번에는 상자 벽을 타넘어 뛰어내렸다.
"반려동물 혁명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해요."
"반려동물...혁명?"
"혁명이었죠! 인간과 반려동물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비롯 여러 자잘한 문제까지 해결해준 기술과 방식들이 연달아 발견되고 또한 받아들여진 거예요! 인간과 반려동물들은 드디어 진정한 상호 소통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거죠!"
"고양이가 말을 하는 것과 같은...기술을 개발했다는 거냐?"
"그래요. 아주 간단한 인공성대 시술로 가능해요. 사실은 인공 성대만이 아닌 '말'을 하는 기계를, 생체에 이식해도 무리 없이 적응하는 특수 재질로 만든 거죠."
"잘...이해가 안 되는데."
"이 시대 기술로도 컴퓨터나 로봇에게 간단한 말을 하게 할 수 있잖아요. 그걸 지극히 소형화했고, 살아 있는 세포 조직에 끼워 넣어도 잘 적응하는 특수 소재도 발명되었다는 거죠."
그 뒤 6~7 분 쯤 지속된 고양이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반려동물 혁명이 전 세계로 물 밀 듯이 퍼져나가자 자연주의자라고 자칭하는 반대론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동물이 동물답지 않게 너무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부적절하며 반려동물 혁명 관련 사업이 이윤 추구에 치중한 나머지 이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폭력적인 방법을 쓰는 걸 마다 않는 과격파 반대론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반려동물 사업 중엔 '혁명을 평화적으로 일반화하기' 사업도 있다. 반려 동물 무료 분양이 목적인 사업이다. 그 중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한도 내의 과거의 인물에게 개선된 반려동물을 보내는 사업도 있는데, 마나 일행이 미래에서 이 시간대로 찾아오게 된 사유가 바로 반려동물 과거로의 분양 사업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란 건 바다 위의 섬들과 같은 거예요.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다 밑바닥으론 서로 이어져 있죠."
고양이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을 모으듯이 천천히 말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도 있어요. 물로 한도가 있지만. 마나 일행도 그 영향력의 한도 내에 있는 인간에게로 갈 예정 이었어요. 그런데 반대파들이 끼어든 게 틀림 없어요. 이동 도중에 갑자기 목표시점의 좌표가 지워져버렸고 갈 곳을 잃은 마나 일행은 어디로든 나와야 했어요. 본부에서 임시좌표로 반려자로 선택된 다른 사람들 중 하나의 좌표를 다시 입력한다고 했어요. 그게 당신이에요."
"나...? 왜 내가?"
나는 말을 맺지 못했다. 방 문 쪽에서 기름이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기름이 끓는 듯한 소리...내 머리가 회전했다. 나는 방한가운데 놓인 상자로 달려들었다. 고양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상자를 안아드는 내 팔로 깡충 뛰어올라 상자 안으로 잽싸게 뛰어 들어갔다. 상자 안의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에게 바짝 달라붙어 고양이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 아니- 난데없이! 당신들 뭐요."
문 밖에서 아저씨의 외침이 들렸다.
"거기서 뭐ㅎ--ㅏ--ㅅ--ㅠ--"
아저씨의 말소리가 지익 끌리는 소음으로 바뀐다. 소음이 끊기면서 방문이 열어젖혀진다. 아니, 문은 닫혀 있다. 닫혀 있는 문 밖으로 문이 열리는 게 보인다. 문 밖에는 아까 본 남녀가 서 있다.
"어떻게 된 거지?---"
방 안을 둘러보며 실망한 듯 뇌까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굴속에서처럼 우웅 울려나온다.
"아무도 없잖아?---"
없다고? 상자를 안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내가 여자에겐 안 보인다는 것이다. 남자가 손목에 찬 시계 비슷한 기계를 손끝으로 건드리자 깔대기 모양으로 빛살이 퍼져 오른다. 10Cm정도 높이의 깔대기 빛살 안에는 뭔지 모를 기호와 숫자들이 반짝거렸다.
"우리가 좀 일찍 왔어. 한기창이 고양이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전이야.----"
깔대기 빛살을 들여다보며 남자가 역시 우웅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기창이 시공이동 본부에 위치를 보고한 시점으로 왔어야 하잖아.----"
"삼마아파트 시공이동 출구가 닫힌 뒤에 억지로 다시 열은 거잖아. 그리 나갈 수가 없어서 출구 시점을 바꾸느라 무리한 게 사실이야."
"그 천박한 고양이 몇 마리 때문에...---"
"고양이가 천박해? 당신들은 위선자들이야!"
내 팔 안의 상자에서 고양이가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소리는 들리는지 방 문 앞의 남녀가 당황해서 방 안을 살핀다.
"반려동물 분양 사업은 사회사업에 가까워. 이윤 추구와 관계가 없다고! 하필 분양 사업을 이런 폭력적인 수단으로 걸고넘어지다니!"
"이윤 추구와 관계가 없다고?---"
여자가 발끈 화를 내며 외치는 소리가 웅웅 울리다가 방안 벽에 부딪혀 메아리친다.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방 안을 살피다가 여전히 빈 방으로 보이는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잇는다.
"과거로 그 천박한 동물들을 보내 그 천박함으로 현혹시키고, 그 천박함에 대한 의식이나 여론이 조성되는 것을 원천봉쇄하자는 게 반려동물 분양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의 흉칙한 의도야. 원색적인 이윤 추구 사업들의 지지 기반을 닦는 짓이지!"
"시공이동 본부의 이동 작전에 억지로 끼어들어 위험한 짓을 해대는 당신들은 흉칙하지 않고?"
고양이가 지지 않고 소리쳤다.
"잠깐...한기창이오?---"
남자가 끼어든다.
"시공에 약간 이상이 생긴 것 같소. 우린 당신이 보이지 않아.----"
"아저씨가 봤다는 희한한 남녀가 당신들인가. 당신들은 지금..."
뭐라고 해야 할지 머릿속이 혼란해져서 나는 말을 멈췄다. 저 남녀는 지금 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의 시간에 있다...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의 내가 있는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맞부딪쳐 있다.
"난 당신들을 이미 만났었소. 당신들에게는 조금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우릴 만났다고?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고양이들을 내줄 수 없다는 게 내 대답이었소."
"대답은 바뀔 수 있소.--- 중요한건---"
"이것 봐요. 위선자들!"
고양이가 끼어들었다.
"이런 상태는 우리뿐 아니라 당신들에게도 위험하다고요! 시공의 경계가 무너져서 서로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누가 책임질 거죠?"
"누구죠.--- 시공 이동에 대해 아는 것 같은데.--- 한기창씨 친구요?----"
"미안하지만 고양이야. 마나 일행의 안내자 고양이지!"
"고양이---"
문 밖의 남녀가 웅웅 울리는 소리로 합창을 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방 안을 들여다보며 오만상을 찌푸리는 남녀의 모습이 한 순간 흐르는 물에 비친 듯 흔들렸다.
"고양이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오.----한기창---후회할 거요.---"
남녀가 함께 문 앞에서 홱 돌아섰고 그 뒷모습이 다시 한 번 흔들 흔들렸다. 그 때였다. 돌아선 남녀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아저씨가 눈에 띈 것은. 기묘한 모습이다. 비디오를 슬로우모션으로 동작시킨 듯이 느리게, 천천히 움직인다. 아저씨의 입에서는 뭔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온다.
"ㄷ----ㅏ-----ㅇ----ㅅ----ㅣ-----ㄷ----ㅡ----ㄹ----ㅁ----ㅜ----ㅓ---ㄹ----ㅎ----ㅏ----"
남녀는 아저씨를 무시하고는 계단 쪽으로 움직여 아저씨를 지나친다. 남녀가 계단을 내려 보이지 않게 되고야 아저씨는 슬로우 모션으로 남녀가 이미 지나간 자리로 돌아선다. 아저씨가 다시 방문 쪽으로 돌아서기까지 다시 몇 초의 시간이 걸린다. 문은 닫혀 있다. 닫힌 문 밖에 열린 문이 있다. 초현실파 거장의 그림 같다. 닫힌 문 밖 열린 문에선 아저씨가 내는 뭔지 모를 소리가 이어진다. 아저씨가 슬로우모션으로 문손잡이를 잡는다. 아저씨에게도 방안의 내가 보이지 않는 듯이 천천히 방안을 휘둘러보기만 하고 그냥 문을 닫는다. 천천히 짜증 날 만큼 천천히 문이 닫히며 닫힌 문의 투명도가 사라져 불투명하게 되어간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닫혀 있던 문과 맞춰지며 완전히 불투명해진다. 뭔지 모를 아저씨의 소리도 뚝 끊긴다.
"정말 고마워요. 확실하게 거절해주셔서."
고양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득 상자의 무게가 느껴진다. 꽤 묵직하다. 나는 상자를 방 한가운데 내려놓는다. 창밖으로 밤의 짙은 어둠이 내리고 있다.
"뭘, 그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내가 맥없이 대꾸했다. 문득 피곤이 몰려든다. 나는 삼단 매트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안내자라고 했지...너도 꽤 힘들겠다."
"울림 계곡의 고양이들은 작은 일이라도 각자 맡은 일이 있어요."
"일이 있는 고양이라 잘 상상이 안 되는데?"
"지구는 인간들의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지구 지표면의 대부분을... 바닷 속까지도요.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죠. 대부분의 동물들은 이제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느냐에 생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울림 계곡의 고양이들은 그걸 썩 잘하고 있는 편에 속하죠."
"반려자란 건 고양이를...맡을 사람을 말하는 거냐?"
"개선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할 사람을 반려자라고 불러요."
"나는 어떻게 반려자로 뽑히게 됐냐...어떻게 미래에...분양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나에 관해 알 수 있었지?"
"반려동물을 기른 적 있으시죠."
"음...우리 집이 시 외곽 지역이었거든. 집에서 개를 쳤었어. 허스키나 골든 래트리버 같은 비싼 개들을 키웠었지. 고등학교 때 개들 밥 주는 일을 대개 내가 했어. 가끔 동물 병원에 데려가는 일도..."
"병원 기록이나, 반려동물 분양 사업 재단에서 파견한 사람이 목격한 사실들도 재단의 자료실에 올라가게 되요. 당신에 대해선 고등학교 때 반려동물을 돌봐준 일들이 재단 자료실에 올라가 있을 거에요. 일단 반려자 후보로 등록이 되면 계속 재단에서 그 사람에 대한 자료를 모아요."
"뭐야! 날 감시했다는 말로 들리는데?"
"감시와는 다르죠. 적당한 분양 시기를 알기 위해서 생활 환경을 살펴보는 것뿐이니까요."
"그 반려자란 당사자의 의견과는 관계 없이 그...개선된 반려동물을 맡아야 하냐?"
"그럴 리가! 재단에서 파견한 사람이 꼭 의사를 묻고 주변 상황 설명도 하도록 돼 있어요. 그리고..."
휘파람 같은 소리가 고양이의 말을 끊었다.
"본부에서 메시지에요!"
고양이가 기뻐하며 상자 쪽으로 달려가...벽으로 쑥 들어갔다.
"지금의 요상한 상황을 한방에 해결할 방법이 있길 바란다."
반투명한 화면과 자판이 펼쳐지는 모양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본부에서도 생각이 있겠죠. 뭔가..."
상자가 푸르게 빛을 낸다. 화면 위로 글자들이 떠올라온다.
시공의 접점을 찾았음. 2009 년 8월 10일 19시 35분 16초에, 삼마 아파트 뒷길 화단-위치좌표를 입력해 두었음-에 접점으로 가는 출구를 열어놓겠음.
메시지 끝이라는 듯 휘파람 같은 소리가 다시 울렸다.
"내일...삼마 아파트 뒷길로 가야한다는 거야? 이걸로 끝?"
"네...내일..."
"그...과격분자라는 남녀는 여기 위치랑 내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 본부라는 곳에서 정보가 샌다는 뜻이야. 그런데 아무 대책도 없이 내일 접점으로 가는 출구를 열어놓겠음-으로 끝이야?"
"본부에서도 뭔가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이라고 봐요..."
고양이가 풀 죽은 소리로 말했다. 창밖으로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휘파람 소리 비슷한 날카로운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리고 있다. 나는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 간신히 눈을 떴다.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젠장 누구야. 누가 이렇게 시끄러운 소릴..."
방 한가운데 놓인 상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다. 나는 삼단 매트 위에 누워 있다. 내 팔을 베고 누워 있던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공중으로 10Cm는 뛰어오른다...내 방안에 고양이가 있게 된 사정이 머리속으로 떠올랐다.
"그만 마나! 깼어요. 깼다고요!"
고양이가 상자를 향해 소리 질렀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멈췄다. 나는 몸을 일으킨다. 상자 안을 들여다본다. 상자 안에서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마주보고 있다. 어미 고양이가 입을 연다.
"나는 반려자에게만 말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비상시니 만큼...시계를 보세요. 한기창씨."
나는 시계를 보았다. 6시 10분.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내방 창은 서향이다. 눈부신 햇살이 창으로 들어온다면 저녁때다. 아침 6시가 아닌 19시 10분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고양이들은 19시 30분까지 삼마 아파트 뒷길로 가야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삼마 아파트 뒷길, 정확히 어제 고양이들을 발견한 그 화단가. 어제의 경비 아저씨가 그 화단 앞에 서 있다. 고양이를 한 마리 어깨에 매달고 고양이들이 든 상자를 안고 있는 나는 제발이 저려 발을 멈췄다. 그러나 경비 아저씨는 나나 고양이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보였다. 경비 아저씨의 시선은 화단을 가로지른,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 벽에 못박혀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 아득한 외침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입구 계단 벽에 뭔가 희끄무레한 형체가 지름 2Cm는 될 구형으로 겹쳐져 있다. 외침은 그 형체 안에서 들려온다. 소리가 작아졌다가 조금 커졌다가 맥동치는 듯한 리듬으로 변한다.
"저게 뭐죠?"
내가 아저씨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 어어...아 자네! 자네한테도 보이는가? 내가 헛것을 보는가보다 했네. 저게 대체 뭔지~ 아직 태양이 벌건 저녁에...귀신인가?"
희끄무레한 구체가 갑자기 푸른 빛을 뿜으며 선명해졌다.
"본부에서 뭔가 생각이 있을 거랬죠!"
고양이가 내 어깨에서 신이 나서 소리쳤다. 푸른 빛을 뿜는 구체의 안엔 어제의 그 남녀가 들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매우 답답한 처지인 듯 팔다리를 마구 움직이며 허우적대고 있다. 마치 남녀가 들어 있는 구체가 계단 벽에 갇힌 듯이 보였다.
"이 곳에 출구를 연다고 하고 좌표까지 입력하니까 신나게 빼가서 이리 이동한 거에요. 본부에서는 이곳에 출구를 열지 않았고 멋대로 밀고 들어온 저들은 여기 딱 갇히고 만 거죠."
경비 아저씨가 내 어깨위의 말하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계단과 겹쳐진 푸른 구체를 바라보고 다시 고양이를 보았다.
"내가 더위를 먹었나보구만! 어, 좀 들어가서 쉬어야겠어."
경비 아저씨는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입구 계단으로 향했다. 입구 계단 안 쪽 경비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고개를 돌리고 부채질을 시작했다. 푸른 구체 안의 남녀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다. 그러나 구체 안의 좁은 공간 외엔 어디로든 움직일 수가 없는 듯 했다.
"본부...에서 한 일이냐. 저게?"
"어림도 없어요. 그야 기술은 본부가 쓰죠. 하지만 저런 건 경찰이 요청해야만 해요. 저건 경찰 작전의 결과임이 틀림없다고요."
"그럼 우리도 뭐 좋아할 거 없지 않냐. 그...출구가 열리지 않았으면 너희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집으로는 다시 갈 수 없어!"
"너무 걱정 마세요. 틀림없이 우리에 대한 대책도 있을 거..."
누군가 내 뒤에서 기침 소릴 냈다.
"실례합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보통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나무랄 데 없는 반팔 셔츠와 여름 바지 차림으로 서 있다.
"부산에서 기차로 시간 맞춰 오느라 좀 신경 좀 썼소. 반려동물 분양 재단 파견원이오."
"죄송하지만 신분을 증명해주셔야 되겠어요."
고양이가 내 어깨 위에서 신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물론이지. 자..."
남자가 품속에서 교통카드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그 카드를 고양이들이 든 상자에 갖다대자 경쾌한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났다.
"통과! 재단에서 나오신 분이 틀림없군요. 그럼 마나 일행은 어떻게 되나요."
"반려자에게 모셔다드리지."
남자가 씩 웃으며 말을 잇는다.
"안내자도 우선은 나와 함께 가야겠소. 시공이동 접점 출입구가 부산에 있어서 말이오."
"그럼 당신에게 드리면 되겠네요."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상자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가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깨에서 고양이를 떼어냈다.
"잘가라. 고생 많았다."
나는 남자에게 고양이를 내밀었다. 남자가 고양이를 받아들어 자기 어깨 위에 올려 놓았다.
"고마웠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고양이가 남자의 어깨 위에서 소리쳤다.
"다음에...당신 차례가 되면 꼭 내가 안내를 맡을 거에요. 그리고 그 땐..."
고양이가 우는 모습을 나는 처음보았다. 고양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고 있었다.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 연락도 없이 결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남자에게 고양이들을 넘겨주고 내방으로 돌아와서였다.
"아르바이트 하나 날라갔네!"
나는 빈방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저녁햇살 속 내 중얼거림은 빈 방안으로 가라앉는다. 어쩐지 혼자 빈 방안에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방금 전까지 말하는 고양이와 있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꿈처럼 느껴졌다.
"어..."
산책이라도 할까하고 방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대문에서 들어오던 집 주인 딸과 마주쳤다.
"그 고양이들...어떻게 됐어요."
꿈은 아니다.
"어...주인에게 돌려주고 왔어요."
"어제 말예요. 좀 이상했던 거 아세요?"
"이상하다니 뭐가요."
그 고양이가 들어 있던 상자요. 반짝반짝했잖아요. 뭐 특수한 재질로 만든 상자인가보죠? 저녁햇살 속에 반짝거리는 상자를 들고 서있는 모습이 뭐랄까...."
저녁햇살 속이다. 집주인 딸의 볼을 발그랗게 저녁 햇살이 물들이고 있다.
"사실 나 엄마만 아니면 고양이 한 번 길러보고 싶은데..."
"원하신다면..."
나는 고양이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기회는 있을 거에요."
그렇다 세상일이란 모르는 거다.
"뭐 언젠가 신기한 고양이를 갖게 될 수도 있죠."
 
 
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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