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고양이 카페트

2018.10.17 02:5610.17

[Fade in.]

 

[input]

 

숨소리.

기차가 덜커덩거리는 소리.

숨소리.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는 소리.

...

종이가 스치는 소리.

 

[input end]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

 

8시 35분입니다.

기차는 조용하고 사위는 어둡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글을 씁니다.

오다가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보았습니다. 시체는 더위에 잘 말려져, 한기와 두께를 모두 잃어버린 채, 카페트 비슷한 무언가로 변해 있었습니다. 나는 차들이 그 위로 쌩쌩, 내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고양이 카페트.

잠시 입 속에서 그것의 어감을 굴려보았습니다.

고양이 카페트.

고양이 카페트.

고양이, 카페트.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그 말라붙은 거죽은, 그저 살아서 뛰어다니던 작은 동물이 아스팔트 위에 얇게 펴진 모양새가 카페트 같았다, 라고만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를테면,

파리가 들끓는 눈구멍이라던가.

이 쯤에 눈이 있었겠지, 하고 짐작할 만한 실선이 두 개. 그리고 그 위에 앉은 파리들. 죽은 목숨의 찌꺼기를 애타게 찾아헤매는 어미의 갈망. 그것과 비슷한... 어떠한 아름다움이 그 '고양이 카페트' 위에 단정히 놓여있었고, 그렇기에 내가 단순한 연상을 통해 '고양이 카페트'라는 단어에 도달했다고는 하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제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

 

종종 눈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때가 있어요?

그 주에 처음 내린, 그래서 아무도 밟고 지나가지 않아 새햐앟기만 한 눈 위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건 언제죠?

제가 당신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당신은 살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듣고 싶었던 건 제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것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요컨대, 사과의 포인트가 엇나갔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

 

이를테면, 내가 가끔 고양이 흉내를 내어도 놀리거나 비웃지 않는 것.

 

*

 

8시 35분입니다.

핸드폰 배터리는 없고 밖은 어두우니 당신은 잠을 잡니다.

팔짱을 끼고.

글을 쓰다 도무지 다음 문장이 생각나질 않으면 이따금씩 당신의 얼굴을 힐끗 봅니다. 그러면 당신의 감긴 눈이라던지, 하얀 이어폰 따위가 다음에 무엇을 써야할지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걸 이 공책에 쓰지는 않을 겁니다.

종이에 적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이 공책에는 그런 걸 적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종이에 적는 건 단지 고양이 카페트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당신이 눈을 떴습니다. 이제 잠을 자고 싶지만 잠은 오지 않습니다.

 

*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좋은 친구고 여행도 같이 했고 술도 곧잘 마시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진 않습니다.

 

*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고 되뇌어 봅니다.

 

*

 

좋아하지 않아.

 

*

 

다시 고양이 카페트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그 날, 당신의 뒤에서 걷다가 그걸 보았기에 당신이 그것을 보았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러니 당신이 그것을 보았지만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갔다는 의심을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저 <의미도 강도도 부족한 부주의한 악의에 상처받아 죽어버린, 그리고 그렇게 죽은 뒤에도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한 것>에 대해 사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여하튼 그 때 저는 말 없이 고양이를 가리켰고, 당신은 뒤를 돌아보곤, 내 손을 바라보더니,

"저런. 불쌍해라."

하고 말했었지요.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

 

난처하거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되게 미안하다" 하고 말해주는 게 아닙니다. 햇볕에 잘 말려져 한기와 무게를 모두 빼앗겨버린 이야기라고 해도.

그것의 한기와 무게는 당신이 부주의하게 죽였었고, 또 그대로 두 달 정도 방치해놓았으니, 적어도 치우는 것 정도는 당신 손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도무지 아스팔트 위에선 썩지를 않으니

풀숲으로 누군가 내던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잠시,

 

"그건 싫어."

 

라고 하는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

작년 겨울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참 좋은 애인이 될 것 같은데.

 

당신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사슴을 닮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을 때 당신의 커다란 갈색 눈망울은 내 감정을 읽지 못했습니까.

 

텅 빈 도서관 안에서 단 둘이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문득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고 또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다만 단편적인 미의 서술만을 머릿속에서 반복하고 도서관의 새벽에는 아무도 있지 않고 단지 공기와 꺼진 불빛과 흐르는 감정 같은 게 남아 있었다, 하며 생각하는 그 때의 시간은

오직 나 혼자만의 것이었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말이 상처받은 동생에게 건넨 위로 치고는 너무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혹은 별빛이 너무 차가운 밤에 내가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상상을 할 거라고는.

 

새파란 물방울 무늬 원피스와, 가방에 단 미니어처 인형과, 당신의 흔들리는 단발 머리와, 작게 걷는 걸음 걸이와, 허공을 스치는 손가락이나, 손톱 위에 한 네일아트와, 가끔씩 바르는 립스틱과, 내 손을 잡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차가운 공기와, 그리고, 나를 돌아볼 때, 웃는, 그런, 당신을,

 

상상하면서 울었을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

 

*

[input]

[노트를 덮는 소리]

[input end]

*

 

...

 

*

[input]

[노트를 펼치는 소리]

[input end]

까.

 

단 한번도.

 

*

고양이 카페트.

고양이 카페트.

다시, 고양이 카페트.

 

고양이를 오래 보지는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것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날은 너무 더웠고, 또 저는 당신을 쫓아가야 했습니다. 당신과 같이 있을 시간은 이제 2일 남짓 남았으니까. 어쩌면 내가 혼자 있었다면, 나는 그 고양이 카페트를 몇분이고 들여다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가죽의 질감이나 말라붙은 살점 따위를 부감하고 또 공책에 서술하면서.

아니면 고양이 카페트 대신 그걸 밟는 차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양이를 쳐버린 차는 어떻게 생겼을까.

*

어떤 길을 누구와 함께 달리고 있었기에 고양이를 보지 못했던 것일까.

*

로드킬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펜션을 잡아 시골로 내려가던 때입니다. 밤이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로 위로 작은 무언가가 올라와 있었고 나는 그걸 보고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덜컹.

나는 그대로 도로를 달렸습니다. 친구들은 깨지 않았습니다. 도착해서 앞바퀴에 묻은 피를 보았을 때에야 나는 내가 그 작고 검은 그림자를 죽이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혀를 몇 번 차더니 호스를 가져와 타이어에 묻은 피를 씻어내었습니다.

그 이외의 감상 같은 건 내게 없었습니다.

*

아마 당신도.

*

타이어의 피를 씻을 때 그런 감정 같은 건 느끼지 않아, 라고 알고 있습니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습니다.

나 역시 렌트한 SM3에다가 호스로 수돗물을 뿌리며 느꼈던 감정은 당혹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작고 검은 그림자의 생명을 끝내면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단지 나중에 그 핏자국을 보았을 때에만 잠시 그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 정도의 관계였습니다.

둘은.

*

로드킬당한 생물은 즉사하지 않으면 오래 살아있는다고 합니다.

치명상을 입은 뒤에도 죽지 않고 도로 위에서 버둥거린다고.

그 날, 펜션에 함께 간 친구는 수의사여서 그런 동물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녀석은 내가 로드킬을 했다는 사실을 듣자, 술을 한 잔 들이켜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냐.

술을 더 마셨고 방에 돌아가는 길에 그 녀석은,

그런데.

그런 동물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해.

예를 들면 길고양이 같은 애들. 유기묘는 특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죽어가.

하며 중얼거리고.

저는,

누구를 기다리는데?

하고 대답을 받았습니다.

그 녀석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나무에 기대어서 힘겹게 말합니다.

아무나. 정말, 아무나.

 

*

오래전 일은 아닙니다.

*

당신과 나는 다른 사람들과 우리 집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나는 그 안의 공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 술을 과하게 마셨습니다. 그 날 밤에 나는 내 방까지 혼자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술을 조금 지나치게 마셨습니다.

*

사랑하지 않아.

*

나는 걔를 사랑하지 않아. 그냥 좀 많이 좋아하는 거 뿐이지. 그러니까

*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걔의 관계를 오해하는 게 싫어.

*

그래서 오해하지 않고 싶습니다.

술을 빠른 속도로 마시는 습관이 생겨도 오해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매주 우리 집에서 술을 마셔도 오해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면 둘이 같은 방 안에 들어가도 오해하지 않습니다.

둘이 팔짱을 끼고 있는 걸 보아도

혹은 밤새 둘이 같이 영화를 보거나

내가 울면서 침대에서 숨죽이고 있을 때에

빗방울은 창문을 때리면서 나는 옆 방의 속삭임을 듣고

내가 들어가면 자는 척을 하는 당신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나를 반기는 내 친구나

그런 게 있어도

*

오해하는 게 싫어.

*

이제는 오해하지 않을게요.

*

그러면 결국 나는 당신에게 뭐였는지, 생각을 해 보면, 결국 내가 펜션으로 가던 날의 일이 떠오르게 됩니다.

밤의 도로에서 내 앞에 나타난 작고 검은 그림자와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나와,

덜컹,

차를 멈춰서 치우기에는 귀찮은걸,

친구들이 자고 있는데 일어나면 뭐라고 얘기해야할지 모르겠어,

이제는 너무 멀리 왔잖아,

 

끝내 혀를 차며 호스를 건네던 주인 아저씨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런 관계였으니까.

*

나는 그 날 이후로 내가 언젠가 차에 치여 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차로 생물을 치었으니 나 또한 차에 치여서 죽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

아니면 이미,

*

치여서 죽어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input]

숨소리.

노트를 가방에 집어넣는 소리.

숨소리.

기차가 덜커덩대는 소리.

작은 한숨.

 

...

[input end]

 

[Fade out.]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371 단편 잘린 머리들 바젤 2018.12.19 0
2370 단편 실종 진정현 2018.12.05 6
2369 단편 불광동 수정씨 희야아범 2018.11.17 0
2368 단편 살을 섞다 (본문 삭제)2 노말시티 2018.11.13 0
2367 단편 극지인(polar alien, 劇地人)과 도넛 희야아범 2018.11.09 0
2366 단편 연희 진정현 2018.10.24 4
2365 단편 사랑의 의미 진정현 2018.10.24 6
2364 단편 삐거덕 낡은 의자 (본문 삭제) 온연두콩 2018.10.18 1
2363 단편 비취 라그린네 2018.10.17 0
단편 고양이 카페트 선작21 2018.10.17 0
2361 단편 시체가 놓여있는 상점 유래유거 2018.08.19 0
2360 단편 비소가 섞인 달걀술 호넷시티 2018.08.12 0
2359 단편 유전 눈설기쁠희 2018.08.12 0
2358 단편 양념을 곁들인 마지막 식사 호넷시티 2018.08.10 0
2357 단편 프로키온이 빛나는 겨울 밤 호넷시티 2018.08.10 0
2356 단편 공터에 하차 맥인산 2018.08.04 0
2355 단편 가역거부귀(可逆拒否鬼) 맥인산 2018.08.04 0
2354 단편 사이버펑크 목이긴기린그림 2018.07.31 0
2353 단편 타나토스 강서진 2018.07.31 0
2352 단편 개를 기르는 마녀 강서진 2018.07.31 0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