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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데팅스에 관하여

2013.05.28 22:0005.28

           데팅스에 관하여

         



 피스타치오 엘라쿠로는 우리 집이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걸로 그 내막은 아버지가 유산을 상속받을 때에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상속 당시 할아버지는 집안의 가구 하나까지 짚어가며 나와 아버지에게 제작법을 알려 주셨다. 데팅스 역시 참석했지만, 곧 할아버지에게 내쫓기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초대에 데팅스는 가구를 조금 갉아먹는 걸로 답했기 때문이었다.


 “초대라면서요?”


 실제로 할아버지는 초대란 말을 했다(초대장도 직접 만들어 보내셨다). 유구한 이 집의 상속에 초대한다는 말로. 당시에는 이미 집에 대해 불안해 하지 않을 때였다. 이는 어느정도 데팅스 덕분이었다. 아무튼 그때서야 집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특히 기둥과 바닥을 자랑스레 지팡이로 두드리셨다. 바닥과 붙어있는 기둥의 잘린 원뿔 부분은 갈색이었다. 원통형 부분은 눈부신 하얀색이었다. 빛나는 거미의 눈알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보석-사탕일지도 모르지만 그 부분은 확실히 알려주시지 않았다-과 호박등이 박혀있기도 했다. 마름모 주발 무늬도 있었다. 바닥과 기둥은 예전에 사막에서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을 가공하다 만들었다고 할아버지는 말하셨다. 맞다. 우리 집은 초콜릿이다.


 바닥과 기둥, 벽은 여름이와 와도 끄덕 없었다. 우리가 곤역을 치른 건 가구들이었는 데 가구 별로 녹는점이 천차만별이었다. 내가 녹는점이란 단어를 다섯 살 때 부터 깨칠 수 있었던 것도 그 탓이었다. 어느 날 책상에 놓았던 그림 과제가 늘어붙어 있었다. 종이를 간신히 떼어내자 그림은 흉한 갈색 데칼코마니로 바뀌어 있었다. 그걸 과제로 제출해야 했다. 아직도 선생님의 책상에 꼬리를 물며 올라가던 개미떼들을 기억한다. 가구들은 사간차로 우리를 괴롭혔다. 가구가 전부 초콜릿은 아니었다. 나무로 짠 가구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분간할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 뿐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할버지가가 상속 때에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아.. 데팅스, 그 앤 좀 달랐다.


 동생 데팅스, 그 애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데팅스는 나와 6살 차이가 난다. 난 데팅스가 태어난 걸 본적이 없다. 어머니가 어느 날 보자기에 싸인 갓난애를 안고 돌아왔는 데, 그 애가 데팅스였다. 데팅스는 피스타치오 엘라쿠로에서 태어났다. 맞다, 이 집 말이다. 그런데 나는 심지어 어머니 배가 불러온다는 사실도 몰랐다. 잊어버렸을 수 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 집이 이름보다도 훨씬 크고, 긴 탓이었다.


 당시 어머니가 어디로 갔나며 떼를 썼다. 난 훗날의 데팅스처럼 복도를 휘저으며, 창틀이나, 문 손잡이(문은 너무 컸다)를 부수고 먹었다. 집사들과 가정부들은 날 잡으려다 손잡이가 없는 방안에 갖히기도 했다. 그들은 나중에 복도나 기둥을 붙잡았다. 내가 이 집의 녹는점이라도 된듯이 말이다. 결국 지쳐서 쉬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에서 요양 중이며 곧 동생이 태어날 거라고 말씀하셨다.


 “대체 거기가 어디에요?


 “어디긴 여기지.”

 여기라며 할아버지는 복도를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그때 조금 더 복도를 돌아다녔다면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을까? 설사 찾았다고 해도 손에 끈적한 초콜릿이 묻은 아이를 어머니께서 안아주기라도 하셨을까? 무엇보다도 난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 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데팅스는 태어나자마자 또다시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복도만 두드리며 집안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복도를 돌아다니는 데팅스를 발견했다.


 데팅스는 이 넓고 긴 집의 다른 문을 알았던게 틀림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유산 상속 때 초대할 수 있었을까? 그 아이는 내가 모르는 다른 문을 알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데팅스는 많은 가정부와 하녀들과 긴 복도 사이에서 자랐고, 겨우 찾아냈던 부엌도 그 아이는 일찍 드나들며 간식거리를 훔쳐갔다. 내가 부엌을 찾아갔던 이유는 요리를 내오는 요리사들의 순진한 억측 탓이었다. 요리사들은 내가 부엌에서 참으로 티도 없이 요리를 훔친다고 감탄 섞인 질책을 했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식사 시간마다 날 탓하며 짧게 비난했다. 이 기나긴 비난은 데팅스가 멈출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만큼 데팅스는 빨랐다. 데팅스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러 몇 번이나 부엌에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사라진 요리들에 대해 요리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벌써 먹어치우셨나요?” 또는 “어디나 숨기겼어요?”


 물론 아무도 내가 숨긴 걸 찾지 못했다. 덕분에 뛰어난 술래에 거짓말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모든게 데팅스 그 아이 탓이었다. 빨리 먹어치운다는 일 역시도 데팅스의 일이 나에게 떠넘겨진 것이었다. 덕분에 가본 적도 없는 동쪽과 서쪽 끝, 숲 위로 계속 되는 복도에 까지 소문이 퍼졌단 걸 가정교사에게 들었다. 내가 살던 곳은 정문이 달린 본관이었다. 본관이라고 해도 복도를 하염없이 걷다보면 결국 숲으로 들어가는 서쪽이나 동쪽 관으로 가게 이어져 있었다. 10살 때 까지만해도 문은 본관 쪽 정문-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이용하는-만 있는 줄 알았다. 정문을 나서면 집의 정면이 보였다. 옆으로 길게 늘어선 저택으로 양옆에 숲을 끼고 있었다. 그 숲을 타고 집은 계속되는 모양이었다. 시중 드는 하인들 중에 산을 타고 들어와 흙 투성이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문으로 걸어나가면 큰 대로를 사이로 작은 아파트 촌과 상가건물들이 보였다. 데팅스가 초대한 친구들에는 이곳 거리의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데팅스 그 천만한 성격 때문에 이득을 본 적이 있었다. 데팅스는 가구든 손잡이는 일단 입에 가져가 깨물어보는 경향이 있었다-이것이 바로 빨리 먹어치우는 소문의 진상이었다-. 데팅스는 가구를 깨물다가 이가 부러진 적도 종종 있었다. 데팅스는 그럴 때


 “저건 나무야!” 거나 “저건 초콜릿이야! 돌멩이보다 단단해!”


 소리쳤다. 덕분에 안전하게 옷을 보관할 옷장들을 몇 개 확보할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시기였지만. 할어버지는 집안을 부수고 다니는 데팅스와 소문 속 나한테 결코 화를 내시지 않았다(유산 상속 때만 빼고). 부서지거나 녹은 가구들을 금새 새가구로 바꾸셨다. 이빨 자국이 난 모든 가구를 말이다. 옷이 들어있는 채로. 찾아가보면 세련되게 마감이 된 텅 빈 옷장이 날 맞을 때가 잦았다. 반대로 어느 방에 들어서면 데팅스의 이빨 자국이 분명한 손잡이를 볼 수 있었다. 데팅스의 이빨은 그렇게 단단했다. 마치 전설 속 검처럼 박힌 곳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으니 말이다.


 이런 데팅스가 우리 집을 망하게한 것도 돌아보니 그리 놀랍지 않다. 상속 때는 미쳐 깨닫지 못했지만.. .


 데팅스를 쫓아낸 후 할아버지는 가구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아버지에게 알려주셨다. 물론 나에게도. 할아버지는 나에 대한 소문을 빠뜨리지 않고 말씀하셨는 데- 빨리 먹어치우는 만큼 만들어야겠지.. 가구가 없다면 난감하지 않겠니?-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차라리 모두 먹어치워서 나무 가구만을 남겨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할어버지의 자랑스러운 지팡이질에 주의를 빼앗겼다. 그러나 어리석은 탓인지 나는 물론 아버지 마저도 가구와 바닥의 조제법을 반도 깨닫지 못한 눈치였다. 그래도 난 여유를 부리며 속으로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떠넘겼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다시 들으면 돼지.’


 아버지는 오랫동안 집에 흥미가 있었고 유산에 관심도 많았다. 이 집을 모두 돌아본다면-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거라 믿었다. 상속은 방을 흝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갔고-처음 본 식당도 있었다-다시 방을 흝다가 밤이 되면 잠을 자는 식으로 계속 됐다. 사흘 째가 되야 중단 되었는데, 데팅스와 아이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데팅스의 아이들이 집안을 먹어치웠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막기에는 늙었고, 우리는 만드는 방법을 채 깨닫기도 전이었는데! 데팅스가 할아버지가 초대했으니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고 잡힌 아이는 말했다.


 “그만둬! 그만!”


 아버지는 아이들을 잡기위해 뛰어다녔다. 한번도 그렇게 뛰어다니며 겁에 질린 아버지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곧 아이들의 함성소리에 묻혔다. 넉넉한 품의 옷을 입은 아이들은 연신 팔랑거리는 연처럼 집안을 뛰어다녔다. 할아버지는 놀라셨는지 엉덩이부터 쓰러지셨다. 할아버지의 엉덩이 자국은 아직도 그 복도에 남아있다. 맞다.. 복도 바닥이 그때부터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발을 떼기가 조금씩 힘들어져 아이들을 잡기는 더욱 힘들었다. 힘들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아이들은 조금씩 느려졌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끈적한 바닥을 훓으며 초콜릿을 집어 먹었다. 하인들은 겁을 먹고 부질없이 기둥을 붙잡았다-손자국이 아직도 구석구석 남아있다-. 가구들과 창, 손잡이, 문들이 사라졌고 기둥을 핥아먹던 아이들의 손자국을 남기며 유산 상속은 끝이 났다. 아버지는 데팅스에게 집에서 당장 나가라며 소리쳤다. 데팅스는 초대라면서요 대꾸하며 뒤를 돌아갔다.


 할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 의사는 끈적한 초콜릿 복도에 결국 넌더리를 내며 사망 선언을 했다. 본관은 훼손이 심해 하인들과 가정교사들은 서쪽이나 동쪽으로 흩어졌다. 우리는 동쪽으로 향했고 마주치는 하인들의-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질문에 아버지는 무작정 기다려 달라는 말만 했다.


 “언제쯤 새가구가 들어오나요?”


  우리는 서쪽으로 향해야할지 의논했다. 아버지는 데팅스를 쫒아냈다. 하지만 아직 복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손자국과 파손된 가구들이 넘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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