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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모든 색은 검게 물든다

2013.01.15 07:3201.15

모든 색은 검게 물든다



"그 당시 자연주의 궐기는 쉘터가 맞이한 첫 번째 통제력 상실이었다. 보안국은 자연주의자들을 색출 해내려고 무고한 시민들을 억압 하였으며, 반대 지식인들은 선동자로 낙인 찍혔다. 특히 학생들은 강도 높은 주입식 이념을 강제 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현대에 이르러 잊혀진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닌 구원자가 자신을 드러낸 시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J.F 조나단. 쉘터의 역사 P.76-



1.

"다음."

그가 망치를 들었다. 강단을 내리치는 소리가 총살을 선고 하는 발사음 같았다. 첫 선언자가 된 학생은 자기 차례가 끝나고 뒤에서 터진 굉음에 놀라 주저 앉았다. 병사가 학생의 팔을 잡고 바깥으로 끌었다. 곧바로 다음 차례가 이어졌다.

"제 17조. 쉐, 쉘터의 모든 시민은 열등인자라면 쉘터의 영위를 위해, 우등인자라면 쉘터의 발전을 위해 살아갈 의무를 가진다. 나는 지금 즉시 의무를 행할 것을 맹세하며, 이에 선언한다."

선언을 마친 학생은 병사들의 인솔을 따라 강당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학생 한 명이 선언을 시작하고 끝마치는데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강당 중간석에 앉은 조현우는 이를 용납 할 수 없었다. 5초, 국가 의무가 개인의 권리를 덮어 씌우는 시간이었다. 그는 깍지 낀 손에 턱을 괴고, 어제까지만 해도 사회의 엘리트를 목표로 정진하던 학생들이 복제된 송아지로 전락해서 학교를 떠나는 진풍경과 마주하고 있었다. 양 옆으로 다리는 떨어도 얼굴만큼은 포커페이스 세틴 쿠룸, 최연소 수학왕 엘 아사흐 오마르, 싸움꾼 테츠카 치바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오, 이거 언제 기다려."
"넉넉 잡고 4610초 정도?"

치바가 투덜대자 오마르가 답했다. 긴장감을 해소 하려는 가벼운 대화였다. 세틴은 그 마저도 안 들릴만큼 긴장했다. 현우는 망치를 손에 쥔 미하일 클라크 교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클라크는 현우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교수였다. 그만한 식견과 통찰력을 가지고 그들의 편에 설리가 없어. 뭔가 생각이 있어서 저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같은 고민을 계속 했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현우와 일당들을 포함한 반대파 30여명은 일부러 강당 뒷자리에 포진했다. 조현우가 반대 의사를 표명 했을 때, 반대파 학생들은 한결 같이 현우에게 뭔가 생각이 있나보다 라고 믿으며 대관절 자신들도 돕겠다고 나섰다. 책임전가나 다름 없는 흐름인데도 현우는 받아 들였다.

3일 전. 현우와 치바는 현우의 집에서 오마르와 세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집 자기 방에서도 어김없이 깍지를 끼고 턱을 괴는 모습에 치바는 어이가 없었다.

"염병, 깍지 안에 뭐라도 숨겨놨냐? 턱선도 이쁘장한 새끼가 왜 그리 턱을 가려싸."
"이러고 있는 게 편해. 네가 한국어로 욕하면 안정 되는 것처럼."

치바는 그 말을 칭찬으로 들었다.

"나같은 성격을 표현하기엔 일본어가 너무 계집스럽긴 하지."
"그럼 터키어나 아랍어는 어때?"

오마르였다. 검은색 천과 터번으로 칭칭 감은 밤도둑 차림이었다. 치바는 그게 무슨 남자답지 못한 꼴이냐며 훈수를 두려다 산만한 덩치에 똑같은 꼴을 하고온 세틴을 보자 주먹까지 쥐었다.

"왜 그러고 왔어. 우리 집에 한 두 번 와본 것도 아니고, 돔시티(권력층 주거지)는 집에 사는 사람 이름만 대면 들여 보내줄텐데."

현우가 피식 웃으며 오마르에게 말했다.

"외벽문을 중심으로 경비인원이 평소 보다 늘어나 있었어.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한 밤 중에 돌아다니다 괜히 트집 잡힐까봐."

난리를 피우던 치바와 세틴이 조용해졌다. 자연주의 시위가 빈번해지면서 보안국과 정부가 시위를 막는데 그치지 않고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잦아졌다. 계산적이고 빈틈없는 오마르와 다른 의미로 빈틈 없는 세틴이 주의를 요 할만 했다. 지금은 학생 셋 모여서 시위나 집회란 말만 꺼내도 잡혀가는 시국이 아닌가.

"근데 왜 하필 외벽문이야? 왜 거기서 지랄이래. 자연주의자들이 밖에서 쳐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바, 밖으로 도망치려는걸 원천봉쇄 하려는 건 아닐까?"
"그게 말이나 되냐. 하여간 겁쟁이 새끼가 상상력 하나는 좋다니까."

세틴은 직관적이지 못한 대신 주의력이 깊었다. 현우의 책상에 놓인 레포트나 반쯤 열린 서랍 안에 자리한 세포 캡슐까지 진작에 눈에 담고 있었다. 지난 세기의 고서들과 15살 또래 학생이 읽을만 해 보이지 않는 심층 학문서들, 그것도 장식이 아닌 수도 없이 읽은 흔적이 역력한걸 보고 거기서 얻은 지식으로 뭘 하려는 걸까 하고 상상했다. 그 해답이 저 캡슐 안에 담겨 있을까 싶어서 자꾸만 그리로 시선이 쏠렸다. 현우도 세틴의 왕성한 호기심을 알고 있었다.

"별 거 아니야 세틴. 실습 시간에 클라크 교수님한테 샘플 좀 빌렸어. 궁금한게 좀 있었거든."
"아, 응…"

세틴은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기색이었다. 현우가 산만해진 친구들의 주의를 끌었다.

"내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3일 뒤에 우리 학교에서도 선언식이 있을 거야."
"아니, 왜 우리 학교만 3일 먼저야. 지랄들 하네 진짜."

현우는 친구들 앞에서 계획을 털어 놓았다. 쉽게 흥분하는 치바나 약간의 오차도 넘어가주지 않는 오마르나 걸핏하면 걱정부터 하는 세틴까지도 그 계획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 건데, 너희까지 이럴 필요는 없어. 난 잘못 되도 집안이 있으니까 어떤 처벌이든 최악까진 가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희는 달라. 그만두려면 지금 뿐이야."

모두 치바가 가져온 물건에 관심이 쏠려서 현우가 한 말은 듣는둥 마는둥 넘어가 버렸다. 들을 생각도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이기도 했다.

"와, 이건 유물이잖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오마르가 감정기 없는 표정과 말투로 놀라움을 표했다. 치바는 자신이 가져온 물건에 긍지를 느끼는 중이라 그런 무례함도 못보고 지나쳤다.

"아 거, 우리 꼰대가 뭐, 그거 잖아.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 쇳덩이 좀 몇 개 털어왔지."

지금은 사라져서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소지하는 사실이 들통나면 처벌 대상인 볼트액션 권총이었다. 오래전 일본이란 나라가 전쟁을 일으킨 당시 장교들이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100년도 더 지난 골동품이지만 전문가의 손길로 보관 되서 초탄 몇 발 정도는 문제없이 발사될듯 했다.
오마르가 사용법을 몰라 헤매는 세틴을 가르쳐 주는 동안 치바가 현우만 들을만한 크기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난 너 믿는다."


2.

찬성파 학생들의 선언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강단 옆으로 줄지은 한 줄만 남았다. 강당석에 남은 찬성파는 이제 없었다. 마지막 선언이 끝나자 병사들이 소총을 파지하고 강단 앞 횡대로 정렬했다. 소총과 강화복이 마찰하는 소리가 위협적이었다.

"이제부터는 선언식이 아니라 총살식인가."

테이블 밑으로 권총을 만지작 하면서 치바가 중얼 거렸다. 계획에 대해 모르는 26명의 반대파들은 연신 현우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가 뚜렷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아서 당장이라도 나가서 선언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클라크 교수가 다시 한 번 망치질 했다. 반대파들에게는 더이상의 선언은 받아주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강당에 남은 학생 명단을 훑어보던 도중, 클라크는 조현우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안경을 고쳐 썼다. 깍지 낀 손과 자칫 거만하게 보일수 있는 눈빛. 지금 강당석에 앉아 있는 저 학생이 맞았다. 옆에 앉은 학생들과 일당인듯 했다. 출신이 다른 네 명이 모여서 의기투합이라니. 대견하고도 맹랑했다. 이때 병사 한 명이 클라크에게 교신을 알렸다. 클라크는 나중에 답하겠다며 무시했다. 그는 망치를 내려놓고, 강단 밑으로 내려왔다.

"자네들은 다 선언을 거부하는 입장인가?"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클라크와 병사들에게도 훤히 보이도록 모두가 조현우를 곁눈질 했다. 대표자를 기다리는, 총대를 매주길 원하는 분위기였다.

"예예, 그렇수다. 뭐가 잘못 되기라도 했수?"

정면이 아니라 주변에 대고 치바가 소리쳤다. 클라크는 미소 지었다. 조현우는 일부러 침묵을 지키고 있다. 15살 나이의 어린 학생이 소수라고는 하나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솜씨가 영악하기 그지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바라는데로 현우가 집단을 대표 해서 확실한 태도를 보여줄 경우, 학생들은 그를 위시해 열렬히 깃발을 흔들어주겠지만 그건 소모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현우의 입장에서 그들은 한 차례 거세게 몰아치다 물러가는 파도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칼도 펜도 이쪽에 있는 상황이다. 병사들이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 학생들은 자리에 묶인 셈이고, 어떤 논리정연한 뜻이 있다고 한들 그들은 지위도 공신력도 없는 일개 학생이다. 수십명의 군중은 테츠카 치바라는 기꺼이 소리 쳐주고 행동 하는 측근 한 명만 못한 셈이다. 조현우는 그걸 알고 있다. 쫓기는 범인에게 아무도 없는 밤거리 보다는 불특정 다수로 가득찬 정오의 거리가 도주에 용이하듯이, 배경으로서 이용만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꼬마녀석이 준비한 카드가 대체 무엇이길래? 늙은 교수는 흥미를 느꼈다.

"조현우, 테츠카 치바, 엘 아사흐 오마르, 세틴 쿠룸. 이 네 명은 자퇴서까지 제출했군. 어떤 의도라도 있나?"
"재학생 교칙에 얽메이지 않으려고요."

이번에는 오마르가 목소리를 냈다.

"그럼, 어차피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니까 학교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지 않나?"
"그렇게 따지시면 저희 중 셋은 작년에 조기졸업한 신분 입니다. 세틴도 저번 달 부로 조기졸업 성적이 됐고요. 졸업자는 임원으로서 수업 참관을 비롯해 학교 내 다양한 행사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가 있죠. 말씀드렸다시피 행동이 제한 되는 재학생 교칙을 거부하는 것 뿐입니다."

당돌한 제자의 일침에 클라크는 오히려 신이 났다. 더이상 간보지 않기로 했다.

"껄껄, 알겠네. 그럼 무슨 이유로 민법 제 17조 선언식을 거부 하려고 하는지 듣고 싶네만."

치바도 오마르도 말을 아꼈다. 현우의 차례였다.

"저희는 이런 비인간적인 차별 선언에 동참 할 수 없습니다. 착각 하실까봐 미리 말씀 드리는데, 저희는 자연주의자가 아닙니다. 모든 과학을 내려놓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자는 무모한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쉘터 정부와 보안국 독단으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열등하면 열등인자로, 우등하면 우등인자로 만드는 신분 구별법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은 같습니다."

"열등인자와 우등인자는 차별이 아니라 분별 목적으로 고안된 민법이네. 이번 시위 사태가 벌어지기 20년 전에 통과된 법이고 실제로 이 사회는 보편적으로 두가지 유형을 구별해왔네. 왜소한 신체로 태어난 아이가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학문에 소질이 없는 학생이 무리해서 대학에 진학할 필요도 없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말이네."

"그건 미시적인 규범일 뿐입니다. 강제로 유전자를 검식해서 물리적으로 열등자와 우등자를 나누는 차별 행위가 어떻게 그와 같다고 말씀 하십니까."

800미터 크기 강당 안에 현우와 클라크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모두가 숨죽이고 두 사람의 논쟁에 귀기울였다. 클라크는 기본적인 정론을 말하면서 진보된 과학력이라는 키워드를 거듭 주장했다. 유아기부터 유년기에 이르는 개인의 적성을 구별하기까지 걸리는 십수년의 시간을, 정부 산하 보안국에서 개발한 유전자 검식기로 만 하루 만에 이루어낼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위해도 불합리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현우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시민이 이해 하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이유로 검식 시스템의 본질을 알리려 하지 않은 게 첫 번째. 숫한 이견에도 아랑곳 않고 중무장 병사를 동원해 공권력을 남용 하는 게 두 번째. 자신 역시 생물학에 정진 하는 입장에서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기계로서, 그것도 주류 과학자들의 검증도 여론도 거치지 않은 검식기로 구별 한다는 건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한다는 세 번째 이유였다.

"이거 끝이 없겠군. 나도 당장은 정부의 검식 체계를 이 자리에서 입증할 방법이 없네.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들의 거부 입장이 역으로 거부 당한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한 건가. 내가 아닌 다른 교수가 진행자로 나와서 무작정 자네들을 무력으로 진압 했다면 어쩌려고 했나. 말해 보게."

"폭로할 생각입니다."

현우는 다 계산된 범주에 불과하다는양 즉답했다. 침착함도 냉정도 잃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이 모르는 쉘터의 역사를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폭로할 겁니다."

"그렇게 결정한 순간 자네와 자네 가문은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도 숙지하고 있나? 이 학교는 금기를 짊어질 책임을 받아 들이겠다고 서약한 엘리트만을 위한 배움의 장이네."

"그렇게 행동한 순간이겠죠. 저는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 두었습니다. 가문의 지위를 이용해 다수 언론에 정보를 퍼트릴수 있는 루트를 만들고 7시간 뒤 저녁 방송 시간대에 자동 타이머가 발동 해서 자료가 원격으로 송신 되도록 설정해 두었습니다. 뭐 이렇게 말해도 물증은 없으실테니 지금 당장 신고 하셔도 저희 집을 뒤지긴 힘드실 거구요."

클라크가 돌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제자의 발표가 흡족하기 그지 없다는 마음씨 좋은 선생처럼 온화하게 웃었다. 현우는 코웃음쳤다. 여유 있는 척하는 헛수작이라 생각했다.

"과연, 그렇게 되면 시민들이 동요할 것이고 자연주의자들의 시위는 한층 거세지겠군. 그게 무서워서 자네들을 선언식에서 제외한다면 그 사실 역시 기사화 시켜서 시위에 힘이 실릴 것이고. 자네들은 자네들대로 정체성을 지킬테니 개개인의 숭고한 업적이 되겠지. 그야말로 손해가 없는 장사로군. 현우군, 그런데 말일세."

병사가 클라크에게 또 한 번 교신이 왔다고 신호했다. 클라크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제스쳐를 취했다. 그제서야 현우도 깍지를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현우에게 미하일 클라크 교수는 뒤따라가는 학생의 입장이었다. 클라크의 생물학 강의는 언제나 열등감을 느낄만큼 영감적이었다.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오늘이라고 현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스승과 말을 섞는 내내 머리 속이 하얘졌던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오마르, 뭐 빠진 부분 없어? 나 잘하고 있는 건가."
"아마도. 내가 보기에는 누락된 점은 없었어. 그런데… 그 뭐랄까. 말을 하는 형태라고 해야하나. 좀 더 공격적이고 치밀하게 파고 들었어도 좋았지 싶어. 너무 느슨했다고나 할까."
"목소리가 작았어 임마. 좀 더 패기를 부렸어야 했다고!"

분석적인 열마디 말보다 치바의 한 마디가 더 와닿았다. 5년을 함께한 친구들이었다. 현우 본인도 의식한 실수를 못보고 지나칠리 없었다.

클라크는 조금전까지 박수 치며 달아오른 머리를 차갑게 했다. 교신 내용은 간단했다.
'외벽 경계선 돌파 됨. 즉시 보안국으로.'
그로서는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신속한 상황판단이 요구 되었다. 총구를 겨누고 라도 서둘러 학생들을 데리고 나갈 것인지, 지금 이때가 아니면 퇴색 돼 버릴지 모르는 한 명의 제자에게 가르침을 남길 것인지. 이 시국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급박한 상황 덕분에 친애하는 제자의 가능성을 심도 있고 극적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조현우는 자기만의 이상에 빠진 주의자도, 너무 일찍 현실속 새장에 갇힌 몰자아도 아니었다. 단지 정보와 지식이 부족할 뿐이다. 클라크는 늘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조현우는 클라크가 서부 쉘터에서 지내던 때를 포함해 지금까지 가르쳤던 어떤 제자들 보다 뛰어났다. 공식적인 조기졸업은 지난 해였지만 이미 그 전부터 성적이란 측정이 의미 없을만큼 압도적인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었고, 15살 현재 의학 전반과 과학, 특히 주류 생물학에 통달해 있었다. 동부 쉘터 상위 인재들만 모아서 엘리트 교육을 담당하는 이 학교도 그에게는 한없이 좁아 보였다. 때 아닌 특이점이 없었다면 자신이 속한 프로젝트 팀에 데려올 예정이었다. 그랬다면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식에 눈을 뜨게 되었을테고, 지금처럼 자신과 불필요한 설전을 벌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시대가 달랐다면 이렇게 급진적인 모양새는 필요 없었을텐데… 클라크는 짧게 탄식했다.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병사들을 강단 옆으로 물러서게 했다. 신성한 배움의 장에 무기는 필요치 않았다. 망치를 들어 내리쳤다. 뒷짐을 지고 고압적으로 고개를 치켜 세웠다. 둘의 대화에 정신 팔려있던 학생들이 깜짝 놀라 눈을 번쩍였다.

"모두 똑바로 앉도록. 마지막 수업을 시작한다."


3.

여느 수업 시간처럼 학생들 앞에 홀로그램 스크린이 나타나 로딩을 시작했다. 로딩 시간이 평상시 보다 열 배 이상 길었다. 로딩 중간 중간 수차례 경고 메세지가 팝업 되는걸 클라크가 실시간으로 패스워드를 입력해 지워냈다. 순조롭게 로딩 퍼센테이지가 올라가는동안 클라크는 강의에 앞서 잊고 지나간 부분을 기억했다.

"현우군. 아까 자네가 말한 폭로에 대해서인데, 보안국은 그정도 파장 쯤 어렵지 않게 통제할 수 있다네. 권력자의 자녀가 이런 이슈에 휘말렸다는 펙트 하나는 얼마간 시끄럽긴 하겠군. 그 마저도 자네 가문에 대한 공격용으로 선전될 테지만."

현우가 발끈해서 반박 하려고 할 때였다. 로딩 퍼센트가 임계점에 다다랐다.

"아, 반론은 잠시 접어두길 바라네. 스크린에 오른 자료로 부연설명 할테니 우선 다 보고 판단해주게."

스크린이 어떤 도시를 비추었다. 학생들은 외벽이나 천장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과거 인류가 지상에 살았던 시기 일거라 추측했다. 대지, 바다, 하늘과 구름등 '지상'이라는 환경에 대해 모르는 학생은 없었다. 아무도 스크린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뭔가 대단한 내용을 볼줄 알고 긴장했던 학생들 어깨가 늘어지고 먼 상공에서 도시를 비추는 장면이 7분 40초를 지날 즈음이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발견한 건 현우였다. 도시 외곽 지역 지면에서 불가사의한 물체가 솟아났다. 물체는 작은 기둥처럼 보이더니, 점점 크고 길어져서 도시 최상층 빌딩 보다도 높아졌다. 진동이 일어나는지 영상 노이즈가 일어났다. 화면에 담지 못하는 구름 위까지 성장이 계속 되는듯 했다. 진동이 멈추고 몇 분이 지나자 도시 상공으로 녹색 물질이 떨어져 내렸다. 셀 수도 없이 떨어지더니 결국에는 도시를 뒤덮어 버렸다.

"저게 대체 뭐야?"
"포자라네."

누구도 교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크린에서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녹색으로 채색 되고서 잠잠하던 도시 곳곳에 마치 녹색 비료를 먹고 자란듯 다수의 기둥이 출현했다. 최초의 그것과는 비교 불가능한 증식속도였다. 단 수 초만에 치명적인 피해를 유발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다른 건물과 연쇄적으로 붕괴를 일으켰다. 크고 작은 폭발이나 화제는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기둥 하나가 솟아 오르면 지면이 내려 앉으면서 주변 인간들도 플랑크톤처럼 땅 밑으로 삼켜졌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시민들이 거칠게 차를 모는 탓에 도로 곳곳에서 대규모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기둥은 마치 의지를 가지고 있는듯, 인구가 몰리는 지역일수록 밀집도를 높였다. 사고로 정체된 도로나 건물 잔해로 가로 막힌 번화가가 그 대상이었다.
붕괴, 폭발, 불길 속에서 벗어난 극소수 차량도 얼마 달리지 못했다. 내부에서 뭔가에 의해 변이된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을 죽여서 흡수하고 있었다. 여자도 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가 괴멸되는 부분까지는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던 충격이 학생들의 뇌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변이체들은 모든 인간들을 흡수하고나서 자신들 끼리도 경쟁했다. 보다 많이 흡수한 개체일수록 크기와 모양이 자르고 부수고 삼키는데 적합하게 변해갔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개체는 인간이었던 형태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괴물이 되었다. 그것은 또다른 먹잇감을 찾아 도시로 향했다. 도시는, 더이상 도시라 부를수 없는 불모지가 되어 있었다.

대다수 학생들이 구토를 쏟아냈다. 치바는 욕지거리를 남발했고 그 냉소적인 오마르도 얼굴색이 변해 있었다. 29명의 학생들이 충격과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현우만은 달랐다. 기둥과 녹색 물질의 정체, 다른 개체를 흡수하고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표현이 필요없을만큼 놀라웠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조작된 영상이나 허구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클라크는 영상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조현우만을 관찰 하고 있었다. 한 번도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를 빛내는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보고 있는 자신 마저 열정을 느꼈다. 그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땅! 아직 끝이 아리라는듯 망치 소리가 학생들의 고삐를 잡아 끌었다.

"53년전, 핵전쟁으로 오존층을 잃어버린 인류는 태양을 피해서 지하 1킬로미터 땅 속에 쉘터를 건설하고 60억 인구 중 850만명만이 살아남아 피난에 성공했다. 자네들이 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네. 자네들은 일반 쉘터 시민들이 그 내용 조차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쉘터의 기원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나름의 해석을 설파 하려는 지식인들이야 널리고 널렸네. 그 뿐인가. 학교에서 말하는 쉘터의 역사나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엉터리 상상론이나 별반 차이도 없네. 쉽게 말해 자네들이 지키고 있었던 비밀이란, 그 일반 시민들 조차 약간의 상상력만으로 유추할 수 있는 상식적인 범위라는 말이네."

클라크의 수업을 따라오는 학생은 현우 일당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대다수가 충격에 빠져 헤매고 있었다. 그 마저도 어딘가에 있을 논리적 오류를 찾아 내려는 오마르나 수업 내용 이상의 것을 찾아 상상력 속에 빠진 현우를 빼면, 치바나 세틴은 분노와 공포라는 극단적인 감정에 사로 잡혀 수업이고 뭐고 없었다.

"진실은, 시민들은 물론 쉘터의 인재라는 자네들 조차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있네. 21세기 인류는 핵전쟁이 아니라 자본전쟁에 고착돼 있었고 오존층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네. 대륙급 크기 운석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한은 최소 500년 이상 인류문명에 위기란 없을 예정이었지. 이 모든 내용은 보안국을 포함해 정부의 핵심기관에서 일하는 일원이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있는 보편화 된 사실이네. 폭로 해서 치명적인 비밀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지."

홀로그램 스크린이 사라졌다. 학생들의 시선이 클라크와 이어졌다. 강단에 선 클라크는 의욕적인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도시를 괴멸 시킨 기둥의 정체를 프로토텍스아이티스라 명명했네. 4억년 전 데본기에 서식 했던 최초의 거대종 버섯이지. 당시엔 2미터에서 10미터 정도의 크기였지만, 50여년전 나타난 고대버섯은 성층권 높이까지 자란다네. 다 자란 버섯은 머리와 같은 갓 부분을 분리 시키는데, 중력에 끌려 내려가면서 무수히 분해 되고 그 과정에서 '포자'로 변이한다네. 씨앗과 같은 이 포자균과 접촉한 생물들은 종의 진화를 위해 극단까지 치달은 공격성을 갖게 되지. 정말 놀랍지 않나? 지구 전역에서 솟아나는 수십 킬로미터 크기의 버섯에서 일제히 쏟아져 내리는 포자균을 당시 인류가 무슨 수로 당해 냈겠나. 아마 60억 인구가 수천번 되살아났어도 어림 없는 노릇이지."

"이 노친네가 누굴 호구로 아나. 그걸 우리더러 믿으라고? 앙? 이딴 날조된 영상 가지고 협박이라도 하려는 거야 지금?"

치바가 참다못해 끼어 들었다. 이대로 듣기만 하다가는 세뇌 될 지경이었다. 오마르도 딱히 수가 없어 보이고, 믿었던 현우놈은 아까부터 입 다물고 벙어리인 척만 하는데, 뭔가 생각 하는 게 있으면 말이라도 해주던가.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허허, 치바군.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닐세. 포자균의 침식은 현재 진행중이거든."
"뭐, 뭐?"
"외벽 경계선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이종들과 전투가 벌어지고 있네. 만약 그 방어선이 뚫린다면 언제 자네 침실에 자료 속 이종들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겠지."

클라크는 무슨 당연한걸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치바는 말문이 막혀서 오마르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응할 수 없었다. 그만큼 정황이 맞아 떨어졌다. 며칠 전, 외벽에 모여있던 심상치 않은 경비대 숫자가 뇌리를 스쳤다.

"자, 그럼 자료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끝으로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네. 발표한지는 좀 됐지만 수 년에 걸쳐 고안해낸 논문이니 신경 써서 들어주길 바라겠네. 커흠."


4.

제목 : 인류의 구원

작성자 : 보안국 17섹터 연구소장 미하일 클라크


다른 종과 접촉한 순간 불가사의한 유전자를 잉태하며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든 변이 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프로토텍스아이티스 포자균을 인류가 극복해낼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를 역이용 하는
새로운 과학과 체제에 도전 하는 것 뿐이다.
인간을 소재로 한 유전자 실험에 대한 금기, 그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탈피 해야만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작금의 위기를 돌파 할 수 있다.
인간의 몸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게 존재 한다. 유지를 위한 수분, 보수를 위한 장기, 공급을 위한 정자, 난자. 인간이 곧 자원인 것이다.

중략

첫 번째로 인류의 일부(열등인자)를 계획적으로 포자균에 감염 시켜서 그 보균자들을 인공배양 원료로 삼는 것이다.
보안국 17섹터 연구팀은 정자와 난자, 포자균을 합성 시킬 경우, 높은 확률로 새로운 종을 배양 시킬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 종은, 시뮬레이션 결과 자웅동체로 태어나며 스스로 번식 할 수는 없지만 다량의 정자와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모든 면에서 기존 인종 보다 뛰어난 신체를 타고 나며 기형아가 발생할 확률도 극히 낮다.

……

두 번째로 유전자 전승 기술의 도입이다. 뛰어난 우등인자일수록 태어날 확률이 그보다 못한 유전자 보다 현저히 낮다.
이런 자원은 재활용 되어야만 한다. 모든 쉘터 시민의 유전자 정보를 정기적으로 저장, 감찰 하며
수명이 다할 때쯤 생전의 업적과 능력을 평가해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다시 태어날 것인지,
그대로 저장한 유전자를 폐기 시킬 것인지 결정 한다.
우등인자 시민들은 전승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쉘터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세 번째로 기존 인류 계층의 효율적인 분별이다. 현재 인류는 전 시대 인류가 범한 과오를 그대로 답습 하고 있다.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아무 능력도 없는 열등인자들이 권력자의 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세습 하고 있으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계층이 그 특별함에 맞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능력이 없는 인자는 원료 -7페이지 참고- 로 삼고, 우등인자들과 능력자들은 그들의 가능성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내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야만 한다.
앞서 말한 분별의 한 방편으로 크게 네 가지 계층으로 분류 하겠다.

높은 지능지수를 가지고 학문에 재능을 보이는 연구자,
다양한 뇌파 능력등 초인간적 재능을 가진 능력자,
인공배양 된 새로운 인류로서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일선에서 포자균 이종을 상대하는 대체자,
이 세가지 계층을 총괄 관리 하며 분야에 관계 없이 모든 것들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구원자.


"씨팔 지랄하고 있네.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잖아!"

치바가 권총을 들고 일어났다. 클라크는 대응하려는 병사들을 제지 시켰다.

"오마르, 자네도 그렇게 생각 하나?"

오마르도 치바를 따라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모두가 변하는 건 성장 하는 게 아니고 모두가 나아가는 것도 진보가 아니다. 당신이 했던 말 입니다."

클라크는 쓰게 웃었다.

"야 조현우. 이 새끼 아까부터 고개 쳐박고 뭐하는 거야 대체, 임마 정신 좀 차려봐!"

현우도 치바나 오마르의 반응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낱말들이 이토록 매혹적으로 들리는 건 어째서일까. 구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교수의 논문을 실현 할 수만 있다면, 그를 위한 부품이라도 되고 싶었다. 그건 마치, 그것은 마치… 자신이 꿈 꿔 왔던 창조가 아닌가.

현우는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치바도 오마르도 세틴도 결과적으로 어리광이 돼 버린 자신의 계획을 지지해주고 지금도 자신의 옆에 서서 목숨을 걸고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뭘 느끼는지 이해 하지 못한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알아줄 사람은 없다고만 생각했었다. 모두가 똑같고 혼자서 다르다면, 똑같은 척 하는게 맞는 거라 판단하며 살아왔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자신과 같은 누군가가 존재 하기를 바랐다. 함께 하고 싶었다. 같은 목표를 보고 싶었다. 더이상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클라크는 현우가 아직도 상식의 범주에 가로막혀 있다고 보았다. 이미 자신의 이상도 계획도 충분하리만치 파악했을 것이다. 그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야만 새로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 시킬수 있다는 것도. 그는 망설이고 있다. 도화선이 필요한 기폭제일 뿐이다.

"여기까지 가르쳐 줬는데도 이해 못하는 낙제생들은 필요 없지. 계속 선언을 거부 한다면 지금 즉시 연행하겠네."

클라크가 병사들에게 손짓 했다. 횡대로 정렬한 단 4명의 병사가 강당 전체를 압도했다. 그들은 골격이 거인처럼 장대했다. 그에 더해진 강화복과 중화기는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인간을 상대하는 군인이 아닌 더 강력한 무엇인가와 싸우도록 만들어진 병기처럼 느껴졌다.
그는 개인 스크린을 띄워서 미리 준비해둔 자료를 검색했다. 치바는 미친 교수가 또 뭘 하려는 건지 불안했다. 선수를 쳐야 했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현우의 턱을 잡고 강제로 돌려서 눈을 마주했다. 언제나 먼 존재라고 생각했다. 5년을 같이 다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 봐도 이녀석의 진짜 깊숙한 곳은 자신이 다가갈 수 없다고 느꼈다. 지금까지는 그걸로도 좋았다. 누구나 보여주기 힘든 내면이 있는 법이다. 시간은 앞으로도 많이 있으니 신경 쓰기도 귀찮기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만은 자신에게 진심을 보여주길 원했다.
현우는 치바의 눈을 피했다. 치바는 피식 웃고는 현우의 목덜미를 꽉 잡았다 놓아주었다. 그리고 뒤돌아 클라크에게 권총을 겨누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크고 굵은 총성이 강당을 울렸다. 탄피가 바닥을 구르는 청명한 소리가 뒤이었다. 착탄을 확인한 병사들이 다시 정렬 했다. 세틴이 치바를 부둥켜 안고 비명을 질렀다. 오마르는 혹시라도 숨이 붙어있지 않을까, 달려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짓눌렀다. 치바의 머리에 구멍이 파이는  모습을 정확히 보았다. 그는 죽었고 되살리지 못한다. 치바가 죽는 틈을 타서 클라크와 여덟 발자국이나 가까워졌다. 감정 때문에 이 기회를 버려서는 안된다.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부터 자신은 스스로 감정을 느낄만한 사람이 아니다. 눈물이 흐르는건 세틴의 감정에 전염 됐기 때문이다.
클라크는 스크린을 주시하면서 슬쩍 곁눈질해 치바의 죽음을 확인했다.

"테츠카 치바. 전 시대 인류인 구 일본 외무성 간부 테츠카 류이치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테츠카 류이치로는 인류가 재앙을 맞이하기 이전부터 구 일본 제국주의를 신봉 하던 극렬 우파였다. 테츠카 치바는 그런 부친을 환멸 하면서도 그 자신이 부친과 가장 닮아있고, 내면의 한 구석에는 맹목적으로 한 길만 좇는 부친에게 모종의 경외심도 느꼈다. 부친을 인정하는 것만이 그에게서 분열 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오마르의 사고회로가 빠르게 회전 했다. 클라크는 치바에 대해 모른다. 알리가 없다. 치바는 거짓이나 위선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다. 자신과 아버지만의 이야기를 교수나 학교 네트워크에 털어 놓을리가 없다. 모든 시민의 유전자 정보가 임의로 저장 된다는 논문 내용이 떠올랐다.

"당신, 당신 논문 작성일자가 언젭니까."

오마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라도 깨달은게 어딘가. 자네도 인재는 인재구만. 2058년 4월 2일이네. 그리고 말해두지만 난 선제공격을 명한 적이 없네."

클라크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쉴새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유전자 구조를 포함해 테츠카 치바란 인간 한 명을 분석한 모든 자료가 거기 있었다. 15년 인간 역사가 2초 만에 규격화 되었다. 다음은 오마르의 자료가 업로드 되었다.

"한 명을 죽이더라도 그에 대한 정보는 엄밀히 다뤄야해. 생명이 귀중한 시대니까."

오마르는 몇걸음 더 움직여 보았다. 그의 말대로 병사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강단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권총을 들었다 내렸다 할 때마다 병사들도 오마르를 따라 사격자세를 취하고 풀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기계처럼 반응 해도 이 거리에서 발사한다면 적어도 동시사격은 가능할 것이었다. 등 뒤를 돌아보면 고개를 파묻은 현우와 아직도 치바를 안고 우는 세틴이 보였다. 겁많은 세틴은 결국 굴복하겠지. 현우야 어떤 선택을 하건 집안이 있고.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오류를 지워내야만 한다. 치바를 죽인 미하일 클라크는 오류점이다.
오마르는 교수가 입을 열기 전에 방아쇠를 당기려고 작정했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정보가 나타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호기심과 기대, 강박이 맞물려서 오마르는 클라크가 입술을 움직이는걸 보고도 머뭇거렸다.

"엘 아사흐 오마르. 그가 3세 당시 그를 버리고 서부 쉘터 이민단에 합류한 부모들을 잊으려고 감정을 억누르며 계산적인 인간이 되려고 살아왔다.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허허, 자네가 단 두 줄짜리 인간이라니 놀랍네. 이거 완전히…"

그를 남겨두고 방문을 닫는 얼굴 없는 남녀의 기억이 되살아나려고 했다. 오마르는 공황이 자신을 잠식하기 전에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병사들의 반응이 더 빨랐다. 오마르의 총알은 그가 널부러지면서 허공으로 발사됐다.

"텅 비었구만."

세틴은 오마르가 죽는 걸 보고도 목이 매여서 소리 낼 힘이 없었다. 멍한 상태로 주변을 돌아 보았다. 다른 학생들은 얼어붙어 꼼짝 안 했다. 세틴의 동공에 현우가 비춰졌다. 고개를 파묻고 공포에 떨고 있다고 생각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빛내면서 입가에 옅은 웃음까지 짓고, 왼팔을 노트 삼아 정신없이 펜을 놀리며 메모 하고 있었다. 검은색 글자들로 팔 전체가 뒤덮혀 있었다. 세틴의 눈이 클라크와 병사들, 그리고 강당 문을 열고 들어온 그것에서 멈췄다.


5.

그것이 강당 안으로 침입한 순간, 강당 안 대부분의 인간은 머리와 몸이 동시에 굳었다. 보거나 듣거나 상상 하지 못했던 존재와 마주 했기 때문에 그것이 누구라고, 어떤 것이라고 특정 할 수 없었다. 그 미지의 영역은 공포를 넘어 사고를 정지 시켰다. 단 네 명의 병사들만이 즉각적으로 반응 했다. 땅에 붙은 두 개의 다리로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 개체라 가상 인식하고 장기와 급소의 위치등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치명적인 부위로 사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마치 뱀의 비늘 같던 그것의 외피가 실시간으로 변이를 일으켰다. 고밀도로 유체화 된 피부조직이 총탄을 흘리거나 튕겨내서 강당 안의 학생들에게 날아갔다. 그제서야 현우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그의 앞에 클라크가 있었다.

"움직여!"

그는 고함을 지르며 현우의 뺨을 때렸다. 현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다친 학생은 피흘리며 도움을 부르짖고, 멀쩡한 학생들도 살려달라고 도움을 부르짖었다. 병사들은 그 가운데서 학생들의 안위 따위 일체 신경 쓰지 않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실상 전투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되는 공격에도 몸을 변이 시키며 방어 해낼 뿐이었다. 현우에게 병사들은 마치 불꽃과 싸우려 덤벼드는 미치광이들처럼 보였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자연 그 자체 같았다.

미하일 클라크의 개인 사무실은 강당과 불과 30여미터 거리였지만 잡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 괴체가 여전히 반격하지 않는 건지 이미 다들 죽어버린 건지 알길이 없었다. 현우는 그것 말고도 세틴이 거슬렸다. 클라크가 자신을 잡아끌고 강당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때, 멍하니 앉아 있는 세틴도 억지로 데리고 왔다. 그 뒤로 세틴은 현우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클라크는 괴체에 대항할 무기를 만든다고 했다. 그의 사무실은 각종 생물이나 세포 샘플로 가득 했다.

"유체를 이루는 저런 유형은 혼합성 단백질인 글로불린이 효과적이네. 왜 통하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네만."
"아까보니까 반격도 안 하던데요."
"그건 알 같은 상태야. 어떤 형태가 적에게 치명적일지 가늠하는 변이직전 상태라네. 자네도 여유 부리지말고 좀 도와주게. 평소에 내 샘플 가져다 연구했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거 아닌가. 아, 신경쓰지말게. 다 알고 있던 사실이고 오히려 권장하고 있었네. 훔쳤다는걸 말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까봐 가만 있었지."

연구 목적으로 사용 되는 인공유기체에서 혈청을 체취하고 보조성분을 첨가해 진성글로불린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클라크는 자연주의 시위만 없었어도 인체연구 관련법이 통과 되서 불필요한 인간의 혈액으로 글로불린 대량생산이 가능했을 거라며 아쉬워 했다. 세틴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증오 섞인 눈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 보았다. 오랜 사제지간처럼 죽이 척척 맞았다.

"그 사람은 치바랑 오마르를 죽였어. 어떻게 그런 사람이랑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말해?"

현우는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라서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틴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답을 해야만 했다.

"세틴,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였잖아. 인류는 지금도 위기 상태야. 강당에서 너도 봤잖아. 그런게 쳐들어오는데 같은 인간끼리 싸울 시간이 어딨어? 지금만 해도 언제 당할지 모르잖아."
"치바랑 오마르가 죽었어. 그런데도 넌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어."
"너무 연연하지 말게. 두 사람의 유능함을 재증명 한다면 저장된 유전자를 되살려서 전승 시킬수 있네."
"정말요? 벌써 그 기술이 시범중인가요?"

클라크와 현우는 그외에도 다양한 질답과 웃음을 나눴다. 세틴은 그걸 참을수 없었다. 괴성을 지르더니 가구를 들어 클라크에게 집어 던졌다. 클라크는 가까스로 피했다. 현우가 세틴을 말리려고 했지만 체격 차이가 현저해서 힘으로는 당해내지 못했다.

"당신을 죽여서 피를 뽑아내면 되겠네!"

둔기가 클라크의 머리를 강타했다. 다른 70세 노인이라면 머리가 박살나면서 사무실 벽까지 날아갈 힘이었지만, 클라크의 머리는 쳐진 살갗만 몇꺼풀 벗겨졌다. 게다가 핏물 대신 하얀 액체가 흘러나왔다.

"교, 교수님."

현우가 놀라서 그를 불렀다. 그가 알고 있던 미하일 클라크 교수가 맞는지도 궁금했다.

"자기 자신의 육체만큼 실험에 적합한 재료도 없지."

그는 세틴의 팔을 붙잡고 서서히 비틀었다. 세틴이 안간힘을 쓰며 저항 해도 당해낼만한 힘의 균형이 아니었다. 팔이 바깥으로 꺾이면서 뼈가 부러져 팔꿈치를 뚫고 나왔다. 클라크는 발을 들어 머리를 부수기 전에 현우의 의사를 물었다. 현우는 세틴은 다시 살릴만큼 유전자가 뛰어나지 못하다며 그만해달라고 부탁했다.

클라크가 그에 동의하고 들어올렸던 발을 내리려 할 때였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거대한 뿔이 클라크의 복부를 꿰뚫었다. 그는 오히려 양 팔로 뿔을 붙잡고 단단히 고정 시켰다.

"글로불린은 어딨나?"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져 있었다. 세틴이 가구를 집어던지면서 유실된 모양이었다. 현우는 뭘 해야할지 몰라 다급해 했다.

"어서 도망치게. 뭘 기다리나. 놈은 내가 붙잡고 있는 동안에도 변이 중일거야."
"왜 저한테 알려 주신 거예요? 이만큼 배우고 다 알아봤자 저는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클라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차피 뒤늦게 교신을 확인한 순간 늦었다고 생각했네. 게다가 난 나머지 29명은 물론이고 내 자신까지 희생 시킬 생각으로 수업했네. 자네가 받아들일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 내 이상을 실현 시킬만한 재목이라고. 아니었나?"

현우는 말없이 세틴을 끌고 반대편 문으로 나갔다. 클라크는 있는 힘을 모두 쏟아내 뿔을 움켜 쥐었다. 그러자 손에 잡힌 뿔이 손과 몸을 통채로 녹이는 고열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서 클라크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놀랍군, 놀라워…"


6.

결국 세틴을 어깨에서 내려야 했다. 그만한 덩치를 끝까지 이고갈만한 힘도 없는데다 이렇게는 도망칠수 없었다. 혼자서 도망친다고 해도 문제였다. 강당 안에 이종이 몇이나 더 있을지 몰랐다. 이종이 들어왔다는 건 외벽이 뚫렸다는 것이고, 강당 밖이나 학교, 도시, 쉘터에 얼마나 들어와 있을지 몰랐다. 마주 쳤을시 대응할 무기, 글로불린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건 무모한 짓이다. 세틴이 그러지만 않았어도…
세틴은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현우는 세틴의 팔을 살폈다. 제대로 지혈할 시간이 없었다. 검붉은 피가 막 감긴 붕대를 적시고 바닥에 흘렀다. 현우의 머리에 클라크가 했던 말이 스쳤다.

"…피 몇 방울 가지곤 어림도 없네. 흥건하게 뿌릴만큼 많아야 겨우 움직임을 둔화 시키지. 진성글로불린은 귀한 물질이야. 혈청을 무기로 쓸만큼 대량으로 공급하긴 힘들어. 대용품도 없지. 인간 보다 크면서 인간이 통제 할 수 있는 동물은 지하에 존재하지 않네. 농도가 가장 높은 글로불린을 가진 건 인간 자신…"

현우의 손이 세틴의 동맥으로 향했다.

"이젠 나까지 죽이려고?"

현우는 몇 번씩 말을 꺼냈다가 다시 삼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했다. 여기까지 상황을 겪고도 모른단 말인가.

"아까 다 들었잖아. 너도 전승 하면 살려낼수 있다니까?"
"너도 그 교수랑 똑같아. 완전히 미쳤어. 만약에라도 그렇게 되살아나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 치바가 다른 나라 말로 욕한다던지, 오마르가 치바한테 욕먹어가면서 피아노를 쳤던 것도 다 관계에 의한 거야. 유전자고 뭐고 그런 거랑은 아무 상관 없다고!"

세틴의 고함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모퉁이에 이종의 몸체가 드러났다. 5미터 높이 천장을 가득 채우는 크기, 네 개의 다리, 무수히 많은 촉수와 뿔을 가지고 있었다. 강당에서 조우한 당시와는 판이한 형태였다. 현우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벽에서 비상용 도끼를 꺼내 세틴의 다친 팔을 내리쳤다. 뭉쳐 있던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현우는 잘린 팔을 가지고 등 뒤로 세틴의 비명과 저주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달렸다. 촉수가 가까워 질 때마다 팔을 휘둘러 피를 뿌렸다. 효과가 있었다. 피를 뿌리면 촉수들이 일순간이지만 경직 됐다.
마침내 강당 출입문이 가까이 보였다. 그는 문 밖의 누군가가 같은 인간인길 바라며 몸을 던졌다. 사격자세로 대기 중인 수십명의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놈이 와요!"

구조를 받으면서 현우가 소리쳤다. 이윽고 문을 박살내면서 이종이 나타났다.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총탄과 붉은색 혈청이 뒤섞여 발사 되었다. 이종의 몸이 천천히 굳어갔다. 죽어가는 도중에도 끊임 없이 몸을 변이 시켰다. 6분 뒤, 이종은 침묵했다.

신분 확인이 끝나고 현우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고 있었다. 그 옆으로 희생자들이 들 것에 실려 나왔다. 대부분 인간의 형태에서 벗어나 있었다. 살갗 대신 녹색 점막이 몸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중에는 세틴도 있었다. 현우가 자른 팔을 제외하고는 다른 상처가 없었다. 현우의 눈이 커졌다. 보안국 요원 한 명이 현우를 보고 다가오려 했다.

"됐어. 그냥 처분해."

목소리의 주인이 담뱃불을 붙이고 현우 옆에 섰다. 키가 크고 젊은 여자였다. 책임자 같았다. 그녀는 교신을 통해 클라크의 죽음과 강당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상부에 보고 했다. 교신이 끝나자 여자는 현우가 자신을 볼 수 있게 앞으로 나와 주었다. 도드라진 가슴 왼쪽에 이름 밑으로 17섹터라는 소속명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손을 건내며 말했다.

"네가 조현우니?"
빈테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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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7 단편 고양이의 눈2 감상칼자 2005.09.18 0
2116 단편 (번역) 나는 어떻게 아내에게 청혼했나 : 외계인 섹스 이야기 (3)2 직딩 2012.11.28 0
2115 단편 작위적인 당신의 이야기 윌라얄리 2012.02.0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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