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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벤트(..)단편] 국화

2004.01.16 01:5101.16



고운 달님 편에 서신을 전합니다.
오라버니 전상서

오라버니께서 드디어 혼인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인편에 서편에 전해 듣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아십니까? 큰 아버님 큰 어머님께서도 너무나도 기뻐하셨습니다. 거기에다가 아이라니요. 귀여운 조카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소녀에게도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었답니다. 새언니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복만 받아도 모자라실 오라버니의 배필이라시면 분명- 멋진 분이시겠지요.
소녀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천애 고아가 되었을 때 거두어주신 큰 아버님네의 은혜와 사랑에는 보답할 길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사에도 오라버니를 한번 찾아뵙지 못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줄로 압니다.
다행히 큰 아버님과 큰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소녀가 떠나는 것에 흔쾌히 승낙을 하시어 소녀 무척이나 마음이 가볍습니다. 피륙가지와 여러 정성들을 챙겨서 떠나려면 족히 보름 이상은 걸릴 듯 합니다. 인근 마을에 들리거든 다시 서신 보내겠습니다.

누이, 희란 올림.


낙엽과 함께 서신을 전합니다.
오라버니 전상서

오는 길도 고운 새 언니의 얼굴을 보러오는 지 아는지 여러 고마우신 분들께서 도움을 잔뜩 주셨습니다. 교국의 분들 또한 매우 친절하셨답니다. 어찌하여 교국의 분들께서 오라버니의 이름 석 자를 아시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또한 오라버니의 인망 덕분이겠지요.
아아, 새 언니를 향한 흠모의 소문 또한 잔뜩 들어서 기대에 부풀어 있답니다. 왈가닥인 사촌 시누이가 간다고 마음 미편해 하지나 않았으면 한다고 전해주셔요. 고운 언니 볼 생각에, 고운 조카님을 볼 생각에 두근두근 하답니다. 인근 마을에 곧 당도한다고 합니다. 당도하면 곧 인편에 당도하였음을 알리겠습니다.

누이, 희란 올림.

덧붙임-. 보셔요. 오라버니 몇 가지 특산물을 보내드립니다. 오다가 구한 말린 먹거리와 과일들인데 너무나도 맛이 좋아요. 새 언니가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태중의 조카님도요.

흰 눈과 함께 서신을 전합니다.
오라버니 전상서

놀라셨지요. 대란에 휩쓸리게 될 줄은 소녀, 꿈에도 생각 못했답니다. 걱정 많이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정말이지 송구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리 무사하게 도착하게 되어서 정말이지 다행이어요. 소녀는 무사합니다. 일행 또한 무사하답니다. 다들 소녀를 귀여워 해 주시니 몸을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특히, 교국의 언니들은 매우 친절하셔요. 소녀, 이제 제법 소녀 한 몸은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경공과 체술을 배워 두었답니다. 고마우신 분들이지요. 새 언니의 걱정이 어린 서신을 받아보고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고마워요. 이리 전해주셔요. 아니지요. 내일이면 곧 뵙겠군요.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새 언니가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이리 그리우니 어쩌지요? 오라버니보다도 더 좋아질 듯싶어요. 조카님의 얼굴 볼 날에 어찌 잘 맞춰온 듯 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오라버니-, 소녀 다시는 인명의 들고남이 성한 대란이나 전장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평화로워진 세상에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많이 보답해야 할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저 철없이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소녀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를 배웠답니다.
아아, 빨리 뵙고 싶어요. 오라버니. 새 언니, 그리고 조카님도요.

누이 희란 올림.

향긋한 국화주와 함께 서신 보냅니다.
큰 아버지 큰 어머니 전상서

소녀 무사히 도착했답니다. 교국 분들께도 깍듯이 예를 다하여 보은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구해주시고 귀여워해주신 은혜에는 보은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새 언니이신 황 연 언니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아아- 소녀의 부족한 글 솜씨로는 도저히 묘사가 부족합니다. 어찌나 고우신 분이신지요-. 얼굴도 마음도 너무나도 고우신 분이시랍니다. 게다가 집 안에는 국화의 향기로 가득하답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국화가 아름다운지, 새 언니가 아름다운지 분간이 아니 갈 정도랍니다.
오라버니 역시 여전하십니다. 다만 한 가지 소녀가 염려되는 것은, 조카님께서 나오실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만삭의 태중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새 언니와 오라버니는 매우 태연하십니다. 오히려 기뻐하시는 듯 하여 소녀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답니다.
새 언니께서 큰어머니의 정성에 너무나도 고마워하시고 계십니다. 하여 이 국화주를 서신과 함께 보내드리라 하였으니 같이 동봉합니다. 큰 아버님께서 국화주를 보시면 며늘아기님을 더 귀여워하실 듯 하여 소녀 샘이 납니다.
이리 선남선녀 사이에서 난 조카님은 얼마나 아름다운 아이일까요. 마을의 장터에 장을 보는 것은 소녀가 도맡아서 하고 있답니다. 혹여,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이유에서이지만요.
그런데 소녀가 오라버니의 집에 와 있은 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리 한번 들어보지를 못 했답니다.
사람의 행복이라는 거 그거 결코 관직이나 입신양명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앗, 소녀의 허접한 사견이었으니 그냥 웃어 넘겨 주시와요. 그럼 강건하시기를 빌면서 이만 접습니다.

소녀 희란 올림


친애하는 벗 수아 보렴.

새 언니의 자랑을 누차 늘어놓은 지도 여러 해 되는구나. 다행히 나 미움을 받는 인생은 아닌가봐.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빚쟁이에게 끌려가서 이대로 끝나는 구나. 그러면서 눈을 질끈 감고서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천국에 있는 듯 하단다. 물론 큰 집에 가서 어여쁨을 받으면서 있었던 적에도 난 천국에 있는 듯 했지.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단다. 새 언니인 연 언니에게는 주라는 남동생분이 계셔. 바로 후원과 연결이 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여간 거북살스러운 것이 아니야. 호인이셔. 곡해는 말아.
별당에 내 거처를 마련해 주어서 너무나도 송구스럽고 미안했지. 별당이 남동생분의 거처와 가깝단다. 난 몰랐지. 맨 처음. 하도 자주 집을 비우시는 분이라고 들어서 그저 후원에는 가까이 가지 않도록 조심했을 뿐인데 말이지. 그래도 너무나도 기함을 했지. 너라도 그랬을 거야. 가뜩이나 달이 안 보여서 어두운 그믐날인데, 갑자기 큰 국화꽃이 덤벼온다면 말이야. 가끔 후원의 한 가운데 커다란 국화꽃이 피어나긴 했어도 그렇게 큰 국화꽃은 처음이었다고. 거기다가 그 향기란 아직까지도 어질어질 하다고. 꽃가루는 또 어떻고.
아침에 걱정스럽게 날 들여다보는 새 언니의 고운 얼굴만 아니었어도-. 무어 무서웠던 마음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왕- 하고 울어버렸지만.
그 뒤로는 후원에 안 가려고 노력중이야. 문제는 그 뒤로 자꾸만 주라는 그 분께서 후원에 피어있는 꽃 이라던가 과일을 가지고 오셔서 주는 바람에 난처하단다.
새 언니에게 넌지시 난처함을 말했지만 오히려 큰 소리로 웃는 바람에-. 무척이나 잘나신 귀공자이시거든. 나 같은 것에게 관심을 두실 위인이 아닌데 말이야. 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 아, 종이에 코를 가까이 대어보렴. 국화 향기가 나지? 그 때 그 괴이한 변종 국화에 덮침을 당한 뒤로는 온 몸에서 국화 향기가 진동을 한단다. 하루 종일 벙- 하니 떠 있는 기분이여서 묘하단다. 어쨌건- 간단한 안부를 전한다. 너무나도 서신의 틈이 뜸해진 듯 하여-.

그럼 이만 줄 일께.

벗 희란.

수아 보렴.

미안해. 두서없이 적어서. 놀랐지. 하지만 확실히 출발한단다. 이 서신도 무사히 전해질지 모르겠어. 모르겠어. 이 감정이 두려움인지, 증오인지, 미움인지, 설레임인지, 사모의 감정인지. 새 언니께서는 당신 동생에게 직접 당신께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시면서 나의 출발을 말렸지만. 언니에게는 미안해. 하지만-. 하지만-. 난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국화의 요정이라니-.

믿을 수 있겠어?

거기다가 난 이미 국화의 요정의 배필이란다. 어쩐지 진하게 배어있는 국화의 향기라니. 월화가 안 핀지 오래되었다 싶었지만. 이럴 수는 없는 법이지. 연모의 서신은? 구애가는? 청혼은? 성대한 혼례식을 바란 것도 아니야. 난 그저-

몰랐어. 황 공자. 아니 주 -. 그 사람이 왜 내게 항상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는지. 큰 어머니께서 나의 혼사를 슬슬 성사시켜야 되지 않겠냐면서 중신을 서라고 하는 서신을 오라버니께서 보시면서 말씀하시는데-. 왜 그리 새 언니께서 화를 내셨는지-. 또 주 공자가 왜 그리도 오라버니께 화를 내셨는지 말이야.

난 그저 소박한 가정을 꿈꾸었을 뿐이야. 따스한 식사를 준비하고, 상공의 부모가 되시는 이를 모시고. 사랑하는 상공의 아이를 낳고.

넌 답 글에 내게 반문했지. 그를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니냐고. 확실히 주 공자의 청혼에 난 고개를 끄덕였어. 하지만, 그것은 그가 인간이었을 때의 이야기라고. 이리 내가 말하면 넌 겉과 속이 다른 계집이라 욕할 거니?

난 두려워. 그가 두렵고 싫은 것이 아니라-. 한결같은 그에게, 몇 년 후에도 그대로일 그에게 내가 언제까지 젊고 아리따운 아내로 있어줄 자신이 없는 것이- 고귀하고 선결한 선계의 그에게 걸 맞는 아내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두렵다.

그래. 이 어리석은 희란은 질투를 하고 있는 거란다. 감히. 그이의 선결함에. 신성함에. 한결같음에. 속세의 어리석은 여자. 그것이 나야. 한 때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한 때는-. 저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의 옆에 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오라버니처럼 영웅 호걸이 난 절대로 아니야. 그렇기에-

나중에 만나면 날 꼭 보듬어 주어-.

어리석은 벗 희란이


수아 보렴.

그날 나룻가에서 많이 기다렸니? 소식 이리 전해주어서 미안하다. 그날 밤. 그믐 밤. 나룻가에서 배에 올라서려고 하다가 끝내 내 손목을 잡더구나. 세 사람의 그와, 두 사람의 그녀가. 왜 몰랐던 것일까. 예전의 내 성품이라면 벌써 못된 패악을 다 부리고 떠났을 터인데. 왜 그러지 아니했던 것일까. 왜?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단다. 미세하고 부드러웠지. 조심스럽게. 내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다급하게 달려오던 오라버니, 새 언니, 새 언니의 품에 안겨있던 조카님, 그리고 주 공자. 오지 말라고 날카롭게 소리쳤었다. 고운 새 언니의 얼굴이 상처받은 듯한 표정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아팠지만. 그래도-. 외쳤지. 그러다가 멈칫했어. 내 배 안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거든. 그래. 아가님이었단다. 지금에 와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건지. 중요치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듯 했어. 사랑에 있어서는 진정한 승자는 없다는 거. 아니- 기실 진정한 승자는 태중의 아기님이 아닐까나. 서책을 즐겨 읽고 쓰기도  하는 수아 너라면-. 나의 서신이 충분한 서책의 주제가 되겠구나. 하지만 설마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닷날 후-. 달 밝은 혼사 전날 보기를 오매불망 그리며-.
너의 벗 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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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글은 이벤트 응모용 글로 써 내려간 것은 아니였습니다. ㅠ.ㅠ
하지만 너무나도 송구스러워서 이리 적습니다. 나름대로 자신과의 싸움에도 이겼다고 생각하여-. 참고로 제가 뽑은 카드는 승리를 의미하는 카드이었습니다; (억지로 끼워맞추기.) 죄송합니다. -_-; (요즘 들어서 죄송합니다- 입에 달고 사는 듯 하네요; 고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못난탓이겠지요. 이런 제 자신에게 짜증이나요; 전 승리 카드 언제쯤 내어 보일 수가 있을까요?)
unica
댓글 6
  • No Profile
    아이` 04.01.16 13:53 댓글 수정 삭제
    이 이벤트가 저에게는 타로카드 구경하는 재미도 있네요. 타로카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오, 참 그림이 신기하기도 하지... 그림 속에 뭔가 불가사의한 의미가 담겨 있는 듯도 합니다.
  • No Profile
    진아 04.01.17 00:47 댓글 수정 삭제
    와아- 첫 이벤트 글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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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4.01.17 00:48 댓글 수정 삭제
    참고로 아직 멀었으니 참여하실 분 덧글 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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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暮夜 04.01.17 16:09 댓글 수정 삭제
    음. 그러고보니 아직 한 달이나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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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하 04.01.19 02:44 댓글 수정 삭제
    앗.. 첫글이..-.- 더헉.. 저두 구상중입니다.T.T
  • No Profile
    서진 04.01.19 12:43 댓글 수정 삭제
    서간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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