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리는 그의 SF에 산다

 

 

 

김으뜸은 커피포트에서 내린 에스프레소를 깔짝거리면서 마셨다.

 

집안엔 훈훈한 바람이 일고 있었다. 나른한 아침이었다. 김으뜸은 좀 전에 깨어나 아침 운동으로 조깅과 헬스를 하고 돌아왔다. 아침밥으로는 집 근처 식당에서 식당 담당 로봇이 해준 해물 버섯 우동을 먹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에 따라 인간은 즐기는 일만 하고 돌아다녔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류 전체가 인류 공통의 재산으로 삼아 공동 관리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연구를 로봇은 생산을 맡아 인류를 위해 봉사했고, 그 분배인 정치를 인류가 운영하고 있었다. 굳이 인공지능과 로봇이 하는 일을 하겠다는 인간을 막지는 않았다.

 

김으뜸이 사는 이 집은 트럭에 설치되어 있었다. 김으뜸은 자동 운전되는 이 트럭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김으뜸은 트럭 몰기를 똑 같이 재현한 게임에 능했고 언제든 이 트럭을 자신이 운전할 수 있었지만 대체로 자동운행에 트럭을 맡겼다. 전형적인 이 시대 사람인 김으뜸이었다.

 

PC를 부팅시켰다. 마우스를 딸깍거려 인터넷으로 알아 본 것은 버나드 항성계에서의 사건들이었다. 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별인 버나드 항성계는 한창 개발 중이었다. 2013년 나사에서 발표된 워프 항법으로 찾아간 그곳에서 인류는 자원을 캐내고 있었다. 그곳에 관리직으로 파견된 인류는 너나 할 것 없이 윤리적 세뇌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사악한 무리가 생겨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 우주시대에는 문명에 더욱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사소한 범죄라도 저지르거나 아니면 우주에 나간다면 누구나 윤리적 세뇌 수술을 받고 착한 사람이 되었다. 다른 모든 인공지능들이 그렇듯이 버나드 항성계에 파견된 인공지능도 도덕적 인공지능이었다. 도덕적 인공지능은 우주개발을 앞두고 정교하게 설계된 바였다.

 

잘 되고 있네.”

 

지구에서 평생 살 작정인 김으뜸은 안심했다. 김으뜸은 별다른 인공지능 시술을 받지 않은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오늘로서 21살이 된 김으뜸은 한민족 출신으로 말레이 반도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한반도에 있었다. 김으뜸은 자신과 비슷한 핏줄을 좋아하는 사람에 속했고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이곳에 잠깐 와있었다. 한반도는 물맛이 좋은 땅이었다. 지리산이 멀리 내다 보였다. 김으뜸은 겁이 많은 편이라서 평생 비행기나 배 등의 육지용이 아닌 교통수단은 타 본 적이 없었다. 소심한 성격을 바꿔주는 뇌 시술도 있었지만 굳이 받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서 안 받고 있었다.

 

가을이라 바람이 찼기 때문에 김으뜸은 옷을 단단히 입고 있었다. 맵시 있게 입었다고 김으뜸은 생각했다. 여름이 되면 한반도도 벌거벗은 남녀들로 넘쳐 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김으뜸은 그렇게 인류 문명의 능력에 따른 생산과, 김으뜸 자신에게 허해진 자원에 따라 맞춰진 필요에 따른 소비를 행하고 있었다.

 

트럭 하나가 김으뜸의 트럭 옆에 와서 나란히 섰다.

 

트럭에서 내린 젊은 미녀가 김으뜸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김으뜸, 맞아?!”

 

이사랑?”

 

김으뜸은 이사랑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사랑은 평범한 21살의 아가씨로서 김으뜸과 마찬가지로 지구를 돌아다니면서 살고 있었다.

 

춥다.”

 

이사랑이 눈부시게 예쁜 새하얀 알몸을 비비면서 말했다. 늘씬하면서도 풍만한 아름다운 지체였다. 김으뜸은 재빨리 자신의 트럭으로 이사랑을 안내했다. 김으뜸의 메이드 로봇이 맵시 있게 차려 입은 채 이사랑을 보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메이드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허리에 띠가 둘러쳐져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사람과 구분되었다. 인격을 부여받은 인공지능은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지만, 모든 인공지능이 그렇지는 않았고, 김으뜸의 메이드 로봇도 마찬가지였다.

 

김으뜸과 이사랑, 두 팔팔한 남녀는 알몸이 되어 침대 위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화상 채팅을 통해 서로의 많은 걸 이미 봐둔 사이였다. 운동으로 다져지고, 취미로 배운 지식들이 있었으며, 몸에 삽입된 장치들이 세상과 교류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의 감각 정보는 인류정부 총 공안국으로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있었으므로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혔다.

 

젊은 미녀, 이사랑이 말했다.

 

으뜸아, 여자는 섹스를 더 강렬하게 즐길 수 있는 거 알아? 알겠지? 난 매일같이 1시간 동안 내 로봇한테 박히고 1시간 동안 절정에 오르는 걸 즐겨. 그에 비해 남자는 지속력도 떨어지고 힘도 강하지 못 하고 기술도 딸려. 반면 여자는 몇 시간이고 섹스 할 수 있고, 로봇은 그런 날 만족시켜 주지!”

 

하하, 인간 남자랑 로봇을 비교 하냐? 뭔가 잘 못 되었다는 생각 안 드니?”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난 사람이랑 할 때엔 봉사하는 마음으로 해. 인간의 감각은 자연스럽거든. , 속궁합을 맞춰 봐야 하지 않겠어?”

 

왜 속궁합 타령인지 김으뜸은 알 수 없었다. 김으뜸에게 있어 이사랑은 어릴 적부터 해왔듯이 스쳐가는 수많은 성교 파트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육체적 매력이 떨어지는 너무 어릴 때와 너무 늙었을 때의 인간들은 가상현실에서 섹스에 몰두했지만 김으뜸도 이사랑도 공히 인간의 활력이 최고조에 있을 나이인 것이다. 아직 불로불사의 기술은 개발되지 못 한 상태였다.

 

두 남녀는 정사를 나누었다.

 

쾌적한 느낌인 채 침대 위에 껴안고 누워 이사랑이 말했다.

 

난 아이를 낳아 기를 거야. 인공자궁에서도 애들이 나오지만, 여자라면 한 번 쯤은 적어도 한 번 쯤은 애를 낳아야지. 윤리적 세뇌 수술 대상으로 걸리지 않는 애로 키울 거야. 내가 윤리적 세뇌 수술을 당하지 않듯이, 그걸 당하지 않을 아이를 낳아, 인류 정부의 횡포에 대한 잣대로 삼을 테다. 윤리적 세뇌 수술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꼭 필요하다고 보는데. 지금 우리는 니그라토가 꿈 꾼 SF 속에 살고 있는 셈이야.”

 

그렇게 두런두런 작은 논쟁이 대낮의 연인 사이에서 번지고 있었다.

 

윤리적 세뇌 수술의 논리 중 하나는, 남의 인권을 해치거나 예정일 수 있는 자는 인권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직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이만이 자유민주공화정인 인류 문명의 일원일 수 있었다.

 

 

Fin.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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