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뒷골목의 성형내과

2015.12.02 12:1612.02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은아는 계속해서 여자 쪽을 힐끔거렸다. 어릴 적 어머니가 좋지 못한 짓이라며 야단친 것이 생각났지만 별수 없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강렬한 호기심이 그녀의 눈을 당겼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간호사는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잡지를 넘겼다. 너무나 특이한 장면이었다. 별로 잡지를 넘기고 있는 행위가 특이한 건 아니었다. 특이한 건 그녀의 외모였다. 그녀는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서 보면 비로소 그녀의 실체가 보였다. 그녀의 눈은 지나치게 좁았고, 코는 주먹처럼 평평했으며, 미소 짓고 있는 입술은 기이하게 까져 검은 잇몸이 드러났다. 거기에 살집이 가득한 덩치는 드럼통이 연상될 지경인데다가, 이목구비가 별로 뚜렷하지 않아 (매우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 살들이 다 빠지더라도 그다지 미인은 못 될 듯했다.


그런데도 간호사는 아름다워 보였다. 최대한 끌어올린 집중력이 약간이라도 흐트러지면 그녀의 그런 특징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녹아 내린 뒤 새로운 얼굴이 탄생하는 것만 같았다.


정말 사실인 걸까?은아는 새삼 며칠 전에 방문한 블로그를 떠올렸다. 거기에는 자신의 동네 뒷골목에 있는 기이한 병원에 대한 얘기가 적혀있었다. 내용인즉슨 칼 한번 대지 않는데도 아름답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은아도 반신반의했지만 그냥 장난삼아 찾아온 곳엔 글에서 읽은 것과 정확히 똑같은 건물이 있었다. 어딘가 짓다말았다는 느낌이 드는 콘크리트 건물엔 간판 하나 없어서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런 점마저도 블로그에서 묘한 것과 들어맞았기에 그녀는 일단 건물로 들어갔다. 어차피 흥미위주로 왔던 것이기에 딱히 손해볼 건 없었다. 그리고 결과는 조금 불안하긴 해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병원은 실재했다.


다만 그렇다하더라도 간호사의 미모는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름다워 보이긴 했지만 역시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이함에서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손을 대는 데 자연스러운 게 이상한 거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러고 보니 작성자가 내부에 손을 대는 것으로 수술한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 걸까? 장기나 근육의 움직임 따위를 이용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왠지 저 간호사의 기이한 얼굴도 그다지 이상한 것만은 아닐 듯했다. 그래, 아마 그런 것이리라.

그녀가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한 번 더 간호사 쪽을 힐끔거리는데 간호사가 불쑥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에게 나쁜 짓을 들킨 것 같은 죄책감을 감추며 그녀는 애써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여자의 통통한 손가락이 왼쪽에 위치한 문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은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간호사가 가리킨 쪽을 향해 걸어갔다. 보통은 무슨 실이라고 팻말이 걸려있기 마련인데 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감옥 문을 연상시키는 문에는 재질로 인한 광택이 스멀스멀 움직일 뿐. 언뜻 보기에도 묵직한 쇳덩이란 걸 알 수 있었기에 그녀는 문을 열 수나 있나 의아해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 하나 없이 의외로 쉽게 열렸다.


"어서 오세요."


그녀가 열린 틈으로 몸을 밀어 넣기도 전에 불쑥 소리가 났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 저음이라고도 고음이라고도 딱 잘라 말하긴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남자 목소리란 걸 아는지 의아해하며 그녀는 급히 인사를 했다.


그녀가 문을 닫자, 목소리의 주인이 맞은 편에 의자를 권했다. 의자로 다가가면서 그녀는 목소리의 주인을 조심스레 관찰했다. 그는 컴퓨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서 두 손을 마주 댄 자세였는데, '나는 자신 있다'라고 말하는 듯해서 어쩐지 의사보단 사업가나 변호사 느낌이 강했다. 가운만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도 그가 의사라는 걸 몰랐을 정도였다. 의자에 앉자, 그가 흰 이를 드러냈다. 순간 미남이라고 감탄했지만, 그녀는 곧 미남처럼 '보이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의 얼굴에서 기이함을 느낀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보니 역시나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실체가 드러났다. 간호사만큼 추한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 되어버릴 정도로 평범한 얼굴이어서 그녀는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불쾌감은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사라졌다.


"어디 보자, 이름이……."


의사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은아씨네요, 맞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예쁜 이름이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뜻 좀 알 수 있을까요?"


"은 은(銀)자에다가, 나 아(我)자요."


"은의 나?"


의사가 이마를 누르며 물었다.


"대충 뭐 그렇죠. 그런 은빛의 아름다운 자신으로 살아가라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정말 좋은 할아버지시네요. 사실 저도 할아버지 때문에 지금의 의사 일을 하게 됐어요. 참 기막힌 우연 아닌가요?"


'글쎄요'라고 애매하게 웃어넘겼다. 대체 어딜 봐서 '기막힌' 거고, 어떻게 돼서 '우연'인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렇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간단하게 질문 좀 할게요. 뭐 사실은 몇 가지도 아니라, 그냥 2개뿐이니까 오래 안 걸릴 겁니다."


의사는 몸을 펴 의자에 기댔다. 그녀는 보일 듯 말 듯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저희 병원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떻게 알게 됐냐고요?"


은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않아도 돼요. 저희 병원이 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어떻게 하면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연구 중이라서요. 아무래도 먹고는 살아야죠."


애초에 그럼 왜 간판을 달지 않은 건가? 아니면 혹시…….


"아 딱히 그런 종류의 건 아닙니다.


의사가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손사래를 쳤다.


"아마 불법적인 걸 상상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간판을 내시면 되잖아요?"


"아, 역시 간판이 문젠가?"


의사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요, 정해지는 대로 올릴 겁니다."


"병원 이름도 없는데 허가가 떨어졌어요?"


그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 올릴 때 대충 지은 이름으로 올렸거든요. 근데 이게 영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도 그렇지……."


"어차피 다 무너지는 건물이라 다들 신경도 안 쓰던데요, 뭐.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바로 낼 겁니다. 아, 그래도 안 믿으시네. 간판만 없는 거지 허가나 면허는 다 있어요!"


의사가 엄지로 자신의 등을 가리켰다. 과연, 액자 2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뭐라고 적혀 있는진 알 수 없었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오늘 추궁하러 여기 온 게 아니었다. 애초에 간판만 없는 정도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은아는 그 문제에 대한 신경을 끄기로 하고 질문에 답했다. 의사는 블로그의 구체적인 주소를 물었고, 다 받아 적자 아이처럼 싱글거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그가 주소가 적힌 용지를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여기 온 이유가 뭔가요?"


"네?"


"이유요. 물론 성형외과라고(정확히 저희는 '외과'는 아니지만, 아무튼) 다 같은 이유로 온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꼭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사고로 인한 걸 고치려 한다거나, 좀 미묘한 차이긴 해도 콤플렉스를 감추거나, 그냥 더 예뻐지려거나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런 게 필요한가요?"


"뭐 그냥 연구차 확인해 두는 거죠."


은아는 그저 '음'이라고 신음하듯 내뱉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유라. 대강 안다고 생각했는데 설명하려니 막상 그럴싸한 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이어내기 위해 부산히 뇌 속을 뒤집었다. 그러나 정작 나온 건 몇 안 되는 짤막한 영상들이었다. 불쾌감이 깃든 눈알들. 추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한 표정들. 같은 성(性)이라는 동질감 속에서 지나치게 노골적인 위선의 미소.


"좀 대답하기 힘드신가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는 아름다워지고 싶어요."


"혹시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의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쩐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사적인 호기심을 위한 질문이라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녀는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니까.


"학생 때는 솔직히 외모 같은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았단 건 아니고 단정하게만 하고 다녔어요. 외모랑은 별개로 사람이 단정치 못한 건 안 된다고 어머니가 숱하게 잔소리하셨거든요. 근데 나이가 더 들고 회사에 들어가게 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단정하기만 하고 예쁘지는 않으니 남자들은 별로 안 좋아해요. 동료고 상사고 죄다 불쾌하다고 말은 안 해도 짜증 날 정도로 표정으로 드러나는 거 있죠? 그렇다고 화려하게 차린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네 주제를 알라는 식으로 쳐다봐요. 아무리 꾸며 봤자 원판이 글러 먹어서 역겹다는 식이죠. 실제로 간접적으로나마 그렇게 얘기한 상사도 있어요. 같은 여자 동료들은 그래도 서로 이해한다는 것처럼 대하긴 하는데, 말로만 그런 거지 사실은 경계심이나 안도감을 느끼면서 우월하다고 착각할 뿐이에요. 그래서 제가 떠 예뻐지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해서……."


"복수하고 싶은 거군요?"


은아가 적당한 말을 고르는 동안 의사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네. 정확하네요. 왜요, 이상해요?"


의사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 전 사실 복수극을 좋아하거든요. 특히 몬테크리스토 백작. 영원한 걸작이죠."


의사는 잠시 은아의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처음과 같은 자세였다. 뭔가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스런 동작이어서 은아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웃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아마 환자분께서 여기 오신 또 다른 이유는 칼 대는 게 싫어서겠죠?"


"네, 맞아요. 막상 칼을 대면 성형하는 게 무슨 죄라도 지은 것 마냥 추하게 보니까요."


“그럼 정확히 찾으신 게 맞아요. 저희는 전혀 티가 안 나게 하면서도 확실하게 아름답게 해드리거든요.”


은아는 거기서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손님이라 부를 것 같은 의사의 말투가 꼭 TV 쇼핑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건지 의사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나 사기가 아니에요. 환자분께서 읽으신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몇몇 분들이 이미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간호사도 보셨잖아요?”


은아는 웃음을 멈췄다.


“간호사요?”


“예, 그분도 여기 시술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보셨던 대로죠.”


은아의 머릿속에 간호사의 기이한 얼굴이 스쳤다. 칼은 대지 않았지만 여전히 변형된 형태를 알리는 기묘함. 그러나 기이함은 곧 사라졌고, 아름다운 얼굴만이 거기 남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더는 들지 않았다.


“납득하신 것 같군요. 그럼…….”


“아, 그런데 어떻게 하신 거죠?”


서랍을 뒤지던 의사는 그녀의 말에 다시 상체를 곧추세웠다.


“그것도 곧 말씀드리려던 참입니다. 일단 정확한 방법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얘기하면 믿으실 수 없으니 대략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여길 건드리는 겁니다.”


의사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두들겨보았다.


“심장이요?”


“땡. 정답은 마음입니다.”


의사가 다시 깍지를 꼈다.


“사실 본론에 앞서 제가 드린 질문은 사실 연구 목적 이전에 일종의 심리 테스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죠. 심리를 왜 알아야 하냐고요? 성형이니까 알려는 겁니다.”


그가 책상 위에 팔을 내려놓았다.


“형태는 객관적인 것이지만 ‘미’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즉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건 외모가 아니라 마음인 셈이죠. 저희는 그 마음을 약간 조정하는 것으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진정한 의미에서 내면을 가꿔드리는 겁니다.”

의사는 거기서 맘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상기된 얼굴이 불쑥 미소 지었다.


“내면…….”


마음에 든다는 듯 은아가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확실히 외과는 아니란 소리네요.”


“예? 왜요?”


의사가 물었다.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정확히 외과는 아니라고요.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오히려 내과가 정확하겠네요. 성형내과. 좀 이상한가?”


“난 또 뭐라고. 성형내과라. 그래요, 그게 맞는 거 같군요.”


그녀의 작명이 마음에 든 듯 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옛말에 틀린 말이 없다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고들 흔히 얘기하잖아요?”


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이제 저희 수술 방식에 대해서도 납득하신 것 같으니 마지막은 수술 날짜만 정하면 되겠군요?”


“부위 같은 건 상관없나요?”


막상 말하고 보니 얼마나 의미 없는 질문인지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그걸 눈치 챘는지 의사도 그냥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하긴 하는 부위가 마음이었죠.”


그녀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조금 망설여지신다면 나중에라도 찾아오셔도 됩니다.”


“아, 그건 아니에요. 그럼 언제가 제일 빨리 가능한가요?”


“뭐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도 됩니다.”


“바로요?”


“예.”


“1~2시간 정도 뒤요?”


“아니요. 말 그대로 바로요. 수술실에 들어가셔서 누워계시면 됩니다. 수술이라고 해봤자 10~20분밖에 안 걸리니 집에 돌아가시는 것도 무리 없죠.”


그가 왼쪽 구석에 작은 문을 가리켰다. 똑같은 검은 철문.


“그럼 비용은요?”


“200이면 됩니다.”


“200…….”


쉽게 깨지는 유리잔을 쥐어들 듯이 그녀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어때요?”


은아는 잠시 침묵하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직도 마음을 조정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냥 상관없을 것 같았다. 처음에만 해도 마음을 조정한다는 것에 미약하게나마 불쾌감 같은 것이 느껴진 것 같은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사라지고 압도적인 신뢰감만이 남아있었다. 꼭 누가 뇌 속에서 답을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여기다가…….”


의사가 서랍을 뒤적이더니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렸다.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자 편한 자세로 그렇게 있어 주시면 됩니다.”


세평 정도 되는 좁은 수술실에 들어온 그녀는 의사에 말대로 침대에 누웠다. 천장에는 거대한 거울이 있어 그녀의 전신이 비췄다.


“자, 이거 쓰시고 잠시만요.”


그는 그녀에게 플라스틱 재질로 보이는 뭔가를 씌웠다. 거울로 보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큰 헬멧이었는데, 정수리 부분에 튜브가 의사가 등지는 있는 곳에 설치된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다. 기계를 힐끔거리자, 의사가 미소 지었다.


“좀 촌스럽게 생겼죠?”


은아가 좀 더 잘 볼 수 있게 그가 몸을 비켰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직접 설계하신 거라 그래요. 당시로써는 획기적이고 세련됐을 테지만 60년도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선 촌스럽게 보이긴 하죠. 복고풍 느낌이 나서 전 좋아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다소 흘려들으면서 기계를 관찰했다. 기계는 냉장고만 한 크기에 탁한 회색을 띠고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몸체 군데군데엔 다양한 색깔의 버튼이 보였고 얼굴크기만한 계기판 양옆에는 스프링 모양의 튜브가 아래 몸체에 연결되어 있었다. 쓰레기를 대충 기워 만든 조악한 상상력의 총집합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복고풍 느낌이 나는 것이 제법 괜찮았다.


“자, 그럼 이제 눈을 감으세요.”


의사에 말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하자 그는 기계로 다가가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꽤 인정받는 심리학자였어요. 그것 덕분에 할아버지는 일제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죠.”


그가 세 번째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머릿속으로 뭔가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조선인을 스카우트하다니 대단하죠? 아무튼 할아버지는 수락했어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프로젝트는 인간 뇌에 영향을 끼쳐서 그 반응을 확인하는 거였는데,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포로들을 세뇌하기 위해 시작한 것 같아요. 전쟁에서 패전하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병력을 보충하고 싶었겠죠.”

그가 레버 2개를 내린 뒤 큼지막한 다이얼을 돌렸다. 양옆에 달린 튜브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는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고, 계획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 할아버진 연구 내용들을 잘 숨겼고, 지금의 제게 넘어오게 됐죠. 어떻게 넘어오게 된 건진 좀 지루한 얘기니까 생략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걸 본 순간 전 느낌이 왔습니다. 이거라면 최고의 ‘미’를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그가 거기서 잠시 멈추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괜히 거창하게 말해서 쑥스럽군요. 어쨌건 결론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 그리고 상대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가 마지막 붉은 레버를 올렸다.


“주입하면 된다는 겁니다.”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이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들더니, 그녀의 몸이 털썩거리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뭔가가 조종하듯 자동적으로 눈꺼풀이 열렸고, 곧 경련이 멈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기계처럼 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뇌 속에서 나무가 가지를 뻗는 듯한 변화가 느껴졌다. 새로 뻗쳐진 가지가 그녀의 뇌를 부드럽게 어루만질 때마다 여인의 형태는 변해갔다.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아함을 내뿜었다. 맑은 두 눈, 우아한 코, 금방이라도 빨려들 것 같은 위험한 마력의 입술. 온 얼굴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여인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의사는 모니터 화면에 뜬 수치를 감상했다. 변화가 일어난 곳이 표시 되어 있는 걸 확인할 때마다, 순수한 예술에서나 느낄 수 있는 쾌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번 주만 벌써 30명 째였다. 처음에는 전혀 안 늘 것만 같았는데 인제는 거의 기하학적으로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는 책상에 놓인 서약서를 집어 들었다. 용지를 꽉 채운 자잘한 내용을 훑던 그의 눈이 한 자리에서 멈췄다. 시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상과 함께 다시 원상 복귀시켜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절대 일어날 리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조정해 마음에 들게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 리 없는 일이니까. 애초에 원상 복귀시키는 방법도 사실 알지 못했다. 하긴 그렇게 될 리 없으니 알 바 아니지만.


그래서 그게 옳다는 거냐? 문득 아버지의 말이 그의 귓가에서 울렸다. 서재에서 발견된 할아버지의 연구 자료를 보고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선을 넘는 것이다, 라고.


그는 비웃음을 흘리며 서약서를 서랍에 넣었다. 그 때도 똑같이 아버지를 비웃었다. 옳지 못하다? 그럼 자신과 같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하는 것은 옳은 건가. 상대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를 갖고 있기에 상처를 주는 것은 윤리적인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는 당당히 자신의 뜻을 밝혔다.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고 옳은 것이다.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가 자신을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 이것만큼 이상적인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연구자료는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끔 만들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종의 사념을 발산하는 것으로 상대가 자기 생각을 동조하게 만들 수 있던 것이다. 오늘 본 환자도 처음엔 불편해 보였지만 점차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뇌로 분명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말을 마저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었다. 그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분명 언젠가는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 분명히. 늘 그랬듯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벨 소리와 함께 모니터 화면에 작은 창이 떴다. 의사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새로운 환자를 맞을 준비를 했다. 보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싶어 하는 충실한 환자를. ‘내과.’ 좀 전의 환자가 얘기한 이름을 그는 조심스레 입에 옮겼다.


그래, 그게 좋겠어. 조금 밋밋하니 자신의 이름을 앞에다 내걸면 괜찮을 것 같았다.


문이 기분 나쁜 비명을 내질렀다.


성형내과. 아주 좋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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