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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홀로 앉은 남자.

2004.09.15 22:5209.15

밤이 되었다.

기온이 내려갔다.

난희는 학교 앞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일 오전수업은 없다. 난희는 술을 마셨고, 혼자 마셨다. 그녀가 오전수업이 없는 이유는 전공필수 과목을 내년에 듣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동기들은 난희가 편의점 옆 돌층계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들어야 할 수업이 첫교시였다. 그들은 난희를 흘겨보고 집에 갔다. 세 명 정도가 술을 마시는 것을 고민했다. 그들 중 누군가 혹은 전부는 난희의 옆에 앉아 술을 마실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모두가 집에 갔다. 난희는 혼자 맥주를 마셨다.

편의점에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계단은 한산했다. 낮의 열기가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온도가 더 내려갈 것이다. 날이 더 저물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음날의 수업 걱정을 제낀 채 술을 마신다. 난희는 캔을 엉덩이 옆에 내려놓고 다리를 모았다. 허리를 폈다. 기지개를 켰다. 뼈를 타고 우드득 소리가 들렸다. 난희는 어깨가 굳을 만큼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몸의 긴장을 풀고 내려놨던 캔을 더듬어 집었다. 일곱 개쯤의 캔이 남아서 늘어서 있었고 전부 빈 것이었다.

이미, 어제 술자리에서 마신 양의 두 배였다. 그녀는 익숙한 친구의 팔에 안겨 울었다. 친구는 난희가 자꾸 땅으로 흘러내리려는 것을 막느라 어깨동무를 하고 버티며 움직였다. 옷자락에 난희의 눈물 얼룩이 남았다. 친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난희는 친구에게 엄마라고 불렀다. 친구는 난희를 추스르고 택시에 탔다. 난희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토했다. 친구가 슈퍼에서 생수를 사다가 난희에게 주고 양치를 시켰다.

그녀는 집어든 캔을 입가에 댔다. 기울였다. 누런 맥주가 턱에 묻었다. 하얀 거품이 윗입술에 묻었다. 난희는 그것을 닦는 대신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움츠렸다. 맥주 냄새로 약한 트림을 했다. 그녀는 몸을 더 굽혔다. 거의 바닥에 가깝게 닿았다.

그녀의 옆에 다른 남자가 앉았다. 가까운 자리였다. 난희는 구부렸던 등을 폈다. 딱 두 뼘 너머에서, 갑작스럽게 앉아온 남자는 난희에게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오십대 전후의 얼굴이었다. 고가의 비즈니스 수트와 깔끔하게 염색한 머리였다. 그들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눈치도 주지 않은 갑작스러운 동작이었다. 분명히 인사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난희는 남자의 시선이 닿은 곳을 눈으로 따랐다. 그제서야 남자가 앉으며 비닐봉지를 하나 내려놓았던 것을 눈치챘다. 통닭이었다. 박스가 불룩할 정도로 담긴 후라이드 치킨이 보였다. 반투명한 비닐봉지와, 깍둑썬 무와, 마요네즈가 묻은 양배추채가 있었다.

남자는 말을 시작했다. 약한 경상도 억양이 섞여있었다.

"닭을 한마리 샀는데."

"죽은 닭이네요."

난희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는 히죽 웃었다.

"내도 곧 죽으려고. 얼마 안 걸릴 거우다. 치킨도 좀 들지. 내도 아가씨하고 술이나 한 잔 하게."

"한 잔만 하실거면 말구요."

"나이가 몇인데 한잔이가…. 그나저나 아가씨는 술을 왜 그리 마시노?"

난희는 취한 사람 특유의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어깨를 으쓱하고 몸을 기울였다.

"저는요."

난희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어디서 났는지 맥주를 한 캔 꺼냈다.

"일 년 전에는요."

일 년 전에는, 난희는 핸드백을 현관에 떨어뜨렸다. 집 열쇠를 텔레비전 앞에 던졌다. 신발을 벗었다. 현관에 가지런히 있던 어머니의 슬리퍼 위로 그녀의 샌들이 굴렀다. 소파로 성큼 가서 몸을 묻었다. 레자로 씌워진 소파는 팽팽하게 난희를 밀어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찬장을 열고 미역을 꺼내 국을 끓였다. 뜨거운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난희는 울었다.

일 년이 지났다. 난희는 입술을 달싹였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에 묻은 맥주 거품이 모두 말랐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손에 들고 서서히 공기를 젓고 있던 캔을 입 가까이로 옮겼다. 맥주를 꿀꺽꿀꺽 삼키며 입에 채웠다. 목젖이 세 번 들썩였다. 캔을 내려놓았다. 급하게 들이킨 맥주가 치밀어오르듯 식도를 압박했기 때문에 그녀는 입을 다물고 목구멍의 어릿한 아픔을 견뎠다. 둔한 통증을 견뎠다.

병원에서는 달리 견딜 것이 없었다. 난희는 레자로 씌워진 소파에 밀려나듯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을 피했다. 간호사가 그녀를 불렀기 때문에 몸을 일으켰다. 수술대 위에 누웠다. 그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마취가 풀렸고 잠을 깼다. "다 잘 됐습니다." 의사는 여전히 누운 난희에게 말했다. 간호사는 그녀를 일으켰다. 간호사는 그녀에게 몇가지 당부를 하고 핸드백을 돌려줬다. 그녀는 병원을 나섰다.

남자가 닭다리를 하나 잡고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는 고기를 씹었다.

"내는 김양호요."

남자가 입 안에 닭고기 씹던 것이 남은 상태로, 내뱉듯이 말하고 다시 닭을 뜯었다.

"일 년 전에는 아니 조금 더 있었으면 엄마가 됐을지도 몰라요. 헤에, 전 서난희예요."

"애라고?"

그는 왼손에 닭다리를, 오른손으로 캔을 들어 맥주를 마시며 되물었다. 난희는 어깨를 으쓱하고 몸을 느릿하게 가로저었다.

"뱃속에 애가 있었대요. 윤수는 내가 자기랑 정말 안 어울린다고 했는데 그런데 몰라요 애가 생겼어요…."

그녀는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난희는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에 곧 쓰러지듯이 움직였다. 공기를 헛짚으며 출렁거렸다. 당장은 쓰러지지 않았다.

"애기가 있었는데… 윤수한테 잘못했다고 그랬어요. 내가 다 잘못했다고. 윤수가 나한테 그만 가라고 했어요. 연락하지 말자고. 난 그래서 전요,"

양호가 다른 닭다리를 집어 난희에게 내밀었지만 난희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막 나오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 뒤를 보고 있었다. 할로겐 불빛과 그 아래의 샛노란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 뒤의 어둠을 보고 있었다. 시간은 밤이었고 사위는 어두웠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편의점으로 사람들이 들어갔다. 난희는 나오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을 번갈아 보고 그 뒤를 봤다. 그녀는 과거를 봤다.

양호는 닭다리를 박스에 돌려놓고 자기 맥주를 마셨다. 그는 오른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포장이 풀리지 않은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의 포장을 뜯었다. 닭다리를 들고 있던 왼손 손가락을 하나씩 손수건으로 감싸 문질렀다.

"말도 안되죠. 아빠 없는 애는 싫어요. 그냥 죽였으면 죽은 거 아닌가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내 앤가요? 내가 걔를 죽였어요. 제가 애를 죽였나요? 낳을 수는 없잖아요. 어쩌죠. 아니. 어떻게. 어차피 윤수도요. 없었구요. 어떻게 했어야 될지 모르겠어요. 내 엄마는 맨날 울었어요…. 애비 없는 애를 낳느니 죽어버리래요…."

난희는 쓰러지지 않았다. 양호가 그녀를 붙잡았다. 양호는 난희의 허리를 안고 그녀를 끌어올렸다. 두 계단 위로 난희를 옮겼다. 두 계단 위는 평평했다. 양호는 난희의 등을 안고 그녀를 뉘었다. 난희는 다리를 죽 폈다. 신발 뒤축이 바닥에 긁히고 장딴지가 계단의 턱에 눌렸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망막에 맺혀있던 잔상이 반사되어 보였다. 피질에 기억되어 있던 기억이 파편적으로 떠올랐다.

"하나도 안 아팠어요."

난희는 눈을 감고 있었다. 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눈가에서 귓등으로 이어지는 얕은 골을 타고 눈물이 길게 흘렀다. 눈물이 흘러서 머리카락을 적셨다. 양호는 닭고기가 담긴 치킨 박스와 맥주를 난희가 누운 옆으로 옮겼다. 그는 계단 위로 몸을 옮겼다. 난희의 늘어진 무릎 옆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 양복의 옷자락이 바닥에 쓸렸다.

"애, 낳았으면 어쨌으려고?"

"제가 죽였어요…."

"아기가 태어난 우주가 있었으면?"

"윤수는 애기 아빠가 되었을…응."

"미안하네, 우주라니 그기 없지."

양호는 난희가 귀 옆의 머리카락을 흠뻑 적실 때까지 박스에 담겼던 닭의 절반을 먹었다. 그는 날개를 먹고, 허벅지를 먹고, 두 개 남아있던 다리 중의 하나를 마저 먹었다. 그는 두 번째 맥주 캔의 마개를 땄다. 캔의 반을 비웠다. 난희가 입을 열고 낮게 신음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양호는 말을 이었다.

"우주가 어딨노. 여기가 세상인데. 신은 있을지도 모르지. 별로 삼차원에 살고 싶지도 않았던 신인데."

"삼차워언."

"네. 그런데 아가씨는 남자친구하고도 헤어지지 않고 애도 낳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난희가 웃었다. "허."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네. 내가 그렇게 했어. 난희랬나."

난희는 눈을 떴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가 금세 떨구었다. 뒤통수가 돌바닥에 부딪혔다. 퉁 소리가 났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을 때 양호의 등을 봤다. 그것은 흐릿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할로겐 빛이 양호의 등에도 비췄다. 등은 약간 굽어진 듯이 보였다.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광경이 양호의 어두운 양복 빛깔에 빨려들어갔다. 와이셔츠의 목깃만 청백색으로 빛났다.

"하하. 농담이지. 아는 어쨌든 죽었지요. 가는 태어날 수가 없었어."

"재미없어요…."

난희는 술을 많이 마셨다. 알콜이 분해되려면 한참의 시간이 남았다.

"뭐… 잘 해볼래도 할 수가 없어. 무슨 장난감 압핀같다니까. 인간 어차피 다 삼차원에 사는데. 내도 여기 살고."

"별로인거 같아요 삼차워언."

양호는 잘 발려진 뼈를 신발 밑에 두고 짓밟았다. 그는 광주를 생각했다. 그날은 봄이었지만 꽃향기 대신 피냄새가 났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민간인을 진압봉으로 쳐서 뼈를 부쉈다. 너무 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총을 쏘기도 했다. 양호도 군복을 입었다.

여자애의 붕 뜬 머리에는 윤기가 없었다. 머리채를 잡고 당기면 화약 냄새가 났다. 여자애의 정강이에 상처가 나서 하얀 양말에 피얼룩이 있었다. 양호는 계림동 농협 옆의 빈집 마당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갔다. 여자애의 교복은 먼지와 콧물, 머리에서 나는 것과 같은 화약 냄새로 덮여 있었다. 그는 벨트를 끌렀다. 군복 바지를 내렸다. 아이의 교복 치마를 걷었다. 브래지어가 벗겨질 정도로 밀어올렸다. 허리에 멍이 들어있었다. 팬티를 잡아뜯었다. 엉덩이에도 멍이 들어있었다. 고무줄이 여자애의 배에 붉은 상처를 냈다. 그는 실탄이 든 총으로 그녀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울었다. 대원들이 도청을 장악하기까지의 며칠간, 그는 몇 번 더 찾아갔다. 그녀는 구겨진 쓰레기처럼 주저앉았다. 입에서 침이 흘러 드러난 가슴과 유두에 묻어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울지도 않았다. 그는 그녀를 거꾸로 뒤집어 장독에 걸쳤다. 그는 벨트를 끌렀다.

양호는 신발 뒷축을 빙글 돌려 뼈를 부쉈다. 그 여학생은 임신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차라리 미친 채로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랬다면 양호는 전날 받은 아파트 경비 월급을 몽창 털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새 양복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새 손수건을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젊은 여자애들이나 찾아갈만한 미용실에서 검정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오늘 통닭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발 뒷축으로 닭뼈를 부술 이유도 없었다. 양호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우주의 양상을 봐야 했다. 그러나 선택하지 못했던 모든 우주들을, 그 가능성의 완전한 소멸을 인식해야 했다. 헌병의 총구에 등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자애를 쏘고 마당에 묻지 않았다. 그 모든 우주 대신에 술에 취한 난희가 누워 있었다. 어쨌든 그는 24년간 나쁜 꿈을 꿨다. 양호는 가끔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어느날 아침에 손으로 목을 졸랐다. 그는 돈을 모두 털어 옷을 샀다.

난희는 고개를 기울이고 돌바닥에 뺨을 댔다. 꺼끌거리는 흙이 뺨에 박혔다. 머리카락이 흙과 쓰레기 위에 흩어졌다. 그림자가 감은 눈 위를 덮었다.

"다른 현재를 주지 못해서 미안해."

난희는 잠에 빠져들며 그 목소리를 들었다.

양호는 몸을 돌렸다. 누운 난희를 내려다봤다. 할로겐 불빛이 난희의 뺨에 떨어졌다. 눈물 자국이 청백색 빛을 반사했다. 그것은 거의 말라 있었다. 양호는 손수건으로 다시 손가락을 닦았다.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난희에게 몸을 기울여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난희의 뒤통수를 감싸 살짝 들어올리고 뺨에 붙은 흙을 털어냈다. 바닥의 흙을 손으로 쓸어 내버렸다. 자세를 바로 하고 양복의 겉옷을 벗었다. 겉옷을 모로 누운 난희의 위에 덮고 접힌 부분을 폈다.

양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닭튀김 조각이 남은 비닐봉지에 캔을 구겨 함께 넣고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비닐봉지에 소주병과 과자봉지가 솟아올라 있었다. 양호를 지나쳐 편의점에서 나오는 통통한 체구의 여자가 양손에 김이 오르는 컵라면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일행을 따랐다. 난희가 차지하지 않았던 부분이 더 넓었다. 사람들이 난희에게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자가 지나가며 난희를 잠깐 흘끔거렸다. 그리고 남은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세계는 빈 자리가 없었다. 양호가 앉은 곳은 이 우주뿐이다. 양호는 편의점 앞의 쓰레기통에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털퍽 소리가 났다. 그는 할로겐 불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 몸을 기댔다. 와이셔츠에 땀이 뱄다. 벽에 붙은 선전물과, 그 위에 얹힌 먼지가 하얀 와이셔츠에 묻어 검게 되었다. 그림자가 그를 어둠 안에 넣었다. 양호는 입을 다물고 먼 곳에 누워있는 난희를 보았다. 그는 울었다. 그는 다음날 아침 무사히 깨어나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고 집에 돌아갈 난희를 기도했다. 레자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문득 몸을 일으킬 것을 기도했다. 그녀가 난희를 안고 등을 두드려, 양복 겉옷을 받아들 것을 생각했다. 양복의 안주머니에 그는 편지를 남겼다. '서숙영 귀하 친전' 그 편지는 난희의 어머니에게 전해질 수도 있다. 양호는 그것이 세계가 되기를 빌었다.

그가 앉은 자리에 쓴 편지였다. 가까운 곳에 함께 앉은 사람은 없었다. 옆을 멀리 바라봐도 다른 세계는 없었다. 양호가 앉은 곳 이외에는 자리도 마련되지 않았다. 대신에 그것들은 양호에게 짓쳐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였다. 양호는 모든 소멸한 우주의 청취자였다. 그는 없어진 것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못박힌 듯이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호는 마지막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날숨으로 하지 않았다.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양호는 우주에서 일어났다.

-1Hz의 뇌파가 양호의 몸을 떠난 채 진동하기까지, 차원 결정력이 양호의 의식을 떠나고, 양호의 모든 존재가 없어진 세계로 편입되기까지, 난희는 편히 잠들었다. 그녀의 옆에 모인 사람들이 조그만 종이컵을 부딪히며 건배를 불렀다. 컵라면에 두 사람이 젓가락을 집어넣었다. 편의점은 열려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새벽의 공기가 차가워지더라도 괜찮았다. 양복은 여름용 천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날이 새면 일어나,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고 집에 돌아간다. 편의점은 열려 있다.

이제 아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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