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성형외과가 사라졌다.

2010.03.02 20:0803.02

[문이 열렸습니다]
반자동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종료 버튼을 클릭하자 익숙한 음성의 안내원이 친절하게 문이 열렸다고 알려주었다. 손잡이를 잡아내리니 육중한 철문이 활짝 열리면서 강아지가 뛰어와 다리에 매달렸다. 하루 종일 신고 있어 땀이 배인 구두를 대충 벗어던진 후, 거실에 한 발짝을 디디며 바로 무릎을 꿇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있던 강아지가 불쌍해 입술을 핥을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람의 체온보다 약간 높은 침이 열렬한 키스 세례로 입가에 가득 묻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끈적끈적함에 짜증이 났겠지만, 이 녀석은 내 새끼라 그것마저도 예쁘게 보인다. 무거운 가방을 거실 입구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퇴근 후 생활패턴인 뒹굴며 티비보기를 하다보면 리모콘을 침대 안 어딘가에 던져두기 때문에 이리저리 휘젔다보면 “딩동댕, 잘 찾으셨습니다”라는 칭찬과 함께 손 안에 쏙 들어온다. 오늘도 그렇게 리모콘 찾기 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루자, mbc뉴스가 바로 흘러나왔다.
[야당인 딴나라당이 단독 강행으로 법안을 통과시켜, 성형외과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정식으로 발표되자 대한의사협회 산하 성형외과전문의 모임과 소비자연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국회의사당 앞에 나가있는 김현희 기자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무슨, 무슨 관련 단체들의 뒤늦은 항의성 피켓 시위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위험한 수준에 이른 성형 수술 행태에 정부가 나서주기를 촉구하다가, 막상 성형외과를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정부가 초강경수단을 꺼내자 이번에는 거부하며 난리를 치는 것이다.
[성형이 꼭 필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천성 안면 기형이나 화상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분들은 어디서 성형수술을 해야 합니까?]
어떤 법안이든 예외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이 말한 치료적 성형은 정부가 지정한 대학병원에서 실시하도록 시행령을 고쳤다. 이렇게 정부가 조금 양보했지만 성형외과가 사라진다는 초유의 사태가 전 국민의 이슈로 자리 잡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회식을 하러가도 성형외과 이야기, 찜질방에 쉬러가도 아줌마들의 수다 일 순위, 하다못해 초등학교 아이들까지도 한마디 할 정도다.
[내일 유미정씨가 연차를 쓰겠네, 또 누가..아, 임정희씨도 가능성이 있어]
나는 결원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 부서는 수도권에 포진한 점포를 관리하기 때문에 일주일중 3-4일은 외근을 뛰어야한다. 팀장인 나도 급할 때는 돌아다니는데, 성형외과가 사라진다는 소식으로 난리가 난 몇 몇 아가씨들이 없어지기 전에 수술 받겠다고 아껴둔 연차를 남발할게 틀림없다. 에휴, 한동안 내가 생고생하게 생겼다.
[대충 씻고 자자. 피곤해 죽겠네]
시간이 어느새 11시를 넘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화장실로 가면서 왜 아무 상관없는 내가 피해를 봐야하는지 성질이 났다. 내가 아는 모든 욕을, 내가 모르는 성형외과 의사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해대며 박박 얼굴을 씻었다.

                                                            *          

[그래서 언제까지 쉬겠다고?]
[다음주..월요일까지요]
아침에 조회를 마치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유미정씨가 말을 꺼냈다. 나는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팔짱을 꼈다.
[팀장님도 같은 여자니까..제 맘 이해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우리는 사람들을 면대면으로 상대해야하는데 이런 짝짝이 눈으로 어떻게 좋은 결과가 나오겠어요?]
[유미정씨는 눈으로 말합니까?]
[네? 아니..그게 아니고요..]
그녀가 연차를 쓰는 건, 회사가 그녀에게 준 권리라는 걸 그녀도, 나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회사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그 때 그때 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닌 걸 그녀들이 왜 모르는지 화가 난다. 나 하고 싶은 걸 하는 대신, 누군가가 고생해야한다는 진리는 이 순간 어디로 간 걸까?
[팀장님~]
[알았으니까 그만 가보세요. 업무 인수인계 확실히 하고!]
[네~돌아와서 더 열심히 할게요!]
몇 일전에 큰 맘 먹고 샀다며 자랑 하던 하이힐이 눈에 들어왔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 허영이 뚝뚝 묻어나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가 주장하는 짝짝이 눈이란 것도 어차피 안경 뒤에 가리는 데, 사람들이 자기 눈만 보는 것 같다는 변명으로 쌍꺼풀 수술을 정당화하는 게 얄밉다. 이럴 때는 팀장이라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게 짜증난다. 그녀가 돌아간 뒤 5분도 안 돼, 또 다른 여직원이 살금살금 다가왔다. 인심 쓰듯 내려놓는 따끈한 커피에 “저도 연차요~”가 이미 써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  
  
한 달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성형외과 사태로 빚어진 결원을 보충하느라 나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죽도록 뛰어다녔고, 가는 곳마다 사과하기에 정신없었다. 제때 들어가야 할 납품 물건들도 밀려 내 조그만 차는 엉망진창으로 물건이 싸인 채 돌아다녔다.
[으..배가 살살 아프네]
오늘은 저녁 무렵부터 허벅지가 당기고 아랫배가 아파 일을 하면서도 신경 쓰였다. 대충 날짜를 따져보니 생리할 때가 되긴 됐는데 정확하게 “며칠”이라고 몸이 정해준게 아니다보니 이렇게 아플 만큼 아파야 시작한다. 어제부터 생리전 고통 기간임을 느꼈고, 가방 안은 갑자기 전쟁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불룩하게 이것저것 넣어두었다. 또한 주머니에는 엄청난 생리통에 대비해 타이레놀을 상비했는데도 먹기가 애매한게, 이 놈의 통증이 끊이지 않고 와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신, 그야말로 잊을만하면 찾아와 살살 한번 씩 아픔을 느끼게 하고는 도망간다. 몸이 그렇다보니 두통이 몰려와 찌푸린 얼굴로 하루를 보냈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담궈볼까..]
신호등이 빨간 불이라 기다리는 동안 왼 손으로는 허벅지를 두드리고 오른 손으로는 핸들을 꽉 잡으며 중얼거렸다. 어서 빨리 집에 가자..를 주문처럼 속삭이는데, 마음한 편에서는 모래부터 주말이니 내일 저녁쯤 시작하면 너무 감사하겠다는 기도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따르르르릉...
커다란 핸드폰 벨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발신자는 유미정씨다.
[무슨 일이죠?]
[저..내일..못 나갈 거 같아요]
[왜요?]
[눈이..잘못 됐는지, 퉁퉁 부었어요]
나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파란 불로 바뀌어서 기어를 움직여야한다는 이유가 표면적이긴 하지만 좀 더 솔직히는 유미정씨에게 화를 버럭 낼 것 같았기에 한 템포 쉬려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잠잠한 나를 오해했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고요,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드릴까요? 저 진짜 심해요. 이런 상태로 회사에 가면 사람들이...]
[내일 하루면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게 확실한가요?]
[네! 네! 내일 종합병원에 가서 해결할거에요. 수술해 준 병원이 없어져서 어쩔 수가 없어요]
한숨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억지로 누르면서 내일 딱 하루라고 못을 박았다. 내가 깐깐한 게 아니라, 사람들과 일로 만나는 데 누가 그렇게 유미정씨의 눈만 뚫어져라 볼까 싶다. 처음 인사하는 순간에야 어머..할지 몰라도 일 이야기로 빠지면 다들 신경 안 쓸게 뻔하다. 저렇게 사람들이 자기 눈만 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다 오버일 뿐이다.
[성형 수술 너만 하냐? 그까짓 걸로 껄삣하면..]
느릿느릿 가는 앞 차를 향해 크락숀을 빵..하고 울리면서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같잖은 문제와 생리전 고통에 입술을 깨물고 차를 거칠게 몰아 다른 때보다 15분이나 빨리 집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습니다]
어제처럼, 안내원은 여전히 친절하게 문이 열렸음을 알려주었고, 강아지도 내 입술에 미적지근한 침을 잔뜩 도배해주었다. 가방을 대충 거실 어딘가에 던져두고 화장실로 걸어가면서 옷을 벗어 발로 차버렸다. 오후 내내 참았던 소변을 시원하게 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감사하게도 생리가 시작되었다. 내일이 아니라 좀 실망스럽긴 하지만 마음을 접고 타이레놀을 한 알 꿀꺽 삼켰다.
[뭐지?]
약을 삼키면서 손으로 턱을 만지다보니 뭔가 묘한 게 잡혔다. 약간 뭉툭하고 둥글지만 촉감은 그다지 좋지 않은 그 무엇. 거울에 얼굴을 비쳐보았다. 화장기가 거의 사라진 턱 한 중간에 붉게 솟아오른 여드름이 보였다.
[이게 다 유미정씨 때문이야]
언젠가 티비에서 성인 여드름은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이라고 했었다. 30이 넘은 후로는 여드름의 “여”자도 모를 만큼 깨끗했는데 몇 년 만에 작은 화산처럼 솟아올랐다. 생리의 시작을 기뻐할 틈도 없이 다시 여드름과의 전쟁이다. 누구에게 화풀이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짜증이 여드름을 보는 동안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금은 붉은 기만 있고 통통히 부어올라 짜면 흉이 질 것을 잘 알기에 입술을 찌그러트리며 화장실을 나왔다. 약을 먹었어도 묵지근한 허리와 아픈 허벅지를 두드리며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자는 게 온갖 스트레스 꺼리와 생리의 고통을 잊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자고로 잠은 만병통치약이니까.


[멍멍, 멍멍]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눈을 간신히 떴다. 강아지가 아침을 달라고 나를 깨우는 소리가 그닥 반갑지 않지만, 어차피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출근 러시아워에 걸려 고생할 게 뻔하니 이불을 발로 확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 비틀비틀 걸어가 강아지 밥을 챙겨준 뒤 아침 소변을 보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생리 이틀째라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다는 희망에 스스로를 위로하듯 팔을 들어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세수를 하러 세면대 앞에 섰을 때, 턱의 여드름이 하룻밤 만에 확 가라앉은 걸 깨달았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거울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내 눈이 정확했다. 오늘도 터지지 않는 화산이 화장도 먹지 않고 퉁퉁 불어, 함께 다닐 것이라 믿었는데 싹 가라앉았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 나는 야호 소리를 내며 거실을 팔짝 팔짝 뛰어 다녔다. 왠지 오늘은 좋은 일만 가득할 거 같아 노래도 흥얼거리며 밝은 분홍색 슈트를 꺼내 입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팀장님, 고생하셨어요. 시원한 냉커피 한 잔 드릴까요?]
뙤약볕 아래서 명동을 휘젓고 돌어왔더니 시원한 액체가 그리웠다. 김지선씨의 센스에 윙크를 하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아침에 예상했던 대로 오늘 하루가 참 기분 좋은 일들로 가득했다. 아침에는 주차장에서 만원을 줍고, 명동에서의 일처리도 말끔 그 자체였으며, 회사로 돌아오자 이렇게 예쁜 행동을 하는 직원이 나를 반겨주니 생리로 찝찝했던 몸과 마음이 날아오를 것 같았다.
[결원 때문에 김지선씨 일이 곱이 돼 버려서 힘들지?]
[아니에요. 그냥 하던 일을 조금 더 하는 것뿐인데요]
그녀의 눈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선의 위치가 대략 내 입술이나 턱 쯤 된다 싶어 뭐가 묻었냐고 물어보았다.
[점이..있으시네요. 지금 갑자기 발견해서 저도 모르게 봤어요. 죄송합니다]
[점? 어디?]
[턱이요. 모르셨어요?]
김지선씨는 손을 들어 자기 턱의 중간쯤을 가리켰다. 나는 말없이 웃은 뒤, 그녀가 사라지자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았다.
점이 정말 있었다. 내 턱 중앙에.
나는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을 보았지만, 정말 여드름이 사라진 자리에 검은 점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 아침에도 없었던 점이 어떻게 오후에 생기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점심을 먹으면서 뭘 묻힌 건가 싶어 티슈로 문질러보았지만 점이 맞았다. 손톱으로 살짝 긁어보니 피부에서 0.1밀리 정도 튀어 올라 점과 점이 아닌 피부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인터넷을 뒤져 점에 대한 걸 몽땅 읽어보니 피부가 자외선을 많이 받으면 기미, 주금께 같은 게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나같은 경우는 적여 있지 않았다. 단 한 가지 가능성은 여드름이 빨리 사라진 대가로 짜내지 못한 피부 속의 나쁜 물질들이 점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최선의 답이라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꼼꼼히 한 뒤, 다시 화장을 했다. 그러나 생리를 하는 동안에는 피부가 들떠 있어 그닥 아름답게 정돈되지 않는다. 점 또한 “나는 점이요. 여기 있소이다”라고 알려주려는 듯 화장한 얼굴 위로 튀어 올라 자기 존재를 제법 과시했다. 나는 한 숨을 쉬며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점 하나가 무슨 죽을 일이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어제 처리하다 멈춘 문서에 고개를 박았다.

                                                    *

인터뷰에 나온 한 산부인과 의사 말이, 여자들의 생리 주기는 개인별 차이가 꽤 있지만 자신이 예상한 날에서 앞뒤로 5일 안에만 하면 건강하다고 한다. 두 번째 생리 역시 나를 애먹이는 전조 현상이 꽤 심했지만, 예상 날짜에서 딱 이틀을 빗겨 안전하게 시작했다.
[와..다행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집에서 뒹굴다가 뭔가 축축한 느낌에 화장실로 달려가 발견했다. 혼자 안도하는 마음에 중얼거리며 변기에서 일어나는데 얼핏 본 거울에 내 옆얼굴이 비쳤다. 손을 씻으며 다시 한 번 살펴보았더니 왼 쪽 뺨에 여드름이 한 개 있었다.
[에이..씨..또 여드름이잖아]
욕이 나왔다. 그나마 정면이 아닌 걸 감사해야하지만, 왜 또 생겼냐고 따져묻고 싶었다. 이 번 달에는 딱히 나를 힘들게 하는 직원도 없었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 일도 없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성인 여드름이 또 났다는 건 이해 불가다. 내 몸이 이정도로 약해졌나..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여드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난달처럼 붉은 페인트를 칠한 화산 한 개가 살색 풀밭에 자리를 잡아 코미디같이 보인다. 어쩌면 저리도 클까, 넌 도대체 왜 나를 괴롭히니, 죽어라 죽어! 등등의 소리를 쏟아부어주었다. 물론 그런다고 바로 없어지지야 않겠지만. 애꿎은 손만 두어 번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월요일 아침이 반짝거리며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잤던 옷을 벗고 눈을 비비며 물 한잔을 들이켰다.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제일 끔찍하게 밉고 싫어, 화,수,목,금,토,일,화로 달력이 변했으면 좋겠다는 우스개 소리도 중얼거려보았지만, 오늘이 월요일인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어서어서 준비하자고 재촉했다.
[어?]
출근용 복장을 갖추고 머리를 빗은 후, 로션을 바르려고 두 손 가득 액체를 따랐을 때, 왼 쪽 뺨에 점이 생긴 걸 알았다. 지금 턱 위에 존재하는 점과 쌍둥이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그런 점이다. 건넌방 서랍에 박아두었던 돋보기를 꺼내 거울과 나 사이에 두고 다시 살펴보니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 입술을 침으로 축이다가 꽉 깨물었다. 시간이 어느새 5분 안에 뛰어나가야 할 시점이라 파우더를 뺨과 턱에 잔뜩 바르고 집을 나섰다.
[팀장님, 화장 고치셔야 할 것 같아요]
아침 조회를 마치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을 때, 유미정씨가 다가와 얄밉게 소곤거렸다. 그녀의 눈이 내 뺨과 턱을 바라보고 있어 거울로 흘끔했더니, 점이 또 화장품을 박차고 나와 당당히 보였다. 유미정씨의 눈길이 부담스러워져 고맙다는 말을 던지고 재빨리 자리로 돌아왔다. 30분 후에 이사진들에게 사업 보고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한다는 게 슬퍼졌다.
[컨실러 빌려드릴까요?]
[있어?]
[네. 그런데..잘 가려질까 싶네요. 워낙 색이 짙으셔서..]
유미정씨는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슬쩍 쳐다본 뒤 내 책상에 살색 컨실러를 올려놓았다. 나 역시 미심쩍긴 마찬가지였다.
[예전 같으면 성형외과에서 30분 안에 뺄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 말을 위로처럼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점이란 게 이렇게 내 인생에 암적인 존재가 될 줄 정말 몰랐다. 사실, 누구나 한두 개 쯤은 가지고 있는 게 점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점이 매달 생리와 함께 생긴다는 것이다. 어깨와 가슴, 목 등에도 솟아오르니 난감함을 떠나 온 신경이 그리로 간다. 색이 옅어 눈에 잘 안 뜨이거나 작아서 대충 가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건 코미디언 배연정의 점처럼 보인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온통 신경이 점에 가있다. 그들의 눈이 미간에 난 점을 보는 게 아닌가 싶고, 목에 있는 점을 눈여겨 살핀다는 생각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한달에 한 개니까, 일 년이면 열두 개, 내가 50살까지 한다고 치면..악!]
어느 주말에 밥을 먹다가 문득 계산을 해보았다. 폐경을 50살로 예상했을 때 나는 대략 200개에 가까운 점을 가지게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내 몸에 200개의 점이 나타난다면, 나는 검은 색으로 뒤덮인 사람이 되어 끔찍하게 징그러울 게 틀림없고, 이 직장에서도 권고사직당할 것이다. 면대면에서 가장 첫 번째로 신경써야할 부분이 첫인상인데, 징그럽게 보여 거래 성사가 불투명해지고 성과 저하가 나타나면 이사진들이 그냥 둘리 없다. 갑자기 입맛이 싹 사라져 먹던 음식들을 대충 정리해 냉장고에 넣고는 소파에  잠기듯 주저앉았다. 큰 손거울 속에는 이미 20개 정도의 점을 상반신에 가진 여자가 나에게 안녕..하며 인사를 한다.
[하나..둘..셋..네..다섯..]
역시나 20개가 맞다. 지름 0.3센티에 검정과 흑갈색이 섞인 둥근 물체. 피부의 일부가 변해 생긴 괴의하고 무자비한 세포.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재빨리 뛰어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피임약 한 통 주세요]
직원인 듯한 여자가 이런저런 부작용과 용법에 대해 설명했지만, 대충 흘려 넘기며 돈을 건네준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눈앞에 공원이 보여 무작정 들어가 첫 번째 벤치에 털썩 앉았다. 작고 긴 약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입 안이 말라간다. 기분도 우울해진다. 여자들이야 여러 가지 이유로 피임약을 복용하니, 나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나처럼 점이 생기는 걸 막으려고 생리를 멈추려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린가. 한숨이 쉼 없이 나와 한동안 그 자리를 망부석처럼 지켰다.

                                                       *

아침에 일터에 가자마자 오전에 처리할 일을 바람처럼 해결한 뒤, 조퇴 신청을 했다. 일년에 한 번 할까말까한 일이라 다들 엄청난 일이라도 발생한거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별 일 아니라고 웃으며 그들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탔다. 다음 층에서 문이 열리며 20대 아가씨가 들어왔다. 그녀가 바로 내 옆에 서자, 신경이 곤두섰다. 그녀도 유미정씨나 팀원들처럼 내 점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싶었는데, 실제로도 그녀가 나를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훗..하고 웃으면서 내가 그렇게 예쁘냐고 속으로 한 마디 하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내가 아무리 꼼꼼하게 화장해도 점은 나를 비웃듯 밖으로 나타나는데다가, 목이나 어깨 같은 곳은 여름이라 가리지도 못한다.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마자 그 여자를 툭 쳐 거칠게 밀친 후 빠르게 걸어 나갔다. 정오의 햇살은 가장 뜨겁고 눈이 부셔 초록의 싱그러운 나뭇잎들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주건만, 난 그것마저도 끔찍하게 싫어졌다. 밤에는 어두운 달빛과 네온사인 정도니 내 점이 어둠에 묻혀버릴테지만, 이런 밝디 밝은 대낮엔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 모두가 꼼꼼히 본 후, 집에 가서, 친구와 만나서, 엄청나게 점이 많은 여자를 봤다고 말할 것이다.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강남 역으로 향했다. 평일 대낮인데도 이렇게나 많은 인파가 쏘다니며 나를 지나쳐가는 게 당혹스럽다. 게다가 정말, 정부의 규제가 지독스러운 건지 작은 골목까지 이잡듯 뒤졌지만 어디에도 성형외과는 없었다.
[없어진지가 언젠데 그걸 찾아요? 아가씨, 뉴스도 안 봐요?]
노점상 아줌마가 쯧쯧 혀를 찬다. 나는 인사도 없이 나와 다시 거리를 걸었다. mbc 뉴스를 볼 때만 해도, 성형외과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 곳에 가서 얼굴을 고치거나 필요 없는 수술을 하는 사람을 경멸했었다. 그렇게 돈 쓸데가 없으면 난민들에게 보내라고 코웃음 쳤었다. 유미정씨에게도 나는 어땠는가. 그녀를 마음껏 비웃었던 내가 한심스럽다. 서로의 처지가 되어보아야 비로써 안다는 게 이런 건가. 눈물이 어려 눈앞이 살짝 흐려졌다.
[앞 좀 보고 다녀요!]
누군가와 부딪혔는지 비틀거리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귀로 들어왔다. 대충 인사를 하고 멍청히 걷다보니 강남역이 아닌 어딘가 작고 허름한 골목길이었다. 누군가의 집 앞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

[저희 병원에서는 미용의 목적으로는 수술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정부의 규제가 심해서..]
[환자분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성형외과가 사라진 후, 전문의들은 진로를 바꿔 중간병원이나 종합병원에 다시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찾은 뒤, 몇 일간 왠만한 곳을 다 찾아다녔다. 그들은 한결 같이 곤란하다고 말한다. 걸리면 정부로부터의 불이익이 엄청 나기 때문에 곤란하는 걸 직,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나도 이런 일이 떼써서 될 거라고는 애시당초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미용의 목적이 아니라는 걸 그들이 이해해준다면 어찌어찌 수술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주 작은 희망으로 갔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거칠고 무서운 철퇴를 내리쳤다. 심지어 어떤 의사는 다른 피부병이긴 하지만 검푸른 색으로 뺨이 덮흰 환자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사람도 살아가고 있으니 힘내라고 나를 토닥였다. 그들은 생리와 함께 생겨난다는 말을 믿지 않았고, 이미 살색으로 존재하던 점이 햇빛이나 기타 이유로 색소 침착이 생긴 것일 뿐이라며, 가끔 찾아오는 막무가내 성형 수술 요청 환자로만 취급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내가 이 점들을 없애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남에게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이며 살 수 있겠냐는 심정이었고, 부차적으로는 내 직업을 지켜 나름대로 여유로운 삶을 계속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 끝난 일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점을 빼 줄 의사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아는 모든 욕이 튀어나왔다. 얼굴도 모르는 정부 관료와 성형외과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소리 높였던 소비자단체들에게..
침대에 누워 강아지가 발바닥을 핥는 걸 야단치지 않고 그냥 두었다. 너도 하고 싶은 걸 하렴..살다보니 평범한 일도 하지 못할 상황이 생긴다..라고 중얼거리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일, 모레가 지나면 연차를 낸 것도 다 끝나 다시 일터로 가야하는데 정말 가기 싫다. 경제적 여유만 충분하다면 강원도 같은 산골 오지에 숨어 나 혼자 살아가고 싶다. 겨울이 되려면 아직도 몇 개월 남았고, 짧은 옷은 내 팔에 난 점까지 모조리 드러내주니 사람과 마주하는 게 죽을 만큼 싫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성 싶다.
[아야!]
강아지가 언제 팔 근처에 왔는지, 놀아달라고 팔을 물어 따끔거리고 아팠다. 이불을 걷어차고 팔을 들어 눈 근처로 가져와보니 점을 딱 물었다. 검은 색 주변이 빨갛게 부어올라 다시 화산이 생긴 것 같다.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가!]
괜한 신경질을 냈다. 말 못하는 강아지가 무얼 알겠냐 싶지만, 내 기분이 영 별로인걸 눈치 챘는지 오히려 내 팔을 살살 핥는다. 이런 착한 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린 게 미안해 냉장고에서 간식을 꺼내 던져주었다.
강아지가 문 팔이 계속 따끔거려 찬 물로 식히려고 화장실로 갔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 아래에 팔을 구부려 아픈 곳을 가져다댔다.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닿을 때마다 조금씩 얼어가는 피부는 따끔거림이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스트레스로 주름이 생긴 눈 근처와 입을 바라보다가 물을 잠갔다. 점 부위는 여전히 부어올라 어린 시절에 하던 장난처럼 약간 올라와 있었다. 6살 무렵에 배꼽 위에 나 있는 점이 싫어 마구 잡아당겼다. 친척들이 귀엽다고 말한 게 놀리는 걸로 느껴져 점을 빼겠다고 열심히 손톱으로 끌어당겼더니 점점 튀어 올라 송이버섯 모양의 작은 혹이 돼 버렸다. 그 때, 엄마에게 엄청 두들겨 맞은 뒤 병원에 끌려가 혹이 된 점을 떼어냈다. 순간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이 점들에게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것이다. 이 엄청난 깨달음에 침이 바짝 마르자, 수건으로 팔을 깨끗이 닦고 소파로 뛰어갔다. 만약에 생각대로만 된다면, 나는 수술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점들 모두와 바이바이 할 수 있다. 가슴이 두근거려 두 손을 심장 위에 올리며 심호흡을 수차례 실시했다. 절망 끝의 희망이라더니..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만세..라고 외치며 웃었다.

                                                      *

[팀장님?]
[어? 왜?]
[결제 받을 게 있는데요]
김지선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지만 눈은 내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부분은 출근할 때 살 색 밴드를 붙였지만, 팔은 그것을 떼고 잡아당기던 중이라 붉고 흉한 혹이 그녀에게 노출돼 버렸다. 나는 웃으며 결재를 대충 해주었다. 그들이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최대한 빨리 이 계획을 마쳐야 내 삶이 다시 평화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야 아예 회사를 쉬고 이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모은 돈이 넉넉질 않아 그럴 수가 없다. 또 조만간 수술을 받으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희망은 없던 힘도 솟아오르게 한다. 나에게 이정도의 열정이 있었나 싶게 열심히, 정말 열심히 매달렸다. 단 1분이라도 시간이 나면 살짝 점을 잡아당겼다. 회사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몰래 잡아당겼다. 집에서는 옷을 벗고 티비를 보며 목에난 점, 팔에난 점, 얼굴에난 점을 귀찮게 했다. 거울을 보니 보름 만에 목에 난 점이 튀어 올랐다. 피부가 연약한 팔도 하나 둘씩 올라오는 게 꽤 성공적이다. 전체적으로 거울을 보면 외계인이나 피부병 환자처럼 징그럽지만 나는 이것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미소를 지었다. 없어질 것들 이라는 생각에 고된 업무도 아무렇지 않았고, 밴드를 보는 사람들의 묘한 눈길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D-데이로 잡은 날이 이제 한달 정도 남았음에 달력에 날짜를 지워가기 시작했다.    


[정밀 검사를 해야 하지만, 이런 혹이 전신에 생겨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는..]
내가 찍어둔 종합병원에서 의사가 길게 주저리주저리 말하지만, 내 귀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건 수술을 해주느냐 마느냐 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가 의학 쪽은 잘 몰라요. 그래서 간단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수술할 수 있나요?]
[환자분의 경우는 병리적인 문제이니 가능합니다]
만약 그 자리에 의사가 없었다면 팔짝팔짝 뛰며 노래를 부르고 난리를 쳤을 테지만, 나는 슬픈 표정으로 조용히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문을 열고나오며 솟구쳐 오르는 미소를 가리기 위해 입을 손으로 막았다.
[수술 하시면 괜찮아지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 모습을 오해한 간호사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준다. 나는 끄덕이며 수술 날짜를 최대한 빨리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한 후, 6일 오전에 가능하다는 답변이 들렸다. 집으로 총알택시를 타고 돌아와 짐을 꾸리고 전무에게 전화를 했다. 강아지를 애견 호텔에 맡기고 몇 가지 공과금을 처리하며 노래를 불렀다. 거실을 발레 하듯 뛰어다니며 청소하고 우유를 당분간 넣지 말라는 전화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

[수술이 성공적입니다. 앞으로 다른 혹이 생길지는 경과를 좀 지켜봐야하지만, 현재 보이는 건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얼굴과 상반신에 거즈와 붕대를 맨채로 끙끙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회진 온 의사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수술하기 이틀 전에 입원해 모든 검사를 마친 후, 몇 시간의 수술을 받은 게 다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경과를 보고 소독을 하기 위해 일주일 정도만 더 입원하면 이 모든 문제가 싹 끝난다.
[색시, 그렇게 좋아?]
[네. 너무 너무 행복해요]
옆의 할머니가 웃으며 물어보셨다. 가슴 터질 듯한 기분을 말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뭐 괜찮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팀장님~퇴원 축하드려요!]
[펑! 펑!]
일주일 후에 다시 출근하자 모든 팀원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꽃을 건네주었다. 왠지 엄청난 전쟁에서 극적으로 이기고 금의환향한 장군 같은 대접이라, 쑥스럽기도 했지만 잠시 이 기분을 즐기려 큰 소리로 웃었다.
[그동안 걱정 많이 했어요]
눈가에 눈물이 살짝 어린 김지선씨의 말에 나도 괴로웠던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유미정씨를 이해해주자던 결심을 실천하려고 말을 건넸다.
[눈..그동안 신경 많이 쓰이고 힘들었을 텐데, 내가 따뜻하게 해주질 못해서 미안해]
유미정씨의 감격한 듯한 표정에 진작 이렇게 말할걸..하는 미안함이 살짝 올라왔다.


퇴원을 축하하는 회식을 거하게 한 후, 대리 운전을 불러 집으로 출발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보자니 익숙한 풍경들이 나에게 돌아온 걸 환영한다며 흔들거렸다. 그에 나도 보답하려고 손을 들어 까딱까딱 인사했다.
[으..배 아파..]
고기를 너무 먹어서인지,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 집에 가자마자 설사를 할 것 같다. 입원해 있을 때, 순하고 몸에 좋은 음식만 먹다가 이리 폭식을 하니 문제가 안 생길 리 없다.
[아저씨, 빨리 좀 가주세요]
30분이나 걸려 집에 올 동안 간간히 아픈 배를 문질러 달래면서도 실실 웃었다.
[문이 열렸습니다. 멍멍, 멍멍]
[그래그래~잘 있었어?]
매우 친절한 안내원이 문이 열렸다며 나에게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나를 하루 종일 기다린 강아지도 너무나 행복해하며 입술을 핥았다. 나는 살짝 가방을 내려놓고 사뿐사뿐 걸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뭔가에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흐뭇한 기분에 잠겼다. 그럭저럭 일이 끝나자 변기에서 일어났다.
[제길]
생리다. 화들짝 일어나 거울로 상반신을 살펴보니 어깨에 여드름이 뽕 하고 나타났다. 되짚어보니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면서부터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나는 당혹스럽고 미칠 듯한 기분에 화장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씨~발 개새끼들! 왜 성형외과를 없애버린거야!]  
얼굴도 모르는 정부 관료와 이런 일을 만든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날렸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997 단편 루시의 이기적인 몸매9 김몽 2009.07.08 0
1996 단편 [해외단편] 새엄마 구자언 2012.01.15 0
1995 단편 꿈의 해석 jxk160 2003.12.08 0
1994 단편 끝없이 신음하는 여자들이 있는 테이프3 moodern 2003.09.29 0
1993 단편 왕국의 방패, 민초의 검. 그리고 고약한 무장6 JustJun 2006.08.23 0
1992 단편 맑고 흐림을 논하다 먼지비 2013.05.10 0
1991 단편 통증 rav. 2005.05.23 0
1990 단편 두려움에 맞서다 엄길윤 2013.02.27 0
1989 단편 단단한 세계 겸군 2013.01.10 0
1988 단편 중년z persona 2011.05.16 0
1987 단편 사람고기 요리법 소개 12 pientia 2010.07.05 0
1986 단편 SOS1 정세리 2012.11.27 0
1985 단편 앙팡테리블 나길글길 2007.03.07 0
1984 단편 역(逆)2 송형준 2013.09.21 0
1983 단편 사과와 나비의 여름3 빈테르만 2013.07.15 0
1982 단편 노래하는 빵1 irlei 2011.07.18 0
1981 단편 prologue1 미루 2006.02.14 0
1980 단편 기사도 초연 2013.01.01 0
1979 단편 정상과 비정상 왁슘튤람 2005.05.05 0
1978 단편 별과눈물1 레이드 2003.07.29 0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