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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학교란 이름의 양계장

2004.10.29 11:1710.29

언제부터일까? 나,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 있었던 것은. 자의도 타의도 아닌 그저 그래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곳, 학교에 있었다. 자각하지도 못
하고 위화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아니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렸
던 곳에 언제부터인가 앉아 있었다.

  한적한 교실. 나의 기억속 국민학교, 그리고 초등학교는 늘 한적했다.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다니며 저마다의 어린치기를 이기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시킬 때도 나에게 학교란 그
저 차갑고 삭막한 존재였다. 또한 학교란 곳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라는 존재 또한 그
저 스쳐지나 가는 거리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국민학생에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국민학생으로 보낸 4년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학교란 그냥 가야하는 존재였다. 그리
고 초등학생이 된 순간에도 그것은 변함이 없으리란 것을 난 느낄수 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려서 2년이 지난후 중학생이 된 뒤에서야 알아차린 아이들의 은근한 따돌림
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은근한 아이들의 따돌림. 소위 '왕따'와 비견되는 '은따'라는 것.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
았다. 어차피 나는 혼자였으니까. 혼자라도 상관 없으니까. 나의 주위를 도는 그나마 친근
하게 대하는 소위 '친구'라는 존재들에 대한 의미없는 불신은 어린시절 그런 일을 당해서
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조용하게 정말 아무일 없이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와서도 나에게 학교란 초등학교란 존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존재였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똑같은 옷을 입고 거의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에서 은근히 느끼고 있던 것이 한단어로 축약되었다.

'양계장'

  그렇다. '양계장' 그것말고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초등학교는 병아리 사육장. 중학교는
닭의 모습을 하고 병아리 소리를 내는 소위 '영계' 단계의 닭들의 집합장. 그리
고 고기가 질겨 먹히지 못한 늙은 닭들의 맛있게 사회에 먹히는 방법에 대한 강의와
병아리 닭들의 그것이 선구자들이 외치는 '진리'인양 머리를 쳐박고 몰두하는 그런 모습.
그런 것들0이 나에게는 브로일러에서 사육되는 영계와 다를것 없어 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이어지는 병아리 닭들의 놀이시간. 그러나 아직 병아리 닭인 그들은 역시
병아리 수준의 놀이 방식뿐이었다. 드문드문 병아리 닭을 탈피한 닭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병아리 닭들의 수적 우세에 그들은 퇴화해 갔다. 그리고 나 또한 병아리 닭일 뿐이었다.

  그들과 섞여서 그들을 이해해보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대가리만 큰 병아리 닭들은 대가리 작은 병아리 닭들을 선동해 나를 배척하기 시작했고
나의 무감정한 심장속에 분노라는 감정이 싹터 꽃이 만발하여 열매를 맺을 때까지 그들의
행동은 나의 심장을 난도질 했다. 그리고 어느날 분노의 열매는 영글었고 그날 대가리 큰
병아리 닭의 대장은 나에게 박살이 났다.

  그 후 2년간은 조용한 나날이었다. 가끔 별 의미 없이 시비를 거는 존재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무시해 버렸다. 2년이란 시간동안 나의 심장은 영글은 분노의 열매를 이겨내지
못한채 두개로 갈라졌고 터질듯 쿵쾅거렸다. 그렇게 이유없는 분노에 몸을 맡긴채 2년이
란 시간이 흘렀을 때 난 그녀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인사였다.

   "여어! 안녕!! 오랜만이다."
   "어어...? 누구더라?"

  내가 모르는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다소 아쉬운듯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장난끼 어린 질책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음은 미래에 대한 신의 작은
복선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야 나 민정! 흐응… 아쉬운걸? 못 알아 보다니. 하긴 초등학교 졸업이후 처음이니까.
    그래도 다음부터는 아는척이라도 제대로 해줘. 알겠지? 그럼 다음에 또 봐!"
  속사포 처럼 쏘아지는 말의 향연 속에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그저 나는 정말
뻔하디 뻔한 한마디만을 길을 재촉하는 그녀의 뒷모습에 던졌다.
   "아… 응. 다음에 또 봐."

  그녀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난 그녀의 존재를 헝클어진 기억의 실타래 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성이 민 이름이 정. 두자 이름인 민정이었다. 민정이는
나의 기억속에서 늘 여자애 답지 않은 모습으로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를 괴롭혀주고 있었
다. 그리고 잠시 전의 기억을 더듬은 결과 그녀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순진한 병아리로 보였다.

  그녀와 만난 다음날부터 웬일인지 그녀와 마주치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인연이란 한
번 이어지면 끊어질 수 없다는 옛말을 떠오르게 한다. 어쨌든 그녀의 활기찬 모습에 나는
점차 두번째 심장속의 분노가 사그라듬을 느꼈고, 두번째 심장에 분노가 아닌 다른 뭔가
가 차오름을 느꼈다.

  그 무렵 학교라는 양계장의 모습은 갈 수록 가관이 되어갔다. 대가리만 컸던 병아리 닭
들은 해가 지남에 따라 유전학적 법칙을 완전히 개무시하고 하이에나와 굶주린 늑대들이
되어 갔다. 그리고 몇몇 병아리 닭들은 어른 닭들의 진리를 찬양하며 자신의 꿈을 버린채
사회라는 이름의 포식자가 먹어치울 닭곰탕용 노계(老鷄)가 되어 갔다. 그리고 난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채 우물쭈물 거리는 상태로 아직까지 병아리 닭일 뿐이었다.

  병아리 닭인 나는 언제나 훌륭하신 늙은 닭들의 쪼임 대상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삐약거림과 힘빠진 날개짓으로 사태를 헤쳐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성적이 매우 좋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이들이 꺼리는 전
문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원할 줄 알았던 그녀가 전문 고
등학교로 진학하겠다는 말은 그녀를 아는 모든 닭들과 돌연변이들의 이슈가 되었다. 그
리고 그녀는 나의 마음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날아오르는 한마리의 새가 되었다.

  나 또한 그 사실에 대해 매우 의아해 했는데, 그 의문은 얼마후 그녀 자신에게서 직접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난 그 이야기를 듣지 말아야 했을지
모른다. 이야기를 한 장소는 학교의 옥상으로 답답할 때 그녀와 내가 자주
찾던 장소였다.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기분나쁜 쇳소리가
울리며 녹슨 옥상의 철문이 열렸고, 그뒤로 인상을 쓴 그녀가 있었다. 민정은 단단히 심
통 난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왜 어른들이고 친구들이고 남이 정한 일에 대해 그렇게 참견을 하는 거야?"
   그녀는 녹슨 철문을 대강 밀어 닫아 놓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말이 혼잣
   말 임을 느끼고 가볍게 흘렸다.
   "음… 글쎄… …. "
  역시나 이어지는 가벼운 질책.
   "우우!! 에효… 하긴. 너라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 하아… 대체 사람들, 특히나
   어른들은 우리들이 어리다고 생각이 없는 듯이 말하는 걸까? 방금 교무실에 갔다왔어.
   선생님이 내가 들어가자 마자 다짜고짜 앉혀놓고는 '민정양! 나불나불 나불나불' 이
   러는거야! 아! 나불나불 생략 부분은 당연히 왜 그 성적으로 전문학교를 가냐 이거지.
   솔직히 나는 인문계로 가서 공부나 죽어라 하는 건 싫어. 난 그보다는 요리를 배우고
   싶거든. 그래서 내 성적이면 못갈 전문학교는 없으니까 요리를 최고로 잘 가르키는
   전문학교로 가고 싶은 것 뿐이야. 그렇지만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해
   봤자 다들 날 보고 바보라고만 해. 너도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니?"
  여전히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말을 나는 간신히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잠
  시 생각한 뒤에 그녀에게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니. 넌 절대 바보가 아니야."
  나의 말에 그녀의 얼굴 표정이 약간 풀렸다.
   "그렇지? 역시 너라면 내 마음을 알아줄거라 생각했어. 다른 애들은 나보고 바보라
   더라. 하여간 공부를 자기들이 않한거지 원래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잔아? 자기들
   이 공부를 않해놓고 그냥 자기들보다 성적도 높은게 잘난척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거…
   정말 지긋 지긋해!"
  민정이는 말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끝 없이 펼쳐진 가을의 푸른 하늘아래
  그녀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늘을 날수 있다면 좋겠다."
  난 그때 보았어야만 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흘러내렸던 그녀의 눈물을.
   "괜찮아?"
   "응… …. 미안 내가 너무 이야기를 많이 했네. 저기 혼자 있고 싶으니까 먼저 내려
   갈래?"
   "응. 알았어. 벌써 공기가 차다. 감기걸리지 않게 빨리 내려와."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난 옥상 난간에 기대있는 그녀를 뒤로 한채 내려갔다. 아니 내려가려 했다. 내려가려는
순간 난 그녀에게 내 두번째 심장에서 뛰고 있는 새로운 감정을 정해야겠다고 생갔했고
난 녹슨 철문을 열어 젖히고 그녀를 찾았다.
그리고 그 순간 철문에서 부터 도움닫기를 하듯, 문을 열고 나온 내 옆을 스치고 지나
가며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미소를 보여주며 그녀는 달려갔다. 그렇게 내 일생 일대
최악의 시간은 무정히도 과거로 변해버렸다.

  다음날 양계장 곳곳에서 들리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닭과 돌연변이들의 입방아. 나의
입술과 사지는 마치 늙은 닭이 풍맞은 듯 사정없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옥상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던 하늘을 보았다. 한 없이 푸르고
광활히 펼쳐진 하늘. 난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학교라는 이름의 양계장을 탈출하여 그녀
에게 가기 위해. 마지막 한걸음을 나는 힘차게 내딛었다. 푸르게 펼쳐진 하늘. 다가오는
흙바닥. 스쳐지나가는 기억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억.



                                    모든 기억이 끊기는 그 순간
                                 난 닭이 아닌  그녀와 같은 한마리의
                                    자유로운 새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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