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옛날 옛적에 어딘가에서 한 소녀가 태어났습니다. 소녀는 매우 작고 아름다웠으며,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의 부모님이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녀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소녀를 고아라고, 작다고 놀려대고 괴롭혔습니다. 친구도 없었습니다. 소녀는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얼른 커지면 예전처럼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소녀는 매일 밤 하늘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얼른 커다랗게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가 커다랗다면 이렇게 슬프고 외롭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소녀는 부쩍부쩍 크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이제 동네 아이들 누구보다도 훨씬 큽니다. 그 어떤 아이도 이젠 소녀를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소녀는 슬픔이 덜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뻐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도 했습니다. 소녀는 그 후로도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이제 동네 어른들 누구보다도 훨씬 큽니다. 동네 어른들은 더 이상 소녀를 불쌍하다고 동정해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소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어른들은 소녀의 몸을 들여다보려 하였습니다. 소녀를 만져보려 하였습니다. 하얀 색 옷을 입은 어른들이 찾아와 소녀를 아프게 했습니다. 검은색 양복과 검은색 안경을 쓴 어른들이 소녀를 감시했습니다. 소녀는 원래 친구가 없었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마음대로 뛰놀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다시 슬픔에 잠겼습니다. 소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커진 자신의 몸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다시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도록 해주세요. 더 이상 아프기는 너무 괴로워요." 소녀의 기도는 매일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일까요, 하느님이 바쁘신 걸까요?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어 지친 소녀는 결국,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에 소녀는 작고 작은 짐을 싸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다시 밤과 낮이 지나고,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숲과 강을 만났지만 소녀는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들과 곰과 사슴과 다람쥐들, 새들이 소녀의 친구가 되어줬습니다. 그래요, 그들이 소녀가 처음으로 가져본 친구들이랍니다.

 

 동물 친구들은 소녀의 크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소녀가 그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처럼 소녀를 놀려대거나 따돌리고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동네 어른들처럼 소녀의 몸을 들여다보거나 만져보고 아프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소녀를 바라보고 이해해 주었습니다. 소녀는 엄마 아빠와 헤어진 이후로 처음으로 다시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동안에도 소녀의 몸은 계속해서 멈출 줄 모르고 커졌습니다. 강이나 산, 호수나 들판 모두 더 이상 소녀가 지내기에는 너무 좁았습니다. 동물 친구들 중 연어라는 물고기가 소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지내던 바다로 찾아가봐요, 그곳은 굉장히 크고 넓은 곳이라 당신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 소녀는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사귀었던 동물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리라는 기대감이 소녀를 들뜨고 부풀게 하였습니다. 바다라는 곳은 소녀가 생각한 것 보다 상당히 멀었습니다.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났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소녀의 몸은 계속 커져서 높고 험했던 산은 조그마한 언덕처럼 보이고 깊고 험했던 강은 마치 시냇물 같아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마쉬멜로우 같은 새하얀 색의 새 한 마리가 소녀를 곁을 따라왔습니다. 다른 새들과는 달리 날개를 움직이지도 않고 신기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새였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다른 새들과는 조금 다른 새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새하얀 새야 안녕, 너도 바다라는 곳을 찾아가고 있니?"

 

 잠시 후 새가 대답했습니다. "안녕, 작은 소녀야. 나는 도시로 가고 있어. 함께 가지 않을래?"

 

 "도시? 거긴 어떤 곳이니." 도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소녀는 새하얀 새의 제안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도시란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커다란 곳이야.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바다만큼 커?"

 

 "물론이지. 바다하고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큰 곳이야. 여기서 멀지 않아."

 

 "거기에 가면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까?"

 

 ", 소녀야 걱정하지 말렴. 도시에 사는 모두가 너에 대해 알고 있단다. 네가 온다면 모두들 환영해 줄 거야." 소녀는 새하얀 새를 따라서 도시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새하얀 새가 말한 대로 도시라는 곳은 소녀가 보아온 어떠한 곳보다도 크고 넓었습니다. 소녀보다 커다랗고 네모난 돌덩이들이 예전에 살던 마을의 교회 묘지의 비석들처럼 끝없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녀가 지나왔던 숲이나 강에서 느꼈던 햇살 같은 따스함은 없었습니다.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는 동물 친구들도 없었습니다. 새하얀 새가 말해준 대로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녀를 환영해주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차가운 느낌만이 전해져 왔습니다. 도시는 하얀 새의 말을 듣고 소녀가 상상했던 곳과는 달랐습니다.

 

 소녀는 다시 연어가 말해준 바다를 찾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새하얀 새를 찾아보았지만 새는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소녀는 그냥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앞을 얼룩덜룩한 옷을 모두 똑같이 맞추어 입고, 둥글고 챙 없는 모자를 쓴, 왠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차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은 소녀가 도시를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연어가 말해준 바다를 찾아 떠나고 싶은 걸요. 도시는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아요."

 

 소녀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람들은 소녀를 에워싸고 보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소녀에게 뭐라고 외쳐대는 것 같이 보였지만 너무도 작은 소리라서 소녀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자신을 에워싼 사람들을 주의하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소녀는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길을 나아갔지만 발을 디딜 곳이 너무 좁아 휘청이고 말았습니다. 마침 옆에 있던 큰 비석 같은 돌덩이를 짚어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돌덩이는 소녀의 기대만큼 단단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린 돌덩이는 그 밑에 모여있던 사람들을 깔아 뭉개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다쳤다는 사실에 너무도 당황한 소녀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얼른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소리치며 소녀는 달렸습니다. 눈을 감고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지쳐버린 소녀는 달리기를 멈추고는 쓰러지듯 주저앉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소녀가 달려온 길에는 잡초처럼 헤집어지고 쓰러진 나무들과 검붉은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소녀의 발도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엄마와 딸기잼을 만들 때가 기억납니다. 그 때도 소녀의 발은 검붉게 물들었었죠. 하지만 그 때는 행복했었습니다. 소녀의 눈에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왔습니다. 곧이어 소녀는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세차게 흘러나오기 시작한 소녀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슬픔이 그치기에는 상처가 너무도 커서 이제는 아물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밤과 낮이 다시 지나갔습니다. 쉴 새 없이 흐르던 소녀의 눈물은 시냇물을 이루었고 강이 되었으며, 호수가 되고 마침내는 바다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소녀는 목적지인 바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무도 소녀를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깊고 깊은 바다 속에서 소녀는 이제 울지 않고 있을까요? 더 이상 상처입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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