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하늘 가득 번지는 어둠이 그 검은 물을 한 방울, 두 방울 떨어뜨렸다. 이내 세상이 모두 시커멓게 잠기어버릴 때까지.
여우는 그 속에 웅크린 채 눈을 휘었다. 하얗게 웃는 두 눈동자가 유독 빛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걸까.
아니, 혼자 고민할 바에야 직접 물어봄이 나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입술을 떼었다.
"너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니."
그 물음에 더욱 휘어진 여우의 눈꺼풀이 눈동자를 가리었다. 이제 마음을 보는 한 쌍의 거울은 사라지고, 수수께끼만 남았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단다."
뜸을 들이다 튀어나온 대답에, 왕자의 시선이 여우의 주둥이로 옮기어 갔다. 입술을 훑는 혀가 달빛에 반짝였다. 침으로 축축히 젖은 주둥이에서 끈적한 방울 하나가 축 늘어졌다. 턱끝에 매달려 흔들리던 그것은, 이내 긴 꼬리를 끊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왕자역시 배가 고픈터라, 연신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인간이 허기를 참을 수 있는 시간은 언제까지일까.
아니아니. 그건 관심없다.
왕자는 주머니로 찔러넣은 손 안에서 차가운 쇠붙이를 굴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표정없는 얼굴은 마치 백지처럼 텅 비어 아무 색도 없이 건조했다.
그리고 잠시의 대치.
왕자는 언제 웃었냐는듯 이를 드러낸 여우를 주시하며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날카롭게 빛나는 날붙이의 모습이 유독 시렸다.
"그걸로 날 찌르려는 거니."
여우의 나직한 물음과 쉭쉭거리는 숨소리가 왕자의 귓속으로 메아리쳤다. 그래. 난 찌르려는 거지.
그러는 넌 그 송곳니로 날 물어뜯으려는 거니.
왕자의 입술이 처음으로 휘었다. 그와 여우는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비슷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생존 욕구까지 억누르며 함께 굶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의 비뚜름한 입 꼬리가 초승달마냥 차갑고 시니컬했다. 여우는 그 의미를 깨닫고, 목구멍으로 소리를 굴렸다. 그르렁거리는 위협이 어둠을 진동시켰다.
이윽고, 왕자는 그에게로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피어난 꽃이 흙바닥을 물들였다. 붉게, 또 붉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