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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prologue

2006.02.14 15:1302.14

건물 위에 있는 치안유지시스템은 불한당으로부터 무고한 시민들을 지켜주고, 은빛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통일의 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앗! 내가 이 말을 하고 있는 중에 새 한마리가 치안유지시스템의 공격을 받고 떨어졌다. 새가 떨어진 곳에서 10m정도 되는 곳에 새똥이 철푸덕 아스팔트에 붙어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둥근 환경미화로봇이 나타나 똥을 급속건조시켜 떼어내고 새의 주검과 흩어진 핏자국을 지우고 있다.


새가 사라지고 약간의 물자국밖에 남지않은 도로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오로지 자동차만이 엄청난 속도를 내며 수증기냄새와 함께 사라질 뿐이다. 간간히 부딛친 고양이들이 환경미화 로봇에 의해 끌려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이곳 사무지역에서 약 5km정도 덜어진 곳에 주거지역이 있다. 엄청난 인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아파트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곳곳에 '지어진'나무의 잎에서는 나노필터로 걸러진 산소가 세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흙은 찾을 수 없다.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놀이터에는 특수 우레탄 메트가 두껍게 깔려 아이들을 보호한다 하였으나, 한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는 사건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들 덕에 폐쇠되고 말았다.

희미한 인간의 냄새를 따라 아파트의 나들문에 서면 회사의 사려깊은 조치로 위쪽의 카메라가 첫번째로 방문자의 얼굴을 확인하여 중앙통제장치로 보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지문을 통해 그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고, 현관 문 앞의 안면근육/홍채 인식장치로 집 주인인지, 집 주인의 출입허가를 받은 자인지 확인 한 뒤에 집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자기방 안의 아이는 감시카메라가 켜진 자신의 방 안에서 컴퓨터를 통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는 더욱 편한 환경에서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학교가는 수고를 덜며 공부할 수 있다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선 설명한다. 지금 아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수업을 받고 있다고 부모와 선생님은 생각하지만 감시카메라는 어제의 충실히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만을 다시 돌리고 있을 뿐이다. 아이는 컴퓨터를 통해 음성채팅을 즐기고 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자기 방으로 출근을 하여 팬티바람에 와이셔츠를 입고 격식을 차린 후 회사 회의를 마치고 말래이지아 지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이의 어머니는 인터넷 전자레인지로 다운받은 음식을 먹다가 넘쳐나는 요리정보와 요리들을 더욱 많이 즐기기 위해 잠시 싱크대 위에서 지금까지 먹은 것들을 다시 위에서 꺼내고 있는 중이다. 한참을 그렇게 요리를 토해내던 그녀는 다시 요리를 주문해 맛보고 있다.

그녀의 발 밑에서 로봇강아지가 그녀의 발톱을 핥아주고 있다. 로봇강아지는 밥먹을 시간이 되자 알아서 충전데크로 가 전기를 충전받는다.

그녀가 끝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와중에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부엌 구석의 로봇웨이터가 인터넷쿠커에서 다운받은 점심을 들고 아이와 아이 아버지의 방으로 음식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 그들은 밥을 먹으러 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게 로봇 판매자의 말이다.

이젠 어떤 가정에서도 4인용식탁을 - 물론 5인용 식탁도- 찾을 수 없다. 그저 각자의 방 안에서 웨이터를 시키면 자신의 책상위에서 맛잇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음식을 먹으며 하는 잡담들로 인해 고객들의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게 할 순 없다고 로봇판매업자는 덧붙였다.

아이의 아버지가 막간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컴퓨터로 뉴스를 보고 있다. 무인자동화시스템을 점거해 약 2000만원의 생산피해를 낸 실업자단체 회원 32명에게 12년 형을 선고하고 그 단체를 폐쇠시켜버렸다는 뉴스보도에 아이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로봇에게 노동할 권리를 빼앗긴 자들의 끊임없는 투쟁은 그들을 새로운 빨갱이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제 사람들은 늘어나는 실업자가 아니라 증가하는 첨단화되어가는 로봇에 관심을 두고 있다. 빈민구제시스템보다 무인생산시스템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갑자기 뉴스의 카메라가 한 남자를 비추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 장면이 나오자 전에 없던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본다. 남자가 갑자기 홈리스구역에서 달려나오더니 '난동'을 부린다고 아나운서는 친절히 설명한다.

'씨팔. 좆나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개새끼들아! 좆나게 아름답다구! 썅!'

남자의 절규가 끝나자 마자 치안유지시스템의 저격장치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총알은 남자의 콧등을 관통해 뒷덜미로 빠져나가 아스팔트를 부서뜨렸다. 방송사는 이 장면을 두번이나 느린화면으로 보여주므로 시청률을 높일 수 있었다. 순간 여기저기에서 박수소리가 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청소로봇이 주검을 끌고가고 카메라는 산산히 부서진 그의 두개골을 계속해서 클로즈업하므로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뉴스가 끝이 나고 아이의 아버지는 뉴스를 끄고 활기찬 마음으로 다시 일에 전념한다.

청소를 마친 청소로봇 하나가 본부로 계산서를 보낸다.

'아스팔트 82g 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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