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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초콜릿담배

2012.02.05 22:5502.05

초콜릿 담배


“잠시 후 면접이 시작됩니다. 지원자 분들은 모두 대기해주세요.”
나는 잘못도 없는 내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만지작하며 귀찮게 했다. 내 다리는 어느새부턴가 상하왕복운동에 취미를 붙였고, 입 속은 침들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는지 모두 어디론가 숨어버려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스읍, 후우……”
나는 긴장이라는 이름의 이 끈질긴 친구를 떼어 놓기 위해 공기에게 반복적인 폐 관광을 시켜보았으나 웬걸 이 친구는 공기와 함께 나오기는커녕 꽉 달라붙어 더더욱 나를 압박해왔다. 벌써 이 친구 덕분에 날려버린 면접만 세어보아도 손가락으로 헤아리기도 힘들 지경인데 참으로 얄궂은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스읍, 후우…”
그렇게 내가 긴장이라는 친구의 우정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사이, 내 옆쪽에서는 나의 심호흡과 비슷한, 하지만 엄연히 다른 종류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의 출처가 궁금했던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중지와 검지 사이에 한 개비 담배를 끼운 채 긴장감을 풀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의 눈동자는 허공을 바라보며 한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청년은 내가 어렸던 시절의 우리 아버지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이구, 우리 아들. 이 늦은 시간까지 안자고 뭐했어?”
“아빠 기다렸지!”
“아이구, 그랬어요? 기특한 내 새끼.”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하루 온 종일 온 몸을 혹사시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해 환한 웃음을 지어주셨던, 피곤한 몸을 이끌고는 늦은 밤 철없는 아들이 잠들 때 까지 함께 놀아주신 우리 아버지.
그런 우리 아버지께는 언제나 담배 냄새가 풍겼다. 그 당시만 해도 나에게 담배 냄새는 곧 아버지의 향기였다. 그래서였던지 나는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안겨 향긋한 담배 냄새에 취해 잠드는 것이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
내가 아버지께서 담배를 피시는 것에 반대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담배가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지를 가르쳐 주신 후 부터였다. 그 날 나는 늦은 밤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흑흑, 아빠. 담배 피우지마. 우리 학교 선생님이 그ㄹ는데 담배 피면 죽는데... 아빠 없으면 나는 어떡해. 아빠, 죽지 마. 제발……”
나는 정말 내일이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만 같아 무섭고 또 두려워서 울다 지쳐 잠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담배를 손에 놓지 않으셨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로 하여금 담배를 놓지 못하게 한 그 무엇인가가 니코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제기랄. 대학 가지고 그 따위로 태도가 달라질 거면 서류면접에서 탈락시킬 것이지.”
나는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온 화를 간신히 억눌렀다.
알고 있었다. 손으로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의 면접에서의 가장 큰 훼방꾼은 긴장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시원한 음료라도 마실 요량으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콜라 한 캔을 골라잡았다. 그리고 지금의 이 갑갑함을 마치 이 콜라 한 캔이 풀어줄 수 있다는 듯이 벌컥벌컥 마셨다.
“크으……”
목만 따가울 뿐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갑갑함에 몸서리 치고 있던 나는 비로소 아까부터 내 눈길을 끄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지? 내 눈길을 잡는 그것. 바로 담배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셨던 담배. 바로 그 담배였다.

어린 시절 나는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아버지로 하여금 담배를 놓지 못하게 한 그 무엇인가가 학교에서 배운 담배의 중독성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우리 아버지를 괴롭히는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했었다. 그런 나 때문에 아버지는 편히 담배를 피실 수 없으셨다. 나는 매일 늦은 밤에 돌아오신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대신 담배 냄새가 난다며 핀잔을 주었으며, 나를 안으려는 아버지를 밀쳐내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아빠 싫어! 나는 아빠가 걱정돼서 그러는데……”
내가 울먹거리며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다 포근하게 나를 안아주시며 나를 다독여주셨다.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만 뚝! 사나이가 울면 쓰나!”
그러나 그 역시 나를 달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 다음날만 되면 여전히 아버지는 담배냄새를 한껏 풍기며 나타나셨다.
그 해의 겨울이었던가? 나는 잔뜩 심통이 난 채로 아버지께 물었었다.
“아빠, 도대체 그 놈의 담배 왜 계속 피우는 거야?”
그러자 아버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셨다.
“글쎄…… 그래. 우리 아들 초콜릿 좋아하지?”
“좋아하지. 달잖아.”
“초콜릿 먹으면 기분이 어때?”
“좋아.”
“그렇지? 아빠도 같은 거야. 우리 아들이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 좋으니까 계속 먹는 것처럼 아빠도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좋거든. 아마 너도 나중에 크면 이해할 거야.”
“그래도 담배는 몸에 나쁘잖아.”
“초콜릿도 먹으면 이가 썩잖아? 아니 그러고 보니 요 놈! 요즘 양치질 하는 꼴을 못 봤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게 꿀밤 한 대를 먹이셨다. 그리곤 황급히 그 자리를 뜨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나는 담배를 피우고 계신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말씀과는 달리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는 결코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매우 초췌하고 지쳐 보였을 뿐이다.

편의점에서 나와 가장 근처에 있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때마침 앉은 벤치 정면에 내가 신경질적으로 뛰쳐나왔던 그 회사가 보인다. 속이 너무 갑갑했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편의점에서 받은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곤 힘껏 빨아보았다.
“켁, 콜록콜록. 켁.켁.”
괴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한껏 짓누르고 있는 이 갑갑함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를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아 진짜. 안 산다니까요! 그만 귀찮게 하고 빨리 가세요. 빨리 안가시면 영업방해로 경찰에 고소합니다.”
“아이고, 사장님. 그러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아 진짜. 오늘 일진이 사납더라니 이젠 별 이상한 사람이 와서 난리야? 빨리 안가요?”
두 사람의 살갑지 않은 대화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연신 그에게 허리를 굽신거리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겠습니다. 그럼 사장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연신 자신을 무시하는 젊은 남자의 태도에도 중년인 그의 태도는 매우 공손했다.
‘저 아저씨 역시 집에 돌아가면 해맑게 반겨주는 아들이 있을까?’
그렇게 내가 그 생각으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이 어느새 그 중년의 남자는 내 앞에 서 있었다.
“응? 무슨 일이시죠?”
“총각? 여긴 금연 구역이라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한 가지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은 전혀 지쳐보이지도 초췌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마 그는 매일 밤 집에 돌아가 그의 아들을 마음껏 안아 줄 수 있으리라……
“총각? 여긴 금연구역이라니까? 담배 좀 꺼 주지 않겠나?”
“아, 아? 네. 죄송합니다.”
나는 황급히 담배를 끄곤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쓸데없는 참견일지 모르겠지만 담배는 우리 몸에 이로운 게 없다네. 웬만하면 끊도록 하게.”
그 한마디를 남긴 그는 곧 어딘가로 가버렸다. 나는 방금 전까지 담배 한 개비를 쥐고 있던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참 나, 이게 뭐가 달다는 건지 쓰기만 하구만…… 어유. 입만 버렸네.”
나는 남은 담배들과 라이터 역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역시 담배란 사람에게 이로울 게 없는 것이다.
“아아, 미래의 아들아.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다오.”
나는 우리 아버지를 사랑한다. 아버지는 분명 내게 가장 소중한 가족이며, 가장 존경하는 멘토이시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놈의 담배냄새를 미래의 우리 아들에겐 절대로 맡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내 가슴을 가득 채운 갑갑함은 떠나가질 않았다.
그러나 이젠 그 갑갑함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직 내 인생은 시작단계일 뿐임을 깨달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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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겸허히 받아드릴테니 무자비하게 비평해주세요 ㅠㅠ
일반소설입니다.
김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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