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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양이의 눈

2005.09.18 21:2809.18

'아'
몸을 일으키자 짧은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얼마나 잔걸까. 나는 시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30
시계는 중천에 뜬 해가 무색할 만큼 잠을 자 버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깜빡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라는 무거운 신분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2년의 높은 장벽이 안겨준 쓰라림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험 후에는 이렇게 늦장을 부려도 되는 마땅한 핑계거리가 생기는 것이 고등학생이 가지는 유일무이한 혜택이라면 혜택 아닌가. 입술 옆에 말라붙은 침자국을 소매로 대충 뭉개고는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마냥 터벅거리며 식탁으로 향했다.
'달걀 삶아 놓은거에 우유 꺼내서 아침 먹을 것'
어머니가 삶아놓은 달걀 다섯 개가 찬물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런 망할. 결국 오늘 아침도 따뜻한 밥 한 술을 뜰 수가 없군. 대수로울 건 없었다. 고등학교의 첫 일년은 순식간에 떠밀려왔다가 사라지는 파도 같은 시간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바둥 거리는 것을 김치찌개에 먹는 따뜻한 밥 한술보다 더 익숙하게 바꿔놓기에 충분히 길었다. 나는 찬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달걀 세 개를 꺼내 오른손에 들고 치과 안에서나 맡을 수 있을법한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꿈틀대는 우유를 한잔 따라 왼손에 쥐었다. 참 내 신세란. 몇몇 무지한 사람들은 시험의 종료와 동시에 발정난 돼지마냥 소리를 질러대며 이곳 저곳으로 싸도는 철딱서니 없는 놈들을 '고등학생'이라고 정의하는데 (대표적으로 우리 어머니가 그렇다.) 사실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1년의 학교생활은 시험이 끝나면 하루의 절반을 보태어 잠을 보충해두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놀라운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잠이라는 유희는 그 어느 때보다 학창시절에 가장 달콤한 법이다. 그렇게 현실을 망각한 채 죽은 시체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싫증이 나면 컴퓨터와 마주앉아 시간을 죽이는 차선책을 택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우유를 한 모금 하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한 것보다 우유 상태가 훨씬 나빴다. 빨래더미에서 며칠은 묵혀 둔 양말 두 세 켤레는 넣어서 휘저어 놓은 맛이었다. 그대로 우유를 싱크대에 흘려보냈다. 달걀 1개는 왼손으로 옮겨 쥔 후 컴퓨터로 향했다. 컴퓨터를 마지막으로 했던 것이 언제였더라?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사진처럼 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잘 있었나 친구"
무의미한지 알면서 모니터를 보며 한 마디 건네 본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미친 자식. 컴퓨터에게 대답을 기대하다니. 맛이 가도 단단히 갔군. 뱃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우유보다 8개월쯤은 더 맛이 갔겠어. 내 스스로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어느 정도 시간을 메울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곧 지루해졌다. 한 때는 컴퓨터 게임에 열광하여 미친 듯이 한 적도 있었지만, 이 열정도 곧 철 지난 꽃잎처럼 금세 말라버리기 마련이다. 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팔베개를 한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기력함. 지루함. 권태. 같은 단어들이 천장을 타고 부유하더니, 내 머리로, 가슴으로, 몸통으로 떨어져서는 천천히 내 몸에 스며들었다. 단어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이 무거워지면서 나른해졌다. 무기력함...지루함...권태...고독...무기력함...지루함...권태...고독....... 서서히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모든 것이 무뎌졌다. 내 몸뚱이로 떨어지면서 내 귓속을 울리던 단어들의 소리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무기력함...지루함...권태...고독..........고양이. 고양이? 갑자기 뜬금없이 웬 고양이지? 서서히 단어들이 내 몸을 억누르면서 무한한 피로 속으로 내 정신을 밀어 넣었다. 갑자기 왜 고양이지? 내가 생각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더욱 더 많은 단어들이 내 숨통을 조여 왔다. 그나마 남아있던 정신이 더욱 아득한 곳으로 빠져들었다. 고양이. 고양이. 그리고 1이라는 숫자가 내 가슴에 떨어지며 꽂혔다.  나는 숫자 1을 가장 싫어한다.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왠지 지나치게 한쪽에 편중된 듯한 느낌. 그것이 내가 1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일종의 심리적 압박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괜히 1을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지고 목구멍이 뭔가에 막혀서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개성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식으로서, 학생으로서 짊어져야할 기대에 대해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와 1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나’라는 단어를 ‘성적’이라는 단어가 좀먹기 시작하더니 고등학생이 됨과 동시에 나는 나의 성적으로 그 의미가 대체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현실의 모순에 길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항상 1등을 향해 손을 뻗어야만 했고, 1이라는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대접받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성적 대신 돈이 나라는 의미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나보다 중요한 사치품들로 내 온 몸을 치장해야만 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성과 함께 나는 추앙받을 수 있으리라. 과연 이것이 정답일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난 1이라는 숫자가 너무나도 싫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싫었고, 내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현실에 순응하는 단 한 가지뿐이라는 사실도 싫었다. 그저 1이라는 숫자와 연관되는 모든 것이 싫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첫 시험을 보고 만났던 한 마리의 고양이에 관한 것이었다. 고양이. 그래서 고양이였어. 천장을 부유하던 단어들이 흐릿해지고, 서서히 눈앞에 어둠이 드리웠다. 머릿속으로 빨갛고 노란 실들이 난잡하게 얽히면서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손 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고양이....고양이.... 그리고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집 안의 뻐꾸기시계가 열 번을 울더니 아무도 그 소리에 화답해주지 않는 것이 민망한 듯 다시 시계 속으로 그 모습을 감췄다. 밤길은 스산한 공허로 가득 차고, 건들건들한 밤바람이 음산한 손을 내밀어 내 방의 창문을 이따금 두드려대며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오늘은 2시까지는 공부해야하는데. 오늘 적어도 교과서에 나온 수학문제는 다 풀어봐야 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공부하는 시늉을 했지만, 아무래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시험이 모레인데. 이런 망할. 이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밤이 늦어지면 잠이라고 부르는 지저분한 마취제가 내 입과 코를 틀어막을 것이다. 나는 욕실에서 찬물이라도 한 번 끼얹으면 잠이 달아날까 싶어 샤워라도 하고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샤워기의 꼭지를 돌리자 분수처럼 갈라지는 물줄기가 내 얼굴위로 쏟아져 흘렀다. 나는 욕조바닥에 앉아 몸 구석구석에 샤워기를 들이댔다. 새까매진 정강이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 대자, 때가 벗겨져 나왔다. 순간 몸뚱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삶의 각질을 벗겨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밖에서 고양이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은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골목에 위치하고 있어, 그다지 세련되거나 깔끔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어디서 살림을 옮겨왔는지 알 수 없는 도둑고양이들이 이 집 저 집의 담을 드나들며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애완동물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나태하고 이기적인 짐승과 매일같이 부닥치며 사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그렇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고양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애완동물 1순위였다. 울다 지쳐서 목이 맨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의 비명은 온 몸에 소름이 돋게 하였다. 특히 고양이의 눈이 싫었다. 아주 어렸을 때,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본 고양이의 눈은 섬뜩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날 내 친구의 고양이는 이유도 없이 내 얼굴을 발톱으로 할퀴어 생채기를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그 때문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난 후, 내 얼굴을 보기 위해 김이 서린 거울을 닦아내었다. 그와 동시에 고양이에 대한 기분 나쁜 기억도 내 기억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 이제 다시 공부를 해야지. 나는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다시 제자리로군.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밤바람이 더욱 세차게 부는가싶더니,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땅바닥에는 바늘처럼 가느다란 빗방울들이 꽂혔다. 내일 또 학교가기 귀찮게 됐네.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하자. 나는 책상에 앉아 수학책을 펼쳤다. 수많은 수식들이 내 몸속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망할 수학문제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 말과 동시에 샤워한 보람도 없이 나는 잠들었다. 뻐꾸기가 날 놀리고 싶었는지 다시 튀어나와 열 한번을 울어댔다. 그래도 내가 깨어나지 않자 날 놀리는 일에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시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너 이 따위 성적으로 대학 가겠냐? 너 반 배치고사는 잘 치러서 성적이 많이 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50등 하락이 뭐냐? 너 이래가지고 뭘 할 수 있겠어?”
“죄송합니다...... 다음에 열심히 공부해서 더 잘 볼게요.”
나는 ‘그럼 제가 대학에 가면 뭘 할 수 있나요?’ 라고 반문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쳤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그저 학교 안에서 꼬챙이에 내걸린 냉동 고기처럼 자리에 붙어 앉아서 공부만 하면 되는 걸까? 의자에 열심히 엉덩이를 부벼대며 엉덩이를 녹이고, 이런저런 시험으로 찾아오는 편두통을 견뎌내며 사람들 입맛에 맞는 육질 좋은 연한 고기가 된다면 그러면 되는 것일까? 물론 공부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죽여 가면서까지 내가 공부를 해야하는걸까? 하지만 이내 다음 시험의 파도가 얼음처럼 내 머릿속으로 밀려와 이런 내 생각조차도 멎어버릴 것이다. 나는 좋은 자식이고 싶다. 좋은 제자이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 나는 죽고 기계로 거듭나야 하는걸까? 그러면 무슨 의미가 남지?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오늘밤은 유난히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려 별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약간씩 빗방울이 떨어지다 멈추다 하는 것이 꼭 비바람이 몰아칠 것을 예보하는 듯 했다. 이 골목길로 들어서면 집이 보이고, 집에 도착할 것이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까닭모를 두려움이 내 심장을 후비고 들어왔다. 도대체 뭐지? 누군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 지저분하고 괴상한 음식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듯한 그런 느낌. 나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그 곳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었다. 아직은 어린 새끼고양이가 옆집 담벽 위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요물 같으니. 고양이는 내 눈을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한참동안 고양이와 나와의 눈싸움이 이어졌다. 고양이의 노랗게 물든 눈자위 위에 실처럼 가늘게 늘어진 눈동자가 나를 압도하였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고양이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작고 짧지만 날 위협하기에는 충분한 울음소리를 냈다. 넌 나에게 안돼 라고 말하듯이. 나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고양이의 눈동자 옆으로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고,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난 널 지켜보고 있었다. 넌 실패자야. 넌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고양이의 눈에 비치는 부모님의 모습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뒤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뒤돌아 선 그 곳에는 이번 시험에서 일등을 차지한 당당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안돼. 이럴 순 없어. 나는 고양이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고양이는 갑작스런 나의 변화에 놀란 듯 했지만 물러설 줄을 몰랐다. 고양이는 오히려 담 밑에 주차된 차의 지붕으로 훌쩍 뛰어내리더니 더 크게 눈을 부라리며 나를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았다. 그래. 네가 어디까지 오는지 지켜보겠어. 이제 고양이와 나와는 한걸음 차이도 나지 않았다. 고양이와 나는 거의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지저분한 요물. 사람을 보고도 이렇게 겁먹지 않다니. 새끼 고양이에 불과한 새끼가. 나 또한 계속해서 고양이를 노려보았다. 고양이의 눈에 또 다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 이상 너에게 기대하는 건 없다. 넌 이미 실패자야.
부모님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머리 위로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졌다. 아니다. 이건 내 땀이다. 식은땀. 고양이는 여전히 날 노려보고 있었다. 내 눈을 잘 봐. 난 널 항상 지켜보고 있었어. 이 패배자 새끼야. 온 몸이 경직되어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잘하는 게 도대체 뭔대? 고양이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선생님이 나를 저런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이 나를 저런 눈으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가느다랗게 늘어뜨린 눈동자 속에 걸려있는 공포가 더욱 내 목을 옥죄여왔다. 나는 얼음처럼 굳어버린 내 손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쥐라도 난 것처럼 팔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내 그 통증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팔이 자유로워졌다.
흥. 지금 네 자신을 보라고. 넌 패배자야.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나는 내 교복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가슴주머니에 손이 이르자 자습시간에 사용하고 교복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볼펜 한 자루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패배자 자식. 이 패배자 자식. 넌 아무것도 아니야.
고양이의 눈에서 정체모를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인정하라구.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넌 그저 남아도는 쓰레기에 불과해.
말도 안돼. 인정할 수 없어.
난 볼펜 자루를 높게 치켜들어 고양이의 오른쪽 눈을 향해 휘둘렀다. 고양이의 비명소리가 고요 속을 갈랐다. 볼펜이 3cm 가량 고양이의 눈을 파고들었다. 고양이의 눈에서는 잿빛 액체가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붉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고양이는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연이은 비명을 지르며, 차 지붕 위를 두 바퀴 연거푸 돌았다. 고양이의 피가 내 오른손으로 타고 흘러 내 피부가 붉게 변하였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내가 고양이에게 외쳤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고양이의 머리를 붙잡고 볼펜을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 고양이는 그저 비명을 내지를 뿐이었다. 고양이의 처절한 손톱이 내 팔뚝을 긁어냈다. 내 피부를 붉게 물들인 고양이의 피와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검게 변해갔다. 고양이는 이제 비명을 내지를 힘조차 잃었는지 총알에 맞아 헐떡이는 새처럼 심장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렸다. 거칠게 반항하던 몸놀림도 낙지처럼 흐느적거렸다. 고양이의 몸이 축 늘어졌고 눈가의 피가 굳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동료들을 이끌고 세차게 내 뺨을 때렸다. 내가 도대체 뭘 한거지? 나는 볼펜을 쥐었던 내 오른손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역겨운 피냄새가 내 코를 찔러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도대체 내가 뭘 한거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내 심장을 엄습했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집을 향해 달려갔다.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웃음도 같이 흘러내렸다. 고양이의 눈에서 나온 피가 빗물에 섞여 하수도로 흘러들어갔다. 다음 날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니, 고양이의 시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더욱 기이한 건 그 날 이후로 동네를 이리저리 떠돌던 도둑고양이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한 순간의 일탈을 꿈꾸며 현실의 파도앞에 묻혀버린 시체 같은 너보다는 우리가 훨씬 똑똑하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일전에 거울에 잠시 내비추었다가 얼른 삭제해버린 글입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고, 많은 충고와 질타 바랍니다.
감상칼자
댓글 2
  • No Profile
    녹용 05.09.22 12:36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이 조금 이해하기 어렵긴 했지만 좋았어요^_^//(잘 쓰지도 못하면서 슬쩍 글 올리고 도망갑니다.)
  • No Profile
    감상칼자 05.09.24 14:57 댓글 수정 삭제
    결말부분에 제가 의도한 바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너무 관념적이고 제 혼자만의 생각이 되버린건 아닌가싶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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