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인간신화

2013.02.13 18:4802.13


밤이었다. 얼핏 그리스 신전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신전에서 막 나온 듯 신전 문 앞에 서있는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과 이제 30대에 접어든 듯 보이는 또 다른 청년이었다.
신전 문 앞에 서있던 을이 눈을 크게 뜨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실제로 인간을 보게 되다니.”
그 목소리는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을과 마주보고 있던 갑이 그렇게 말했다.
을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벅찬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차가운 밤공기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문득 을이 정신을 되찾고 말했다.
“들어오시지요.”
을의 안내를 받아 갑은 신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갑은 고개를 돌려 산 아래에 위치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신전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었고, 산 주위로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다. 도시 또한 잠들어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갑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을의 뒤를 따랐다.
“당신은 분명 인간이시지요?”
을이 고개를 돌려 물어봤다. 천장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전구의 불빛이 을의 얼굴을 비추며 옅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외관이 신전처럼 보이는 것에 반해 건물 안은 호텔과 비슷한 구조였다. 긴 복도 좌우로 수많은 방들이 늘어서 있었고 벽면과 천장에는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맞습니다. 신기합니까?”
갑이 웃으며 말했다.
을은 응접실로 들어갔다. 을은 갑을 의자에 앉혔다. 달그락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을은 찻잔 두 개와 차가 든 주전자를 들고 왔다. 둘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설마 이렇게 실제로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신화 속의 존재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을이 화색을 띤 어조로 말했다.
“신화?”
갑이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신화 속의 존재였습니다.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저희의 상상일 뿐인지 확신할 수 없는 존재였죠.”
을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지금 만나고 보니 확실히 알겠더군요. 당신이 인간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즉 인간이 존재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요.”
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나는 인간입니다. 그럼 당신이나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뭐라 부르나요?”
“저희는 하모니언이라고 부릅니다. 조화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어군요.”
“영어요?”
이번에는 을이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갑을 바라봤다.
“인간들이 쓰던 언어들 중 하나입니다. 많은 인간들이 사용했죠. 지금 우리가 영어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희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라고 불리던 거였습니까.”
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갑은 호기심이 생기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떻게 당신은 영어를 알게 됐습니까?”
을은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닿는 한도 내에서 저는 영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과 비슷하군요. 인간도 성인이 되면 유아기 때를 거의 기억하지 못 합니다. 이성을 되찾았을 때부터 나이를 잰다면 아직 당신은 성인이 아니지만요. 열다섯이니까 인간이라면 사춘기군요. 아, 사춘기라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2차 성징이 일어나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를 뜻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흥미롭네요. 어떻게 그 단어를 알고 있는 거죠?”
을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갑은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아무래도 저는 하모니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은 것 같군요. 자, 당신이 하모니언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면 제가 아는 것들을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하모니언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처음 하모니언은 어느 날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죠. 사람들은 하모니언을 좀비라고 불렀습니다.”
갑은 천장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천장에서도 형광등이 빛을 내고 있었다.
“전쟁 후 이렇게 문명을 형성한 걸 보면 신인류라고 불러야겠지만.”
“전쟁이요?”
을이 물었다.
갑은 과거를 응시하듯 허공을 바라봤다.
“공격당했으니 마주 공격했던 거지요. 수가 적었다면 격리를 했겠지만, 그러지 않을 걸 보니 적은 수는 아니었을 겁니다. 게다가 하모니언에게 물리거나 접촉한 사람은 똑같은 하모니언으로 변하거든요.”
갑은 그것도 이제 옛일이라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모니언의 수가 늘어나자 세계 각국에서는 큰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인간은 1년 만에 핵폭탄에 손을 댔죠.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었거든요. 인류와 하모니언 양쪽 모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만, 결국 보다시피 인류는 멸망했죠.”
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터 궁금했었던, 기억 한 구석에 남아있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갑의 얘기가 자기도 알고 있던 사실이란 점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아마 자신은 꽤나 오래도록 살아남아 핵폭탄이 떨어지는 광경도 본 경우이리라. 그렇다면 이 하얀 머리카락도 그 지옥에서 오래도록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성을 되찾았죠. 마치 잠에서 깬 인간처럼 그 흉포한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하모니언은 본능적으로 그러는 듯이 황폐해진 곳 중 그나마 괜찮은 건물들로 들어가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이 없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죠.”
어느 사인가 을을 응시하고 있던 갑은 다시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쳐다봤다.
“그러나 문명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마치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이 본능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상황이었지요. 그때의 기억이 있습니까?”
“아니요.”
을이 고개를 내저었다.
“뭐, 그때 아직 유아기 때이니. 어쨌든 한동안 관찰해보다가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건 자네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도 마시지 않고. 그런 점을 보면 좀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갑은 잠시 말이 없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이정도가 다인 것 같네.”
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을이 말할 차례였다.
을은 잠시 말을 골랐다.
“추측하신대로 사실 저희는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축적한 기억이 아닌, 그 이전부터 있었던 듯한 기억을요.”
하모니언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개개인마다 달랐다. 그렇기에 이 기억이 하모니언 전체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종족 특성에 가까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란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었다. 교집합을 이루는 기억도 있었다. 같은 사건을 목격한 기억이 있거나, 같은 물건을 본 기억이 있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아무도 이 기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증거물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황폐화하거나 어떤 폭발에 녹거나 파괴되긴 했으나 땅 위에는 기억 속에 있던 건축물들이 확실하게 존재했다. 도구들도, 다른 여러 가지 물건들도.
기억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류나 동식물 같은 것들이었다. 그 중에는 인간도 있었다. 핵폭발의 영향으로 모두 멸종한 것이다.
하모니언 사이에서 기억과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며, 결국 한 가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옛날이야기 혹은 신화라고 불린다.
“인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고요?”
갑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어떤 식으로 남아 있습니까?”
을은 잠시 말하기를 망설였다. 갑이 재촉하자, 을이 입을 열었다.
“인간은 광기를 품고 있는 사악한 존재입니다.”
처음부터 기억 속의 인간을 사악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을 생각할 때면 증오가 떠오른다. 기억마저 일그러질 정도의 증오. 그러다 문득,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을 보면 인간은 사악한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단지 신화 속의 존재라면 모르겠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렇게 단정 지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갑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형광등을 만드는 법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을이 화제가 바뀐 것에 안도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든 게 아닙니다. 가져와서 조립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체하고 조립하는 방법을 알았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갑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원래는 인간이었기 때문일까? 그럴 듯했다. 뇌에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일종의 포맷상태가 된 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억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내려앉은 것이다. 그게 옳다고 한다면 기억이 본능과 융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그리 틀린 게 아니리라.
“역시 이 지식은 인간의 것이었습니까?”
그 말에 갑은 고개를 들었다. 을이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뭔가 걸리는 점이라도 있나요?”
“아뇨, 단지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왜 그렇게 인간을 사악하다고 느꼈던 걸까요.”
해가 뜨기 30분쯤 전에 갑은 을과의 얘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올려다보면, 새벽하늘은 가슴이 시원할 정도로 투명하여 차라리 청명하다고 해도 될 정도였고, 먼 어딘가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핵겨울 때의 그 하늘과는 엄청난 차이였다.
갑이 이곳에 온 것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의문은 어째서 신은 하모니언이란 존재를 만들어냈는가 하는 것이다.
어째서 인류를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하모니언을 대신 앉게 했을까?
10만도 채 안 되는 하모니언을 위해 60억 인간을 죽일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하모니언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걸까? 하모니언과 친해지면 뭔가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을을 찾은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이 만남으로 갑은 처음으로 자신이 하모니언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감정을 깨닫고 갑은 놀랐다. 자신은 단지 궁금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건 의식의 한 부분이 타버릴 정도로 강한 증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증오도 을을 만나서면서 식어버렸다. 그건 사적이지도 않은, 단지 정보를 공유할 뿐이었던 대화였으나, 그것만으로도 을이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을은 60억을 죽인 살인자가 아니었다. 죽인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인간에 대한 분노를 조금 내보였으나 갑은 을이 싫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품고 있던 감정이라 마음속에서 꺼낸 순간 사라져버린 걸지도 모른다. 높은 압력에서 오랫동안 열을 받은 물건이 한순간 재가 되는 것처럼.
을은 갑을 배웅한 후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인간은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왔을 때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샘솟아 나왔지만, 그것은 증오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갑을 만난 순간 떠오른, 아주 오래전에 인간을 봤을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인간을 보고 나서 내가 어떻게 했지?
을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영 떠오르지 않았다. 갑의 말대로라면 공격했을 것이지만, 그런 힌트가 있음에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그때는 유아기였던 걸지도 모른다.
을은 문득 깨달았다.
이 유아기라는 단어도 익숙한 걸 보면, 역시 자신은 갑의 말대로 인간의 언어를 빌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문을 닫으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순간 손톱 끝이 탁 부딪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톱이 손끝에서 조금 더 자라 있었다.
갑과 만나지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둘의 대화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것들이었다. 갑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말했고, 을이 최근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얘기했다.
을은 갑이 온 이후로 어떤 것들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봤다.
얼마 전 도시로 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그는 갑의 얘기를 듣다가 책이란 것에 대해 흥미를 느꼈기에 책을 읽으려고 서점을 찾는 중이었다.
지리는 모르는데 도시가 넓은데다 어쩌며 서점이 파괴되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차를 타고 오랜 시간 돌아다녀 봐도 서점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 간판을 살피며 서행하고 있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군가가 CD를 재생하고 있는 듯 했다. 흥미가 생긴 을은 차에서 내려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그 음악이 행운을 불러다 준 것인지 을은 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을은 잠시 고민했다. 음악 소리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서점에 들어갈 것인가.
그러던 중 음악 소리가 끊겼다. 음악이 끝난 것이다. 을은 잠시 기다려봤지만 다시 음악이 들리지는 않았다.
을은 조금 아쉬워하며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뭔가 다툼이 있었던 듯 상당히 어질러져 있었는데, 작은 서점이었지만 책은 많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책등에 묻어있는 검게 굳은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대충 상상할 수 있었다. 하모니언이 인간을 공격했겠지.
그때 끊겼던 음악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번에는 클래식 풍이었는데 이번에는 재즈였다. 을은 음악을 들으며, 책을 다 고르고 난 후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동안 을은 서점 안을 돌아다니며 흥미로워 보이는 책들을 자동차에 옮겨 실었다. 책들을 볼 때 옛 추억이 떠오르는 책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주로 문제집이나 소설책들이었다.
“이봐, 지금 뭐 하는 거야?”
음악 소리를 뚫고, 조금 기분 나빠하는 기색을 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을이 양팔 가득 책을 들고 자동차를 향하던 중이었다. 을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한 남자가 서있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안색이 초췌해 보이는 하모니언이었다.
“그 책들은 뭐야?”
남자가 물었다. 을은 상대가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게 거슬렸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말 그대로 책입니다.”
남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시비냐?”
남자가 다가와 을의 멱살을 잡았다.
을은 깜짝 놀라며 책을 놓고 남자를 세게 밀쳤다. 책이 바닥으로 떨어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남자는 중심을 못 잡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이 자식이!”
남자가 벌떡 일어나며 을을 노려봤다. 그리고 두 손을 뻗고 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을은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겁에 질려 가만히 굳어 있었다.
을은 남자를 밀쳐내려 하고 남자는 을을 붙잡고 쓰러뜨리려 하며 둘은 뒤엉켜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을인 정신이 없었다. 남자와 뒤엉켜 빙글빙글 돌다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남자가 그다지 힘이 세지 않아 버티고 있지만 이렇게 휘둘리다간 언제 발이 꼬여 쓰러질지 모를 일었다.
을은 몸을 던지듯 남자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벽에 부딪히자 남자의 몸이 덜컹 흔들리더니 뒤통수를 세게 벽에 부딪혔다. 남자의 몸에서 잠시 힘이 빠졌다. 을은 남자를 잡고 옆으로 집어던졌다. 허리 높이의 진열장 모서리와 남자의 머리가 격돌했다. 남자의 두개골이 푹 파이고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진열장이 뒤이어 쓰러지며 책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음악소리가 다시 그치고, 누군가가 뛰어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을은 음악소리가 이 위층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왜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을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을은 남자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피 웅덩이가 생겨나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위층에서 들린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건 음악 소리라는 걸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기 때문이리라. 이런 와중에 그런 깨달음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야? 왜 이리 시끄러워?”
여자의 목소리였다. 음악을 틀고 있던 장본인이리라. 어떡하지? 을은 다리를 떨었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 남자는 죽은 건가?
여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을은 어디 몸을 숨길 데가 없나 찾아봤다. 계산대 아래가 눈에 띄었다. 그리로 걸음을 옮기려다 멈칫했다. 과연 저기 숨는다고 찾아내지 못할까?
을은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들키지 않는 방법은 뭐지? 을은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아니다, 숨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을은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봤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길가에 자신이 타고 온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을은 책을 집어 들고 서점 출입구로 달려갔다. 도중에 계단에서 내려오던 여자와 마주쳤지만, 을은 미리 들고 있던 책을 여자에게 집어던져 여자의 시야를 가린 후 출입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런 일이 있었지. 을은 차를 내려놓았다.
“최근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더군요. 당신이 와서 제가 변한 것처럼 다른 하모니언도 변하는 걸까요?"
도시에서는 이번 일 뿐만 아니라 다른 다툼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듯 했다. 옥상에서 사람을 떠민 일도 있는 듯 했다. 시체의 처참함 때문인지 이 일은 널리 알려졌다. 떠민 사람을 질타하는 이도 있었고, 오히려 죽은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뭔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뭔가가 달라져 예전에는 느끼지 않았던 감정에 휘말리고 있었다. 생소한 감정에 휘둘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소동은 대체로 금방 가라앉았지만, 하모니언 사이에서는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란 손톱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분명 이 신체는 자라지도 노화하지도 않을 텐데.
둘이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 건 갑이 인간이었을 적의 일들과 인간이 쌓은 지식들을 을에게 얘기해주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전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놀라워했다.
갑도 오랜만에 이야기할 상대를 만나게 되어 즐거웠다.
어느 날 을이 말했다.
“어젯밤에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여행?”
“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하모니언을 모을 겁니다.”
을은 주먹을 쥐고 갑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서 불이 엿보였다. 항상 침착하고 조용해보였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열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글쎄.”
갑은 조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렇게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좋았다.
이제 그에게 증오와 같은 감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을 이외의 다른 하모니언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그 점이 아직 하모니언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돌려놓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감정이 사라진 빈자리에 내려앉은 작은 미련일 뿐이었다.
“모아서 뭘 하려는 겁니까?”
을은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가만히 기다리니 곧 을이 조심스러운 듯, 그러나 자심감에 찬 어조로 말했다.
“문명을 재건할 겁니다.”
“문명? 문명이라면 이루고 있지 않나요?”
을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이룩한 만큼의 문명을 재건할 겁니다. 아니, 그보다 더 발전한 문명으로 나아갈 거예요.”
을은 주먹을 쥐고 말했다. 갑은 어이가 없었다. 하모니언은 이미 충분히 훌륭한데 왜 굳이 인간의 문명을 재건하려는 걸까.
그 의문에 을은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정확한 제 마음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정체해 있는 건 싫습니다.”
그리곤 고개를 들곤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뭐, 갑씨가 얘기한 대로 이 지구에도 수명이 있잖습니까. 빨리 발전해서 지구가 파괴되기 전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죠. 먼저 멸망할 게 아니라면.”
을이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아니면 지금 누가 이끌겠어요?”
그날 갑이 돌아간 건 새벽 4시쯤이었다. 낮이 길어짐에 따라 그가 돌아가는 시간이 빨라져갔다.
을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는 요즘 들어 잠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에 가까워지는 것인가 싶었다.
새벽녘이었다. 여전히 어둠이 가시지 않은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에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을은 머리를 흔들며 피곤을 쫓아냈다. 그동안에도 누군가가 일정한 박자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복도를 걸어갔다.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문을 열자, 을의 눈에 비친 것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광경이었다.
을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을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무리에서 가장 앞에 나서 있는 남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턱수염이 더부룩한 살찐 남자였다. 평소에는 순해 보일 인상이었으나 지금은 화가 난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여기 인간이 있었지요.”
을은 어떻게 대답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곧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 사람은 알고 온 것이다. 갑과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그때 자기는 방안에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갑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갑이 문 앞에 섰을 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을이 말했다.
“어쩌시려고 찾으십니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않습니까.”
을은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을을 노려봤다.
“당신은 신화를 모르십니까? 우리들은 인간들이 옆에 있으면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광기의 상징인 인간이 옆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광기에 우리들에게도 미치는 겁니다. 그래서 과거에 큰 전쟁이 일어났지요. 도시에서 싸움이 일어났던 건 그것 때문입니다.”
밤공기가 차게 느껴졌다. 을의 몸이 떨렸다. 그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쩌시려는 겁니까?”
남자는 솔직히 말했다.
“죽일 겁니다.”
을은 잠시 사이를 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행동은 너무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남자는 을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거라 느꼈다. 인간이 만든 도덕관념에 따라 그것을 파악하고, 남자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게 우리가 옛날에 했던 방식입니다.”
남자는 을을 똑바로 바라봤다.
“모든 게 다 잘 됐죠. 지금 이렇게 된 건 인간에 다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악을 배제하는 것이 어째서 조화(harmony)일까.
“인간은 어디 있습니까?”
을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농담도.”
“정말입니다. 그는 한밤중에 잠시 동안만 여기서 머뭅니다. 그리고 곧 떠납니다. 그가 어디로 가는 지는 저도 알지 못해요. 전혀 짐작도 안 갑니다.”
어디에 가는지 모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을이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갑은 대답을 피했다. 억지로 캐낼 만큼 궁금한 것도 아니었기에 을은 굳이 묻지는 않았다.
을은 지금 기다려봤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설득해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다음날 밤. 갑이 찾아왔다. 그가 신전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문 앞 계단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을의 모습이었다.
을이 고개를 들었다.
“한 가지 말해드릴 게 있습니다.”
서글픈 어조로 그렇게 말하는 을의 모습은 얼굴을 반쯤 가리는 가늘고 긴 하얀 머리카락과 유난히 거대해 보이는 보름달의 서늘한 달빛 때문인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예리하고 섬세해 보였다.
갑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떤?”
“인간은 광기와 사악을 상징하는 생물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을은 입을 다물었다. 갑 또한 침묵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갑은 을이 자신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닌지 생각했다.
한참 후 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입가에서 호흡이 하얀 증기가 되어 허공에 녹아들었다.
“하모니언은 인간이 근처에 있으면 영향을 받습니다. 하모니언은 인간의 악에 쉽게 물듭니다.”
다시 을이 말을 멈췄다. 이번에는 갑이 입을 열었다. 갑의 말은 을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을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갑을 쳐다봤다.
“어떻게? 설마 듣고 있었습니까?”
을은 그렇게 말하곤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다면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근처에 있었다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어.”
을이 중얼거렸다. 그리곤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해결하고 싶은 의문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도망치십시오. 사람들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갑이 물었다.
“저를 내버려둘 생각입니까?”
을은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를 끼칠 텐데요?”
을이 여전히 똑바로 마주보지 못하며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나쁘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그런 사람이 죽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갑은 그 말에 등을 돌렸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걸 보며, 을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지배당해 갑을 불러 세웠다.
갑의 등을 바라보며 을이 물었다.
“왜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건 제가 당신에게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인가요? 제 자신이 인간에 가까워졌기에 스스로의 죄를 얼버무리듯 당신이 착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서글픈 목소리가 차가운 밤공기를 갈랐다.
갑은 녹아든 듯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부서진 건물들을 수리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도시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을은 다시 한 번 짐을 점검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실제로 지금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겨울이 들어섰기 때문에 공기가 차갑기는 했지만 코트를 여미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입김이 공중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갑이 사라진지 나흘이 지났다. 인간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모두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었지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실제로 건물을 수리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원래 하모니언은 활기란 게 없는 종족들이었다. 갑이 머물러있었던 얼마간, 그는 뭔가를 확실하게 변화시켰던 것이다. 하모니언에게 인간적임을 전염시켰다. 이건 분명 안 좋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 진심으로 이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째서 나쁠까. 잘 사용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을은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갑의 곁에 가장 오래있었던 것은 자신이었다. 인간적인 마음, 더 나아지려 하는 향상심이 가장 강한 하모니언은 바로 자신이다. 그리고 선구적인 성과를 이룬 인류 문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하모니언도 자신이었다. 그렇다는 건 모든 하모니언을 이끌 수 있는 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갑과 헤어지기 전날 밤, 그때만 해도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목표는 지금 을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왕이 된다. 왕이 될 것이다.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모든 이들을 이끌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런 욕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명예와 권력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을은 갑을 회상했다. 예전에 처음 서점을 찾았을 때 가지고 온 책 중에서 갑의 정체에 대해 짐작하게 해주는 내용이 있었다.
인류는 분명 모두 죽었다. 그때의 하모니언이 실수할 리가 없다. 그러니 그건 확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갑이란 존재가 있는 것일까?
갑은 확실히 죽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한다. 죽은 후에 존재하는 자들. 주로 밤에 활동하는 자들. 그런 존재를 흔히 귀신이라고 부른다.
하모니언의 의식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이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선함을 지향하는 사상이다. 종교나 학문이 주장하는 낙원을 이룩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것들. 하모니언은 처음부터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갑과 함께하는 얼마간, 을의 인간적임은 그 사상을 넘어섰다. 그는 이미 인간에 가까웠다. 을과 만난 하모니언에게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더 인간적이게 된 것이다.
그들의 자손은 그들보다 더 옅어진 사상을 가진 채 살아갔다. 자손이 늘어나고, 늘어난 자손들이 다시 자손을 낳았다. 자손이 자손을 낳는 것이 거듭되고, 기존에 있던 하모니언이 죽음을 맞이하자 점점 본능에 있던 인간의 선함은 사라져갔다. 그리고 하모니언이란 말도 잊혀 갔다.
을은 죽을 때까지 갑을 만나지 못했다. 이후에 가끔씩 갑을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갑이 흥미를 가지고 다가올 때도 있고, 사람이 갑을 찾아낼 때도 있었다. 갑은 그 사람들과 얘기하며, 어쩌다 한 번 씩 이미 겪어본 듯 앞으로 있을 역사적으로 큼직한 사건들을 예견했다. 갑의 존재는 악마라고 불렸다.
 
 
 
 
――――――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894 단편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2005.04.27 0
1893 단편 너는 눈을 감는다. 티아리 2014.02.26 0
1892 단편 나비 유리아나 2013.01.03 0
1891 단편 B급 망상극장 : 무뢰도 - 아미파 최후의 날8 異衆燐 2006.08.16 0
1890 단편 불온한 병3 김몽 2009.11.17 0
1889 단편 멸종(수정)2 엄길윤 2010.11.04 0
1888 단편 키보드 워리어1 제퍼리 킴 2012.02.25 0
1887 단편 세인트 프롤레타리아 천공의도너츠 2011.08.21 0
1886 단편 [Machine] K.kun 2011.07.23 0
1885 단편 다수파 이나경 2016.10.19 2
1884 단편 책을 읽고 싶습니다 김효 2013.06.06 0
1883 단편 지구를 보다 성창훈 2011.06.03 0
1882 단편 스타 글라디에이터1 룽게 2010.04.01 0
1881 단편 3차원 진화3 유진 2008.12.30 0
1880 단편 그 아저씨를 위하여3 화룡 2007.08.30 0
단편 인간신화 목이긴기린그림 2013.02.13 0
1878 단편 자객행(刺客行) 이니 군 2012.03.28 0
1877 단편 영원의 단면2 샤유 2011.09.03 0
1876 단편 모든 꽃은 그저 꽃일 뿐이다.2 rubycrow 2005.07.02 0
1875 단편 finite infinite 2012.11.09 0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