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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도깨비 가면

2015.12.26 21:5512.26

도깨비 가면

저녁이 되어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둘씩 피어날 때 즈음이면 하나둘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마을 광장에 모였습니다. 본격적인 밤놀이의 시작이지요.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이 있으면 저마다 그 집으로 달려가 누구네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했습니다. 유난히 저녁을 늦게 먹는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닙니다. “유 민, 빨리 나와, 다 모였어!”라는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숟가락을 욱여넣고는 우물거리면서 달려갔습니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해도 입 안에 있는 밥알들 탓에 오물거리는 모양새가 되지만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낄낄대면서 대답을 해주었지요. “오늘은 숨바꼭질부터 할 거야. 재미있겠지?”

 

광장에서는 키가 들쭉날쭉한 아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6학년 오빠가 저를 보고는 “다 모였지? 숨바꼭질 할 거니까 가위바위보 하자!”라고 소리를 칩니다. 우리는 둥글게 모여서 “가위바위보!”라고 외친 후 손을 내밉니다. 열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한 자리에 있으니 누가 술래인지 가늠하기 헷갈립니다. 가위와 주먹과 보자기가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거듭해서 술래가 정해졌는데, 하필 저였습니다.

“민이가 술래다.”

“술래하기 싫은데.”

이렇게 중얼거려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숨바꼭질을 그리 잘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술래가 된 게 썩 반갑지 않습니다.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장소를 찾아 숨어도 처음으로 들키기 일쑤고 술래가 될 때에는 오래도록 찾아 헤매야했습니다. 이거 또 한 소리 듣겠다 싶습니다. 느리고 둔하단 말을 듣는 저에게, 숨바꼭질만큼 최악인 놀이가 있을까요? 한 명이라도 찾아내는 게 숨바꼭질을 임하는 자세입니다.

“그럼 100까지 센다! 빨리 숨어.”

 

담벼락에 얼굴을 대고는 숫자를 셉니다. 다다닥 뛰어가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어둠을 타고 숨으면 찾기가 더 힘듭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 다짐을 하며 100까지 셌습니다. 숫자를 셀 적에는 처음엔 작은 웃음소리, 발소리, 누군가 크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가까이 들립니다. 그러다가 점점 사라져 가로등이 빛을 뿜는 소리만 남습니다. 전기가 가볍게 떨리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소리 사이에 제가 내뱉는 목소리만 남는 겁니다. 그리고 “100”을 말하는 순간, 정적이 찾아옵니다.

 

“찾는다!”

 

혼자 남은 목소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다가 사라집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조심스레 숨은 아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찾았지만 밤눈이 어두운 탓인지 쉽사리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돌아서 가려는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쪽이 아니야.”

 

바람처럼 가녀린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생경한 목소리라서 뒤돌아서 바라보는데 야트막하게 퍼진 어둠 사이에 작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기괴하면서도 새빨갛게 칠해진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손가락으로 제 뒤편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저쪽에 한 명 숨어 있는 걸 봤어.”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요? 숨을 쉬지만 그 숨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목소리였습니다. 목소리는 분명 들려오는데 바람이 귓가에 스쳐지나가는 감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목소리에 이끌려 제 몸이 움직였습니다. 그가 말한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누군가의 정수리가 보였습니다. 제가 다가가니 숨어 있던 아이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뜹니다. 저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달려갔습니다. 숨기 전에 제가 숫자를 셌던 벽을 매섭게 때리며 “찾았다!”라고 소리쳤습니다.

목소리는 제게 다른 아이가 숨겨진 곳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씩 아이들을 찾아낼 때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민이가 이럴 애가 아닌데”라면서 빈정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가면을 쓴 소년은 제 뒤를 쫓으며 아이들이 숨은 곳을 일러주었습니다. 모두 찾아냈을 때 저는 소년을 아이들에게 소개를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말하려고 하니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로 하자.”

라며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가면을 쓴 소년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 아이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려고 해도 검지를 입가에 대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야, 유 민! 뭘 봐? 저기 뭐 있어?”

코를 훔치면서 경민이 제 시선이 향한 곳에 시선을 주었습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경민은 시큰둥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다음 술래를 정하기 위해 아이들은 다시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와아, 박경민이 술래다!” 다들 소리를 지르고는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경민은 손등으로 코를 문대면서 작게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백 딱 세고서 찾을 거니까 빨리 숨어.” 경민은 훌쩍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와 다른 아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움직이다가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절대 들키지 않는 장소를 찾으려 했습니다. 지금까지 숨은 곳은 어떤 아이가 술래여도 금방 찾았습니다. 심지어 저만큼 어수룩한 나영이마저도 제가 숨은 곳을 찾아냈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깜빡대는 곳에 잠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결코 들키지 않을 장소를 갑자기 생각하자니 모든 것이 헷갈렸습니다.

 

“숨을 장소, 내가 찾아줄 수 있어.”

뒤에서 스르르 목소리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간신히 입을 틀어막아 뒤를 돌아보니 예의 그 빨간 가면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즐거운지 소년이 작게 키득거렸습니다. 저는 새침하게 때리는 시늉을 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 놀랐잖아.”

“미안.”

“어디에 숨으면 되는데?”

 

저는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소년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제가 묻자 등 뒤에 감춘 손을 꺼냈습니다. 손에는 소년과 같은 빨간 가면이 들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가면을 제게 건네며 입을 열었습니다.

 

“이거 쓰면 아이들이 널 찾지 못할 거야.”

“가면이잖아. 이게 도움이 돼?”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저는 냉큼 소년에게서 가면을 받아썼습니다. 소년과 똑같은 가면을 쓰고 소년과 마주보며 해맑게 웃었습니다. 소년도 즐거운지 맑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나 어때? 무서워 보여?”

 

애들이 보면 무서워할 것 같았기에 그리 물었습니다. 소년은 작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가만히 뒤로 다가가 놀랜다면 누구라도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습니다. 코는 길쭉하게 나왔고 눈은 삐쭉 위로 솟았으며 입은 커다란 가면이었습니다. 새빨갛게 칠해진 것은 꼭 피를 흠뻑 묻힌 것처럼 강렬해서 만질 때마다 끈적끈적한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소년은 제 손을 꼭 잡고는 어딘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경민이 모퉁이를 돌아 흐느적흐느적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숨을 꾹 참자 소년이 괜찮단 시늉으로 손을 살짝 흔들었습니다. 경민은 바로 제 앞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저를 보지 못했는지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경민의 뒤로 뛰어갔습니다. 소리가 났을 것도 같은데 경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박경민.” 작게 이름을 불렀는데, 경민은 검지로 귓구멍을 후비기만 할 뿐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더 크게 소리를 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나를 못 보는 거야?”

소년을 바라보며 묻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마법을 부리고 있는 거야. 가면이 널 보이지 않게 해주고 있어.”

“다른 애들도 날 보지 못해?”

“응.”

 

저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굳이 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소년을 뒤에 두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경민이 주위를 맴돌면서 혀를 내밀기도 하고 토끼 귀를 하기도 하고 “박경민 바보, 멍청이, 똥개!”라면서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경민이 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도 했고 더불어 유쾌하기도 했습니다. 소년이 먼발치에서 그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을 닮은 목소리만이 유일하게 저에게 닿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다가갔습니다. 경민을 피해 숨어있는 민석이 녀석에게 다가가 소리를 질렀지만 듣지 못했는지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는 까르르 웃으면서 아이들 사이를 뛰어다녔습니다. 경민이 하나씩 아이를 찾았지만 저만은 결코 찾지 못했습니다. “유 민, 오늘따라 왜 이리 숨바꼭질을 잘 하지?” 경민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저를 찾지 못했어요. 당연합니다. 저는 경민의 옆에 찰싹 붙어 그가 저를 찾는 걸 지켜보았으니까요. 가면을 쓰고 있으니 즐거운 일이 많습니다. 제가 보이지 않자 아이들이 저를 중심에 두고 술렁거렸습니다. 6학년 오빠가 “민이가 오늘은 민첩하네”라고 중얼거리자 다른 아이들도 입술을 비죽 내밀며 빈정대기 시작합니다. 저는 기분이 무척 상해야 했지만 오늘은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신기한 가면을 쓰니 세상이 다 신비롭게 보였거든요. 대신 저도 옆에서 그간 하지 못했던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제 말을 듣지 못하니 제가 뭐라고 떠들어도 상관이 없잖아요. 그건 정말 기분이 째지는 일이었습니다.

 

저를 찾기를 포기한 경민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못 찾겠다, 꾀꼬리! 신발 벗고 나와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 앞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뭐지? 민이 집으로 간 건가?” 나영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누구도 저를 데리러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늘 모이면 하는 게임이라고 해봤자 얼음땡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비석 깨기를 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없으니 팀도 딱 맞겠다 싶어 6학년 오빠와 경민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팀을 나눴습니다.

 

“뭐야, 나는?”

저는 그 옆에서 볼멘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갑자기 따돌림을 당한 것만 같아 서글퍼졌습니다.

 

“더 재미있는 놀이 하지 않을래? 분명 좋아할 거야.”

소년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 말에 솔깃해진 나는 그쪽으로 몸을 틀었습니다.

“어떤 놀이?”

“가령, 나는 너와 똑같을 얼굴을 할 수 있어. 내가 너인 척 저들과 노는 건 어때? 그리고 넌 내가 너와 똑같이 구는지 지켜봐 줘.”

“정말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할 수 있어?”

“그럼. 오늘 유심히 지켜봤는걸.”

소년의 목소리는 아카시아처럼 상쾌했습니다. 산들거리면서도 절제 있는 모습에 저는 괜한 설렘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얼결에 소년이 하자는 제의에 흔쾌히 수락을 했습니다. 소년은 빨간 가면을 벗었습니다. 가면을 벗으니 가면 아래에서 제 얼굴이 튀어나왔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지만 신기해서 와, 와 하며 감탄을 내질렀습니다. 오른쪽 눈 아래 있는 작은 점까지 완벽한 제 얼굴이었습니다. 소년은 저와 같은 얼굴로 다른 미소를 지었습니다. 입술 끝만 살짝 올리고는 저를 바라본 후 아이들에게 향했습니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뭐야, 너 집에 갔었냐? 치사하게 집에서 숨었냐?”

“아냐, 나 바로 요 근처에 숨었어. 그래서 더 못 찾았던 거 아냐?”

 

소년은 나와 같은 목소리를 흉내 내며 아이들과 얼굴을 하나씩 마주보았습니다. 나영이가 감쪽같았다고, 정말 찾지 못했다고 재잘댔습니다. 소년은 손뼉을 치면서 환히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소년이 저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소년은 제가 자주 쓰는 말씨며 제가 할 것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민이가 왔으니 비석 깨기는 못하겠다. 뭐할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거 말고. 얼음땡 하자!”

“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싶은데.”

저마다 하고 싶은 놀이를 말하자 금세 주위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지나가던 박씨 아저씨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만 놀고 집에 들어가서 자라, 응? 동네 시끄럽다!” 아이들이 와하하하 웃으면서 아저씨 주위를 빙 돌다가 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년만이 그 자리에 서서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라면 함께 아이들과 뛰어갔을 텐데. 소년은 그런 면에서는 저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새로운 놀이를 정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먼저 한 후, 그 다음에 얼음땡을 하자고 했습니다. 소년은 금방 룰을 일깨우고는 금방 아이들을 따라했습니다. 술래가 되기도 하고 다음 술래를 잡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잘하는지 지켜보는 제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얼음땡을 할 때도 요리조리 다람쥐처럼 쏙쏙 피해 다녔습니다. “유 민, 오늘 뭐 먹었냐? 왜 이렇게 빨라?” 6학년 오빠가 숨을 헉헉대며 불평을 내질렀습니다. 소년은 저보다 훨씬 더 즐겁고 재미있게 놀이를 즐겼습니다. 저와 같으면서도 저와 다른 모습에 저는 잠깐 넋을 잃었지요.

집에서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제는 하나씩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6학년 오빠가 집으로 가자 저와 소년만이 남았습니다. 저는 소년에게 다가갔습니다.

 

“완전 멋져! 나와 똑같이 행동할 수 있구나.”

“이제 좀 똑같아?”

“나보다 차분하기도 하고 나보다 똑똑한 것 같기도 하지만 대충은.”

“다행이다.”

 

내 얼굴을 한 소년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없는 텅 빈 광장을 보면서 아쉬운 입맛을 다셨습니다.

 

“너도 집으로 갈 거지?”

“응. 너는? 너는 안 가?”

“으응, 나는…….”

소년은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 엄마아빠가 어디 가셔서, 혼자야. 혼자서 잘 수 있을까?”

“혼자 자기 무서우면 나와 같이 잘래? 엄마한테 물어볼게.”

 

저는 소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소년은 기대하지 못했는지 얼굴을 살짝 붉혔습니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며 수줍게 물었습니다.

정말 그래도 돼?”

“그럼. 우리 친구잖아!”

 

저는 소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가면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지만 기분 탓이려니 했습니다. 그리고 소년과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소년은 조용하게 걸음을 옮겼고 저는 온갖 소리를 내면서 걸어갔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처연하게 빛을 내고 밤하늘은 별이 빛나지 않을 만큼 어둡고 컴컴한 날이었습니다. 주위에 있던 풀벌레 소리도 살그머니 소리를 죽였습니다. 저와 소년이 내는 소리가 유일했습니다.

 

“근데 오늘 처음 본 거 맞지? 그동안 왜 같이 안 놀았어?”

“응, 뭔가 창피해서. 오늘 그래도 놀아보니까 재미있더라. 내일도 그렇게 놀고 싶어.”

“그럴 수 있어!”

 

저는 뭣도 모르고 신 나게 외쳐댔습니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습니다. 소년의 손을 흔들면서 웃기도 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파란 대문이 보이자 소년의 손을 잡고는 뛰었습니다. 파란 대문이 있는 곳이 우리 집이었습니다. 대문 앞에서 멈춰 서고는 문을 열려고 손을 대니 소년이 갑자기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정말 나를 집에 데려가도 괜찮아?”

“그렇대두.”

“나를 초대하는 거 맞지?”

 

그땐 ‘초대’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년에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간절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재차 그렇게 괜찮은지 물어봤던 것이겠지요. 저는 겁을 먹은 소년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그러엄”이라고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대문으로 들어섰지만 소년은 여전히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저는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소년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습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년의 미소가 처음과 다르다고 느낀 건 그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가면이 숨을 틀어막은 것처럼 답답해져만 갔습니다. 저는 가면을 벗기려고 했지만 제 피부에 딱 들러붙은 것처럼 가면은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저를 지나쳐 유유히 계단을 올라섰습니다. 현관을 열고는 저 대신 엄마를 불렀습니다. 마치 제가 되었다는 듯, 유유히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사랑스러운 딸의 얼굴을 한 채 소년은 문을 닫기 전에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네가 도깨비가 될 차례야.”





한참이 지나야 소년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소년은 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도깨비가 된 채 혼자 이 어둠을 감당해야 합니다. 단순히 가면 놀이에 지났을지도 몰랐을 유희는 소년을 집으로 초대한 순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소년은 우리 집에 초대받은 순간 저를 완전히 훔쳐갔고 저는 완전히 홀로 남았습니다. 소년이 제게 준 가면은 도깨비 가면이었던 겁니다. 제가 다른 아이를 완전히 훔쳐내지 않는 한, 이 어둠은 영원할 것입니다.





Fin.



이메일 : lemongir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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