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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개를 기르는 마녀

2018.07.31 01:0507.31

마녀는 고양이를 기른다. 마녀전서 1쪽에 기록되어있는 법규였다. 주디는 성적에 한해서만큼은 모범적인 마녀지망생이었지만…….

 

겨울이었다. 성에가 허옇게 낀 창문을 주디는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주걱을 들었다. 큰 냄비에 용액이 끓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걱으로 찬찬히 사람 몸통만한 냄비 안을 저었다. 황토색의 용액은 끈적끈적했다. 개구리 눈알로 만든, 꽥꽥거리게 되는 마법약은 순조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녀시험이 일주일 가량 남아있었다. 주근깨가 가득한 주디는 마녀치고는 너무 잘 웃는다는 꾸중을 몇 번이고 들었지만 성실한 학생이었다. 가끔씩은 심술을 부리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사람들은 주디의 실수에 함께 웃었고 그럴 때면 마녀협회에 불려가서 혼나고는 했다. 마녀의 위엄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주디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이리온.”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거리는 저 개의 이름은 토르. 주디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개는 마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마녀들은 대부분 검은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다. 개를 기르고 있다는 것을 들키면 마녀시험에서 떨어질 지도 몰랐다. 주디는 마녀시험에 통과할 때까지는 어떻게든 비밀로 해서 버틸 작정이었다. 마녀시험에서 통과하기만 하면 으슥한 곳에서 숨어서 혼자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고비는 바로 오늘이었다. 오늘 저녁 마녀 친구들이 시험공부를 겸해서 주디에게 특강을 받기 위해 주디의 집에 오기로 되어있었다.

 

오늘은 개구리 고기를 잔뜩 줄테니 숨어있으렴. 토르.”

 

주디는 토르의 턱을 쓰다듬었다. 토르는 가만히 앉아서 혀를 내밀고 헥헥거렸다.

 

오늘만 넘기면 되니까.”

 

주디는 토르와 눈을 마주치고는 싱긋 웃었다. 선생님에게 매번 혼났던 그 웃음이었다.

 

 

 

 

사랑하는 주디!”

 

구불구불한 금발이 허리까지 내려온 한 마녀가 뾰족한 검은 모자를 벗고 주디를 껴안았다. 옆에는 인상이 어두운 흑발마녀가 서있었다. 그녀는 까닥하고 고개를 까닥여서 인사했다. 주디는 반가운 얼굴로 둘을 맞이했다. 금발마녀의 이름은 에디야, 흑발마녀의 이름은 카르텔이었다.

 

소야는 어디에 있어? 안 보이네!”

 

모르겠어. 걘 항상 늦으니까.”

 

카르텔이 냉담하게 대꾸했다.

 

하긴 그래. 변명도 항상 똑같았지. 오늘도 분명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할 거야.”

 

소야의 할머니는 몇 백번을 부활하시는지.”

 

카르텔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끼리 먼저 수업하자구.”

 

에디야가 주디의 팔을 잡고 끌고 들어갔다. 그 때였다. 벽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

 

?”

 

에디야가 깜짝 놀라 주디를 보았다. 에디야보다 더 놀란 것은 주디였다. 주디는 목언저리로 식은땀이 배였다. 벽장을 보자 벽장의 문 틈으로 토르의 동그란 눈이 보였다. 주디는 재빨리 입에 검지를 대었다가 손을 뒤로 숨겼다. 그리고는 에디야를 보며 밝게 웃었다.

 

약의 기포가 빠질 때 이상한 소리가 나더라.”

 

토르는 짖는 것을 멈추었다. 에디야는 주디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역시 주디는 아는 약도 많아.”

 

둘 다 부엌으로 와! 실험해야지.”

 

주디는 토르에게서 멀리 떨어진 부엌으로 에디야와 카르텔을 안내했다. 카르텔은 평소와 같이 말 수가 없었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카르텔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르텔이 말하자 주디는 화들짝 놀랐다.

 

?”

화장실이 어디지?”

, 부엌 옆에 있어. 따라와!”

 

주디는 카르텔을 화장실까지 안내하고 뛰다시피 에디야에게로 돌아왔다. 다행히 에디야는 다른 곳을 보지 않고 끓는 냄비를 보고 있었다. 카르텔은 곧 돌아왔다.

 

셋은 한 자리에 모여 준비물인 뱀, 개구리 눈알, 두꺼비 껍질을 꺼냈다. 주디는 그 것에 더해 마법의 가루를 스윽 재료에 뿌렸다.

 

이 가루를 뿌려야 약이 더 잘 돼. 알이 굵은 진주를 갈아서 고운 모래랑 섞은 거야.”

 

역시 훌륭해! 주디! 좋은 팁이야.”

 

에디야는 열심히 메모 중이었고 카르텔은 공부에는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딴청을 피웠다.

 

어딜 그렇게 봐? 카르텔?”

 

에디야가 카르텔에게 물었다.

 

카르텔은 말없이 시선을 토르가 있는 서랍에 고정했다. 주디는 카르텔의 앞을 허둥대며 막아섰다. 카르텔은 이번에는 멀뚱히 주디의 얼굴을 보았다. 주디는 물었다.

 

왜 그래? 카르텔?”

 

소야가 오는 소리가 들려.”

 

똑똑.

 

그 말대로 곧 입구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디가 황급히 문으로 달려갔을 때였다.

 

왈왈왈왈왈왈!

 

서랍 안에서 토르가 세차게 울었다. 주디는 울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문을 열었다. 소야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에디야가 주디에게 물었다.

 

기포가 너무 심하게 터지는 거 아냐?”

아냐! 아냐! 괜찮아! 왔니? 소야?”

 

소야는 피식 웃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너희 집 고양이는 개처럼 짖는군.”

아니야. 아니야. 약품소리야.”

흐음, 오늘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늦었어. 먼저 시작했겠군.”

입가에 파스타소스가 묻어있어.”

크흠, 데이트한다고 늦은 거 절대 아니야. 오해말라구.”

새로운 남자? 잘 생겼어?”

 

에디야가 물었다.

 

잘생겼어. 매너도 좋구. 들어가자.”

 

소야는 주디의 등을 토닥였다. 주디는 서랍을 힐끗 보았지만 토르는 더 이상 짖지는 않았다. 순한 눈을 이리저리 굴렸을 뿐이다.

 

지옥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시간이었다. 주디는 정신없이 셋 사이를 이리저리 다녔다. 그래야만 불안한 마음이 조금 안정될 것같아서였다. 이윽고 그들은 현관 앞에 신발을 신고 서있었다. 갈 시간이었다.

 

잘배웠어. 주디. 사랑해!”

 

에디야가 손끝으로 키스를 날렸다. 카르텔은 침묵했고, 소야는 툴툴거렸다.

 

주디. 다음에는 간식 더 줘. 배고파.”

 

알았어. 알았어. 다들 잘 가! 우리 모두 마녀 시험에서 합격하자!”

 

그래!”

 

그들은 손을 흔들고 떠났다. 문을 닫고 나서야 주디는 다리가 풀렸다.

 

주디는 서랍을 열었다. 토르는 말없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잘 끝났어.”

 

주디는 이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토르가 주디의 뺨을 핥았다. 주디는 토르를 껴안고 가만히 있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다음 날이었다. 빗자루 8대가 주디의 집으로 돌진했다. 마녀들의 모자에는 눈알만한 사이렌이 붙어있었다. 그들은 음성증폭 마법으로 대화했다.

 

주디의 집이 나타났다. 포위하라.”

 

학생 주디. 당장 나오시오.”

 

주디는 잠에서 막 깨어 정신이 없었지만 곧 마녀협회에서 사찰이 나온 것을 눈치챘다. 몸이 굳었다. 그들이 이렇게 집을 포위할 이유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주디는 부스스하게 일어나 검은 옷을 겨우 갖춰입고 뾰족모자도 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학생 주디. 마녀가 개를 기른다는 소식을 들었네. 나오게. 집 안을 조사해보겠네.”

 

? 아니에요!”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있었다. 주디는 황급히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마녀경찰들은 주디를 막아섰다.

 

마녀전서 18! 마녀는 고양이를 기르며 개를 기르지 아니한다!”

 

주디는 부들부들 떨었다.

 

“1구역, 없습니다!”

 

“2구역, 없습니다!”

 

“3구역!”

 

토르는 들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주디는 왈칵 눈물이 났다. 이제 끝이었다.

 

없습니다!”

 

없어? 헛소문인가?”

 

헛소문, 딸꾹, 이라구요!”

 

주디는 온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어 외쳤다.

 

마녀는 울지 않는다! 뚝 그치지 못하겠나!”

 

경찰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허위신고인가! 심술궂은 게 모범생의 짓이군. 주디도 이런 행동을 본받도록. 그럼 다시 되돌아가자!”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마녀경찰들은 다시 어디론가로 날아가버렸다. 주디는 딸꾹질을 하며 계속 울었다. 발견하지 못했다니, 토르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그 때였다. 투명마법을 풀고 누군가가 토르의 목끈을 잡고 나타났다. 카르텔이었다. 그녀는 말을 고르는 듯이 한참을 생각하고 있다가 말했다.

 

개는 기르지 않는 게 좋겠어.”

 

에디야와 소야는?”

 

여기 없어.”

 

불러줘.”

 

카르텔은 주디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다가 그 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불렀어.”

 

네가 신고했어?”

 

……말해줄 수 없어.”

 

누구의 짓일까. 마녀로서는 모범생인 카르텔은 개를 기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카르텔이 주디의 행동에 본때를 보여주려고 신고한 것일까. 어제 맨 처음 집에 도착한 에디야일까? 소야가 들어왔을 때 개가 짖는 소리는 가장 크게 났고 소야는 심지어 개가 짖는 소리냐고 구체적으로 묻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야? 카르텔.”

 

소야가 어쩐 일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주디의 집으로 빗자루를 타고 달려왔다. 10여 분쯤 지나고 나서 에디야도 도착했다.

 

주디는 불신의 눈으로 세 명을 보았다. 셋 중에 누구일까.

하지만 미리 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디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을 모아두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개를 기르고 있어.”

 

소야와 에디야는 깜짝 놀랐다.

 

경찰이 왔었어. 나는 마녀시험을 합격하고 나서 계속 토르와 함께 할 거야. 마녀로서 아름답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토르와 함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함께 했고 서로 의지하고 있어. 너희들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 너희들에게 나는 모든 걸 다 말했어. 모든 걸 말한 이유는…… 너희 중 한 명 이상이 신고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말하게 되면 이젠 달라. 나는 내가 스스로 말한 거야. 너희를 원망하고 싶지 않아.”

 

주디, 개는 빗자루에 태우지 못한다고!”

 

개라니.”

 

그래도 너희들이 친구인 것처럼 토르도 친구니까!”

 

주디가 외쳤다.

 

그 때였다.

에디야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울어?”

 

주디가 에디야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

 

미안해. 미안해. 주디. 내가 신고했어.”

 

에디야!”

 

네가 개를 기르지 않았으면 했어.”

 

주디는 에디야를 껴안았다.

 

다른 마녀들과 다른 삶이지만 이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에디야. 이해해줄 수 없겠지만.”

 

아니야! 사실 나는 네가 성적이 잘 나오는 게 싫었어! 미안해! 주디.”

 

짝짝짝, 그 때 박수소리가 들렸다. 카르텔의 박수였다. 카르텔은 진주반지를 들고 있었다. 에디야의 진주반지였다.

 

개가 이걸 물고 있었어. 에디야가 고백해줘서 다행이야.”

 

 

 

주디는 며칠 후 마녀시험에서 당당하게 합격했다. 모두가 합격했지만 외진 곳에서 혼자 사는 건 주디뿐이다.

 

괜찮겠어?”

 

종종 너희가 사는 곳으로도 놀러올게.”

 

소야는 어깨를 으쓱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에디야는 며칠을 계속 울었는지 얼굴이 부어있었다. 카르텔은 졸업식때 태도우수상을 받았다. 주디는 환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마녀자격증도 땄으니 이사준비를 할 셈이었다. 집 안에서는 토르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주디를 맞이했다. 주디는 토르에게 속삭였다.

 

우수한 마녀가 될 수는 없지만 좋은 마녀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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