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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두려움에 맞서다

2013.02.27 04:2402.27

         두려움에 맞서다

 

 

 

 

 

 

 

저 개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학원이 끝나 집으로 향하는데 웬 노란 진돗개가 목줄을 맨 채 집으로 가는 길목에 누워 있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아 고양이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보지 못한 개다.

처음에는 크기도 작고 순해 보여서 맘 놓고 다가갔다. 골목 양옆에 늘어선 이층집 중 첫 번째 집 대문 앞에 누워있던 그 개는 내가 가까이 가자 벌떡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섰다. 목줄이 대문 안으로 이어진 걸로 봐 그 상태로 가출이라도 한 것 같았다. 무섭다. 어찌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찡그린 주둥이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삐져나왔다. 저 이빨에 물리면 피가 많이 날 것이다. 그럼 많이 아플 거고 어쩌면 물린 곳을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 6학년 형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개에 물리면 광견병에 걸리고 광견병에 걸리면 손발을 잘라야 한다고 말이다. TV에서 봤다고 했었다. 어떻게 하지? 망설이는 사이에 집에 갈 시간이 다 됐다. 엄마가 기다릴 텐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 오랜만이라 이번에는 쉬울 줄 알았다. 난 이미 집에서 키우는 개로부터 도망친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시는 그 개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오늘도 그때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도망가기는 싫었다. 무서워하는 건 딱 한 번이면 된다. 두려움은 나쁜 것이다. 만화에서도 그렇고 어른들도 나쁜 거라고 말한다.

근처에서 버려진 쇠꼬챙이를 주웠다. 이걸 사용하면 쉽지 않을까? 막상 가까이 가자 그 개는 털을 곤두세우고 꼬리를 내린 채 잡아먹을 듯 짖었다. 아까보다 더 무서운 모습이었다. 나에게 달려들려고 안달이 났는지 펄쩍펄쩍 뛰었다. 그 바람에 목줄이 팽팽히 당겨졌다. 왜 이렇게 겁이 나는 걸까? 그냥 간단한 일인데.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가까이 갈수록 그 개는 온몸으로 날뛰며 두 개의 송곳니를 활짝 드러냈다. 거품 섞인 더러운 침이 주둥이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 감정의 정체는 대체 뭘까? 표현하기 어려운 이 불쾌한 느낌은 왜 있는 걸까? 그냥 포기할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서 해야만 한다고 속삭였다. 이대로 질 수 없었다. 일단은 가까이 가야 한다. 이 생각에 정신이 팔려 나도 모르게 개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너무 가깝다! 미처 뒤로 몸을 빼기도 전에 개가 소리 없이 달려들어 발목을 물었다. 아픈 것보다 물렸다는 사실에 눈물이 쏟아졌다.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개가 꼬리를 꼿꼿이 세운 채 나를 노려봤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바보같이 엉엉 울며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저 저 개가 무서워서 도망가고만 싶었다. 내가 졌다.

 

다음 날, 학원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섰다. 엄마 몰래 야구 방망이도 가져왔다. 개는 이번에도 대문 앞에 나와 있다가 나를 보고 짖어댔다. 오늘도 어제처럼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개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온몸이 떨렸다.

다행히 발목의 상처는 크지 않았다. 피도 안 났다. 집에 오는 길에 넘어졌다고 몇 번이나 둘러댔지만, 안달이 난 엄마는 기어코 병원에 데리고 가 발목을 소독하고 파상풍 주사까지 맞혔다. 병원에서 엄마 손을 잡고 나올 때 정말 개에게 물리면 손발을 잘라야 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형들이 거짓말 한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정말일까? 엄마는 어른이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대로 겁쟁이처럼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 무언가가 날 이끌었다. 꼭 해야만 한다. 용기는 좋은 것이다. 야구 방망이를 손에 꽉 쥐었지만, 막상 개 앞에 서자 발목을 물렸던 게 생각났다. 야구 방망이를 위협적으로 휘둘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가득 차 있던 용기가 사라지고 대신 추운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번에도 물릴 거라는 생각과 또 부끄럽게 도망치고 말 거라는 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러다 저 개에게 물려 죽는 것 아냐? 뜬금없이 난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개는 사람보다 민감하다고 책에서 봤다. 내가 겁먹었다는 걸 눈치챘는지 오히려 어제보다 더 기세등등하게 날뛰었다. 그걸 보고는 다시 그자리에 멈춰섰다. 지금 달려들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내 마음속 두려움이 너무 커져 다시는 저 개 앞에 설 수 없을지 모른다. 두려움은 이겨내야 하는 거라고 배웠다.

고민 끝에 근처의 놀이터로 향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놀이기구 주위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우리 집에 놀러가지 않을래? 컴퓨터도 완전 최신 사양인데다가 인터넷도 무지 빨라. 더 대박인 건 지금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거야! 어때? 같지 가지 않을래?”

아이들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누구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그중 팔짱을 낀 채 시소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 하나가 건들거리며 일어나 말했다. 폼을 잡는 걸로 보아 이 애들의 대장인 듯했다.

“넌 뭔데? 처음보는 얼굴인데… 이사왔냐? 그리고 너 몇 학년인데 반말하고 난리야! 우리보다 어려보이는구만. 난 5학년이거든?”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이럴 때는 비위를 맞춰주는 게 좋다.

“나도 같은 5학년이야. 처음부터 반말한 건 사과할게. 너희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 그럼 우리 친구하는 거지? 선생님이 그러는데 친구들끼린 사이좋게 지내야 한대. 우리 집에 가서 놀자 응? 집에 가면 내가 아끼는 PMP 줄게. 무지 비싼 거야. 얼만지 알아? 이십만 원이 훌쩍 넘는대. 거기에다가 애니도 엄청 많이 들어있다?”

내가 5학년이란 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상관없었다. 대장은 흡족해하며 자기를 살피는 아이들을 둘러보고는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안 그래도 여기에서 노는 거 질렸는데 쟤네 집에 놀러 가자. 불만 없지? 아니, 놀러 가는 게 아냐. 일명 모험을 떠나는 거지. 나는 캡틴 잭 스패로우 선장이다! 선원들은 나를 따르라!”

아이들이 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대장 주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신이 나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앞세운 후 생각했다. 내 힘으로 안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이겨낸다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그 생각뿐이었다.

얼마 안 있어 개가 묶여있는 골목에 도착했다. 할 말이 있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여기가 집으로 가는 길목이야. 근데 저 개가 지나가려고만 하면 막 물려는 거 있지? 그러니까 정말 미안한데, 너희들이 저 개 좀 잡고 있으면 안 돼? 너무 무서워서 못 지나가겠어.너희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잖아, 그치?”

내가 바닥에 드러누워 하품하는 개를 가리키자 아이들이 금세 조용해졌다. 뜻밖의 요청에 당황했는지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렸다. 저 애들도 나처럼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곧 자신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 내 눈치를 보는 것도 잠시 아이들은 그게 뭐 어렵겠냐고 떠들어댔다. 대장도 나를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며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며 큰소리를 치고는 아이들을 이끌고 개에게 다가갔다. 나도 야구 방망이를 든 채 긴장하며 뒤를 따랐다. 아이들과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누워있던 개가 벌떡 일어나 목줄이 끊어질 듯 날뛰며 짖어댔다. 아이들이 한순간 놀라 뒤로 물러섰다. 막상 눈앞에서 짖어대는 개를 보자 어찌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개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한 아이가 자기는 이런 거 하나도 겁 안 난다며 성큼 다가가 개의 목줄을 잡았다. 개는 온몸을 뒤틀며 펄쩍 뛰더니 목줄을 잡은 손가락을 물었다.

“아얏!”

개에게 물린 아이가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아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울음을 터뜨리며 집으로 달아났다. 아이들도 덩달아 물러섰다. 피가 났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내 눈을 피했다. 대장도 겁을 먹은 게 분명했지만 애들 앞이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대장이 갑자기 땅에서 돌멩이를 주워 개에게 힘껏 던졌다. 그러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개는 돌멩이를 맞자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짖어댔다. 당황한 대장이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그건 개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개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난폭해졌다. 이러다 목줄이 풀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처음으로 느끼는 개에 대한 공포였다. 아이들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슬금슬금 물러섰다. 이번에는 대장도 무섭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슬슬 도망갈 채비를 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볼멘 목소리로 대장에게 말했다.

“꼭 여기로 지나가야 해? 내 말은, 좀 돌아가지만 다른 길이 분명히 있을 거야. 왜 꼭 여기로 지나가야 하는 거냐고.”

돌파구라도 찾은 듯 대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장담하는데 분명히 있어. 그리고 솔직히 저 개 불쌍하지 않냐? 목줄에 묶여있으니 얼마나 갑갑하겠어. 안 그래?”

아이들이 동네 아줌마들처럼 개가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대장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집이 정확히 어딘데? 내가 이 동네는 잘 아니까 어쩌면 더 빠른 길을 찾을지도 몰라. 집이 어디냐고?”

아이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자기들 일이 아니라는 거지?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아, 맞다. 난 왜 이리 멍청하지? 얘들아 정말 미안한데, 오늘 엄마 아빠 일찍 오셔. 생각해 보니까 다른 날이랑 헷갈렸지 뭐야? 우리 다음에 놀자. 그래도 되지? 진짜 미안해. 우리 다음에 놀자. 진짜진짜 미안!”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수십 번씩이나 사과했다. 아이들도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내가 계속 사과를 하는 통에 대놓고 화를 내지 못했다. 일단은 내 행동이 먹혀들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될 일이다. 뒤돌아 왔던 곳으로 뛰어가며 학교에서 덩치가 산만한 애한테 맞고 왔을 때 아빠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포기하는 순간 지는 거다. 두려움에 먹혀 버리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떨쳐내지 못하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조곤조곤 해주던 아빠의 말을 다 이해할 순 없어도 이대로 물러서면 안 된다는 건 확실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없으니까. 이 개가 아니면 안 된다.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골목을 서성거렸지만 여전히 그 개에게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야구 방망이를 가진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개 주위를 계속 맴돌며 용기를 내려고 끙끙거리는데 개가 묶인 이층집 대문이 열리고 대머리 아저씨가 나왔다. 개 주인인가 보다. 아저씨는 곧장 나에게 걸어왔다. 야구 방망이를 뒤로 숨긴 채 긴장하며 힐끔힐끔 쳐다봤다. 혹시 눈치챈 게 아닐까? 내 앞에 선 아저씨는 예상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야. 너 우리 말끔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기웃거리는 거니? 괜찮으니까 이리 와서 쓰다듬어 봐. 전혀 사납지 않아. 사람을 얼마나 잘 따르는데. 한 번 만져 보래도?”

휴, 다행이다. 나는 아이답지 않게 손사래까지 치며 뒤로 물러섰다. 개하고 친구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그러다 우리 말끔이랑 영영 친구 못한다? 얘가 왜 맨날 밖에 나와 있는지 아니? 답답해서 그래. 어쩌면 새로운 친구를 찾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고. 오늘 아니면 우리 말끔이랑 친해질 시간이 없을 텐데 괜찮겠어? 내일 아는 사람한테 보내기로 했어. 여기서 아주 먼 곳이야.”

그 말을 듣자 더는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렇게 저 개한테 물리고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못한 채로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아마 그 두려움이 평생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보면 결국 그런 사람은 술 마시고 비틀거리는 지저분한 노숙자가 된다.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아직까지 안 오는 걸 보면 약속을 까먹었나 봐요. 먼저 집에 갔거나요. 저도 이만 집에 가보려고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가 끝나자마자 뒤돌아 뛰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이렇게 두려움에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구절이 올라와 있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글에서처럼 꼭 이겨내고 말 거라는 다짐을 외우고 또 외웠다. 이게 내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아저씨가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골목에 들어섰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마지막 기회였다. 극복해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개와 대치하는 와중에 몇 명의 사람이 개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다. 어른들은 그 개가 무섭지 않은 모양이었다. 개도 다른 사람에게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독 나한테만 그랬다. 슬금슬금 물러난 후 야구 방망이를 등 뒤로 숨겼다. 남들 앞에서 당황했다거나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저 아이가 여기에서 혼자 뭐하나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참아내야 한다. 내가 억지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태연한 척하자 사람들도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무심히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내 개에게 다가갔다. 불과 세 발자국 앞에서 개가 나를 노려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한계다. 더는 가까이 갈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해야 한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공포는 더욱 커졌다. 어둠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그리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사방으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보이는 건 눈을 번뜩이며 선 눈앞의 개뿐이다. 나 혼자다.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저 개와 맞설 수 있을까? 한 발자국 다가서자 개가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껑충거리며 달려드는 바람에 목줄이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시간이 없다. 개가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걸 보니 이번에 물리면 아예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겪었던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개는 여전히 나를 물지 못했다. 목줄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야구 방망이가 있다. 하고 싶다. 마음속에서 할 수 있다고 부추겼다. 다시 한 발자국 나아갔다. 개는 아예 발작하듯 날뛰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짖지 않았다. 물겠다는 확실한 경고였다. 시퍼런 안광을 빛내며 입맛을 다시는 게 날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날 물어 죽일 게 틀림없었다. 나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개가 공포의 냄새라도 맡았는지 똑바로 선 채 내 눈을 응시했다. 한 발자국 더 물러섰다.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저리 무서운데 어쩌란 말인가? 나는 왜 이렇게 겁쟁이일까? 누가 보면 인생 실패자라고 할 거다. 저 개는 겁 같은 거 하나도 안 내겠지? 문득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단지 극복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이다. 저 개도 두려움을 느낄까? 나처럼? 엄마의 말을 믿고 개를 살폈다. 이제 와 보니 개가 누워있던 땅이 뭔가로 얼룩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줌 같았다. 지금도 뒷다리 사이에서 오줌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었다. 우리 반에 나보다 더 겁쟁이가 한 명 있는데 별명이 오줌싸개였다. 툭하면 오줌을 싸고 우는 통에 어떤 애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저 개도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서 물러설 순 없다. 두 발자국 성큼 다가서자 개가 금방이라도 목줄을 끊고 덤벼들 듯 침을 흘리며 온몸을 뒤틀었다. 개의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목 깊은 곳에서 울리는 으르렁거림이 얼굴에 와 닿았다. 눈앞에 골목의 끝이 보인다. 그 옆에 그토록 원하던 개가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빨리 시도해야 한다. 한 걸음이면 된다. 이 한 걸음을 내딛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나아가야 한다. 해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마음속에서 나에 대한 불신이 떠올랐다. 나는 약하다. 보잘것없는 꼬마에 불과하다. 두려움에 맞서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두려움을 똑바로 쳐다보면 된다. 누가 한 말일까? 어디에서 본 걸까?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싶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개의 쩍 벌어진 아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팔을 향해 날아들었다. 얼떨결에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망이의 끝이 개의 이마에 꽂히며 묵직한 감각이 두 손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들어왔다. 손바닥이 얼얼해 그만 방망이를 놓치고 말았다. 개가 컹! 소리를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다리가 후들거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개가 일어나 나를 물어뜯을 차례였다. 내 손에는 저항할만한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 하지만 개는 일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땅바닥에 드러누워 영문을 몰라 한 채 버둥거렸다. 눈을 깜빡이며 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 뒤늦게 깽깽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코에서 빨간 피가 수도꼭지를 튼 듯 줄줄 흘러나왔다. 개는 생각보다 약했던 거였다.

마음속에 가득 차 있던 공포가 차츰 사라졌다. 개를 때릴 때의 그 묵직한 손맛이 온몸을 돈 후 머릿속으로 몰렸다. 마치 사탕을 잔뜩 먹었을 때의 황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다시 머릿속에서 내려와 온몸으로 번졌다. 가슴속이 따뜻한 물로 넘실거리는 듯 뿌듯했다. 결국, 내가 해냈다. 일어나서 방망이를 집었다. 성공했다는 생각에 힘이 솟았다. 아직도 땅바닥에 누워 움찔거리는 개를 방망이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개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내가 휘두른 방망이를 고스란히 맞았다. 맞을 때마다 떠나갈 듯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뒤틀었다. 저항 같은 건 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축 늘어져 있거나 꼿꼿이 서 있던 꼬리가 이제는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살려달란 건가? 그 모습에 신이 나 더욱 열심히 때렸다. 개는 아파서 발광하는 와중에도 차근차근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마치 케첩을 가득 뿌린 떡갈비 같다고 할까? 이렇게 놓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 무서워했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 이 개에게 가까이 갔던 상황이 생각났다. 개와 맞서는 게 두려웠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니 무언가를 죽인다는 게 생각보다 두려운 게 아니었다.

개는 얼굴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조리 피를 쏟고 있었다. 이미 두 눈알은 맞아서 튀어나온 지 오래였고, 입은 구겨진 걸레처럼 뭉개졌다. 너덜너덜해진 주둥이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웠는지 온몸을 비틀며 헐떡거렸다. 그 와중에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참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야구 방망이를 내려놓고 그 장면을 재미있게 바라봤다. 잠깐, 누가 봤으면 어쩌지? 개가 너무 시끄러웠다. 서둘러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여기에는 나 혼자였다. 누가 본 것 같지는 않았다. 개의 주인집도 불이 꺼진 걸로 보아 외출 중인 모양이었다. 아깝지만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다. 이러다가 어른들이나 혹은 개 주인아저씨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방망이를 높게 들어 개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때렸다. 세네 번을 후려치자 개가 네 발을 뻣뻣하게 쭉 뻗고 경련을 일으켰다. 입을 금붕어처럼 뻐끔뻐끔 거리더니 얼마 후 축 늘어져 죽었다. 죽음이 닥쳐오자 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 개는 나보다 약했다. 묶인 개를 무기를 들고서도 어쩌지 못했던 건 단지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려움이 내 앞을 막아섰지만, 이제는 달랐다. 피나는 노력 끝에 두려움을 이겨냈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두려움은 나쁜 것이다.

목줄을 푼 후 길게 늘어진 개의 뒷다리를 잡고 옆으로 질질 끌었다. 개의 주검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버릴 곳을 찾아야 한다. 낑낑대며 개를 끌고 근처를 헤매다 전봇대 옆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모인 곳에다 내던졌다. 내가 여기를 떠날 때까지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 손끝에 아직 개를 때려죽일 때의 손맛이 남아 있었다. 야구 방망이로 두들길 때 전해져오는 진동과 개의 처절한 신음, 맞을 때마다 춤을 추듯 온몸을 비트는 그 우스꽝스러움이 매우 좋았다. 난 이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일을 끝내고 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니 엄마가 맨발로 대문 앞까지 뛰어나왔다.

“너, 지금 뭐하는 거니? 왜 이리 늦었어? 전화는 또 왜 안 받고? 학원 끝나고 어디로 센 거야? 혼나고 싶어서 그래?”

그제야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 엄마 말대로 부재중 전화가 20통은 넘게 와 있었다. 화난 표정과는 달리 날 와락 끌어안은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느꼈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무슨 일이야? 응?”

“엄마, 미안… 친구 집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그만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까먹어 버렸어. 책상 위에다 휴대 전화를 놓았는데 나도 모르게 진동으로 해놨나 봐. 엄마 울지 마. 다시는 안 그럴 게. 진짜 미안해 엄마.”

내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끝을 흐리자 엄마는 그제야 눈물을 닦고 내 어깨를 꼭 붙들었다.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크게 혼날 줄 알아! 너 때문에 야근하던 아빠까지 집으로 달려오고 있잖니? 경찰한테도 우리 애가 실종됐다고 얼마나 난리를 폈는데! 늦을 것 같으면 전화 한 통만 하면 됐었잖아? 엄마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아니?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마. 알겠지?”

엄마는 말을 끝내자마자 나를 껴안았다. 나도 엄마를 품에 꼭 안거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엄마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렸어? 얼른 씻고 밥 먹자.  오랜만에 아빠랑 셋이서 저녁을 먹겠다. 그치? 참, 내 정신 좀 봐. 경찰서에 전화부터 하는 게 먼저지.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씻어야지 아들!”

엄마가 휴대 전화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벗는 사이 엄마는 경찰서에 전화한 후 부엌으로 가 저녁을 준비했다. 난 씻지도 않고 거실 한쪽에 세워진 울타리로 향했다. 안에는 부모님께서 키우는 말티즈 종의 작은 흰 개가 누워 있었다. 엄마는 이 개에게 흰둥이란 이름을 붙이고 귀여워했지만 난 개의 이름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그저 이 개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이유 없이 죽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동그랗게 처진 울타리 앞에 서니 개가 꼬리를 흔들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가는 길목의 개를 죽이기 전이니 벌써 한참 전의 일이다. 그때는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도 이 개를 죽이지 못했다. 주위를 얼쩡거리기만 하다가 끝내 손도 못 대고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로 다시는 이 울타리 근처를 올 수 없었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개의 목덜미를 잡았다. 개가 낑낑거리자 다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내가 뭘 하는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다시 현관으로 살금살금 걸어와 운동화를 꺾어 신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을 살피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담벼락 모서리 밑이었다. 그곳까지 개를 들고 왔다. 개가 애처로운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살려달라고? 두 손으로 개의 목을 조른 후 힘을 줬다. 어둠 속에서 컹! 하는 비명이 울렸다가 금세 사그라졌다. 이 개도 막상 죽을 때가 되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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