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인사드리자마자 한 줄 써서 올려봅니다;;

가입은 했으니 왠지 올려야 될거 같에서 조급한 마음에 두들겼습니다. (으윽 시험기간인데 이게 뭔짓이야.)

꼴에 대하소설을 노린다고 처음부터 전쟁에 대해 휘갈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떡 소리를 들을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과연 어떤 평가를 들을까요?) 참 심장이 두근 거립니다;
으윽, 독사 녀석은 자기가 평균을 낮춘다고 하지만 전 당당히 꼴찌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뒤는 저에게 맡기시길!! (어라?)

그럼 시작 합니다 ^^
ps: 단편치곤 좀 깁니다;; 12폰트 A4용지로 21장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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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하늘이란 이름의 푸른 도화지에 하얗게 그려져 있었다. 태양의 빛은 하얀 구름의 과거의 행적을 읽듯이 그 밝은 눈으로 구름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늘에 그 날개를 적시는 새들은 햇빛사이로 새겨지는 구름의 일대기를 엿보려는 듯 창공에 그 날개를 펼쳤다.
        그러한 하늘을 비웃듯 대지에는 수많은 군대가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양측으로 나뉘어 진 십수만의 군대들은 산속에서 만난 두 호랑이들처럼 서로를 향해 살벌한 기세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살벌한 흥분을 공유하는 군졸들. 그러한 흥분을 더욱 고무시키는 하병들, 적당 이상을 넘어 흥분한 하병과 군졸들을 다그치는 중병, 그러한 중병에게 닥치라는 말을 건네는 상병. 전투 발발 직전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남측에 있는 13만 5천의 가서반군.
        북측에 있는 14만 8천의 지파인 원정군.
        가서반군은 자신들의 땅에서 싸우는 전투인데도 불구하고 그 기세가 지파인군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파인군은 여태까지 거의 연승이나 다름없는 승리를 쟁취해 왔었다. 지파인군의 드높은 사기는 질책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남방에 있는 가서반 본군에서 한 사내가 마상에서 지파인군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사내는 튼튼해 보이는 갑주로 몸을 두르고 있었다. 갈색 갑주와 은색 투구로 몸을 두른 이 사내는 주위의 기사(기마무사의 줄임말)들과는 달리 조금 더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이 가서반군의 지휘관이며 가서반의 국왕 제라디란 타무른 에스네드이다. 그는 수십 년을 전장에서 살아온 중년의 무사이자 왕이었다.
        허나 용맹을 떨쳐 온 왕이라도 지파인의 대대적인 공격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니, 그 살벌하고 흉흉한 기세와 모습은 용맹한 국왕의 목을 쳐버려도 될 만큼 대단했다.
        제라디란은 이를 악물었다.

        ‘죽일 놈들.’

        가서반의 왕은 외적의 평가를 그렇게 내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와 수많은 가서반군들을 죽이고 남의 땅을 빼앗았으니까. 그리고 그 평가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제라디란의 목적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제라디란은 외적들을 쳐죽일 것이다.          
        그러기에 제라디란은 고개를 돌려 주위의 기사들을 보았다.
        그 중 열 명 정도의 무사들은 왕에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있습니다, 한두 번 치루는 전투도 아니지 않습니까, 밥은 언제 먹습니까, 안 웃겼죠? 농담입니다, 등등. 여러 가지의 의미를 지닌 눈빛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왕의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수십 년간 해왔던 행동이라 왕은 오히려 과보호 받는 어린애 같은 기분을 느끼며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충성스럽게도 그것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제라디란에게 특별했다. 수십 년과 자신과 함께 싸워 온 전우들. 그들의 어깨에 쌓인 먼지와 몸에 입은 상처는 말로 못할 정도다. 어렸을 때의 치기와 단순한 낭만에 매혹되어 무인이 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변경에서 자신의 젊음을 버리고 그리고 자신의 왕과 함께 전쟁터를 누빔으로써 충성대신 전우애를 느끼는, 그들은 그러한 장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빠진 것에 대해 제라디란은 깊은 아쉬움과 후회를 느꼈다.
        
        ‘하이젤 노미스.’
        
        있지 않은 친우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얹으며 자신의 친우를 불렀다. 하지만 곧 그의 고약한 성격과 오만한 표정이 왕의 머리에 스쳐지나가자 왕은 살짝 미소를 지어버렸다. 허나 그 미소도 오래가지 못했다.

        ‘미안하네.’

        수십 년을 같이 해온 친우의 신의에 그는 왕관을 썼다는 오만함과 의심으로 그를 내쳤다.

        ‘자네를 내친 것에 대해 친구의 신의와 우정으로써 미안 하는 것일까. 왕으로서 대장군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에 사죄하는 것일까.’

        빌어먹을 왕관. 염병할 왕좌.
        제라디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후회를 해봤자, 자신의 과거에 대한 위선을 해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
        가서반의 왕은 자신의 친우이자 나라의 대장군이었던 사내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쉬움과 후회를 눈빛에서 지우며 다시 똑바로 자신의 무사들을 보았다.
        제라디란은 조용히 말했다.

        “제장들.”

        장수들은 미소를 지우고 엄격한 표정과 각오의 눈빛을 보였다. 국왕은 말을 이었다.

        “내가 할 말은 언제나 같을 것이다.”

        가서반의 용맹한 왕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라의 방패가 되고.”

        숨을 깊게 마신다. 다시 입을 연다.

        “민초들의 검이 되라.”

        이번엔 장수들은 난폭하고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자 왕의 얼굴 역시 큼지막한 미소가 지어졌다가 사라졌다.
        미소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제라디란은 허공을 베듯 단호하게 팔을 내렸다.

        “민초들의 검이여! 외적에게 짓밟혀간 사람들의 한을 되새기며 저들을 격멸하라! 중장기병대! 돌격-!!”


        지파인군 총사령관 라태오 다빈저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침략자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만 그들은 침략자의 광기와 욕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파인의 그 척박한 산지와 고원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산을 닮은 침묵을 좋아했고 정부, 정확히 말하자면 왕가의 노고로 인해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예의와 예절 정신이 투철했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더욱 많은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 나라이다.) 그리고 이 도덕정신 투철한 국가에서 살아온 이들은 이것이 성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성전을 위해 자신들이 봉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라태오 다빈저는 그들의 그 묵묵함 속에 있는, 성전에 대한 불꽃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자 싱긋 웃었다.
        그는 지파인 최고의 무장이라 불리우는 동시에 ‘북녘을 가리는 산’이라는 별호를 지녔으며 지파인 최고의 무사단 ‘북방의 거영(巨影)’의 단장이다. 가서반 침략군의 총사령관이었다.
        중년의 모습에 군자같이 인자함을 보여주는 그의 인상에 비할 데 그의 무장은 정말로 이질 적으로 보였으리라. 흉악하고 튼튼해 보이는 강철 갑주. 사람들이 보기에도 무서워 보이는 투구 위에 올려져 있는 철가면. 허리에 있는 것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날이 하나뿐인 지파인검이었다. 그의 군마의 마갑도 주인 못지않게 흉악하게 무장하고 있었으니, 철가면을 쓰면 그야말로 악마로 보일 것이다.    
        그러든 말든 그는 무장이었고, 덧붙이면 자국에서는 인자한 군자의 화신이었으며 적국(가서반)에게는 좋게 말해서 ‘살육에 미치고 전쟁에 환장한 악귀’라고 평가되는, 상반 된 평가를 몸에 지고 살아가는 이였다.
        양 어깨에 다른 평가들을 걸머지고 있는 무사는 부관에게 물었다.
        
        “적의 원군이 올 기색이 있는가?”

        부관은 재깍 대답했다.

        “없습니다, 총사령관님.”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그럴 리가. 그럼 별동대들을 격파한 부대는 어디 있단 말인가?’

        라태오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난 며칠간 지파인군의 적지 않은 별동대들이 정체불명의 부대 (규모는 물론 그것이 특정 한 부대인지 아니면 다수의 부대인지 알 수가 없었다.)에 의해 각개격파 당했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북녘을 가리는 산 라태오 다빈저가 어이없게, 정말로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적지 않은 부대가 박살났고 보고를 받은 라태오는 허탈함과 함께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기동 작전이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리고 보고를 받을 때마다 누군가의 이름이 그의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하이젤 노미스.’

        그만한 농간을 부릴 수 있는 이는 그가 알기로는 하이젤 노미스 밖에 없었다. 왕국의 전(前) 대장군이자 그의 숙적. 성질 고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 성격을 상회하는 전략전술을 몸에 지니고 있는 무장. 단 한번 검을 맞대었을 뿐이지만 단 한번의 일격은 그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때부터 여태까지 그들은 서로를 맞수로 인정하고 꿈에서조차도 그리워할 정도로 (“하이젤 노미스! 으윽, 내 앞에서 사라져!” “라태오 다빈저! 죽여 버리겠어!”라는 잠꼬대를 간혹 한다고 한다) 할 만큼 서로에게 크나큰 존재였다.    

        ‘자네인가.’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확실하지만 산발적이고 거기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전황에 영향을 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에 적을 분쇄하는 것을 즐기다시피 하는 하이젤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방식이었다.
        더욱더 신빙성이 떨어지게 하는 근거가 있었다. 첩보의 말로는 하이젤 노미스는 아직도 저 남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둘이 아닌 이상 그것은 하이젤 노미스가 아니었고 덧붙여서 그 정체불명의 부대의 위험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할 수는 있었다. 그러니 지금 저 왕의 군대를 격파하고 천천히 찾아서 그 부대를 격파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지금은 적의 국왕의 머리를 치는 것부터 생각하자.’

        인자한 인상 위에 잔혹한 눈빛이 빛났다. 싸울 때가 되었다.
        
        “한마디 하겠다.”

        주위의 무사들은 라태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위의 주목이 끌렸다고 판단되자 말을 이었다.

        “산에서, 고원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 묵묵히, 고독하게 살아온 맹수들이여.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욕망을 감추고 예의를 배운 자들이여.”

        무사들의 눈에 약간의 뿌듯함과 만족함이 서렸다. 라태오는 만족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허나 우리는 우리의 그 도덕과는 상반되게 남의 나라에 쳐들어와 남의 것을 빼앗았고 더 많은 것을 앗아가기 위하여 여기에 창칼을 들고 서있다.”

        모두가 잠시 불편해 하는 기색을 보이자 북녘의 산은 약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허나, 나는 사령관으로써 명령하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그런 죄책감을 버리라고.”

        지파인의 군자라 불리는 무사는 하늘을 보았다. 갑자기 저 하늘에는 그의 자리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명령으로 죄책감을 버려라. 그리고 버린 죄책감으로 인해 우리의 가족들이, 동포들이, 후손들이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라.”

        지파인의 사령관을 검을 뽑았다.
        스르릉. 가슴을 에는 소리와 함께 군자는 검을 뽑았다.
        자신의 죄책감을 베기 위해. 나라를 위해. 적의 검을 부러뜨리기 위해.

        “나라를 위해, 나의 동포들을 위해, 그리고 후손을 위해! 나아가서 나 자신을 위해, 검을 뽑으라! 중장기병대, 출격하라!!”        
        
        국왕과 무장의 명령과 함께 중장기병대들이 뛰쳐나갔다.
        종전력 1120년 . 왕국의 운명을 건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서반의 2만 중장기병이 창을 곧게 세워들고 적의 중앙을 향해 돌격을 개시했다. 철갑으로 무장 된 2만 기의 철기가 내딛는 발굽은 대지를 무너뜨릴 태풍처럼 격렬했다. 흔들리는 대지는 창공조차 흔드는 듯했다. 하지만 2만의 중장기병들은 흔들림 없이 곧게, 격렬하게 그리고 잔혹한 죽음을 선사하는 악마처럼 지파인 군을 향해 돌격했다.
         지파인의 1만 7천의 중장기병역시 말에 박차를 가했다. 곧게 뻗은 창. 쭉쭉 뻗는 말발굽. 의외로 흥분은 없었다, 마치 거대한 산처럼. 1만 7천의 중장기병은 마치 지파인의 산과 같은 위압감과 고요함을 뿜어내며 달렸다. 그것은 움직이는 산과 같았다. 비록 3천의 병력차가 있었지만 기세에는 결코 큰 차이가 없었다.
        창공을 격동시키며 달리며 태풍같이 돌격하던 가서반 중장기병.
        가공할 만큼의 위압감을 내뿜으며 산과 같은 묵직함으로 말에 박차를 가하던 지파인 중장기병.  
           도합 3만 7천의 병사들과 3만 7천 필의 말들이 그야말로 자연재해에 가까운 규모로 서로를 향해 격렬하게 부딪쳤다.

        제라디란은 이를 악물었다. 불가항력이었다. 자신들의 기병대가 적들의 기병대와 호각인 것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제라디란은 자신들의 무장들과 신료들을 보며 외쳤다.

        “3천의 병력 차에다 저들은 기마술이 한참은 부족한 지파인 기병들이 우리와 호각이라니. 말이 되지 않잖나! 도대체 훈련을 한건가 안한 건가!”  
        
        제라디란의 호통에 주위 신료들과 무장들은 침묵을 지켰다. 제라디란은 불쾌한 표정을 마음껏 그리며 전장을 주시했다. 그리고 사납게 외쳤다.

        “좌우의 경장기병에 타진, 적의 측면을 공격하라!”

        옆에 있던 무장 하나가 부복하며 그 명령을 전령에게 전했다.
        제라디란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가서반군 진형의 양익에서 두개의 경장기병 부대가 지파인 군의 양 측면을 향해 달렸다. 각각 8천의 경장기병들이 그 가벼운 무장으로 대지의 경쾌함을 그렸다. 마치 조용하지만 빠르고 매서운 고산지대의 바람과 같이. 1만 6천의 병력이 양측을 향해 달리자 지파인군에서도 대책을 내보였다.

        라태오는 부관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로 주위에 적은 없는 것인가.”

        “예. 위험할 부대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몇 개의 소규모 부대가 몇 십 킬로미터 밖에서 계속 이동 중이라 합니다.”

        “이동 중?”

        “예.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니 기만전술 같기도 하다고 하는 듯합니다.”

        라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젤 노미스가 일격에 격퇴하는 것이 특기라면 이 무장은 치밀한 계획과 확실하고 깔끔한 뒤처리를 즐기는 전략전술가였다.
        그런 그가 보아도 주위의 별 위험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바로 앞에는 적의 왕이 있었다. 그자만 쓰러뜨리면 전쟁은 승리다.
        가서반에서 경장기병대를 보내가 라태오는 그에 대한 무시무시한 대책을 보였다.

        “전군은 돌격하라!!”

        외침이 끝남과동시에 총사령관이 말에 박차를 가했고 지파인의 전군은 가서반군을 향해 거침 함성을 내뱉으며 돌격했다.
        10만이 넘는 대군이 한곳을 향해 가는 모습은 제라디란의 얼굴을 찡그리게 하기에는 그 이유가 충분했다.  

        제라디란은 전군을 돌격시킨 지파인을 보자 얼굴을 찡그렸다. 지파인군은 보병위주. 허나 그 보병은 최정예병. 험한 산을 평지 걷듯이 하면서 살아왔고 높디높은 고원을 안락한 보금자리로 생각하면서 훈련해온 군대들이다. 강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었고 맞붙으면 이쪽에서 승산이 없다.
        제라디란은 주위를 보며 다급히 외치며 자신들도 말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도 돌격. 궁수부대를 전진배치 하라!”

        왕의 명령대로, 가서반군은 전군돌격을 개시했다. 역시 10만이 넘는 가서반 군대도 지파인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궁수부대들은 대군의 틈을 헤치며 급하게 뛰었다. 그때마다 시시각각 지파인의 선진은 달려오고 있었다.

        2개 국가 출신의 약 4만에 육박하는 중장기병들은 살이 튀고 피가 튀는 싸움을 벌였다. 가서반 중장기병과 지파인 중장기병들은 서로의 틈을 노리고, 서로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한 신경전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살벌하게 벌였다.
          격돌 초기. 가서반, 지파인 두개의 기병부대는 종으로 (북쪽을 위로 남쪽을 아래로 볼 때) 넓게 퍼진 직사각형 모양으로 격돌했었다. 하지만 그 모양도 지금은 거의 가느다란 횡선이 되어버렸다. 서로의 측면이나 후방을 노리려했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그 지파인이 전군 돌격을 감행하자 그 전투도 오래가지 못했다. 가서반의 중장기병은 후퇴를 결정했다. 더 이상 같은 중장기병들에게 발목 잡히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1만 8천이 조금 안되게 줄어든 가서반 중장기병들은 무리하게 말머리를 돌렸다. 적을 앞에 두고, 아니, 뒤로 두고 등을 보이는 것은 결단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가서반 중장기병들이 후퇴를 결정하자 지파인의 기병들은 그 틈을 노려 자신들의 창과 검을 박아주며 그 뒤를 쫓았다. 결코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듯이.
        그 모습에 제라디란은 이를 물었다. 중장기병들의 싸움은 큰 의미가 없다. 아무리 지금 저들의 중장기병과 이쪽의 중장기병의 싸움이 호각이라도, 실력은 확실히 이쪽이 우위다. 그렇기에 가서반 중장기병은 지파인의 중장기병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노리기 위해 빠지는 것이다. 물론 너무 큰 욕심이 될 수도 있는 것이 그 단점이지만. 결국 가서반 중장기병들은 쓸모없는 싸움을, 지파인 중장기병들에게 발목이 묶이게 되었다.  
        쓸데없이 당하는 중장기병을 보며 제라디란은 말에 박차를 가했다. 더 이상 중장기병들의 희생이 그에게는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거기다 앞서나간 경장기병들도 적의 측면을 노릴 수 없는 것이 지파인 경장기병과 중장보병들이 자신들이 놀고만 있지 않는다는 듯 양익에서 뛰쳐나와 그들의 진로를 차단해버렸다. 자신들의 기병들이 적지 않은 시간동안 묶이게 된 것을 판단한 제라디란은 초조함을 느꼈다. 과연 저들의 보병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의문이 커지면서 적들의 모습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적지 않는 지파인군들의 투구와 철가면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일 때,
        2개 국가의 병력들은 산을 뽑아 던질 듯한 기세로 격돌했다.        
        

        선두부대의 중장보병들이 엄청난 기세로 격돌하자 궁수부대들은 제자리에 멈추며 활에 화살을 쟀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자신들이 신중하게 고른 첫 화살을 겨누었다. 오랜 훈련과 함께 단련 된 감들은 자신들이 어딜 노려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명령과 동시에 시위 튕기는 소리가 거문고처럼 나고 수천의 화살이 적의를 가진 강철의 이빨이 되어 하늘을 향해 날았다. 하늘의 최정상에 도달하지 못한 아쉬움을 바람 가르는 소리로 신음한 화살들은 그 한을 풀 듯, 지파인군의 머리위로 가차 없이 떨어져 그 날카로움을 시험했다.
        적지 않은 병사들이 화살에 상처를 입고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선두부대와 본대 사이에 있던 병사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자 라태오는 부지불식간에 외쳤다.

        “선두부대에 전달, 밀착하라! 그럼 활은 못 쏜다! 경장기병에게 전달, 적의 경장기병대는 내버려두고 적의 양익을 제압하라고 하라! 중장보병에게 전달, 적 중장기병들을 공격하라!”  

        지파인군들이 가서반의 궁수부대를 봉쇄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제라디란은 이를 더 세게 물었다.

        “곧 죽어도 궁수부대는 사수하라고 전하라! 보병들은 방패가 되고 궁수부대는 칼이 된다!”
        
        왕의 명령에 중장보병들과 경장보병들은 궁수부대의 방패가 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곧 가서반 보병들은 달려드는 지파인 보병들을 상대로 사력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훈련이 덧없었음을, 지파인 보병들의 강함만을 맛볼 수밖에 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라태오는 경장보병에게 똑바로 돌격을 명했다. 적들의 중장보병이 있는 곳으로. 그러자 수만의 경장보병부대는 가서반 중장보병을 향해 똑바로, 그리고 가벼운 무장 때문에 다른 보병들은 낼 수 없는 속력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장기병들을 사이게 끼고 싸우던 지파인 중장보병들은 둘로 나위어져 적의 좌우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경장보병이 들어서 가서반 중장보병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제라디란은 전력으로 달리는 지파인 경장보병을 보고 경악했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중장보병을 향해 온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어쨌든 궁수부대에게 지파인 경장보병을 향해 사격하라고 명하려했지만 경장보병들은 이미 중장보병들과 대치하기 시작했고 단지 경장보병부대의 후열만이 뒤에 처져있었다.

        ‘경장보병으로 중장보병을?’

        처음에는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적의 경장보병이 꿋꿋하게 버티자 초조해졌다가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지파인 경장보병들은 완전 무장한 가서반 중장보병을 상대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론은 중장보병들은 경장보병들을 격파하기가 힘들다는 결론이 나와 버렸다. 가서반의 중장보병을 상대로 그들을 묶어버렸다. 가서반 중장보병들은 황당한 심정으로 경장보병들을 격파하려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둘로 나누어진 적의 중장보병부대가 믿기지 않는 속도로 달려가는 것을 제라디란은 잠시 놓쳤다. 지파인 중장보병들은 궁수부대가 뿌리는 화살의 빗속을 우직하게 헤치며 치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가서반 군대 양익에 있던 경장보병들과 마주치며 공격하자 제라디란은 경악해버렸다.  
        아군의 중장보병과는 달리, 지파인 중장보병들은 닥치는대로 경장보병들을 격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익을 형성했던 경장보병들은 서서히 밀리다가 이제는 중장보병들에게 포위를 당할 수도 있다.
        잠깐, 포위?
        저들이 노리는 것을 알자 다시 경악했다.
        저들은 중장보병을 우회하여 자신들을 포위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경장보병들의 힘과 중장보병들의 기동력. 그것으로 이번 전쟁의 상황은 결말이 나버렸다.
        

        각지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흐르는 피, 그리고 쓰러지는 시신들의 주인들은 대부분 가서반군의 것이었다. 가서반군은 자신들의 생명을 조국의 땅에서 흘리며 결사적으로 싸워도 이 전투는 지파인군의 보병이 왜 최강인지를 알려주는 단순한 전투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지파인군들의 중장보병과 경장보병들은 가서반군들의 중장보병과 경장보병들을 순식간에 압박했다.
          경장보병들은 쓰러지거나 밀리거나 혹은 둘 다를 행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비록 궁수부대들이 화살을 날리며 상대편을 압박했지만 이미 지파인 보병들은 제라디란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가서반 보병들과 한 덩이가 되어버려 활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전투는 이제 보병들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가서반의 방어선과 최전방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줄어들었다.


        각지에서 전해오는 구원요청에 제라디란은 퀭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이미 전투는 패배했다. 대패였다. 그리고 이 전쟁도 패배다. 가서반은 멸망의 길에 그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제라디란의 눈에 힘이 없어졌다.

        ‘희망이 없는 건가.’

        지금 상황에서의 희망은 기적과 그 의미가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그 의미대로나 제라디란의 바람대로나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조상이시여 죄송하나이다.’

        저의 대에서 에스네드가(家)가 끊깁니다.
        
        ‘나를 따르던 자들이며 미안하도다.’

        하지만 사죄할 방법도 없었다. 치욕과 굴욕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저들에게 사죄할 수는 없었다.

        ‘가서반이여 너를 멸국으로 만든 나를 용서해다오.’

        나의, 우리들의 나라여.
        제라디란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져 나왔다.
        스르릉.
        주인의 손길에 이끌려 나온 검은 주인의 탄식과 주인의 희망 없는 의지에 그 빛이 바래보였다.
        그리고 왕은 노래를 불렀다.

사랑에 지쳐 헤어지고 추억에 지쳐 잊는다.
나의 노래는 잊혀진 추억 속의 사랑인가.
나약함에 지쳐 검을 들고 삶에 지쳐 죽는다.
나약함을 베기 위해 든 검. 삶과 죽음은 나와 함께.
증오에 지쳐 복수하고 슬픔에 지쳐 눈물을 흘린다.
복수의 쾌감은 없다. 오로지 허탈한 슬픔의 눈물만.
공포에 지쳐 비명을 지르고 즐거움에 지쳐 웃음을 터트린다.
웃음이란 즐거움의 비명은 공포를 물리노라.

        노래의 끝과 함께 왕은 미소를 지었다.

        “도망칠 자는 도망치라.”

        “전하!”

        “싸울 자는 싸우라.”

        “전하! 안 됩니다!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전하께서만 계시면 이 전쟁의 승기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한 신료가 그렇게 말하자 가서반의 국왕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분명 목전에 나라를 잃는 것을 보는 왕의 미소였으리라. 하지만 그의 입은 거짓을 토했다.

        “그 희망을 향해, 난 이 전투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제라디란은 마음을 다잡았다. 제라디란은 검을 고쳐 잡았다.

        “희망은 항상 눈앞에 있는 법. 지옥의 벌판 속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침착하면 악마의 보물도 얻을 수 있는 법. 난 희망을 찾기 위해 지옥의 벌판을 달리겠다.”

         그러자 몇몇 호쾌한 무관들도 미소를 지었다.  한 유쾌한 무장이 호기롭게 외쳤다.

        “좋습니다! 전하! 까짓 거, 젊었을 적으로 돌아 가보죠! 나약함을 베기 위해 든 검, 삶과 죽음은 나와 함께!”         

        제라디란은 호쾌하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하하! 좋아! 하지만 난 아직도 젊은데?”

        “폐하, 감히 여쭙겠나이다만, 태자 전하의 혼인식 치룬지도 꽤 되었습니다만?”

        “으윽. 그랬나. 어명이다! 난 젊어!”

        “젊으신 우리 전하. 그러면 소장은 코흘리개입니까?”

        “…전투 끝나고 얘기하겠다.”

        “예이. 그럼 가자!”

        “이제는 나대신 명령하는 거냐! 역모다!”

        몇몇의 무장들이 통쾌한 외침으로 유쾌한 장수에게 동조함으로써 역적가담에 손을 거들어버렸다. 역적이라고 부르짖으려던 제라디란은 멋쩍게 웃었다.

        ‘죽음은 쓸쓸하지 않겠군.’

        가서반의 국왕은 모든 것을 버렸다. 왕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내일을 위한 희망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버렸다.
        단순한 제라디란 타무른 에스네드가 되어. 전장을 누비며 피로 피를 씻고, 검을 맞붙이며 적을 꺾고, 마상에서 세상을 호령하던, 단순한 무인이 되었다.

        “자, 가자!”

        “자, 잠깐!”

        그 유쾌한 무장은 더듬거리며 왕의 마지막 돌격을 제지했다. 기분이 유쾌했던 왕은 삽시간에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짜증어린 목소리에 유쾌한 무장은 멍청이가 되었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손가락을 들었다. 그 손가락을 유심히 보던 왕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그 손가락이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자 그곳을 보았다.
        지파인의 군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가서반군을 철저히 학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파인의 군 후방에, 북방의 지평선 위에 한 기사가 있었다.
        
        
        한 사내가 마상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전쟁의 어리석음을 보는 듯한 고귀한 은자의 자세 같았다. 허나 곧 그는 기세를 바꾸어 전쟁에 분노하는 무사가 되었다. 그리고 금방 전장을 향해 말을 몰았다. 전력질주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말을 모는 다른 기사가 나타났고 곧 그 기사는 기사들이 되었고, 기사들은 무수한 기사들이 되었다가 수천, 수만 기의 기병대가 되었다. 기백과 숫자로 대지를 격동시켰고 북방의 하늘을 농락하는 그것은 인마의 파도였고 마치 지평선에서 기병대를 쏟아내는 마술같이 보였다.
        허나 그 기병대를 유심히 보던 왕은 절망했다. 적의 원군인가, 아군을 도울 원군 같은 것은 없으니까.

        “적의 원군인가!”

        무장들은 그 소리를 듣자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쾌한 무장은 특별히 좋은 시력을 지녔는지 목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군입니다! 저 자를 보십시오!”
        
        유쾌한 무장은 앞장 서 달리는 기사의 얼굴을 보았다.
        철가면에 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확실했다. 갑주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들. 십자가로 그렇게 치장하는 이는 세상에 단 한 명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외에도 모든 기사들이 십자가를 갑주에 새겨 넣고 장식했으니까. 허나 이렇게, 적절한 때에 십자가로 치장한 기병대를 끌고 올 이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유쾌한 무장은 환희 가득한 얼굴로 유쾌하게 외쳤다. 아마 그 목소리는 그가 태어나서 제일 유쾌하게 외친 목소리일 것이다.

        “하이젤 노미스입니다-!”

        제라디란 타무른 에스네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적을 본 사람의 얼굴을 지었다.
        

        지파인군의 후방에 나타난 군대는 엄청난 속도로 똑바로, 지파인군의 후방을 향해 달렸다.
        얼추 2만 기의 기병과 3만의 보병으로 이루어진 그 군대는 지평선을 감추며, 지평선을 밟으며, 지평선에서부터 뛰쳐나왔다. 정오의 태양을 향하며 햇빛의 홍수를 몰아넣으며 잔혹한 살의를 불태우며 달리고 있었다.
        5만 가서반 원군. 그 모습은 가히 희한하면서도 품위 있었고, 웅장하면서도 조잡해보였다.
        깃발에는 십자가 모양의 검이 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창의 창날은 윗부분이 길쭉하고 좌우로 곧게 뻗어진 창날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모든 군사의 갑주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고 그들의 창, 칼, 대도, 부월 등등, 모든 무구에는 십자가를 닮았다.
        가서반의 십자산맥을 의미하는 십자가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하이젤 노미스가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십자가 모양의 검, 십자검이 메어져 있었고 그의 손에는 십자창이 쥐어져 있었다. 푸른 전포, 흰색 투구, 붉은 갑옷. 그리고 투구와 갑옷에는 십자가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안면은 철가면을 두르고 철갑으로 무장한 군마를 타고 달린다.
        가서반 마지막 희망이자 진정한 왕국의 방패, 민초의 검 하이젤 노미스는 외친다.

        “2번 중장기병! 3번 중장기병! 우회하여 적의 우방을 쳐라!  4번, 5번 중장 기병! 적의 좌측을 후려갈겨! 1번 중장기병은 나와 함께 간다!”
        
        하이젤은 자신의 십자창을 힘 있게 쥐었다. 그리고 그의 명령대로 중장기병들은 적의 좌측과 우측을 공격하기위해 달렸다. 두 무리의 중장기병들은 마치 뻗어나가는 양팔처럼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양팔들은 지파인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조금 뜸해졌던 살육의 불꽃이 이번에는 반대쪽을 향해 거칠게 피어오른 순간이었다.

        하이젤의 중장기병들이 좌측과 우측에 격돌했다. 총 병력 1만 6천. 좌우를 향해 각각 8천의 중장기병이 강력한 운동력과 무게를 칼로 삼아 부딪힌 것이다.
        그리고 하이젤의 본대가 정면으로 부딪히자 그 여파는 확실했다. 중무장한 말들이 사람들을 짓밟고 기병들은 맺힌 한을 풀 듯 신나게 자신들의 병기를 휘둘러 가는 길마다 유혈의 질풍을 만들었다. 지파인군의 후방에 있던 부대들은 주로 보병들로 보병이 기병을 상대하는 것은 어불성설,(그것도 기병들은 돌격 중이었다) 거기다가 후방에는 변변한 방어시설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몸을 보루나 목책 삼아 기병대를 상대해야했다. 지파인군에게는 우울했지만 하이젤의 중장기병들은 충분히 즐거웠다.



        하이젤은 고함을 질렀다.

        “전군에게 전달! 하이젤이 왔다고 외쳐라! 전달! 하이젤이 왔다고 외쳐라!”

        더 이상 자신들이 하이젤의 부대가 아니라고 숨길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자신들이 하이젤 노미스의 병사들이라고 주장해야만 했다.
        전령들은 명령을 받고 각 부대에 달렸다. 그리고 명령을 받은 하이젤의 부대들은 동시에 외쳤다.

        “하이젤 노미스! 하이젤 노미스! 하이젤 노미스!”

        수만의 군대는 한 사람의 이름을 외쳤고 수만의 지파인 군대는 적의 군대보다 그 사람의 이름에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지파인 군대들은 혼이 빠진 모습을 보이며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보병대들은 격파되다 못해 말 그대로 가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최전방들은 점점 더 좁아졌고, 후방과 본대의 간격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허나 하이젤의 기병대들에게는 이 참상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었기에 그들은 단 한마디만, 단 한 사람의 이름만 외쳤다.
        
        “하이젤 노미스! 하이젤 노미스! 하이젤 노미스!”

        그것은 천국을 갈망하는 악마의 외침이었고 지옥을 분쇄하는 천사들의 목소리였다.


        1만 6천의 중장기병들이 돌격하며 적들을 부수자 3만의 보병들은 반으로 갈라져 우회하기 시작했다.
        말보다는 느려서 적지 않은 시간을 달린 다음, 가서반 군대와 격돌하는 보병들의 허리와 뒤를 치기 시작했다. 하이젤의 보병들이 공격하자 순식간에 앞뒤로 포위된 지파인 군대들은 드높은 사기에 밀려 쓰러지고 피를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도 악마의 갈망하는 목소리와 천사의 분노에 찬 외침으로 부르는 한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하이젤 노미스! 하이젤 노미스! 하이젤 노미스!”

        1만 5천으로 갈라진 부대들의 외침은 마치 150만의 가서반 국민들의 외침이었고 그 외침은 기세가 꺾였던 가서반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세는 거짓말같이 올라갔고, 그들도 복수의 눈빛으로 자신들과 하이젤 보병들의 사이에 끼인 적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반격의 때가 온 것이다.

        
        한 중장기병 부대는 지파인 본대를 향해 직선으로 곧게 선을 그리며 거침없이 빠르고 날카롭게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하이젤 노미스가 있었다.
        하이젤 노미스, 선두에 선 전직 대장군은 바람같이 달리며 자신의 십자창을 마음껏 뿌렸다. 그 긴 창을 마치 평소에 다루던 장검 다루듯이 편한 모습으로 다루며 적을 베어 넘겼다. 인정사정없이 휘두르고 치고 비틀고 찌르는 그의 십자창에 지파인의 병사들은 피를 뿌렸고 그를 막은 자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후회해야했다.
        십자창을 한 번 거칠게 휘두르자 한 지파인 병사의 가슴이 베어내며 창자루로 자신의 옆에 있던 또 다른 지파인 병사의 목을 찔렀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하이젤의 전방을 한 용감한 장교가 장창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왔다.
        그 장교는 하이젤이 누군지 모른 채, 그저 적장임을 알아보고는 용감하게 외쳤다.

        “적장은 이름을 대라!”

        ‘지겨운 놈들. 전장에서도 그놈의 예의를 따진단 말이야. 툭하면 쳐들어오는 주제에. 하여튼, 예의를 가릴 데, 안 가릴 데를 구분하지 못한단 말이야.’
        긴 생각을 끝낸 전직 대장군은 자신의 장창을 왼쪽으로 뿌리며 적장의 장창을 튕겨내었다. ‘젠장 망했다.’라는 상념과 함께 무력하게  튕겨나간 자신의 창의 끝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그곳엔 하이젤의 뒤에 있던 중장기병의 날카로운 창을 들이밀고 있었다.
          하이젤 노미스는 자신에게 용감하게 덤볐던 이름 모를 적장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만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적군을 제압하자 잠시 멈춘 하이젤은 눈을 부라리며 주위를 보았다.
        지파인군은 가서반군과 자신의 부대에 끼여서 압박당하고 있었지만 적들을 격파하려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들것이고 자신들의 피해도 클 것이다. 거기다 자칫하면 다시 반격을 당할 수도 있다.

        ‘빌어먹을, 역시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단 말씀이야.’

        그것을 막는 것에는 방법은 하나였다.

        ‘라태오. 그 썩을 놈 하나면 끝이다.’

        생각의 끝과 함께 하이젤은 벽력같이 외쳤다.

        “다-레빌! 라-이켄드!”

        그러자 지파인 보병들을 압박하던 중장기병의 무리에서 두 명의 기마무사가 하이젤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 명은 날카로운 턱 선과 눈매가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영웅의 기세와 야차의 난폭함이 반 쯤 섞여있었다. 하이젤의 모습을 거의 닮은 청년이었다.
        그의 이름은 다레빌 크루크드다.
        또 다른 기마무사는 제법 우람한 덩치에 순해 보이는 얼굴을 지닌 청년이었다.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의 눈빛에는 겁이나 번민 같은 감정 따윈 없었다.
        라이켄드 크루크드. 다레빌의 친동생이다.
        다레빌은 피에 젖은 검을 휘둘러 피를 뿌리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스승님.”
        
        덧붙이면 하이젤 노미스의 제자였다.
        라이켄드도 자신의 검을 한 번 뿌리며 물었다.

        “급한 겁니까요? 아, 그리고 전에 저희들 너무 과신하지 마십시오.”
        
        전쟁에서는 보기 힘든 여유 만만한 모습이었다. 하이젤은 길게 말할 것 없이 간단하게 말했다.

        “난 네놈들 과신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다. 어쨌든 난 적의 머리를 노린다. 너희들이 무엇을 할지는 알겠냐?”
        
        다레빌은 난폭한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끼리 한 판 붙고 싶으신 겁니까? 핫! 염병할. 혼자서만 제일 멋진 역할을 하시려고요?”

        라이켄드는 지파인군쪽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제법 많은데요? 그걸 저희가 다 막으라고요? 쳇, 제자를 죽일 생각입니까? 그리고 이런 짓 시켜먹으라고 끌고 온 겁니까?”

        하이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값은 해야지 자식들아. 어쨌든 맞다. 적 지휘관의 목을 따버릴 동안 너흰 방해하는 놈들의 목을 따버려라.”

        다레빌과 라이켄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보죠!!”

        “기대에 부흥하도록 하죠!”

        하이젤의 두 제자는 다시 중장기병의 무리에 합류한 다음, 자기들의 부대를 이끌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가서반의 전직 대장군은 싱긋 웃으며 말머리를 돌리고 박차를 가했다.
        
        ‘자, 이제 우리들의 시간이다. 빌어먹을 숙적놈아-!’

        이제 본격적인 시간이었다.


        지파인군 총지휘관 라태오 다빈저는 이를 악 물었다.
        난데없는 적 원군의 출현은 그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전쟁터의 근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오늘 아침까지, 아니, 전투 직전만 하더라도.
        전투의 승기가 그에게 넘어가고, 주위에는 위험 요소가 안 보이자 그의 마음에는 자신감과 안도감으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하이젤 노미스는 그 자신감과 안도감을 위험한 오만함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마 이때를 기다렸으리라. 주위를 오락가락했던 소규모 부대들은  자신들의 배후를 공격하는 부대들을 감추던 부대이거나 아니면 배후로 급히 돌아가던 부대였으리라. 자신이 거의 승리해가서 마음이 흐지부지해가는 이때를 말이다. 그리고 하이젤 노미스는 오만해진 마음을 지닌 라태오의 뒤통수를 통쾌하게 쳤다. (라태오는 투덜거리며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왠지 아픈 거 같았다.)
        라태오는 가서반 왕의 목을 치는 것은 뒤로 미루고 하이젤을 상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진심과 경의를 담아.  

        “중장보병들은 나를 따르라!”

        북녘을 가리는 산, 라태오 다빈저는 말의 배를 차며 하이젤 노미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이젤과 그의 중장기병들은 휘젓다 시피하며 지파인군을 다시 유린해갔다.
        갈대숲에서 미쳐 날뛰는 사나운 말처럼 난폭하게 지파인 보병들을 짓밟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이젤은 지파인 중장보병들이 밀집대형으로 창을 들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이젤은 이를 물며 중장보병들의 선두에서 오고 있는 기사들을 보았고 수십 기의 기사들보다 선두에 있는 중년의 무사를 보고는 웃음을 지으며 십자창을 던지고 자신의 십자검을 뽑았다.
        십자검을 뽑는 숙적을 바라보고 있던 라태오는 빠른 속도로 다가가며 외쳤다.

        “신벌의 십자검을 뽑다니! 신의 대행자 흉내라도 낼 생각이던가!”

        바람과 같은 질주 위에서 하이젤도 지지 않고 외쳤다.

        “신벌의 십자검을 보고도 덤비는 놈에게 그런 소리 들을 생각은 없다! 곱게 뒈져버려!!”

        라태오는 껄껄 웃었다. 조금 더 거리가 가까워지자 기세를 누르기 위해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럴 수는 없다! 자네야말로 곱게 내 검을 받게!!”  

        서로의 철가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침묵을 얼싸 앉고 영원한 수면이나 취해라!”

        조용히 죽으라는 말을 조금 우아하게 말한 하이젤은 난폭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미소에는 굳은 표정의 가면을 써 지워버리고 손에는 경의와 잔혹한 살인욕구를 그들의 검에 담았다. 손목을 몇 번 비틀어 각오를 다지고 맹수의 눈빛으로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마침내 거리가 서로 악수를 해줄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한 순간,  
        가서반의 대장군과 지파인의 명장은 그야말로 사람을 뛰어넘고 심지어 군대를 뛰어넘어 2개 국가의 기세로 서로에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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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버리면서 읽어주신분께 감사합니다 (꾸벅)
댓글 6
  • No Profile
    배명훈 06.08.23 13:58 댓글 수정 삭제
    오, 역시 우회기동만이 결정적 승리를 보장한다는 입장이시군요. 그런데 기병은 양익이 아니라 1선에 배치되어 있었나요? 중세식 기병 돌격에, 마케도니아식 우회 기동까지. 보병들도 로마 보병만큼 잘 싸우고. 산악 민족 중장보병이라면 스위스 용병이 모델일까요? 적 주력에게 후방을 내 주고도 붕괴되지 않을 군기라면 역시. 그냥 쓱 쓴 게 아니라 꽤 정교하게 쓴 전투장면이군요. 진짜로 대서사시에 쓸 수도 있을만한데.
    음, 그런데 이 소설의 스토리 라인은, 뭘까요?
  • No Profile
    JustJun 06.08.23 14:20 댓글 수정 삭제
    아, 부대 배치를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말못할 (허나 누구나 다 알) 이유로;
    저 지파인은 그러니까, 일본과 스위스를 약간 조합한 국가입니다. 산지와 고원에서 살기에 말이 엄청 부족하죠. (진술하진 않았지만 저 지파인의 1만 7천의 기병은 국가에서 보유한 절반 가량입니다) 하지만 산지와 고원에서 살아서 보병들이 강하다, 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라인은,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학교라;;
  • No Profile
    배명훈 06.08.23 15:48 댓글 수정 삭제
    그렇군요. “적장은 이름을 대라!”는 역시 일본...
    보통은 병력 조합이나 배치가 그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는데, 대하드라마라면 그 부분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 문제. 사람의 문제.
  • No Profile
    JustJun 06.08.24 09:25 댓글 수정 삭제
    아, 조합이나 배치가 사회의 구조를 반영할 수 있죠. 하지만 제 소설에는 주 배경이 되는 가서반과 그리고 지파인을 포함하여 2개 국가가 더 있습니다만, 그 국가들의 병력 조합이나 그런 것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저 약간의 특수 병과나 보병, 기병, 궁병의 차이?

    그리고 이건 하이젤 노미스라는 캐릭의 전용 사이드 스토리입니다. 하이젤 노미스를 설명하기 전에 잠깐 제 소설의 주인공을 살짝 설명하겠습니다.
    제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은 다레빌 크루크드(위에 나와 있죠? 잠시 나왔다 사라진 하이젤의 제자입니다)의 제자입니다.(간단하죠?) 고로 하이젤은 주인공의 사조이고, 본편에서는 나이가 꽤 먹었다는 설정입니다.

    이건 단지 하이젤 노미스를 편애해버려서 두들겨버린 겁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스토리가 있지만 아직 두들기지 않아서;; (그러고보니, 이러다가 하이젤 노미스만 두들기는 거 아닌가 몰라?)

    이 이외에도 몇개의 전쟁 시나리오가 있지만, 그것은 본편과 관련된 것이고, 단지 전쟁 장면만 두들겼기에 올릴만한 것이 아니라 감히 올릴수가 없을 거 같군요 (이 사이드 스토리도 처음 보는 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서 두들긴 거고요.

    정성껏 써주신 리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남들한테 보여주는 건 이번이 두 번째라 하하하)
  • No Profile
    '젠장 망했다'라니, 네녀석 말버릇 나오는 구나~.

    전쟁에서 어김없이 병사들이 무엇보다 갈망하는, 혹은 병사들을 무엇보다도 기쁘게 하는 것은 역시 'reinforcement'라는 말 한마디겠지.
  • No Profile
    JustJun 06.09.01 09:06 댓글 수정 삭제
    '젠장 망했다'라는 건 나도 모르게 본능으로 넣어버렸지.
    구원병이라는 거 (한글로 써줘! 제발! 그런 어려운 단어 따위 내가 알거 같냐!!)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뭐랄까 마지막 반격 수단이자 마지막 난관이라고 할 수도 있지.
    뭐 가끔은
    "구원군이 왔다! 기운 내라!!"
    "재들도 포위됐는데요?"
    "젠장 망했다!"
    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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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019 단편 암브와트: 영혼의 상자5 도토루 2011.03.23 0
2018 단편 잘 가시오, 외계인이여.3 쿠키 2006.10.25 0
2017 단편 [심사제외]가스통 할배2 니그라토 2014.01.24 0
2016 단편 네 번째 이벤트 - 음악입니다.2 mirror 2004.04.25 0
2015 단편 [꽁트?]어느 연구실의 풍경 - 카이미라2 미소짓는독사 2006.10.18 0
2014 단편 어느 베트남 새댁의 눈물 들국화 2011.01.20 0
2013 단편 201212214 dcdc 2009.12.21 0
2012 단편 옆집 남자2 異衆燐 2007.02.19 0
2011 단편 초콜릿담배 김영광 2012.02.05 0
2010 단편 덮어씌우기 강민수 2011.12.14 0
2009 단편 불을 껐다 켰을 때2 3.54 2012.11.15 0
2008 단편 영원한 체제2 니그라토 2012.11.09 0
2007 단편 [탄생] 6시간 21분 32초 헤르만 2012.03.04 0
2006 단편 괴물의 꿈 다담 2005.06.05 0
2005 단편 나는 니그라토다 [intro]1 뫼비우스 2014.03.08 0
2004 단편 우리 공장장님 니그라토 2013.10.06 0
2003 단편 어느 심사평 바닐라된장 2013.03.08 0
2002 단편 성형외과가 사라졌다. 하늘깊은곳 2010.03.02 0
2001 단편 길거리 유행을 따라가는 법1 KeR 2004.11.16 0
2000 단편 [번역] 아마릴리스호 - 캐리 본2 이형진 2011.06.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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