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M.U.S.E #7 ; the Missing

2019.11.21 17:1611.21

수년을 함께 한 연구진과 홀을 가득 메운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배치된 의료진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가 예측하는 미래에서 의료진들의 역할은 없을 터였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나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하며 준비한 원고를 읽으며 인류의 혁명적인 진보를 발표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마샬만 도착하면 되었다. 온 인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마샬! 이게 어떤 실험인지 잊은 거야?”

마샬의 손은 그의 평소 성격만큼이나 위로 곧게 뻗어 있었다. 난 순간적으로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 못 해! 그냥 즉사할지도 모른다고!”

방금 내가 말한 대로였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실험이 실패할 때, 심지어는 성공했을 때조차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단순히 계산이 어렵다거나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영역을 넘어 상상 불가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산된 텐서의 각 항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 값들이 실제로 의미가 있는 값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과학자가 돼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저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결과 값들이 실제 실험 결과와 잘 맞아떨어졌고, 실험을 중지할 어떤 유인도 없었으며, 우리들은 실험의 성공에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실험 단계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제의 성공 이후로부터 오늘 점심때까지, 아무도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터그와 콴은 원래부터 말이 많지는 않은 편이었지만, 시시한 농담을 늘어놓던 패트릭도 입을 다물고 있었고, 실험실의 만담 콤비로서 늘 분위기를 띄우던 에넷과 미츠라기도 조용했다. 회의실 안에는 침묵만이 짙게 퍼져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사실 따져본다면 내가 말을 제일 적게 했을 것이다. 팀의 리더로서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게 맞는 일이지만,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그들을 밀어 넣을 용기는 쉽게 나지 않았다. 아니, 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전 실험들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동물 실험은 아무리 실패해봤자 실험동물만 피해를 볼 뿐이고, 이걸로 딴지를 걸 사람들은 극성 동물보호론자들밖에는 없었다. 더구나 기밀로 진행하는 연구이니 그 사람들이 알 턱도 없었다. 실험이 계속 실패한다면 연구 지원도 끊기고 결국 프로젝트도 무산되었겠지만, 기껏해야 그게 최악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실패는 곧 인명피해였다. 그런 상황에 마샬이 손을 들었던 것이다.

 “마샬, 그냥 기지개 켠 거지? 그렇지?”

패트릭은 또 실없는 말을 하며 마샬의 왼팔을 잡아 끌어내렸다. 마샬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뗐다.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분들보단 제가 더 잘 대처하지 않겠습니까? 이래 봬도 군인이니까요.”

마샬의 멋쩍은 웃음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의 말이 합리적으로 들리는 것도, 나에게 그를 막을 권리가 없다는 것도 그 불편함에 한몫했다. 그는 언제나 정론만을 말했던 것이다.

 

<지난 발표에서는 실험의 원리나 기반 이론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지난 몇 년의 연구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진척됐었다. 그러던 와중에 성공한 실험이었기에 우리 모두는 이제 성공 가도만 달릴 것이라 믿었다. 아니, 그러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착각이었다는 듯 실험은 다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샬은 성실히 실험에 임했다. 나쁘게 말하면 요령도 없이 미련하게 매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실로 군인다운, 원칙을 따라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우리들의 시선이나 첫날의 나의 태도 때문도 있었겠지만, 그 스스로도 자신이 환영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모습을 보자면 그냥 타고난 천성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랩미팅이 무의미해진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마샬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가이드 웨이브를 써 보는 건 어떻습니까?”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그의 제안은 상당히 함축적인 질문이었다. 이를 스스로도 느낀 그는 앞으로 나가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곧 일련의 영상이 홀로그램 스크린에 떠올랐다.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회의실 한 구석에 있던 화이트보드까지 끌고 와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발상 자체는 파일럿 웨이브에서 착안한 건데, 네 맞습니다. 드 브로이-봄 이론의 한 갈래요. 아직도 파동 함수는 해석이 분분하긴 하지만, 그 이론을 기반으로 하자는 건 아니고, 그걸 증명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모티브가 그거라는 거고, 큰 관련은 없습니다. 특정 시공간에서 콜랩스하는 파동을 구현한 후에 실험 대상을 그 파동에 탑재하는 겁니다. 싱귤러 포인트가 생기도록 파동을 구현하면 첫 지점에서 파동은 붕괴할 테고, 그 구멍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도출될 겁니다.”

그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냉담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난 철저한 코펜하겐 지지자였고, 수학적으로는 코펜하겐 해석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그 이론에 별 관심도 없었다. 양자광학과 양자정보학의 발달로 그 이론이 엄청나게 부상했다곤 하지만, 지난 1세기 가까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숨은 변수’를 찾기 위한 무수한 노력 중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노력들은 플로지스톤이나 에테르를 규명하려는 시도처럼, 결국에는 사장될 것이 틀림없는 이론으로 보였다. 차라리 뇌의 특정 영역이 파동함수의 붕괴에 관여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내게는 차라리 더 그럴듯해 보였다.

“우리가 지금 고전하고 있는 건 실험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파동을 일제히 통제하지 못해서죠. 그것들이 서로 다르게 진동하다 보니 막 여기저기 파괴되기도 하고요. 여태까지 그걸 통제하겠다고 별의별 수를 다 써봤지만 표면에서의 요동은 결국 어쩌지 못했죠. 연속성이 사라지는 경계여서 파동이 무작위로 발산한다고 추정 중이기는 하지만, 그걸 통제하지 못하는 이상 어떤 추정이든 효용이 없습니다. 그럼 아예 게네들은 놔두고 그 겉을 동일한 파형으로 공명하도록 조절한 물질로 씌우는 겁니다. 그 물질에 가이드 웨이브를 쏘는 거죠.”

“그 겉에 씌울 껍질을 만드는 거야 그렇다 치고, 어차피 내부의 입자들도 통제하지 않으면 결국 그대로 아닌가요?”

에넷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마샬은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를 찍은 사진들을 스크린에 띄웠다. 여기저기 금이 가고 조금씩 부서진 벽돌들. 간혹 아예 가루만 남은 것들까지. 우리 모두가 봤던 모습이었다.

“한 번 거꾸로 생각해보는 겁니다. 실험 물질의 파괴가 내부까지는 안 미치고 표면에서만 일어나고 있잖아요. 어쩌면 내부까지 전부 공명할 필요는 없고 표면만 공명하면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실험 물질의 표면을 어떻게 우리 마음대로 막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반대로 우리가 조절 가능한 물질로 표면을 감싸는 거죠.”

“외부를 그렇게 감싼다고 효과가 있을까요? 경계에서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크게 문제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사각형과 삼각형이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아주 먼 거리에서는 구분 불가능한 것처럼, 공명하는 물질로 감싼 상태에서 내부에서의 요동은 아주 작을 거고 충분히 무시 가능할 겁니다. 미소 영역에서 이런 경우는 상당히 흔하잖아요?”

마샬의 반문에 미츠라기는 반박하지 못했다. 딱히 반박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구분 가능성은 양자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였고, 비교적 작은 요동은 대부분 무시하는 게 과학에서의 일반적인 접근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제안은 꽤나 가능성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걸 쉽게 인정할 수는 없는 게 보통의 사람이었다. 특히 나 같은 늙은이는 나이만큼이나 관성이 큰 법이었다.

“뭐, 이 이상 실험을 똑같이 반복하는 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으니 한 번쯤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말이죠.”

터그는 잘근잘근 씹던 엄지 손톱을 입에서 떠나 보내고는 말을 이었다. 그녀의 버릇 때문인지 엄지만 빼고 한 네일아트가 더 돋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최소한 이론적인 검토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기존의 이론적 기반도 완벽한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샬 씨가 방금 말씀하신 건 척 보기에도 양자나 상대론, 적어도 둘 중 하나와는 마찰을 일으킬 것 같은데요.”

터그의 물음에 마샬이 얇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애초에 우리 실험이 건드리던 영역이 그 모호한 지점 아니었습니까? 그 누구도 규명하지 못한 비국소적인 영역을 비집는 것.”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 점을 비교적 순순히 받아들인 건 역시나 패트릭이었다.

“저게 맞을지 안 맞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해봅시다. 굳이 안 해볼 이유도 없으니까요. 맨땅에 헤딩하는 거야 끈 파던 사람들이 제일 잘하는 거죠.”

콴은 패트릭의 자조를 무시하며 일어났다.

“그럼 일단 무슨 물질로 감쌀지부터 생각해야겠네요. 파동을 어떤 식으로 구현할 지도요.”

우리는 처음엔 장비를 다 해체하고 재설계해야 하나 아니면 특수 시료를 액화시킨 후 겉에 도포해야 하나 등의 고민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저 파동을 받고 보낼 셸을 추가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셸의 크기는 실험 대상보다 크기만 하면 되는 정도였다. 그 간단함에 비해 결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간혹 가루가 되던 벽돌이 더는 부서지지 않았다. 유리병을 사용한 실험도 안전하게 성공한 이후로는 파죽지세가 따로 없었다. 물이 담긴 병도 한 방울의 물도 사라짐이 없이 성공했다. 모래시계도 뒤집히지 않았고, 실험용 쥐도 죽지 않았다. 초반에 열댓 마리 정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부한 걸 빼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쥐들도 상당수였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나는 마샬을 다시 보게 되었다. 솔직히 그의 재능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마샬 박사는 이번 실험을 위해 특별히 모집했습니까?>

 

사실 마샬이 처음 우리 연구실로 왔을 때는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연구원이 그렇게 생각했었다. 특히 낯가림이 심한 편인 콴은 처음엔 그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것들에 있었다.

우리 연구실에서 매달리던 문제는, 온갖 해괴한 실험을 해대는 DARPA[1]와 계약 중인 다른 연구실에서조차 코웃음을 치던 것이었다.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실험이 성공했고, 윗선에서는 난리가 났다. 우리는 기밀 유지 각서를 다시 한번 작성하는 거로도 모자라 실험실도 옮기게 되었다. 각자의 책상은 고사하고 삼중 포장된 장비들을 어디에, 어떻게 다시 설치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샬이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전근 온 뷔니시에 마샬이라고 합니다.”

“고다드? 고다드면 NASA 소속이군. 나는 이 연구실의 선임 연구원이자 총 책임자인 볼프강 슐츠일세. 근데 신입이 온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저도 상부로부터 명령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위에서 뭔가 급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딱딱한 말투였다.

“아, 그리고 현역 공군 대위입니다.”

나의 궁금증을 간파라도 한 듯 마샬이 이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전형적인 군인의 이미지를 그에게 덧씌웠다. 다른 연구원들의 눈에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미안한 얘기였지만 마샬은 그 존재 자체로 윗선의 입김과 감시를 뜻했다.

“쉘린 터그입니다. 슐츠 박사님처럼 양자장론을 전공했습니다.”

“칼 에넷이라고 해요. 분명 지구환경물리를 전공했는데, 어째 하는 거라곤 상대론 계산뿐이네요.”

“핵물리를 전공한 노이카 미츠라기입니다.”

“끈 이론을 전공한 피트, 아, 아니. 패트릭입니다. 올리버라고 불러도 돼요.”

“슐츠 박사님 밑에서 수학한 아미싯 콴입니다.”

마샬은 모두와 짧게 악수를 하고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이건 매우 까탈스럽고 세심한 장치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만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냥 주변 기기나 방 정리나 도와주고 있게나.”

 

<실험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문제나 애로 사항 등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전까지의 부진한 진행에 대한 반향이었는지, 연구원들은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반면 마샬은, 나를 포함해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군인 특유의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태도로, 다른 연구원들이 놓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을 꼼꼼히 점검하는 섬세함도 지녔다. 그가 있어서 연구원들을 말리는 내 수고가 줄어들 수 있었다.

“여전히 오차가 발생합니다.”

마샬이 스크린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도 왼손으로는 자료를 넘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시간 지연 말하는 건가?”

“네, 또 1분을 넘겼습니다. 지난번까진 감소하는 추세였는데 또 이렇게 오차가 커지니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마샬은 나조차도 대충 얼버무리는 시간 지연을 꼼꼼히 분석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마이너스가 안 뜨는 게 어딘가. 만약 그랬으면 인류는 과학을 버려야 할 걸세.”

“새로운 기반의 과학이 자리 잡겠죠.”

에넷이 슬리퍼를 끌며 나타나 끼어들었다. 한 손에는 역시나 펩시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뒤에서 곧 미츠라기가 나타나 에넷의 음료를 뺏어 마셨다.

“그 정도 오차는 신경 쓰지 마요. 초 단위로 보면 커 보이겠지만 으, 달아. 경과 시간이랑 비교하면 별거 아니잖아요. 애초에 오차 없는 실험이란 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빈 캔을 받아 든 에넷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미츠라기는 시무룩해진 에넷의 가운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런 것보다 빨리 다음 실험하러 가죠. 침팬지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이 성공한 날, NASA에서는 그동안 기밀에 부쳐졌던 실험 내용을 발표했다. 기자들은 NASA에 더 자세한 연구 내용을 요구했고, 우리 연구실 일과에는 언론 인터뷰 거절이 추가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 세계 언론은 해당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우리의 연구를 이야기했다. 학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순간이동 실험 성공!]

 

<순간이동 기술이 야기할 경제적, 사회적 혹은 군사적 영향 등은 생각해보셨나요?>

 

실험용 쥐를 이용한 실험이 처음 성공한 날, 우리는 자축을 위해 작은 파티를 열기로 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멀리 가지도 못하고, 보안 문제 때문에 가게 같은 곳도 갈 수 없었지만, 작게나마 휴식을 취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결론은 에넷의 방이었다. 다들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는지 술과 레토르트만 들고 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에넷은 요리를 좋아하는 만큼 잘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나마 파티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위장도 적당히 늘어나고 혈중알코올농도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올라가고 나서는 농담도 하고 실험 도중 있었던 자잘한 사고들을 나열해가며 한층 가벼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가벼운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연구, 공개는 가능할까요?”

콴의 간단한 물음은 상당한 밀도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연구가 세계를 뒤흔들만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파장이 크다고 해서 진리를 외면하고 기술을 사장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비록 우리 모두 기밀 유지 각서를 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구가 끝나는 시점까지니까, 연구만 끝나면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걸세. 무엇보다 검증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학계에서의 발표도 필요하니까.”

작은 위로라도 될까 하고 던진 늙은이의 말이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츠라기는 곧바로 비관적인 생각을 풀어냈다.

“일단 이동에 관련한 분야에서 난리가 나겠죠. 무역이든 운송이든 여객이든. 전력이나 자원 소모 측면도 그렇고, 시간적인 것도 그렇고, 상용화만 되면 막말로 망할지도 모르니까 로비로 얼마를 쓰더라도 기를 쓰고 막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것보단 기술 제휴를 맺어서 돈 벌려고 하겠지. ‘더 빠르고 안전한 순간 이동 기술!’ 이렇게 선전하면서.”

터그는 양팔을 뻗으며 마치 연극을 하듯 말했다. 내게는 그녀의 말이 미츠라기의 것보다 비관적으로 들렸다. 우리의 연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수가 지식과 기술을 독점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터그의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아니요, 어쩌면 콴이 걱정하는 것처럼 정말 공개 못 할지도 모르죠.”

모두의 시선이 패트릭에게 모였다.

“왜 옛날에도 있었잖아요. 드론 기술이 막 꽃 피었을 때, 여기저기 다 적용한다고 떠들썩하다가 드론으로 테러 일어나니까 한동안 움츠러든 거.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언제나 있는 일이라지만 이번엔 또 모르죠. 공간은 물론 시간도 지정 가능한 기술로 폭탄을 순간이동 시키면? 누가, 언제, 어디서 보냈는지도 모르고 쾅! 이런 거 공개해서 뭐가 좋아요? 몰래 써먹는 게 낫지. 게다가 우리 연구 지원하는 데가 DARPA잖아요. 애초에 국방이 목적인데 막 공개하고 그러겠어요?”

“그게 또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번엔 모두가 마샬을 주목했다. 사실 우리 중 유일한 군인이기도 한 그가 군사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데엔 더 익숙할 터였다.

“아무리 은밀히 진행한다고 해도 요즘 같은 시대에 비밀을 계속 지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아무리 보안을 철저히 해도 비밀이 새어나가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게 타국에 의해서든 자국민에 의해서든. 과거의 수많은 사례들이 보안은 그저 유출을 늦출 뿐이라는 걸 입증해줍니다. 어쩌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에, 그럼 잠시라도 다른 나라가 모를 때 쓰는 게 이득 아니에요?”

에넷이 카나페를 들고 오며 물었다. 하나는 이미 입으로 물고 있었다. 마샬은 카나페를 둘 수 있도록 테이블을 치우며 말을 이었다.

“당장은 그래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비밀리에 썼다가 덜미가 잡히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 거예요. 차라리 처음부터 공개해 놓고 ‘우리는 이 정도의 기술이 있으니 조심해라.’라고 경고하는 게 억지력 측면에서는 훨씬 좋을 겁니다.”

실로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우리끼리만 조촐하게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즐거운 분위기까지 짧을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다.

“뭐, 실제로 어떤 일이 생길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정말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갈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디 항상 어둡기만 하겠나. 분명 밝은 면도 있을 걸세. 당장은 긍정적인 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면이 존재한다는 걸 잊지는 말자고. 예를 들면, 그래, 친루이밍이 골머리 좀 썩겠네. 만날 나한테 우주 징검다리 프로젝트 맡았다고 자랑했었는데, 우리 연구가 성공하면 우주선의 필요성이 확 떨어질 테니까. 잘하면 아예 계획째로 무산되겠는걸.”

나는 애써 미소를 띠면서 남은 잔을 비웠다.

 

인간 대상 실험 당일, 나는 시설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일 거라고 예상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학자들과 기자들, 그리고 정부 인사들까지. 홀은 물론이고 도로에도 빈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계에서 열광이었던 분위기와 비교하면 홀은 한산한 편이었다. 위에서 또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무대에 일렬로 앉아 간단히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기밀 유지 사항에 걸리는 내용은 우리 대신 정부 쪽 인사가 잘라냈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번 실험의 의미와 진실 여부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로 맞춰졌다.

우리는 파괴 불가능한 상자에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차단한 시계를 마샬과 같이 전송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추가로 기기에 누군가 접근하거나 조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기 다른 나라 언론사의 카메라를 배치하여 실험이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생중계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마샬에게 과도할 정도의 안전장치를 달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첨단 장비로 전신을 감싸는 거로도 모자라 과연 쓸 일이 생길까 싶은 공구함까지 들게 했다. 모든 수치를 두세 번씩 점검했다. 마샬은 왼팔을 크게 흔들며 기기 안으로 들어갔다. 전 세계 스크린에 마샬의 미소가 띄워졌다. 유튜브에서는 관련 방송이 역대 최고의 동시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고 들었다. 댓글창에서는 그의 헬멧 내벽에 붙은 하얀 종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싱거운 이야기였지만, 그건 그의 가족 사진이었다. 슈트 외부에서는 분실의 위험도 있고, 다른 곳에 붙여 봤자 보이지 않으니 헬멧에 붙인 건데, 그런 걸로 논란이 생길 줄은 몰랐다. 물론 그 별거 아닌 진실조차 발설할 수는 없었다.

 

<설정한 시간이나 좌표에 오류가 생기면, 그러니까 실험이 실패하면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마샬은 돌아오지 못했다. 구조 신호 한 번 오지 않았고, 혹시나 하고 달아 둔 GPS 장치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마샬은 작전 중 실종 처리되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실험에 차질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급한 대로 표명한 입장이긴 했지만, 두 달이나 지난 지금도 유효한 사실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연구에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연구의 신뢰도, 자금의 운용, 그리고 인명 피해 등등으로 청문회가 이틀에 한 번꼴로 열렸다. 기지 밖에서는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기자들이 달려들어 길을 막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연구원 각자가 온갖 조사를 받느라 집에도 못 들어갈 정도였다. 덕분에 우리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잘 나가지 않게 됐다.

수개월 후 칠레의 라 실라 천문대에서 압도적인 데이터를 자랑하는 인위적 신호를 포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신호의 해석이 다른 신호들에 비해 월등히 쉽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니, 쉬운 걸 넘어서서 아예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들 표현했다. 현 인류가 쓰는 이진 코드로 작성되었다는 듯했다. 소문으로는 라 실라 천문대가 해석된 데이터를 NASA로 전송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아무도 그 진위를 알지 못했다. 공표된 것은 하나도 없이 모두 근거 없는 루머들뿐이었다.

얼마 안 가 텔레포트 연구소는 곧 폐지되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연구원도 뿔뿔이 흩어졌다. 다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서로를 위로했지만, 나만 믿고 따라와준 터그와 콴에게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에넷과 미츠라기는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했는데 이 일 때문에 혹여 헤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만일 나도 브람스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 둘처럼 강제로 떨어지게 되었을까. 그래도 위에서도 생각이 있다면 이 정도의 상황은 고려해서 적당히 붙여서 전근을 보내줄 지도 몰랐다. 물론 정말로 그랬을 지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옮겨간 연구소에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에서는 나에게 앞으로는 ‘슐츠’ 대신 어머니 쪽 성인 ‘셰만’을 쓸 것을 강제, 아니 권고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때마침 터진 뉴브라칩 해킹 사태가 상당히 심각한 사건이긴 했지만, 우리의 실험이 전부 묻힐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하고 내 개인정보를 조회해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텔레포트 연구소에서의 있었던 일, 그 기간들이 전부 다른 것들로 교체되어 있었다. 사진과 영상에서의 얼굴들도 어딘가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다. 난 이 일을 함구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수소문해도 들리지 않는 다른 연구진들의 소식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는 NASA 소속 연구원이자 미 공군 대위, 그리고 텔레포트 실험 참가자 뷔니시에 마샬입니다

저는 현재 우주를 유영하고 있으며, 시간은 특정할 수 없지만 분명 실험 개시 후로부터 일주일 후가 맞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통상적인 예측으로는 제가 왜 이런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실험에서 고려한 지구와 태양의 천문학적 운동과 상대론적 효과만으로는 부족했다는, 즉 다른 천문학적 운동을 고려한 좌표 입력이 필요했다는 가설로도 이런 차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혹시, 정말 말도 안 되는 가능성으로, 그간의 실험에서 보여 준 시간 지연 현상은 어쩌면 우리가 전송한 물체를 무언가가 다시 우리가 원하는 좌표로 재전송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라고 한다면…

중요한 건, 어찌 됐든 우리는 무언가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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