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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신림역 살인마

2011.07.03 07:5607.03

신림역 살인마



엄마가 돌아가셨다.
날 사랑해주던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사라졌다. 이제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슬퍼해줄 사람이 없다. 한 소시오패스 연구가는 양심을 ‘우주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의무감’이라고 정의했다. 내게 양심을 느끼게 하던 단 한 사람이 죽었다. 엄마의 시신을 장기 기증했고, 나머지는 병원에 해부 실습용으로 넘겼다. 죽으면 그냥 썩어 없어지는 것이다. 죽은 시신은 날 사랑해주던 귀한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일 뿐이다. 우주에 넘치는 진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순수한 진공일수록 더 오염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우주 속의 외톨이일 뿐이다. 엄마의 몸을 그렇게 세상에 넘기는 편이 엄마가 바라던 것일 거라고 생각해도 보지만, 현실은 돈이 없어 엄마의 시신을 화장도 못 한 무능한 불효자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난 내가 애처로웠다. 장례식은 없었다. 난 엄마의 죽음을 친척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집안이 망했을 때 외면했던 무리였다. 알려봐야 부조금 찔끔 주면서 훈계나 해댈 불쾌한 무리였다.
난 평소에 안마시던 술을 마셨고, 담배도 뒤늦게 배우기로 했다. 술도 담배도 돈이 아까워 안 했었지만 이제 해야겠다. 술은 맛을 안 좋아해서 많이 못 마셨다. 담배 연기에 폐가 매워 콜록거렸다. 뭐 오래 즐길 수 있는 기호식품들은 아니었다. 난 감옥에 끌려가거나 자살할 것이다. 사형 당할 수도 있었다. 며칠 동안 난 토막 나고 갈라졌을 엄마가 생각나 식음을 전폐하고 울곤 했다. 아직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생애 동안 엄마 생각에 눈물 흘리는 일이 많을 것 같았다.
홀로 된 방은 적막했다. 어둠이 내리고 침묵이 내렸다. 창 밖에서 이사집 센터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뉴타운으로 재개발이 될지도 모르는 땅이었다. 재개발되면 세입자인 나는 보증금도 못 받을 수 있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전체 주민의 60%가 2년 안에 이사를 가는 경제 폭력의 나라, 그것이 한국이었다. 헌법 속에 있는 경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말은 허명이었다. 그나마 있는 헌법 속의 경제 민주주의 언급조차 재벌들은 없애려고 했다.
난 2교대 공장을 그만두었다. 푼돈을 벌어 하루하루 먹고 살 의미가 없어졌다. 자본은 온갖 병이 생겨 평균 수명이 줄도록 몰아가는,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밤낮을 정기적으로 바꾸는 업무를 노동자에게 강요했다. 생명을 태우도록 강요했다. 내가 맡고 있던 업무는 벨트 작업이라서 정도는 더욱 심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WHO는 야근 자체를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었다. 남의 생명 보다는 나의 돈이 귀한 법이었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일을 취미로 생각한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도 같은 삶의 방식을 강요하려고 했다. 일 이외에 다른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와 남의 다름의 존귀함을 부정했다.
배가 고파와 치즈 돈가스를 시켜 먹었다. 대체로 라면을 끓여 먹어 왔었고 그날도 그랬다.
엄마는 24시간 간병인 일을 하시다가 수면 부족으로 인한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간병인 일을 안 해도 벌어먹고 살 수 있었다면, 아직 50대인 엄마는 돌아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높아진 물가와 사회복지학과 학자금 대출금 때문에, 그렇지 않고는 두 가족이 합쳐 월세를 생활비를 댈 수 없었다. CEO들은 빈민들이 모든 인간적인 욕구를 접고, 결혼도 육아도 할 수 없이 하루하루 밥만 축내는 임금만 주기를 원했다. 수출 의존도가 80%나 되는 한국이라서 내수를 부양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CEO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닥치는 대로 수입하면서 최저생계비를 강요했다. CEO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돈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배려를 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종자들이었다. 자본가들이 덜 이윤을 가져가고, 더 세금을 냈다면 내가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뭐 자본가들의 종족 특징은 탐욕이니 그들 스스로 속에서의 개혁은 바랄 일이 못 된다. 자본가들이 날뛰던 19세기엔 노동자는 하루 18시간 노동을 했고 평균 수명이 20년이었다는데, 노동자의 저항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그런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동물 생태계에선 초식동물이 자연사하는 비율이 육식동물의 2배가 넘는다는데, 인간 사회에선 부자가 빈민 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다. 동물 생태계 보다 어떤 면에선 더 각박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것은 부자들이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있었다.
엄마는 간병 한 번 못 받고 돌아가셨다.
내겐 작은 원룸 월세 보증금과 300만 원 가량이 든 통장 말곤 없었고, 부채는 1000만원이 넘었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연락하는 친구 하나 없는데다, 이제는 나이 많은 고아가 된 30세의 사내, 그게 나였다. 엄마를 잃고 나니 더 할 수 없이 우울했다.
평소부터 생각해 오던 묻지 마 살인을 하기로 했다.
이번 달 월세 35만원부터 냈다. 나의 생각이 담긴 글들을 인터넷 게시판들에 흩뿌렸다. 살인을 하겠다는 말을 하거나, 내가 갈 장소를 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곤 집 근처 시장에 가서 사시미칼을 사왔다. 사시미칼을 이리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범죄가 끊이지 않는 한 원인일 것이다. 사시미칼의 날이 잘 서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1종 보통이 있었지만 장롱 면허이기에 이틀 동안 운전면허 학원에 가서 운전을 복습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가방 안에 사시미칼을 잘 챙기고는 랜트카 업체를 검색했다. 잠시 PC의 모니터를 어루만지곤 열쇠를 채우고 방 밖으로 나섰다.
버스를 타고 랜트카 업체로 가는 길에 난 내가 써놓은 글들의 내용을 생각했다.
내가 이리 못 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내가 중3이었던 IMF 체제 때 보증을 잘 못 사서 아버지의 자영업이 망했고, 그 뒤 아버지는 자살했다. 엄마는 외동아들인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 전에 이혼했었고, 상속 포기를 해서 아버지의 빚을 피했다. IMF 때 부자들은 헐값으로 나온 자산들을 마구 사들여 부를 오히려 늘렸고, IMF를 불러들인 세력은 국제금융자본과 결탁해 돈 잔치를 벌였다.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따르면 1999년에 국제금융자본은 다른 모든 종류의 자본들을 합친 것 보다 63배 더 강력했다. 대기업들은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관료에게 뇌물을 바치고, 중소기업과 노동자를 착취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인간관계에 서툰 나는 사업을 벌이거나 할 인맥과 재산을 얻을 수 없었다. 대학 재학 중에도 그 후에도 아르바이트로 공장 노동자로 떠돌았다. 날 이런 성격으로 만든 것은 어릴 적의 자극들인즉 정신 의료와 사회 복지가 더 철저했다면 날 적극적이고 베풀 줄도 아는 사람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과 이윤 추구에 탐욕을 부리면서 타인을 파멸시키는 악인들이 더 득세하는 세상이 아니었다면, 내게 닥친 불행들은 크게 줄어들거나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적에 있었던 깡패 지망생들의 횡포로 인해 내가 왕따 당해 상처를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왕따 피해자에겐 사회가 관심도 없는 주제에,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간 일진 출신들에게만 지원이 몰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존엄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란 것도 결국 과학적 인과율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종교뿐이다.
인류의 기득권 계급은 법을 스스로 만들면서 합법을 강요하며 돈을 빼간다. 16~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대량 학살과 노예 제도가 합법이었지만 타도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매판 자본 시대에 합법인 인위적 물가 상승과 비정규직과 구조조정과 M&A와 신자유주의와 잔업과 야근 등등이 불법으로 과거의 유물로 될 날도 올지도 몰랐다.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모든 일이 죄악이 되는 시대, 개인의 고통과 불행을 보다 살펴주는 윤리적인 시대, 난 그 시대를 불러들이고 싶었다.
만약 이대로 나간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발전해서 인간과 결합하여, 즉 트랜스 휴머니즘이 현실이 되어, 인간이 혼자서 공장과 회사를 경영할 수 있게 되면, 생산 수단을 소유한 부자들은 모든 노동자를 해고할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빈민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때 빈민들은 굶어죽거나 부자들에게 학살당하게 될 것이다. 부자들은 그때 컴퓨터와 결합하여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대로 나간다면 탐욕스러운 부자들만이 승리하니 예외는 없다. 즉 부자들은 인류를 멸종시키게 되는 것이다. 아직 인간이 인간에게 필요한 19세기에도, 현재에도, 부정부패와 비리에 찌들고 빈민을 마음껏 탄압하는 부자들이, 인공지능과 로봇과 결합해 불로불사와 엄청난 지능과 물리력을 갖게 된다면, 아니 그럴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현재는 그걸 막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혹자들은 남 탓 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우주 역사의 인과로부터, 또한 동시대의 거대한 조류로부터 벗어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그건 신민(臣民)일 뿐 시민이 아니다. 썩어 빠진 한 정당의 국회의원은 천민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2008년 촛불 시위 때 썼지만, 천민들의 뜻이라 해도 민주 공화정에 합치된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그는 귀족 과두정의 두령일 뿐이었다.
미래엔 뇌의 운동 방식을 검사해서, 공격성이 높고 공감 능력과 양심이 결여된 악인들을 찾아내, 악인들에게 뇌수술을 가해 착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악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착한 세상을 만들려는 모든 노력들을 방해해 왔다. 악인들은 어떤 체제를 만들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쓸 뿐이다. 개인들이 모두 도덕적이어도 도덕적인 조직을 만들기 어렵다는데, 현실은 악인들도 많다. 착한 세상을 만들려면 우선 착한 사람만으로 체제가 구성되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려는 악인들에게 설득과 협상을 해서 착한 세상을 열려 해도 헛일이다. 악인들로 인해 인류의 악덕은 심화되었다. 악인들을 찾아내, 죄의 유무나 연령의 고저와 상관없이, 세뇌할 수만 있다면, 혹은 감형 없는 종신형에 처할 수가 있다면, 혹은 쏴죽일 수 있다면, 몇 명이 희생되든 좋았다. 어차피 그들은 악인이다. 이와 같은 악인들을 제거하는 방법이 권력 남용을 초래할 수 있다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잘 다룬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 지방대 중퇴생의 이런 논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묻지 마 살인이라고 난 생각했다. 난 살인을 하는 게 아니라 투쟁을 하는 것이다. 언제나 투쟁엔 희생이 따른다. 내게 희생되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어 살해당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려고 몇 차례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들이 죽을 이유는 또 있었다. IMF 체제 때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면, 부자들의 횡포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순종적인 국민이었다. 대공황 때 미국의 유태계 자본가들처럼 살해 협박을 받는 경우가 흘러 넘쳐야 했다. 자살자나 노숙자가 되느니 부자들과 동귀어진을 했어야 했다. 버스 안에서도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내가 꿈꾸는 세상에 들어 차 있을 착한 사람은 못 된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 이르는 길엔 나 같은 투쟁가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살인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전형적인 연쇄 살인범으로 기록될 것이다. 표창원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연쇄 살인범은 직장이 불안정하고 결혼에 실패했고 책을 많이 읽는 등등의 특징들이 있다고 했다. 난 모두 들어맞는다. 때문에 크게 화제가 될 만한 일을 더욱 터뜨릴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야 내 의견들이 화제가 될 것이다.
버스에서 난 허벅지를 하얗게 내놓은 여자들을 바라다보았다. 버스에서 자위를 하고 싶었지만 거사를 위해 참았다. 성매매 특별법이 발효되기 직전에 1번 사창가에 가서 하고 온 이전에도 그 뒤에도 PC가 제공해주는 파일들에 의지해 자위를 했었다. 그것이 돈이 내게 허락한 쾌락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돈 벌 욕망 말곤 아무런 욕망도 궁극적으로는 대우 받지 못 하는 이 세상에서조차 난 자위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그런 일상을 잃게 될 테지만 감옥에서도 자위야 얼마든지 상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일 터였다. 아마도 사형언도를 받게 될 것이다. 유영철의 얼굴을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성매매 특별법은 부동산 재벌 페미니스트들의 농간이었다. 그들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는 전혀 잡지 않았고, 음성적으로 번지는 것도 묵인했으며, 사창가를 내쫓아 재개발 정비 구역에 넣는 데에만 급급했다. 부자들은 수없이 음모를 꾸미고 그걸 비난하면 음모론이라고 매도해왔다. 부자들은 그렇게 빈민들이 성교를 할 자유까지 빼앗었다. 자신들은 실컷 누리면서 말이다.
난 랜트카 업체에 가서 승합차를 사흘 빌렸다. 이제 돈도 다 떨어져 간다. 하려면 빨리 해야 했다. 찬찬히 신림역으로 이동했다. 서울 시립 보라매 병원에서 일하던 엄마를 만나기 위해 몇 번 가본 적이 있던 역이었다. 운전은 쉽지 않았다. PC방에서 프린트한 초보운전 종이를  유리창에 붙여 두어서 인지 별반 마찰은 없었다. 우황청심환을 한 번 더 씹어 삼켰다. 심장이 떨려왔고 다리도 떨렸다. 실행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옆자리에 놓인 열려진 가방 안의 사시미칼도 한 번 더 확인했다.
거사 지점이다.
난 신림역 7번 출구 버스 정류장에 가까이 들어갔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죽지 못 해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이었다. 서민들임에도 총파업을 일으켜 사회를 한 번 뜻대로 움직여 볼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 CEO 마인드의 신민들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만 총파업이 일어난다면 한국만 바보 될 뿐이지만, 전 세계에서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자본가들의 낯빛도 달라질 것이다. 엑셀을 꽉 밟았다. 차도와 인도 사이의 턱을 넘자 바퀴를 통해 둔탁한 울림이 전해져 왔다. 차체로 넘실거리는 충격감이 남달랐다. 난 계속 엑셀을 밟았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날아가고 쓰러졌다.
“미친 새끼야!”
하고 누군가가 외쳤다. 상처가 많아야 얻게 되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 최고의 욕이 될 정도로 한국 사회는 폭력적이었다. 난 그것에 대항한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후회해도 뒤늦었다.
난 가방에서 사시미칼을 꺼내 들고 밖에 나섰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나의 뒤를 버스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버스로 치어서 날 제지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난 쓰러진 사람들의 목과 가슴을 노려 찔러 갔다. 피가 솟구쳐 온 몸에 뒤집어썼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도로가 구경꾼으로 막혔고, 인도가 텅텅 비었다.
비명 소리와 함께 욕설이 오갔다. 욕설들도 비명들도 멀어져 갔다.
경찰이 쉽게 올 리는 없었다. 도로가 자동차로 막혀 버렸다. 차창 너머로 적잖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든 것이 보였다.
한 사내가 날 뒤로부터 안았다. 난 힘이 센 편이 못 된다. 난 온 몸으로 저항했다. 그 중년 사내가 외쳤다.
“미친 새끼야, 가만있어! 경찰 불러요!”
멈춘 버스에서 버스 운전사가 뛰어 나와 나로부터 사시미칼을 빼앗으려 했지만 내가 손목 끝으로 휘두르는 바람에 멈칫거렸다. 날 껴안은 중년 사내가 다리를 걸고 힘을 주었다. 난 뒤엉켜 쓰러졌다.
“맥아리도 없는 새끼가.”
내가 사시미칼을 휘두르려 했다. 버스 운전사가 내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얼얼했다. 뒤이어 손에도 비슷한 충격이 왔다. 사시미칼이 날아갔다. 버스 운전사의 구두에 피가 흘렀다. 사시미칼을 주워야 했다. 벌써 살인을 끝낼 수는 없었다. 난 버둥거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욕들이 빗발쳤다.
피에 젖은 사내들이 주춤 주춤 몰려와 내 몸 구석구석을 붙잡았다.
경찰차 사이렌이 멀리서 울렸다. 여러 대였다.
경찰이 와서 내게 수갑을 채우고 일으켜 세웠다. 옷에서 피비린내가 심하게 올라왔다. 이제 세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목격자가 되어 따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착한 세상을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것에 호소한 것이다. 또한 그것에 반했다는 생각이 들자 괴롭고 슬퍼졌다.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 나를 정당화했다.
경찰들은 옷을 갈아입히고, 피 묻은 내 옷을 증거물로 가져갔다. DNA 채취라도 하려는 모양이었다. 경찰서는 시끄러웠다. 심문들이 이어졌다. 강력계들은 덩치가 컸고 폭압적이었다. 저들은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으니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들겠지. 일정 시간이 흐르자 기자들이 몰려와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재꼈다. 강약은 상대적이다. 약자일 때 인간은 협력하려 하고, 강자일 때는 자유를 누리려고 든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수없이 일어난 일들이다. 부자일수록 공동체를 이루려고 안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래에 스스로 진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술력을 부자들이 손에 넣게 되면 그들은 인류가 아닌 무언가가 되려할 테고 인류는 멸종당할 것이다. 혹자는 그들은 인류의 후손일 거라면서 쿨 한 척 하지만, 자신을 죽인다면 후손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경찰이 순대국밥을 시켜주어 수갑 찬 손으로 가까스로 떠먹었다. 형사들이 노려보고 있어서 체할 거 같았다. 나 때문에 3명이 죽었고, 8명이 크게 다쳤다고 했다. 형사들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나 덕분에 승진이 빠를 것 같다고 농담을 했고, 나를 보고 눈을 부라리면서 탈출을 시도라도 하면 실컷 때릴 거라고 말했다.
난 눈치를 슬쩍 보곤 기자 쪽을 보곤 말했다.
“제가 화제가 되고 있나요?”
한 기자가 혀를 차더니 답했다.
“난리 났지. 방송, 신문, 인터넷 다 난리야. 네 글이 떠돌고 있을 정도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모두가 함께 평화적으로 해야지 이게 뭐냐? 어려운 사람들이나 죽이고. 버스 타는 사람들 중에 잘 사는 사람이 있겠냐?”
“내 글을 알리려고 그랬어요.”
“성공은 했구만. 이거 특종인데? 네 글을 더 유명하게 해주지. 그건 그렇고 이미 너 때문에 좌파들이 더 비난당하고 있어. 내성적인 사람들은 또 무슨 죄냐?”
“그렇다고 그들이 죽지는 않지요. 전 빨갱이가 아니라 파시스트예요.”
“그래, 잘났다. 그건 그렇고 인터뷰하자. 야, 카메라 잘 찍어.”
기자들이 알고는 덤벼들었다. 카메라 담당자가 오케이 사인을 보낸 모양이었다. 내게 아까 기자가 물었다.
“유인태 씨, 같은 내용의 글들을 포탈들에 올렸던데 그 글들을 알리려고 살인을 저지른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자, 카메라 끝.”
기자들이 버글거렸다가 다른 곳으로 대부분 갔다. 한 기자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천민 주제에 엘리트를 까? 판사들 엘리트인 건 알고 있지? 넌 사형당할 거야. 네가 반드시 사형당하도록 만들어주겠어. 내 인맥을 모두 활용할 거다.”
내 의견을 모두가 용납할 것이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내가 죄를 지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난 내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난 유치장에 들어갔다. 가자마자 유치장의 두 깡패가 때리고 밟았다. 경찰들이 달려와 떼어냈다. 난 거물 행세를 할 수 있을 터인데 왜 맞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찰이 말했다.
“너희 뭐야? 얘가 고소하면 너희 무사하지 못 해. 얼굴도 팔린 놈이거든. 저기 CCTV 안 보이냐? 나중에 보자.”
경찰들이 물러나자 난 구석에 웅크리고 모포를 덮었다. 깡패 하나가 으스대며 말했다.
“기자가 용돈 주면서 널 패라고 했다. 기자 말대로 좃밥 새끼잖아.”
교도소는 깡패들이 장악하고 있다. 깡패들은 어디가든 잘 산다. 학교 때엔 일진이 되어 이지메와 패싸움과 성폭행을 일삼으면서 사는 것이 제일이다. 그래야 사회에서 환영받는 인재가 된다. 물론 난 그렇게 살지 못 했다. 교도소에서 편하게 지내려면 독방을 받는 사형수 쪽이 더 나을 것이다. 사형을 언도받기로 작정했다.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면 EU에서 경제 제제를 하겠다고 내정 간섭인 협박을 하고 있으니,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얼굴이 팔렸다니 기쁜 소식이었다. 나 같은 살인범은 초상권이 없어야 한다.
잠에서 깨었다. 아침까지 별 일은 없었다. 설렁탕을 먹었다. 내가 범죄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는 전광석화처럼 이어졌다.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으니 부인할 수도 없었다. 이제 남은 평생 교도소에서 보낼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 울음이 터졌다. 내가 눈물을 흘리자 한 형사가 씹어 뱉듯이 말했다.
“뭘 잘 했다고 울어. 너 때문에 가족 잃은 사람 많다.”
형사가 구속 영장을 보여주었다. 자세히 안 보여주었다.
“사형을 선고받을 거예요.”
“그러다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 자살 마라.”
자살도 괜찮은 선택이다 느껴졌다. 평생 사형을 기다리면서 지내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엔 정남규처럼 먼저 자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일단 닥치니 심란했다. 차에 받혀 날아가고, 내게 사시미칼로 찔린 피해자들의 표정이 어른거렸다. 악몽에도 새로이 등장할 것 같았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닌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면 이렇게 괴로워하게 된다. 역시 살인은 적성에 안 맞는 일이었다.
난 내 운명을 관조했다. 난 무능하고 게을렀다. 노숙자 대신 교도소에서 썩는 길을 선택한 거라고 난 생각했다.
국선 변호인이 왔다. 유치장에서 만났다. 난 포승줄에 묶여 있었고 수갑을 차고 있었다. 국선 변호인은 말했다.
“당신을 사형 당하지 않게 하는 건 어려워요. 하지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도록 최선을 다해 보지요.”
“어차피 사형을 받게 될 겁니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적이 있더군요. 그걸로 감형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왕따 당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하면 판사의 동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거예요. 배심원들이 있다면 더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힘내 봅시다. 혜진 예슬 살인범, 정성현은 그러고도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보아하니 자신의 변호사 경력을 쌓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 듯 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붙어서 무기 징역을 이끌어 내면 변호사로서야 명예로울 터였다. 일반적으로 변호사의 명예란 돈과 직결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난 알짤 없이 사형이었다.
현장 검증을 했다. 경찰서에서 나서는 길에 유족들이 몰려 와 욕질을 했다. 이 살인마, 우리 엄마, 살려내! 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평소의 소심증이 도졌다. 사람들이 무수히 모여 있었다. 욕질이 시끄러웠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로 내 이름은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현장 검증을 마치고 국선 변호인과 다시 대면했다.
난 대뜸 물었다.
“제 글이 화제가 되고 있나요?”
“인태 씨가 바라는 것만큼 화제가 되고 있진 않아요. 아무래도 살인자의 글이다 보니 무시하려는 경향이 짙지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인터넷을 좀 보고 왔어요.”
국선 변호인은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으로 비춰지도록 자신을 연기하고 있다고 난 생각했다. 구워삶아져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출세 길에 날 이용하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를 세상에 대한 유일한 통로로서 이용해야 한다.
“어떤 말들이 오가고 있나요?”
“부자들이 미래엔 혼자서 회사와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어제의 사치품이 오늘의 일상품이 되는 시장 원리상, 인공지능과 로봇의 혜택이 결국엔 빈민들에게도 미칠 거라고 하더군요. 사업가 입장에서 볼 때 박리다매로 파는 게 이득이 더 크지 않겠어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렇더라도 부자와 빈민의 물리적 격차가 터무니없이 심해질 미래에는, 부자가 악인이 되기로 결심하면 더욱 엄청난 해를 끼칠 수 있을 거예요. 세뇌도 있을 것이고, 학살도 있을 수 있겠지요. 식인, 노예 매매, 방치도 있을 테고요.”
“뭐, 그렇기야 하겠네요.”
“또 우주 시대가 되면, 해적이 된 부자들이, 강력한 무기로 지구를 금방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때 반격만으로는 불안합니다. 그런 이상 그걸 예방하려면 도덕적인 인공지능을 만들고, 악인의 뇌를 열어 윤리를 세뇌하거나 감형 없는 종신형을 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교육이나 법치가 우주에까지 미치기 힘들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악인들을 그렇게 심판할 기관의 도덕은 어떻게 보증하죠? 악인들을 심판할 수 있을 정도 권력의 기관이면 오히려 악인들이 많이 몰리지 않을까요? 인태 씨가 악인으로 지목한 소시오패스의 특징은 권력욕만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이니까요. 당장 인태 씨만 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나요.”
“우선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세상을 만들어 평등하게 서로를 지켜볼 수 있게 해야죠.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도록 기술을 발전시키고요. 그러고 나면 비로소 악인들을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마련될 겁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죠. 사람들이 많이 심판진으로 참여할수록, 기준이 늘어나서 악인으로 판정되는 사람들이 너무 늘어나지 않을까요?”
“악인 기준은 심리학자, 정신과의사, 법학자, 경제학자 등등 해당 분야에 권위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해서 결정해야죠.”
“하, 아무튼 모든 이들이 공감한 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생각은 아니라는 거였어요. 당장 인태 씨는 살인자이기도 하고요.”
난 살고 싶어졌다. 내 이론이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고 죽고 싶었다. 과학은 점점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순수 인공지능이 순수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특이점의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난 믿었다. 난 살고 싶다는 말을 국선 변호인에게 했다.
“그래요. 삶의 의지가 있다는 건 좋은 거죠.”
묘한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정남규처럼 자살일랑은 하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국선 변호인이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무척 외롭고 쓸쓸했다고 했죠? 우울증이 도져서 심신미약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밀고 나가 봅시다. 정신병력도 있으시니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을 유일한 방법이네요.”
“감옥에서 많이 맞게 되겠죠?”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저지른 일 아닌 가요?
난 침묵했다가 말했다.
“역시 사형을 받는 것이 좋겠어요. 독방이라 살기도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혼자서 책도 볼 수 있고요.”
국선 변호인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압박감을 견딜 수 있겠어요? 정치권은 표에 민감해서 언제 사형을 집행할지 모르는 일이예요. 인태 씨는 죄를 뉘우쳐야 해요. 자신이 얼마나 죽은 사람들에게 또 그 가족들에게 몹쓸 일을 했는지 뼈저리게 뉘우쳐야 해요. 신을 안 믿어도 참회할 수는 있는 법이에요. 전 인태 씨가 앞으로 그렇게 살기를 바라요. 인태 씨가 싫어도 무기 징역을 받게 해드리겠어요. 물론 인태 씨가 방해할지도 모르지만 난 내 갈 길을 갈 거예요.”
“전 꼭 사형을 받을 겁니다. 도와주시죠.”
국선 변호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는 말을 덧붙였다.
“이건 내 자존심과 경력 문제에요.”
국선 변호인이 날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국선 변호인이 술 냄새를 잔뜩 풍긴 채 왔다. 옷차림도 고르지 않았다. 정이 좀 붙어 있는지라 난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변호사님?”
“이혼했어요. 내가 영어를 잘 못 해. 토익 만점이긴 한데, 회화를 잘은 못 해. 그래 가지고 큰 사건을 맡을 수가 없어서 회사에서 잘렸어. 그런데 전에 눈 딱 감고 내 변호사 아내를 상사에게 따먹으라고 바친 적이 있단 말이야. 출세하려고. 근데 아내 이 년이 상사 놈과 바람이 나버렸어. 세컨드로 들어갔어. 하긴 국선 변호나 하는 놈이랑 같이 살고 싶겠어? 지금 내가 제 정신이 아니야. 상사 놈, 아니 상사였던 놈이 워낙 거물이라 고소해 봤자 나만 당해. 그 년이 출세라면 환장을 하더라니. 고소하면 날 자살로 위장해서 죽일 거야.”
엘리트의 부패상의 일단을 엿본 거 같아 즐거웠다. 엘리트일수록 방탕하고, 탐욕스럽고,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 적다고 난 알고 있었다. 부자는 가난을 만악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빈자는 탐욕을 만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 따르면 빈자가 옳았다. 탐욕으로 인해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국선 변호인은 형식적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별반 변론도 하지 않고 자리만 채웠다. 판사와 검사에게 지적을 받았을 정도였지만, 그는 의욕이 서지 않는 듯했다.
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야, 신난다!’
새로운 국선 변호인이 선임되었다. 살인은 본디 3선제라 대법원까지 간다. 불확실했지만 동시에 확실한 측면도 있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었다. 난 하염없이 자본의 행정적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정부에 모든 운명을 맡긴 채 미래를 기다렸다.

                                                
                                                2011.07.03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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