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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비밀정원의 남과 여

2012.05.12 00:5705.12

비밀 정원의 남과 여
- 정신병리학의 대중화를 위하여

                                                                                                 (김운철)

발생 초기부터 대중문화는 전문적인 지식을 쉽고 재밌게 대중에게 전달해주는 위력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해당 전문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까지 연결되곤 했다.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용의자를 연행할때 그 이유와 변호의 권리, 진술 거부의 권리등이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이 원칙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우리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마치 일종의 클리셰로서 자연스럽게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그 원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전문지식들은 때로는 단순히 오락적, 극적 재미를 주기위해 왜곡되거나 과장되고 생략 당하기 일수다.

이런 대중문화의 맹점은 언제나 예외없이 따라다니는 문제인데, 나는 그런 맹점을 비판하고 조롱하며 그것의 이면에 존재하는 장점까지도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오히려 정신병리학의 영역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에 빌어먹고 사는 한사람의 학자로서 대중과 공감되지 못한채 벽걸이 장식품처럼 박제된 나의 지식의 단편에 비로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그 분야에 감사할 따름이다.
단지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단순히 낭만적인 감상에만 젖어, 표면적으로 이용된 전문지식의 '기능'만을 받아들이고 그 전문지식의 본질에 대한 관심을 대중들이 끊어버릴때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다.  

얼마전 한차례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시크릿 가든이라... 드라마가 종영된 후, 뒤늦게 이 드라마를 찬찬히 다시 보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이 드라마가 정신병리학의 어떤 부분을 빌어다 썼을지 어느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그 예감의 시작은 1912년 발간된 한 의학관련 잡지에서 부터 시작된다.
(상당히 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텐데는 나에게는 안타깝게도 전문지식을 쉽고 재밌게 풀어 말하는 재주가 없음을 미리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국제정신분석학잡지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는 국제정신분석협회(IPA)에서 간행하는 세계최고권위의 정신병리학잡지이다. 매년 가을, 지난 1년동안의 연구실적들중 학회의 위원들이 선정한 몇가지 '주목할만한' 결과물들이 이 잡지의 지면을 채우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 중에서도 1912년에 간행된 이 잡지에는 다시한번 우리가 '주목할만한' 연구결과가 나온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학자에의해 분석된 이 정신질환은 쉽게 말해 과대망상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을 선망의 대상과 동일시하여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말하고 사고하는 것이 이 현상의 주된 증상이다.

사실 이런 증상은 현대 정신병리학에서는 굉장히 흔한 경우로 - 아이러니하게도 - 대중문화로 인해 광적인 팬들이 생겨나면서 특히나 일반적인 인격장애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비틀즈의 맴버 존 래넌John Lennon을 저격한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자신을 존 래넌과 동일시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고 '진짜' 존 래넌에게 총구를 겨눌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에 사는 40대 초반의 이 여성의 경우는 좀 더 독특한 면이 있다.

평범한 재단사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20세기가 만들어낸 신흥상류층의 일원이었다. 덕분에 갑작스레 입문하게 된 상류층 사교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늘 주변부를 맴돌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사교계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꽤나 총망받는 피아니스트가 들어왔다. 그 매력적인 남자는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젊은 예술가로, 다른 남자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부유한 부인들의 욕정을 채워주며 예술가로서의 가난한 생활을 해결하곤 했다.
가뜩이나 사교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빠져있던 졸부 부인에게 이 마성의 피아니스트는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그녀의 비밀스런 짝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고, 결국 그녀는 현실의 끈을 놓고 말았다. 그녀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자아를 피아니스트의 것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것은 채프먼의 경우와 비교해 봤을 때 과대망상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 이것은 과대망상으로 분류조차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는 어느 순간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자신의 육신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부인은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피아니스트처럼 말하고 생각했고, 행동했다. 하지만 이 부인의 경우 과대망상증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모했던 피아니스트의 스타일과 똑같이 피아노까지 연주했던 것이다. 평범한 하층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게 피아노 교육이 있었을리 만무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시 헝가리 사회에서는 이 사건이 신비한 영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던건 당연하고, 실제로 퇴마(exorcism) 의식까지 집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집중적으로 그 남자의 모든 행동과 언어를 관찰했는가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얼핏 편집증적인 집착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이코패스나 편집광들의 사례처럼 폭력적이고 변태적인 행위는 일체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인의 결벽증적인 순수한 애정과 이루어질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것으로 학계는 결론지었다. 선망 대상에 대한 순수한 태도가 불가능에 가까운 자아 복사(ego duplication)를 이뤄낸 것이다.
(이같은 중간 결론은 나의 의도와는 정반대이기도 한데, 내가 서두에 말한대로 '단순한 낭만적인 감상에만 젖어'있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런 태도를 경계하는 바이다. 계속되는 이야기에서 그런 입장를 분명하게 하고자 한다.)

어쨌거나 그녀의 나이 50을 채우지 못하고 끝내 자살하기까지의 3~4년간의 기행은 이후로도 몇 번의 연구가 있었지만 극히 희귀한 발생 빈도 때문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원인은 밝혀지고 있지 않다. 그나마 소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면담을 바탕으로 공통적인 증상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그 첫번째는 발생 초기에 나타난 공통된 경험으로, 선망의 대상의 환각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자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공포감을 주는 환각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럽고 친근한 환각이다. 보통 걸음을 옮기며 골똘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정을 갖고 있는 대상의 환각이 자신과 나란히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두번째 증상은 완전한 자아의 교체 직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넓은 정원에 애정의 대상과 환자인 본인 둘이 대면하고 앉아 만찬을 즐기는 환각이 그것이다. 1958년 프랑스의 정신병리학자 끌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는 이것을 가리켜 '쟈뎅 씨크레Jardin secret', 즉 비밀정원Secret Garden이라고 명명했다. ('정원Garden'이라는 개념이 워낙에 서구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아시아권에서는 '꽃밭'이나 '뜰', '마당'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 정신질환의 학계 통용 이름이 '비밀정원'이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 만찬의 환상은 보통 환자에게 익숙한 제3자가 주선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도 아직까지 확실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지만, 비가 오는 날씨와의 관련성도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단은 짚고 넘어가겠다.

이렇게 제한된 연구결과만이 남아있는 가운데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 정말 특이한 케이스의 '비밀정원' 사례가 등장한다.

학계에서도 희귀한 질환으로 여겨지던 비밀정원. 그 비밀정원 사례 중에서도 극히 희귀한 (2011년 1월 현재까지 '유일한') 케이스로, 사랑하던 두 남녀가 각각 상대방을 향해 비밀정원 증상을 보인 것이다. 60년대 후반, 당시 정제계를 아울러 대단한 화재를 낳았던 이 스캔들은 이후 빠른 속도로 희석되고 무마되었다. 보통은 일방적인 애정에서 발생하는 비밀정원 현상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나타나게 된 이유는 극화된 드라마의 경우처럼 재벌 2세 남자와(드라마 상에서는 재벌3세) 평범한 서민 여자간의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실히 후계자 수업을 받아가고 있던 재벌 2세의 이런 일탈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아도 용납될 수 없었던 일이었고 드라마처럼 두 사람은 얼굴조차 볼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된다.

하지만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인류학적인 희귀정신질환을 두 사람이 동시에 앓게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순서대로 두 사람은 서로의 환각을 보게 되었고, 비밀스런 정원에서 마주앉아 만찬을 나눴고 결국 두 사람의 자아는 뒤바뀐 것처럼 보이게 된다.

물론 남자쪽 재벌 집안은 발칵 뒤집힌다. 온갖 병과의 의사들이 동원되서 이 증상을 멈춰보려 했지만 학계에서 제대로된 병명이 만들어진지도 얼마 되지 않는 희귀병을 고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정신질환은 불치병의 카테고리에 포함된다)유럽과 미주 등지로 정신과 의사들을 찾아가보고, - 부다페스트에서의 그것처럼 - 무당을 불러 굿을 해보기도 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동시에 여자의 집안도 엉망이 되버린 건 불을보듯 뻔하다. 영혼이 뒤바꼈다고 황당한 주장을 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남자의 경우와는 다르게 여자는 빠른 시일내로 정신병원에 맡겨졌다.
이 사실을 남자쪽 가족들도 알고 있었고, 남자 몰래 여자(남자의 자아를 갖게 된 여자)를 찾아가 대화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혼란만 가중될 뿐 나아지는 건 없었다. 여자의 말과 행동이 영락없이 자기 아들의 그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남자의 부모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기도 한다. 아들의 몸을 한 남자를 대신해 아들의 정신을 갖게 된 여자를 집으로 들여오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아들의 육신을 선택하고, 영혼이 바뀐것이 아니라 단순한 정신병이라는 판단을 선택한다.(혹은 그렇게 믿기로 결심한다) 더불어 여자와 남자는 더더욱 만날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남자는 여자의 자아를 유지 한채로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2001년경까지 회사 경영을 계속해오다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까지도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알려진다.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어느 정도 세월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재벌이 2003년 독일계 철강회사인 티센크루프Thyssen Krupp AG와 합병하여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주)로 사명을 바꾼 동양엘리베이터(주)이다. 드라마 안에서 주원(현빈 분)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설정은 아마도 이런 사연에 대한 작가의 조크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예상을 조금 더 넘어보고 싶은 욕구를 부정하지 않겠다. 남자의 자아를 갖게 된 여자가 비극적으로 갇힐 수 밖에 없었던 정신병원의 이름과 심볼이 녹색 계열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기억이 극중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라임'이라는 사실과 연결 짓게 된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각각 오스카와 주원의 어머니로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이 붉은색 계열의 색이었다는것과 당시 동양엘리베이터의 주력 상품 엘리베이터 색또한 분홍색에 가까운 붉은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한가지 더, 김똘추라는 극중 주원의 별명은 사실 동양엘리베이터의 창업주인 김 모 회장의 아명(兒名)이었다는 소문이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사내에서 돌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드라마 작가가 그런 사소한 재벌가의 이야기를 알아낼 수도, 알아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애시당초 이 드라마의 기획 자체에 누가 관여했는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이제는 노인이 된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환타지적인 멜로드라마를 만들어 어딘가에 있을 여자에게 보여주려고 했을 거라는 '감상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나는 이 글을 통해 대중들이 정신병리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객관적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천박한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잊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잠시 상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드라마 안에서 마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광경을, TV앞에 앉아있는 여자인 남자와 남자인 여자가 바라보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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