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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원의 빛 (4)

2006.07.13 02:1507.13

4. 신의 이름

도서관에 권 교수가 나타난 건 며칠 뒤였다. 백발이 듬성듬성 섞여 있는 그는 올빼미 같은 안경으로 눈을 반짝이며 서가를 뒤지고 있었다. 가늘게 마른 그의 실루엣이 오후 햇살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그의 옆에 가서 섰다.
그가 고개를 돌린다. 그의 가는 메마른 손 사이에 뭔가 책이 들려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나를 보자 빙그레 알 수 없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네, 오랜만이에요.”
그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이 모든 신비의 끄트머리를 안겨준 사람이었다. 마치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이 도서관의 미로를 갈 수 있게 도와준 게 아니라 그 미로로 인도한 안내자이자 토끼굴로 나를 이끈 토끼기도 했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대략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왜 그들이 당신을 권 교수라고 부르죠?”
“그건 내가 실제로 교수이기 때문이죠.”
“아하, 그렇군요.”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고 있지요.”
왠지 필드웍이 많은 고고학과 마른 장작처럼 마른 그와는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다.
“당신은 영원의 빛을 찾는 목적이 뭔가요?”
“호기심이요. 나는 과거에 어떻게 살았나 하는, 학문적 영역의 호기심에서 이 학문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학문이 나의 지식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시켜주지 못하더군요. 고고학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디애너 존스와 같은 보물 발굴?”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고고학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나 그 생활상과 문화상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과연 낙랑은 있었나? 고조선은 얼마나 영토 확장을 했는가? 이런 것에 관심이 있고 이것을 정확하게 아는 방법은 그 자취나 흔적이나 좇는 발굴보다는 영원의 빛으로 내가 확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그간 여러 학파와 접촉했으나 그나마 보르헤스가 나에게는 가장 희망적으로 보여서 섹트에 입문했지요. 입문한 지는 이제 겨우 10년 좀 지났지만 이젠 나에겐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한 것도 중요하고 이름을 날리고 후대에 유전자를 물려주는 일 등등 많은 일들이 있지요. 나는 그중 정확한 알고 싶은 일을 아는 것도 삶의 즐거움이자 보람이라고 여기고 이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렇겠군요. 당신은 종이를 먹고 사는 것도, 잉크를 빨아 마시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우리는 보르헤스가 찾았던 것을 찾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도서관이 바벨의 도서관이고, 자기변론서야 말로 알렙이라는 게 우리의 주장이죠.”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보르헤스가 영원의 빛을 본 자란 건 명확합니다. 그의 단편만 봐도 증거가 곳곳에 산재하니까요. 그도 분명 이 바벨의 도서관에 와본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벨의 도서관>이나 <두 갈래로 갈라지는 정원>은 우주에 대한 은유가 아니라 바벨의 도서관 그 자체에 대한 묘사입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나온 <자기 변론서>와 <알렙>은 소설상에서 가지는 메타포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알렙이 자기 변론서라는 것이지요?”
“네. 우리의 주장은 그것이지요. 우리는 꽤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섹트로 아직 힘이 약한 편이지요.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알렙에 가까이 다가가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우습게보진 못합니다.”
“그런데 안색이 안 좋네요.”
“얼마 전에 수술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못 오셨군요.”
“미안해요, 약속을 어겨서.”
“아니 괜찮아요. 많이 편찮으셨나 봐요?”
“위암인데 수술하려고 개복했다가 도로 닫았어요. 아마 몇 달 못 버틸 겁니다.”
그는 아주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그의 눈에서 깊은 절망을 보았고 대신 영원의 빛을 찾아서 그에게 불사를 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애가 중학교 3학년인데 큰일이네요.”
말하면서 웃는 그의 약간 처진 눈이 왜 이리 슬퍼 보인 것일까.
나는 권 교수를 먼저 보내고 서가 사이를 맴돌다 책을 골라서 내려왔다. 언제나처럼 백작이 앉아 있다.
“백작, 당신은 어느 섹트 소속인가요?”
“나는 섹트 소속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 이름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생 제르맹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전에는 시몬 마구스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노시스에 빠져 있었고 예수가 나타난 이후에는 그노티시즘의 신자가 되어서 기독교 신비주의에 몰입했고 <유다복음>을 읽다가 영원의 빛을 마주쳐 불로불사의 몸이 되었지요.
누구나 다 불로불사가 되지 못합니다. 영원의 빛을 볼 수만 있는 자와 보르헤스처럼 보았지만 거부한 자, 그리고 저처럼 받아들인 자 이렇게 나뉘지요.“
그는 진지하게 내가 하는 말에 대꾸했다. 현실처럼 들리지 않음에도 그의 말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유다복음이 실제로 있는 책이군요.”
“모든 책은 다 진짜로 존재하죠. 이 도서관 안엔 <솔로몬의 봉인> 같은 가짜 마법책도 있습니다.”
“그러면 도서관 소녀는 누구죠?”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도서관을 지키고 있던 소녀로, 단순하게 도서관 소녀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도서관을 지키던 수많은 사서들의 으뜸으로, 제일 오랫동안 도서관에 머물렀던 소녀입니다. 그녀는 이 도서관에 우연히 들렀다가 도서관에게 잡혀서 도서관을 지켰다고 하는 전설의 소녀지요.”
“그런데요?”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사라졌고 도서관은 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이렇게 떠돌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전에는 도서관이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도서관은 전에는 물리적인 장소로 재현이 가능했지, 지금처럼 정신체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도서관 소녀와 도서관이 무슨 상관인 것이고 당신이 그렇게 충격을 받는 거죠?”
“그녀는 도서관과 공명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자취를 감춤으로써 그녀와 공명하던 도서관은 점점 희미해져서 잊혀지고 어느 순간 물질체에서 정신체로 돌아섰고, 정신적인 가공간에 존재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당신은 바로 그녀의 일생이 담긴 책을 봤습니다. 그것은 보찾사가 찾는 바로 그 물건이기도 합니다.”
뭔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조우한 그 인물이 엄청나게 유명한 인물이었다는 정도와 도서관과 그녀가 매우 긴밀한 관계라는 것 정도만 이해할 수 있는 내 한계였다.
나는 백작에게 왜 내가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가슴에 조임쇄를 마치 충실한 하인리히처럼 가슴에 쇠빗장을 두른 듯이 조여왔는지 설명할 수도 없었고, 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는지조차 물어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알렙이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는 걸 아십니까?”
“어떻게요?”
“그게 영원의 빛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꼭 빛인 건 아닙니다. 저의 경우엔 신의 이름으로 나타났지요.”
“신의 이름이요?”
“네, 카발라에선 신의 이름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도 하죠. 우리가 흔히 쓰는 야훼 철자가 아닌 다른 철자를 씁니다만. 그렇듯이 저도 유다복음을 보던 중에 신의 이름을 발견했고 거기서부터 알렙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빛을 볼 때 어떻던가요?”
“글쎄요. 그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찰나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하지요.”
그는 그 말만 하고 웃었다. 나는 그날 <크리스챤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설의 책 <시학 2권>*을 대출했다. 대출대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집 근처 작은 사립 도서관이라고 생각했던 이 도서관이 이런 곳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몇 층인지 정확하지 않은 하얀 석재로 마감한 건물을, 잔디밭이 빙 둘러져 있고 그 가장자리에는 장미 넝쿨과 능소화가 심어져 있었다.
6월의 붉은 장미가 화려한 향을 내뿜고 있었고 능소화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이곳이 바로 바벨의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도서관 건물에서 대문까지는 자갈돌들이 깔려 있었다. 따스한 6월의 바람을 맞으며, 눈을 살짝 감았다 뜨는 순간…… 공기가 바뀌어 있었다. 온몸의 작은 세포조차 느낄 수 있는 위화감이었다.
나는 어느새 막다른 골목에 나와 있었다. 뒤로 샥 돌았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말 그대로 도서관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그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느 새 하늘에 금성이 뜨기 시작했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가을 하늘에 별이 슬슬 뜨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북극성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도서관에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는, 이런 책의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잠정적으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날 코트에 손을 끼고 낙엽을 밟으며 강남역 주변을 걸어 다니는데 왜 남자가 불쑥 다가오더니만 말을 걸었다. 흔히 지박령이라고 친구들이 농담으로 부르는 바로 그들이었다.
“도를 믿으십니까?”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영혼이 참 맑아 보이시군요. 역시 도서관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밝은 오오라입니다.”
역시 이들도 도서관과 영원의 빛을 찾았나 보다. 신기한 일이었다. 전엔 몰랐는데 내가 각성하자마자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게 그 도서관을 중심으로 돌게 됐던가. 정치나 경제 모든 것이 다 이 도서관과 관련돼 있는 걸까? 이 도서관 어딘가에 내일 신문도 있어서 그것만 잘 찾는다면 주식으로 큰돈을 버는 거나 축구로 도박을 하는 것도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 정보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나는 많은 일을 백작과 얘기하게 됐다. 백작에게 주변에 집요하게 달라붙는 사람들에 대해서 불평을 했다.
“차라리 당신이 좀 알려주지 그래요.”
“그건 규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찾은 빛은 진짜가 아닙니다.”
“네?”
“이것도 다 규칙이 있습니다.”
“빛은 어디에 나타날지 모르며,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모르나 ‘책’의 형태로 가장 최근에 나타났습니다. 카발리스트들은 그게 아인 소프라고, 태초의 빛이라고 주장하고, 마녀는 거기서 불로불사의 묘약을 구하려 하지요. 프리메이슨이나 성당기사단, 시온수도회, 장미십자단 역시 그 오컬트적인 사상의 기저가 될 비전을 원합니다. 로마 교황청은 그게 신 자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고 보니 종종 수단을 입은 신부들을 본 것도 같다. 그렇게 많은 어중이떠중이가 와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벨의 도서관이란 데 죽치고 앉아서 온갖 책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백작에게 결국 묻고 말았다.
“왜 하필 나지요? 나는 책만 보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왜 이 도서관에 올 수 있었던 걸까요?”
“모든 것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지요. 선아 씨는 둔하고 방향감 없고 잘 넘어지고 자주 아프고 하죠. 하지만, 대신 다른 메리트가 있는 셈입니다.
“그게 뭔데요?‘
“그건, 어떤 사람의 지도 없이 여기까지 이른 본능적인 힘이죠. 아마 사람들이 그렇게 선아 씨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 선아 씨의 그런 능력을 감지하고 그 덕을 보려는 거죠. 선아 씨가 알렙의 중심으로 본능적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그걸 낚아채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 건가요? 전 알렙에 별 관심 없고 이 도서관의 이상한 책들에 더 흥미가 있는데요.”
“바로 그런 마음이 선아 씨를 여기로 부른 겁니다.”
“알렙은 원초적인 지식 그 자체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끝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모두 그 끄트머리라도 잡기 위해서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데요?”
“결국 모든 것으로 소통하는 바로 그것이 있을 뿐입니다. 지식은 일종의 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알렙에 다다르기 위해서 수학을 하는 사람들은 페르마의 정리가 아마도 그것일 거라고 믿고, 뉴턴은 연금술에 몰두했지요. 뉴턴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은 아시죠?”
“성당 기사단은 아니었구요?”
“그는 샌님이라서 성당 기사단이 될 정도로 육체적으로 좋지 못했죠.”
나의 농담을 백작이 진지하게 받아쳤다.
“인도와 티벳에서는 지의 합일과 정신적 각성, 제3의 눈을 뜸을 모두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알렙을 영접했고, 예수는 황야를 떠돌다가 발견했지요. 그노시스트들은 정신적인 각성 없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경멸하고 그들의 사상은 알렙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카발리스트들은 역사상 제일 먼저 알렙을 발견한 자들이고, 그것을 자기네들의 알파벳에 채용했죠. 원래 그것은 알렙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지의 합일이지 뭐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라비 시몬 마구스(저 말입니다.)가 제일 먼저 그것을 사용했다 하지요. 동방박사들 같은 점성술사들은 그것을 별을 통해 예측이 가능하다고 믿기도 했지요.”
“백작, 백작은 어떻게 그 빛을 보았죠?”
“나는 그 빛을 보려고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사랑도 집도 재산도 부귀영화 지식까지 모든 걸 포기했지요. 그러고 나서 얻은 게 바로 그거였습니다. 영원의 빛을 보고 나서 그걸 다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알렙을 뒤쫓았습니다. 연금술에서부터 점성술까지 모든 비학에 능통해지고 유럽을 떠돌면서 심지어 아프리카와 신대륙을 떠돌면서 지의 합일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썼지요. 마치 노년의 파우스트 박사처럼 완전한 앎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지요. 그러나 말 그대로 파우스트 박사처럼 막상 빛을 보고 난 뒤에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에 나는 내가 버린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지 오히려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이젠 모든 게 다 부질없습니다. 사니까 사는 거지요. 혹시 황무지 기억나나요?”
“엘리엇의?”
“네. 그 황무지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아십니까?”
“아, 그 무녀 얘기요.”
“나는 그 무녀의 심정을 압니다. 신의 은총인 영원의 빛을 보고 불사가 되었지만 그에 한하는 무언가를 얻지는 못했지요. 신은 인간에게 완전함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빛을 통해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신은 그것마저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완전한 인간은 있었잖아요.”
“아담 카드몽이요? 그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가 이 초대 도서관장이었다고 한다면?”
“그도 영원의 빛을 보았나요?”
“그렇죠.”
“결국 인간은 땅에 묶인 존재입니다. 내 머릿속에는 세상의 모든 지혜가 이 도서관처럼 들어 있지요. 그러면 뭐하나요? 내 머릿속의 지혜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걸. 알면 모든 걸 알면 다 부질없지요. 나는 저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할지도 알고 백만장자가 되는 법이나 여자를 꼬시는 법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여자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알고 다음에 알렙이 어디에 나타날지도 알고 있어요.”
“왜 사람들에게 힌트라도 못 주는 것이죠?”
“줄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 알렙을 본 사람들의 설명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각성자만 아는 일종의 암호 코드라고나 할까요. 보통 평범한 사람의 뇌가 60년대 컴퓨터의 연산이라면 우리는 펜티엄보다 더 빠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알게 되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 같아요.”
그는 긍정의 뜻인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아마 그녀도 떠난 거겠죠.”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작은 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화제를 바꿔 버렸다.
“이 도서관과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의 상관 관계는요?”
“그 도서는 이미 여기에 다 와 있지만, 그 도서관을  본따 만든, 플라톤의 말에 따름 이데아라고나 할까요? 그것은 그림자입니다. 이 도서관의. 물리적인 형태의 도서관으로 정신적인 형태의 이 도서관을 따라가지 못해 사라지고 말았지요.”
“바벨의 도서관은요?”
“그것이 이것이죠.”
“이 도서관은 누가 만든 거죠?”
“알 수 없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미천한 하등동물 인간이랍니다. 도서관은 자가 생식을 하듯 점점 늘어나고 세상의 모든 문서들을 모아놓지요. 시온의정서부터 에멜랄드 태블릿까지 모든 게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넓은 도서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야 할 뿐이지요. 색인카드 같은 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온갖 언어로 된 수많은 책들이 인류의 보고라고 하는 문자로 된 모든 것들이 저절로 발이라도 달렸다는 듯이 몰려드는 이곳은 융의 표현대로라면 ‘인간 무의식의 보고‘지요.
인간은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기록은 무엇을 위해서 해야 했던 것일까요? 바로 지식을 위해서였죠. 원시 부족들은 주술사가 있었고 그들은 수많은 기록을 머릿속에 담아야 했습니다. 베이찡 원인은 죽은 자의 뇌를 먹어 그 지식과 지혜를 부족이 공유했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그 뒤에 원래 내재되어 있던 완전한 빛이자 지혜인 알렙을 놓고서 움직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게 우리 인간의 숙명입니다.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자연에의 합일을 바라듯, 지혜를 갈구하지만 지렁이의 뇌로 우주를 이해할 수가 없지요. 밤의 어둠을 낮이 알 리가 없듯이요. 우리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미천한 존재입니다.
알렙을 보고 난 뒤에 깨달은 절망 덕에 나는 불사불노가 되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도서관에 나 자신을 유배시키기 시작했지요. 알렙은 결코 좋은 것만 되지는 못해요.
당신은 현명합니다. 마치 요리책을 빌리러 왔다가 도서관에 갇혀버린 그 도서관 소녀처럼…… 나는 알렙을 찾아 헤매 그 발견에 성공했지만 결국 나 자신도 그 빛 속에 그 지식 속에 갇혀버린 셈이지요.”
백작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그는 도서관 소녀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우리의 희망이죠. 언젠가 여기서 나가게 될 거라는 희망, 지식의 감옥에서 탈출한, 알렙을 보았지만 그것을 잊은 자입니다. 그녀는 신을 기만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그녀가 도서관에 돌아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요리책을 빌리듯이 어느날 나타나서 이렇게 수다를 떨겠지요.”
백작은 흥분으로 몸을 떨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파우스트 박사처럼 마리안과 같은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죽고 싶습니다. 지옥이요? 악마가 와서 꼬신다면 단 1년이라도 사람답게 산다면 그렇게 살고 영원한 지옥불에서 고통을 받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사람이 아닌가요?”
“이미 내가 불사가 되어서 이 도서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이상, 누가 나를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결국 인간은 mortal이라는 한계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게 되어 신의 영역인 immortal이 될 때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게 아닐까요? 조지프 켐벨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어린 동물이 사랑스러운 것은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몸보단 머리가 크거나 귀가 크거나 한 동물의 불완전함에서 사랑스러움과 연약함이 나온다고요. 생명에는 유한함이 반드시 따라붙는 법이죠. 뱀파이어나 책벌레들이 아무리 이상한 족속이라고 해도 그들은 태어나서 살고 죽고 희로애락 모든 것을 경험하지요. 하지만 당시 눈앞에 서 있는 이 생제르맹 백작이라는 역사적 인물은 보고 들어도 느낀다고 해도 그 감각이 퇴색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밤에 우는 나이팅게일의 소리에도 가슴 두근거리고, 라파엘전파의 보석과도 같은 찬란한 색채에 열광하던 그런 시절은 이제 없습니다. 다시 오지 못해요. 이게 바로 살면서도 죽은 자요, 죽으면서도 산 자가 아니겠습니까? 알렙은 선악과지요. 먹을 때는 달콤하나 그 후에는…….”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열에 들뜬 듯이 장황하게 긴 얘기를 늘어놓은 그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고 도서관에 정적이 드리워졌다.
“이제 문이 닫힐 시간입니다. 어서 나가십시오.”
정중하게 한 마디. 나는 그 위압감에 가벼운 인사를 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는 그 후로 그렇게 긴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inkdr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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