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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할리우드 스타 취재기

2010.08.08 19:3708.08

난생 처음 탄 비행기의 비즈니석은 안락했다. 좌석 상태만 놓고 보지면 고속버스의 일반과 우등 정도의 차이였지만, 심리적으로는 50평대 아파트에 자가로 거주하는 중산층과 20평대 아파트에 전세 사는 서민층 정도의 차이랄까. 거의 180도로 눕혀지는 좌석, 때마다 코스로 나오는 기내식, 요청하지 않아도 제공되는 각종 편의물품들, 개인 모니터와 리모컨… 몇 달 전 영화담당 기자가 된 후 처음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월드 프리미엄 시사회에 동행취재하게 된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마치 서울 구경 처음 나온 촌뜨기 시골 학생처럼.
내 옆엔 한국의 대표적 좌파신문인 H신문의 기자가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2년째 영화기자를 맡고 있는 자였다. H신문은 영화의 주관객이라 할 수 있는 젊은층 독자가 많았고, 그런 만큼 영화홍보 관계자들에게 중요한 매체였다. 그래서 거의 빠지지 않고 이런 행사에 동행 취재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세는 자신의 집 응접실에 앉아있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기자님들 뭐 불편하신 거 없으세요?”
행사의 주관사인 대기업 계열사 C엔터테인먼트의 홍보부장이 기자들이 앉아있는 자리를 돌면서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랗다 싶을 정도로 머리에 갈색 물을 들이고, 캐주얼한 차림을 한 그는 외모만 봐서는 전형적인 대기업 부장 스타일은 아니었다. 영화계라는 화려한 무대를 직장으로 삼아서 그런지 연예인이나 된 양 잔뜩 바람이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홍보부장 5년에 젊은 기자 정도는 자기 손위에 놓고 놀만큼 느글느글한 관성이 붙은 사람이었다.
“아니 왜 칙칙하게 아시아나 타고 가? 대한항공은 없었어요?”
내 옆자리의 H신문 기자가 보던 신문에서 눈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피의 혁명을 일으킨 자가 다시 독재자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대한항공은커녕 비즈니스석 자체가 처음인 티를 내지 않으려고, 좌석을 조정해 다리를 쭉 뻗었고 책을 꺼내 펼쳐 들었다. 홍보부장은 능구렁이 같은 말투로 H신문 기자의 말을 받아쳤다.
“한꺼번에 열 세 자리나 만들려니까 없더라구요. 연휴랑 겹쳤잖아. 미리미리 하래니까 애들이 안 해 갖고. 기자님 이번만 그냥 아시아나 타고 가세요. 아시아나도 좋아요 요즘.”
열 세 자리라 함은 홍보부장을 포함한 홍보부 직원 3명, 중앙일간지 기자 5명, 인터넷매체 기자 1명, 방송 연예프로그램팀 2명, 영화주간지 기자 2명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열 세 명은 세계적인 스타 J가 출연한 코믹 액션영화 <T>의 월드 프리미엄 시사회에 가는 중이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제작사 D웍스의 초청 아래. D웍스와 C엔터가 모든 비용과 편의를 제공하고, 기자들은 그 대가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실어주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행사였다.
기자들은 이런 월드 프리미엄 시사회에 초청돼서 가는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호화롭게 대접받고, 세계적인 스타를 만나고, 가장 쓰기 쉽다는 인터뷰 기사나 쓰면 되니까. 바쁜 일상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짧은 휴식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C엔터는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10개 중앙일간지 기자들을 돌아가면서 3~5명 정도 데려갔다. 물론 자신들의 판단아래 보다 중요한 중앙일간지(3대일간지와 젊은층이 많이 보는 H와 K신문 등) 기자들은 보다 더 많이 ‘모시고’ 갔고. 우르르 몰려가는데 기분 나빠서 안 간다고 배짱부릴 수 있는 신문은 C일보밖에 없었다. 인터넷, 방송, 연예지, 스포츠지, 여성지 등 수백 명의 영화담당 기자 사이에서 사막위 모래 같은 느낌에 허우적대던 다수의 ‘떨거지’ 신문기자들은, 이런 기회가 자신이 ‘중앙일간지 기자’라는 무한한 자부심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테러가 발생한 직후라 보안검색이 철저하다고 했지만, 기자단 일행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공항 입국수속대의 직원은 “오우. J. 아이 라이크 힘.”이라면서 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바로 내 여권에 도장을 쾅 찍었다. 밖으로 나오니 영화에서만 보던 로스앤젤레스의 파란 하늘이 깊은 속내를 보여줬고, 커다란 야자수가 부챗살처럼 흔들거리며 이방인을 환영했다. 마치 영화 속 보디가드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귀에 뭔가를 꽂은 멋진 백인 남성이 일행을 맞았고, 우리는 그를 따라 커다란 검은 밴에 올라탔다.
“어디서 오셨어요?”
옆자리에 앉은, 연예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짧은 퍼머머리 여성 아나운서가 나를 보고 물었다.
  “A신문이요.”
“제 또래인 거 같은데, 아직 20대?”
“서른이에요.”
“저보다 1년 위시네요. 전 A대 A과 A학번이에요.”
괜히 친한 척하고 싶진 않았지만, 동문이라니까 나도 모르게 두더지 인형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저도 A대 B과 출신이에요. 한 학번 위구요.”
“어머, 그럼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요. 나도 기자들이랑 친하고 싶었는데... 언니, 우리 친하게 지내요.”
짧은 퍼머머리 아나운서는 콤팩트를 꺼내들더니 얼굴에 찍어 바르면서 계속 조잘댔다.
“얼굴에 뾰록지가 나서 걱정이에요. 스트레스 받으니까 더 나고. 화면에선 잘 안 보이죠? 화면에 얼굴 작게 잡아달라고 하긴 하는데... 신문기자들은 좋겠어요. 이런 거 걱정 안 해도 되고.”
나는 별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는 ‘말’로 먹고사는 사람답게 나의 무반응에도 상관없이 떠들어댔다. LA에 친구가 있는데 내일 빨리 인터뷰만 끝내고 친구를 만나러 가야겠다느니, 피부에 좋은 화장품이 뭐가 있다느니 같은 쓸 데 없는 얘기들. 나는 창 너머 길게 뻗은 고속도로와 영어로 된 표지판을 보면서도, 여기가 영화에서만 보던 꿈의 할리우드가 있는 곳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권력이 불편했던 나는 언제나 ‘기자’라는 이름으로 접대 받는 것이 어색했다. 내게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럼에도 영화를 많이 좋아했기에, 할리우드 영화의 본고장에 왔다는 것에 들뜰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영화계 관계자의 일원이 되어. 나는 고속도로 추격신을 찍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나 된 양,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차 안에서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20여분 달린 끝에 한 5성급 호텔에 도착했고, 체크인을 하고 1인 1실로 방을 배정받아 들어갔다. 데굴데굴 굴러 자도 될 만큼 큰 침대, 꽃잎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드랍고 폭신한 침구, 고전적인 스타일의 나무장식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는 TV, 발소리도 삼켜버릴 카펫, 각종 술과 음료종류가 잘 구비된 미니바, 고풍스런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는 테라스… 나는 할리우드 자본의 힘에 또 한번 감탄했다. 한국영화 촬영현장에 갈 때는 기껏해야 관광호텔이나 모텔이었고, 방송국에서 드라마 촬영현장에 데려갈 때도 거의 2인1실이었다. 어쩌다 외국을 가게 되는 경우에도 이렇게 좋은 호텔 방에 한 명씩 넣어주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내가 영화기자가 되기 전에는, 기자가 현장취재 하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영화사에서 대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보다 네 살 많지만, 내게 언제나 깍듯한 C엔터의 홍보부 여직원이었다.
“기자님 제가 깜박하고 말씀 안 드렸는데, 이번이 처음이시라 잘 모르시죠? 100달러까지는 호텔 내에서 마음대로 쓰시게 적립되어 있으니까 룸서비스나 미니바 같은 거 이용하시면 되요. 그럼 내일 시사회 때 뵈요.”
감동적이었다.
곧바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권력을 좋아하는 거구나. 장시간의 비행 때문에 지쳤던 나는 대충 씻고, 꽃잎처럼 보드라운 침대 속으로 파묻혔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잘 못자는 나였지만, 웬일인지 눈을 감자마자 커다란 나비날개 같은 꿈의 품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나른한 바람에 흔들거리던 야자수만큼이나 꿈은 달콤했다. 5성급 호텔 ‘뽀송’ 침구의 힘이었다.
눈을 뜨자 사방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곳 시간으로 오후 7시였다. 다른 기자들은 뭐 하고 있나.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여기는 LA였다. 내가 좋아하는 할리우드가 있는 곳이고, 그보다 더 좋아하는 사이키델릭 록의 본고장인 샌프란시스코의 옆동네이고, 처음 음악에 입문하게 만든 LA메틀의 본산지이자, 가장 좋아했던 영화배우 리버 피닉스가 죽은 곳이다. 나는 LA에서 들을 음악들을 서울에서부터 엄선해서 들고왔다. 아니 내가 뭐 공무원들처럼 외유성 연수 나와 국민세금으로 놀고먹는 것도 아니고, 할리우드 자본의 ‘새발의 피’만큼 쓴다고 뭐가 달라질 게 있나. 괜히 의기소침해지면 나만 손해다. 기사만 남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되지. 맘껏 즐기자.
일단 욕조에 물을 받았고 거품입욕제를 풀었다. 미니바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도어즈의 <LA Woman>부터 시작해서 달려야지. 지미 헨드릭스, 러브, 컨츄리 조 앤 더 피쉬, 그레이트 풀 데드, 아이언 버터플라이, 재니스 조플린, 산울림, 신중현... 나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사이키델릭 록의 몽롱함과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우아하게 거품 목욕을 즐겼다. 목욕을 마치고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목욕가운을 입었다. 룸서비스로 ‘아시안 스타일 누들’을 시켰다. 다른 때 같으면 결코 호텔에서 사용하지 않을 미니바를 열고, 그 안에서 작은 양주병 몇 개와 새 맥주캔을 꺼내 테라스로 나왔다.
테라스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뿌연 안개가 테라스 안쪽까지 깊숙이 하얀 발을 내디뎠다. 여기가 LA인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안개가 더 좋았다. 테라스 의자에 가만히 앉아,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내 안까지 흘러드는 안개에 서서히 젖어들었다. 마치 몸이 풍선처럼 붕 떠올라 구름 속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졌고, 맥박은 고무공처럼 구름까지 튀어 올랐다.
맥주에 양주를 타서 마셨다. 반복되는 내 맥박소리처럼 미치도록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의 선율과, 점점 혈관을 타고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알코올 성분과, 내 영혼의 불안 같은 음산한 안개와, 공기 중을 떠돌 것 같은 리버 피닉스와 짐 모리슨의 유령까지. 마약이나 한 듯 황홀했고, 내 슬픈 과거들이 떠올라 우울했고, 머리에 꽃을 꽂았던 히피들의 이상이 파묻혀버린 이 도시의 아니 우리들의 역사에 가슴 아팠고, 그럼에도 내 가슴을 고동치게 하는 히피들의 음악이 영원히 남아있음에 흥분했고, 이 모든 감정을 LA에서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나는 안개 너머로 희미한 태양빛이 물 위에 떨어뜨린 물감 한 방울처럼 번져올 때까지, 그렇게 음악과 술과 뒤섞여 LA를 내 몸에 흠뻑 흡수했다. 개발도상국 국가에서 자라난 반항적인 새싹들에게, 미국은 타도해야할 나라인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의 땅이었다.


영화는 형편없었다. 어차피 할리우드 오락영화가 그렇겠지만, 이번 영화는 더더욱 형편없었다. 뻔한 줄거리부터 다 예상되는 반전까지. 거디다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가 종잡을 수 없게 섞여있었다. 그래도 전 세계의 기자와 귀빈 수백명을 초청한 할리우드 로드의 C씨어터는 흥분과 열기로 넘실댔다. 시사회장 앞 도로를 다 막고 레드카펫이 깔렸으며, 스타를 구경하러 나온 수많은 인파의 머리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포도밭의 포도송이들 같았다. 나는 영화가 형편없음에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마라톤의 결승점을 통과한 사람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시사회가 끝나고 LA에서 제일 좋다는 호텔로 이동하니 C엔터에서 부른 유학생 통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기자단은 얼마간의 대기시간 후에 그 호텔의 작은 홀에서 주연배우 2명과 인터뷰를 했다. 배우 1명당 주어진 시간은 딱 30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기위해 미리 질문지를 준비해서 통역에게 넘겼다. 대답에 대한 통역도 인터뷰가 끝난 뒤에 한꺼번에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 배우들이랑은 자존심 때문에 잘 하지도 않지만, 여기는 할리우드였고 세계적인 스타였기에 다들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래서 인터뷰는 25분만에 끝내기로 사전 합의를 보았다. C엔터 측에서는 사인을 받으라고 아예 영화 포스터가 찍힌 노트까지 나눠주었다.
할리우드 스타는 역시 할리우드 스타였다. 얼굴이 주먹만 했고, ‘스타’라는 이름에 걸맞게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렸다. 통역을 맡은 한 사람만이 계속 영어로 질문을 하는 상황인데도, 스타의 시선은 돌아가는 선풍기처럼 열 명의 기자들에게 골고루 분배됐다. 손짓발짓 섞어가며 천천히 영어로 답해 모두가 현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게 배려했고, 마치 능숙한 코미디언처럼 기자들을 압도하면서 웃겼다. 자신의 앞에 놓여진 녹음기를 보면서, 한국 전자제품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기자들은 만족스러운 인터뷰를 마치고, 다들 사인을 받고,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달리는 밴의 창 너머로 창백한 하늘과 낯선 풍경들이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그 풍경엔 어딘지 모를 공허가 감돌았다.
“아니 어제 저녁 때 다들 뭐했어요? 밥은 챙겨들 먹은 거야?”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주간지의 유명 영화평론가였다. 그는 자신의 뒷자리에 앉은 노란 머리의 홍보부장을 돌아봤다.
“기자들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거에요? 관광도 시켜주고 그래야지.”
“어제 다음 영화 홍보건 때문에 D웍스 본사에서 불러서요. 저희도 너무 바빴어요. 이번에 홍보부 직원 3명이나 온 게 다 그 일 때문이거든요. 오늘 저녁은 제가 확실히 책임지겠습니다. 일정도 기분 좋게 끝났고, 다들 바다 보러 가시죠. 산타모니카 비치. 어때요?”
“차는요? 이 차는 D웍스에서 행사용으로 제공하는 거라 저녁 땐 차가 없는데...”
홍보부 여직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홍보부장을 바라봤다.
“뭘 걱정해? 택시 불러서 가면 되지.”
“산타 모니카 비치도 좋지만, 어디 쇼핑할 만한 데 좀 데려가줘요. 미국이 브랜드 제품이 싸다던데…”
요즘 들어 나름 진보적인 언론이 되려고 노력하는 K신문의 젊은 여기자였다. 다들 똑같았다. 이 영화판은. 말만 대놓고 안 꺼냈을 뿐이지, 어제 혼자 신나게 LA를 즐긴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이런 행사 몇 번 뛰면, 저들과 마찬가지로 능청스러워지겠지. 도대체 나는 왜 기자가 된다고 그랬을까. 왜 기자가 세상을 바꾸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언론은 자본과 결탁한 또다른 권력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착잡한 생각에 빠져들며 아무 말 없이 다시 창밖에 화살 같은 시선을 꽂았다.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낮은 건물들만이 드문드문 이어진 LA는 생각보다 황량했다. 데이비드 보위가 모델로 나온 대형 옷광고판이 보였다. 영화 <벨벳 골드마인>이 떠올랐다. 1970년대 별보다 더 화려하게 반짝였던 글램 록과, 곧바로 그 반짝임을 삼켜버린 보수의 80년대. 그들은 거리의 부랑자가 되거나 죽거나 아니면 전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글램 록의 기수에서 이제 평범한 영화배우로, 가수로, 모델로 남았다.
홍보부 여직원이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김기자님. 월드 프리미엄 시사회 와보시니까 어때요?”
“재밌네요. 좋은 경험도 되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이었다.
“저희 이번에 특별히 신경 많이 쓴 거니까 잘 좀 써주세요. 그러셔야 저희가 또 많이 모시고 오죠. 화끈하게 한 면 통으로. 그 정도는 해주시겠죠?”
“이거 완전 언론 통젠데. C엔터는 독재권력이야?”
우리의 말을 엿듣던 앞자리 B신문 기자가 뒤를 돌아보며 농이 섞인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영화기자만 4년째 하고 있는 남자 기자였다.
“에이 기자님도. 이런 독재권력 봤어요?”
그녀는 애교 섞인 웃음만을 내 자리에 풀어 놓은 채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습관처럼 들고 다니는 두통약 한 알을 삼켰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영화광이었던 친구의 영향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예술장르를 모두 좋아했던 나는, 종합예술인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대학시절에는 영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감상하고 분석하기 위해, 영화비평 동아리에서 3년 동안 열심히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동시에 권력을 미워했던 나는 ‘얼치기’ 운동권학생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사회를 바꾸고 싶은 욕망과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내 내면의 합의점을 찾은 것은 ‘비판적인 영화평론 쓰기’를 하자는 거였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영화 주간지에 들어갈까 고민도 했지만, 주변에서 모두들 일간지 기자가 훨씬 영향력이 있다고 권했기에 그 골치 아픈 언론고시까지 준비했다. 단지 영화기자가 되기 위해.
신문사 시험 면접 때부터 문화부 영화기자가 되고 싶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신문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무조건 사회부나 편집부부터 신입기자들을 돌렸다. 거기다 영화기자가 되겠다는 꿈은 정말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요즘 젊은 기자들 가운데 영화기자가 되고 싶다는 기자들은 줄을 섰고, 신문사에서 영화담당은 많아야 2명이었다. 같이 신문사에 들어온 동기들 9명 가운데 3명이 영화기자가 희망사항이었다. 신문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 안에서 영화기자가 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영화주간지로 진로를 바꿀까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내가 있는 곳에서 부딪치고 싶었다. 기자들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마련된 신문사 홈페이지 공간에 영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사회적인 시각을 잡아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다룬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었다. 올해 이혼율이 많이 증가했다는 기사가 뜬 다음날에는, 그 이슈와 함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소개하고 함께 결혼제도에 대해 고민하자는 취지의 글을 실었다.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 언론에서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영화 <15분>을 소개했다. 그렇게 쓴 글이 30편이 넘어갔다.
영화칼럼은 대체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일부 네티즌들은 내가 영화기자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생겼다. 가장 뿌듯했던 건 “K기자 같은 글을 쓰는 영화기자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라는 댓글을 본 순간이었다. 나는 영화기자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니 그건 정말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그 결과 입사 3년 만에 사회부에서 문화부로 옮기는 행운을 얻었고, 드디어 꿈만 같았던 영화기자가 되었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자마자 현실이 되었다. 꿈은 꿈일 때 아름답다는 뻔한 말은 진실이었다. 영화기자가 되자 개봉작들 따라가는 데만 허덕였다. 오히려 시간이 없어서 인터넷에 연재하던 칼럼을 못 쓰게 됐다. 그래도 신문에 쓰는 기사만큼은 제대로 쓰고 싶었다. 나는 거의 매일 같이 회사로 찾아와 좋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사주는 영화홍보사 직원들의 틈에서 항상 마음을 다잡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기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사 돈으로 촬영현장에 가든 외유를 가든,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은 받지 않을 것이고 -다행히 영화판에서 성행하던 촌지는 K감독이 나서면서 거의 없어졌다. 사실 연예산업의 활황과 함께 영화기자의 수가 점점 늘다보니 누군 주고 누군 안주고 할 수없는 실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들의 정당하지 않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산타모니카 해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사이키델릭 록의 후예들이 사는 도시답게 꽤 근사한 즉흥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태양은 낮의 열기를 살며시 바다 위에 내려놓았고, 우리들의 얼굴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LA 산타모니카 해변을 가슴에 담았다. 밤에는 기자들과 홍보부 직원들이 함께 호텔 바에 모여 술을 마시며 분열 없는 웃음을 나눴고, 한인 타운에 놀러가 야식을 먹었다. 물론 돈은 모두 홍보부 직원들이 냈다.
새벽엔 몇몇 여기자들과 함께 리버 피닉스가 최후를 맞았다는 한 클럽 앞까지 갔다. LA의 대표적 유흥가 선셋 스트립은 서울의 유흥가만큼이나 흥청거렸다. 새벽시간인데도 거리는 주차장 같았고, 온갖 클럽과 바 앞에는 푸르스름한 불빛이 흘러넘쳤다. 껄렁껄렁한 차림의 흑인들과 시비가 붙은 사람들도 눈에 띠었다. 차를 길가에 세우려했지만, 모두들 위험하다고 안 내리겠다고 하기에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총질을 해대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었다. 나는 총을 맞는 한이 있어도 그 거리를 걷고 싶었지만, 일행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 일정도 없는 다음날 낮엔 기자들이 떼거지로 명품과 브랜드 숍이 즐비한 쇼핑가로 갔다. 백, 가방, 옷 등 다들 바리바리 사서 싸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오후에 따로 택시를 타고 대형 음반매장에 가서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CD와, 왠지 꼭 LA에서 사야할 것 같은 DVD 1편을 구입했다. 미시적 역사와 거시적 역사 사이에서 힘든 선택을 해야하는 리버 피닉스의 모습에 눈물 흘렸던 영화 <허공에의 질주>. 내게 LA는 리버 피닉스의 도시로 영원히 기억되겠지. 그러고 보니 그의 부모는 히피였다. 리버 피닉스라는 이름이 갖는 낭만성! 나는 그 낭만의 시대, 순수의 시대가 그리웠다.
그 다음날 쇼핑 관광족들처럼 모두들 짐을 한 아름 안고 한국으로 출발했다. 나는 묵직한 피곤에 파묻혀 12시간동안 비즈니스 좌석에서 잠만 잤고, 잠깐 깬 사이 옆에 앉은 웬 나이든 사업가로부터 젊은 여자가 무슨 일을 하기에 비즈니스를 타냐는 질문에 대답을 했고, 서울에 도착했고, 시차적응이 안돼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다. 몸이 껌처럼 침대 바닥에 붙어버린 것 같았지만, 겨우 일으켜 회사로 향하는 택시에 태웠다. LA에서 놀고먹으며 취재한 것들은 바로 그 날 기사를 출고해야했다. 어느 한군데라도 기사가 먼저 나가면 다른 신문들이 김이 새서 안 되었기에, 모두 같은 날짜에 기사를 내기로 기자들끼리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할리우드물 먹어서 그런가 얼굴이 좋아졌네.” 오랜만에 만난 문화부 선후배들은 모두들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공항에서 산 초콜릿을 모두에게 돌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 놓고 잠시 고민을 했다. 영화는 형편없었다. 말했듯이. 내가 LA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시사회를 봤다면 이 영화는 딱 원고지 3장반에서 4장짜리 기사감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비판이 담긴. 하지만 나는 4장만 쓸 수 없었다. 그 때 서글서글하고 아부를 잘 못하는 성격 탓에 몇 달 전 사회부장에서 문화부장으로 밀려온, 40대 후반의 부장이 나를 불렀다.
“기사 어떻게 할 거야? 한 면 통으로 가지? 할리우드까지 갔다 왔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로 돌아와서 빛의 속도로 기사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을, 내 기사를 합리화했다. 그래도 할리우드 취재이고 세계적인 스타를 직접 보고 인터뷰한 것인데 충분히 신문 한 면을 다 잡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터뷰, 현장분위기, 시사회 영화리뷰까지 넣으면 분량도 얼추 맞았다. 인터뷰와 현장분위기에는 비판이 들어갈 틈이 없었기에, 영화리뷰만이라도 제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수명의 신문기사를 쓰는 것은 마치 마요네즈를 눌러 짜는 것처럼 내 안의 지식과 감정을 짜내는 작업이었다. 기사를 다 쓰고 나면 내 존재는 딱 그 만큼의 빈 공간이 생겼다. 영화리뷰를 다 쓰고 데스크에게 전송하기 전에 읽어봤다. 영화의 이런 점은 좋고, 이런 점은 나쁘다는 애매모호한 기사였다. 불안만 영혼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자본도 영혼을 잠식했다. 나는 온몸으로 LA를 즐긴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부장이 기사를 읽어보더니 나를 또 불렀다.
“영화 그렇게 재미없었어? 이렇게 썼다가 또 안 데려가면 어쩌려구?”
“그나마 좋게 써준 건데요.”
“그래 좋다. 기자가 그런 곤조가 있어야지. 근데 앞으로 그런 데만 데려가지 말고 광고도 좀 달라 그래.”
기사를 모두 출고하고, 오후에 한국영화 시사회와 기자회견을 갔다가, 종로에서부터 터벅터벅 걸어서 회사로 돌아왔다. 인터뷰를 할 스타를 잡기 위해 늦은 오후 내내 전화통을 붙잡았고, 태양이 빌딩 숲 사이에 걸려 천만갈래 빛을 내뿜는 시간이 되서야 숨을 돌렸다. 저녁 7시가 되자마자 바로 내 책상 위 전화에서 요란스레 벨이 울렸다. C엔터 홍보부 여직원이었다. 대기업 직원답게 벌써 광화문에 뿌려진 내일자 초판신문을 다 살펴보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영화는 문화부가 아니라 경제부로 가야한다는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기자님 그래도 저희가 그렇게 모시고 갔는데 좋은 말만 써주시지.”
“거의 좋은 말만 썼잖아요.”
“예. 그렇긴 한데…”
그녀는 더 이상 ‘기자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는지 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문사 편집국은 배달해온 다른 신문 초판기사들을 읽으면서, 우리 신문에 빠뜨린 기사가 없나 체크하느라 모두들 바빴다. 그녀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로맨틱 코미디 같다’는 표현만 빼주실 수 없어요? 요즘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안보는 추세라서, 그냥 코믹 멜로라고 표현을 바꾸시면 안 될까요?”
‘로맨틱 코미디’와 ‘코믹 멜로’는 엄연히 달랐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해야 했기에. 거기다가 C엔터는 이 바닥에서 가장 큰 회사였다.
“그러죠. 뭐.”
전화를 끊고 두통약 한 알을 삼켰다. ‘로맨틱 코미디’를 ‘코믹 멜로물’이라고 바꾼 뒤 기사를 재전송했다. 내일 아침 서울과 주요 도시에 뿌려지는 신문에는 그들의 의도대로 ‘로맨틱 코미디’라는 말은 사라져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하루만 더 지나면 그 신문마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리겠지만.
나는 휴게실로 가서 커피를 뽑고 담배를 물었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교육청 출입기자 시절엔 장학사 출신 홍보담당관들과 남자기자들이 룸살롱을 자주 가는 걸 목격하고도 모른 체 했다. 나는 문화부로 오기 전 부교육감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큼 두툼한 돈봉투를 받고 그 자리에서 돌려줬다. 선배들은 대가성 돈도 아닌데 안 받았다고 나에게 ‘순진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건 국민의 돈인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치부 A당에 출입하는 동기는 휴가 때 촌지를 많이 받았다고 얼마 전 내게 자랑했다. 미술계에서는 아직도 보도자료에 돈을 끼워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추석, 설날만 되면 집으로 산타의 선물보따리만큼이나 많은 택배가 들어왔다.
나는 단지 취재를 위해 편의를 제공받은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요즘 신문사들 어려워서 기자들 월급이 대기업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는데, 이런 거라도 없으면 누가 ‘기자질’이나 하겠어. 그런데 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첫 의도와 다르게 리뷰기사를 썼던 걸까. “미정씨 할리우드 갔다 왔대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경제부의 한 남자 선배기자가 부러운 듯한 말투로 한 마디 툭 던졌다. “예. 뭐...” “J는 어때? 잘 생겼어?” “가까이서 보니까 가슴이 떨리던데요.” 사실이었다. 그는 멋졌다. “어. 위험한 발언 아닌가. 유부녀가.” 선배는 내 어깨를 장난스레 쳤고, 나는 바보처럼 웃었다. 선배는 내게 불을 빌려 담배 한 대를 빠른 속도로 피우고는 들어갔다.
나는 다시 혼자 남아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기자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 담배는 영영 끊지 못할 것이다. 담배 두 대를 연달아 피운 뒤 신경질적으로 발바닥에 비벼 껐다. 휴게실 창 너머로 비치는 광화문 거리엔, 거대한 유성의 꼬리처럼 이어진 퇴근길 차량의 불빛만이 일사불란하게 분주했다. 나는 잠시 물끄러미 거리를 내려다보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 분신과도 같은 노트북 앞에 앉아, 오랜 출장으로 밀린 다른 기사들을 쳐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빠른 속도로 손을 놀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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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플 10.08.08 20:14 댓글 수정 삭제
    문학작품을 평가하는데 아무런 기준이 못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 글은 90%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언론 권력을 비판하고 싶었고, '순수하고 비판적이었던 젊음이 어떻게 자본과 권력에 물들어가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선택했던 주제에, 진심이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 No Profile
    10.09.04 22:47 댓글 수정 삭제
    할 말이 생겼다가 그냥 머리속에서 사라집니다. 답답한 현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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