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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경국지색 - 달기

2015.06.27 16:4706.27

이 경국지색 시리즈는, 중국 고대사의 유명한 미녀들로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평가를 듣는 말희, 달기, 포사에 관한 것이다. 역사는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물며 사료라고는 거의 없고, 고증도 변변찮은 이들 경국지색들에 관해선 무엇 하랴. 고로 나는 내 입맛대로 사료를 취사선택해서 임의대로 이 소설들을 썼음을 고백한다. 이 글은 상나라(은나라)의 왕후 달기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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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 – 달기



“내겐 너 밖에 없단다, 아가야.”

보름달이 빛나는 밤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서, 달기는 여우를 품에 안고 털을 매만졌다. 달기는 여우와 뽀뽀를 했다. 여우는 달기의 품 안에서 앙탈을 부렸다. 이 여우의 꼬리는 기형으로 인해 2개였다. 달기는 여우를 좋아했다. 모두들 헐뜯고 서로를 저버리면서 살지만 여우는 그렇지가 않다고 달기는 굳게 믿었다.

“달기 공주님, 공주님!”

누군가가 달기를 소리 높여 불렀다. 달기는 여우를 끌어안은 채 그를 따라갔다.

달기는 아버지인 유소씨의 족장을 만났다. 족장이 말했다.

“우리가 방금 전쟁에서 졌다.”

“그랬군요.”

달기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전쟁에서 이겼든 졌든, 몇 명의 국민이 죽었든 살았든, 자신의 생활에 방해되지만 않는다면 달기는 상관하지 않을 셈이었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달기는 생각했다. 족장이 말을 이었다.

“널 상나라 주왕에게 바치기로 했다.”

상나라는 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고, 별명은 은나라라 했다. 은의 군주 주왕은 훗날 하의 걸왕과 더불어 걸주 즉 중국 역사상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 사람이다. 달기는 소리쳤다.

“뭐라고요?! 제고해주세요.”

“이미 어른들 사이에서 결정 난 일이다. 군말 말고 따라라. 주왕은 강한 사내니까 네 마음에 쏙 들 거다.”

“젊은가요?”

“네 나이 이제 16살. 주왕은 20살이다. 알맞은 나이 아니냐?”

“좋아요.”

“네 정혼자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제가 왜 그걸 궁금해 해야 하죠?”

“그는 이번 전쟁에서 죽었다.”

“제가 울기라도 해야 하나요?”

“아니다. 됐다.”

달기는 꼬리 둘 달린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이 여우는 꼭 데리고 가겠어요.”

“그건 주왕의 뜻에 달렸다. 널 보면 마치 영혼을 여우에게 판 것처럼 보이는구나.”

달기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영혼? 그런 게 세상에 있기나 하나요?”

족장은 달기에게 결혼 준비를 시키라고 명령했다.

달기는 비단옷을 걸치고 금은보화를 매단 채 새하얀 한쪽 젖가슴을 드러내고 주왕에게 모습을 보였다. 은의 주왕은 크고 억센 몸집을 갖춘 사납고 기분 전환이 빠른 사내였다. 달기에겐 익숙한 성품의 사내였을 뿐이었다. 달기는 주왕의 마음을 잘 맞춰줄 줄 알았다. 주왕에게 풍만하면서도 늘씬한 달기의 육체는 부드러웠다. 달기는 질 깊숙이 오톨도톨한 돌기가 느껴지는 명기였다.

그렇듯 주왕은 달기와 붙어먹었다. 똑똑하면서도 냉혹한 성품의 달기는 주왕과 오욕칠정의 죽이 잘 맞았다. 곧 달기는 주왕의 왕후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달기는 자신에게 기어오르려는 다른 궁녀들을 단호하고 냉정하게 짓밟았다. 달기는 주왕 앞에서 자신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알몸을 마음껏 드러내곤 했다. 달기의 묵직한 유방은 풀숲 위를 걸을 때마다 흔들리곤 했다.

입 안에 든 꿀처럼 달콤하게 주왕을 놀려 먹는 달기였다.

“주왕 폐하, 상아 젓가락으로 먹어야 위엄이 살지 않겠습니까? 은수저는 위엄을 주는 게 아니라 독 대비용이지 않습니까. 그저 한낱 백성처럼 나무젓가락은 상나라의 대왕의 위신이 아니라고 봅니다.”

“좋구나, 달기야.”

달기는 그런 식으로 사치를 일삼았다.

은의 군주 주왕은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았다. 그렇기에 더욱 공허했는지도 몰랐다. 달기의 뜻이라는 핑계로 주왕은 큰 궁전들을 짓고 큰 창고들에 식량을 가득 채웠다. 술로 가득한 연못을 파고, 나무에 고기를 메달아 하나라의 군주 걸왕의 주지육림을 재현했다. 술과 난교의 쾌감에 주왕의 정권은 빠져들었다.

주왕과 달기의 성교는 기본이었고, 달기는 주왕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출생 부족인 유소씨들이 주지육림의 잔치에서 주왕과 신하들에게 윤간당하고 포락의 형벌 즉 기름칠하고 불에 달궈진 구리 기둥을 따라 알몸으로 걷다가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즐겁게 구경했다.

달기는 자신의 가족인 유소씨들이 포락의 형벌에 가해지고 그 고기를 먹고도 웃고 떠들 정도로 비위가 좋았으며 그러면서도 눈빛이 공허해서 그 허허로움이 주왕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달기는 주왕의 분신처럼 기분을 맞춰 주어서 주왕은 행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루한 타락한 상류층의 생활을 채울 것은 언제나 오직 모든 걸 잊는 쾌락뿐이었다.

은나라엔 천자의 정치를 보좌하는 서백창(후의 주문왕), 구후, 악후가 있었다. 구후의 딸은 주왕의 왕후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주왕이 달기와의 관계에서나 하는 변태적 성교를 거부하자 주왕은 그녀를 죽였다. 구후도 죽고 젓으로 담가졌다. 악후는 이에 저항하여 간하다가 주왕에게 살해되고 악후의 시체는 포로 만들어졌다. 서백창은 탄식했다는 게 걸려 감옥에 갇혔지만 신하들이 뇌물을 바치고, 서백창은 땅의 일부를 주왕에게 바쳐 가까스로 풀려나 고향으로 도망쳤다.

은나라의 충신들이 이후에도 간했으나 주왕은 닥치는대로 죽였다.

주왕은 은나라의 노예를 해방했다.

그렇게 주왕은 기득권을 노예에게 의식주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로부터 해방시켰다. 노예들은 평민이 됨으로서 자유의 냉정함과 잔혹함을 맛보았다. 평민들에게 주왕은 국가를 위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세금을 못 내는 자들을 잡아 포락의 형벌에 가했다.

주왕은 상인들을 통해서도 이윤을 긁어 들였다. 세금 말고도 주왕은 수완이 좋아서 상인들을 통해 긁어 들이는 돈이 굉장히 많았다. 상인들은 물가 조절을 비롯한 온갖 수단으로 평민들을 수탈했다. 상인들의 수단엔 전당포와 같은 기초 금융도 있었다.

주왕은 상인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상인들이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오직 이익만을 따르는 그 마음씨, 거래하는 상대가 약하면 칼을 들고 털어버리는 그 상업 정신을 주왕은 좋아했다.

주왕은 상인들이 청동기 물건을 들고 와서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다. 상인들을 돌려보내고 달기와 남았을 때 주왕은 말했다.

“달기야. 상인들이 모든 이윤을 뽑게 하고, 공인들에게 많은 지원을 한다면, 공예는 나날이 발전하고 그러면 언젠가 인간은 영생할 수 있는 야금술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나 먼 것 같고, 무엇보다도 우리네 몸은 먹고 싸서 흘러가니 덧없구나. 오늘을 즐기자. 놀자꾸나! 덧없는 백성을 책임지려는 사(士)들을 잘 볶으면 나에게 봉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은나라의 부는 주왕과 달기의 욕망을 담기에 작았다.

문왕의 아들 주의 무왕은 은의 주왕에게 원한을 가졌고, 또한 지극한 선을 시대에 맞게 펼치려고 하는 자였다. 주의 무왕과 맹자에게 있어 무도하고 악독한 자를 치는 것은 그 대상이 군주라도 벌을 주는 것이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달기는 여우의 목을 졸라 죽이고 오열했다.

생을 잇고자 하는 백성들의 열망이 사 계급과 주의 무왕을 만나 결국 주왕과 달기는 참수되었다.

은나라 주왕과 마찬가지로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주의 무왕은 생각했다.

‘공인과 상인을 우대하다 보면 결국 야금술은 발전하여, 인류는 불로불사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일부 권력자가 모든 걸 차지하여 나머지 전 인류를 때려죽일 것인즉 사로 하여금 공과 상을 천대케 하며 농으로서 사를 유지케 해야 후환이 없으리라.’


[2015.06.27.완성. 2015.07.31.수정]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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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룡 15.06.30 09:37 댓글

    썼던 글 중 그나마 나았던 달기 이야기를 스스로 망쳐버리다니...

  • 화룡님께
    글쓴이 니그라토 15.06.30 09:44 댓글

    이 글 전편은 '경국지색 - 말희' 즉 말희 이야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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