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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앙팡테리블

2007.03.07 16:3903.07

앙팡테리블Apanoterible! 무서운 아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에 천재라고 불릴만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불과 17세의 나이에 ‘육체와 악마’라는 소설을 내어 프랑스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소년으로 인하여 앙팡테리블, 즉 ‘무서운 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말은 J.콕도라는 인물이 말했다고 한다.

이 무서운 아이는 의아하게도 20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했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접한 다음 희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은 보통 작가가 평생에 걸쳐 경험과 내력을 쌓아 내놓을 작품을 젊은 나이에 단번에 폭발시킨 탓에 진기가 고갈되어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폭발적인 삶! 그것은 가장 동경하는 삶이면서, 두려워하는 삶이다.

가장 화려할 때에 가장 멋지게 터트리고 산화하고 싶은 멋에 대한 욕구와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사람 본연의 본능에 가까운 욕구의 대립이었다. 희문의 경우를 말하자면 후자 쪽이 간단하게 승리했다.

좁지만 남향인 방은 안식처이다. 발 뻗고 자기에도 부족하지만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 궁전이었다. 창가에 손바닥으로 누르면 삐걱대는 책상과 오래되어서 자주 데이터가 날아가는 노트북이 있고, 현관에 가까운 곳에 주방이 있으며, 옆에 알루미늄 문짝이 달린 화장실이 있다. 책상 옆에는 두터운 매트리스와 이불이 있어서 누워 잘 수 있다. 손바닥만한 전기스토브와 휴대용 손난로가 겨울 난방기구의 전부였다.

너저분한 책상 앞에 앉아서 낡은 노트북을 켰다.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의 이 젊은 글쟁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요즘 아랫배가 흉할 정도로 나왔지만 굳이 운동해서 빼려고 하지 않는다. 아직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자들은 모두 마조히스트 적 기질과 관음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 창작의 고통은 산고에 비유할 만큼 아프다. 일반 사람들은 거부할 그 고통을 예술가들은 고통 속에서 쾌감을 찾고 있다. 완성작품을 놓고 스스로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느리게 일어나서 바퀴벌레들의 잔치 장소로도 사용되는 주방으로 가서 휴대용 렌지 위에 주전자를 얹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찻잔에 싸구려 찻잎을 작은 한 스푼 가득 넣었다.

렌지의 불이 갑자기 휙휙 돌다가 꺼졌다. 가스통을 꺼내 흔들어보니 텅 비었다.

집 안을 뒤져보았지만 여분의 가스는 없었다. 욕설을 내뱉고 덜 끓었지만 따뜻한 물을 찻잔에 부었다. 물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우려나기를 기다려서 한 잔 마신 다음에 겍―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홍차가 오래돼서 너무 썼다.

흙바닥에 뒹굴어 탁해진 루비 색을 띤 찻물을 내려 보다가 단숨에 후룩 마셨다.

목을 쥐고 죽을 듯이 괴로워하는 이때에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둔 핸드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뚜뚜―하는 소리도 난다. 배터리가 없다고 울고 있다. 한숨을 쉬면서 받아보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나. 바닥에 처박혀 있나? 액정 앞에 눈을 디밀고 있나?”

찻잔에 코를 박고 있다고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배가 끊어지게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일자리가 하나 비었다. 우리 회사 옆에 큰 대기업 빌딩 있지? 거기 수위 자리야. 너라도 무난하게 할 수 있을 거다.”

희문은 날 뭐로 보느냐고 툭 내뱉는다. 되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일하면서 글을 써라. 먹고는 살아야지.”

희문은 그런 하찮게 여겨지는 기본적인 사항에 무릎을 꿇고 싶지 않았다. 19세에 외길을 걷겠노라고 한 맹세는 뭐가 된단 말인가. 수화기 너머의 사내는 친구에게 충고했다.

“현실은 전쟁터보다 잔혹하며, 북극의 바람보다 차갑고, 달빛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아가씨보다 냉정하지. 친구여, 잘 생각해라.”

시기적절하게 전화가 뚝 끊어졌다. 드디어 배터리가 장렬하게 수명을 다한 것이다.

전기를 충전해주면 젊은이 아침 좆처럼 되살아 날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희문에게는 벼랑 끝에 내몰린 선택권이 있었다. 책상 옆에 부서진 채로 내버려져 있는 핸드폰 충전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옅은 통증과 함께 천둥소리가 들렸다.

1. 천원으로 컵라면을 사먹느냐. 2. 천원으로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느냐. 이었다.

현재 전 재산이나 다름없으며 새것처럼 빛이 나고 빳빳해서 고귀하게까지 느껴지는 천 원짜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뒤에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배에서 울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얼굴에 다시 한 번 철판 깔자고 굳게 다짐했다.
희문은 운동화에 청바지와 단벌 점퍼를 입고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서 찬바람이 옷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집 근처 편의점으로 컵라면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느린 걸음으로 두 개 블록을 지나서 작은 빌딩에 간판 단 잡지사를 찾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상아색 철문에 ‘주간 야사와 음모’ 라고 쓰인 플라스틱 팻말이 눈높이쯤에 붙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곱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사장인 젊은 또래가 하나있는 여사원과 함께 마감에 여념이 없었다. 바쁜 모양인지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무실 중앙에 유일한 난방기구인 석유난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문 옆부터 늘어선 책장에 지금껏 발간된 과월호가 꽂혀있었고, 그 다음부터 자료서적 및 문서 서가가 그득했다. 사무실 남서쪽에는 낡은 테이블과 소파로 이루어진 응접세트가 있다.

희문은 대뜸 사장의 이름을 불렀다.

“민준아! 분식집에 라면이나 배달시켜라!”

민준이라 불린 또래가 고개를 쳐든다. 눈에 힘을 주고 희문을 노려본다. 그는 같은 대학 국문과 동기이기도 했다.

“또 왔냐? 걸신들린 자식. 뭐 처먹을래?”

욕을 하면서도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누른다. 희문은 만두 라면을 주문했다.

“제일 비싼 라면 처먹네! 그냥 라면 먹어!”
“겨우 4천 원가지고 쫀쫀하게 구네. 그럼 떡라면.”

얻어먹는 신세라서 절충할 수밖에 없었다. 민준의 욕설이 이어진다.

“자식아! 하루 종일 책만 팔아봐라. 4천 원이 공으로 나오나! 책은 잘 안 나가고, 취재지에서는 태클 들어오고. 속상해 죽겠는데.”

결국 떡라면을 시켜줬다. 민준 자신은 여사원과 3천 원짜리 라면을 시켰다.

민준은 기다릴 동안 기사나 써달라며 자료뭉치를 던져주고 워드를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내주었다.

자료를 훑어보니 유령에 관한 흥밋거리 기사였다. 또 유령에 관해 쓰느냐고 핀잔을 주자 여사원이 대답한다.

“그래도 독자들이 가장 우습게보면서도 흥미 있어 하는 주제랍니다. 애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유령이라는 흔히 알려졌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 독자들은 식상하면서도 흥미를 가지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지요.”

여사원은 이름을 신경아라고 하고, 민준의 고교 후배인데 똘똘한 여자라서 편집 보조 외에 경리 및 잡무도 맡아하고 있다. 그녀와 민준 사이에는 전기 커피포트와 다구 세트, 인스턴트 가루를 넣은 커피 병, 녹차 티백이 편편한 부분에 정갈하게 놓인 목재 장롱이 있다. 고대 팔랑크스 진형처럼 줄을 맞춰 반듯하게 놓은 사람은 물론 경아 양이다. 희문은 양손으로 장롱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민준이 혼자 마시는 비싼 홍차 캔이 교묘하게 식기에 가려져 있었다. 다즐링이라면 싸구려 홍차에 버려진 입맛을 돌려놓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역시 여기 있었구먼. 맛 좀 보겠다. 친구야.”

홍차 캔을 꺼내서 흔들어보이자 민준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딱 한 스푼만 넣겠다며 캔을 열었다. 차 잎을 한 스푼 떠서 잔에 넣고 물을 끓여 부었다. 선홍색 찻물이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향기부터 집 주방에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 모를, 흙을 한 줌 넣은 것 같은 싼 차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한 잔 즐기면서 기사를 썼다.

희문은 잡지사에 놀러올 때마다 손이 모자란 이 잡지사의 일을 도와줄 겸 기사를 많이 써 줬다. 자료를 참고하면 기사 하나를 쓰는 시간은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완성되면 수정을 해서 민준에게 주면 그는 완성된 기사를 보고, 좋다. 아니다. 판단을 한다. 반응이 좋은 객원필자의 기사를 보고 사장은 이번에도 좋다고 말했다.

“네가 쓴 기사는 평가가 좋아. 나와 경아가 쓴 기사는 욕만 진창 먹고 있지. 그만 고집부리고 정식 사원으로 들어오는 게 어때?”

스카우트 제의지만 변변한 집필기자 없는 황색잡지사에 기사를 써주는 건 3천 5백 원짜리 라면에 대한 보답과 친구에 대한 정(情)이다.

창밖에서 귀에 익은 50CC 오토바이 소리가 적절하게 대화를 끊었다. 이내 배달부가 플라스틱 가방을 들고 뛰어 올라왔다. 사무실 한 쪽에 있는 낡은 응접세트에 라면들이 턱턱 놓였다.

“식사 값이 9천 5백원인데 현금영수증 안 끊어줘? 그리고 단무지 많이 달랬잖아.”
“참 내. 우리는 땅 파먹고 장사합니까? 한국에도 일본처럼 밑반찬 추가에 돈을 받아야 한다니까.”

민준은 오늘도 배달부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릇 찾으러 올 때 현금영수증을 끊어오겠다는 약조를 받아낸 뒤에야 배달부를 놓아주었다. 희문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라면 그릇을 싼 랩을 뜯었다.

민준이 자리에 앉자 희문은 그를 위로한답시고 말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미래 투자라고 생각해라. 나중에 이 싸구려 라면이 럭셔리 정통 이태리 파스타로 변해서 돌아올 거니까.”

민준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수저를 싼 포장지를 뜯는다. 뭐라고 더 말하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날아올 기세였다. 경아가 민준의 어깨를 누르며 자신을 이기라고 속삭인다. 희문은 거기서 화제를 바꿨다.

“그래. 이전에 내 소설 보여 줬었지? 그놈들이 뭐라고 하든?”

그의 일가친척이 문단에 연줄이 있다. 라면을 먹으려고 손을 놀리던 민준의 손이 딱 멈춘다. 젓가락을 앞으로 쑥 내밀어 희문을 가리켰다.

“너 자신을 알라!”

희문은 웃었다.

“그래. 소크라테스가 표절해서 유명해진 말이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성공할 수 있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듯이 말이야.”

그가 역정을 낸다.

“멍청아. 너 전에 작품에서 피력한 종교 비판에 대해서 개인적인 종교관을 말한 평론가를 두들겨 패놨잖아. 그 사람은 평론계에서 저명한 교수님이셔. 그들이 널 곱게 볼 리 있겠어?”

한 마디로 퇴짜를 놓았다는 거다.

“그놈은 맞을 짓을 했어. 왜 작품은 안 보고, 종교를 보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런 평론가 놈들은 광화문 사거리에 나뭇단을 높이 쌓아놓고 화형식을 치러야해. 그리고 문단의 동업자들을 불러놓고 축하파티를 즐기는 거지. 화형의 불꽃을 화톳불 삼아서. 불타 죽는 수준 미달 평론가의 비명을 음악 삼아서!”

민준은 걱정스런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거냐.”
“나도 표절 한 번 해보지. 슬럼프를 만나면 슬럼프를 때려눕히고, 멍청한 평론가를 만나면 멍청한 평론가를 때려눕힌다.”

희문은 스스로도 만족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이 자기 앞에 놓인 라면 그릇을 당장에라도 집어 던질 듯이 양손으로 그릇을 꼭 붙들고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애를 쓰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희문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라면에 밥을 말아서 한 순간에 싹싹 비워버렸다.

“자, 그럼 나는 간다. 조만간 신작을 들고 올게.”

일어서는데 민준이 말한다.

“자존심 그만 부려. 니 입에 풀칠은 해야 하지 않겠냐?”

고민은 많이 했지만 가슴 밑바닥에 남아있는 작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경아가 입을 열었다.

“이상한 비유지만 싸구려 백만 있는 가게에 짝퉁 브랜드 단 명품 백으로라도 와 달라는 거죠.”

희문은 쉽사리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만일 그리 쉽게 굽힐 거라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리라.

“그냥 급할 때 불 꺼주는 소방관으로 봐 줘. 아니면 체스의 퀸처럼.”

문을 나서는 일 없는 작가의 등 뒤로 잡지사 사장의 투덜거림은 계속되었다.

출판사를 나와서 편의점으로 직행한 희문은 천원으로 배터리를 충전시켰다.

30분 쯤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시간을 죽일 데가 마땅찮아서 잡지코너에 서서 읽을 만한 책이 있나 뒤적였다.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시간 때우기에 딱 좋은 흥미위주의 가십거리 기사만 실은 잡지와 신문만 그득했다. 그중에는 ‘야사와 음모’도 있었다. 청년 두 사람이 점심을 먹으러 온 모양인지 뜨거운 물을 부은 라면과 김밥을 앞에 두고 시식대에 서 있다가 ‘야사와 음모’를 집어서 뒤적거리며 의견을 나누는 걸 들었다.

“이 잡지도 결국 3류 잡지에 지나지 않았어. 연예계와 정치계 뒷이야기, 포르노 배우나 찾아다니는….”

한 청년이 말하자 다른 청년도 수긍한다.

“하지만 때때로 조희문이라는 객원필자가 쓴 기사는 읽어볼만하더군. 몇 개월 전에 봄 특집으로 근현대에 관한 기사는 정말 훌륭했어. 오려서 따로 붙여뒀지.”

신상품이 나온 게 뭐가 있는지 사지도 않을 거면서 돌아보기도 귀를 세워 경청했다. 카운터에 서 있는 직원이 의심하는 눈초리로 희문을 쳐다본다. 두 청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사를 스크랩 했다고? 그렇게 실력 있는 필자가 왜 3류 잡지사에 있는 거지? 역사 전문지에 기자로 있어도 될 텐데.”

희문은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엄지로 튕겨 올렸다가 공중에서 낚아채 보니 뒷면이 나왔다. 그는 청년들에게 사실을 말해주는 걸 그만두고 충전된 배터리를 받아서 돌아왔다. 앞면이 나와 있었으면 설령 귀찮더라고 모든 사실을 말해줄 생각이었다.

배터리를 전화기에 끼우니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험 삼아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하고 신호가 가다가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받는다. 목소리를 들으니 어머니이다.

“어머니, 저예요. 아들이에요.”

여느 집 어머니면 반가운 척이라도 했을 텐데 내 목소리를 듣는 어머니의 반응은 결코 유쾌하고 밝지 못했다.

“무슨 일이니. 아들.”

희문은 용건을 말했다.

“돈이 다 떨어졌어요. 돈 좀 부쳐주세요.”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들, 두 손발이 멀쩡하다면 네가 벌어서 써라.”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다가 숫제 전화선을 뽑은 듯 나중에는 아무런 신호도 가지 않았다. 화가 나서 쾅하고 발을 굴렀다.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 맞는 걸까? 겨우 10여만 원 가지고 쩨쩨하게 구시긴!”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을 여니 퀴퀴한 총각냄새가 풍겨온다. 안에서는 맡아지지 않지만 밖에 오래 나갔다가 들어오면 빨지 않은 걸레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게 후각을 자극한다.

이 냄새는 방향제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식생활이 아닌 데로 나갈 돈이 아깝기도 해서 방에는 어떤 향수도 없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담배를 빼어 물고 글을 쓸 준비를 했다. 컴퓨터가 부팅될 동안 옆 방문을 두드렸다.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박 씨. 메일 좀 확인하게 해 주세요.”

희문은 옆집의 박 씨라는 남자의 컴퓨터를 빌려서 메일을 확인하곤 한다. 이유는 그의 컴퓨터에 인터넷 선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주 찾아와서 귀찮을 테지만 그는 표정만 일그러뜨리고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전자메일 함을 살피려는 이유는 최근 몇 개 신문사에 연재를 목적으로 소설과 칼럼을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답신이 올 때가 되었다.

새로 온 편지가 몇 통 있었다. 내가 글을 보낸 신문사에서 왔다. 메일들을 열어보았다.

귀하의 글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우리 회사의 방침과는 맞지 않은 것 같아서 오랜 회의 끝에 싣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부디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마치 미리 짠 듯이 모든 메일이 자투리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내용이었다.

그나마 작은 신문사 하나에서 칼럼을 싣겠다는 답신이 왔을 뿐이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오랜만에 고료가 들어오겠다는 기쁨에서였다.

즉시 내 방에 돌아와서 칼럼을 수정하려고 노트북을 켰다.

순간 뛰뛰 하고 컴퓨터가 아프다는 소리를 냈다.

희문은 경악했다. 오래된 컴퓨터라서 내부 부품들에 손상이 갔는지 자료들이 전부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급히 온 책상을 뒤져서 자료를 백업해둔 디스크를 찾았다.

다행이 백업해둔 칼럼 파일이 남아있었다. 다만 사흘 전 것이라서 다음 부분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야 기고를 희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살려서 정신없이 손실된 부분을 써내려갔다.

밤을 새워서 간신히 완성시켜서 아침에 디스켓에 담아들고 옆 방 박 씨를 찾아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작은 신문사의 편집장이라는 남자였다.

“우리 신문사에 칼럼을 보내주신 조희문 씨이지요? 죄송하지만 지면부족으로 그 칼럼은 싣지 않게 되었습니다.”

희문은 충격을 받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오오, 나의 불운이여!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신문사는 3회 분량의 단편 소설을 하나 청탁할까 합니다.”

마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리비치려 하는 것 같았다.

“주제는 희문 씨가 하나 골라서 해주십시오. 한 회당 분량은 아시지요?”

희문은 얼른 안다고 대답했다. 편집장은 마감은 닷새 후이며,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희문은 즉시 작업에 들어갔다.

플롯을 종이 위에 손으로 써서 스토리와 전개를 정하고 난 뒤에 구상에 들어가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희문이 소설을 쓸 때 최우선으로 삼는 것은 읽히는 맛이다. 흥미 위주로 빠지기 쉽다는 지적도 받으나 자신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깊은 곳의 생각을 어느 날 새벽에 노트북을 켜고 의자에 앉았을 때에 불현듯 깨달았다.

희문은 소재를 꿈으로, 주제를 욕망으로 정했다.

주인공으로 하여금 몽유(夢遊)하면서 인간사(人間事)에 겪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비롯한 백팔번뇌(百八煩惱)가 주는 쾌락을 즐기고 나중에 반성하고도, 이를 되풀이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나약한 인간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부터 이런 내용으로 한 번 쓰려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워 물고 한 번 깊이 빨아들인 뒤에 연기를 노트북 액정 화면 위로 후 뿜었다.

갑자기 격한 기침이 났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 좋은 친구와도 이별해야 하나?”

희문은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꽁초가 될 때까지 다 피웠다.

재떨이 재를 휴지통에 털고 씻어서 담배 갑과 함께 찾기 힘들게 아무데나 던져두었다. 대신에 담배 개비 길이로 깎은 오이를 입에 물고 청탁받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십 년 동안 미각을 지배해온 텁텁한 맛 대신에 시원한 맛이 들어오자 좋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희문은 담배를 피든 안 피든 무아지경에 들어서면 벌써 3장이나 써낸 자신을 발견했다.

“아아, 나는 방금 전 또 한 번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어.”

그리고 신들린 듯이 키보드를 두들겨 내려갔다.

첫 회 분량을 완성시키고 신문사에 가장 싼 우편으로 보냈다.

"빠른 등기로 보내드릴까요?"
"싼 거로."
"그러니까 등기요?"
"싼거루."

이틀 뒤에 희문은 걸려온 전화를 받고 직접 분당에 있는 신문사로 달려갔다.

3층짜리 건물 2층을 전부 세놓아서 편집과 인쇄의 모든 업무를 보고 있었다. 보안을 위해 전자자물쇠가 달린 유리문을 노크하니 안에서 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었다. 용건을 말하니 흔쾌히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편집장 대리라는 여성이 희문을 맞았다. 밤색 정장을 입고, 노란 뿔테 안경을 썼으며, 손에 서류를 들고, 쭉 째진 눈을 하고 있어서 깐깐한 성격의 노처녀처럼 보였다. 째진 눈에서 불이 이글거리고 시선이 위를 향한 걸로 보아 다른 사람을 깔보고 있는 듯 했다.

“당신이 조희문 씨로군요. 저는 편집장 대리 채신시라고 합니다. 이리 앉으세요.”

그녀는 희문에게 앉을 자리를 권하고 그에게 뭐라도 마실 거냐고 묻고는 녹차를 내왔다.

희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어째서 제 글을 받고 게재를 취소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뜸 그렇게 말하자 여자는 안경을 검지로 올리면서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적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이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 독자들은 어려운 걸 싫어합니다.”

희문은 화가 치솟아 오르는 걸 억제했다.

“개나 소나 다 대학을 나오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 81%는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죽거리는 내 말에 채신시는 분노한 표정을 떠올렸다가 이내 가라앉혔다. 희문이 보니 그녀는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프로였다.

“당신은 저번 일로 이 업계 바닥부터 위에까지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 많은 독자들에게 자기 글을 읽히고 싶다고 하셨으면서, 19%의 독자들은 외면할 셈입니까?”

공사장에서 쓰는 강철해머로 머리를 무수히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왔다.

희문은 이마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건 눈썹 부근에서 사라졌지만 워낙 큰 충격이어서 채신시가 여러 차례 불러서야 간신히 정신이 돌아왔다.

어떤 중년 남자가 신문사로 들어왔다. 직원들이 그를 편집장이라 부른다. 그는 채신시에게 이야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채신시는 손짓을 해보이고 희문에게 제안하였다.

“우리는 32시간을 더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수정해올 생각이 있습니까?”

희문은 고개를 반쯤 젓다 말았다.

“아뇨. 하지만 쉽게 쓰겠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원고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희문은 폭탄발언이나 다름없는 말을 채신시에게 건넸다.

“채신시 씨, 저랑 사귀어 주시겠습니까.”

신문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희문과 채신시가 앉아있는 응접세트에 쏠렸다. 채신시는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희문을 바라봤고, 희문은 내일 원고를 가져올 때에 대답을 들려달라며 일어섰다.

신문사를 나가는 그의 발걸음은 당당하기도 했고, 뻔뻔하기도 했다. 누구든 그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쇼펜하우어 씨는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희문은 그가 쓴 철학서적을 읽을 때는 몰랐지만 집필 경력이 쌓이자 언제나 그 말이 옳다는 걸 실감했다. 집에 돌아와서 기한을 이틀로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창작자에게 엄습해오는 정신적인 중압감과 슬럼프는 공포의 대상이다. 특히 희문은 가벼운 슬럼프가 자주 찾아오는 편이었다.

신문사로 전화를 거니, 마침 채신시가 받는다.

희문이 이틀로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자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매몰찼다.

“자기 입으로 하루라고 해 놓고서 채 세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지키는 못하는 겁니까? 그러고도 프로를 지향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나요?”
“당신의 교제 신청을 듣고 황당하면서도 두근거린 건 사실이지만, 기다리실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지금 당장 거절합니다.”

그녀는 쾅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희문은 동요되거나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도를 닦아 무념(無念)의 경지에 다다른 고승 같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불현듯 머릿속에 한 줄의 문구가 떠올라서 노트에 적어두었다. 본격적으로 수정을 시작한 시간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희문은 밤새동안 소설을 수정한 끝에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의자 등받이를 벽에 기대어 잠들었다.

아침에 그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받는 사람이 없었다. 급히 옷을 꿰어 입고 분당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본문에 오류가 없나 체크했다.

신문사는 어제와는 달리 공기가 무거워진 것 같았다. 채신시는 없었다. 희문은 원고를 막 출근한 사원에게 전해주고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빠져나왔다.

가끔 옛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건 재미있다.

신문사를 나오는 희문에게 떠오른 옛말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이었다. 마침 건물 입구 유리문을 밀면서 채신시가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1층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 마주쳤다.

희문을 보고 채신시는 대뜸 말했다.

“기한은 내일이 아니었나요?”

희문은 자신 있는 어투로 대답했다.

“뮤즈의 도움으로, 수화기 너머로 당신의 말을 듣고 나서 간신히 수정을 마쳤습니다.”
“수정본은 어디 있나요?”
“신입사원에게 맡겨두었습니다. 부디 검토해보시고 게재를 부탁합니다.”

희문은 양 발목에 채워진 쇠뭉치를 털어버린 것 같아서 홀가분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빌딩을 나왔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착신되는 전화번호를 보니 민준이었다. 에너지 막대가 하나 밖에 없는 걸 보니 반나절 배터리만 남아있었다. 전화를 받으니까 스피커 너머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줘! 잡지사가 위기에 처했어!”

별의별 생각이 오갔다. 놀란 민준이 한 달음에 잡지사로 달려 가보니 그들은 통상적인 재난이나 협박 따위의 물리적․정신적 위험이 아니라 마감을 앞두고 취재와 기사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경아가 잡지사로 뛰어 들어오는 희문에게 자료와 워드프로세서를 넘겼다. 겨우 이틀 남짓 제대로 씻지 못했는데도 그녀는 가득 졸린 눈을 하고 있었고, 머리는 부석부석했으며, 세 사람의 책상은 온갖 자료 출력물과 기사원고와 빈 박카스 병으로 난잡했다.

자리에 앉아서 대강 자료를 읽어보고 민준과 교섭을 시작했다.

희문이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보이자, 민준은 바닥을 가리켰다. 동쪽을 가리키면, 서쪽을 가리켰다. 북동쪽을 가리키면, 남서쪽을 가리켰다. 대학시절에 정한 그들만의 신호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희문이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면, 민준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인내가 한계에 달한 표정을 지은 희문은 책상 위에 놓인 물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남지 않았어. 어서 기사를 작성해 줘.”

따르릉하고 전화벨이 울린다. 민준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인쇄 외주를 준 인쇄소 관련자인 듯싶다.

“네, 거의 다 완성시켰습니다. 한두 시간 정도면 넘어갈 겁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반 후에 마감을 마친 민준은 두 사람과 근처 할인점으로 데리고 갔다. 지하 식료품 층에 마련되어 있는 초밥 코너로 데려가더니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듯 가장 큰 포장박스를 집어 들었다. 상품 대에 진열되어있는 낱개 초밥들을 가리키며 어서 고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식집 가는 거 아니었냐?”
“이것도 초밥이잖아. 거기 가서 깨질 비용을 생각해봤냐? 세 사람에 만원 약간 넘어가면 싼 거지.”

희문은 분노해서 경아를 부추겨서 포장박스가 미어터지기 직전까지 초밥을 담았다. 그렇게 담은 초밥은 2만원이 넘었다. 그걸 사무실로 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었다.

배가 부르면 잠이 오기 마련이지만 희문과 민준의 정신은 아주 매운 초 생강을 먹은 순간에 눈이 확 뜨이듯이 또렷했다. 경아가 밖에 나가고 없을 사이에 둘은 마주앉았다.

“나야 이 짓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넌 언제쯤 지금 생활에 종 칠 테냐.”
“언젠가. 아주 가까운 언젠가는. 메아리 울리는 종을 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

희문은 그만 일어났다.

“가야겠어. 신작도 써야하거든. 매 봄마다의 대공모전이 보름도 남지 않았어. 시간이 빠듯해.”

희문은 손도 흔들지도 않고 잡지사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공모에 응모할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이상과 현실에서 괴롭게 몸부림치는 한 인기 없는 글쟁이가 주인공인 소설이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뇌가 손에게 그렇게 쓰라고 신경을 통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수십 번 머리를 싸맸고, 네 번 기분전환으로 음악을 틀었으며, 일곱 번 등을 젖혔다. 상세한 횟수는 세지도 않았다.

다음해 봄, 희문은 지방지 공모전 가작에 뽑혔다. 걸려온 전화를 받고도 그는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저 지의 최우수작에 되었어도 이런 표정을 했을까? 라는 질문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품게 했을 만큼 담담한 표정이었다.

신문에 게재된 자기 이름 석 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배터리가 다 된 핸드폰에서 전지가 없다는 경고음과 함께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채신시였다.

“축하해요. 신문에 당신 이름이 올라온 건 대단한 영예라고요.”
“아뇨. 기왕이면 당신네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신문에 이름이 올라왔다면 자손만대까지 이어질 영예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웃었다. 일부러 웃는 웃음이었다. 말 속 뜻을 알고 맞장구 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신문사는 공모전까지 시행 할 정도로 이름이 없어요.”

그녀는 제안을 해왔다.

“우리 신문사와 자매결연한 문예지에서 발행하는 계간지에 실을 문예작품을 모집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소설이나 비평 한편 부탁해도 될까요?”

오랜만에 일거리다운 일거리가 들어왔다.

“단편으로 할까요? 중편으로 할까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어찌되든 좋으니 알기 쉽게.”

끊으려는 걸 희문은 급히 제지하면서 이전에 제의한 건 또 생각해 보았냐고 물었다. 채신시는 그것이 무언지 떠올리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노라고 말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완벽하게 차인 상황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구상도, 키보드 두드리는 속도도 평소의 배는 나오는 것 같았다.

그해 4월에 나온 계간지에 실린 희문의 글을 본 아마추어 평론가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주제만큼은 여러 의미에서 무서운 걸 정하는 친구로군.”

희문은 자기 방에서 담배 초콜릿과 쓴 홍차를 마시면서 귀를 후비며 노트북 앞에 앉아 다음 작품을 구상했다.

재도 나오지도 않는 초콜릿 담배를 재떨이에 재 떨어뜨리듯 털고 김이 죽은 홍차를 한 모금 마신 희문은 왝 하는 소리와 함께 찻물을 바닥에 뿜고 비명을 질렀다.

“제길, 더 써졌어!”

희문은 데이터를 담은 뇌를 들고 잡지사로 향했다. 기사 하나만 써주면 하루 종일 죽칠 수 있고, 맛있고 향기로운 홍차도 마실 수 있다. 단벌 점퍼를 걸치고 나가기 전에 속 시원하게 오래된 찻잎이 담겨진 캔을 농구에서 3점 슛 하듯 휙 던졌다. 캔은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 쓰레기통 속에 쏙 들어갔다.

희문은 환호성을 올리고 당당하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길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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